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25화 (125/573)

< 2장 63화 – 아원(亞元) 한명회 >

조선의 과거시험의 마무리는 문과라고도 불리는 대과이다. 얼마 전까지 대과 입시 자격은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강을 마친 자들만 선발하였으나 제도가 변하였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이들도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배재당의 사람들 가운데 몸살을 앓은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초시에 통과하였으며 코앞으로 다가온 시험에 몸살을 앓았다.

그러한 와중에 간만에 배재당에 온 서산군은 250근의 대역기로 공좌(스쿼트)를 하였고. 배재당의 사람들 모두가 서산군의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허어 세상에, 250근이어서 5회를 행하실 줄 알았는데 벌써 11회, 아니 끝나셨으니 12회라네.”

“그렇다면 실제 공좌는 400근에 가까우니 삼대 운동이 일천 근을 넘으시는 것인가? 서산군 대감께서도 결국 진양근을 넘어서셨군?”

삼대 운동 일천 근을 넘어섰음을 증명하였지만 서산군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온 몸에서 흐르는 땀을 닦은 서산군이 마침내 찡그리는 표정을 짓자 못한 이들이 나섰다.

“우환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네, 얼마 전에 근손실의 징후가 보였다네. 몸이 서서히 쇠퇴하는 조짐이 보여서 말이야.”

“아이고 세상에!”

수양대군이 말하기를 서른다섯이 지나면 몸이 굳어져서 서서히 근육이 줄어들고 마흔이 되면 근손실을 피할 수 없다 하였지만 서산군은 나이보다 조금 이른 근손실이 시작되었다. 서산군은 애써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무엇을 하고 있나. 피할 수 없는 훗날의 근손실이 생기기 전에 근육을 더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시금 입신체비에 불이 올랐다. 모든 이들이 서산군과 함께 각자 입신체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입신체비를 마친 모두가 정리운동을 시작하였다. 배재당의 화제는 역시나 닷새 뒤로 다가온 대과 복시였다.

“초시는 쉬웠지, 초시야 어차피 생원시를 통과할 정도면 쉬이 넘어갈 수 있으니까. 대군 어른에게 배운 자들 가운데 복시를 통과한 이가 몇이나 되겠나? 여섯 명이 전부라네.”

“복시가 무엇을 묻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면육연화기억술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김시습이 마무리 운동으로 천천히 몸을 풀어가면서 물어보았다. 배재당에 들어올 적에 통통한 몸은 이제 튼튼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하진 않다네. 그저 뛰어난 문장을 계속, 많이 읽어야 답이 보이는데 어찌 하겠나?”

“하지만 복시의 항목은 세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논(論)이 나온다면 할 만 하겠지만 논은 거의 나오지 않지. 주로 출제되는 주제는 표와 부 두 가지인데 이게 가장 골치라니까.”

논(論)은 주어진 주제에 대한 논평이다. 표(表)는 황제에게 올리는 글이니 격식에 맞는 필체를 요구하는 특수 문서다. 마지막으로 부(賦)는 문학적인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문학과 비슷하다.

“일전에 효령대군 어른께서 힘을 쓰신 덕분에 다른 대감들의 답안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논에 관련한 답안은 거의 없더군요.”

“그렇지? 결국 표와 부가 대부분인데 이런 일에는 근면육연화기억술처럼 완전히 외우는 일이 능사가 아니야.”

결국 배재당을 비롯한 수양대군의 제자들은 대과 복시에서는 확실한 이득을 거둘 수 없었다. 그들이 잘 하는 일은 책을 확실하게 외우는 일이지 많은 책을 읽는 경험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었다.

최 생원은 허리를 풀기 위해 천천히 몸을 굽히면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는 수양대군의 첫 제자이니 대과를 두 번이나 보았으며 이번이 세 번째였다.

“지난번에는 근손실을 감수하면서 보름 동안 소동파와 관련된 서적을 모조리 외웠는데 응용할 방법을 찾지 못해 낙방하고 말았지.”

“설마 구소수간도 포함된 것이 아닙니까?”

“아무렴. 수많은 내용들을 넣었음에도 매끄러운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다네.”

