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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33화 (133/573)

< 2장 71화 - 왕과 황제와 쇼군(3) >

금성대군은 새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는 진하사의 정사(正使)로 파견되어 무릎을 꿇고 어린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거의 십 년 만에 조선의 종친이 자금성을 찾게 되었다.

“조선의 왕인 향(珦)의 왕제인 유(瑜)라 하였는가?”

“그렇사옵니다. 황상께서 이름을 기억하는 은덕을 내리시니 뜻 깊은 일이옵니다.”

“머나먼 조선에서 왔으니 여독이 많겠구나. 나라의 일이 바쁘니 신료들과 논의를 하지 않겠느냐.”

기껏해야 여덟 살인 영덕제가 사신을 맞이하여 인사만 하여도 대단한 일이리라. 금성대군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고 논의를 하러 내려갔다. 논의를 위해 준비된 별실에서는 태상황인 정통제를 비롯한 신료들이 모여 있었다.

“품목들에 있는 녹비(鹿皮)를 비롯한 가죽은 흠을 잡아 받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지요.”

“여기에 말들의 품등을 낮추어 부르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이전의 와라부와 같이 지나치게 겁박하면 허튼 마음을 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아국의 화포장들을 억류하고 있었던 죄를 묻는 것이니 유념토록 하여라.”

명과 조선과의 사이가 안 좋아진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조선이 두 번에 걸쳐 대승을 거두고 북방을 확고히 지키니 패전과 수비를 거듭한 명에서는 상대적인 불안감이 생겨났다.

여기에 명나라의 포로들이 문제였다. 포로를 즉시 요동으로 보냈다면 아무런 말이 없었겠지만 넉 달이나 지난 지금이 되어야 포로들이 돌아왔으니 화포 기술 가운데 상당수를 조선이 획득했을 것이라 여겼다.

정통제가 마지막으로 점검을 마치고 신호를 보냈다. 문이 열리고 금성대군이 깊게 인사를 올렸다.

“태상황 폐하를 뵙사옵니다. 조선의 정사로 부족한 몸을 끌고 온 금성대군이옵니다. 황은에 감복하여 정성을 다하여 품목을 정했나이다.”

인사가 끝나고 조공품 목록이 전달되었다. 예부상서 호영(胡濙)이 목록을 읽어나가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녹비 천 장, 해동청 스무 마리, 각종 옷감에……. 그리고 군마 오, 오천 필?”

“상등의 군마 일천 필을 보내라 하셨는데. 아국이 명국의 은혜를 받은지라 사천 필을 더하였습니다.”

조선은 보총을 조공에 포함한 이후부터 군마 조공을 줄여나갔지만 갑자기 다섯 배를 보낸 것이다. 정통제 또한 목록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조선에는 군마가 부족하지 않느냐. 어찌하여 다섯 배로 수량을 늘린 것이냐.”

“아국이 은혜를 입었기에 보답하고자 하였습니다.”

“은혜라? 대체 무슨 일을 하였기에 은혜라 한단 말인가.”

은혜라 하면 서유정이 내려줄 수 있었다. 약간의 병력만 파병했어도 모든 일이 순탄하게 돌아갔으리라. 그러나 금성대군은 태연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전쟁의 경과를 이야기 하였다.

“와라부의 달자가 매섭게 몰아치기에 하르빈에 세운 요새가 포위당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할 지경이었습니다. 하오나 갑자기 일만에 달하는 달자들이 남방으로 움직였습니다.”

“요동 총병은 아무런 병력을 보내지 않았으며 요동의 장성에도 아무런 일이 없었거늘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건주 양위가 와라부의 달자들에게 명국의 원병으로 오인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달자들이 앞 다투어 건주 양위를 부수기 위하여 움직이니 숨통이 트였습니다.”

도저히 믿지 못한 병부상서 우겸은 은퇴를 앞둔 상황에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다.

“건주 양위의 병력은 기껏해야 오천에 불과할 뿐이네. 그런데 와라부의 달자들과 대등한 싸움이 되었다는 말인가.”

