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44화 (144/573)

< 2장 82화 - 타요완 원정(1) >

12월 말의 추위 속에서도 대만 개척에 대한 논의는 이어졌다. 이미 여국강의 선발대가 대만 북쪽을 정탐하고 대략적인 지도를 작성했다. 여러 선장들이 상세하게 작성했는지 이 시대 기준으로는 완성도가 제법 높았다.

“이주의 북부 일대를 정찰하였으며 서쪽 해안에는 제법 큰 강이 있었습니다. 일대를 선점하여 개척해 나아가면 일이 쉬울 것입니다.”

“제법 큰 강이라 하면 얼마나 크던가?”

“하구의 폭이 2리(약 800m)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마 현대의 타이베이 일대를 정찰하고 온 모양이다. 그런데 지도에 표시된 산이 뭔가 어색하다. 연무(煙霧)라고 적혀있는데 안개가 많이 낀다는 의미일까.

"북쪽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이 있었사옵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연기가 피어오르니 신묘한 일입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구나.”

그래 대만 북쪽에는 활화산이 있었지. 연기가 솟구친다 하면 이 시대의 사람들은 화산인지 아닌지 모를 것이니까 형님이 좋아할 이야기를 하자.

“왜국에서 잡담을 나누던 중에 들은 기억이 있사옵니다. 구주(九州 - 큐슈)의 풍후(豊後 - 분고국, 현 벳푸 일대)라는 고장에 연기를 뿜으며 불길을 뿜는 산이 있다 하였는데 땅에 불길이 스며들어 뜨거운 물이 나온다 합니다.”

“참으로 신묘한 일이로구나. 추운 고장은 아니겠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면 몸을 닦는 일이 쉬울 것이니 염두에 두어야겠구나.”

“왜국에서는 그렇게 뜨거운 물이 흐르는 계곡 인근에서 유황 덩어리를 채집한다 하였습니다.”

형님의 눈빛이 변했다. 각지에 있는 황철석을 가공해서 유황을 뽑는 일도 한계에 도달해서 일본산 유황을 수입했었지만 대만에서 유황을 뽑아내면 수입할 필요도 없어지니까.

“특이한 일이구나. 하지만 항구를 만들 일만 하여도 태산인데 염두에만 두어야겠구나.”

“그렇사옵니다. 일전에 기록을 보니 장백산(백두산) 인근에서 시커먼 비가 내려 곤혹을 치렀다 하던데 오히려 농사에 해를 끼칠까 염려되옵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형님도 그렇고 대신들도 그렇고 그저 사탕수수 농장 정도에 눈독을 들일 단계를 넘어섰다. 탐광자들이 조선 팔도를 헤집고 다닌 덕분에 각지의 지하자원들이 무수히 드러났으니.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땅에 대한 욕심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형님은 조선의 편으로 삼을 수 있는 대만의 원주민도 학살할까 염려하는지 적당히 만류하는 말을 시작했다.

“그렇다 하여도 천 년이 넘게 이주에서 살던 이들이지 않느냐. 아국이 필요에 의하여 항구를 만들려 하는 것이니 싸우지 않고 얻어내는 일이 가장 좋은 법이다.”

“실로 옳은 말씀이옵니다. 북방의 야인들과 같이 충분한 교화를 시행한다면 이는 효험이 있을 것이옵니다.”

충분한 교화라고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여진족이야 말을 타고 다니니 같은 기마병으로 상대가 가능하지만 대만 원주민들은 깊은 산 속에 산다고 하였으니까. 형님은 잠시 생각을 하다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만일 이주에서 농토를 일군 이가 백성이면 땅을 영구히 소유할 것이며. 농토를 일군 이가 노비라면 10결 이상을 일구었을 경우 면천시킬 것이다.”

“노비가 땅을 일구어서 면천한다면 농토를 소유한 이는 누구로 정하여야 하옵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노비의 주인의 것이다.”

형님이 아주 작정하고 뽑아먹겠다고 나섰다. 서로 눈치만 보던 조정 중신들이 꼭꼭 숨겨놓고 자기들끼리 써먹던 사노비들을 훌훌 털어버릴 기회를 얻은 것이니까.

