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28화 (128/573)

< 2장 66화 - 시집살이 입신체비살이(2) >

당연한 일이지만 어제의 입신체비가 끝났다고 오늘의 입신체비가 줄어들지 않는다. 가뜩이나 하체 운동을 한 다음날은 사람이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끄어억!”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거라!”

회축기(回蹴機 - 스피닝 툴)라는 녀석에 올라 다리를 올리니 삼일 전과 같이 격통이 몰려왔다. 저절로 이가 꽉 깨물리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으윽! 유순아 무명을 가져오너라.”

“벌써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턱에 힘을 너무 주어 치아가 상할까 염려되었기에 무명을 물었다. 그렇지만 고작 회축기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가장 심한 고통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음은 보행기에 오르실 차례입니다.”

“알고 있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울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어제 하체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 다시금 가슴과 어깨를 다뤄야 하니 내일은 팔의 힘이 풀리겠지. 다시 삼일 뒤에는 이런 고통을 겪을 것이다.

회축기에서 두 다경(30분) 다시금 보행기에서 두 다경 동안 몸을 움직이니 하체는 거의 풀렸다. 흠뻑 젖은 땀을 씻어낼 생각조차 없이 피곤하였지만 어떻게든 몸을 놀렸다.

“이것이 타락(駝酪 - 원시적 요구르트)이라 하였느냐.”

“대군 어른께서 이것이 답이라 하셨습니다. 만들다 상한 것이 많지만 드셔보십시오.”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청이나 유락 모두가 곽란을 일으키니 차선책으로 궁리를 하셨나 보다. 시큼한 맛과 텁텁한 냄새로 속이 역했지만 곽란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육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중에 큰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이대로는 도저히 아니 된다. 몸이 변하지도 않고 아직도 육질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오늘만큼은 대군 어른께 반드시 여쭤보아야 하겠구나.”

마침 궁궐에서 논의가 있으셨는지 대군어른께서는 점심인데도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선뜻 나서기에는 힘들었지만 궁금해서 참을 방법이 없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더냐. 현동이야 며칠 뒤에 돌아올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다른 것이 아니고 입신체비에 있어서 육질은 중요하다 하였습니다. 하오나 제 몸에서 가장 좋은 육질인 유청도, 가장 편한 육질인 닭 가슴살도 받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하여야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할 것이니 잘 보거라.”

잠시 뒤에 칠판을 가져오신 대군 어른께서는 소화력(消化力), 운동량(運動量), 그리고 저장(貯藏) 이라는 글귀를 적으셨다. 입신체비서에는 처음에 간단하게 언급되는 이야기이다.

“먼저 너의 몸이 어떠한 상황인지는 잘 알지 않느냐. 처음에 삼대 운동 70근이면 아녀자도 아니고 어린아이의 수준이나 다름이 없구나.”

“그렇습니다. 이는 제 몸에 근육이 적다는 뜻이겠지요.”

“근육만 적으면 큰 문제가 아니다. 모두 다 적으니 이러한 것이지.”

다시금 칠판 위에 글자가 쓰였다, 근육, 골격, 그리고 지질(지방)의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적히고 아래에 장기(臟器)라는 글귀가 다시금 적혔다.

“네 몸의 상황을 풀어보겠다. 지난 몇 년 동안 마음을 다스리고 지식을 쌓아나갔으니 활동이 적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근육이라는 글귀를 시작으로 지질과 장기라는 글귀에도 빗금이 그어졌다. 다시금 소화력과 저장에도 빗금이 두 개 그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근육이 줄어든다면 지질도 함께 줄어든다. 혹여나 네가 식욕이 왕성하여 탐식(貪食)을 하였다면 근육이 적게 늘어나고 지질이 많이 늘어나겠지.”

“그러한 일을 비만이라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비만인 자라면 편하다. 근육량이 부족하긴 하지만 탐식을 하니 장기의 기능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험난한 일이지만 처음에 충분한 체력 운동(유산소)으로 지질을 불태우고 근육이 성장하며 쉬이 나아갈 수 있다.”

국대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몸이 불어났는데 입신체비를 행하자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예전의 몸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물어볼 것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하오면 저의 몸에서 어떠한 징후가 있기에 장기도 쇠하였는지 아시는 겁니까?”

