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72화 - 근육 효과 >
쓸모없는 물건을 팔고 쓸모 있는 물건을 산다. 이게 무역의 기본이며 올바른 방식이다. 금성대군이 일을 잘 진행한 덕분에 명나라와의 조공 무역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었다.
요동 일대에 삼만 필의 하급마를 공급하는 덕분에 잡곡 부족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다. 이런 기쁜 와중에 내가 뭐 하고 있냐고?
어명이 내려왔다. 북방의 전투에서 물에 빠진 자가 여럿 죽었으니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자맥질을 연구하라 하셨고. 기억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생존 수영법인 평영을 끄집어냈다. 속도야 느리지만 속도를 따졌으면 애초에 평영을 할 필요가 있나.
“얼굴이 반드시 물 위로 나와야 한다네.”
“그렇…… 어푸! 푸웁!”
“어허 홍 사직!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드넓은 한강에서 사람 수십 명이 개구리 같이 평영을 하고 있으니 배다리를 지나던 자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뒤를 돌아보니 홍윤성이 손동작을 실수했는지 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조급하게 움직이지 말게.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대로 가장 안전한 자맥질 방법을 만들었으니 빠르다고 하여 일이 나아지는 것이 아닐세.”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훈련도감의 사직으로 부임하는 홍윤성을 비롯한 훈련도감의 관원들이다. 다음 기수부터는 도감군 모두가 기초 훈련으로 수영까지 겸하겠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끼어 있다.
“처음에는 대군 어른께서 농을 하시는 줄 알았지만 정말 편합니다.”
“그렇지 않나? 그런데 압구 자네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군.”
“주상전하께서 저를 아끼시나 봅니다. 여하튼 머리가 젖지 않고 자맥질을 한다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요동까지 배를 타고 나서는데 혹여나 물에 빠져도 목숨은 건지겠군요.”
아직 아무런 일도 모르는 한명회지만 형님의 아낌은 그런 아낌이 아니다. 말을 듣는 홍윤성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한명회를 바라보았고. 연습을 마치고 백사장으로 돌아오니 대기하고 있던 젊은이가 달려와 수건을 주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서 수건으로 몸을 닦으니 금방 마른다. 웃옷을 걸치고 돌아보니 백사장 모래를 배에 깔아둔 예비 개구리들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등을 따듯하게 굽고 있었다. 그들에게 동작을 가르치는 시범 교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서산군이었다.
“천천히 하여도 좋다. 너희가 자맥질을 잘 하여도 새로운 방법은 시야가 트이고 힘이 들지 않으니 배우면 뭐에 써도 헛된 일이 아니다.”
“다들 잘 행하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다리를 찢는 방식도 힘들어 하였는데 이제는 그럭저럭 몸을 놀리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서산군은 몸이 제법 줄었지만 건강을 되찾았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시름시름 앓는 것 자체가 불효라고 하는 주장을 반쯤 이해시킬 수는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몸을 불려나가는 서산군을 보니 뿌듯함이 차오르지만 서산군은 와영(蛙泳 - 평형의 조선식 명칭)이 이상하게 보이는지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종형께서는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주상전하께서 목숨을 보하는 방법을 집어서 이야기 하셨는지 모를 일입니다.”
“수군을 양성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다 하여도 이상합니다. 수군에 필요한 자맥질은 몸을 날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까.”
나도 모를 일이니까 4대 영법이나 모조리 가르칠까? 내일은 안평대군이 한양으로 돌아오는 날이니 간만에 동생 얼굴도 봐야지. 녀석이 일본에서 어떤 이야기를 물어왔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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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평대군. 왜국에 나아가 족리의정을 염탐하였사옵니다.”
“그동안 고초가 많았구나. 하지만 왜국에 변고라도 있느냐? 심려가 깊은 것 같구나.”
몇 년 동안 안평대군을 보아왔지만 이런 표정은 처음이다. 말 그대로 피로와 고뇌에 절어버린 얼굴이니 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평대군이 고개를 숙이더니만 형님에게 말을 시작했다.
“족리의정(아시카가 요시마사)은 왜국을 다스릴 재목조차 아니며 이로 인하여 내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사옵니다.”
