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29화 (129/573)

< 2장 67화 - 귀환 >

군부인 한씨가 아직도 긴장으로 얼어있자 세종대왕이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소매를 걷었다. 환갑에 가까운 몸이지만 앙상한 뼈나 두툼한 살집이 아닌 단단한 팔뚝이 드러났다.

“입신체비를 행하며 소갈(消渴)로 고생하던 몸을 치유하였고. 같은 배에서 태어나 몇 년 전까지 난행(亂行)을 일삼던 양녕대군이 쇠한 지금에 와서도 나라의 일을 할 수 있게 하였느니라.”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예전에 눈치를 보아 입신체비를 궐하려 하였던 일은 빠졌지만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기껏해야 말을 타고 반 시진을 움직일 뿐이며 스무 근(12.8kg)의 대역기로도 온 힘을 다하여야 하였지. 그러나 계속 행하여 보니 안질이 사라지고 혈색이 달라지더구나.”

가끔 오는 서산군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입신체비를 감독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내관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몸을 유지하는 일에만 힘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군부인 한씨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삼한국대부인과 마찬가지로 사백 근을 목표로 삼아 정진하겠사옵니다.”

“삼대 운동이 몇 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입신체비는 쇠한 몸을 바로잡고 온전한 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필부(匹夫)를 바로잡는 일에만 쓰이는 것이냐?”

“그렇다면 대군 어른께서 원하시는 일은 여인을 위한 입신체비입니까?”

“이제야 답을 알게 되었구나.”

먼 길을 돌아왔지만 스스로 알아차리면 더욱 좋은 일이다. 너무 막중한 책무라 생각하였는지 종잡을 수 없이 눈동자가 흔들리는 군부인 한씨에게 세종대왕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듣기로는 근래에 들어 육식을 하여도 곽란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닭요리를 즐긴다 하지 않았느냐.”

“그렇사옵니다.”

“이미 입신체비를 통하여 몸이 변하였는데 무엇을 망설이느냐? 이러한 좋은 것을 남들에게 알려주려면 더더욱 정진해야 하지 않겠느냐?”

군부인 한씨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았다. 처음에는 엄살을 부렸고, 그 다음에는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어느 새 나태해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 새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크나큰 변화였다.

“내가 유를 보아온 것이 몇 년인데 그 아이의 속뜻을 모를 리가 있겠느냐. 지금 북방에 있지 않다면 너와 입신체비에 대하여 논할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오면 삼한국대부인이 저보다 수양이 깊으시옵니다.”

“정음을 통하여 글귀를 익힌다 하여도 기껏해야 사서삼경을 드문드문 읽어나가는 것이 전부이지 않느냐. 입신체비서를 입문하려면 적어도 십삼 경을 능숙히 논해야 한다.”

십삼 경을 논할 수 있는 학식이 빼어난 여인은 세상에 거의 없었으니 오롯이 자신의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막중한 일임은 분명하였다.

“입신체비서의 속편은 너무나 막중한 책무이옵니다.”

“그러니 천천히 행하여도 좋지만 꾸준히 행하여라. 수양대군이 입신체비를 만들었을 때에는 기본적인 방법만 알고 있었으며. 이십 년 동안 꾸준히 정진하였다.”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양대군의 입신체비서도 처음 삼 년은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저술하였고. 이후 세종대왕과 문종의 몸을 다스리면서 거듭 발전하였다.

실제로는 미리 기록하였던 보디빌딩 이론들을 천천히 풀어나가며 접목시키는 과정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학문적 완성 과정과 비슷하게 보였으며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상왕 전하! 입신체비를 모두 마쳤사옵니다.”

“가 보거라, 그저 꾸준히 정진하며 비어 있는 것을 채워나가면 충분할 일이니라.”

그날 이후로 군부인 한씨의 입신체비는 격렬하지는 않지만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차츰차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삼한국대부인의 방식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어찌하여 승의압(인클라인 벤치프레스)을 주로 하는 것이냐.”

“본디 가슴의 상부와 삼각근이 발달하는 방법입니다만. 혹여나 임산부의 몸으로 입신체비를 행할 적에는 필요하니 익숙할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가 뜻이 깊구나. 나 또한 주현이를 배었을 적에는 지아비의 뜻을 받아들여 의압 대신 승의압을 행하였느니라. 지금부터 익숙하게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입신체비라는 머나먼 길에 올라선 군부인 한씨는 더 이상 무게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단련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길을 찾아나갈 뿐이었다.