“네가 마시는 미수(미숫가루)에는 꿀이 들어가지만 달게 느껴진 적이 없지 않느냐? 이로서 네가 단 맛을 즐긴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비수가 박혔다. 지금까지 단 음식을 즐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하여 보니 유순이는 남은 미수가 달달하여 맛있다고 들이켰던 것이다. 그만큼 단 음식을 좋아하고 있었다.

“단 맛은 사람의 기가 쇠할 적이나 중병으로 장기가 쇠한 자에게 좋다. 하지만 너의 경우에는 장기가 쇠하였으니 단 맛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저는 알게 모르게 장기를 쇠하게 하였습니까?”

“그렇다, 활동이 적으니 장기가 많은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쇠해지며, 몸의 양분을 담아두는 지질(지방) 또한 줄어들은 것이다. 장기도 쇠하고 지질도 없으니 단 음식을 즐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그런 말을 하는 대군 어른께서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아무래도 자신과 같은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으신 것이 아닐까.

“하오면 어찌 하여야 합니까?”

“방도가 없으니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하여라. 입신체비의 시작은 몸을 차츰차츰 불려나가는 일인데 틀이 작으니 불어나는 양이 적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

결국 더욱 노력하라는 말만 하였으나 대군 어른과 같이 뛰어난 자도 방법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군어른과 걱정스러운 눈을 보자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안사람이야 몸이 활달하여 입신체비를 시작할 적에 문제가 없었거늘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나도 입신체비를 행할 적에는 매번 아프고 그만 두고 싶더구나.”

“아프시다니요?”

“근육통은 매번 똑같이 느껴지고, 속에서는 신물이 올라오지. 당연하지만 다음 날 끙끙 앓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 참을 뿐이다.”

생각하여 보니 근육이 자라면서 아픈 일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근육이 적다. 근육이 많은 자는 아플 곳이 많으니 더더욱 아프지 않을까.

“무얼 그렇게 생각하는 게냐?”

“아닙니다.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어 투정을 부렸습니다.”

“투정이라니? 나는 그저 조언을 하였을 뿐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거라.”

대군 어른은 참으로 마음이 깊으신 분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벼락같은 꾸중을 들어도 마땅한데도 저렇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감싸주시다니. 인사를 드리고 안마당으로 향했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보다 근육량이 많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고통은 훨씬 더할 것이 분명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국대부인이 아프다고 한 적이 있던가? 없었다.

“오늘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졌구나.”

“제가 아직 미숙하여 투정을 부렸습니다.”

조심스럽게 몸을 풀면서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았다. 어차피 입신체비를 행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겪는 통증이다. 자신만 아프고 힘들지 않다.

“언제나 무리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정진하여야 한다.”

“제가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부족한 만큼 더욱 몸을 다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박압(숄더 프레스)을 소역기로 행할 것이다.”

한 손에 네 근(2.56㎏)의 역기를 머리 위로 올리자 다시금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정도는 받아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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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난 1454년 8월. 배재당은 여전히 한가하였다. 왜국에 다녀온 수양대군이 다시금 북방의 하르빈에서 나라의 일을 하러 떠나간 덕분에 손님도 자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당에서는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보따리를 풀고 있는 도원군이 삼한국대부인에게 큰 절을 하였다.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 가까이 금석문을 찾아 밖을 돌아다닌 것이다.

“지난번에는 충주를 다녀오더니 이번에는 단양을 다녀왔구나. 지아비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은 네가 가장이 아니더냐. 일은 중요하지만 가장의 자리 또한 중요함을 잊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어머니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도원군은 사방에 사람을 보내 금석문(金石文 - 기록이 남겨진 비문)을 찾는 일을 열정적으로 행했다. 재산이야 충분하였고 가장인 수양대군 또한 아들의 일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도원군이 짐을 모두 정리하고 탁본을 대청마루에 늘어놓았다. 입신체비를 행하고 있던 군부인 한씨가 의복을 갈아입고 달려 나왔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렇소. 이번에는 성터를 파면서 다녔는데 다행이도 팔주야 만에 소득이 있었소. 이 탁본을 보시오.”

“이전의 비석과는 다르게 글자가 세세하지 못하고 팔백 자가 아니 되는군요.”

