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47화 – 조선 쇼군(2) >
그런데 지금 뭐라 했지? 오우치가 잘못했다고 대놓고 말하다니. 참으로 알기 쉬운 사람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대접 좀 잘해줬다고 이렇게 마음이 변하다니.
“그러하니 일본의 옛 역사서를 따져 보아 오우치가 정녕 백제의 후손임을 따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구려. 정녕 백제의 후손이라 하면 이주할 당시의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인데. 쇼소인(正倉院 - 정창원)에서 찾아야 하오.”
“어디에 남아 있다니요?”
“당시의 서적 가운데 중요한 것이 도다이지(東大寺 - 동대사)에 부설된 쇼소인에 있소이다. 지금 교토에 있는 일본서기는 헤이안(平安) 시대에 다시 구성한 사본이오.”
그러니까 가장 오래된 기록은 쇼소인에 있다고? 교토가 아니고 나라에 있어? 하지만 내가 쇼소인이 뭔지 아는 게 더 이상하니 모르는 척 해야지.
“가장 오래된 서적이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오면 도다이지와 쇼소인이 어디입니까? 저희가 찾아가서 직접 필사할 것입니다.”
요시마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명목상 상전인 덴노의 사유물이라서 내가 함부로 손대기 곤란한 물건이니 그렇겠지.
“남도(나라의 옛 일본 명칭)에 있는 사찰의 부설 창고이며 덴노께서 소유한 곳이오. 이 가운데 도다이지에 있는 쇼소인에 칙봉(勅封 - 서명하여 봉인하다)하는 곳이니 함부로 드나들긴 힘들 일이구려.”
“덴노라 하심은 쇼군께 권한을 위임하신 분이 아닙니까.”
“그렇소. 내가 알기로는 옛적에 진무 덴노께서 사서를 편찬하시고 원본을 보관하였으며, 난토쇼토(남도 소각) 사건에서도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기록을 보았던 것 같소.”
결국 나라 시대의 사본이 아직은 있단 말이다. 그놈의 판타지 소설 급의 헤이안 시대 사본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하지만 쇼소인에 들어간다? 일본에서 온 손님이 종묘에서 위패를 직접 탁본하는 것이 쉬울 난이도다.
“하오면 덴노께서 허락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이겠군요.”
“그렇지 않소이다. 사람을 보내 일본서기와 그에 관련된 서적들에 대한 필사본을 만들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쇼군께서 이렇게 배려를 해주시니 드넓은 아량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아니오. 조만간 덴노께 두 개의 그림을 보여드릴 것이니 필사 정도야 아주 쉬운 일이오.”
정말 다행이다. 덴노도 이렇게 접근해서 친해지려면 한 세월이니 그냥 사람을 보내서 일본서기를 필사하는 일이 백 배는 좋지.
더군다나 우호적인 요시마사가 보낸 사람들이 허투루 필사본을 조작하지도 않으리라. 오히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필사하여 다른 서적의 필사본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금 용력을 보여주시겠소? 생각하여 보니 조선에서는 병장기 가운데 활이 으뜸이라 하였는데, 조선에서 오신 분의 활 솜씨를 구경하고 싶소이다.”
이미 얻어낼 것은 거의 다 얻어냈지만 나도 큰놈으로 하나 받을 예정이니 보답은 해야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팔뚝을 드러내면서 자랑했다.
“물론입니다. 사찰이 아닌 곳에서는 얼마든지 활 솜씨를 뽐내볼 것입니다.”
“그런 두꺼운 팔을 가졌다니, 대체 활을 어떻게 쏘는 것이오.”
“본래 화살은 쇠를 엮어 만든 갑옷으로 막아낼 방법이 충분히 있습니다. 숙련된 궁수가 다섯 발을 쏘아야 가까스로 갑옷의 틈을 노릴 수 있지요.”
“그리하여도 조선인들은 활을 잘 쏘니 충분히 빈틈을 노리지 않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활을 가까이서 아주 강하게 쏘는 방법을 보여줘야 하니 다르게 나서야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달자들은 온몸에 철갑을 둘렀고, 그 틈을 노리기에는 활 솜씨가 보잘것없기에 다른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가장 강한 활로 갑옷을 뚫어버리면 충분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거대한 수레를 끌고 다녔으니 충분해 보이는구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고, 정량궁과 육량전(六兩箭)을 난사해 과녁을 아예 박살 내놓자 다들 손뼉을 치면서 환호하였다.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요시마사의 비위를 맞춰나갔다. 안평대군은 귀찮아하였지만 일본서기 필사본은 내 입장에서 그만큼 소중한 서적이다.
