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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120화 (120/573)

< 2장 58화 – 불타라 활활(5) >

고함과 함께 숲을 박차고 작은 말을 탄 오이라트의 궁기병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억센 숲 속에서도 달리기 쉽게 작은 말을 타고 무장을 가볍게 한 자들이었다.

홍윤성을 비롯한 조선 군관들은 수레에서 풀어낸 말들을 후방의 야인여진 보인들에게 보내면서 명령을 내렸다.

“염려하지 말고 퇴각하게! 적이 후열을 노릴지도 모르니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보인들이라 하여도 유목민족의 보인들은 다르다. 적어도 활은 쏠 줄 알고 말은 다룰줄 아는 자들이다. 홍윤성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우리를 포위하려 드는군.”

“그러면 작전대로 수레를 밀어! 목판과 상자로 방벽을 쌓으라고!”

홍윤성의 지시에 따라 모두 힘을 합쳐 수레를 밀어 진형을 만들었다. 삽시간에 수레가 방진(方陣)으로 변해나가면서 조선군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본 오이라트의 궁기병들은 비웃으면서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저놈들 거북이처럼 수레 안으로 숨는군!”

“화살을 날려!”

궁기병들이 화살을 재서 쏘는 사이. 수레의 목판을 분리한 병사들이 장패 대신 손잡이가 달린 목판을 들어 올렸다.

“방패수! 위를 보호해!”

“장패 대신 이딴 것을 어떻게 쓰라고! 홍 부사직(副司直)은 우리를 대웅(大雄)으로 아나!”

“상관이 까라면 까는 거다! 싫으면 너희도 종5품 되던가!”

장패는 진영을 갖출 때 쓰는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수레의 양 옆을 막는 목판을 장패 대신에 쓰지 못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홍윤성도 온 힘을 다해 목판을 들고 위를 막았다.

“화살 정도면 목판을 뚫지도 못한다! 염려하지 마라!”

“놈들의 공격이 거세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이렇게 숨으면 일꾼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생각하지 않겠나?”

조선군을 포위한 오이라트의 궁기병들은 신나서 화살을 날려댔지만 여유가 가득했다.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풀릴 무렵에 사방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 쾅!

갑자기 수레의 한 귀퉁이에서 팔뚝만 한 쇠몽둥이가 튀어나오더니 불을 뿜었다.

“으아아악 저게 뭐야!”

“다섯 명이 곤죽이 되었어!”

“화포다! 놈들이 화포를 숨기고 있다! 화포를 다시 쏘지 못하게 집중해서 쏘아라!”

조선군을 포위하고 있던 오이라트 병사들이 질겁하면서 화포가 튀어나온 곳을 집중 사격했다. 하지만 화포에서 다시금 불길이 치솟고. 병사 여럿이 곤죽이 되면서 나뒹굴었다.

“자모포를 계속 쏴라! 대충 쏘면 맞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자모포 근처로 오지 마십시오! 놈들의 화살이 점점 깊숙이 박힙니다!”

순식간에 세 번째 사격이 시작되었다. 자모포의 약점인 부족한 위력, 짧은 사정거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가 화살의 유효 사거리인 50보(90m) 거리에 있으니 장전이 빠른 장점만이 남았다.

“놈들이 화살이 줄어듭니다!”

“보총수! 장전 끝났으면 대충 조준해서 한 발만 쏘고 안으로 숨어라! 계속 노렸다간 놈들에게 역으로 당한다!”

자모포로 얼이 빠져 있는 사이 보총수가 고개를 내밀고 보총을 쏘아댔다. 일제 사격은 아니지만 산발적인 사격은 적에게 피해를 누적시키기 충분했다.

“슬슬 도망칠 생각이 드려나? 우리가 병사인 것을 알았으니 놈들도 속았다 생각하고 도망칠 것인데.”

“부사직님! 놈들이 화가 잔뜩 난 모양입니다! 아예 돌격하려 하는데요?”

“비격뢰(飛檄雷) 도화선 짧게 끊어서 준비해!”

공포 대신 분노와 물욕이 앞선 것이 분명하다. 수레 위로 고개를 들어 잠시 밖을 바라본 홍윤성은 예전 철령 전투의 기억이 샘솟으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와라부 놈들이 돌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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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병대는 작전대로 적의 병력을 바짝 쫓으면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작전 대로면 능선 위에서 잠시 시간을 끌고 본진을 구원하러 돌아가야 한다.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마라! 우리는 적을 쫒아내면 충분하다! 적이 반전하여 싸움을 걸면 맞서 싸우면 족하다!”

“알겠습니다!”

박중손은 정말로 초조했다. 단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야인들이 명령을 어기고 매복에 속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무관이었다면 가장 앞으로 나서서 대열을 통제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관 출신에 무예는 보잘것없는 박중손은 천천히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적들이 분열하여 달아납니다!”

