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102화 (102/573)

< 2장 41화 - 근자일본국행(1) >

무로마치 막부의 어소에서는 토의가 한창이었다. 아직 어린 쇼군을 대신하여 나온 칸레이(管領 - 관령, 쇼군의 휘하에 있으며 통치를 보조한다) 호소카와 카츠모토는 조선의 행동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대군이라는 자는 참으로 호탕하고 대범한 이였습니다.”

“호탕하고 대범한 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네. 인삼이 얼마나 대단한 값어치를 지닌 물건인지 누구나 알지 않는가.”

쓰시마를 구해서 안심하였던 소 사다쿠니는 다급하게 교토로 향해서 이 자리에 있었다. 이미 일이 벌어질 대로 벌어져 쓰시마에서는 처리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오나 흉포한 도이(여진족)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수십이나 되는 도이들이 대군이라는 자의 호통 소리에 고개를 숙이니 참으로 대단한 자가 아닙니까.”

“그래,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라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일지가 궁금할 뿐이네.”

조선의 말이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걸 알려면 다른 곳에서 정보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조선의 북방은 명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명에 사신을 보낸 것이 몇 년 전이었지?”

“분안 5년, 지금으로부터 6년 전입니다.”

한 관료의 대답을 들은 카츠모토는 짜증이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명에 사신을 보낸 것은 분안(文安) 5년(1448년)이다. 당시에도 칸레이의 직책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명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받아올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조선처럼 1년에 3회 사신을 보내는 일이나, 유구처럼 2년에 1회 사신을 보내는 일을 멍청하다 생각하였고 10년에 한 번 열리는 감합무역의 이득만 생각했었으나 생각해 보니 정보를 얻을 길이 막힌 것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뒤 류큐에서 소식을 보내왔었지. 당시에 뭐라 하던가?”

“사신을 보내 북경에 기거하려 하였으나 병졸들이 떼로 올라가며 행로를 가로막았다 합니다. 그리하여 다음 해에 조공을 보냈다 하더군요.”

“류큐에서 사신을 보냈으나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음 해에 사신이 왔지만 황제가 바뀌어서 오히려 고생하였다 하더군요.”

토목의 변은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일이지만 역사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일본열도에서 상세히 알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저 ‘명나라 황제가 바뀌네? 새 감합무역 준비해야 하니 귀찮네?’라면서 넘어갔을 일이었다.

“명의 황제는 아주 젊었는데 연호가 바뀌었다고? 황제가 살해당했나?”

“그 이상은 모릅니다만. 연호를 새로 고쳤으니 황제가 바뀐 것은 확실하다 하더군요.”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차근차근 더듬어보아도 답이 없었다. 명의 황제가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 당했다면 국상을 행하면 된다.

그런 사소한 일은 류큐의 사신을 받지 않은 이유로는 적당하지 않다. 거기다 난데없이 조선에서는 북방에서 전쟁을 벌였고 지금도 전쟁 중이라 하니 답은 하나다.

“알겠네. 그렇다면 명이 북방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조선과 공동 전선을 펼친 것이 분명한 것 같군. 장인어른과도 상담을 하고 쇼군께 말씀을 드려야겠네.”

“어르신은 출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정무에 손을 놓지는 않으셨네. 노리토요(야마나 노리토요. 현 야마나 가문의 가독) 그 어린 녀석이 일을 능숙하게 하는 줄 아는가?”

카츠모토가 가마를 타고 난젠지로 향하니 절에 있던 스님들은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야마나 소젠(山名宗全)은 바깥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법당 안에서 목탁을 두들기며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조선이나 명에서 출가하고 법명을 받는다면 속세를 벗어나 불법에 귀의한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그저 아들에게 가문을 물려준다는 명분으로 출가하였을 뿐이었다. 카츠모토는 당당하게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소리쳤다.

“어르신.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시주께서 무슨 일이시오.”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속세를 벗어난 흉내는 그만두시고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나 나눕시다.”

승려 소젠이 아닌 야마나 모치토요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난젠지의 법당에는 순식간에 승려들이 사라지고 정권의 실세인 칸레이와 그의 장인이자 조언자가 남아있었다.

“조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연유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추정하건대 명과 조선이 연합하여 머나먼 북방에 있는 야인들과 싸웠고, 명은 패하였으며 조선은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강대한 명국이 조선의 힘을 빌려야 한단 말입니까?”

