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59화 – 불타라 활활(6) >
아직 얼어있는 송화강의 곳곳에서 개미떼처럼 적들이 넘어온다. 녹아가는 얼음을 한 곳에서 도강하는 멍청한 짓을 벌이지 않고 사방에서 도강(渡江)을 시작하였다.
요새에서는 송화강 근처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안전한 거리까지 나온 이징옥과 함께 적진을 천리경으로 살피고 있었다.
“놈들이 잔가지와 통나무를 올려 얼음 위를 보강하는 것 같군.”
“얼음이 완전히 녹지도 않았으니 충분히 효험을 보일 것입니다. 저러한 일을 막으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요.”
“우리의 기병들은 뒤에 있군. 함부로 나서지 않으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저 정면에서 도강하는 적만 막는 시늉을 해야지요.”
한 무리의 조선 기병들이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자 적들도 도강을 멈추고 바로 돌아갔다. 함부로 강 건너로 넘어갈 방법도 없으며 본진을 비울 수도 없다. 우리의 병력은 2만에서 조금 모자라며 기병은 많이 모았지만 8000기에 불과하다.
“녀석들이 간격을 멀리 두지 않는군. 고의로 그러는 것인가?”
“우리가 허점을 보이면 포위하여 단번에 때려눕힐 욕심이 남아있나 봅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치돌(馳突 - 돌격)에 능숙한 창기병이 4천에 다다릅니다. 본디 치사(馳射 - 마상 사격)는 힘이 약하니 갑주를 쉬이 뚫지 못합니다.”
“그렇소. 하지만 제대로 된 보급이 오려면 5월 까지는 기다려야 하니 신중을 기해 주시오.”
손해는 적을수록 좋지만 아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가장 안타깝다. 그러한 점에서 전장을 읽는 이징옥의 시선은 누가 보아도 조선 최고의 장수라 할 수 있었다. 계속 천리경으로 적진을 보는데 적이 본진을 남겨 두고 있었다.
“강 너머에 본진을 남겨놨군.”
“자신들이 넘어온 방법대로 아국의 기병이 넘어갈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천기(天氣 - 기상)는 아직도 아국의 편입니다.”
“놈들이 어떠한 수를 쓸 것인지 알겠소?”
“운제(雲梯 - 공성용 사다리)가 보이는 것이. 운제를 걸어 해자와 석벽을 넘을 것 같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몽골의 공성기술은 크게 3가지이다. 공성무기, 참호와 갱도를 통해 적의 성벽을 무너트리는 방법, 그리고 해자를 매우고 사다리를 걸어 올라가는 방법이다. 사실 이 시대의 기술이라고 해봤자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갱도를 파는 방법은 주변에서 잡아온 포로를 이용해서 노동력을 채운다. 그렇지만 인근의 해서여진의 수는 적고 대부분이 머나먼 남쪽으로 도망쳤다. 결국 갱도를 파는 방법은 쓰지 못한다.
당연히 오이라트에 공성 병기는 만들 기술조차 없다. 기껏해야 구식 투석기를 쏘겠지만 우리에게는 화포가 잔뜩 있으니 조준 사격으로 박살내면 충분하다. 화약을 강탈하여 화포를 쏘려는 생각이지만 기껏해야 가짜 화약을 얻어내고 화포가 무용지물이 되겠지.
“볼 것은 다 보았소. 돌아가서 군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합시다. 적들의 도강을 완전히 막을 방법은 없지 않소.”
결국 전쟁이 시작되었다. 가급적이면 여기서 오이라트의 체면을 마음껏 갉아먹고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방어 체계는 악랄하기 그지없으니 충분히 효과를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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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마찬가지로 오이라트의 본진에서도 군의(軍議)가 열렸다. 도강 이후 적의 요새를 사방에서 살펴본 자들은 각자 의견을 내세우면서 목소리를 높여댔다.
“북경의 높은 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 사방에서 몰아치면 분명히 효과를 볼 것입니다.”
“흙더미를 던져 해자를 메우고 순식간에 들어가면 별 것도 아닙니다. 놈들의 병력은 기껏해야 2만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전해진 첩보와 정찰을 통해 조선 요새의 규모와 방비에 대해서는 착실히 정보를 쌓았지만 에센은 여전히 신중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너희들의 생각은 잘 알고 있다. 북경을 무너트리기 직전 까지 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화포가 있었기 때문이지. 화포로 성벽 위의 적을 쓸어버리고 성문을 부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요새에는 성벽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말을 타고 뛰어넘을 수 있는 얕은 벽만 있을 뿐입니다.”
