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37화 (137/573)

< 2장 75화 - 연희당(延禧堂) >

세종대왕님이 허락하시고 형님이 금방 답을 내려줬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직접 계획에 나서라고 했으니 평생 와본 적이 없는 제생원에 발을 들였다.

예조 휘하의 기관이니 예조 참의이자 안면이 있었던 신숙주가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빠른 속도로 정 3품에 오른 덕분인지 피로에 절어 안색이 창백했다.

“반대편은 제법 크군. 제생원이라 하였는데 건물이 다섯 채나 있지 않은가?”

“제생원은 행하는 일이 많으니 그렇습니다. 반면 유접소는 보시면 실망 하실 것이니…….”

안내를 받아 제생원의 옆에 붙어 있는 유접소로 들어가니 터가 크고 마당이 넓긴 하다. 그게 전부다. 시설이라고 해 봤자 나무 몇 그루와 장독대 정도이며 멀리 세 칸 건물 하나만 있었다. 그냥 마당이 넓고 지붕을 기와로 올린 민가다.

최근 들어 사람이 없는 덕분인지 가건물이 몇 개 세워져있고 잡동사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생원에서 보관하기 힘든 물건들을 유접소에 보관한 모양이다.

“보십시오. 대군 어른께서 입신체비를 행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부족하다니. 마당이 넓으니 충분한 일이지 않은가? 건물은 세우면 되니 염려하지 말게.”

“그렇다 하여도 이렇게 부실한 건물이 있으면 종친 분들께서 불편함이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쓰는 건물은 고직사(庫直舍 - 하인이 거주하는 공간)로 바꿔야겠군요.”

어디에 건물을 짓고 어떻게 짐들을 옮겨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담 너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고개를 돌리니 신숙주가 웃으면서 답해줬다.

“제생원은 의술에 관련하여 많은 일을 행합니다. 특히나 관비(官婢 - 관에서 부리는 공노비)들을 모아 삼 년간 가르쳐 초학의(初學醫)로 만들며 훗날의 내의녀(內醫女 - 궁에서 일하는 여성 의사)가 되며 수효가 120명에 달합니다.”

“제법 많군. 그런데 초학의라 하면 다음 단계도 있는 것인가?”

“배움이 끝나면 간병의(看病醫)가 되어 의원을 보조하며. 이후 더욱 배워 궁궐에 있는 내의녀(內醫女)가 되거나 혹은 본래 왔던 관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의외로 체계적인 교육체계가 돌아가는 곳이다. 태종이 만들고 세종대왕님이 개량한 방식이니 손을 조금 더 쓰면 좋겠지. 그렇지 않아도 입신체비는 의술과 연관이 있으니까.

“기껏 해야 입신체비장으로 두기에는 아깝네. 서로 간에 연관이 있으니 초학의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면 어떠할까 싶군.”

“입신체비와 의술 간에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어허, 재활의는 기억도 나지 않는가? 입신체비서를 만들며 근골의 구조를 알게 되었고. 이를 다른 의원들과 교류하고 발전시키며 재활의가 되지 않았는가. 아는 일이 많으면 도움이 된다네.”

신숙주는 도저히 납득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간신히 수긍했다. 그 또한 입신체비를 하는 입장이니 재활의를 통해 부상을 치료한 일이 있으리라.

여기까지 와서 떠오른 발상이지만 꽤나 합리적이라고 보인다. 애초에 태종이 의녀를 따로 만든 이유는 외간 남성과 안면도 마주할 수 없다며 진맥조차도 거부하는 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활의를 만들어서 근육과 관절질환을 알면 뭘 하는가. 재활의는 반드시 몸을 만져야 하니 어지간한 여인들은 재활의의 치료를 받지도 못하리라. 하지만 신숙주도 생각이 있는지 반발하고 나섰다.

“옳은 말씀입니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에 어린 관비를 들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면을 맞대어도 명가가 아닌 양반가의 여식(女息)만 하여도 결례라 생각하옵고 관비 가운데서도 부끄러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말은 재활의의 가르침을 배우려면 몸을 맞대야 하니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면 간단한 방도가 있다네. 안사람을 통하여 입신체비를 가르치면 어떤가.”

“삼한국대부인께서 입신체비를 가르치신다 하셨습니까?!”

신숙주가 놀라 자빠지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하다. 기본 이론과 근력 관련은 아내가, 심화 이론과 세부 운동 관련은 군부인 한씨가 가르치면 조금 모자란 점은 있지만 충분할거다.

