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50화 – 강 건너 불구경(2) >
하지만 이징옥이 김종서를 통해 전해들은 말은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명에서 병력을 동원하여 대동과 요동 일대에 긴장감을 조성하여서 내전이 일어나지 않을 뿐이었다.
“위험을 느끼지 않을 것일세. 이미 달자들의 속은 곪아 터지기 직전이며. 우리는 기회를 엿볼 뿐이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일이 틀어질 염려가 있습니다. 아국이 함부로 나서면 협공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염려하지 말게. 대총 한(타이순 칸)과의 연락은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네. 주상전하께서는 이미 우의정 대감을 통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대총 한이 아국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니요.”
이맹전은 자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이징옥은 그저 손짓을 하면서 근처의 사람이 비어 있는 군막으로 이맹전과 함께 들어왔다.
“지금 달자들의 분파인 와라부(오이라트)의 재상인 야선(에센)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였지. 야선의 세력은 대총 한의 세력에 비하여 월등하게 강하네.”
“그렇다면 사실상 대총 한의 세력과 동맹을 맺을 작정이십니까?”
“이미 맺었다네. 거기다 아국은 달자들의 모임인 홀리늑태(忽里勒台 - 쿠릴타이)에 사람을 보내 의견을 제시할 권리를 얻었으니 염려하지 말게.”
“아국이 언제 그렇게 밀약을 맺은 겁니까? 기사약조(己巳約條)에는…….”
당연히 이맹전이 모르는 일이었다. 공개적인 기사약조에는 보상과 재발 방지에 대한 노력만이 적혀 있었고, 명나라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언제긴 언제겠는가. 북방에서 맺은 기사약조는 실지로 두 개로 나누어져서 맺어졌다네. 대총 한은 내가 몰아넣고 대군 어른께서 생포하셨으며 약조를 맺은 뒤에 풀어준 것이라네.”
“어쩐지 내용이 이상하다 하였습니다. 또한 재상께서 대총 한을 놓치고도 상도 벌도 받지 아니하였으니 더더욱 이상하게 생각하였지요.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맹전이 안심하였지만 이징옥은 오히려 앞으로 벌어질 고난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결국 내전을 일으키게 유도하는 방침이나, 소모를 유도하는 방침이나 군사적인 움직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고. 그저 묵묵히 따르는 것 외에는 없다네.”
묵묵히 따를 뿐이다. 이징옥에게 달자들의 내란을 부추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자신은 정치나 외교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순수한 장수임이 분명하였다.
“우의정께서 행하신 일을 그저 계속 따라올 뿐인데. 이제는 힘에 부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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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 6월, 강 위에 떠있는 허름한 선박들을 보니 지금 내 처지가 실감이 되었다. 오지 중의 오지인 북방에서 일을 하라니!
일본에 다녀온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잠시 쉬면서 아내와 함께 여성을 위한 입신체비서를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급작스럽게 형님이 나를 궁궐로 부르셨다.
“잘 와주었구나, 다름이 아니고 북방과 관련된 일이다.”
“북변에서 무슨 변고라도 생겼습니까?”
“아니다. 다만 지변사재상이 정치에 능하지 않은 자이니 네가 나서야 하겠구나. 대총 한과 약조를 맺은 자도 네가 아니더냐.”
김종서는 1452년 3월에 지변사재상의 자리를 이징옥에게 넘겨주었다. 너무 고령인지라 급사라도 하면 북변이 어지러워진다는 형님의 의견 덕분이었다.
결국 첫 전쟁 당시의 외교, 정치적인 결정권자 중 가장 깊게 관여한 사람은 내가 되었다. 김종서는 조언이야 가능하지만 직접 나설 나이는 아니다. 지금도 정정하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이징옥은 재주가 많은 자이니 충분히 대총 한을 상대할 방도를 마련할 겁니다.”
“재주가 있지만 성품이 너무나 강직하니 계략에는 능하지 못하다. 지키는 일은 능하지만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느냐.”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징옥이 외교 관계나 미묘한 알력 다툼 같이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사람이던가. 단순히 싸우는 방침이면 몰라도 내전을 유도하는 과정이니 내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그간 달자들과 연락한 것을 정리한 서책이 있다. 대총 한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달자들의 내부 사정에 대해 파악하였으니 이 서책을 가져가 참고하여라.”