“해자가 깊다 해도 지금은 겨울입니다. 물이 단단하게 얼어 있을 것이니 칸이 패배한 전투와 같이 진흙을 뿌릴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다들 의욕만 앞서고 있었다.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로 보였지만 오이라트의 각 투멘(부족)을 이끄는 자들이니 함부로 말리기도 힘들었다.
“알락, 놈들의 화약을 약탈하여 온다면 얼마나 걸리겠나?”
“천 리(400km) 너머에 있으니 오가는 시일을 생각하면 최소한 열흘 가량은 걸리겠지요.”
“적어도 열흘은 걸린다는 말이군. 어떻게 해야 하나, 확실하게 화포를 쏘면서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적들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 보아야 하나…….”
결국 누구 한 명은 나서서 적의 전략을 파악하는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 에센의 차가운 시선이 아들 아시테무르에게 멈추었다.
“콜 가르(우익)에 해당하는 팔천의 병력과, 몰리하이를 부관으로 붙여 줄 것이니 조선의 요새를 공격해 보아라. 나머지 병력들은 대기하여 놈들의 전력을 분산시키겠다.”
“네! 반드시 조선의 요새를 무너트리겠습니다!”
아직도 자신을 따르는 아들이었지만 별 쓸모가 없었다. 어차피 조카를 칸으로 옹립하고 자신이 섭정으로 부임하면. 아들에게 적당한 작위를 붙여 주면 끝이다. 부관인 몰리하이는 신중한 편이니 손해를 줄일 수 있겠지.
다음 날, 조선군의 요새 주변에는 2만에 달하는 오이라트의 기병들이 도열했다. 공격에 나서는 아시테무르는 철령 전투를 참가했던 몽골 병사들의 의견을 들으며 작전을 준비하였다.
“조선군은 200보 거리에서 지휘관을 노릴 정도로 화포에 능숙합니다. 작은 화포를 특히 잘 사용하더군요.”
“놈들이 화전(火箭)을 단번에 수십 발이나 부어댑니다. 폭연에 말이 놀라고 사람이 다치니 절대 몰려다니면 안 됩니다.”
“하지만 화약이 부족하다 하지 않았나? 보급하던 화약이 터졌다면서.”
“부족한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그렇게 염려 섞인 몽골 병사들의 말을 아시테무르는 철저히 무시하였다. 그 또한 북경 일대의 전투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 놈들도 작은 화포를 쏘고, 큰 화포도 쏘고, 화전도 수십 발이나 쏘아댔지. 그게 무슨 차이란 말인가.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니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니 할 말이 없었다. 조선과 명은 듣기에는 거의 비슷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타이순 칸의 휘하에 있던 자들은 조만간 벌어질 일에 몸서리치며 억지로 전선으로 나아갔다.
“천천히 거리를 좁혀라! 놈들은 200보 거리에서 노려 쏠 수 있으니 300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허실을 살펴라! 혹여나 화포를 쏘면 멀리 달아나라!”
“케식들의 호위를 받으십시오. 잘못하면 적이 화포를 노려 쏠지도 모릅니다.”
아시테무르와 일련의 병사들이 주변을 살피면서 조선군의 요새 후방인 남쪽 능선을 살폈다. 높은 지형에 적게 잡아도 천 이상의 기병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니 함부로 나서다가는 돌격을 맞아 큰 손실을 입으리라.
“해자도 넓은 편에, 석벽도 단순에 넘기에는 힘들지만 무엇인가 허술하군? 망루들이 쓸데없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에워싸서 공격하면 효과가 있겠군.”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놈들이 승산이 없다면 질겁하고 퇴각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해도 좋다. 조선군의 허실을 파악하고 피해를 많이 입히면 훗날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 자리에 오를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먹은 아시테무르는 명령을 내렸다.
“요새의 서쪽 측면을 먼저 공략한다. 흙으로 해자를 메우고 사다리를 올릴 준비를 하고. 2밍간(2,000명, 1밍간은 1,000명)의 병사들은 적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망루에 달라붙어 함락시켜라.”
