< 2장 86화 - 수양대군은 일을 만들어서 한다(1) >
1457년 3월, 대만 개척 함대가 떠나갔지만 여전히 바쁘다. 여기가 어디냐고? 임진강과 한강이 만난 거대한 강줄기인 조강(祖江)에서 화력 시험과 함선 시험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방패선이 옵니다!”
“어디 보자꾸나. 그렇구나, 저렇게 만들어야 좋은 법이다. 방패를 사방에 달고 있으니 왜구를 비롯한 해구(海寇)따위가 활을 쏘아도, 설령 보총을 쏘아도 막아내겠구나.”
형님이 건네준 천리경으로 방길주가 만든 신형 함선인 방패선(防牌船)을 보니 한 눈에 보아도 전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판 옆으로 소구경 화포와 화살을 막아내기 위한 나무판을 매달았다.
이윽고 화포를 제작하는 일을 지휘했던 박강이 최종점검을 마치고 배에서 내려와 형님에게 다가왔다. 박강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보고를 시작했다.
“뇌력포(雷靂砲)를 좌, 우 6문씩. 갑판 위에 벽력포(霹靂砲)를 좌, 우 6문씩 두었습니다. 갑판 아래 있는 뇌력포를 지자총통으로 두면 32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화포를 시험할 것이나 참으로 크고 튼튼한 함선이구나. 기존의 대방선은 짐을 적게 두어야 지자총통을 16문을 쓸 수 있는데 두 배 가까이 되니 마음이 놓인다.”
무역선을 노리는 해적들을 격퇴하기 위한 함선이니 대방선(大方船 - 형님이 하사한 이름이다)과 달리 몸체가 높고 둔중해 보였다. 방길주의 말 대로면 1,700료(약 240톤)라 하는데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겠다. 그냥 더 크다! 여기에 함포도 최대 44문이다!
“순차적으로 방포하라!”
“명령 받들겠사옵니다! 신호를 보내라!”
깃발이 휘날리자 신호를 받은 방패선 측면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사격이 이어졌다. 배가 조금 기우는 모습을 보고 염려하던 형님은 균형을 찾는 모습을 보이자 다음 명령을 내렸다.
“개별 사격은 충분히 보았으니 일제히 방포하라!”
함선이 천천히 선회하더니 지금까지 한 발씩 발사하였던 신형 화포인 뇌력포 6문을 일제히 방포했다. 그러자 반동으로 요란하게 기우뚱 거렸고 선원들이 고함을 쳤다. 뇌력포를 개발한 박강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순차사격에서 조금의 흔들림만 있었는데 일제사격은 함선이 버티지 못하는구나.”
“일제 사격이 아니라고 하여도 위험하옵니다. 바다가 험하다면 한 방향에서 3문을 동시에 쏘아도 힘들 것 같사옵니다.”
화력으로 형님을 만족시킨 뇌력포지만 위력이 너무나 강했다. 군기시에서 봤을 때도 너무 거대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 구경은 천자총통과 호환되는 3.75치(약 12.8㎝)인데 사격에 쓰이는 화약은 90냥(약 3.6㎏)에 달하며 무게는 2,000근이다.
구경이 같으니 위력은 천자총통보다 소폭 우위이다. 하지만 사정거리는 질 좋은 화약으로 규정대로 화약을 채워 쏘면 2,000보를 날아가니 천자총통의 두 배이다.
“다음은 표점(標點)으로 쓰일 낡은 배를 띄워놓고 벽력포를 시험해 보자꾸나.”
형님이 직접 설계한 신형 화포인 벽력포에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일제사격을 벌이자 방패선은 흔들리지도 않았고 조운선도 멀쩡한 것이 그냥 포도탄과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박강도 영문을 몰랐는지 어리둥절해 했고 형님만이 미소를 지었다. 시험이 끝나자 형님이 기분이 좋아서 가슴을 펴면서 말했다.
“병사들이 정말로 고생이 많았구나. 백사장에 내려가 공을 치하하고 싶으니 병사들을 모이게 하여라.”
예정에는 없던 일이지만 공치사는 좋은 일이니 병사들이 열을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강한 바람이 불면서 새하얀 탄연(彈煙 - 화약 연기)이 밀려왔고 지린내와 텁텁한 그을음 냄새에 모두가 질겁했고 나 또한 그랬다.
“역시 화포를 쏘고 남은 탄연만큼 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 없구나.”
“몸이 상하십니다! 해로운 것이니 어서 비단으로 입을 가리옵소서!”