“올적합의 유도로 동산(충샨)의 군대가 멋도 모르고 와라부의 달자가 세운 곡창 인근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 군대가 어우러져 싸우니 달자들도 손실이 컸습니다.”

그럭저럭 아귀에 맞는 이야기이니 우겸도 더 이상은 파고들지 못했다. 회양공의 작위를 받기 전이면 사람을 보내 상세히 알아볼 일이지만 지금은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더는 나설 방법이 없었다.

“지난달에 귀부한 올적합의 이야기를 듣고 모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건주 양위는 모조리 무너졌으나 아국의 병사들이 목숨을 건졌으니 명국의 은혜가 아니겠사옵니까.”

듣기에는 모두 그럭저럭 아귀가 맞는 말이었다. 조선이 원한 것은 그저 건주 양위를 북방으로 보내라는 말이었고. 이로 인해 이득을 본 조선은 뒤늦게야 일의 전말을 알게 되어서 사죄의 뜻으로 많은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하지만 정통제의 궁금증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기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금성대군을 추궁하였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포로들을 뒤늦게 이제야 보낸다는 말인가. 아국에 은혜를 입었으면 진즉에 갚아야 할 일이 아니던가.”

“태상황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사옵니다. 포로들이 풀려나기 전에 분노한 야선에게 뭇매를 맞아 뼈가 상하였기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요동으로 내려오지 않고 한양까지 움직인 것이냐.”

“요동 북방은 당시에 아수라장이나 다름이 없었사옵니다. 와라부의 병력과 건주 양위의 패잔병들이 사방을 돌아다니니 병약한 이들을 보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확인하기 힘든 변명이었다. 당시에는 아수라장이지만 지금은 멀쩡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결국 확인하지 못할 의문들과 어설픈 정보들이 전해졌을 뿐이다.

“태상황께 아뢰옵니다. 사람을 보내 품목을 알아봤는데 군마들이 모두 몸이 곧고 눈빛이 맑으며 젊은 녀석들입니다. 상등품 가운데서도 특상등이옵니다.”

환관이 귓속말을 하자 아직도 의심을 하던 정통제의 표정이 풀어졌다. 실수를 하더라도 조선은 조공국이 맞았으며 충성심이 대단하였다.

평상시라면 흠을 잡고 진상을 알아내려 노력할 것이지만 조공으로 보낸 군마가 너무나 질이 좋고 많았다. 결국 조선을 추궁하고자 하는 일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금성대군은 이런 상황을 틈타 다음 제안을 시작하였다.

“하오면 다음으로 드릴 말씀입니다. 요동 일대에 백성을 사민하시니 상국을 돕고 싶사옵니다. 비록 아국이 물산이 부족하여 보낼 것은 적지만 마경에 쓰일 하급마는 제법 풍족합니다.”

“하급마라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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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8월, 서유정의 집무실에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각지에서 추가로 보내온 공인들과 상인들의 목록이 나날이 쌓여갔고. 범죄도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농민이라면 농기구와 소가 전부니까 목숨을 위협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인들과 상인들은 모아온 재산을 악착같이 은자(銀子)로 바꿔서 요동까지 올라왔고. 곳곳에서 살인과 강도가 기승을 부렸다.

“총병관님! 사람 셋이 죽었습니다.”

“뭘 어쩌라고! 여기 마을이 있나 뭐가 있나? 흙 퍼먹고 살지 못할 놈들이 여기까지 왜 온 거지?”

경증(驚症)에 시달리던 서유정은 평소에 마시던 탕약을 들이켜고는 진정하였다. 새로운 연호가 쓰이는 마당에도 자신에게 내려진 명은 냉엄하기 그지없었다.

[요동 일대를 온전히 치수하여 능력을 보여라.]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 년 뒤에는 모든 지원이 끝나고 요동에서 생산한 곡식으로 자립해야 하는데 치수는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렇게 서유정이 욕을 퍼부으며 서류를 정리하는 와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북경에서 올라온 사신들이 총병관님을 뵙고자 합니다!”

“뭐? 조선? 조선에서? 내가 나가봐야겠다!”

혹시나 조선으로 돌아가는 사신을 통해 좋은 소식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런 헛된 기대를 품은 서유정이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금성대군이 인사를 하였다.