“그러하단 말이더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명나라에서 새로운 연호가 쓰이고 국제 관계도 새로 정립되었다. 그래서 역사가 변했다 느꼈지만 일본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안평대군의 이야기를 듣자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금천(今川 - 이마가와)씨의 직신이 경도(교토) 한복판에서 살해당하였습니다. 호위인 세 명 조차도 변을 당하였는데 이를 살해한 자가 왜국의 관령인 세천(호소카와)의 수하입니다.”
“금천이라는 성씨는 들은 바가 있도다. 전조 말엽에 납치당한 아국의 백성들을 송환한 자가 아니더냐. 그러한 명문가의 직신이면 대체 어떠한 자이기에 변고를 당한 것이냐?”
“인삼의 싹을 틔우는 재주가 대단한 자라 하였습니다. 왜국의 인삼 종자는 기술이 서툴러 삼 할만 싹이 트는데 신묘한 방법으로 오 할이 넘게 틔웠다 하옵니다.”
인삼에 얼마나 미쳐 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호소카와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은 서로 동맹이나 다름이 없고. 오닌의 난에도 같은 편에 섰는데 인삼 하나 때문에 갈라지다니. 형님도 심각한 일이라 생각했는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니 살해한 것이 분명하구나. 하지만 왜국의 관령이 이렇게 날뛰는 일이 말이나 되느냐. 족리의정은 이러한 일을 알고는 있더냐.”
“매양 사치와 향락에 물들어 있으니 충언을 하여도 듣지를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족리의정의 측실이 금천 씨에서 보내온 여식이라 하였는데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사옵니다.”
이미 요시마사에게 가는 정보조차 차단된 것이 분명하다. 형님 또한 기가 막혀서 내관을 불러 지시를 내렸고 안평대군도 할 말이 없었는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내관이 정갈하게 접힌 종이를 가져왔다.
“그렇지 않아도 족리의정이 국서를 보냈었지. 인삼 종자를 두 배로 보내 달라 청하였는데 이것이 그 국서이다. 하지만 네가 이러한 일을 아느냐?”
“모르옵니다. 심지어 관령조차도 아무런 말이 없었사옵니다. 들려오는 소식이 흉흉할 뿐이며. 경도에서 먼 고을에서는 인삼 종자를 노략질하는 일이 빈번하다 하옵니다.”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안평대군이 뭔가 빼먹은 것 같다. 아래에서는 저렇게 날뛰지만 일본의 음습한 정치 문화 덕분에 막후 세력이 존재할 것이 뻔한데? 당장 내가 엿 먹인 놈이 하나 있으니까 물어나 봐야지.
“수양대군 아뢰옵니다. 일전에 간악한 수를 부린 산명(야마나 소젠)이 막후에서 족리의정과 관령을 조종하며 세력의 힘을 빼려는 계략을 부릴지도 모르옵니다.”
나한테 호되게 당한 야마나 소젠이니까 내 동생을 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겠지. 그렇게 안평대군과 눈이 마주치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안평대군이 말했다.
“관령과 사돈인 산명은 등창이 번지고 울화병이 심해 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뭐라고…….”
“쉰이 넘은지라 회복할 가망이 없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등창이면 인삼의 효험이 없는데도 살고자 하는 욕심에 인삼을 스무 뿌리나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사옵니다.”
그러니까 69세까지 살면서 전쟁터에서 지휘관이자 세력 대표로 일했던 역사상의 위인이 죽어간다는 말이야? 이게 말이나 돼? 나비효과도 아니고 내가 무슨 사신이야? 재앙신이야?
“다른 이들 앞에서 모욕 아닌 모욕을 감내하고 자신의 친인척의 영지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난행(亂行)을 일삼는 꼴을 보았으니.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작년부터 생긴 등창이 아물지 않고 며칠마다 고름을 한 되씩 쏟아냈다 하였습니다. 잠에 들어도 원망을 늘어놓으니 딱할 뿐이옵니다.”
“그저 헛된 계략을 부리기에 골려줄 마음을 먹었을 뿐이옵니다.”
“알고 있노라. 그저 답답해서 해 본 말이다.”
형님이 웃으면서 넘겼지만 심각한 상황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야마나 소젠의 서군과 호소카와의 동군이 격돌하였지만 지금은 호소카와의 행동을 막을 세력이 부족하다.
“결국 인삼을 시작으로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변고가 일어남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을 적에는 어떻게 되겠느냐.”