“이들은 북방을 지키는 야인들이며, 조선에 귀부한 자들이고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에 능합니다.”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일이 정녕 가능하단 말이오?”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시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정충렬을 비롯한 여진족의 마상재(馬上才)도 요시마사의 마음을 빼놓았고, 안평대군 또한 오가면서 수많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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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이 조금 귀한 물건입니까? 아국은 인삼 200근을 확실히 왜국으로 수출할 것입니다. 그러하니 최소한 10만 근의 구리를 구매하는 것으로 합시다.”
“구리 10만 근이면 은으로 바꿨을 때에 500근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소?”
“아닙니다. 여기에 유황과 수우각(水牛角 - 물소뿔)을 포함한 가격이지요.”
“어허, 유황은 그렇다 하여도 수우각은 곤란합니다. 저희도 오우치에서만 간신히 기르는 형편이니까요.”
아직 일본의 구리광 개발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10만 근의 구리면 64톤 정도니까 지금 조선에서 사용하는 대형 총통 기준으로 350문 정도를 매년 찍어낼 수 있다. 적당한 거래가격이 맞다.
“여기서 더 이상은 나아가질 못하니 방도가 없군요. 그렇다면 인삼 씨앗의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인삼은 각 영주들의 소유인데 씨앗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그것이야 쇼군께서 가지시고 분배하심이 마땅하지 않겠소.”
호소카와는 협상에 참가하지 않는 나와 안평대군이 쇼군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핵심 결정권자인 요시마사가 우리 편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요시마사가 나라의 일에는 관심이 없이 오로지 호소카와의 뜻에 따랐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를 속여먹으려 들다가는 된통 당하리라.
“알겠습니다. 우선 정이대장군께 10년간 매년 열 되의 인삼 씨앗을 보낼 계획입니다. 이미 기르는 방법을 알려 드렸으니 문제는 없겠지요.”
“물론이오, 하지만 값을 매기기가 힘든 물건이구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인(工人 - 기술자)을 보내시는 겁니다.”
“공인이라?”
씨앗을 보내고 사람을 받아온다. 합당한 거래로 보이지만 일본은 소득을 거둘 방법이 없고. 조선은 무조건 사람들을 사용할 수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공정거래지만 최종적으로는 불공정 거래지.
“그렇습니다. 인삼 씨앗은 당장의 소득을 거둘 수 없으며. 사람 또한 나라에 익숙해지고 적응을 마치기 전에는 소득이 나지 없으니 대등하지 않겠습니까.”
“공인이라 하면 어떤 자들이오? 예인은 아닐 것인데.”
“야장(冶匠 - 대장장이), 탐광자(探鑛者 - 광맥을 찾는 사람), 뛰어난 어부 정도입니다.”
호소카와의 표정이 확 풀린다. 기술자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지, 다른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조선에서는 기술자들이 부족하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 더욱 부족하다.
“조선은 명과 가깝지 않소. 혹여나 조선이 철을 다루는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요?”
“다름이 아니고 전조시절에 소실된 것이 너무나 많아서 실력이 부족하지요.”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알겠소. 그렇다면 탐광자가 부족한 이유도 알 것 같구려.”
한반도에 분명히 있는 구리광맥을 조선의 탐광자들이 찾지 못하는 이유? 구리광맥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 기술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한반도에서 대대로 구리광맥을 찾은 자가 존재는 하겠는가.
“어떻습니까. 서로 당장에 이득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합시다.”
“그렇소? 하지만 그런 이들은 가족 단위로 이주해야 할 것인데 충분하겠소?”
“물론입니다. 기껏해야 고을을 이루기도 부족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시 회의가 종료되고 숙소로 돌아갔다. 어려운 일은 모두 끝났고 이제 요시마사의 결정만 내리면 된다. 요 며칠 동안 어울려 다니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는데 이제 끝이 보인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는데 신숙주가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아국에 그렇게나 야장이 부족하였습니까?”
“물론일세. 기껏해야 조선 팔도에 1,000명이 있을 정도더군. 철을 만드는 양은 늘어나는데 야장의 수는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네.”
“1,000명이라 하셨습니까? 왜국에서 움직이면서 본 대장장이만 300명이 넘을 것인데.”
“그나마 많게 계산한 것이네. 지금 각 기관에 소속된 야장을 합쳐야 500명이 겨우 넘어가고 있으니.”
철의 생산량 증가를 대장장이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손이 덜 들어가는 주물은 잘 만들어지는데 검이나 화살촉 같은 강철은 서서히 부족해진다. 특히 무기류의 부족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어서 형님도 초조해하고 있었다.