옆에 있던 홍위가 질린 표정으로 형님에게 비단 조각을 건네줬다. 마음을 일깨운다는 말을 듣자니 형님의 시호가 무(武)종이 될 것 같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을 치하하는 형님은 이윽고 방패선 위에 올라왔다.
방패선 위에는 화기도감 출신의 화포장들이 모여 있었다. 형님을 보자 단심을 외치며 칼 같은 군기를 보여주니 훈련도감만 있던 시절의 고참병들이리라.
“뇌력포를 써 보니 어떠한가.”
“뇌력포는 너무 크고 둔중하여 사용하기 힘들어 함선에는 쓰이기 힘듭니다. 설령 함선에 명중하여도 용골(龍骨)을 뚫지 않으면 단번에 격침시키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하면 좌, 우에 두 개씩 네 문을 두어 먼 거리에서 쏘아대면 좋을 것이다. 그러하면 벽력포는 어떠한가?”
“참으로 좋은 물건이지만 석벽을 뚫지 못하니 함선에 써야 효험이 있사옵니다. 주상전하께 조운선의 몰골을 보여드려라!”
나룻배에 묶인 조운선이 너덜너덜한 선체를 드러냈는데 겉으로 봐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던 병사가 창백한 얼굴로 뛰쳐나왔다.
“포도탄이 절반은 나무를 꿰뚫고 반대편에 박히고. 절반은 나무를 부수기만 하여서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곤죽이 되었을 것이옵니다.”
“과연 그렇구나. 화약의 양을 조금 늘리면 큰 배에도 효험이 있을 것이다.”
“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겨를이 없사옵니다.”
이해하지 못한 박강과 내가 동시에 묻자 형님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주문대로 화포를 만든 박강도 결과물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전에 하르빈에서 잡아온 와라부(오이라트) 포로의 증언을 모아오라 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 전투 때에 회회포를 끌었던 병사의 증언을 듣고 착안한 것이 벽력포이다.”
“회회포는 효험을 보았지만 자모포로 쏘아서 부쉈습니다. 어찌 된 일이옵니까?”
“한 눈을 잃은 자의 증언을 보았다. 자모포가 두꺼운 회회포의 축에 박혔지만 파편이 튀어서 눈을 찌르고 다른 병사 한 명을 갈기갈기 찢었다 하였느니라.”
사례를 듣고 보니 어디선가 기억이 날 것 같으면서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형님은 깨끗이 닦인 벽력포를 쓰다듬었는데 정체는 천자총통의 구경을 키워 만든 녀석이었다.
“와라부 포로의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본디 화포는 단매에 쏘아붙이는 강한 놈이 능사일 줄 알았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에는 약한 힘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오면 화포에 화약을 많이 사용할 필요도 없사옵니다. 주상전하께서 이렇게 혜안을 보이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원하는 대로 화포를 잘 만들었으니 어찌 공이 없다 하겠는가.”
이제야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높은 위력의 화포는 배의 앞뒤로 구멍만 뚫어서 피해가 적다. 그러니 낮은 위력으로 산탄을 쏘아 선체의 파편을 쏟아내게 만들어 살상력을 키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름 돋는 사실이 떠올랐다.
형님이 뇌력포와 벽력포를 설계한 이유는 종합 무기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놀란 눈으로 형님에게 물었다.
“하오면 멀리서는 뇌력포로 적을 두드리고, 조금 근접하면 대완구(大碗口)와 지자총통을 쏘며. 가까이 다가오면 벽력포로 마무리 지어 화전(火箭)을 날리면 충분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다. 일전에 대마도를 몰아칠 적의 기록을 보았는데 화포를 쏘아도 백 보 안에서만 명중이 된다 하였느니라. 그러하니 벽력포는 백 보 거리에서 선박만 효험이 있는 화포이지.”
내가 전쟁사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고 많이 잊어버렸지만 정말 형님의 두뇌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인도까지 항해하는 도중 달라붙는 해적 따위는 한 끼 식사 수준이겠지.
반면 군사적 지식이 별로 없는 홍위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홍위를 보면서 형님이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달자들에게 받아온 면양(綿羊 - 양)이 도성에 들어왔다 하더구나. 풍토병이 돌아 상왕 시절부터 비어 있던 양장(羊場 - 양목장)에 채울 일이 있으니 궐로 돌아가자꾸나.”
돌아가는 길은 하반신 단련을 위해 왕도 세자도 종친도 말을 타고 돌아간다. 가마 따위는 날이 험할 때에나 타는 물건이 되어버렸는지라 사방에서 군관들이 눈을 매섭게 부라리고 있었다.
