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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47화 (147/573)

< 2장 85화 - 타요완 원정(4) >

홍윤성이 숙소에서 비명을 지르건 말건 김수연은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당장 한확이 나서서 복속 의사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한확은 와병(臥病)중에 있었다.

57세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던 한확은 이어지는 더위에 기력이 쇠하다가 병에 걸렸다 되었다. 의원이 한확의 집무실에서 나오자 김수연이 절실한 듯이 다가섰다. 그는 막중한 책무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좌찬성께서는 여전히 편찮으신가.”

“그렇습니다.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계시니 생맥산(生脈散)으로는 효험이 없습니다.”

“좌찬성께서 혜안을 보이셔야 일이 순탄히 돌아갈 것이 아닌가. 이놈의 더위가 문제군.”

계속된 폭염에 좌찬성 한확은 결국 자리에 누워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끔찍한 더위지만 토인들의 말에 따르면 평범한 여름이라 하였으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김수연이 고뇌하고 있는데 멀리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며 하급 관료가 숨 고를 새도 없이 뛰어들어왔다.

“의원님! 좌찬성 어른께 드릴 좋은 약재를 찾아냈습니다!”

“약재라 하였는가?”

관리 하나가 달려와서 대나무도 아니고 수수도 아닌 줄기를 한아름 가져왔다. 생전 본 적이 없는 것이기에 김수연과 의원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숨을 고른 관리의 말이 이어졌다.

“토인들이 기력이 쇠하고 일어날 수 없는 이에게 즙을 짜내어 먹이는 약재라 하였습니다. 일전에 물을 건너 온 자들이 귀하게 여긴 물건이라 하였습니다.”

“즙이라? 그런데 어찌 이리 단내가 난단 말인가.”

“이건 설탕의 냄새입니다! 저도 단 한번만 사용해 본 약재인지라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김수연은 말을 듣자마자 마디를 하나 잘라 입에 넣었다. 칡뿌리와 비슷한 질긴 섬유 사이로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이 시대에 설탕은 진귀한 약재이니 김수연 또한 맛을 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의원 또한 평생 단 한번 먹어봤던 설탕의 원료, 사탕수수를 눈으로 보게 되니 혼절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 의원의 손아귀에 사탕수수 다발이 들려졌다.

“어서 탕약을 만들어서 좌찬성의 기력을 되찾는데 사용하게. 그리고 이러한 작물을 발견한 토인이 누구든 간에 소 한 마리를 내려서 포상을 하고.”

“알겠습니다!”

잠시 뒤. 더위에 기력이 쇠한 한확이 누워있던 방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한확은 짜증스러운 눈빛을 보이면서 애써 몸을 일으켰다.

“이런 더위에는 백약이 무효하고 한양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토인이 발견한 물건이 있는데 의원님께서 설탕이라 하셨습니다.”

“뭐? 서…… 설탕? 정녕 설탕이란 말이냐?”

한확의 눈이 뒤집히면서 설탕을 잔뜩 넣은 탕약을 천천히 음미하며 들이켰다. 이윽고 푸근한 미소와 함께 사지를 뻗으며 조용히 몸을 풀었다.

“역시 설탕이로구나. 사지에 기운이 솟아오르고 기력이 돌아오는 것이 명약이로다.”

수양대군이 집필중인 식료찬요와 정 반대의 말이 한확의 입에서 나왔다. 이제 서서히 기력을 되찾아 설탕 농사를 지을 생각에 온 몸에 힘이 돌아왔다. 그렇게 한확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모든 기력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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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산 아래에서는 농사가 한창이었다. 머나먼 남방으로 내려온 만큼 조정에서도 곡식을 매번 보내올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서원(西原)일대에는 수백 결에 달하는 농토가 생겨났다.

농토를 개척한 주역은 권세가에서 보내온 노비들이었다. 어명에 의해 10결을 개척하면 면천하고 개척한 농토의 소유는 노비의 주인으로 넘어가니 농토를 늘리고자 하는 욕심에 많은 이들이 머나먼 남쪽으로 내려왔다.

“들깨와 참깨의 작황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습니다. 무와 배추는 물러지긴 했지만 소출에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토인들이 기르던 좁쌀은 별 다른 문제가 없이 자라더군. 콩은 낱알이 조금 작아지긴 했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 분명하다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지 않는가.”