그런 말을 하는 최 생원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렇게 마무리 운동이 끝나가는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일세! 그간 잘 지냈는가!”

“효령대군 어르신! 별래무양 하셨습니까?”

“아무렴, 그간 잘 지냈는가? 아이고 요 녀석들! 점점 더 튼튼하게 자라는구나!”

지난번의 내수린 사건 이후 배재당의 후원자가 된 효령대군이 반갑게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 또한 익숙하였는지 효령대군의 주변에 서서 길게 읍(揖)하며 예절을 표시했다.

“불쑥불쑥 자라니 내 마음이 더욱 놓이는구나. 오늘은 힘을 써서 유락(乳酪 - 치즈)을 조금 가져왔으니 아이들과 친한 매월당 자네가 나누어 주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오냐! 이제 예절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니 입신체비를 할 준비를 모두 마쳤구나. 나도 예순이 다 된 몸으로 입신체비를 하였는데 십 년은 건강해졌단다.”

효령대군은 시원하게 웃으면서 소매를 걷고 이두박근에 힘을 주었다. 입신체비사라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환갑을 앞둔 노인으로 볼 수 없는 몸이었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마친 효령대군은 뒤로 돌아서 다시 외쳤다.

“이번 대과에 응하는 이들은 앞으로 나오게. 요긴하게 쓰일 특효약이라네. 이건 유청이고.”

“특효약이라 하신다니. 배움에는 어떠한 약도…… 이건 엿이 아닙니까?”

“그렇지. 마음을 가라앉히는 약재를 잔뜩 넣고 고아낸 엿이지. 입신체비서를 읽었는데 머리를 쓰는 일에는 단 것이 좋다면서?”

그렇게 배재당 사람들에게 유청분말과 엿을 나눠준 효령대군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몸을 푸는 둥 마는 둥 하는 서산군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서산군은 효령대군을 반갑게 맞이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만 하였다.

“혜(譿)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꾸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종친 사이에 벌어진 일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배재당의 사람들은 다시금 자신의 일에 집중하였다. 이제 아이들의 몸이 자라서 관례를 올릴 정도니 입신체비를 가르칠 시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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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시가 끝났다. 시험장을 나서는 유생들은 대부분 내일 발표될 합격자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의 탈락을 확신하는 자도 있었고 합격을 확신하는 자도 있었다.

“압구형님!”

“매월당 자네도 마찬가지군! 세상에나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었나?”

김시습과 한명회 모두가 합격을 확신하였다. 이번 시험은 배재당 출신에게 가장 좋은 논(論) 이었으며. 얼마 전부터 유심히 보았던 서적은 형벌에 관련된 서적이어서 더욱 쉬웠다.

“제가 뭐라 하였습니까? 형무소라 하여 죄인을 벌하는 곳이 평양에 생겼는데 형벌과 관련된 주제가 나올 가망성이 크지 않았습니까.”

“동생 덕분에 득을 보았네. 큰 이변이 없다면 무난하게 전시까지 나아갈 수 있겠어.”

육조에서 입신체비를 도와주면서 실마리를 얻었다. 형조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모두 형무소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기에 과감하게 주제를 잡았고. 결국 합격을 확신할 정도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다.

“설령 여기에서 떨어져도 경험으로 삼도록 하지요.”

“어허!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분명히 합격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발표된 합격자 명단에 배재당 출신이 셋이나 있었다. 다시금 이틀이 지나고 전시(殿試)가 시작되었다. 성균관에 모인 전시를 보기 위한 준비를 마치자 주제가 적힌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동시에 시험장에 탄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책문과 너무나 다른 세 개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전의 이야기도 아니며 국책에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다. 조선의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책문이 세 개나 나오다니!”

“대체 이 문제는 뭐야!”

감독관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세 두루마리를 멀찍이 떨어트려 보기 쉽게 하고 묵묵히 시험 방식을 이야기했다.

“셋 가운데 하나를 택하며, 주제를 정하면 큰 필체로 명(明), 왜(倭), 야(野)라고 기재하도록.”