여기에 우현규를 통해 정리한 재활의 관련 서적을 이론삼아 배우게 하고. 경험을 쌓기 위한 환자야 스스로 입신체비를 하면서 만들어 내면 충분하다. 실력이야 떨어지겠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있나. 그렇게 차츰차츰 퍼트리면 충분한 일이다.

“안사람이 나와 같이 입신체비를 행한 것이 스무 해일세. 배움이야 충분하니 염려하지 말게나. 여느 입신체비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네.”

“이는 함부로 논할 일이 아니니 주상전하께 아뢰어야 할 일입니다.”

이후로 몇 번이고 논의를 거듭하다가 결론이 내려왔다. 예조에서는 함부로 일을 벌이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 일을 줄이자고 하였으며. 형님도 이를 존중하여 시범적으로 내년에 들어올 초학의 40인에 한해서 시범적으로 시작하자 하였다.

물론 유접소를 입신체비장으로 바꾸자는 일은 아무런 이견이 없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입신체비장 겸 아이들을 거두는 기관이다 보니 내가 가진 공신전 300결을 운영 자금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시작하니 효령대군과 숙부님들도 손을 모아 나섰다.

“어허! 재산이 많다고 땅을 이렇게 내놓다니! 네가 세상을 사는 묘리를 모르는구나.”

“백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큼직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간만에 종친이 모일 일이라 여겼는지 인맥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도움을 줬다. 특히나 경녕군은 논의를 하는 와중에 불쑥 나서서 자신이 공사를 총괄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제가 일전에 건물을 몇 채 세워본 적이 있으니 제가 아는 대목장을 불러 입신체비장의 건물을 올리는 일이 어떠합니까.”

“비(裶)는 예전부터 많은 일을 했으니 믿어 보겠다.”

경녕군이 저렇게 나서자 동생인 함녕군 또한 양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제 과전 인근에는 올곧은 소나무가 많으니 항시 베어두어 여러 곳에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목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치(袳 - 익녕군)가 드디어 올바른 일을 하는구나! 네가 젊어서부터 말썽을 많이 부렸지.”

“저는 아직 젊습니다!”

올해가 지나가야 세워질 것 같은 건물이 너무나 빠르게 완성되고 있었다. 건물이 올라갈 곳에서는 땅을 파서 기단을 세우고 초석을 박으며. 반대편에서는 목재를 깎아나가는 일이 한창이다. 구석에 임시로 만든 가마에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기와를 구워낸다.

“단청이야 주칠과 뇌록이면 충분하니 함부로 하지 마라! 목재는 튼튼한 놈으로 골라서 쓰되 초석은 많이 다듬지 말고 투박하게 내버려 두어라.”

“네 대감님! 그리고 최대한 높게 만들라 하셨습니까?”

“그렇지, 보행기가 들어가야 하니 가급적 높게 만들어라.”

숙부들이 아무런 일이 없이 허송세월을 해도 한때는 태종의 아래에서 열심히 일했던 자들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건물이 대략 완성되었고. 여분의 입신체비 기구들이 모조리 들어왔다.

1455년 10월 12일. 마침내 입신체비장이 문을 열었다. 간단한 주연(酒宴)이 열렸고 예조의 사람들과 효령대군 여기에 숙부님까지 모였다. 그러고 보니 숙부님들의 관심사는 다른 일이 아니었다.

“이제 입신체비장이 완성 되었으니 더 이상 유접소라는 이름을 쓸 수가 없구나.”

“그렇습니다. 머무르면서 사귄다는 뜻은 너무나 가볍지 않습니까?”

“제가 함부로 이름을 정할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웃어른인 백부님께서 정하심이…….”

그렇게 말했지만 한사코 나에게 붓을 넘겨주는데 방법이 있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나라에 현대화된 고아원을 처음 세운 사람이 언더우드였나. 그렇다면 언더우드가 세운 대학교의 옛 이름으로 정하자.

“그렇다면 유접소의 새 이름은 연희당(延禧堂)으로 정하겠습니다.”

“연희당이라, 연달아 복이 들어오는 집이라 하니 뜻 깊은 이름이구나.”

계속 술이 오가고 있었지만 신숙주는 종친 앞이어서 그런지 예의를 지키기 위하여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평소에는 술을 많이 마시고 입신체비를 행했지만 무엇인가 달랐다. 특히 피로와 고뇌에 찌든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술에 취한 효령대군과 숙부들이 돌아가고. 나는 마지막으로 입신체비 기구들을 점검하기 위해서 남아 있었다. 잡부들이야 알아서 돌아갔으리라 생각하고 계속 점검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신숙주가 남아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인가?”