“아무리 보아도 신라의 것 같은데. 아직 학식이 깊지 못하여 예전의 글자는 읽기 힘들어 뜻을 찾아내지는 못하였소.”

한문을 드문드문 읽어나가는 실력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삼국 시대의 한자 표기와 조선 시대의 한자 표기는 완전히 다르며. 각 국가별 시대별 표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부가 고개를 맞대고 차근차근 비문을 읽어나갔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소?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이 한 달에 가까운데 부인께서는 도통 늘어나지를 않는구려.”

“무엇이 말입니까?”

“근육 말이오. 달포동안 자리를 비웠으면 차도가 있어야 하지 않소?”

“여인의 몸인지라 쉬이 근육이 늘어나지 않나 봅니다.”

도원군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군부인 한씨는 최근 들어 입신체비를 조금씩 줄였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몸을 유지할 정도로만 차츰차츰 줄여나가고 있었다. 굳었던 맹세는 일 년이 지나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자친께서는 불공을 드린다 하셨는데 불공은 빠짐없이 드리고 있소?”

“물론입니다. 대군 어른을 무사(無事)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내의 말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도원군은 입신체비를 시작하고 2년조차 넘지 않았으니 명확하게 짚어 나갈 방법도 없었다. 몸이 불어나는 것과 다르게 지식은 부족하니 배움의 길은 멀고도 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 국대부인이 나서 입신체비를 독려해야 하지만 수양 대군의 무사를 위하여 불공을 드리고 있었으니 자신의 입신체비를 행하기도 바빴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자 손님이 찾아왔다.

“도원군 나리! 사, 사, 상!”

“무슨 일이기에 소란이더냐? 상세히 말해 보아라.”

“상왕전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입신체비장에서 스스로 입신체비를 행하던 도원군은 대역기를 집어 던지려고 하였으나 세종대왕의 발걸음이 더 빨랐다. 세종대왕은 몸이 땀에 절어 있는 도원군을 보면서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당연히 예의가 아니었다. 선비는 언제나 의관을 정제하고 있어야 하는데 얇은 입신체비복 상의와 짧은 입신체비복 하의면 무례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세종대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입신체비를 행하니 네가 대단하구나. 처음 보았을 적에는 궁궐에서 소학을 외우던 어린 아이었는데 어느 사이에 이렇게 대장부가 된 것이냐.”

“상왕전하께서 내려주신 은덕이 크나크시기에 이루어진 일이옵니다.”

“그러한 말은 농이라도 하지를 말거라. 다름이 아니고 네가 얼마 전에 탁본한 비석을 알게 되어 예까지 왔느니라.”

세종대왕은 크게 웃으며 도원군의 손을 잡았다. 얼떨결에 어수(임금의 손)를 맞잡게 되었으니 도원군은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었다.

“아, 아, 아니옵니다. 종친의 몸으로 한량과 같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금석문을 탁본하였을 뿐인데 제가 부끄러운 일을 하였사옵니다.”

“처음에는 전조의 금석문이라 보았지만 해독하여 보니 천 년 전의 고려(고구려)에서 만든 금석문이었다. 가지고 있던 사서(史書)에 없는 말이 여럿 있었으니 참으로 기쁘구나.”

도원군이 발견한 비석은 여러 개가 되었지만 지난번에 발견한 중원 고구려비에 집현전이 발칵 뒤집혔던 것이다. 네 면에 빼곡하게 박힌 글자는 현대와 다르게 거의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니까.

그렇게 도원군이 고개를 들지 못하자 세종대왕은 나아가 대역기를 점검하였다. 잠시 셈을 하던 세종대왕이 놀라서 도원군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의압(벤치 프레스)을 행하는 것 같은데 대역기가 일백 근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아직 제가 미숙하기에…….”

“역산(逆算)하여 보니 삼대 운동이 적어도 600근이 넘어섰구나. 입신체비를 행한지 일 년이 조금 지났는데 이러하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 안채에서 삼한국대부인과 군부인 한씨가 달려와 조신하게 인사를 하였다. 모두가 불공을 드리던 와중에 갑자기 방문하였기에 의복을 갈아입을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상왕전하를 뵙사옵니다.”