“대열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밀집하면 적의 화포에 당할 염려가 있다. 산개하여 제각기 행동하면 화포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적들이 노려 쏠 수 있으니 자우트(백호장) 이하는 옷을 바꾸어 적들이 노려 쏘지 못하게 해라.”
천천히 퇴각하는 모습을 보이던 오이라트의 병력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쪽 방면을 향해 몰려들었다. 조선군의 요새에서도 돌진을 눈치 챘는지 징소리와 새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는 일은 평상시와 같다! 활을 쏘듯이 대형을 느슨하게 두어 쏘고 들어가 흙을 던지면 충분하다!”
아직 추운 계절이어서 반쯤 녹은 흙이 돌덩어리와 같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렇게 선두에 나선 병사들이 화살을 쟁여서 쏘려는 순간이었다.
“화전이 날아온다!”
“터지는 녀석들이다! 다들 알아서 피해라!”
신기전의 사격에 대응한 산개 진영을 택한 덕분에 대부분 부상을 입지 않고 이백 보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백 보 거리에 도달하였고, 조선군의 진영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나면서 보총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으악! 젠장!”
“좌우로 몸을 돌리면서 달려! 화살은 맞지 않아도 좋으니까 흙을 던져 넣는 일에 집중하라고!”
보총 사격에 몸을 맞아 낙마하는 자, 말이 대신 맞았지만 낙마를 피하지 못하고 바닥을 뒹구는 자가 생겨났다. 하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크지 않았다. 오이라트의 병력들이 그렇게 요새에 흙덩어리를 던져 넣는 순간이었다.
- 쾅!
“조선 놈들이 화포를 쏜다!”
“이건 화포가 아니야! 놈들이 뭔가를 던지고 있어!”
주먹 두 개 크기의 비격뢰(飛擊雷)가 제멋대로 터지고 있었다. 장정이 온 힘을 다해도 기껏해야 15보(27m)를 던질 정도로 무거운 녀석이지만 해자를 넘어가기엔 충분한 크기고 제멋대로 땅을 뒹굴며 마음대로 터져나갔다.
“굴러다니는 검은 덩어리를 피해!”
“앞에는 화포에 위에는 화살에 아래는 터지는 놈에! 이걸 어떻게 피하라고!”
“그냥 대충 던져 넣고 튀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던져 넣고 도망쳐!”
사방을 신경 쓰며 달리려니 도무지 속도를 낼 겨를이 없었다. 어느 새 전속력으로 달려들던 오이라트의 병사들은 갈지자로 사방을 오가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순간 망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백인장님!”
“놈들이 노려 쏜다! 쏜살같이 움직여!”
조선군은 서서히 오이라트 지휘관들을 파악하여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다들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이미 기병들의 속도는 사람이 달리는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지체되었다.
망루에 근접한 지휘관은 운총의 조준사격이, 망루에서 떨어진 자들은 자모포의 조준사격이 꽂히면서 지휘관들과 애꿎은 고참병들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시테무르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망루! 망루의 놈들이 옆으로 돌아 쏘고 있다! 망루를 먼저 무너트려야 한다!”
“아시테무르님! 잠시 진정하십시오. 놈들이 망루를 보호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조금 더 알아내야 합니다!”
“눈으로 봐도 모르나! 저렇게 좁은 틈은 좌우로 노려 쏘는 일만 가능해! 바로 아래에 달라붙은 놈들은 안전하단 말이다! 다들 달라붙어! 굴러다니는 검은 덩어리만 조심해!”
병사들이 무리를 나누어 망루에 달라붙었다. 망루에서는 진천뢰가 떨어지고 창날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으나 그 이상의 저항은 하지 못했다.
“역시! 이대로 망루를 기어 올라가라! 위에서부터 무너트…….”
망루에 달라붙어 있던 오이라트 병사들이 핏물을 튀기면서 바닥으로 무너졌다. 자신에게 달라붙은 적은 쏠 수 없지만. 다른 망루에 달라붙은 병사들에게는 마음껏 화포를 쏠 수 있었다.
“저건 또 뭔데!”