형님이 손짓하자 수십권의 서책이 내 앞에 놓여졌다. 모두 김종서와 이징옥이 타이순 칸과 주고받은 서신과. 각종 연락망을 통하여 예측한 내부 상황을 모아놓은 책이겠지.
“전하께서도 이 서책을 읽으셨습니까?”
“물론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보냈지만 혹여나 더 많이 보낼 것이 있다면 곧바로 서찰을 보내도록 하라.”
북방은 죽어도 가기 싫었는데 결국 또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하얼빈이다! 강릉까지 말을 타고 가서, 다시 경원에서 용천부(상경용천부의 새 명칭)까지는 육로로. 그 이후는 배를 타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숲, 숲, 평원, 숲 그리고 가끔 보이는 여진족 부락의 반복이었다. 무한정으로 즐겨요! 송화강 뱃길!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이 공기를 후덥지근하게 덥혔다.
“목단강을 따라 내려간 다음. 송화강을 따라서 올라가는 여정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보름 정도 나아가면 재상께서 만드신 군영에 당도할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미 병력들은 모두 이동한 다음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네. 그러니 염려하지 말게.”
형님이 주문한 것은 내전을 유도하며 우리의 손상을 최소화할 것. 두 가지인데 하나같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전쟁이 아니고 내전으로 바꾸면 시간을 더더욱 벌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다 선실로 내려왔다.
“할 일이 없으면 책이나 읽어야지. 타이순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서신만 수십 개를 보냈단 말인가.”
김종서의 정치력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수없이 보내진 타이순의 서신은 기본적으로 사소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하지만 김종서가 쓸 만한 물자를 줄 경우에는 민감한 정보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반면 이징옥은 계략에는 서툰 사람이 맞아. 김종서와 달리 부임하고 나서부터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니고 상식적인 정보 수집 수준으로 행동하였군.”
김종서가 물러난 이후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실속이 없었다. 김종서처럼 정보를 더 얻어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것이다. 우직한 이징옥의 성품을 생각하면 내가 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요동에서의 전쟁으로 몽고의 정치에 개입할 방법이 있으니 사용할 수단은 많다. 차기 칸을 정하는 예케 쿠릴타이의 참석 권한을 얻어냈으니 그것도 수단 중 하나지.
“그러니까 결국 끝까지 우리랑 밀약을 맺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군. 이건 정말 잘 한 일이다.”
다시 서책을 읽어 내려가자 당시의 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초반은 에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보냈는지 그의 표정 하나까지도 적어서 보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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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년 11월. 휘하 부족들을 해산시킨 에센은 승전인 양 느긋하게 카라코룸으로 귀환하였다. 타이순이 조선에 포로로 잡혀 살해당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먼저 치려는 계획이었다.
“정녕 칸께서 살해당했다면 복수를 위하여 조선의 본토를 쳐야 합니다.”
“이번에는 칸의 복수를 도울 것이니 요동을 공략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조선과 명의 연계를 끊은 다음 조선을 먼저 쳐야겠지.”
에센은 확실히 알아차렸다. 명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조선을 먹어치우고 그 자원을 바탕으로 다시금 전쟁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나서야 명의 물량을 받아칠 가능성이 생긴다.
“너무나 큰일이 아닙니까. 본래 전쟁의 시작은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기 위하여…….”
“알락! 지금 우리가 무엇에 졌는가. 숫자에 밀려서 패배한 것이 아닌가!”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태사의 속뜻을 알아차리는 이는 극히 적을 것이니 우선 명분을 택하십시오.”
자신이 왜 칸이 될 수 없는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위업을 쌓으면 될 일이다. 다시금 명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얻는 것은 위업이다. 달성한다면 그깟 쿠빌라이의 핏줄이 아니더라도 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에센에게 들려온 소식은 타이순이 멀쩡히 살아 있으며, 쿠릴타이를 소집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다급히 말을 달려 카라코룸으로 향했다.
“칸께서 살아 계시다니 참으로 다행이오. 얼마나 크나큰 패배를 당한 것이오? 그리고 서군을 담당한 마오나하이는?”
에센은 예의를 갖추어 나름 정중하게 인사하였지만, 그런 인사를 타이순은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받아쳤다.
“패배라네. 오이라트의 군은 거의 다 목숨을 잃었고 나 또한 가까스로 목숨만 건져 돌아왔다네.”
