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36화 (136/573)

< 2장 74화 - 그 형님에 그 동생 >

“그러고 보니 어릴 적의 네가 숙부들과 친하였는데 나이가 들어 장성하니 더 이상은 친하지 않았더구나.”

“그…… 그렇습니다.”

“숙부들과 네가 이렇게 만나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잊었더냐. 하긴 스물이 넘어서고 입신체비를 행하면서 잔치를 행할 적에만 만나게 되었지.”

효령대군이 그런 말을 하자 내 머리 구석에 박혀있던 기억이 떠올라 왔다. 양녕대군을 시작으로 한 백부와 숙부들은 모두 수양대군과 사이가 좋았다.

내가 빙의하기 전의 수양대군은 참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능력으로 따지면 대단하지는 않지만 부족함은 없었고. 형님이 너무나 월등한 세자이기에 명분으로도 실력적으로도 왕이 될 자격이 없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니 종친들과 친했고 숙부들이 많이 아꼈던 것이 빙의 전의 수양대군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친밀함이 유지되었던지 숙부 가운데 근녕군 혼자서 수양대군에게 반발하였으니까.

“생각하여 보니 숙부님들이 저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효행을 논하는 녀석이 집안 사람들을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네가 지금 따로 행하는 일이 없고 관직도 잠시 나설 뿐이니 가능할 것이 아니겠느냐.”

역시 세종대왕님의 형이다. 세종대왕님과 다른 방식이지만 상황을 유도해놓고 사람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일의 수렁에 빠트리는 일은 능숙하게 해내신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르겠지만.

숙부님을 모시는 일 자체는 힘든 일이 아니다. 식사야 오늘은 푸짐하게 대접해 드렸지만 이후에는 입신체비의 방식을 가르치면서 저녁 식사 이전에 끝내면 충분하다. 다른 사촌들?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가 문제지.

“하온데 다른 이들은 몰라도 숙모님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네 백모는 기억도 나지 않더냐? 올해 환갑이 다 되어서 조만간 회갑연(回甲宴)을 열려고 한다.”

“아, 알고 있습니다!”

효령대군 본인만 오래 산 것이 아니다. 효령대군의 부인인 예성부부인 정씨의 환갑이 올해 말이다. 효령대군은 나를 안쓰럽게 보더니만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안사람도 입신체비를 행하면 몸이 나아진다 하여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나를 기준으로 하니 도저히 가르칠 방도가 없더구나. 이러하니 어찌 하면 좋겠느냐.”

결국 또 이렇게 나오시네! 이러면 당연히 백모님을 시작으로 입신체비를 가르쳐야 하고 숙모님들의 입신체비도 당연히 해야겠지. 도저히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는데 아내가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인다.

“제가 백모님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려 하여도 배움이 미욱하여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렇단 말이더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나.”

“하지만 손부(孫婦 - 아들의 며느리를 높이는 말)는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저, 저는 도저히 그러한 일을.”

군부인 한씨가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하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하다. 학식이 있으니 동작의 관계와 필요성을 찾아내는 그 재주는 현대에 들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으면 만들기 힘든 것이다.

나의 도움을 받은 군부인 한씨의 입신체비는 전체적인 회복력 강화와 체질 개선을 목표로 삼았으니 큰 무게를 필요하지 않고 나이가 많은 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젊은 여성이면 아내의 방법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모님이면 환갑의 연령이니 절대 따라오지 못하고 오히려 몸이 상한다. 아내의 방식은 전체적인 근육량 증가를 목표로 삼았으니 당연한 일이지. 군부인 한씨가 겁에 질려있으니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네 몸이 변한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고기를 소화하지도 못하고 우모구를 행하였다 혼절한 몸이다. 본래부터 나약한 몸이 이렇게 나아졌는데 아직도 배움이 부족하다 하느냐.”

“하지만 저는 기껏해야 입신체비를 이 년만 행하였습니다.”

“네가 정(婷 - 원 역사의 월산대군)이를 낳고 삼칠일 만에 몸조리를 마치지 않았더냐. 나는 입신체비를 행한지 이 년이 되던 해에 주현이를 낳았지만 몸조리가 너보다 늦어서 한 달 하고도 보름을 채웠구나.”