“그만큼 북방의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닐 것인데 저는 아직 미숙하기에 장인어른의 혜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카츠모토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아직까지 야마나 가문의 힘은 필요하고 함부로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자. 자신보다 나이가 30 가까이 많은 자이니 경험을 무시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신 연유가 있을 것인데. 조선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조선에서 인삼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인삼을 계속 보낼 것이라 하더군요.”

“압니다. 사찰 안에서도 소문이 자자하여서 한 뿌리 사서 먹었지요. 이러다가 가산을 인삼으로 탕진하게 생겼으니 부처님께서 노하실 것입니다.”

“그거라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조선의 대군이라는 자가 북방의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인삼을 파는 것도 모자라 인삼의 모종과 씨앗을 재배하라고 보낼 계획입니다. 그 대가로 구리와 유황 그리고 물소 뿔을 공급하라 하더군요.”

들고 있던 찻잔이 마룻바닥으로 굴러 퍼석 소리를 내며 깨졌다. 조선이 가진 최고의 보물인 인삼을 자신들에게 보낸다고? 구리와 유황처럼 땅에서 캐면 되는 자원을 받는 대가로?

“대체 그런 미친 생각을 한 자가 누구입니까?”

“북방을 호령하는 장수인 수양대군이라는 자입니다. 이번 사신행에 반드시 낄 것이라 하더군요.”

“지금 당장 아카마가세키(赤間関 - 현 시모노세키)로 향하겠습니다. 직접 만나보지 않고는 그자의 속을 모르겠습니다.”

소젠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였지만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상대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으니 어떻게든 직접 대면하여 이 일을 풀어나가야 한다.

“직접 가실 이유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출가한 몸이니 승려의 신분이고, 그저 불법을 논하는 자리로 끌어들이면 될 것입니다. 일전에 들은 소문인데 조선 왕의 차남과 삼남은 불법을 잘 안다 하였으니까요.”

교토에서는 야마나 소젠을 시작으로 하여 수많은 가문에서 보낸 자들이 조선 사신들이 머물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이번 사신은 이전까지 조선에서 온 사신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

1453년 10월 중순. 쌀쌀함이 느껴지는 벽란도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름 아닌 일본으로 향하는 회례사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벽란도에 이런 대규모 항구가 들어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전하 야인들을 함부로 남도로 보내시면. 동래로 향하는 길에 있는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설령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겁을 먹어 소란을 피울 지도 모릅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방법이 없구나. 도성까지는 쉬이 올라왔으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이들이니 도성 인근에 있는 벽란도를 개수하여 배를 보낼 수 있게 하여라.’

나름 백성들을 생각한답시고 간언을 올린 사헌부 관리는 두 달간 지독한 고초를 겪으면서 막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조세미를 운반하던 작은 항구를 개수하여 갑선 열 척 이상을 정박시킬 항구를 만들었고, 마침내 사직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장관이 따로 없습니다. 형님께서 갑선(甲船 - 정크선)을 만들 사람들을 명국에서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이전처럼 작은 배로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배를 만들 줄 아는 방길주를 데려온 것은 맞으나 이렇게 변용한 것은 재주 있는 자들이 힘을 합친 덕분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보낸 사신은 1443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다시 보내는 이번 회례사는 격이 달랐다. 당장 인원이 300명의 2배인 600명이다. 배 한 척에 50명이 탑승하고 여기에 기본 운항 인원을 합치면 총인원만 1,000명이다.

가장 큰 갑선이 적재량 기준 1,300석이 조금 넘으니까 배수량으로 치면 150톤급 정도 되나? 지금까지 조선에서 쓰던 선박보다 두 배는 크다. 그런데 배의 색상이 여태까지 조선에서 보지 못했던 검은색이라 조금 이상하다. 옻이라도 칠했나? 밧줄을 점검하던 선원에게 물어 보았다.

“이 배는 어찌하여 겉에 포판(나무껍질)을 붙이지 않고 이렇게 검은 칠을 하였는가?”

“이것이요? 경원부에서 나는 흑토를 가마에 구워서 뽑은 그을음을 발랐다 하더군요. 시험 삼아 행해보니 바다 벌레가 들어가질 못하여 경원에 들르는 배는 모두 이렇게 그을음을 바릅니다.”

“흑토를 구워서 나온 그을음을 발랐다고?”

상세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흑토에서 나오는 그을음이면 역청탄에서 나오는 타르다. 훈춘 일대의 역청탄을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먼저 타르라도 뽑아내서 사용하는 것 같다. 내가 신기하게 바라보자 안평대군도 배의 표면을 유심하게 보았다.

“이맹전은 재주도 좋습니다. 바다 벌레가 먹지 못하니 수명도 늘어날 것이고 배가 검은색이니 얼핏 보면 흑단(黑檀)나무와 같군요.”