“면천을 논하면 노비들이 머나먼 남도라 하여 농사를 게을리 할 일은 없을 것이며. 삼남 보다 따스한 곳이니 벼만 하여도 훨씬 자라기 좋을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에 한 가지 생각이 더 있는 것이 분명했다. 훗날 특정 가문이나 특정 파벌이 대만의 소유를 확고히 할 경우 대만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니 사방팔방으로 쪼개놓아 이권 다툼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다른 대신들이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획은 구체화 되었고 물자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이윽고 1457년 3월이 되어 출병의 시기가 다가왔다. 전송을 위해 형님은 도성이 아닌 개성까지 나아가서 친히 어명을 내렸다.

“좌찬성께서 친히 원정에 나서니 혹여나 몸이 상하지 않도록 염두에 두게.”

“전하께서 이러한 은혜를 내리시니 분골쇄신하여 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본래 병마절도사가 지휘해야 하는 원정의 총 사령관은 좌찬성 한확이었으며 군무를 총괄한 이는 무관 출신의 김수연(金壽延)이었다. 군무를 총괄하여도 종2품의 중추원 부사로 일하던 무관이었으니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항구를 만드는 일은 한 달이면 족하지만 사람이 살 터전을 만드는 일은 일 년이 넘게 걸리는 험난한 일이오. 부디 좌찬성의 혜안을 믿겠소.”

“주상전하께서 하명하신 바를 충실히 이루어 아국의 도리를 명백히 보여줄 것이옵니다.”

명나라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기 위한 목적은 당연히 아니었다. 당장 명나라에 진심으로 의지했던 친명파 대신들은 친명을 정치적 명분으로 삼아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으니 친명파는 진심으로 명에게 사대하는 것이 아닌. 명나라의 의견을 명분으로 삼아서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변화를 보였으니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하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을 떠날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대군어른께서 배웅해 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배웅이라니? 한명회 자네는 어차피 조선과 이주를 한 달마다 오갈 몸이 아닌가. 이건 그저 인사에 불과하다네.”

넉살 좋게 웃는 한명회도 그렇지만 이번 원정에는 육조 모두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병사의 지원을 담당한 병조는 물론이고 위급 상황이 벌어질 경우 명나라로 대피할 수 있게 예조도 힘을 썼다.

호조는 당연히 보급 담당, 공조는 각종 장인들의 차출과 필요 물자 계산 및 운송으로, 행정적 처리를 위해서 이조와 형조의 관원도 제법 포함되어 있었으니 장관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서른 척의 배가 일제히 대만을 향해 출발했다.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평소와 같이 궐에서 전순의와 면담을 하고 의서를 작성하다가 형님을 만났다. 형님이 내 얼굴을 보고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본디 남도에 보낼 작정이었다만 네가 어의와 행하는 일이 있어서 가만히 두었느니라. 그런데 혹여나 남도에 가고 싶은게냐?”

“아니옵니다. 적어도 내년 까지는 식료찬요를 모두 작성해야 하는데 할 일이 태산입니다.”

“심려가 깊은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의학에 대해 아는 일은 없지만 무언가 필요한 것이라도 있느냐.”

내 예상과 같이 형님도 일에 대해서 알고 계셔서 대만 원정에 참가시키지는 않으셨다. 이런 기회를 헛되이 날릴 수는 없으니 형님만 가능한 일을 부탁해야겠다.

“혹시나 의금부에 중죄인 여럿을 두 달 정도 가두어 두실 수 있습니까? 제가 두 달 동안 식이(食餌)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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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란도에서 출발한 조선의 선단은 8일의 항해를 끝마치고 대만 인근 해역에 접어들었다. 예조에서 허가를 받은 덕분에 명나라 연안에서 남서쪽으로 향하는 해류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항해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한확은 마지막 점검에 나섰다. 화포와 신기전으로 지원 사격을 실시할 선박 다섯 척을 제외한 배들은 조선을 오가면서 물자를 운송하니 미리 정해둬야 했다.

“일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네. 갈 적에는 여드레, 올 적에는 열하루라면 실지로는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사람과 물자를 세 번에 걸쳐서 보낼 것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확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직접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한명회를 보면서 감탄했다. 이 시대에 인맥과 지연으로 승진한 이가 태반이지만. 한명회는 별다른 인맥도 없이 임금의 신임을 받는 인재가 되었다.

“들어가서 목재의 수량을 확인해라. 질 좋은 소나무를 말려서 왔는데 혹여나 상하지 않았는가?”

“껍질을 벗겨낸 한 자가 넘는 곧은 녀석들로 잔뜩 준비하였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명회가 바쁘게 움직이며 사방을 돌아다니고. 다른 배에 고함을 치면서 하나하나 손바닥 만한 조각에 적어나가며 계산을 하였다. 이윽고 한명회가 웃으면서 점검을 완료료했다.