조용히 도성으로 향하는 와중에 흑우의 갈기를 보니 색이 많이 변했다. 칠 년이 넘게 나를 태우고 많은 고생을 했던 녀석이니 이만 자유롭게 살아도 되리라. 그렇게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흑우야,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라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지혜를 부리지 않는 것이더냐. 이미 쇠하고 있으니 나를 태우지 못하여도 상관이 없지 않느냐.”
“숙부님이 다른 말에 올라타면 고통에 겨워 몸부림을 칠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홍위가 명답을 내놓았다. 내 몸은 아직도 근손실이 오지 않아서 체중은 190근(약 122㎏)에 육박했다. 그러니 보통 말은 한 시진(2시간)을 올라타면 땀을 흘리면서 힘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홍위는 궁금하다는 듯이 나에게 물어봤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말을 할 수 없으니 상호 존대라서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흑우는 한혈마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혈마가 어디에서 온 녀석이기에 새로운 말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숙부님께서는 충분한 재산이 있으니 여러 마리를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와라부에서도 더욱 서쪽으로 나아간 곳에서도 귀하게 모시는 말이라 합니다. 달자들이 내란을 벌이니 와라부에서도 함부로 사람을 보낼 수 없는 노릇입니다.”
“와라부가 맞닿은 곳이 토번(吐蕃 - 티베트)이라 하였는데 천축을 넘은 서역이 고향이라니요. 명국의 황제도 이러한 물건을 쉽사리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타이순과의 인맥을 통해서 몇 마리 정도는 구해올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형님도 사치를 부리지 않는데 내가 사치를 부릴 명분 따위는 없지. 그렇게 흑우의 갈기를 쓸어내리면서 속삭였다.
“훗날이 되어 천축으로 사람이 오갈 수 있다면. 내 욕심을 부려서라도 대식국(아라비아) 까지 항해하게 하여 너를 고향으로 보내줄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는지 몰라도 흑우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푸르륵 거렸다. 나와 현동이 외에는 아무런 사람도 태우지 않는 고고한 말이지만 말 고삐정도는 쥐어도 괜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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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양이 왔는지는 몰라도 양목장은 잉화도(仍火島 - 현 여의도)로 정했다. 형님과 함께 배다리를 건너 오니 메- 하는 양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곱슬곱슬하고 빵빵한 털이 들어찬 새하얀 양이 아니고 곧은 털이 조금 나 있는 몽골 특유의 양이다.
형님의 말이 맞다면 2할만 잉화도에서 기르기로 했는데 이렇게 많으면 관리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형님은 끝도 없이 들어찬 양을 보고 질렸는지 내관을 불러다 물었다.
“대체 대총 한(타이순 칸)이 얼마나 많은 양을 보낸 것이더냐.”
“4만 마리를 보낸다 하였는데 우선 일만 마리를 보냈다 하옵니다. 여기에 있는 양은 명을 받들어 2할만 도성으로 올려 보낸 것이옵니다.”
“대체 오천 섬의 천일염으로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많은 양을 보낸다는 말이냐.”
몽골에 보낸 오천 섬의 천일염이라고 해도 별로 비싸지 않다. 보통 자염은 한 섬에 쌀 석 섬 정도의 값어치를 하지만 천일염은 사람이 먹는 물건이 아니라서 다섯 섬에 쌀 한 섬 값어치를 하니까.
하지만 형님이 천일염만 보내지는 않았다. 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쇳조각을 수레를 만드는 대나무에 넣어서 보냈으니 대략 일만 근 가량의 강철이 보내졌다. 도감군 기준으로 병사 2천을 무장시킬 분량이기는 하다.
앞으로 거래를 이어가자고 다음 거래에도 쓰일 양까지 한 번에 보냈는지. 아니면 급한 상황에 물자를 보내서 고마운 마음에 많이 보냈는지는 모를 일이다. 홍위는 양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 눈치였다.
“상왕전하께서 기르던 양을 생각하니 이 양들도 풍토병이 돌아 몰살당할까 염려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양을 기르는 일을 가장 잘 하는 정충렬의 부하들에게 보낼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이쿠, 이 녀석이!”
무심코 양에게 접근했더니 무리의 대장쯤 되는 녀석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기에 놈이 돌격해오자 어깨로 받아쳐서 역으로 날려버렸다. 홍위 놀란 눈으로 양에게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겉으로는 온순해 보이나 성질이 흉포한 것이 양입니다. 세자저하께서도 조심하십시오.”
“숙부님. 양이 죽은 것 같습니다. 목이 옆으로 완전히 돌아갔으니 비참한 몰골입니다.”
