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37화 - 혼담(婚談)(2) >
그렇게 생각하니 나와 내 아내도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놈의 태조대왕의 혈통은 정말 천하의 무골이 따로 없다니까. 아닌가? 그냥 내가 잘 키운 것인가? 이건 도저히 모르겠다.
“걱정 마시오. 입신체비를 행한다고 신장이 더 커지지는 않소. 몸이 더 불어날 뿐이니.”
“대군 어른을 제가 일전부터 보아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염려 마시구려. 육 척 장신(여기서는 영조척으로 180㎝가량)이면 족하지 않겠소. 현동아, 이제 들어가 보거라.”
본래 사위와 장인이 만나는 일은 예법에 어긋나지만, 이 시기까지는 국조오례의 같은 빡빡한 예법이 없어서 이런 방식으로 약간 우회하는 일은 가능하다. 본래 한확과 나는 만나서 나라의 일에 대해 논의한다는 핑계로 왔던 것이니까.
“정말로 감사할 뿐입니다. 본래 지식은 채울 수 있지만 몸은 타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몸이 타고났다니. 지금에 와서야 몸이 튼튼하지만 현동이는 두 살까지는 정말로 몸이 허약했소. 기르면서 얼마나 걱정을 하였는지 몰랐는데 저리도 장성하다니.”
“몸이 허약하다니요?”
슬슬 물꼬를 터보자. 아내가 원하는 일은 며느리를 먼저 봐서 일종의 자격검사를 하는 일이다. 현동이가 허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위장이 안 좋았던 영향으로 편식이 좀 있어서 그랬지, 나중에 2차 성징기가 되니 오히려 쑥쑥 자라서 내가 부담될 지경이었지.
“처가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고. 상왕전하께서도 어의를 보내셔서 현동이의 몸을 보하는 약을 어린 시절부터 먹인 적이 있었으나 여섯이 될 때까지 도통 나아지질 않았소.”
“그렇다면 어찌 육 척 장신에 저리도 튼튼한 몸으로 바뀌었단 말입니까.”
실은 취미 삼아 운동 몇 가지를 알려주고 해보니 식욕이 돋고 편식도 줄면서 모두 잘 먹는 대식가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적당히 뻥을 섞어야지.
“입신체비를 응용하여 여러 놀이를 시켰소. 놀이라 속이고 입신체비를 응용한 요륜(훌라후프)나 도삭희(줄넘기)를 시작으로 하였으니 효험을 충분히 보았소.”
“그렇습니까? 어린아이도 입신체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어린아이라 하였소? 이미 안사람도 현동이도 모두 입신체비를 알게 모르게 배웠소. 어린아이뿐만 아니고 아녀자 모두를 위한 입신체비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가장 퍼진 것이 우모구(배드민턴)요.”
요건 몰랐겠지. 현대에서는 당연히 여성회원의 PT도 했었는데 여기서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거의 불가능해서 우회적으로 나선 거다. 최소한 기초 체력이나 국민 체육개념이라도 먼저 유행시켜야 바탕이 깔리지.
왜 불가능하냐고? 아무리 남녀차별이 적은 고려시대의 풍습이 남아 있다 해도 여자 여럿을 데려다가 남자 혼자서 가르친다? 고려시대 기준으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녀자를 위한 입신체비라 하였습니까? 설마 혼인 한 다음에는 입신체비를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소이다. 아녀자를 위한 것이나 몸을 움직이지 않은 이에게는 조금 고되긴 할 것이니 걱정되는구려. 먼저 부인과 안면을 틈이 어떻겠소?”
본래는 지금부터 중매인이 계속 오고 가면서 혼인 당일에야 양 가문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 욕심이 들어가서 각자 집안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억지로 만들었다. 예의범절에 다소 어긋나는 일이지만 어쩌겠나.
“국대부인과 말씀이십니까? 하온데 저희 집에 오실 이유가 없으니 문제입니다.”
“별일은 아니오. 동생인 계양군(세종대왕의 8남, 서자)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서운하구려. 한번 좌찬성의 집에서 만나봅시다.”
“그러한 수가 있었군요. 저 또한 둘째 딸을 간만에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가면 이렇게 우회라도 해야지. 내가 한확과 같이 동생인 계양군을 만나는 사이 아내는 며느리를 만나게 하면 되는 일이다.
-----------
어디론가 다녀왔던 아버지가 기쁜 얼굴로 돌아왔다. 근래에 들어 모든 혼사가 깨어지고 사방에서 추문을 듣는다 하던가. 이렇게 집안이 어려운데 간만에 저렇게 웃음이 피어오르시니 어디선가 혼담이라도 성사된 것일까?
“숙덕(淑德)아. 수양대군 어른의 장남인 도원군과 혼사를 다시금 맺으려 한다.”
“정녕 사실이옵니까?”
“참으로 천운이 아닐 수 없다. 예법에는 어긋나지만 도원군을 미리 보았는데 육 척 장한에 기골이 장대하고 배움이 뛰어나니 어느 누가 견줄 신랑감이겠느냐.”
