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편 - 경상도 영덕의 변 서방 이야기 >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이 영덕의 벌판에 내리 꽂혔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에는 잘 여물은 벼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지만 따사로운 햇살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들 훈도(訓導)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나라님의 명을 받아 일을 법전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호방(戶房 - 토지, 호적을 담당하는 아전)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에 볼 땅은 변 서방의 땅이오.”
“제발 잘 봐주셔야 합니다.”
“그저 법도대로 행할 뿐이니 방해하지 마시오.”
관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아가 논에서 벼를 베어 내었다. 전세(田稅)법이 작년부터 변했으니까. 영덕에서 농부 일을 하면서 가까스로 먹고 사는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세를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까지의 작황은 현의 평균을 매겼다. 하지만 작년부터 권농관(勸農官)이 머무는 일백여 호 단위로 작황을 매기니 세금을 피해갈 길이 막혔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거둬들인 벼이삭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총 151결에서 표품(標品 - 표본)을 모았으니 이제 세어볼 차례요.”
“아이고 제발, 상년이면 안 되는데. 중상(中上)년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렇다면 낱알을 털어서 모두 확인해 보게나.”
마을의 촌장 역할인 권농관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풍년이며 세금이 적게 거둬지면 가장 좋은 일이다. 그렇게 거둬진 벼들은 표본이 되어 낱알을 모두 털어냈다. 차곡차곡 낱알이 됫박으로 세어졌다. 한참을 살펴보던 훈도는 서책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올해는 상년, 아니 조금 모자라니 중상 년이오. 이 고을은 한 결마다 18두의 세를 내면 족할 것이오.”
“하이고 다행이다. 상년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들어가 보겠소. 작년과 같이 흉년이 들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주 약간의 차이로 상년을 빗겨난 덕분에 올해는 조금 더 풍족하게 한해를 보낼 수 있겠지. 그렇게 서로를 돌아보니 헛웃음이 나왔고.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작황을 정하는 연분 9등법은 연분 6등법이 되었다. 상, 중상, 중, 중하, 하, 흉(凶)으로. 세율이 다소 늘어났지만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기존의 하하(下下)년에 해당되면 흉년으로 보아 아예 전세를 거두지 않았으나,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방금 전에 호방의 표정을 보았어?”
“보았지! 올해도 남겨먹지 못해서 똥줄이 타들어가더군!”
“세율이 늘었다 하는데 아전 놈들에게 뜯어 먹히는 것 보다는 나아.”
“어허 아전 놈들이라니. 이제 읍징(邑徵 - 읍에서 사사로이 징수하는 돈, 여기서는 읍의 향리 계층의 봉급을 위한 추가 세금)꾼이라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아전들은 이제 훈도의 보좌관으로 변했다, 심지어 자신이 담당한 일을 하고 훈도에게 확인을 받는다 한다. 스무 살은 어린 훈도에게 고개를 숙이는 아전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면서 요즘 돌고 있는 소문이 입에서 나왔다
“육방관속(六房官屬)이라 하여도 훈도의 짚신 끈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참말이었군.”
“나라님께서 내리신 은혜일세. 나라의 돈은 올바로 거둬들여야지 함부로 거둬들이면 쓰나.”
“오년 전의 일을 기억하나? 된서리를 맞아서 손해가 컸는데 평년이라고 바득바득 우기지 않았나. 그래서 중중(中中)년의 세금을 냈던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네.”
“아래 고을의 윤 만호님의 밭에는 서리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하하(下下)년을 매겼지? 생각해 보니 윤 만호님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셔야 하는군.”
읍징분이라 하여 농지 1결당 2두의 곡식은 아전들의 수탈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결국 올해의 세금은 1결당 20두로 기존보다 올라갔지만 정당하게 세금을 내면 뒷말이 없었다.
“그럼 올해도 작년과 같이 할 것인가?”
“물론, 표품으로 모아놓은 쌀은 쌀이 아니야? 햅쌀 중의 햅쌀이지.”
“그렇다면 한잔 거하게 마셔야지!”
역시 이런 좋은 날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대낮부터 근처에 있는 주막에서 잔치판이 벌어졌다. 요즘 들어 널리 퍼지는 등뼈탕은 이러한 날에 안성맞춤이었다.
등뼈탕을 삶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한 가마솥을 공들여 삶아 두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동나니 너도 나도 등뼈탕을 삶아서 팔았다. 여기에 북어인가 뭔가 하는 마른 생선으로 국물을 낸 탕도 있었지만 아직은 제철이 아니었다.
“이 맛에 산다니까? 겨울이 되면 북어탕이지만 가을에는 역시 등뼈탕이야.”
“들깨가루도 있고 방아잎도 있으니 마음대로 넣어 드시지요. 시래기도 듬뿍 넣었습니다.”