거짓말을 했지만 내가 넘어갔다. 아내가 주현이를 낳고 여드레 만에 몸조리가 끝나 입신체비를 다시 시작했으니까. 압도적인 체력이 회복을 빠르게 했던 것이다.

반면 군부인 한씨는 회복에 삼 주일이 걸렸는데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이 시대에서는 두 달간 산후조리를 해야 평범하다고 여기며 양반가에서는 백 일을 꽉 채우는 일이 빈번하다. 효령대군도 눈치 챘는지 군부인 한씨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이가 출생한지 아직 백 일도 아니 되었는데 멀쩡히 돌아다니는구나.”

“어머님께서 저를 챙겨주신 덕분에…….”

“내가 너를 보아왔으니 염려하지 말거라. 입신체비를 행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일 년이 지난 후에는 알아서 행하지 않았더냐. 오히려 내가 백모님을 가르치려 하면 몸이 상할 것이다.”

그건 나도 말리고 싶다. 삼대 운동 500근에 근접한 아내는 이 시대 기준으로 여장부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군부인 한씨가 겨우 자신감을 가졌는지 조용히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을 보았다.

“비록 부족한 몸이지만 열심히 행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손부가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고, 질부(姪婦)가 젊은이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면 충분한 일이겠구나.”

결국 임시로 내 집이 입신체비장이 되었다. 배재당과 집 밖의 입신체비장에 두었던 여유분의 입신체비 기구들과 대역기, 소역기들을 가져와서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당연히 여인들은 안마당에서 입신체비를 하니 입신체비용 복장 여러 벌에다 충분한 기구들을 가져왔다. 며칠이 지나고 숙부님들을 위한 입신체비가 시작되었다. 처음 온 사람은 다섯 번째 서자인 근녕군이었다.

“숙부님께서는 하체가 조금 부족하십니다.”

“하체라? 그러고 보니 말을 탄지도 몇 년이 지났구나. 사복시(司僕寺)에 있는데 좋은 말이 지천에 널려있거늘.”

“그러니 분할하지 않고 온 몸을 다루되. 하체운동을 집중적으로 행하겠습니다.”

3분할 같은 방법은 운동 횟수가 적어서 쓰지 못한다. 결국 효율적인 운동을 위하여 전신 근육을 모두 다루는 다관절, 대근육 운동을 위주로 시작하였다.

“숙부님은 전체적인 골격은 좋으시지만 체격이 작으십니다. 그러니 근육의 성장을 우선으로 행하겠습니다.”

“근육의 성장이라 하였는데 이건 조금 너무! 흐읍!”

“공좌(스쿼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행하면 충분합니다.”

“여, 열심히 행한다니?”

횟수가 많아지니 슬슬 자세가 흐트러지지만 횟수를 달리 세거나 압박을 주는 방법을 쓰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웃으면서 세종대왕님의 이야기를 했다.

“아바마마께서도 온 몸에서 한우(임금의 땀)를 흘리시면서 거듭하신 일입니다. 실지로 아바마마께서 행하신 대역기가 숙부님보다 조금 무거워서 양쪽에 다섯 근 공령을 올리셨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열심히 행해야겠구나.”

남성 회원들은 나이가 어떻던 간에 ‘같이 운동한 누구는 언제 얼마를 들었는데요.’ 라고 귀띔하는 순간 사람이 달라진다. 이렇게 보니 과거나 현대나 사람 사는 일은 모두 똑같다.

여기에 세종대왕님이 운동을 하지 않는 일은 종친 사이에서 유명한 것이 분명했다. 근녕군의 몸에서 의욕이 솟구치면서 자세가 잡히고 약간 무리한 근력운동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잠시 쉬십시오. 충분한 휴식을 행하면서 근육을 풀어야 통증이 적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종제를 가르칠 차례입니다. 현동아, 가서 목봉을 가져오너라.”

“종형께서 저를 직접 가르치신다니…….”

“염려하지 말게. 그저 조금 고생할 뿐이라네. 아주 조금 말이지.”