“생각하여 보니 명부에 올라와있지 않은 야장들도 있겠습니다.”
“그렇지. 그렇기에 주상전하께서도 직접 지시하신 것이라네. 여기에 탐광자는 내 욕심이 들어간 것이고, 어부야 잡을 고기가 많은데 방법을 모르니 왜인들의 지식을 빌려야지.”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정이대장군이 어떻게 나설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협상을 하는 동안 나는 그의 환심을 충분히 샀다네.”
신숙주가 나를 보면서 감탄한다. 입으로 싸우는 방법도 있지만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무로마치 막부의 중신들과 다이묘들은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이제 요시마사의 앞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릴 차례다.
“먼저 조선에서는 매년 열 되의 인삼 씨앗을 보낼 것이며 종자의 수로 따지면 약 오만 개입니다. 여기에 매년 이백 근의 인삼을 적간관(赤間関 - 현 시모노세키)으로 직접 보낼 것입니다.”
“아주 좋소. 하오면 쓰시마와의 무역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이오.”
“쓰시마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세견선을 보낼 것이며. 중계 무역 또한 기존의 방식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쓰시마는 살려둬야 한다. 잘못 관리하면 해적질이나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설령 정벌하려고 해도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유지비가 너무나 많이 들어간다.
“아주 좋소. 그렇다면 아카마가세키(赤間関)에서 받은 인삼에 대한 보답으로. 10만 근의 구리, 이천 근의 유황 그리고 삼백 개의 수우각을 각 다이묘들이 합심하여 모아올 것이오.”
“동래에 있는 왜관은 쓰시마에게만 열어도 되겠습니까?”
“그러하다면 충분할 것이오. 다만 시일을 정할 것인데 3월 초하루가 어떻겠소.”
협상이 그렇게 이어져가는 가운데 드디어 가장 값어치를 매기기 어려운 인삼 씨의 차례가 되었다. 요시마사는 가격을 논하는 자리에도 멀뚱히 앉아 있었으나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다음은 인삼 씨앗 열 되요. 총 오만 개이니 이것의 대가로 야장, 탐광자, 어부를 비롯한 사람들을 보내기로 하였는데, 다시 생각하여 보니 수가 너무 많구려.”
“본래 야장 일백, 탐광자 오십, 뛰어난 어부 이백 명을 각기 보낸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야장의 급료가 일 년에 은 두 냥(일본 은 1냥 = 37.5g = 조선 은 10냥)인데, 이런 이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소. 삼십 년이면 은 60냥이니 손해가 크오. 어부 이백은 그대로 보낼 것이나 나머지는 절반으로 줄이겠소.”
처음에 너무 우리 뜻대로 나아간다 했다. 한번 보내면 돌아오질 못할 공인을 급료로 계산하고 있네. 보다 못해서 내가 나섰다.
“일본의 공인을 받아오는 조건이 인삼 씨앗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떠나간 사람이 벌어올 돈을 생각하는 겁니까.”
“하지만 사람이 갔다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영영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참으로 우습구려, 차라리 한 사람을 사들이는데 필요한 값을 따질 것이지 이게 무슨 생각이십니까.”
“사들인 사람은 다시금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선으로 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지요.”
얄밉게 미소를 짓는 호소카와를 보니 열이 올라왔다. 그렇게 눈싸움을 벌이자 요시마사가 헛기침을 하더니만 조용히 호소카와에게 말을 시작했다.
“칸레이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인삼 씨앗을 잘 기른 농부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소?”
“그것이야 농부의 땅과 관련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인삼은 은의 세 배나 되는 값이오. 인삼을 밭에서 한 근 길러낸 농부가 생겨난다면 그는 일 년에 은으로 45냥을 버는 자요?”
“아닙니다. 인삼 씨앗을 준 자가 따로 있으며. 씨앗을 기를 방법을 알려준 자도 따로 있습니다.”
요시마사가 이렇게 질문을 하니 호소카와가 어리둥절해서 말을 한다. 나는 이미 다음에 나올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인삼이 한 번만 소출을 거두는 것도 아니요. 그러한데 어찌 사람의 값을 훗날까지 계산하며 인삼 씨앗의 값은 그렇지 않는 거요.”
“그것은 훗날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보내면 당장 새로 구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라 사이의 일이오. 이게 공정하다 생각하시오?”
어찌 보면 핵심을 찔렀지만 요시마사가 너무 세게 행동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휘하 대신들을 저렇게 윽박지르다니. 이제 정치력이 있건 없건 제대로 된 쇼군 노릇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버리는데 요시마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선에서 오신 분들께 폐를 끼쳐 드릴 수도 있어서 미안하오. 하지만 누구의 뜻이 옳은지를 다투다가는 한 해가 지나가도 모자랄 것이니 조금 법도를 어겨보겠소.”