삼한국대부인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였다. 그렇기에 스스로 행하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채거나 타박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하였던 일과 수양대군이 가르쳤던 모든 것을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여성을 위한 입신체비가 수양대군이 없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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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났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1년 가까운 시간만 버렸으니 후회가 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에 한양으로 돌아올 기회라도 잡아둘걸. 그렇게 후회하였지만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時間)은 아직 한자가 없나?

이징옥이 하르빈에 계속 남아서 적의 도발을 막기로 하였으니 내가 이 행렬을 인솔하고 있었다. 당당한 모습의 이맹전을 돌아보니 후회가 다시 밀려왔다.

“이번 원정에서는 나라의 일은 몰라도 나 개인으로서는 소득이 없군.”

“대군 어른께서 심계를 부리시지 아니하였으면 올적합(兀狄哈 - 해서여진)을 손쉽게 다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9개월 가까이 북방에서 시달렸는데 얻은 거라고는 결과적으로 흑룡사를 지은 일 하나다. 타이순 녀석을 설득하고 요동 총병인 서유정을 설득한 일이 있지만 내가 아니라도 할 일이다.

외교 문제도 중요하지만 서유정을 설득한 뒤 요동을 경유해서 한양으로 돌아왔어도 충분했다. 결국 전쟁 중에는 장대(將臺)위에서 아군을 독려한 일 외에는 없다.

“다른 일은 그렇다 하여도 야선을 한 번 크게 패퇴시켜야 일이 편할 것인데 안타까울 뿐이구려.”

“저 또한 내심 야선을 사로잡을 기회를 생각하였으나 본대가 타격을 입자 바로 도주하더군요.”

객관적으로 보아도 에센이 입은 피해는 크다. 화포야 구하기 힘든 청동으로 만든 것이라 가지고 갔지만 명나라의 화포 기술자는 버리고 갔던 것이 그 증거다. 다시는 조선의 화약 공급을 막는 책략은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당분간 하르빈에 손도 대지 못하겠지.

“그러고 보니 명나라 화포장들은 어떻소? 한양으로 내려오다 병이 날까 염려되는구려.”

“심하게 구타당한 한 명은 숨을 거두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탈이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화포장들을 바로 요동으로 보내지 않는 이유? 생색내기이자 기술을 빼먹기 위한 방법이다. 나중에 가서 ‘아이고 알고 보니 화포장님들이네요.’ 하면서 돌려보내면 끝날 일이다.

여말선초의 혼란기에서 소실된 기술들을 하나씩만 빼와도 훗날 일이 편해진다. 당장 트리뷰셋을 만든 기술자들인데 어중간한 병기는 모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도 목숨을 구해준 조선에 어느 정도 보답할 기회라 여겼는지 순순히 따라오고 있다.

“그런데 동산(충샨)의 휘하에 있던 자들은 어찌 하여 도성까지 끌고 가시는 것입니까? 경원 일대에 두어 정충렬이 다스리게 하여도 충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두 다 심계가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기껏 해야 6천에 불과한 자들이니 만에 하나 난동을 부려도 쉽게 제압하지 않겠소.”

“하오나 건주 양위의 족장인 동산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습니다.”

충샨은 행렬의 중앙에서 감시를 받으며 묵묵히 따라올 뿐이었다. 차남과 삼남이 죽고 세력은 2할도 남지 않았으니 비참하게 몰락하였다. 모두 다 자신의 잘못이니 하소연할 방법도 없다.

“염려하지 마시오. 이미 함흥을 내려와 도성 인근에 도달하였는데 무슨 일을 벌이겠소?”

하지만 과거의 일은 상관없다. 귀부를 원하며 죄를 뉘우친다 하였으니 건주 양위에 소속된 여진족은 조선의 백성이 되었다. 형님에게 먼저 보내는 서찰은 이런 내용을 썼지만 형님이면 숨은 뜻을 충분히 알아차리겠지.

한양에 도착한 것은 1455년 4월 27일이 되어서다. 이전에 철령 전투의 승전 덕분에 1만 정도의 적을 쓸어버린 것은 대승으로 보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승리는 승리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제 달자는 별것도 아니구먼!”

“그런데 저놈들 왜 이리 이상하지? 올량합(兀良哈 - 야인여진)들이 왜 이리 침울해?”