된장을 풀어 싯누런 국물에 시래기와 무 그리고 등뼈가 잠겨 있었다. 거기에 방아잎을 찢어 뿌리니 짜릿한 냄새가 올라오면서 돼지 누린내가 덮여졌다.
“역시 방아잎을 넣어야 제 맛이라니까.”
“그냥 된장 맛으로 걸쭉하게 먹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들깨가루가 최고라니까. 돼지 등뼈 한번 튼실하네.”
다들 몸이 허하거나 입맛이 돌지 않을 때에는 주막으로 찾아가 등뼈탕을 먹었고. 가끔 잔칫날이나 귀한 손님이 오면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자신같이 가난한 이들은 등뼈탕만 하여도 진수성찬이었지만.
탁주를 들이켜고 탕국 속에 잠긴 등뼈를 잘 발라서 안주로 삼았다. 삽시간에 술상이 비워지며 다들 배가 부르고 술기운이 올라왔다. 그렇게 실없는 소리가 이어졌다.
“장 서방 올해 잡색군 훈련이지? 고생 많이 하겠네.”
“고생이라 하여도 두 달이 전부인데 그 정도야 버텨야지. 변형은 올해도 요역을 하려고?”
“아무렴. 열흘만 버티면 쌀이 나오는데 어느 누가 마다하겠나? 바보 천치들이나 피할 일이지.”
“작년에 형님이 두 달 동안 일했었나? 다들 줄 서서 하는데 어떤가 모르겠어.”
이전까지 나라에서 정한 요역이 6일이라 하는 말도 거짓이었다. 사람을 불러다 놓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만히 세워둔 다음 돌려보내고 다시 불러와서 일을 시켰다. 식사를 자신이 챙겨가고 숙소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였으니 고생만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열흘의 요역을 정식으로 채우면 하루에 적어도 쌀을 두 되씩은 주었다. 끼니도 당연히 챙겨 주었으며 천막이라도 쳐서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자신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요역을 빠짐없이 행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초겨울에 하는 일이라 고되기는 하지만 집구석에 앉아있다고 쌀이 나오나 베가 나오나?”
“나는 겨울만 되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밖에 나가기 싫던데. 형님이 부러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아내가 매염(媒染)일을 하는데 나도 열심히 일해야지.”
집에서 새끼나 꼬느니 밖에 나가서 쌀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마시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얼핏 보아도 체격이 무척 작은 자들이 다섯이나 지나가니 모두의 눈이 쏠렸다.
“저들 누구지? 아무리 봐도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신장이 작고 상투를 틀지 않았는가, 왜인이 아닐까 하는데.”
“왜인? 왜인이 왜 여기까지 올라온단 말인가.”
왜인이라 하여도 왜구가 이 영덕 촌구석까지 올라올 이유는 없다. 기껏해야 동래 정도만 왔을 놈들이니까. 모두의 시선을 받은 왜인들이 관아로 들어갔는데 사소한 일로 관아에 물어보았다가는 치도곤을 맞을 일이 아닌가.
“되었어, 왜인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나라님이 부른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 나라님이 행하는 일이 나쁜 적이 있던가?”
“아무렴. 그러하면 이만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벼를 거둘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어.”
술자리가 끝나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사실 왜인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알 만한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참으로 귀찮은 자니까 다가가기도 힘들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라고 하여봤자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풍속을 따랐으니 처갓집이다. 식구는 여섯인데 땅은 두 결만 농사를 지었기에 삶이 넉넉하지가 않았다.
“장인어른! 다녀왔습니다! 오늘 풍흉을 정하기 위해 훈도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오오 자네 왔는가? 훈도께서 뭐라 하였는가?”
“풍작이지만 상년이 아니고 중상년이라 하시더군요. 전세는 40두만 나온다 하였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올해는 대풍은 아니지만 풍작인데 한 시름 놓았군.”
장인어른은 요 며칠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낯빛이 돌아왔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다. 밀린 외상값을 정리하고 공납(貢納) 물품인 꿩 다섯 마리를 사는 일도 수월할 것이다. 그렇게 아내를 찾아 근처의 시냇가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아니 이게 뭐하는 일이오. 손이 쉽게 상하니 매염을 하지 말라 하였잖소.”
“그리 하여도 쑥으로 물을 들이기는 다른 일보다 쉽습니다.”
“이 손을 보시오, 내 혼인할 적에 손에 물을 묻히더라도 부르트지는 않게 한다 하였으나 이게 뭐란 말이오.”
매염은 정말 힘든 일이다. 옷감을 받아다 염료를 물들이면서 하나하나 빠짐없이 색이 일정해야 한다. 하루 종일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길 다란 천을 잡고 계속 감고 내리치며 색을 입혀야 한다.