“다섯 갈래로 분열하니 추격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적의 의도를 알 수 없다네! 대열을 통제할 것이니 경거망동하지 말라 전하게!”

말의 입에서 거센 숨이 토해지면서 능선의 맨 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오이라트의 기병들은 사방으로 분열하였다. 잠시 동안 적막이 흘렀다.

“주변 경계를 확실히 해라! 숲과 벌판이 어우러진 곳이니 적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적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요?”

숲 속으로 병사들을 분열하여 유인하려는 책략일지. 아니면 반전하여 사방을 포위하고 전투를 벌이려는 책략일지 알 방법이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대열을 정돈하고 주변을 살펴라.”

명령은 느슨하게 전달되었다. 박중손은 어느 새 대열의 후미로 밀려 있었으며 조선의 기병들 또한 그와 함께 대열의 맨 뒤로 몰려 있었던 것이다.

“저놈들이 다섯 갈래로 갈라졌다!”

“패를 나눠서 쫒아라!”

“놈들의 목을 베어서 한 몫 단단히 잡아보자!”

그렇게 조선군 본대와 여진족들이 갈라진 사이. 다섯 갈래로 나눠 도주한 오이라트 기병의 뒤를 야인여진들이 부족별로 나누어서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아직 대기해야 한다고! 적이 매복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무슨 생각이냐!”

삽시간에 벌어진 행동에 박중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상대방이 반전하여 기습할 계획이었으면 사방이 난도질 당하며 격파 당하겠지만. 매복이라면 전멸을 각오할 정도의 실책이다.

“도호부사님!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우리 인원이 얼마나 되나?”

“명령을 듣고 멈춘 야인 기병이 500여 기, 아국의 기병이 300기입니다.”

“지금 여섯 부락 중에 다섯이 명령을 어겼단 말인가?!”

박중손이 쥔 손아귀에서 핏물이 가늘게 흘러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위험하더라도 맨 앞에서 지휘했어야 한다.

“놈들이 반전하여 뭉칠 계획이라면 사방을 들쑤셔서 적의 뒤를 노릴 수 있겠지. 하지만 매복이라면 모조리 죽어나갈 것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함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지금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반전하여 뭉칠 생각이라면 상대는 전투를 회피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각(15분)조차 지나지 않아도 고함과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으니 매복이 확실했다. 박중손은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리 치면서 소리쳤다.

“구원에 나선다. 매복중인 적의 본대를 만나지 않는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다.”

“도호부사님!”

다들 퇴각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박중손의 말이 이어졌다.

“고작 팔백 기의 기병과 천 명의 보병으로 수천기의 와라부(오이라트) 달자들과 싸울 수 있던가? 지금 구해내지 않으면 일을 돌이킬 수 없다네.”

“도호부사님! 저희도 위험합니다!”

“상관 없다! 지금부터 골간(骨看)을 먼저 구원하러 나선다! 서둘러 나아가 우군을 구원하고 바로 다음 부족으로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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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 기 정도의 오이라트 기병을 신나서 쫓던 야인여진 부족장인 아라합(阿剌哈)은 신나게 치고 나갔다. 뒤에서 무엇인가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숲 속으로 파고든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족장님 매복입니다!”

“사방에 모두 적입니다! 화살이 날아옵니다!”

“피해! 피하라고!”

숲에 생겨있는 공터로 향한 순간 사방에서 적이 튀어나오면서 함성을 지르며 화살을 쏘아댔다. 삽시간에 포위되었으니 모두 주변을 돌아보며 얼이 빠져 있었다.

“적이 두 배는 되잖아! 우리 남눌(南訥)의 대가 여기서 끊기는구나!”

“나무 뒤로 숨으려고 해도 사방에 적이다!”

자신들이 진입한 방향에는 화살이 쏟아지지 않았지만 작은 언덕이 있었다. 언덕을 오르면서 속도가 늦어지면 바로 등에 화살이 박히리라. 아직 도망치는 자는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구 도망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조선군이 구하러 오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언제 쯤 온단 말이……!”

가슴에 화살이 꽂히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순식간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출병하기 전, 홍일동이라는 자가 나누어 줬던 구운 돼지고기가 생각났다.

그렇게 욱신거리는 통증이 가슴에서 전해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화살에 뚫린 고통이 아니다.

“어? 별로 아프지 않아?”

“족장님이 전사! 크윽!”

“갑옷을 뚫지 못했단 말이다! 난 안 죽었어! 이 멍청한 새끼야!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부하를 발로 걷어차서 말을 끊어버리고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조선에서 보급한 찰갑에 무딘 화살이 가로 막혔다.