“정녕 사실이오? 칸께서 패하였으니 유감일 뿐이군.”
“아니지, 자네 또한 북경을 두들겼지만 소득이 없지 않았나. 우리 둘 다 패한 것이군.”
“지금 패했다 하셨소! 우리 둘 다 패했다고?”
엄밀히 말하면 목적 달성을 하지 못했으니 패배가 맞다. 그러나 타이순 또한 할 말이 많았다. 당시 전투에서 자신만 있었다면 수에 밀려서 달아났을지언정 비참한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냐 그래! 나는 마오나하이 덕분에 패했지! 상황이 좋지 않아서 퇴각하자고 하였는데 녀석이 끝까지 돌격하더군! 일만 오천의 병사를 함정에 쑤셔 넣었으니 어떻게 이기겠나!”
“그렇게나 멍청한 수를 썼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건가!”
“처음에는 내 손해가 훨씬 더 컸고 나는 분명 퇴각을 말했어! 녀석이 끝까지 우기면서 싸워보자 하더군! 마지막에는 내가 뜯어말려도 전 병력을 이끌고 돌격했으니까!”
당시 타이순은 불리한 상황에서 퇴각하려 하였으며 실제로도 첫 손해 이후에는 싸움을 기피하였다. 하지만 마오나하이가 이길 수 있다 종용한 덕분에 함부로 물러나지 못했다.
둘 다 할 말이 넘치고 넘쳤지만 누구도 상대를 말로는 꺾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서로 간에 언쟁이 계속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다들 그만하십시오. 지금은 쿠릴타이가 열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진정하시란 말입니다!”
보다 못한 알락이 쿠릴타이가 열리는 게르에 둘을 억지로 끌어들였지만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제 둘의 싸움은 쿠릴타이를 절반으로 나눌 내전의 씨앗이 되었지만 언쟁은 끊어지지 않았다.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비방과 폭언을 일삼았다.
“그래서 뭐! 200보 거리에서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괴물딱지들이 모인 조선 군대인데 고작 4만 가지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난 4만의 병력만 가지고 명군 20만을 쓸어버렸는데 네놈이 졸렬하게 행동하였기에 그러겠지! 마오나하이가 그렇게 거슬렸나?”
“차라리 나 혼자서 2만의 병력만 끌고 갔으면 졌을지는 몰라도 참패는 당하지 않았다! 짐덩어리나 다름이 없었어!”
에센의 이마에는 힘줄이 삐죽 솟아 나왔다. 당장 칼을 뽑아 쳐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칸이며 쿠빌라이의 혈통이다. 흥분을 가라앉힌 에센이 뒤를 돌아보면서 외쳤다.
“알락! 밖에 나가서 타이순이 원정에 참가시켰던 케식(친위대)을 아무나 한 명 데려와라! 증언을 들어보면 알 일이니까!”
뒤에서 손톱을 씹으며 초조해하던 알락은 재빨리 달려 나갔다. 잠시 뒤 알락과 케식 한 명이 들어와서는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니 전쟁에서 있었던 일을 태사에게 고스란히 말해라.”
“칸께서 명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눈에 두려움이 남아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에센은 개의치 않고 질문을 시작하였다.
“전쟁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말하여라.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네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해야 한다.”
“조선군이 언덕 위에 진영을 쳤고. 칸께서는…….”
케식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마오나하이가 칸의 말을 무시하고 돌격하는 내용까지 오자 에센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가렸다.
타이순이 잘못한 일도 있었지만 마오나하이의 잘못이 더 큰 것은 맞았다. 잘못된 판단으로 병력을 돌진시켰으니 큰 실수다. 후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그 이후에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험난한 상황에서 살아난 것이냐.”
“조선의 왕자가 제안을 했습니다. 칸이 이기시면 아무런 대가 없이 풀어줄 것이라 약조하였고. 칸께서는 직접 조선식 부흐를 벌이러 나가셨습니다.”
“왜 이리 몸을 떠는 것이냐! 네가 정말 케식이 맞아?”
갑자기 케식이 무릎을 꿇더니만 이를 달달거리면서 공포에 질렸다.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 괴물을 죽이려면 케식 모두가 달려들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을 나무토막 던지듯이 휘두르는데 어떻게 이깁니까! 어떻게!”
고성과 비명이 섞인 신음성을 내뱉던 케식은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의 눈앞에서 칸이 비참하게 날아다니고 내리 찍히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감에 짓눌린 자였다.