종제들에게는 자비심 따위는 없었다. 어디서 하늘과 같은 입신체비사이자 형님이며 주상전하를 가르치는 자에게 대꾸를 할 엄두가 나지도 않겠지?

“자세가 흐트러졌다. 여섯!”

“어찌하여 아홉 번을 행하였는데 다시 여섯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어허! 주상전하께서 세자에 계실 적에 네 종형에게 배운 일을 잊었더냐? 군소리 하지 말고 행하지 못하겠느냐.”

옥산군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의압(벤치 프레스)을 움직였고 나이가 어린 우산군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신음을 흘리면서 열심히 몸을 놀렸다. 허탈감과 근육통에 시달리는 근녕군이 두 아들들을 다그쳤고.

그렇게 입신체비가 끝나고 간단한 처방을 내렸다. 옥산군과 우산군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근녕군은 이제 40이 넘었으니 간단한 처방이 필요하지.

“숙부님께서는 손이 비시는 날에는 가급적 산천을 돌아다니시면서 승마를 하십시오. 허벅지의 근육이 부족하니 이를 보충하기 위한 일입니다.”

“승마라? 이제 불혹이 넘었으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좋지 않겠구나.”

“승마는 하체를 단련하는데 좋은 일이 아닙니까.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고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산천을 주유하며 시구를 만드는 일은 사대부가 행할 일이 아닙니까.”

“사냥을 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일은 문제가 없으렷다.”

그렇다면 숙부님을 다스렸으니 이제 숙모님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안채에서 태안군부인 허씨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 나왔다.

“괜찮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시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의 몸이……. 아닙니다. 잠시 제가 놀랐으나 경망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흘깃흘깃 바라보는데 무슨 일일까. 근녕군이 돌아가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간단하게 답했다.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제가 삼대 운동을 행하니 속이지 말라 하시며 화를 내시기에 복근을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이러다가 복근이 미적 기준이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안사람의 일에 바깥사람은 관여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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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궁에서 독서가 한창이었다.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나와 세종대왕님 그리고 효령대군 세 명이지만. 다른 일은 아니고 세종대왕님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으니 냉큼 찾아왔다.

서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효령대군은 훈민정음으로 언해(諺解 - 한글로 번역된) 불경을 쌓아놓고 읽으면서 감탄을 늘어놓았다.

“신미가 언해에 소질이 있다 하였지만 불경을 이렇게 능숙하게 언해할 줄은 몰랐습니다.”

“일전부터 유가 많이 아끼던 자이니 재능이 없을 이유가 있는가.”

“아니옵니다. 모두 주상전하께서 택하신 일이니 저는 그저 좋은 인재를 천거 하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책인 일본서기의 번역본을 읽어나갔다. 같은 한자라고 해도 과거에는 쓰이는 방식이 다르고 발음이 다르니 번역을 거쳐야 가까스로 읽을 만한 물건이 된다.

그러니까 진흥왕 순수비를 별 다른 연구기반도 없이 과거의 서적과 비교해서 알아낸 추사 김정희가 괴물이라는 소리다. 새로운 내용을 아는 재미로 한참을 읽어나가자 세종대왕님이 헛기침을 하시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신다.

“서책을 이렇게 즐기다니 얼마만에 보는 모습인지 모르겠구나.”

“아바마마, 제 배움이 깊지 않다 하여도 사대부로서 부족함은 없다 생각하옵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왜국에서 온 서책을 이렇게 즐겁게 읽는 것이냐. 이러한 일은 흔하지 않았다.”

“대내씨(오우치)가 백제의 후예라 하였는데. 실지로는 왜국 전체가 삼한(三韓)과 당나라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백제의 성왕과 관련된 내용이다. 현대까지 전해져 오는 일본서기에서는 덴노가 성왕에게 지시를 하달했다 하는데 내용은 정 반대였다.

[백제에서 말하기를 일전에 보낸 스승에 대한 답례를 하라 하였으며. 백제의 문물이 귀한 것을 아니 많은 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정병을 배에 태워 보내며 귀한 말과 면포를 답례하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현대에 와서 일본서기에 있었던 많은 의혹들이 해결되었다. 지금의 일본서기의 내용은 해외에서 문물을 전해준 세력과의 우호적 관계를 서술하고 있었으며 신화적인 내용은 다른 책에 쓰여 있었다.