숨을 고르던 요시마사가 말 그대로 폭탄을 떨어뜨렸다.
“조선에서 하였던 야장 일백 명과 탐광자 오십 명이라는 숫자는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합당하다. 또한 이 씨앗을 공정히 나누는 방법 또한 마련해 두었다.”
아무리 17세의 쇼군이며 정치력이 없다지만 권위는 온전하다. 그 순간 호소카와를 비롯한 자들은 헛숨을 들이키며 놀랐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인삼 씨앗을 받으려고 하면 조선으로 보낼 공인들을 채우도록 하라. 수를 넘어갈 경우 솜씨를 보아 부족한 이를 줄여나갈 것이다. 비율에 따라 인삼 씨앗을 배분할 것이니 그렇게 알라.”
벌떡 일어나서 돌아가는 요시마사를 중신들이 눈알이 빠지게 쳐다보고 있다. 정치력이 부족한 요시마사의 머리에서 나온 것 치고는 정말 신의 한수다. 조선에 사람을 보낸 만큼 인삼 씨앗을 분배한다니.
“저, 저기 이러신다면! 아니, 어찌하여!”
“그러니까 지금 쇼군께서 하신 말씀이…….”
“알아서 사람을 보내란 말씀이시지?”
영주들은 서로 수군거리면서 얼마의 사람을 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호소카와는 오우치와 연계된 거대 세력이니까 본보기를 보여야 할 것이고. 가장 많은 인원을 보내야 모양세가 잡히겠지.
사소한 문제나 분쟁이 있어도 모두 일본의 일이다. 공인들의 실력이 좋으면 공급량을 조금 올리는 식으로 불만을 줄여나가면 충분할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군. 저런 해결 방법도 있었다니.”
그런 혼잣말을 하니 저 멀리서 호소카와가 호들갑을 떨면서 요시마사를 잡고 생각을 바꿔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쇼군을 잘 관리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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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도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없었다. 요시마사의 제안으로 각 다이묘들 간에 출혈 경쟁이 생겨날 기세였으니 쇼군의 권위를 인정해야겠지. 그렇게 나를 시작으로 한 조선 회례사 일동은 며칠 동안 여행준비를 마치고 귀향길에 올랐다.
“정월이 되기 전에 아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오. 정월이야말로 뜻 깊은 날이니 함부로 손님을 잡으면 법도가 아니지 않소.”
일본 쇼군에서 조선 쇼군이 된 요시마사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배웅했다. 10월 21일에 일본에 도착하며 시작된 회례사는 12월 14일에 막을 내렸다. 조선 사람들은 조선 땅에서 설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의견 덕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서책이 있었다니, 쇼군께서 보내신 분들이 애를 많이 썼을 것이 분명합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혹여나 내용을 훼손할 자가 있을까 염려되어 휘하의 예인들을 보냈으며, 그들 또한 쇼소인에 있던 유물들을 보고 눈을 틔웠다 하오.”
다른 것은 몰라도 책은 거절하지 않았다. 일본서기 원본의 필사본이 30권이고 고사기를 비롯한 각종 고서적들의 원본, 여기에 쇼소인에서 보관하고 있던 서적들이 닥치는 대로 필사되어 쌓여 있었다.
현대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공개하지 않을 서적들이지만, 우리의 조선 쇼군님의 휘하에 있던 예인들은 안평대군에게 홀딱 반해 있으니 아주 완벽하게 내용을 필사했으리라.
“실은 일본서기를 조금 읽어 보았소. 오우치는 백제에서 온 자의 후손이 맞더구려.”
“그렇습니까?”
“하지만 조선에서 그들에게 얼마나 보답을 할 일인지는 알아서 결정할 일이 아니겠소. 다른 서책도 비교하여 보며 오우치의 영토와 규모를 짐작하여 주시오.”
이제는 돌아갈 차례다. 올 때에는 소젠과 함께였지만 신미대사를 통해 물어보니 야마나 소젠은 중병을 앓고 있다더라. 아마 화병이 맞겠지.
“쇼군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나 또한 즐거운 일이었소. 부디 다음에도 회례사로 와주시오.”
“일이 바쁘지 않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생각에도 없는 인사를 마치니 정충렬을 비롯한 여진족들도 다 모였고, 앞으로 매년 회화를 그려 보내주기로 약속한 안평대군 또한 인사를 올렸다. 셋츠(현 오사카)로 향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