“평소의 책문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주상전하의 뜻이니 조용히 하게나.”

김시습은 마음을 가다듬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시습은 여진족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으며 여진족의 말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심지어 사적인 자리에서는 큰형으로 불릴 정도였다.

침착하게 여진족 아이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기면서 천천히 붓을 움직였다.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이었기에 붓놀림에는 멈춤이 없었다.

[야인들은 수많은 부족들이 저마다 혈연으로 묶인 집단입니다. 이러한 이들을 함부로 한 틀에 묶어두려 하면 결국 서로를 질시하며 다툴 것이 분명합니다. 교화함에 있어 이들의 뿌리를 남겨둔 채로…….]

김시습은 배재당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를 떠올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야인으로 보아서 낮춰 보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뿌리를 확실히 알고 있으며 풍속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무턱대고 교화만을 우선한다면 훗날 반발이 일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문장에는 능숙하지 못하였지만 누구보다도 생생한 경험이 김시습의 붓을 이끌어 나갔다.

“왜국이 뭐고 야인은 또 뭐고 나머지는 도저히 답이 없는데.”

한명회는 중얼거리면서 다시금 창백한 종이를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명(明)이라는 글자를 적은 이들이 거침없이 붓을 놀리는 것이 보여서 붓을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인에 대한 이야기는 김시습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해도 방법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뜻을 정했으나 길이 보이지 않아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중얼거리지 말고 조용히 하게!”

잠시 고개를 돌려 답안을 베낄 생각도 하였지만 그런 멍청한 짓은 과거의 자신도 하지 않을 일이다. 잠시 동안 쓸데없는 생각이 한명회의 머릿속을 채워버렸다.

‘전조 시절에는 팔관회가 열렸지. 대식국을 포함하여 각지에서 수많은 사절들과 사절을 따라온 상인들이 모였는데 상아, 비단, 호박, 유황, 수은과 같은 진귀한......’

권람의 이야기를 떠올리자 한명회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효령대군이 준 엿을 꺼내 한 입 가득 물었다. 두뇌가 활발히 움직이면서 엄청난 당분을 요구하였으니 엿이 거침없이 뱃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전조인 고려 시절에는 다양한 나라와 교류를 하였는데 어찌하여 왜만 논한단 말인가. 당시에 물산들은 누가 아국으로 보낸단 말인가? 생각이 정리되고 붓에 먹을 충분히 묻혔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붓이 떨어지고 문장이 완성 되었다.

[왜국과의 교역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답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를 낸 임금의 뜻을 반박하는 문장이 시작되었다. 어느 누가 고려시절의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꺼낼 수 있단 말인가? 한명회는 머릿속을 쥐어짜내면서 답안을 완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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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殿試)는 임금의 질문에 답하는 시험이다. 개중에 잘못된 답을 제시하여 볼 가치가 없는 이들 외에는 모든 답안을 임금이 확인하며 순위를 매긴다.

한 번씩 읽어본 대신들이 차곡차곡 답안을 쌓아나갔다. 수많은 글귀를 읽자니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특히나 이번 시험은 일반적인 증광시가 아니었기에 더욱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자는 대체 무엇을 먹고 이런 글을 썼는가?”

“왜인은 통제해야 한다, 통제는 근육이다, 나는 근육을 통제했다, 왜인도 근육하면 충분하다? 긴장에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나 보군요.”

“배재당 출신이라 하였건만 전시에서 이러한 실책을 저지르다니. 육체와 정신은 비례하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이 답안은…….”

아침나절에 시작한 채점은 점심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대신들은 볼만한 답안을 간추려서 한아름 들고 문종에게 향했다.

“전시를 본 33인 가운데 22인이 명을, 6인이 왜국을, 5인이 야인에 대하여 답하였습니다.”

“그렇겠지. 예상보다 왜국과 야인에 대하여 답한 자가 많군.”

“다시금 답안을 추려내어 11개를 선별하였습니다. 하온데 한 답안이 문제입니다. 저희가 판단할 수 없는 일이어서 전하의 고견을 따를 뿐입니다.”