“왜인들이 이러한 배를 보면 얼마나 놀랄지 궁금하군.”

“가까이서 보니 얼룩덜룩하며 역한 냄새도 풍깁니다만. 왜인들이 아국의 선박에 접근이나 하겠습니까? 멀리서 보고 감탄할 방도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안평대군의 논평을 귓전으로 흘려듣고 조선화가 진행된 갑선의 모습을 살펴봤다. 목판은 한선의 방식대로 두꺼운 목판을 나무못으로 연결하여서 약점인 내구성을 보강하였고, 하부는 첨저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역사상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배다.

“그렇군. 훗날에는 천축까지 배를 타고 오갈 수도 있겠어.”

“천축이라뇨? 저는 가는 일이 고단하니 형님이 가보심이 어떠하십니까.”

“농담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하지만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드는구나.”

농담이 아니고 진담이다. 규모의 한계는 있겠지만 150톤의 선박을 무리 없이 만들면 300톤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하겠지. 여기에 천축까지 항로를 뚫을 사람만 있다면 충분할 거다. 경험자가 없으면 죽어라 고생하는 것이 답이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대군 어른! 모든 짐을 올렸습니다!”

“알겠네! 그렇다면 다들 승선하게나.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어 아국의 빼어난 면모를 왜에게 보여줄 것이니 의관을 정제하고 품행을 단정히 해야 한다네!”

강화도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배에 올라탔다.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회례사는 대표역할인 정사가 종2품에서 정3품, 부사가 종3품에서 정4품 정도인데, 이번 사신은 아니다.

정사는 나고 부사는 안평대군이다. 대군은 품계로 따지면 정1품이니 보통 사신과는 격이 다른 외교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당장 일본의 실질적 국왕인 쇼군의 조선식 분류가 대군이니 격은 차고 넘친다. 여기에 불교계 인물도 한 명 끼어 있다.

“대군 어른께서 이 미천한 승려를 왜국으로 함께 데려가시니 덕이 깊으십니다.”

“얼굴에 이리도 금칠을 하시다니. 신미대사께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이 몸이 왜국의 불자들과 연을 맺을 기회를 주셨으니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신미대사는 고맙다는 말은 하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지난 한가위에 일어난 내수린 사건으로 생긴 감정의 골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신숙주를 비롯한 관료들이다.

“신 직전(直殿 - 신숙주의 품계, 집현전의 정4품)과 함께 명나라를 간 일이 십 년 전인데 여기서 왜도 같이 가보는군.”

“어명을 받들 뿐이니 천축으로 향하는 일도 고달프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그렇게 행하면 좋겠군.”

신숙주를 비롯한 역관들 다음에는 북방의 여진족들. 정확히는 정충신을 시작으로 하여 만호와 판관직을 수행하는 여진족 족장들과 그의 부하 40명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족장님 이건 도대체. 우리가 배를 타고 왜국까지 간단 말입니까?”

“못하나? 우리 조상들은 왜국을 약탈하고 돌아왔다 하더군.”

“그건 조상님들이고 우리는 배라는 물건에 타본 적이 없습니다!”

여진족들의 조상이면 몰라도 조선으로 귀부한 여진족은 항해 경험이 없다. 요동에서 살다 왔으니까 기껏해야 조각배를 타고 강에서 물고기나 잡았을 것이 뻔하지.

머리를 싸매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일본으로 가서 육로로 가지 않고 세토 내해로 가야 하지? 우리는 귀중한 인삼을 가지고 있잖아? 이제는 우리가 갑 아닌가? 그리고 나는 쌩 무식한 놈 아닌가?

“듣기로는 왜국에서도 계속 배를 타야 한다는데, 이러다가 저희가 말라 죽겠습니다.”

“그럼 어쩌라고! 조상님들이 한 일을 우리가 못한다? 그런 말인가?”

“염려하지 말게. 내가 왜국의 관리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육로로 향하게 하겠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희는 한 달 동안 배 위에서 시달리다 말라 죽을까 염려하였습니다.”

여진족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함을 표시했지만 신숙주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돌아봤다. 당연히 내가 하는 짓거리는 보통 상황에서는 상상도 못 할 외교적 결례이다.

“왜 그렇게 빤히 보는가?”

“지금 저희 일행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평시의 회례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육백 명 규모입니다. 여기에 대군으로 봉작된 분이 둘에! 수많은 인삼과 아국의 물자가 섞여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일을 왜 우리가 고민하여야 하는가. 왜국에서 고민할 일이 아니던가?”