아내의 손은 벌써 시퍼런 쑥물이 들어 있었다. 근래에 들어 쑥색 철릭을 입은 훈련도감인지 뭔지 하는 병사들이 지방으로 파견되었고. 그들이 입을 복식이 필요했는지 관아에서는 일감을 끊임없이 내려줬다. 아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기분이 좋다고 술을 마시다니.
“내 술을 끊겠소. 차례 상에 올리는 일 말고 따로 술을 마신다면 사람도 아니오. 술값을 모아 석감을 사겠소.”
그렇게 주변이 조용해졌다. 매염이 막바지에 다다랐는지 아내는 주섬주섬 옷감을 챙기고 한 손 거들었다. 무거운 옷감을 짊어지니 허리가 휘청거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내의 입이 열렸다.
“손을 씻는 일에 석감을 쓰다니요. 석감은 보름에 한번 냇가에서 몸을 씻는 정도면 족하지 않습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눌렀다. 고개를 드니 내가 가지고 있는 산이 보였다. 옛적에는 화전을 하였지만 크게 산사태가 일어난 다음에는 바위만 널려있는 산이 되어버렸다. 다른 집에서는 지참금으로 땅 한 결이라도 주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산기슭에서 굼실거리며 선산으로 향하는 자들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다섯 명 모두 신장이 작달막하니 낮에 본 왜인들이 분명했다.
영덕에서도 북쪽인 영해(寧海)까지 왜인들이 왜 온단 말인가. 아무 산이나 들어가서 헤집어도 나라님이 용서하신단 말인가? 일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지만 가깝게 대하려면 어려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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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변 서방 아닌가? 이런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박 생원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꼭두새벽부터 향교로 찾아가니 한낮이 되었다, 박 생원이 향교 한 구석에서 쇳덩어리를 들고 내리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일 년 전에 식년시에 합격한 박 생원은 박학다식하니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이 아니고 고을에 왜인들이 들어왔습니다.”
“왜인들이라, 주상전하께서 일전에 왜왕과 약조를 맺은 일이 있었다네. 그리하여 탐광자들이 남도를 돌아다닌다 하였는데 벌써 이 고장까지 왔단 말인가.”
“왜인에 탐광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리 나라님께서 정하신 일이라 하여도 왜인들은 신의가 없는 족속들이 아닙니까.”
탐광자라 하면 자신이 어린 시절에 가끔 보았던 자들이다. 흑토인지 뭔지를 찾는다고 사방을 들쑤시면서 돌아다녔지만 자신이 속한 고장에는 소득이 없었다.
오히려 당시를 기억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가진 선산을 찾는다고 하여 향리들이 거하게 얻어먹으려 하였으니까. 그날 어머니가 고생한 일은 지금도 기억났다.
“동래 일대에서 동광을 두 곳이나 발견했다 하였지. 왜국의 탐광자들은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 자들이니 염려하지 말게. 왜구들과 달리 아국에 뼈를 묻을 자들이라네.”
“그러하다면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자네의 땅에서 무언가 물산이 나올지 누가 아는가. 왜인들은 땅에 있는 구리를 찾는 일에 소질이 있다네.”
그렇게 말하던 박 생원은 조심스럽게 내 팔뚝을 보더니만 한숨을 쉬었다.
“다시금 보아도 뼈가 참으로 굵고 튼튼하군. 자네의 소질이 안타깝네”
“입체신비인지 무엇인지 때문에 그러하십니까?”
“입신체비라네. 일전에도 말하였지만 자네는 소질이 있어. 다른 무엇도 아니고 손목이 굵고 튼튼하면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재능이 있는 것이라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바쁘지 않습니까.”
먹고 사는 일이 바쁜데 배울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조금 사는 집이라면 모르겠지만 고작 땅 두 결로 여섯 식구가 살자면 일이 빠듯하다 못해 벅찰 지경이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약속할 수 있겠나? 만약 생활이 윤택해지면 글을 배우고 입신체비를 행하여 보게나. 내 대군어른에게 배운 적이 있지만. 자네가 상체를 온전히 다스릴 경지에 이르면 충분해 보이는군.”
선비라 하는 자들과는 다르게 수양대군의 제자라서 그런지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궁금한 일을 알게 되었으니 보답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 정도는 알려줘도 되겠지.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제 형편이 트이고 여유가 생긴다면. 정음도 배우고 입신체비도 행하겠습니다.”
“훌륭하네. 그렇다면 잠시만 내 일을 도와주게나. 혼자 하자니 벅찬 일이어서 말이야. 잠시 고을에 내려가서 반 시진만 일을 돕게.”
“고을에 내려가던 길이니 마침 잘 되었습니다.”