“이제 계산이 끝났습니다. 처음 보내는 이들은 도감군 일천에 보인 일천이며 야장과 대목장을 비롯한 기술자들은 왜인이 상당수 있습니다. 여기에 미곡 팔천 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셈이 빠른 것도 있지만 자신의 휘하에 있는 관원들부터 일꾼들까지 휘어잡고 있으니 한확이 보기에도 앞날이 밝았다. 조선의 함대는 다음날 새벽에 대만의 북서쪽. 현재의 단수이 강 하구로 접근했다.

서른 척의 배들이 먼 바다에서 몰려들자 저 멀리서 고기잡이를 하는 대만 원주민의 나룻배들이 놀라서 쏜살같이 달아났다. 한확은 혹시나 몰라 우려 섞인 명령을 내렸다.

“저들을 괜히 겁박하지 말거라.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대로 싸움은 좋은 수가 아니며 평화롭게 땅을 양도받으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지 않느냐.”

그렇다 해도 방길주의 말을 들은지라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기세만 좋은 놈들이니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으니까. 한확은 혀를 차면서 다른 관료들에게 말했다.

“천리경으로 보니 살갗의 색상이 볕에 그을린 것이 아닌 월국(베트남)의 사람과 같이 검으니 토인(土人 - 토착민과 미개인의 중의적 표현)이라 칭하는 편이 좋겠군.”

현장을 직접 와서 천리경으로 돌아보니 여국강의 말과 마찬가지로 드넓은 강과 백사장이 보였다. 아직 일대의 기후나 풍토를 모르기에 장소를 한 번에 정할 수는 없었다.

“강이라고 하여도 대동강보다는 작구려. 오히려 작으니 치수하기 바람직할 것이니 차라리 좋군. 그런데 토인들이 인근에 거주하는 것 같으니 골치가 아프다네.”

“강의 북쪽 연안에 항구를 만드는 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언덕이 제법 있으니 홍수가 나도 안전할 것이 분명합니다.”

“혹여나 토인들과 협상이 된다면 강의 하구를 거슬러 올라가서 항구를 만들도록 함세. 먼저 도감군 병사들을 상륙시켜 탐망에 나서는 일이 좋을 것 같군.”

도감군 병사 오백 명이 일제히 해안에 상륙하자 주변에서 경계하고 있던 대만 원주민들이 병장기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홍윤성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방진을 구성하라!”

질서 정연하게 도열하여 방진을 구성하니 숲 속에서 보고 있던 이들도 시퍼런 칼날과 높이 솟구친 창날을 보면서 주춤거리고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지루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적의 수는 어림짐작 하건데 기껏해야 일백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미 보총수는 장전이 끝난 보총을 들고 적을 겨누고 있었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도감군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섭호군님! 먼저 짓쳐 들어갈까요??”

“놈들이 숲을 끼고 있으니 함부로 들어가면 오와 열이 갈라진다. 놈들이 먼저 들어오면 단매에 치고 나가서 모조리 박살내 버리자.”

갑자기 원주민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명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둘이 생김새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형제로 보였다. 노인들은 도감군을 차근차근 돌아보다 짐짓 놀라는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명국에서 오셨소?”

“지금 뭐라고 하는지 아나? 명국이라는 말 외에는 듣지를 못하겠는데.”

말이 통하지 않자 노인들은 자신을 묶으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고. 홍윤성은 무슨 일인지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적이 아니었다.

“이 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구나. 거기 넷은 좌찬성께서 계시는 배로 데려가거라.”

노인들이 뭐라고 어설픈 명나라의 말을 늘어놓자 한확의 눈썹이 찌푸려지면서 노인들의 말을 어떻게든 알아들으려고 애썼다. 수십 년 동안 해오지 않은 말을 떠올리기 위해 노인들도 애쓰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혹여나 명나라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명나라는 아니네. 우리는 명나라의 동쪽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왔지.”

“명나라의 동쪽에 있는 곳이라 하면 고려가 아닙니까?”

지독하게 뭉개진 발음에 드문드문 이어지는 명나라의 말이니 한확처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면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고려라고 알고 있다면 적어도 육십 년 전의 일을 아는 사람인데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고려는 멸망하였고 조선이 세워졌는데 무슨 소리인가?”

“저희가 아직 어리던 오십 년 전에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인 타요완에서 살며 마을을 이끄는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들은 바로는 당시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네. 이 땅을 그대들은 타요완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타요완, 다요완, 다이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부르는 방법도 많습니다.”