“다른 문제라 하시면 무엇입니까?”

얼마 전에 호조로 편입된 관리가 묻자 흰 머리가 올라오는 나이 많은 관리가 엄격히 말했다. 실무를 경험한 일이 적은 후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벼가 오곡의 으뜸이 아닌가. 햅쌀로 밥을 지어 배불리 먹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가?”

“농부들도 대를 이어가며 논밭을 가꿔온 이들이 아닙니까. 땅 하나는 제대로 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관리들은 며칠 동안 밭의 소출을 확인하였으니 논으로 나섰다. 새로 개간한 논이면 지력을 가늠하기 힘들어 벼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법 많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수확에 나서는 농부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볏단을 계속 잘라 쌓아놓고 있었으나 수확의 기쁨 따위는 보이지 않고 한 농부가 볏단을 내팽개치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농사는 잘 되었는가?”

“아이고 나리! 물을 한 자를 넘게 댔는데도 열이 올라와서 쭉정이가 잔뜩 생겨 버렸습니다.”

관리들이 볏단을 손으로 훑어도 쭉정이가 너무나 많았다. 거의 절반이 쭉정이이며 집히는 벼마다 상황이 비슷했다. 심지어 어떤 논에서는 아예 쭉정이만 잡힐 지경이었다.

“날이 덥다고 쭉정이가 생긴다니? 혹여나 물을 게을리 댄 것이 아닌지요?”

“한발(旱魃 - 가뭄)이 아닌 폭염이면 경기도에서 쓰이는 올벼(조생종)의 작황이 좋지 않지만 내가 판적사(版籍司)에서 일한 것이 칠 년인데 이런 일은 처음 보네.”

“저도 이런 일은 처음 보았습니다. 상주에서 온 사람들도 버티지 못하는 더위여서 그런지 벼들도 알곡이 맺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기후에서 수확이 좋은 벼이지만 평균 기온이 높은 대만으로 내려오자 고열에 시달리면서 쭉정이가 들어찼다. 농부들이 해소해 보려고 논에 물을 채웠지만 한계가 있었다. 관리는 잠시 가늠해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지력이 안정된다 하여도 소출이 육등전을 기대하기도 힘든 일이네. 아예 세금을 거두기도 힘든 지경이군.”

관리들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권세가에서 만든 농토였다. 소규모의 농민들이 아닌 수십 단위의 노비들이 개간하였으니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관리는 쭉정이가 들어찬 볏짚을 보고 마름을 불렀다.

“작황이 너무나 좋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는가.”

“여기의 벼는 전라도에서 가져온 늦벼(만생종)이니 더위에 훨씬 강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쭉정이가 너무도 많지 않습니까.”

“늦벼면 더위에 강한 녀석인데 4할이 쭉정이란 말인가?”

관리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양대군이 십오 년 전에 가져왔던 강남 벼라면 자랄 가망성이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아 종자가 상해서 두엄더미에 버려졌다.

작황을 가늠하던 관리들은 역시 육등전 보다 못한 예상 수확량에 고개를 저었다. 설령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에 비례해서 일손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 소득이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육등전 보다 못한 소출만 나오겠는데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도저히 답이 없으니 어찌하겠나. 이대로 보면 육등전을 넘어서 칠등전을 신설해야 하겠네.”

“칠등전이라 하셨습니까? 그러하면 넓이가 일등전의 다섯 배는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이 시대의 토지 면적을 나타내는 결은 작황과 비례한다. 6등전의 1결 면적은 1등전의 4결 면적과 동일하다. 머나먼 남도에서 그런 땅을 개척하다가는 십 년이 지나도 힘들 판국이었다.

“논 대신 밭을 만들어 밭벼를 기르면 나을 지도 모르겠군. 소출이야 적어도 공임이야 덜 들지 않는가.”

“뼈 빠지게 일해서 그럴싸한 논을 만들었는데 한 해만에 갈아엎으라는 말씀이십니까?”

“다들 무얼 하고 계십니까? 소출이 제법 나왔는데 신통하지는 않습니다.”

젊은 노비가 낑낑거리면서 이삭이 들어찬 벼를 가져왔다. 쭉정이가 제법 보였지만 다른 이들의 벼와는 다르게 제대로 자라난 벼가 맞았다. 다들 달려와서 벼를 만져보았다.