이러한 상황을 안다면 아무리 쇠퇴해가는 막부라고 해도 경기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당장 여진족들이 호위 병력에 포함되니 대열의 양옆에 설 것이니까.

“아무리 그리하여도 결례입니다.”

“왜인들에게 신의가 있는가? 잡소리를 하면 모피를 조금 쥐어 주면 끝날 일이네.”

일본에서 모피 비싸잖아. 호랑이 모피 하나면 충분할걸? 충격과 공포를 왜국에 조금 퍼뜨리는 것도 좋지 않겠어? 문화적 침략을 자행하기 이전에 선수를 좀 쳐야겠지.

요괴나 다름없는 도이들이 절대 충성하는 북방의 맹장으로 각인시키면 충분할 거다. 그렇게 말하자 신숙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선실로 들어갔다. 삐지긴 했지만 어쩌겠나? 내가 갑인데.

“모두 배에 올라라! 북방에서 온 자들이 토사곽란을 심하게 할 것이니 가급적 조심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흑우야, 가자!”

흑우는 배를 타본 적이 없지만 나를 주인으로 모시는 녀석이니 멀미 정도는 참아낼 수 있겠지. 배가 물살을 가르며 떠나간다. 외해로 나가서 바로 북서풍을 받으면 보름 안에 일본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다.

-----------

10월 말이 되었고, 조선의 사신들을 맞이하려 분주한 일본인들은 인삼을 받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쓰시마와 이키 일대에는 수많은 영주들이 고용한 연락선들이 바다를 수놓고 있었다.

“오우치의 힘이 강대한데도 다들 인삼에 미쳐서 사람을 보냈으니. 욕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겠다.”

야마나 소젠은 출가한 것으로 보이게 승려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대로 조선의 사신들에게 끼어들면 될 것이다.

수많은 영주들이 사람을 보내왔지만 자신과 같은 가독 이름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우치의 힘이 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 소식을 듣는 선에서만 만족한 것 같았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바다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조선 배가 직접 온답니다!”

저 멀리서 작은 배가 쏜살같이 노를 저어오더니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 내렸다. 옆에 있던 오우치 마사히로가 숨을 헐떡거리던 자를 붙잡아 상세히 물어봤다.

“지금 뭐라 하였나?”

“조선 사신들이 쓰시마를 그대로 통과하여 바로 이곳으로 향한다 합니다.”

“바로 이곳으로 향한다고? 사람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군.”

분명 10월 말에 도착할 것이라 하였으면 조선의 도읍에서 동래까지 육로로 내려오고, 쓰시마에서 하루를 머문 다음, 자신들이 보낸 선박으로 교토까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잘 된 일이다. 여독을 며칠 동안 풀 것이니 조선 사신의 틈바구니로 끼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저기 멀리 배가 보입니다!”

“어디, 어디 보자. 돛대가 아주 높군. 조선에서 만든 새로운 배 같은데. 옆에 작은 배는 쓰시마에서 응대를 위해 보낸 배 같군.”

모든 선단이 시야에 들어오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 사신들의 규모가 제법 크다 하였는데 보통 큰 것이 아니다. 저런 커다란 배라면 한 척에 60명은 타고도 남으니까. 그 커다란 배에서 통역을 위한 자들이 먼저 항구로 내려왔다.

“조선에서 왔소! 대군 어른께서 배에서 내리고자 하시니 준비를 하시구려.”

“알겠소! 자리를 만들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항구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큰 배를 바다로 내보내 자리를 만들고, 커다란 조선의 배를 끌어당기기 위해 작은 배에 사람들이 올라타 바다로 나갔다. 맨 앞에 있는 가장 커다란 배 세 척이 천천히 정박을 위해서 돛을 접고 밧줄을 던졌다.

맨 앞에 있던 검은색으로 칠해진 배에서 판자가 내려왔고, 사람 하나가 말을 타고 내렸다. 조선의 관복을 보니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 짐작했는데 그것보단 다른 쪽으로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작아?”

“아니, 큰 거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저렇지?”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몰랐지만, 안내하기 위해 말고삐를 잡으려 달려간 하인을 보자 그 크기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말이 작거나 사람이 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승마한 사람도 크고 말도 크다, 아니 거대하다. 그렇게 거대한 사람과 거대한 말은 천천히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반갑소. 이번 회례사의 정사(正使)로 오게 된 수양대군이라고 하오.”

그의 고함이 항구 전체를 울렸다. 그렇게 일본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회례사가 시작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