잠시 고을에 들려서 향석감과 석감을 살 일이 있었으니 마침 잘 되었다. 그렇게 박 생원을 따라 한참을 헤매니 야장들이 기거하는 곳에 이르렀다.
“박 생원님 오셨습니까? 옆에 계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잠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네. 그리고 주문한 것은 다 되었나?”
“다 되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이 있었지만, 가만히 보니 방금 전에 박 생원이 들었다 내리던 쇳덩어리와 닮아 있었으며. 자신의 신장 보다 높다란 쇠몽둥이도 있었다.
“잠시 역기봉을 잡고 의자 위에서 들어보지 않겠나?”
“네? 역기봉이라 하시면 이 쇠몽둥이 말씀입니까?”
의자 위에 올라서 거대한 쇠뭉둥이를 곧게 들었다. 그렇게 있으니 박 생원이 실 끝에 추를 매달아 봉에다 천천히 대었다. 마치 기둥을 세우는 대목장들이 기둥의 수평을 확인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조금만 더 왼쪽으로, 그렇지 조금만 더, 옳지 좋아 좋다네.”
“무엇이라도 문제가 있습니까? 마흔 근의 역기봉인데 수평은 반드시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확인하여야지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한참동안 확인하던 박 생원은 만족하며 역기봉을 매만지고 양 손으로 들고 빙글빙글 돌려 보았다. 마흔 근이라고 하였지만 새털처럼 돌리는 모습이 놀라웠다.
“무게 균형도 완벽하고 곧다 못해 칼 같군. 역시 질 좋은 역기봉을 만들기로 손꼽히는 야장일세.”
“아닙니다, 잠시 경주에 불려간 일이 있었는데. 역기봉과 공령(플레이트)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경주 일대에서는 쇠가 많이 소출되니 거기서 배운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수준이면 한양에 있던 대군어른의 입신체비장에서도 쓸 만한 물건이라네.”
공령이 무엇인지 역기봉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지만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쌀 네 말에 석감과 향석감을 하나식 사들고 돌아오니 박 생원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형편이 좋은 가정에서는 벌써부터 아이들에게 정음인지 뭔지를 가르치고 있었다. 고작해야 마을에 한둘이 있을 정도이지만. 배워서 손해를 볼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고 추수까지 끝낸, 10월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거기 있소? 현령(縣令)께서 이 야산의 소유자를 찾는데 주인이 맞소이까.”
“네? 현령께서 찾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전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장인어른과 함께 관아로 향하니 현감께서 친히 자신을 맞이하러 나왔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일전에 보아온 왜인들도 있었다.
“잘 왔군. 다름이 아니고 박 서방 자네가 소유한 선산 말일세. 그 땅에서 왜인들이 구리 맥을 발견했다 하더군.”
“구리 맥이라 하시면.”
“소출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지만 구리가 묻혀있음이 분명하다 하였네. 이 돌을 보게나.”
왜인들이 돌무더기를 보여줬는데 돌 사이사이로 검붉은 맥이 흐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할 가느다란 맥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것이 분명했다.
“경상도 일대에 구리 맥이 흐른다는 말을 믿지 못하였는데. 소출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그 산을 팔도록 하게. 나라의 일이지만 본디 자네의 소유가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산도 아니고 산의 한 능선일 뿐이다. 그렇게 현감을 보면서 어찌할 줄 몰랐다. 화전도 일구지 못하는 산을 팔라니?
“산의 값으로 땅 여덟 결을 주도록 하겠네. 구리가 일백 근 아래로 나오면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나라의 일이지 않은가.”
“현감께서 값을 매겨주시니 제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였지만 땅 여덟 결이면 지금 가진 땅과 합치면 열 결이다. 흉작이더라도 일가가 먹고 살기엔 충분하다. 앞으로 농사일이 고되겠지만 아내가 매염 일을 그만둔다면 충분하다. 세 결을 본가에 떼어주면 부모님도 풍족하게 살 수 있으리라.
문득 며칠 전에 만난 박 생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입신체비를 배우려면 정음을 배우고, 정음을 바탕으로 한문을 배우고, 다시금 서책을 익혀야 하였지.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해도 아들만큼은 글을 익히게 해야 한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렇다면 토지 문서를 작성할 것이니 수인(手印 - 손바닥 도장)을 찍게나.”
“네 현감님.”
자신의 땅에 동광이 있어 보았자 무엇에 쓴단 말인가? 차라리 농사를 지어 집의 형편을 나아지게 하고, 자식들을 자신과 달리 무엇이라도 가르쳐야 한다.
몸이 좋다면 관아에 있는 훈련도감 병사들처럼 군직에 오를 것이며. 머리가 좋다면 글을 익혀 배움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설령 둘 다 못한다 하여도 흙을 파면서 자신과 같이 생활하면 충분히 먹고 살 길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