다가가서 보니 목이 꺾여서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삽시간에 국립 목장의 재산을 까먹은 입장이 되었으니 부끄러움이 치밀어 오르는데 형님이 혀를 끌끌 차시면서 나를 나무라신다.
“네 몸은 흉기나 다름이 없으니 조심하여라. 내가 입신체비를 행하지 않았으면 네가 스무 보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저는 싸움을 잘 하지 못하옵니다!”
“내수린은 그렇게 잘 하면서 싸움을 하지 못한다니 이는 기군망상(欺君罔上)이 아니겠느냐. 죽은 양을 가져가서 내일 주연에 쓰일 요리를 만들면 죄를 용서할 것이다.”
을이 할 말이 뭐가 있겠냐. 죽은 양을 가져가서 백정에게 가져다 줬고. 양이 양 고기가 되었으니 하인들을 시켜 향신료를 아낌없이 넣어서 양꼬치를 만들었다.
늙은 양이어서 누린내가 날 것을 예상해 마늘과 생강 그리고 산초를 뿌리자 톡 쏘는 매운맛이 일품인 양꼬치가 완성되었다. 이윽고 경회루에서 열리는 주연에 양꼬치가 등장해서 석쇠에 올려졌다.
“양의 고기가 누린내가 올라오는지라 난로회(煖爐會) 방식을 바꾸어 만들었사옵니다.”
“절품이 따로 없구나. 누린내가 있지만 산초의 향에 가려져서 느껴지지도 않으니 술이 절로 들어가는구나.”
사람들의 얼굴에 서서히 술이 올라오고 형님도 벌건 얼굴로 어사주를 내렸다. 하도 많이 받은 어사주이지만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잔이 가득 채워졌다. 이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신호다.
“일전에는 나라의 일이 바빠 미뤄 둔 일이니 지금 묻겠다. 죄수를 여럿 구해 달라 하였느냐? 그마저도 의금부에 중죄인을 가둬둘 일이라 하였더냐?”
“그렇사옵니다. 다름이 아니고 의서를 쓰는 일에 난관이 기다리는지라 이를 증명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식이(食餌)를 통제하는 것이 먼저이옵니다.”
“의서를 쓰는 일에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니 궁금하구나. 의서의 초본을 보면서 적잖이 놀랐는데 앞으로 쓸 내용이 무엇이더냐.”
형님도 의서의 초안을 보더니 기대가 큰가보다. 전순의가 쓰고 있었던 식료찬요는 현대인의 기준으로 잡학사전이나 각종 식이요법 서적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많은 개량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필요 영양비와 열량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시대에 맞게 체동비(體動費 - 몸을 움직이는데 쓰인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탄수화물은 곡분으로, 단백질은 육질로, 지방은 지질로 변용해서 기록했다.
당연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칼로리 계산을 하지 않고 적당히 활동하는 성인 남성이 백미 한 되를 기준으로 체동비를 잡으면 충분하다고 기준을 잡았다. 여기에 각종 입신체비 지식이 들어갔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지만 욕심이 생겼다.
“일전에 요동에서 도망쳐 온 여국강을 비롯한 명나라 유민들의 증언을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다들 기근에 시달리는 중에도 제법 노동을 했던 자들이 있지만 괴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괴이한 일이라 하면 기근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 겪는 일이 아니겠느냐.”
“풍족하게 잡곡을 먹었는데도 사지가 저리고 힘이 없으며 아이들의 뼈가 틀어지는 일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섭생에서 빠진 것이 이런 일을 만든 것이 분명하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약간 조짐을 보였다 사라진 구루병을 이야기하니 형님도 고민이 생겼나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약을 팔아보자.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이 있습니다. 본디 사람이 섭생을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물건이라 여겨지니 이를 세견물(細見物 - 자세히 관찰하는 물건)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세견물이라. 그렇다면 세견물을 알아보았자 무엇을 할 것이냐.”
“만약 먼 바다에 나아가 한 달이고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하면 세견물 가운데 부족한 것이 생길 것이 분명하옵니다.”
형님이 계속 고민하더니 술을 털어 넣고 다시 어사주를 잔뜩 부어줬다. 단번에 목으로 넘기자 화끈한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기대를 아끼지 않는 형님의 말이 이어졌다.
“알겠다. 중죄인의 복심(覆審)을 한다 이르고 두 달 정도 가두어 두는 것은 충분하지만 중죄인이 얼마나 생길지는 모를 일이구나. 부디 세견물이라는 것을 알아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