“주제에 맞지 않다고? 그런 행동을 하다니 대체 누구인가?”

그런 말을 하면서도 관심이 생겼는지 문종은 여러 사람이 돌려 봐서 조금 구겨진 답안을 들었다. 답안을 작성한 자는 문종도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한명회라?”

“그렇습니다. 저희도 한 번씩 읽어 보았지만 논리는 흠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다만 전하께서 친히 작성하신 책문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습니까?”

“개성의 궁지기로 일하다가 상왕께서 천거하여 배재당에서 일하는 자로군.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누구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개성에서 쓸데없는 마음을 먹었다가 반쯤 누명을 쓴 자이다. 얼마 전 죽은 황희가 말년에 아꼈던 자인데 어떤 답을 제시하였단 말인가? 답안을 살피던 문종은 눈을 부릅뜨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논리 정연하지만 주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허황된 이야기이니 저희도 어찌 할 방도가 없었는지라.”

“오히려 충분하다네. 세상을 널리 알지는 못하여도 깊게는 알고 있군.”

한명회의 답안을 내려놓은 문종은 다른 답안들도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전시까지 올라온 사람들이기에 대부분 괜찮은 답안을 내놓았지만 문종의 눈에는 너무나 부족한 내용만 보였다.

“야인을 주제로 삼았는데 아직도 4군과 6진을 논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직 아국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도 모르지만 문장은 빼어났던지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유학을 배운다 하여도 세상일은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자를 올릴 수는 없지.”

혀를 차던 문종은 다음 답안을 보고 마음이 풀렸다. 김시습 또한 훌륭한 답을 제시하였다. 자신이 어느 정도 우려하고 있던 사항을 알고 있는 자이니 북방으로 보내면 훌륭한 성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명국을 논한 이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자는 풍천 본관의 임원준(任元濬)으로 할 것이며. 왜국을 논한 이는 청주 본관의 한명회, 야인을 논한 이는 강릉 본관의 김시습으로 할 것이네.”

세 명은 정해졌지만 순위를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다시금 답안을 두 번이나 꼼꼼히 읽어본 문종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명회의 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전조 시절에는 사방으로 교류하였으나 나라가 도탄(塗炭)지경에 빠지며 무용이 되었습니다. 태조 대왕께서 나라를 바로잡았지만 교류가 끊기었고. 왜인들이 이문을 노려 삿된 행동을 벌이니 이문을 크게 얻고 있습니다. 하오니 전조보다 앞서 나가도록 대식국으로 나아가며 직접 교역을 하면 충분한 일입니다.]

“전하?”

“걱정하지 말게. 너무나 훌륭한 답이기에 그렇다네. 아무렴 왜인들이 물자를 가져오면서 값을 배로 불리는 일을 서슴지 않을 것인데 아주 정확하게 짚었군.”

다른 누구도 아닌 한명회가 이러한 답을 내놓았으면 요긴히 써도 될 인재이다. 사람은 아무리 청렴결백해도 변할 수 있다. 특히나 머나먼 타국으로 나아가 교역을 하는 이라면 반드시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명회는 엄청난 결점을 지닌 자였다. 지금이라면 사고에 불과하지만, 훗날 높은 관직에 오르면 무덤을 도굴한 사건은 파직을 논할 정도의 약점이 되리라. 그리고 이 약점을 아는 자는 세상에 많지 않아서 더욱 가치가 있었다.

“한명회는 큰 욕심을 부리지는 못할 자라네.”

“전하께서 혜안을 보이시니 훌륭하오나 너무 믿지는 말아 주십시오.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게나. 하지만 김시습과 한명회 모두 문장이 빼어나지는 않군. 장원으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실력만 따지면 임원준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집현전에서 일하던 와중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어느 정도 배려는 해야지. 문종의 뜻이 정해지자 대신들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오면 장원은 임원준으로 하실 예정이십니까.”

“그렇지. 명국을 상국으로 모시며 행동하는 방안에 대한 심려가 깊은 자이군.”

원하던 인재가 둘이나 손에 들어왔다. 임원준 또한 문장이 바르고 시국을 정확히 보고 있으니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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