생명의 위기를 넘기니 주변이 명확하게 보였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많았고, 복식이 화려한 자들을 노려 쏘았지만 대부분 피해가 심하지 않았다. 아라합은 온 힘을 다해 활을 쏘았다.

“이거나 처먹어라!”

언덕 위를 향해 쏜 화살이니 부상만 입힐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자빠져 버렸다.

잘 벼려진 강철 화살촉과. 부족하지만 나무를 덧대 만든 목궁. 그리고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한 훈련으로 아라합의 힘은 몇 년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내 화살이 이렇게 멀리, 그리고 강하게 날아가지? 아니! 그럴 만하구만!”

자신과 부족민들 모두 경원에 드나들면서 조선에서 파견된 관리인 홍 현감이라는 자와 함께 일했다. 북방에서는 귀한 곡식을 주니 눈이 멀어 2년간 정신없이 몸을 만들었다.

다른 부족민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정신을 차린 자들이 화살을 날리면 여지없이 적의 갑옷을 뚫고 상처를 입혔다. 다만 매복을 당한 덕분에 기세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기세를 올려야 한다.

“족장님! 살아나신 족장님이 적을 죽이러 가신다!”

“닥치고 말에나 올라타! 저놈들 생각보다 별것 아니야! 우리는 몇 년 동안 입체신비인지 뭔지를 하면서 강해졌어!”

확실한 병법은 몰랐지만 기세 싸움 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몇 놈 정도 베어버리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한편 언덕 위에서 전장을 내려보던 매복대의 지휘관인 볼라이는 위화감을 느꼈다. 사방에서 몰아넣고 화살로 두들기고 있었지만 적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

“지금 자긋(백호장, 여기서는 중간 지휘관) 이상을 노려 쏘는 것 맞나?”

“맞아도 화살이 뚫지 못합니다.”

“조선 놈들이 갑옷이라도 줬나 보군. 계속 쏴도 죽지 않으면 철기를 보내면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갑옷을 입는 놈이면 칼로 찔러 죽이면 충분하니까.

“볼라이님! 놈들이 돌격 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철기를 앞으로 내세워라! 맨 앞에 선 놈이 족장 같으니 저놈을 죽이면 우리가 이긴다!”

선두에 있는 자의 복식이 화려한 것이 족장 같았다. 명령을 받은 20명의 철기가 전열로 나섰다. 천천히, 그리고 순식간에 속도를 붙여 언덕을 타고 내려가면서 야인여진 병사들을 덮쳤다.

“우리야아아아아아압!”

환도가 시퍼런 날을 빛내며 휘둘려졌다. 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오이라트의 철기가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아라합의 몸에 화살 두 발이 꽂혔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금 기세등등하게 환도를 올렸다.

“한노오오오오옴!”

두 번째 상대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검으로 전해진 충격에 아라합의 몸이 뒤흔들렸지만 자세만 흐트러졌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두우놈! 계속 와라!

“족장님이 적을 두 놈이나 죽이셨다!”

“계속 나아가라! 저놈들 무기는 아무 것도 아니야! 힘도 우리가 더 강하다고!”

서로의 경험은 대등하였으나 장비와 완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렇게 철기들이 순식간에 격파 당하자 볼라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볼라이님! 놈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립니다! 이대로 싸우면…….”

“지금 보니 우리의 궁기병의 피해가 더 크잖아! 언덕 위에서 쏘고 있잖아!”

“저놈들 모두가 강철 화살촉을 엄청난 힘으로 쏘아댑니다! 갑옷이 대번에 뚫려 버립니다!”

매복으로 시작했는데 난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이라트 병력의 수가 거의 두 배는 되지만 포위망이 무너지면 양분(兩分)당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보고가 들어왔다.

“조선 놈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다들 전력으로 달려오는데 수는 최소한 칠백 기 이상입니다!”

볼라이의 짓씹은 입술에서 핏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완벽한 매복지를 찾았고 완벽한 유인에 성공했다. 하지만 포위해 놓고 보니 놈들이 너무나 강했다.

조선군이라면 패배해도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상대가 얼마 전까지 뼈를 무기로 삼고 가죽을 두른 금나라의 찌꺼기들이다. 이래서는 대대손손 멸시를 당할 일이다.

“모두 퇴각한다! 더 이상의 손해를 보면 다음 전투를 치를 수 없다!”

“볼라이님! 지금 퇴각하시면 사기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퇴각해! 지금 기세 등등한 놈들과 함께 조선 놈들도 상대하란 말이냐?!”

그렇게 오이라트의 매복 병력들이 철수하자 남눌 부족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함부로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들 매복에 호되게 당한 경험을 쌓았던 것이다.

“절대 추격하지 마라! 또 매복이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알겠습니다!”