“다른 일이 아니고 삼한국대부인께서 입신체비에 능하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앞으로 많은 일을 가르칠 것이니 내년까지 나에게 배워야겠지. 그렇지 않아도 의술에 대한 일을 접목시켜야 하니 앞으로 바쁘겠어.”

갑자기 신숙주가 고개를 숙이는데 이 사람 왜 이러지? 적어도 신숙주는 나와의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인데. 그러나 신숙주는 고개를 들고 조용히 말했다.

“다른 일이 아니옵고 제 안사람이 몹시 쇠약한지라 대군어른의 힘이 필요합니다.”

“몹시 쇠약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부인은 기껏해야 마흔이 아니 되었을 것인데.”

“작년에 필(泌)이를 낳고 몸이 쇠하더니만 연(練)이를 낳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삼한국대부인께서 입신체비에 능하다 하셨으니 돌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기억으로는 신숙주의 부인은 사육신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자살했다고 알고 있는데 역사가 변한건지 아니면 본래 이렇게 병을 앓다가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백약이 무효하고 의원도 포기할 정도로 몸이 급격히 쇠하는지라 방법이 없습니다. 상왕전하의 소갈을 치유한 입신체비 외에는 믿을 길이 없습니다.”

“무슨 일인지 상세하게 이야기 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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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10월, 맹렬한 추위가 요동 일대를 휘감고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서서 땅을 파내고 공사를 이어나갔다. 선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요하(遼河)는 단순한 강이 아니다.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경계이며 수많은 지류와 늪지대를 끼고 있었다.

하지만 서유정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요하의 치수는 어마어마한 난공사였지만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3만의 인부들이 생긴 지금에 와서는 몇 년 이내에 해치울 간단한 일이었다.

“큰 비가 내려봤자 하루에 두 치만 내릴 뿐이니 요하가 쉽사리 불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제방을 높게 쌓을 필요도 없지. 이대로 가면 삼 년 이내에 완성하겠구나!”

“하지만 큰 비가 내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게 칠십년 전의 일이 아닌가. 듣자하니 조선을 세운 이성계라는 자가 군사를 돌릴 정도로 큰 비였나 그랬지? 그게 내가 있을 적에 일어날 보장이 있나?”

서유정이 행한 치수는 평범한 수준의 홍수를 막아낼 정도로 끝났다. 기록적인 홍수가 일어난다 해도 일어나기 전에 황하로 내려가면 끝이다. 후임자의 방만한 태도로 자신의 치수가 엉망이 되었다고 하면 누가 뭐라 한단 말인가.

“분명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공사 속도를 올려야지! 이대로 미적거리면 정말로 폭우가 내릴 수도 있으니까 더더욱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물이 얼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공사를 이어나가면 얼어 죽는 이들이 속출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흘만 더 하면 제방 하나가 완성되니 문제가 없다. 빨리 할수록 빨리 돌아갈 수 있다고 해라! 그리고 도망간 놈들은 잡아왔나?”

서유정이 눈을 흘기자 조선에서 온 여진족의 대표인 야인여진 족장인 아라합이 고개를 숙이면서 투박한 조선의 말로 답했다.

“말을 버리고 강에 뛰어들었습니다. 물살에 떠내려간지라 잡아올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산 채로 잡아오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희에게 배가 있습니까? 이런 추운 날씨에 물에 빠졌으니 지금 시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혹시나 모르니 하류로 찾아가서 시체라도 보고 오지요.”

아라합을 비롯한 야인여진 무리는 인사를 마치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서유정은 아직도 제방을 쌓아나가는 자들을 보면서 이를 달달 떨었다.

“몸이 추우신가 봅니다.”

“그렇군. 탕약을 마실 때가 되었는가.”

자주 마시던 탕약을 들이켠 서유정은 풀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장대 위에 매달린 시체를 보더니만 인상을 찡그리면서 다른 방향을 시찰하려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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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떨어진 휴식 명령에 인부들 모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나 손끝을 에는 추위보다 피로가 먼저였다. 한 장년의 남성과 청년이 서로 등을 맞대고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겠냐? 억울하고 열 받아서 미칠 노릇이다.”

“그렇다고 도망이라도 갈 수 있겠습니까. 이 작은 말을 타고 도망을 가봤자 잡힐게 뻔합니다. 숙부님이 아무리 마술이 뛰어나다 해도 작은 말로는 무리라 하셨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이런 말을 타봤자 어디에 써먹는다고.”