한확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이 세워진 일은 6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런 외진 곳에 있는 사람이 알아봤자 고려가 전부일 테니까.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두 노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가까스로 부족의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정말로 힘든 삶이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신세의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살아남은 이는 저희가 전부일 겁니다. 겨우겨우 둘이서 마을 하나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부락은 몇 명이나 되는가?”

“마을로 따지면 이백 호가 안 될 것입니다. 그나마도 근방에서 가장 큰 분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도감군을 상대하려는 자들은 두 노인이 다스리는 마을의 청년들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한확은 조용히 협상에 나서려고 하였다. 아직 개발하지 않은 땅을 헐값에 후려치면 충분하리라.

“아국의 병사는 십만이 넘으며 머나먼 남도까지 내려온 이들이 오천에 달하네. 하나같이 북방에서 수많은 외적을 상대로 싸워온 이들이니 이길 가망은 없지 않는가. 그저 아국의 사람들이 기거할 곳과 항구를 만들 곳을 내주게.”

“기거할 곳과 항구를 만들 땅이라고 하셨습니까? 여기서 계속 머무를 것입니까?”

“그렇지. 이들이 기거할 곳과 가급적이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쪽의 산을 포함한 땅을 내주면 좋겠군. 대신 땅을 내준 대가로 자네들에게 곡식과 우마(牛馬)를 내줄 것이라네.”

“불가한 일입니다.”

한확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한확의 분노를 안다는 듯이 노인은 손사래를 치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하였다.

“저희가 속한 쿨론 족만 하여도 같은 부족 간에 계파가 나뉘기에 저희 이백 호는 조선에서 오신 분들을 적대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다른 이들을 어떻게 설득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굴론족? 다른 이들이라 하면 부족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기껏해야 다섯 정도가 아니겠나.”

“스물 이상의 부족에 분파까지 나눈다면 이백이 넘을 것입니다. 당장 저희 부락만 하여도 분파가 여섯으로 나뉘어 있는데 저희 분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싸우러 나올 것입니다.”

한확이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 김수연이 급히 배 아래로 달려 내려왔다. 상황을 짐작하였는지 한확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답했다.

“토인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수효가 백을 넘어서 사백에 달합니다.”

“군문의 일은 잘 모르지만 북방의 달자들도 화약을 처음 접할 적에는 놀라서 도망갔다네. 홍윤성의 병사들로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신기전의 맛을 보여주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네.”

상륙한 도감군은 점점 몰려드는 쿨론족 청년들을 보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숲을 등지고 기세 싸움이 이어지는 와중에 화살 한 대가 날아 들어서 방패수의 방패에 막혀버렸다. 그와 동시에 보총이 일제히 쏘아졌다.

천둥소리가 대낮에 일어나자 놀란 원주민들이 몸을 움츠리면서 바닥을 뒹굴고 몇몇은 그 자리에 고꾸라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전열이 무너진 사이에 조선군의 배가 천천히 접근해서 불벼락을 쏟아냈다.

“그만! 접근하지 마라! 잘못하다간 신기전 사격에 휘말린다!”

최대 사거리로 쏘아댄 신기전은 도감군의 머리 위를 지나쳐 숲 속을 향해 날아들어 굉음을 내며 일제히 폭발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굉음에 혼비백산한 쿨론족 청년들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면서 도망쳤다.

“일이 어찌 잘 풀릴 것 같은데.”

화약무기를 처음으로 체험한 쿨론족은 전의를 상실한 채 명나라 혼혈 노인들을 앞세워 조선군과의 협정을 맺었다. 그렇게 조선군의 첫 영토가 대만에 세워졌으며 한확은 자연스럽게 붓을 놀려서 도시의 이름을 정하였다.

“물은 맑고 모래가 곱기 그지없구나. 이 땅을 사하(沙河)라고 명명할 것이니 항구의 이름은 사하항이 될 것이며. 세워질 도시는 타요완의 서쪽 언덕에 있으니 서원(西原)이라 하겠다.”

수양대군이 우산도에 석비를 세운 일을 듣고는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한확의 붓이 화강석으로 만든 석비에 글귀를 새겼다.

[영덕 3년, 좌찬성 한확이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어 명나라 황상의 허가 하에 타요완에 당도하여 비석을 세움.]

그러나 모든 일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시작이 좋았으니 기껏해야 일 년이 걸릴 거라 예상한 이주, 새로 붙여진 이름인 타요완의 개척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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