“만적이! 자네 이 년 전부터 소출이 형편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건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그놈의 왜인 야장(冶匠)덕분에 일이 틀어진 것이 아닙니까! 그 양반이 농사를 짓고 나서부터 일이 틀어졌지 뭡니까.”

“지금 뭐라 했나? 왜인 야장?”

관리들의 시선이 쏠리자 만적이라 불린 젊은 노비는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쭈뼛거리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하였다.

“다른 일이 아니고 동네에 살주(薩州 - 현 가고시마 일대)라는 고장에서 건너온 왜인 야장이 있었는데. 땅을 빌려 자신이 가져온 벼를 길러 달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이 어떻게 되었나?”

“제대로 자라지도 않아서 야장도 다음해부터 벼를 기르는 일을 포기하였는데. 제가 기르는 볍씨들이 왜인 야장의 것과 비슷하게 변해 소출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외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 관리들이니 살주가 어디인지, 왜인 야장이 무슨 볍씨를 가져온 것인지는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왜국은 한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따스한 곳이라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타요완에서 자랄 볍씨가 다른 볍씨들과 섞여 무용지물이 될 뻔 했다. 관리들은 만석의 논으로 찾아가서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수확해 창고에 쌓았다.

“자네가 일을 행할 적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일을 하였군. 이를 좌찬성께 알리겠네.”

“네?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이렇게 포상을 내리십니까?”

젊은 노비 만석은 알 길이 없었지만 일본에서도 가장 더운 고장에 속하는 가고시마 일대의 품종과 전라도 일대의 토종 벼가 만나면서 폭염에 강력한 저항성을 지니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냈다.

강남에서 들여온 볍씨들은 장립종인 인디카 품종으로 조선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으리라. 이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품종개량이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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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에서는 아직 기력을 되찾지 못한 한확을 대신하여 김수연이 다시 타이아족 족장들을 만났다. 쿨론족 노인이 애써 통역을 하니 단조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가 복속하였으니 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받고 싶다.”

“복속하였다 하여도 포로들을 돌려줄 수는 없다. 무슨 연유인가.”

“본디 같은 부족에 분파가 아닌가.”

조정에서는 새로 개척한 고장에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토인과의 혼인을 허가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을 잃은 포로들은 좋은 혼인 대상이었다.

당연히 혼인하는 대상은 농지를 경작하여 면천 받은 노비들이다. 조선에서야 면천 받은 노비라고 질시의 대상이 되겠지만 이러한 곳에서 신분을 따질 일이 있던가. 김수연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가한 일이다. 우리도 머나먼 길을 건너온 남자들만 많이 있는데 가족을 만들 여인들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죽을 것이다. 싸울 남자들이 대부분 죽어버렸으니 카발란을 비롯한 놈들이 쳐들어오면 여인들을 바쳐서라도 목숨을 건사해야 한다.”

“어찌하여 부족에 속한 여인들을 바친다는 말인가?”

“목을 내놓는 일 보다는 좋지 않은가.”

지난 여러 번의 전투에서 도감군과 여진족이 협동하여 죽인 자들만 하여도 팔백을 넘어설 지경이었다. 김수연 또한 이들이 입은 피해를 가늠해보고 선심을 쓰는 척 제안하였다.

“너희들을 쓰러트린 도감군을 스물씩 너희 마을에 머물게 만들면 어떤가. 그들이 함께 마을을 지킨다면 가발란이라는 자들도 크게 손해를 보겠지.”

“그게 사실인가. 그렇게 강한 자들을 빌려준단 말인가?”

“물론 조건이 있다. 이들이 싸워 주는 대신에 함부로 쳐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경우 너희들을 앞세워 반드시 복수를 행하겠다.”

복수를 행한다는 말에 족장들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부락마다 초록색 요괴라 불리는 자들이 스물 씩 있으면 함부로 쳐들어오다가 역으로 몰살당하고 말리라.

하지만 김수연의 계산은 달랐다. 도감군 스물이 있다면 보인도 스물이 필요하다. 또한 정기적으로 물자를 보낼 길이 필요하다. 큰 선물을 줬으면 큰 대가가 필요하지만 족장들은 세상일에 밝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기 전에 너희 마을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길이라 하였는가? 초록 요괴들은 산길을 쉽게 다니지 않는가.”