장대 위에는 열흘 전에 채찍을 맞아 숨을 거둔 자들이 아직도 매달려 있었다. 평생 동안 농사는커녕 손에 흙도 묻히지 않은 기술자들이니 도저히 적응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도주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래도 한 달 전 보다는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까? 전에는 오랑캐들이 발로 걷어차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던데요.”

“그게 좋냐! 내가 젊었을 적에 우량카이 놈들 모가지를 뜯어내고 다녔단다. 그런데 이제는 오랑캐 놈들이 날 불쌍하게 보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서유정의 요청으로 조선에서는 ‘힘만 쓰는 자들’을 보내왔다. 그렇게 야인여진들이 약간의 급료를 받으면서 공사 감독 겸 치안 유지를 위해 나섰고. 처음에는 명나라 사람이라고 구타와 폭언을 일삼았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오히려 동정하고 있었다. 매질을 해도 바닥을 치며 소리를 크게 나지 않게 하고, 도망가는 자는 적당히 쫒아가다 돌아왔다. 간혹 명나라 군인들에게 추적당한 이들이 죽을 뿐이었다. 숙부의 푸념을 들은 조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봤다.

“숙부님이 군인이셨습니까?”

“네 아버지에게 뭘 들은 것이냐! 에라이 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모아둔 돈으로 땅이나 사서 소작이나 부치는 건데 왜 장사를 해가지고 지랄이야! 형수님 말을 왜 들어가지고!”

예전에 영락제의 휘하에서 외적을 토벌하던 전직 군인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상인이라고 요동으로 끌려온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전쟁터를 오가며 모아둔 돈으로 작은 가게를 차린 전직 군인이었다.

애초에 재산이 많은 이들은 관직과 연관이 있었기에 조길상이 정한 목록에서 빠져나왔으며. 혹시나 관직과 연관이 없어도 부유한 상인이면 막대한 뇌물을 내고 요동으로 오지 않았다. 전직 군인의 입에서는 푸념이 계속 새어나왔다.

“이따구로 사느니 마적질을 하고 말지! 어디서 늠름한 말 하나만 구하면 가만히 있나 봐라!”

“숙부님! 들리겠습니다!”

해가 저물어 손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작업이 종료되었다. 대륙 각지에서 몰려온 이들은 피로한 몸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집이라고 해봤자 움막보다 조금 나은 흙집이었다.

한 집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작업에 끌고 간 말이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말 주인은 어쩔 줄 모르고 말을 부등켜안았다.

“아이고 내 말! 아이고오오오!”

“오늘은 고기라도 먹게 생겼네.”

서유정은 말을 강제로 팔고는 명령을 내렸다. 30호 단위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하루에 세 마리씩의 말을 공사에 투입하라는 나름 합리적인 명령이었다. 그러나 허점이 있었다.

평범한 공인들과 상인들이 방법을 어떻게 알겠는가? 풀을 먹이면 된다고 생각해서 풀만 먹였으니 비루먹은 말로 변하였고. 그런 말들은 보통 작업에는 어느 정도 버텼지만 중노동에 투입되면 곧잘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군문에 있었던 자들은 말을 다루는 법을 알았다. 식사를 줄여가면서 조금의 콩이라도 악착같이 먹였고 귀한 소금을 빠짐없이 먹였다. 그러나 자신의 앞가림도 힘든 마당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의리 따위는 없었다.

“이봐! 오랑 아니 조선에서 온 양반! 자네들 말들 타고 다니니 우리 말 좀 어떻게 해봐!”

쓰러진 말을 껴안고 있던 남성이 순시를 돌던 야인여진 한 명의 소매를 잡고 울어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에게 달려왔다. 탈수와 염분부족 증세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여진족이 소금을 먹였지만 말은 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숨을 거뒀다.

“약을 먹여 놓았는데 왜 일어나지를 못하니, 왜 일어나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길몽을 꾸었건만…….”

“길몽이 말고기를 먹는 꿈이겠군. 목 따고 피 뺄 테니 비키쇼.”

“닥쳐!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숭산 소림사에서 무술 배우던 몸이다!”

“어어! 이놈 사람 친다! 내가 돼지 소 목 따던 어이쿠!”

말 주인과 백정 출신의 싸움은 그렇게 패싸움으로 번져갔고. 군인과 야인여진 여럿이 달려 들어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그런 일은 요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생활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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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의 부인은 아홉째이자 장녀를 낳고 몸이 쇠약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수양이가 알고 있는 내용은 훗날에 윤색된 것입니다.

신숙주의 아홉째 딸의 이름인 연(練)은 가상의 이름입니다. 기록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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