“명성이 자자하신 요동 총병관을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조선의 왕제인 금성대군이라 합니다.”

“바……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 말들은 무엇입니까?”

“다름이 아니고 황상께서 조선과 요동 사이에 마시를 허락하셨기에 끌고 온 말들입니다.”

“지금 말을 팔겠다고 하셨습니까?”

요동에는 아무 것도 없지는 않았다. 이백만에 가까운 백성들이 이주하였으며 태반이 농부였기에 개척 속도는 빠르다 못해 산이 사라지고 벌판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렇다 해도 벼농사를 지으려면 너무나 추운 고장이다.

잡곡 생산량은 제법 많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말 한 마리를 사려면 잡곡 40석은 지급해야 하는데 조선에서도 잡곡이 많지 않은가.

“하급마 한 마리 당 오승포 40필의 값을 매기겠습니다.”

“오승포 40필? 그런 것은 요동에는 없으니 잡곡으로 값을 치러야 하오.”

“잡곡이라도 괜찮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요동에서 마경을 한다면 병력이 늘어날 것이고. 병력이 늘어나면 방비가 튼튼해 질 것이니 이득이 아닙니까.”

“오승포 40필이면 쌀로는 12석이니 잡곡으로는 보통 25석 정도가 아니오.”

하급마의 값 치고는 싼 편이며 잡곡으로도 구매한다 하니 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군마로 쓰일 수 없는 말이니 무턱대고 사들이기엔 너무나 아깝다. 서유정은 계속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렸고 금성대군은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서유정의 생각대로면 요동 일대의 농민들은 누구나 우경 혹은 마경을 행한다. 말 가격치고는 제법 싸지만 매력적인 가격은 아니며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사지도 않을 것이다. 중급마여서 커다란 수레를 끌면 몰라도 하급마라면 작은 수레만 끌 수 있으니…….

순간 서유정이 무릎을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몇 필이나 파실 수 있으시오.”

“삼 년 동안 한 해마다 일만 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알겠소. 지금 당장 보내주시오.”

서유정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계획이 완성되었다. 공인과 상인들의 재산이 많으니 말을 강매하고 치수 사업에 동원하면 충분하리라. 하급마가 마경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효율이 나쁘더라도 공사에도 쓰일 수 있는 요긴한 녀석들이다

공인과 상인에게 말 값을 시세대로 은자 20냥씩 챙기고. 조선에는 시세보다 값싼 잡곡을 팔아치우면 된다. 중간에서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으며 요동 일대의 치수는 십 년이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조선에서 받아올 것은 하나 더 있었다.

“혹여나 힘 좀 쓸 줄 아는 자들이 있소?”

“힘 좀 쓴다 하신다면 누구를 필요로 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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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아사카가 요시마사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안평대군을 회화의 거장이자 스승으로 모셨으며. 안평대군은 원활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매년 교토를 방문하였다.

차와 향을 즐기는 어두운 다실(茶室)에 안평대군과 요시마사가 마주앉았다. 요시마사는 작은 화로에 담긴 숯불에 나무 조각을 조심스럽게 떨구었고. 한 줄기 새어드는 햇살 사이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향을 즐긴 요시마사는 붓을 놀려 백지 위에 글을 써내려갔다. 안평대군은 아직 일본어에 서투니 한자로 필담(筆談)을 나누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평대군이 필담을 나눈 종이만 하여도 어마어마한 값을 자랑하였다.

[역시 용연향(龍涎香)을 섞은 침향(沈香)을 능가하는 향이 없습니다. 문향(聞香 - 향도에서는 향을 듣는다고 표현한다)을 해보시니 어떠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향도(香道)에 대한 지식은 없습니다. 전조 시절에야 향도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오. 이러한 좋은 일을 조선에서는 모르고 있다니.]

당연히 안평대군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불교를 사랑하는 이라면 향도를 즐기기에 마련이었다. 고려 시대의 향도 문화는 아직까지 조선에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평대군이 즐기는 향은 정성껏 만든 선향(현대에서 쓰이는 향과 비슷한 종류)이니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요시마사가 태우는 향이 얼마나 값비싼 물건인지 알고 있기에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용연향은 용의 침이 바다에서 굳은 것(실제로는 향유고래의 위석)이니 부르는 것이 값이며. 침향은 머나먼 대월(大越 - 베트남)에서 유구를 통해 온 물건이었다.