억지로 이겼지만 손실이 제법 컸다. 400명의 병사 가운데 60명 정도가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사방에 널브러진 상대의 시체도 거의 비슷한 양이었다.

그렇게 전장이 정리되는 가운데 박중손의 본대가 달려왔다. 가장 앞에 있던 박중손은 시신을 수습 중인 아라합을 보고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여기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아라합! 자네였군!”

“죄송합니다! 작전을 어겨 매복을 당했지만 어떻게든 격퇴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오느라 조금 늦었다네. 매복을 힘으로 격퇴하다니 참으로 대단하군.”

실책을 반성하는 아라합의 표정을 알았는지 박중손은 엄한 눈빛을 보이면서도 입을 열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구원한 골간(骨看)은 이곳의 남눌보다 손해가 컸지만 대부분 무사하다네. 우리는 매복에 당한 병사들을 구할 것이니 숨을 돌리고 본진을 구원하러 가게나.”

“명령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알면 되었네! 잠시 쉬고 다른 부족을 구원하러 가자!”

사방에 있는 매복지에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다. 남눌이나 골간 같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한 부족도 있었으며.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몰살당한 부족도 있었다.

“여기서라도 공을 세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조선에게 크나큰 벌을 받을 것이야.”

“하지만 이겼지 않습니까?!”

“이긴다고 다 되나? 명령을 어긴 일은 잊었어?”

잠시 쉬며 몸을 돌린 아라합을 비롯한 야인여진들은 보병들이 싸우고 있을 본진으로 향했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폭음이 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광경은 뭐냐고.”

하지만 아라합이 상상하던 그런 난전은 아니었다. 일방적인 도륙이 능선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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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도망치고 있어!”

“히힛 비격뢰와 비슷해 보이는 돌덩이 받아라!”

더 이상 전쟁이 아니었다. 불타는 수레와 사방에 널려있는 말과 기병들의 시체. 그리고 약간의 조선군 시체가 전장을 메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훈련도감 병사들과 갑사들이 날뛰고 있었다. 홍윤성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분노와 회한이 합쳐진 기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첨도를 휘둘렀다.

“그 작달막한 말 따위로 돌격해서 뭘 어쩌려고! 그냥 죽어!”

피에 젖은 미첨도가 다시금 내리찍혔다. 눈에 보총탄이 박혀 날뛰는 말에서 허우적거리던 오이라트의 병사가 말 그대로 두 쪽이 나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어이고 숨차, 놈들 아직도 도망갈 길을 찾지 못했나?”

“야인 출신 보인들이 막고 있지 않습니까.”

“저 양반들도 야인은 맞아, 적이 박살나기 시작하니 바로 합류해서 마음대로 싸우지 않나.”

조선군을 향한 돌격은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대열을 무너트리기에는 말의 크기도, 적들의 수준도 너무나 부족했다. 대열을 조금 흐트리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역으로 척탄이 던져지고. 척탄을 맞아 혼란에 빠진 오이라트의 병사들에게 조선군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기병을 상대하는 방법은 지겹도록 알고 있었으니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졌다.

“길을 막는 일은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도 활은 쏠 수 있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고맙네!”

후방으로 대피한 야인여진 보인들도 돌아와서 아무렇게나 화살을 쏟아 붓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바로 추격당해 도륙당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놈들이 주제를 모르고 계속 날뛰네! 그냥 죽어 이 새끼야!”

다리가 잘리고도 칼을 놓지 않는 오이라트 병사의 머리통을 박살낸 홍윤성이 잠시 숨을 돌렸다.

“하이고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죽는 줄 알았네. 놈들을 능선 방향으로 가게 두지 마……. 아니 그냥 내버려 둬라!”

능선 방향에서 천 기 가량의 기병들이 쏜살같이 달려 내려왔다. 도망치던 적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작은 말로 돌격해봤자 우리가 피해라도 입을 줄 알았나?”

“피해 입었습니다.”

한 팔이 부러진 훈련도감 병사가 팔을 덜렁거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홍윤성도 아는 얼굴이기에 한숨을 내쉬면서 쏘아 붙였다.

“철령 전투에도 참전한 2기 놈이 왜 이리 빠져있나?”

“또 범수 형님 이야기 하시려고요? 그분은 괴물이라니까요!”

“그냥 네가 약한 거라 생각하자고. 부목이나 감아! 척탄 한 번 뿌리고 돌격해서 두들겨 패서 끝나다니. 이게 싸움이냐?”

그냥 싸워도 이겼을 상대지만 괜히 걱정했다. 이런 전투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 없어서 꾀를 부렸다.

이전에 꾀를 썼을 때는 근육겁박지계라는 기괴한 명칭이 붙어서 북방으로 쫒겨났으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제발 북방만큼은 오기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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