“당시에는 너희를 분간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공격한 것인데 이제는 복속한 이들이 아닌가. 만에 하나 적들이 몰려온다면 우리가 나서기 위해서 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족장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타이야족의 완전한 복속 작업이 시작되었다. 항복을 넘어서서 조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며칠 뒤, 울창한 숲 속에서 도감군이 평소와 다름없이 쑥색 철릭과 피갑을 입고 인부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인부들은 쉴 새 없이 도끼와 삽을 움직이면서 나무를 베어내고 수풀을 아예 뒤엎기 시작했다.

여기에 타이야족 청년들도 반 강제로 노역에 참가했다. 익숙하지 않은 철제 도구를 사용해보니 일이 서툴다 못해서 한심하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감군은 분통이 터졌다.

“날뛸 때에는 잘도 날뛰더니만 뭐 이리 일을 못하지?”

“사람 모가지는 잘도 베어내는 놈들이 나무 하나를 못 베어내? 비켜!”

도감군의 손에서 신들린 듯이 도끼가 춤추더니 허리 굵기의 나무 하나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괴력에 질린 타이야족 청년은 온 힘을 쥐어짜서 도끼질을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감군 병사들은 잡담을 시작했다. 그렇게나 악랄한 놈들이 좀 죽어보니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지 경계도 풀려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놈들 마을에 가서 마을을 지키라고 했나?”

“생각해 보니까 편한 일 아니야? 이놈들 마을까지 순찰을 다니느니 한 달 정도 머물면서 편히 지내겠네. 입신체비나 실컷 해야지.”

“듣기로는 가발란이라는 놈들이 이들의 적이래. 가끔 쳐들어오는 놈들이나 해치우면서 편안히 보내면…….”

갑자기 뒤에서 찌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흠칫 놀란 도감군 병사가 뒤를 돌아보니 눈썹과 수염이 모두 사라진 도감군의 실질적 지휘관인 홍윤성이 성난 눈으로 뒤에 서 있었다.

“지금 내가 그놈의 가발란 놈들이었으면 너희 모두 주검이 되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경계를 소홀이 하였으니 부와도약(버피) 3회차(세트) 20개다! 당장 시행하라!”

아교를 얼굴에 발라 눈썹이 사라진 이후 홍윤성의 별명은 무미(無眉) 야차가 되었다. 신경이 곤두선 홍윤성의 모습을 보고 인부들도 타이야족 청년들도 정신없이 손을 놀렸다.

한 달이 지나고 어설픈 산길이 생겨났다. 수레가 다니는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조선이 충분히 관리할 여건을 만들어 놓으니 타이야족을 첨병(尖兵)으로 삼아 다른 부족을 압박할 준비도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다.

그렇게 길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탐광자들이 탄산 일대를 돌아다녔다. 타이야족이 길을 안내하고 도감군이 호위로 붙으니 산이 자신의 집인 양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한 무리의 탐광자가 타이야족의 안내를 받아 탄산의 분화구에 도달했다. 매캐한 화산재와 지독한 유황 연기가 이들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왜인 출신의 탐광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우웩! 시체 썩은 냄새가 나잖아!”

“그런 냄새를 보니 유황이 확실하네. 여기에 석유황(石硫黃)의 향이 나는 것이 내가 나고 자란 고장과 마찬가지로 화산이 샘솟는군.”

분화구 주변에는 증기가 치솟는 간헐천이 곳곳에 있었고. 중간 중간 노란색의 이끼 같은 것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늘어트려 한참동안 증기를 쐬니 나뭇잎은 모조리 떨어지고 나뭇가지가 노랗게 변했다.

“보시오. 이게 바로 화약에 들어가는 석유황이오.”

“그렇다면 왜국에서는 이렇게 쉽게 얻어내는 것을 그렇게 비싼 값으로 팔았다는 말인가? 염치도 없는 것들 같으니.”

“나는 주상전하께서 장 씨의 성을 하사하였으니 조선 사람이잖소!”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잠시. 기분이 좋아진 왜인 출신 탐광자와 도감군은 그렇게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머나먼 남쪽으로 내려와 지독한 고생을 하였지만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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