[혹여나 조선에 향도를 전파하시려 하시면 이 침향이 어떻소?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녀석이지만 다른 이들도 만족할 것이 분명하오. 염려하지 말고 가져가시오.]

[그러한 귀물을 함부로 가져온다면 놀림을 당할 것입니다. 아국은 검소함을 추구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허. 이러한 일을 즐길 수도 없다니 참으로 아쉽소.]

다시금 조각이 떨어지고 향이 피어올랐다. 말 그대로 금을 깎아 향을 즐기니 안평대군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치의 극한이었다. 답답해진 안평대군이 탁자 위의 찻잔을 집고 차를 한 모금 넘겼다. 송나라 시절부터 전해진 찻잔이니 값을 매기기 힘든 물건임은 마찬가지였다.

[은은한 향을 듣고, 좋은 차를 마시며, 스승께서 친히 쓰신 글귀를 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소이다.]

[그렇게 칭찬하시니 제 부족한 실력을 정진해야겠군요.]

2년 동안 만나온 자였지만 이대로 가면 나라의 꼴이 엉망이 될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정치적 실권이 없다시피 한 요시마사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여도 소용이 없으리라.

향도로 시작된 만남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가 해가 지면서 마무리 되었다.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행위에 피로가 몰려온 안평대군이 숙소로 돌아가는 와중에 왜인들이 짊어진 가마가 멈추고 호위군관이 고함을 쳤다.

“거기 누구냐!”

“살려주시오. 제발 좀 살려…….”

골목에서 피투성이의 사람이 다리를 질질 끌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다들 영문을 모르고 있었지만 맨 앞에 있던 군관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렸다.

“타국에서 이러한 일에 휘말려 보았자 귀찮을 뿐이다. 어서 빠져나가라!”

“이보시오! 나는 이마가와(今川) 어르신을 모시는 직신(直臣 - 직속 신하)이오! 반드시 보답을 할 거요!”

가마가 쏜살같이 지나가 멀리 떨어지자 길거리에 섬뜩한 바람소리와 함께 단말마가 들려왔다. 군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안평대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음 날이 밝자 안평대군은 칸레이(관령) 호소카와를 면담하고자 하였고. 잠시 기다린 뒤에 면담이 시작되었다. 호소카와의 능글맞은 얼굴을 아랑곳하지 않고 안평대군의 붓이 백지 위를 가로질렀다.

[소란이 있었소.]

[저도 들었습니다. 불한당들이 난동을 부려 사람이 죽고 다쳤다 하더군요. 조선에서 오신 귀한 손님께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마가와라는 자를 찾던데 대체 누구요?]

필담을 위해 붓을 놀리던 호소카와는 잠시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풀어졌다. 이윽고 호소카와의 붓이 다시 움직였다.

[무뢰배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듣자하니 도당을 이루어 상인을 습격하기를 즐겨하였는데 조만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관령께서 이렇게 힘쓰시니 경도(교토)는 평안할 것이오. 내 괜한 염려를 하였구려.]

호소카와가 밖으로 나서자 안평대군은 이마를 감싸 쥐면서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작년부터 일본어를 능숙히 할 수 있었으며 이마가와의 정체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호소카와를 만난 것은 그저 확인을 위해서였다.

“준하(스루가 국, 현재 일본 시즈오카현 일대)를 주름잡는 금천(이마가와)씨의 직신을 죽인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관령의 일파라니.”

안평대군이 가진 정보로는 참담한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인삼 씨앗을 노려 한 나라의 수도에서 상대 가문의 신하를 암살한다면 조만간 일어날 일은 내란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좋은 풍경도 불길 속에서 잿더미가 될 것인가. 아니라면 살아남을 것인가.”

자신이 할 일이라고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남기는 것 하나였다. 왜국에 두면 불탈지도 모르는 것이니 조선에서 완성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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