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73화 - 종친의 입신체비 >
몸에 으슬으슬한 기운이 돌기에 주변을 살펴봤더니 해가 지고 있었다. 초가을의 차가운 바람 덕분에 체온이 떨어졌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형님이 웃으면서 수건을 건네주셨다.
“몸을 차게 하면 감모가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여라.”
“이렇게 아껴주시니 정말 감사하옵니다.”
“어허! 형이 동생을 아끼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아낀다고 하시니 내 의견을 말하라는 것이겠지. 명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성리학적으로 교조화가 진행되지 않은 조선 초기라서 사람들의 사치 풍조가 심각하지 않게 남아 있으니 더더욱 좋다.
“근래에 들어 종친은 몰라도 대신들의 녹봉이 2할이나 오르지 않았습니까. 이러하니 대신들이 반대할 일이 없으며 오히려 식견에 감탄하며 찬동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렇다. 아국에서 명국에 조공을 보내며 돌아올 적에 잡역을 행하는 이들도 이문을 챙긴다 하였는데 이러한 풍습을 고려하여 유구를 택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 사치를 싫어하고 검소함을 추구하는 일을 당연히 여겼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지 않다. 명나라에 다녀오면 고작 잡부에 불과한 자라도 사치품을 사와 이득을 챙기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일 년에 3회 이상의 사행을 보내는 명나라의 물품도 이러는데 동남아의 물건들이라면? 형님도 이러한 일을 아는지 하나하나 손가락을 짚어가면서 말하였다.
“유구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으니 수우각 조차도 보내지 못하여 대내씨(오우치)에서 이를 벌충하기 위해 은자를 대신 보냈느니라. 그렇지만 유구에 가도 수우각을 구할 뿐 후추와 나각(螺角 - 소라고둥)을 비롯한 사치품은 구할 방법이 없지.”
“그렇사옵니다, 유구가 이렇게 어수선하니 나라의 일이 온전히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아국이 직접 나아가 구하는 것이다. 고된 일이지만 유구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함부로 관여를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처음에는 반발이 있겠지만 돈맛을 좀 보게 되면 충분하다. 대신들은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정직하게 동남아의 무역품을 사들이면서 좋아하겠지. 여기에 하나의 수단을 더 마련해야겠다.
“하오나 대신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질까 염려되옵니다.”
“그렇지. 그러한 일이 문제구나.”
“그러하니 빗장을 걸 듯이 관세(關稅)라는 세율을 마련하시옵소서. 삼 할에서 오 할에 이르는 세금을 물품마다 부과한다면 사치를 부리는 풍조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구나. 본디 내수소에서 물품을 파는 일을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한다면 다른 상인들이 사무역(私貿易)을 행해도 억제할 수단이 될 것이다.”
형님이 소비세 개념으로 석감에 세금을 부과했으니 관세 개념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명분이야 무역으로 소비하는 비용을 벌충하기 위해서지만 실상은 재정 수입 확보다.
조선에서 무역에 대한 관세 부과는 기껏해야 청나라와의 무역인 책문후시(柵門後市)에서 약간의 통행료 개념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 전부니까. 이제 방법은 마련했으니 형님이 어떻게 요리할지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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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두봉 인근의 누각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침울한 분위기가 오가는 가운데 상석에 앉은 이가 조용히 술잔 대신 찻잔을 들이켰다. 복식이 화려하고 생김새가 비슷한 것이 친족으로 보였으니 모두가 태종의 아들이자 종친이었다.
난행을 일삼다 세종대왕에게 마지막 경고를 듣고 칩거한 양녕대군을 대신하여 지난 몇 년간 종친들의 모임을 주도한 자가 효령대군이었다. 구석에 앉아있던 희령군 이타(袉)는 눈치를 보다가 효령대군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형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큰형님이 돌아가신 일에 불순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어떤 무지몽매한 자가 퍼트린 것일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불순한 소문이라니?”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사방을 떠돌다가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다는 말입니다.”
모든 이들이 이러한 소문을 들었는지 헛숨을 들이켜면서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러한 침묵 속에 효령대군이 분노가 뒤섞인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뱉었다.
“분명 형님에게 해를 입은 자들이 헛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영문을 알 길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쇠하는 법이지. 여기에 자택에 계시면서 몸을 놀리지 않았으니 더더욱 쇠락함이 빨리 찾아왔고.”
한때는 세자였고 폐세자가 된 이후에는 양녕대군으로 불리던 자가 죽었다. 아무리 밉고 싫은 자라 하여도 종친의 죽음이며 얼마 전까지 건강함을 자랑하던 자였으니 충격이 더욱 컸다 효령대군은 그런 침울함이 싫었는지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왜 이러느냐. 형님이 그렇게 돌아가신 것은 기력을 잃고 쇠하였기 때문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기력을 잃고 쇠하였다면 노환이 아닙니까.”