“오랜 간만에 보니 기쁘구나. 하지만 모두 염려하지 말거라. 하르빈이 머나먼 곳이라 하여도 주상이 함께 보낸 자는 상장군 이징옥이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사람들이 길게 읍하자 세종대왕의 시선이 군부인 한씨에게 닿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에 세종대왕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좌찬성 한확의 여섯째 여식이 아니더냐. 이번 혼인에 중매를 보았으니 어떠하더냐. 가풍(家風)이 힘들지 않더냐?”

“그저 힘쓰고 있을 뿐이옵니다.”

“힘쓰고 있다니. 잠시 손을 보여주지 않겠느냐.”

군부인 한씨의 손을 한참 동안 바라본 세종대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하던 세종대왕은 삼한국대부인을 보면서 말했다.

“아가, 예전에 경회루를 수리할 적에, 아직 군호가 진양(晉陽)일 시절에 머물던 일이 기억나는구나. 그때에 마셨던 제호탕(醍醐湯)이 그립구나. 지금 올릴 수 있겠더냐?”

“물론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옵소서.”

삼한국대부인이 길게 읍하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상왕께서 마시는 것을 함부로 하인에게 시키면 심한 무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대부인이 자리를 비우자 세종대왕은 어쩔 줄 모르는 도원군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입신체비를 궐하려 할 셈이냐? 아무리 상왕이 왔다 하여도 입신체비는 쉬이 궐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내가 허락할 것이니 당장 입신체비를 행하여라.”

“네 전하!”

우렁찬 기합과 함께 다시금 입신체비가 시작되었다. 세종대왕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더니만 다른 평대에 앉아서 도원군의 모습을 지켜보며 군부인 한씨에게 말을 걸었다.

“자세가 참으로 훌륭하다. 입신체비는 그만큼 훌륭한 일이니 궐하면 아니 되는 일이지. 그렇지 않느냐?”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렇다. 하지만 입신체비를 행한 지 일 년이 지났다 하는데 어찌하여 네 손에는 굳은살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냐.”

소스라치게 놀라는 군부인 한씨에게 세종대왕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역기를 들면 생기는 손가락 맨 아래에 생긴 굳은살과 손바닥 한복판에 생긴 굳은살이 도드라졌다.

“입신체비를 과하게 행하지 않아도 꾸준히 행하면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이렇게 굳은살이 생기고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네 손의 굳은살은 희미해지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더냐.”

“송구하옵니다. 근래에 들어 나태해져 입신체비를 소홀히 여겼사옵니다.”

“그러한 일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입신체비를 정리함에 있어 수양대군이 얼마나 기대를 하였는데 힘을 쓰지 않으니 실망이 크구나.”

군부인 한씨의 눈이 요동쳤다. 대체 입신체비가 무엇이기에 상왕전하마저도 이렇게 좋아하시는 것인가. 그저 몸을 다스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한숨을 내쉬더니 12근(7.68㎏)의 대역기로 비막(암 컬)을 몇 번 행하고 내려놓고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다. 아마 수양대군의 말을 듣고 입신체비를 행하지 않았다면 상왕으로 있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십 년 전에 소갈이 악화되어 사경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전하께 소, 소갈이 있으셨단 말씀이시옵니까?”

“그렇구나. 좌찬성이 함구하였으니 대신들 모두가 함구하였음이 분명하구나. 20년 전만 하여도 삶을 사는 것 같지가 않았느니라.”

무덤덤한 세종대왕의 말과 달리 군부인 한씨는 어쩔 줄을 몰랐다. 입신체비는 효도를 위한 마음가짐을 정리한 것이라 하였지만 이런 이야기는 도저히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수양대군이 저술한 입신체비는 오롯이 필부(匹夫)라 할지어도 효행을 몸으로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미 세종대왕은 수양대군의 생각을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혼기가 지나가기 직전인 한확의 여섯 째 여식과 다시금 혼담을 맺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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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동이, 지금의 도원군이 찾아낸 비석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해석완료

충주 고구려비 - 해석중

단양 신라 적성비 - 신규

입니다. 모든 비석은 현대에 발견되기 이전 물건들이라 파손이 매우 적으며 글자가 대부분 살아있는 녀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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