“뭐긴 뭐겠어! 달자놈들이 박살나는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렸겠지!”

별 일이 아니기는 진짜 위험했는데! 하지만 더 이상 몽골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북방으로 전가사변을 당하는 백성들의 거부감이 조금은 줄어들겠지. 그렇게 행렬이 모이자 형님이 단 위에 올라서 공을 치하하였다.

“훌륭하구나. 북변의 새 영토인 하르빈에 와라부의 달자들이 침탈하였으나 이에 맞서 적을 패퇴시켰으며. 인근의 야인인 올적합을 포섭하였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로다.”

“전하께서 명하신 일이니 온 몸을 다하여 따를 뿐입니다.”

논공행상 또한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애초에 식읍이 많아봤자 권력 욕심이 없는 나에게는 쓸데없는 재산이나 다름이 없다. 다시금 삼백 결을 받았으니 구휼 사업 용도로 써야겠다. 이제 논공행상이 끝났으니 벌을 내릴 차례다.

“먼저 죄를 범한 자들은 올적합(兀狄哈)의 족장들이다.”

형님이 주변을 돌아보자 모두가 긴장했다. 처음으로 벌을 받을 자들은 어느 누구도 아닌 야인여진 족장들이었다. 별동대로 있으면서 한 몫을 하였으니 상을 받아야 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족장들이 앞으로 나왔다. 군령을 어기고 멋대로 전투를 벌였으니 승전을 하여도 잘못이다. 다들 무슨 일인지 알고 바닥에 머리를 박아대고 있다.

“도호부사(都護府使) 박중손이 당시에 말하기를 적진이 어떤 방책을 취할지 모르니 경계하고 기습을 막으라 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매복에 빠져 가까스로 탈주하였다 하였다. 이래서야 군령(軍令)을 따르는 이들이라 하겠는가?”

조선군이면 당장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는 초대형 실책이다. 그렇게 형님의 시선이 스치고 지나가자 다들 말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어디 변고(辨告 - 분명히 알리다)를 할 여지가 있다면 논하여 보거라. 이를 참작하여 받아들일 것이니라.”

“병법에 무지하고 배움이 부족하여 군령이 중요한 것을 몰랐습니다.”

“몰랐다? 그렇다면 어찌 하면 좋겠느냐. 혹여나 병법을 배우고 싶더냐?”

당연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배운 것이라고 해봐야 몸을 다루는 법이 전부이며 정음조차도 배우지 않았으니 앞길이 까마득하겠지. 하지만 형님은 이런 대답을 원했다는 듯이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배재당에 있는 학동들이 삼 년 이내에 배재당을 마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자식을 배재당에 보내서 아국의 언어와 풍속을 배우게 하면 훗날에 군령을 전달하기 편할 것이다.”

배재당이 뭔지 몰라도 정충렬을 비롯한 건주위 출신 여진족들에게 들은 바가 있었는지 족장들이 고개를 바닥에 박으면서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주상전하께서 아둔한 저희들에게 크나큰 은혜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하면 되었다. 다만 상은 내려줄 수 없으니 도성을 떠나며 아국이 지급한 모든 것을 반납하여라.”

크나큰 은혜는 무슨. 몇 년 뒤에 건주위 출신들이 장성한 아들들에게 문화적 흡수를 당하니 다음 차례로 야인여진을 선택한 것이지. 이제 벌을 받을 자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건주 양위의 족장 동산은 고개를 들고 죄를 낱낱이 고하라.”

동산이 고개를 들었지만 눈빛은 살아있다. 그런 당당한 모습과 반대로 충샨은 고개를 세차게 박더니 이마가 깨졌는지 바닥에 피가 물들기 시작했다.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일전의 요동의 전쟁에서 조선의 군대와 칸의 군대 사이에서 염탐을 하고 이득을 가로챘으며. 이로 말미암아 조선의 것이 저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죄를 네 스스로 알게 되었느냐. 아니면 다른 이가 가르쳐 주었더냐.”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충샨의 입장에서는 나름 완벽한 답을 제시했다 생각하겠지. 몽골은 조선의 동맹이고 해서여진은 복속했으니 조선의 것이 저의 것이 되었다는 말은 결국 훔쳐간 물건을 모두 조선에게 돌려줬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겠지.