“조선의 왕자는 갑옷을 맨손으로 찢는 괴력을 가졌으며 흑룡의 몸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한 자에게 칸은 이길 방도가 없어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알겠네. 적어도 패배에 있어서는 마오나하이의 문제도 있군.”
“나 또한 가까스로 탈출하였네. 놈들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조선 어디엔가에서 까마귀 밥이나 물고기 밥이 되었겠지.”
그래도 아직까지 명분은 에센에게 있다. 타이순은 완전히 패하였지만 자신은 피로로 인한 재정비를 하러 퇴각한 것이었다. 이대로 명이 조용히 침묵한다면 시일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무게추가 기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죄송합니다!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요동 일대에 명의 병력 십만가량이 나타났다 합니다!”
에센과 타이순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에센이 그렇게나 많은 명군을 쓰러트렸는데 다시 10만이 요동을 메우고 있었다. 변방에 이 병력을 보냈다면 얼마나 많은 병사가 있단 말인가.
“아직도 명의 병력이 남았다고? 태사, 분명 오십만 가까이 죽였다 하지 않았소?”
“놈들의 병력이 얼마나 되기에 이러는 거요? 정녕 55만을 죽인 것이 맞소?”
놀란 족장들은 폭풍같이 질문을 쏟아부었다. 에센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인지 잠시 침묵하였고 타이순이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조선의 장군에게 들은 바가 있다. 명의 병력은 이백만이 넘는데 고작 오십만을 죽여서 누구 코에 붙이냐 하더군.”
“그게 정녕 사실입니까? 우리가 대체 무엇을 건드렸단 말입니까?”
분위기는 순식간에 타이순에게로 넘어왔다. 이백만이면 몽골 전체의 인구수와 맞먹는다. 예순살 노인부터 세살 아이까지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병력 차이다.
“조선에 말하기를. 명이 지금 입은 손해는 우리로 치면 손에 칼을 맞은 정도에 불과하다 하였는데 그 말이 틀림이 없군.”
이미 전쟁을 일으킬 엄두도 나지 않는게 분명했다. 타이순은 명의 피해를 축소하여 말했지만 분위기가 흉흉한지라 에센도 따로 반박을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쿠릴타이가 조용히 막을 내렸고. 명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친을 맺고. 마시가 재개되었지만 요동에 10만, 대동 일대에 최소 10만의 병력을 보내 북방을 힘으로 내리 눌렀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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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군대가 철군한 지금은 내전이 무조건 일어나겠군.”
내분을 모르는 명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장성을 쌓는데 훼방을 놓으면 일이 헝클어진다. 그러니 이미 소집한 군대를 요동과 대동으로 보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화친을 맺은 것이다.
“현실적인 위협이 맞았겠지. 하지만 결국 장성을 쌓고 병사를 굴리는데 예산이 모자란 게 분명하군.”
뜻하지 않게 오이라트와 몽고 간의 내전을 중단시킨 꼴이었지만 예산이 부족해서인지 명의 병력들은 모두 철수했다. 위소제의 문제점 중 하나가 군호의 파괴로 인한 예산 유출인데 정통제가 그 시작점이었으니까.
“그런데 오이라트가 이렇게 열이 올라있다면 조금만 건드려도 콱 터져 버릴 게 분명한데.”
에센이 조선을 치려 한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참전할 명분 또한 확실하게 세워진 상태이다. 명나라에서 뭐라 해도 적이 함부로 굴어서 먼저 공격했다 하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 건너서 불구경을 할 것이 아니고, 아예 부채질을 해볼까?”
어차피 원정군은 무조건 전쟁에 참가해야 한다. 타이순의 세력을 도와 오이라트를 축출하면 쿠빌라이에 참가하여도 불만이 없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칸을 입맛에 맞게 고르면 앞으로 북방의 문제는 사라지니까.
하지만 우리도 손해를 보며, 북방 영토의 개척도 당장에는 이득이 없는 손해만 남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손해를 보고 상대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하책이다.
“부채질도 아니고 아예 화약도 들이붓고 기름도 들이부어서 다 태워 버려야지. 어차피 손해 볼 거면 상대 손해가 커질수록 좋잖아?”
새로 정립된 국제관계랑, 속에서 곪아온 에센과 타이순 간의 알력다툼을 생각하면서 강물을 바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