말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한창 늙어가서 기력이 떨어지는 경녕군의 말이었기에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공식적인 사인이 과음으로 인한 병이 아닌 시점에서 종친 대부분의 수명이 정해진 일이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남이 60에 죽으면 차남도 60언저리에 숨을 거둔다. 양녕대군은 종친 중에 몸이 좋은 축에 속했으니 다른 이들의 수명이 양녕대군보다 적다고 짐작한 것이다. 효령대군은 그런 일을 알았는지 벌떡 일어서면서 외쳤다.
“노환이라? 내가 지금 노환으로 쓰러질 것 같이 보이더냐? 이 몸을 보아라! 이런 몸이 쇠한다 하였느냐?”
효령대군이 웃옷을 벗어던지고 몸을 드러내자 종친 모두가 놀랐다. 그놈의 입신체비인지 뭔지를 행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알찬 근육이 살가죽 아래에서 꿈틀거렸으니 환갑이 넘은 노인의 몸이 아니었다.
“입신체비를 행한지 고작 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러한 몸이 되었다. 큰형님이 돌아가신 것은 집안에 계시면서 기력이 쇠한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입신체비라 하였습니까?”
“그렇지. 지금 보아하니 다들 입신체비를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어찌 된 일이냐.”
종친들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면서 눈을 마주쳤다. 수양대군이 만든 입신체비를 행하는 자는 수양대군과 같은 항렬에서는 많았지만 높은 항렬에서는 세종대왕과 효령대군 단 둘이었던 것이다. 침묵을 견디다 못한 종친 중 한명이 물어보았다.
“입신체비는 세 동작으로 일천 근을 들어 올리는 단련법이 아니었습니까?”
“일천 근이라? 내가 기껏해야 삼대 운동으로 오백 근을 들어 올릴까 말까인데 그게 무슨 소리이냐. 입신체비는 효행을 다하기 위하여 몸을 가꾸는 것이다.”
“효행을 다하기 위하여 그런 괴력을 발휘하다니요.”
종친들은 제대로 된 관직에 있는 이들도 없었으니 입신체비에 대해서 알음알음 뜬소문만 전해지고 있었다. 효령대군은 괴력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함녕군을 쏘아보았다. 평상시에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성품을 아는지라 종친들 모두가 침묵하였다.
“입신체비는 몸을 가꾸고 효행을 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병을 막고 몸을 올바르게 만드는 방법이다. 조카가 이런 좋은 것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모두 모르고 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훗날 유를 만나서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보겠습니다.”
“훗날 유를 만난다 하였느냐? 인(裀 - 함녕군)아! 일은 미루지 않는 법이다.”
효령대군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종친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재작년에는 서3남인 온녕군이 이질로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 서자 가운데 장남인 경녕군 또한 몸이 쇠락하는 조짐이 보였다.
“일전에 상왕전하께 들은 말이 있었다. 입신체비를 행하여 몸의 습사가 사라지고 안질이 회복되었으니 이 좋은 것을 큰형님에게 가르칠 생각이었다 하였지. 하지만 유가 나라의 일로 자리를 비우면서 일이 허사로 돌아갔다.”
“몸의 습사가 사라지고 안질이 회복되었다 하셨습니까?”
“그렇다. 이제 불혹이 넘은 이가 태반이며, 지천명에 다다른 이들도 늘어나지 않느냐. 일을 미뤄서 무엇을 하겠느냐. 다들 맡은 일이라도 있느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관직에 있는 이라 하여도 지금의 왕인 문종보다 촌수가 높으니 한직과 겸직을 오가며 녹봉을 받는 신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내일 진고개에 있는 유의 집에서 모이자꾸나. 더 이상 늦으면 쇠할 뿐이니 지금이라도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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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평영 강습은 끝났지만 수영 강습에 재미가 붙어서 훈련도감에게 4대 수영방법을 모두 가르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식사를 마치자마자 손님이 찾아왔다.
“유야 있느냐? 백부가 일이 있어 왔느니라.”
“백부님 도대체 무슨 일…….”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잔치나 술자리에서만 가끔 얼굴을 비추던 사람들이 효령대군의 뒤에 서 있었다. 나의 손위 종친들, 정확히 말하면 태종의 아들 가운데 세종대왕님을 제외한 전원이 집합한 것이다.
“네 숙부들을 데리고 입신체비를 행하려 하는데 괜찮으냐?”
“백부님?”
너털웃음을 짓는 효령대군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촌수가 높은 종친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가르치기가 힘들어서 피했다!
세종대왕님은 당뇨병 치료를 위해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가르쳤고, 형님은 동생의 마음으로 가르쳤으며. 나머지 내 아래에 있는 종친들은 강요 반 의욕 반으로 가르쳤다. 효령대군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알음알음 익히고 배재당에 가서 배웠다.
“세상에 북방에 다녀오면서 몸이 쇠하였다 들었는데 이전보다 더욱 커진 것 같구나.”
“이러한 몸이니 사람을 가르칠 재목이 되는 것이지.”
“입신체비를 행하면 기력이 돌아오고 몸이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하였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영문을 알 길이 없지만 숙부님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효령대군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번에 데려왔는지 알 방법도 없었고.