나중에 새로운 판본을 만들면서 억지로 시대를 통합하고 역사를 편입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현대의 일본서기겠지. 세종대왕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일본서기에도 관심을 보이셨다. 다시금 독서가 시작되고 한참 뒤에 세종대왕님이 운을 띄웠다.

“그러고 보니 요즘 즐거운 일을 하더구나.”

“즐거운 일이라 하시니 숙부들과 관련된 일이옵니까?”

“그렇지. 내가 상왕의 자리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니 숙부들이 할 일이 없이 시일을 보내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그런 차에 효령대군과 네가 나서서 종친들의 우애를 돈독히 하지 않았더냐.”

양녕대군의 죽음 이후 세종대왕님도 가족의 정을 생각하시는지 나를 보면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시던 세종대왕님은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매양 너의 사저(私邸)에서 입신체비를 행하니 불편함이 많겠구나.”

“실은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니 좋구나. 아니구나, 네가 종친들에게 입신체비를 쉬이 행하려면 좋은 곳이 필요할 것이다.”

실은 형님에게 말해서 입신체비장 장소를 하나 더 마련해달라 하려다가 숙부님들이 거북해 하실까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세종대왕님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좋은 자리가 있느니라. 제생원(濟生院)의 휘하에 있는 유접소(留接所)를 아느냐?”

“예조 휘하의 기관이며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거두어 돌려보내거나 장성하여 일을 시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근래에 들어 유접소에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구나.”

원인으로는 노비종부법의 시행 외에는 생각 할 수 없다. 양인을 겁탈해서 억지로 노비를 만들거나 호적을 속이면 주동자는 형무소행이고 식솔들은 북방으로 전가사변을 당한다. 내가 알기로는 열 개가 넘는 집안이 북방으로 전가사변을 당했다.

그러니 방법을 바꿔서 고아들을 잡아들여서 노비로 만드는 짓을 하고 있을거다. 당연히 걸리면 유괴범으로 사형까지 당할 일이지만 인권의 사각지대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세종대왕님도 내 표정을 보고 알아차렸는지 한숨을 쉬었다.

“주상이 아무리 좋은 뜻을 보여도 빛 아래에는 그늘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 하여서 유접소에 거주하는 이가 다섯 조차도 아니 되니 땅이 버려지고 있구나.”

창경궁과 경복궁의 정 중앙에 위치한 것이 제생원과 유접소이다. 형님이야 예산이 낭비되어도 세종대왕님이 만든 것이라 함부로 할 수 없겠고. 결국 세종대왕님이 상황을 알아보고 포기하려던 참이다. 그런데 고아 하니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오나 유접소에 아이들이 줄어들었다 하여도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이가 줄어들면 차츰차츰 사람이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오니 유접소를 넓혀 아이를 거두는 일에도 불편함이 없게 하면서 종친들이 입신체비를 행하는 장소로 정하심은 어떠하신지요. 비용은 제가 가진 직전(職田)을 사용하는 것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공을 세우면서 받아온 직전이 넘쳐나서 고민이었다. 거의 1,500결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보니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는 일도 한계였지.

이런 마당에 공신전을 나라의 일에 쓰게 된다? 거기에 종친들의 몸을 다스리는 입신체비장을 만드는 일에 사용한다? 모두 좋은 일이며 아무도 탓할 이유 따위는 없다. 세종대왕님도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생각이구나. 내 주상께 뜻을 전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아바마마께서 큰 뜻을 보이시니 만사가 형통할 것입니다.”

세종대왕님의 허락을 받으면서 과거에 실행했다가 어설프게 중단한 일이 떠올랐다. 빈민을 구휼하며 영양생리학적 분석을 시작하려 했는데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접소를 시작으로 해서 전국에 고아들을 보호하는 기관을 만든다면? 한양과 각 지방의 특산물을 고려해서 식사에 약간의 차이를 둔다면? 충분히 해볼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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