“저 망루들이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볼 수 없지만 조선군은 망루가 서로를 지키게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하군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첫 전투는 오이라트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밀집대형으로 접근하지 않고 산개하여 접근하였기에 사상자는 천 명을 넘지 않았지만. 그들이 거둔 소득은 기껏해야 해자를 약간 메우고 조선군의 화약 이천 근을 소모시킨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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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투로부터 12일이 흘렀다. 전투에서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충격이 컸던 오이라트 병사들은 사방을 오가면서 허점만 찾고 있었다. 아니 허점을 찾기 보다는 화약을 낭비하려고 병사를 허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병사들을 위무하며 사방을 점검하고 있는데. 이맹전이 말을 타고 달려오더니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대군어른! 별동대가 승전하였다 합니다! 박중손이 적을 상대로 작전을 완수하였습니다!”
“별동대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말이오?”
“엄밀히 말씀드리면 대승은 아닙니다. 듣기에는 손해가 제법 크더군요.”
다시금 군의가 열렸다. 가장 먼저 서찰을 받은 이징옥이 모두 읽고 나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어서 저렇게 복잡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렇게 보고서를 읽어보니 나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전략)……. 도감군 및 보갑사들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천 이상의 적병이 사방에서 기습하였지만 수레를 방패로 삼아 화포를 쏘고 비격뢰(飛擊雷)를 쏟아 부어 적을 도륙하였으며. (중략) 하지만 야인 병사들이 통솔에 따르지 않아 매복에 당하였습니다.]
“지휘관인 박중손의 실책이 아닌 것 같소. 본래 지휘관이 전열에 서는 일은 피하여야 하는데. 야인들에게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매복에 당하고도 극복하였다. 아국의 병사들도 견디지 못할 일을 극복하였으니 그러한 강병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니요.”
이맹전은 잘 모르고 있지만 이징옥과 내가 보기에는 심각한 사태다. 불리한 위치까지 유인당해서 적을 억지로 물리친다? 조금만 잘못하면 최정예를 단번에 날려버릴 멍청한 짓이다.
“패배를 피한 일 자체가 천운이오. 아국에서 야인 족장들을 비롯한 주요 인원들에게 좋은 갑주를 입히지 않았소. 그러니 어설픈 궁시로 죽이기에는 힘든 일이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투와는 다릅니다. 찰갑을 입은 자도 허술한 부위를 맞으면 쉽사리 꿰뚫리지 않습니까?”
“달자들은 튼튼한 갑주를 입은 자에게는 좁은 화살을, 갑주가 허술한 자에게는 넓은 화살을 쏜다 하더군. 상대가 야인 병사들을 얕보아 넓은 화살을 쏘았을 것인데 효험이 있었겠소?”
이징옥도 내 의견과 같은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별동대의 전투는 오이라트의 전략적 실책, 예상보다 높은 야인여진의 전투력,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뛰어든 박중손의 구원병력 덕분에 적이 전투를 포기한 경우이다.
“만에 하나 생각해 보시오. 적이 좁은 화살을 쓰거나 족장을 노리지 않고 야인들을 아무나 쏜다면. 그리고 돌격을 회피하고 바로 포위망을 다시 만든다면. 여기서 살아남을 자들이 몇이나 되겠소?”
박중손이 먼저 구원한 남눌(南訥), 골간(骨看) 두 부족은 손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로 구원하러 갔던 사차(沙車)는 족장이 눈 먼 화살에 맞아 즉사하고 순식간에 몰살당했고, 나머지 두 부족은 치열하게 난전을 벌이는 와중에 박중손이 간신히 구원에 성공했다.
“하오면 승리도, 패배도 아닙니다.”
“무조건 승리라고 하시오. 와라부의 달자나 그냥 달자나 모두 올적합(兀狄哈), 올량합(兀良哈)을 비롯한 야인들을 낮추어 보니 충분한 효험이 있을 것이오.”
핵심은 적을 많이 죽여서 조선의 강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다. 눈치를 보던 몽골 세력들이 결집하도록 오이라트의 체면을 깎아 버리는 것이지. 이징옥은 이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영에는 야인이 아직 여럿 있습니다. 이들을 요새 전면에 내세워 적들을 도발하고 체면을 깎아 내립시다.”
“좋은 방침이오. 그리고 명나라 출신 화포장이 탈출했다 하는데, 조만간 적진에서 사달이 벌어지겠군. 놈들은 가짜 화약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가져왔을 것이오.”
가급적이면 에센의 체면을 더더욱 무너트릴 수 있도록 총공격에 나선 시점에서 일이 터졌으면 좋겠다. 조선 병사들이 희생되는 일은 싫지만. 여기서 에센을 몰락시키지 않으면 두고두고 북방의 후환으로 남아 피해를 입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