“네 숙부들이 아니더냐. 큰형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다른 숙부들이 안타깝지도 않더냐.”
“다른 곳에서 배우신다면.”
“나야 상관이 없지만 네가 아니면 누가 가르친다는 말이냐.”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왕의 형제들이며 하나같이 종친들이니 배재당에 가도 입신체비를 배울 방법은 없겠지. 그런데 문제는 숙부들이 한 둘도 아니고 모두 모였다는 것이다! 원인은 아무리 봐도 효령대군이 부추겨서 그런 거다!
“백부님께서 건강하신 연유는 입신체비만 행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숙부님들을 모이게 한 것입니까.”
“큰형님의 일을 이야기 하더니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구나. 그저 좋은 일이니 네가 조금만 고생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아니 백부님의 몸은. 그저 난처할 뿐입니다.”
나야 미래의 일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여기에 양녕대군의 사인이 노환으로 인한 쇠락사로 공식적으로(실록에는 올바로 적히겠지만) 알려졌으니 다들 자신의 수명에 대한 불안감이 크겠지.
결국 우리 백부님이 반쯤 강요하고 반쯤은 무병장수의 기대를 품은 숙부님들이 내 집으로 찾아왔다. 아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군부인 한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현동이? 일하러 나갔으니 천만 다행이지!
“유의 몸을 다시 보아도 듬직하니 배울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단다. 농(襛 - 근녕군)아.”
“어허 이 기물은 무엇이더냐. 아니 입신체비를 배우면 알게 될 것이니 염려가 없구나.”
효령대군은 그렇다 쳐도 경녕군, 함녕군, 근녕군, 희령군, 익녕군 이 다섯 명의 숙부님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 대문이 열리고 제자들이 뛰어 들어왔다.
자주 만나던 효령대군은 몰라도 숙부님들과 눈이 마주치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읍하면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최소 품계가 종 2품 하계 가선대부(嘉善大夫)인데 기껏해야 생원, 진사준비를 하고 있는 제자들이니까.
“허어 다들 몸이 좋군? 어디서 보아도 무관이라 해도 믿겠어.”
“가…… 감사하옵니다! 대감님.”
하위지 또한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며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고. 나도 하위지를 조용히 뒤로 불러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른 곳에서 시간을 때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부터 벌어진 일은 정말로 눈물이 나오다 못해 끔찍한 일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내가 대군이고 숙부님들이 군이라 하지만 군호 따위로 윽박지르면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지금도 함녕군이 근생부를 적다 말고 소역기를 머리 위에서 붕붕 돌려대니까.
“숙부님. 이렇게 행하시면 몸에 무리가 갑니다.”
“내가 예전에는 명나라에도 다녀왔는데 말이야.”
“인(裀 - 함녕군)아, 이 자리에서 입신체비에 가장 능한 자는 유이니 유의 말을 따르도록 하여라.”
“아…… 알겠습니다.”
경녕군은 지치고 병든 세종대왕님, 함녕군은 성격이 급한 세종대왕님, 근녕군은 귀찮아하는 세종대왕님! 은근 슬쩍 세종대왕님을 닮아서 더더욱 다루기 힘들다. 당장 모두의 근생부를 작성하는 일에만 한세월이다!
“천천히 내리시면 됩니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좋습니다.”
“가, 가슴이 끊어질 것 같구나.”
“흉부까지 역기봉이 닿고 나서 천천히 올리십시오. 제가 잡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태조 대왕의 혈통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몸이 나쁜 편은 아니다. 경녕군은 상황이 조금 안 좋았지만 전체적인 근력을 올리면 몇 달 만에 나아질 것 같고.
“의압(벤치프레스) 열두 번을 행하겠습니다.”
“하고 또 하는 것이냐?”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숙부님! 회축기는 지금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입신체비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오히려 편했다. 다들 무병장수라 생각해서 입신체비를 행하는 일에 열정을 보이고 있으니 처음만 힘들 뿐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힘들지만 감당할 정도는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가르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지만 효령대군은 나를 보면서 그저 웃고만 있으니 화를 낼 힘도 나지 않는다. 숙부님들이 돌아가고 효령대군이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렇습니까.”
“처음이니 모두를 불러왔을 뿐이다. 앞으로는 순번을 정하여 한 명 혹은 두 명 정도면 부담이 없지 않겠느냐.”
다섯이 모두 모였기에 힘이 부쳤지 한두 명이면 상관없다. 오히려 숙부님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마음이 놓이고. 그렇게 안심하던 찰나 다시금 날벼락이 떨어졌다.
“대신에 네 숙부를 포함하여 종제(사촌)들과 함께 행해야겠구나. 그러고 보니 삼한국대부인이 입신체비에 능숙하다 들었는데 혹시나 부부인(府夫人)과 군부인(郡夫人)의 입신체비도 행할 수 있겠느냐.”
아무래도 내 앞길은 더더욱 험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