“신 김종서 아뢰옵니다. 관여하지 않는다면 몇 년 이내에 왜국의 내란이 발발하여 들여오던 구리를 비롯한 물품들의 양이 줄어들거나 길이 막히는 일은 자명합니다.”
“그렇지. 아국이 맺은 약조는 족리의정이 보증을 맺고 왜국의 각 지역의 수호(슈고 다이묘)들이 정해진 물량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하니 수호들이 내란을 벌이면 들여올 방도가 없지.”
몇 년 이내라 하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금 당장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형님은 짐작하고 있는지 다음 방법을 말했다.
“그렇다면 인삼 종자를 보내는 일을 막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대신들 모두가 난처하다는 눈치이니 역시 김종서가 나섰다. 김종서는 잠시 생각을 이어나가더니만 조심스럽게 답했다.
“내란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득이 사라진 각지의 수호들이 한 뜻으로 뭉칠 것입니다. 아국이 약조를 어긴 것이니, 잘못하면 명국에서 간섭할 염려가 있습니다.”
간섭한다는 말이 군사적 간섭 같은 것이 아니고 정치 외교적 간섭이다. 아무리 바지사장인 무로마치 막부라 해도 명나라에 공식으로 일본 국왕 작위를 받은 자니까 명분은 충분하다.
조선 입장에서는 신의를 저버린 짓이다. 이렇게 되면 형님의 체면만 구기는 짓이고 내란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님도 아는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이인손을 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책이다. 올해의 인삼 소출과 종자를 모으는 일은 얼마나 걸릴 것인가.”
“올해의 소출은 상세히는 모르지만 성숙한 인삼으로 3만 개에 이상에 달하니 약 1,900근에 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삼 종자는 아국이 쓰고 남는 것은 얼마나 되겠는가.”
호조판서인 이인손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손가락으로 계속 셈하더니 확실하지는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인삼은 한 뿌리마다 쓸 만한 종자가 스무 개 정도 나옵니다. 여기에 비축하는 분량과 내년에 심을 분량을 제하면 삼십만 개 정도는 여유가 있사옵니다.”
“그러하단 말인가.”
고뇌에 찬 형님의 표정을 보니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대충 알겠다. 그리고 예상대로 형님이 모두를 돌아보면서 마지막 방법을 이야기했다.
“만약 인삼 종자를 보내는 일을 십만 개 혹은 그 이상으로 늘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족리의정의 이름을 빌려 국서를 보내고 있지 않았는가.”
“신 수양대군 아뢰옵니다. 분명 내란이 늦춰질 것이나 훗날에 더 큰 내란이 벌어질 것이옵니다.”
“그러한가.”
애초에 일본에 공급하는 인삼 종자를 오만 개로 제한한 이유는 서로의 안정을 추구해서이다. 일본의 생산량과 농업능력을 조선과 대등하거나 소폭 열세로 보아서 조선 기준으로 대흉이 아닌 평범한 흉년이 와도 버틸 정도로 보내는 것이다.
인삼을 심은 땅은 적어도 십년 동안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에서 기르는 만큼 일본에서도 기르면 적당하다 생각하고 오만 개로 수량을 정한 것이다. 이런 물량이면 10년을 모아도 수확량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욕심을 부릴 놈들이면 인삼 종자가 맺히는 대로 족족 심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인삼 농지가 늘어난다. 정말 인삼 기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게 잡아서 향후 오 년 동안은 아무런 말이 없겠군.”
“그렇사옵니다.”
형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계속 공급량을 늘려나갈 생각이 분명하다. 애초에 형님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최대한의 이득을 노린다. 당장 북방 전쟁에서 상황만 보았다면 궁지에 몰린 타이순 칸에게 무기를 대놓고 공급했겠지.
“분명 왜국에서 국서를 보낸 일이 아니더냐. 인삼의 종자는 많아보았자 아국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고 산야에 뿌려져 대부분 들짐승의 먹이가 될 뿐이다.”
“하오나 왜국에서 급작스러운 흉년이 들게 된다면 도탄(塗炭)지경에 빠질 것이 분명하옵니다. 아국에서 보낸 인삼 종자는 흉년이 들어도 문제가 없을 양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하여도 그들의 욕심이 자초한 것이다. 모두가 마음속에 흉심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내년부터 왜국에 매년 십오만 개의 인삼 종자를 아니다, 호조에서는 가급적 빨리 이십 만개의 종자를 보내도록 하여라.”