“스스로 죄를 뉘우쳤으니 이 또한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복속을 청하였으니 달자들에게 포로로 잡힌 건주 양위의 야인들 또한 아국의 백성이 된 것이구나.”

“그, 그렇습니다!”

충샨이 이마에서 흙과 피를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행운이 찾아왔다 생각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내 예상이 맞으면 형님은 이미 서신을 받은 순간 계획을 세웠을 것이 분명하니까.

“백성은 모두가 귀한 것이다. 그러하니 내 대총 한에게 국서(國書)를 보내어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건주 양위의 야인들을 구명할 것이다.”

“전하의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으니 대대손손 충심을 다할 것입니다!”

“당장 대총 한에게 국서를 보내라. 건주 양위의 야인들에게 합당한 몸값을 논하여 이들을 아국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여라.”

대신들이 흠칫 하고 놀라 형님을 바라봤지만 형님이 손짓하자 아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합당한 몸값을 정하는 자리에서 반대하면 충분할 일이라 생각하겠지.

그렇게 개선식이 끝났다. 소수의 오이라트 포로들은 정충렬에게 분배되었고 아마 죽도록 고생하면서 북방을 전전하게 되리라. 논공행상의 마지막으로 주연이 열렸다.

“간만에 보니 기쁘구나. 북방에서 다시 거둔 승전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어사주를 내리겠다.”

어사주가 잔을 채웠다. 진한 소주의 향이 올라왔지만 내 공이 크지 않으니까 숙여야지. 형님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시작하였다.

“신이 북방에 나아가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였으니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한 일 보다는 근육을 허비하였겠지. 근손실이 제법 있었겠구나.”

술자리에 웃음이 퍼진다. 다들 입신체비를 맛보기라도 했으니 근손실이 무엇인지 입신체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으니까. 술이 한 순배 돌자 형님은 다시금 내 잔을 채워주시더니만 한숨을 쉬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를 북방으로 보내지 않아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아니옵니다. 명이 있으면 따르는 것이 종친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형님도 적잖이 후회하는 눈치이다. 이럴 때에는 좋은 이야기로 마음을 풀어줘야겠지.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지만 확인을 해야겠다.

“달자들의 왕 대총 한을 보았는데 술병에 걸려 몸이 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단 말이더냐? 일전에 내수린을 할 적에는 건장하였다 하는데.”

“하오면 건주 양위의 몸값을 낼 적에는 잡곡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쌀을 보내면 대총 한이 술을 만들어 마실지도 모를 일이 아닙니까.”

“값진 미곡은 필요도 없다. 설령 잡곡을 보낸다 하여도 이런 저런 것들이 섞여 있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질 좋은 잡곡을 보낼 이유가 있더냐.”

형님이 은근 슬쩍 웃으면서 대신들을 돌아보는데 대부분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고 있었고. 그저 이맹전이 무엇인가 알았다는 듯이 생각에 몰두하였다. 다시금 형님이 육전(肉錢)을 한입 삼키시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달자들은 예전부터 찻잎과 소금을 귀중히 여겼다. 하지만 아국에는 마소나 먹을 정도로 모래가 섞인 천일염이 있으니 이를 소금이라 팔면 충분한 일이겠지.”

“그렇사옵니다. 수레를 튼튼히 만들어 소금을 담아 보내면 충분한 일일 것입니다.”

“장창수의 창을 더 길게 만들 것이니 헌 창을 엮어서 수레의 밑판에 깔아두면 천일염이 새어나갈 일도 없어서 좋겠구나.”

내전을 부추기기 위해서 납치당한 건주 양위 여진족들의 몸값을 핑계삼아 지원을 할 예정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명분도 충분하고 투메드부의 평가를 시작으로 타이순의 세력이 점차 결집할 계기가 된다.

전쟁 중에 포로를 사고 파는 일은 자주 있으니까 추가하는 물건들을 조절하면 된다. 예를 들면 보리자루 속에 화살촉이 들어있거나 천일염을 나르는 수레 바닥을 분해하면 창이 되는 방법도 있겠지.

“귀부한 이들도 아국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시니. 크나큰 은혜에 동산이 헛된 마음을 버리고 감읍할 것입니다.”

“그렇지. 조만간 동산에게 험한 일을 시켜 충심을 가늠하여 볼 것이니라.”

청나라는 이제 없다. 충샨도 체면이 있고 구원받은 건주 양위의 여진족들도 더 이상 자립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조선에 복속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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