대신들 모두가 찬성하였다. 쓸모도 없는 물건을 보내서 내란을 몇 년 연장시키면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아니다.
일본에는 1459년 말부터 1461년 초까지 조로쿠-간쇼 대기근이 시작된다. 올해 공급하는 인삼 종자가 싹을 틔우고 4년 뒤 수확을 마치면 다시 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근의 정점인 1460년의 일본은 최소 백만 개의 인삼이 심어진다.
말이 그렇지 백만 개를 넘어선 인삼이다. 여기에 누적된 인삼 경작으로 인한 토지 황폐화와 기존 농민들의 일손 감소를 포함하면 기근과 겹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대규모 민란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것이다. 이러한 태풍 속에서 내 역사적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고뇌하고 있는데 형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시면서 말했다
“입신체비를 행하려 하는데 오늘은 하 체장이 아니고 네가 함께 하면 어떻겠느냐.”
군소리도 못하고 따라갔다. 형님도 무언가 할 말이 있지만 그저 역기만 움직이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몸을 놀린 형님이 보조를 서고 있는 내관에게 손짓을 해서 쫒아냈다.
입신체비장에 정적이 흐르고 형님이 눈을 내리깔며 한숨을 쉬었다. 형님 입장에서도 임시방편으로 시간을 벌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이유가 없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아무리 많은 인삼 종자를 주어도 내란은 벌어질 것이며. 왜구가 준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비를 하면 충분할 것이 아니옵니까? 전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지금은 형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홍위에게 불편함이 없이 북적과 남적을 모두 걷어낸 평안한 나라를 물려주고 싶구나.”
그렇다면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훗날을 대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 의견을 말하려다가 형님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달자들은 내란을 벌이면서 한동안 아귀다툼을 벌일 것이며. 사만의 기병을 두어 이만을 북변에 나누어 두고 이만을 한양을 비롯한 도성 인근에 둔다면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구를 막아낼 수군이 문제입니다.”
“수군이라 하여도 평시에는 포구에 박혀 매양 곡식과 인력을 축내는 일이 아니더냐.”
수군은 양성하기 까다롭고 엄청난 자금도 소모된다. 적어도 2교대로 사람을 부리며 항해 경험과 전투 경험 등의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하니까. 지금 조선에서도 제대로 된 수군도 없고 물자 운송을 위한 정크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포구마다 약간의 수군을 두어 왜구가 준동하면 배를 불사르고. 육지에 상륙한 왜구들은 훈련도감 출신 병사들의 지휘를 받는 잡색군으로 막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러한 일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고작 왜국에서 보내온 도적떼 따위는 범접도 못할 강대한 수군을 원한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수군을 강하게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평시에는 무역을 행하고 경험을 쌓는다면 충분한 일이 아니겠느냐.”
무역? 명나라가 해금령을 내렸으니 무역을 할 방법이 있나. 설령 일본 정도를 오간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함대를 만들 이유도 방법도 없다. 하지만 형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천축이다. 천축을 넘어 대식국으로 향한다면 무역으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무역을 행하며 사용하는 배에 화포를 올리면 병선이 된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전조 시절에 대식국의 상인들이 아국을 오가며 교류를 하였는데 수백년 뒤에 세워진 아국이 행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더냐. 그 옛날 장보고가 청해진을 어찌하여 세운 것이더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정화의 함대도 인도를 넘어서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하였고. 하지만 기술은 충분하지만 선원들의 경험치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무턱대고 항해를 나섰다가는 해적은 물리쳐도 수많은 선원들이 목숨을 잃겠지.
그렇지만 대규모의 함선 건조를 감당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형님의 정책은 상대의 움직임에 맞추어 우리의 소득을 극대화 하는 방식이니까 명분에서는 약하거든.
“그렇다면 어떠한 명분이 있사옵니까.”
“그저 유구국이 소란에 빠져 수우각(물소뿔)과 후추의 공급이 더디니 직접 받으러 향하는 것이지.”
역시 형님이시다. 유구는 신나게 내전을 벌이고 있으니 무역은 급감했을 것이고. 조선에서 닦달하면 직접 내려가라는 소리를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동남아시아 까지 오가는 항해사 정도는 쉽게 구하겠지.
하지만 왜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리고 형님이 지그시 웃는 이유도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