육 척 장한? 조금 마음에 걸렸다. 자신은 겨우 오 척이 조금 넘는데(영조척으로, 약 155㎝) 이래서야 고개를 올려다보다 못해 가슴팍에 닿을 정도가 아닌가?
“배움이 뛰어나다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하지.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느니라. 수양대군 어른은 아니더라도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 수양대군의 아내의 직위)께서 널 한번 보려고 하시는구나.”
“그런 지체 높으신 분께서 어찌 저를 뵈려고 하시는 겁니까?”
“처음으로 혼사를 치르게 되니 네 성품을 알고 싶어 그러는 것 같구나. 며칠 후에 둘째 사위인 계양군이 오는데 그때에 수양대군 어른과 국대부인도 같이 방문하실 것이다.”
둘째 언니를 다시 만나는 것은 좋지만 지체 높으신 분께서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신다니. 학식에는 자신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몸을 놀리는 일에는 서툴렀다.
“몸을 미리 가꾸어두고 의관을 정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혼사는커녕 일이 정말 힘들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고.”
성품을 알고 싶다고 직접 오실 분은 아니다. 군부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사려가 깊고 결단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은 알았다. 무슨 이유일까 고민하였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
“증(璔)아! 정말로 오랜만이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아직도 연(璉 - 익현군)이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겠지?”
“형님! 형님은 몸이 더 튼튼해지셨군요! 가끔 마시긴 합니다만 근래에는 많이 줄였습니다. 입신체비를 하니 자연스레 술을 줄이게 되더군요.”
“아예 끊지는 못하지만 줄여야 하는 것이 술이지 않느냐. 그러니 오늘도 한잔하여 보자꾸나.”
수양대군 어른은 멀리서 목소리만 들어도 참으로 호탕하며 절제와 배려가 넘쳐난다. 저런 뛰어난 분의 장남이니 어디 가서 손색이야 없겠지. 그렇게 의관을 갖추고 안채에서 기다리고 있자 시어머니인 삼한국대부인께서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셨다. 이제 나의 차례다.
“삼한국대부인을 뵙습니다.”
“이렇게 만나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구나. 예법이 물 흐르듯 정갈하니 남양부 부인께서 정말로 훌륭한 딸을 키웠구나.”
처음의 만남은 언제나 어색하다지만 이번에는 더했다. 특히 남귀여가혼(사위가 아내의 집에 들어가는 혼인제도, 조선 중기 이후 사라진다)이 아닌 친영혼(親迎婚)으로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지아비(수양대군)께서 입신체비를 창안하신 것은 익히 알고 있겠지.”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혹여나 식구가 되기 전에 입신체비에 속하는 것을 익힌 적이 있더냐. 내 소문을 들으니 우모구는 거의 모든 아녀자들이 행하는 놀이가 되었는데 그 또한 입신체비이다.”
“아닙니다. 알고는 있지만 행한 적은 없습니다.”
사서삼경을 익히는 일은 둘째 치고 입신체비가 먼저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옳은 말이었다. 입신체비서라는 서책을 구해다 읽지는 못하였지만 정승, 판서들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일이 되었으니까.
“본디 한 집안에 들어오려면 어떤 도리가 필요하더냐.”
“첫째는 아버님과 어머님께 효도하여야 하며, 둘째는 집안 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셋째는 집안의 일을 도우며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네 부족한 점을 알겠구나. 가가례(家家禮 - 집안마다의 풍속)는 모두 다르니 집안의 풍속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것은 채우면 그만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처음 혼사를 받을 때에는 집안의 큰 어른인 수양대군을 본받아 온몸에 근육을 기르고 무거운 것을 짊어질 줄 알았는데 군부인의 몸은 조금 선이 굵지만 우락부락하지는 않아 보였으니.
“집안의 사람이 되었으니 매일 정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말이구나. 그렇다면 내 간단히 우모구(배드민턴)를 알려줄 것이니라.”
“그런데 그 옷은 무엇입니까?”
갑자기 군부인이 건넨 보자기를 풀어보자 무명으로 만든 밋밋한 복식이 나왔다. 이런 투박한 옷을 군부인이나 되어서 입는단 말인가?
“학문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더냐?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아니겠느냐. 입신체비를 하는 지아비께서는 의복을 갖추신다. 그렇다면 몸을 놀리는 일에 있어 보통 옷을 입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늘하늘한 치마는 발에 걸려 찢어지고 넘어지면 몸이 상할 것입니다.”
“본디 입신체비를 행하는 여성의 움직임은 날래야 하며 자신의 한도 안에서 품위와 법도를 지킴이 마땅하니 이것을 차근차근 알려 주겠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너라.”
과연 훌륭한 방법이라고 감탄하면서 방에 들어와 옷을 펼쳤는데 많이 다르다. 투박한 것은 당연하지만 하인들의 복식과 비교하여도 너무나 다르다.
“대체 이게 뭐지? 치마가 이렇게 짧다니?”
“아씨. 처음이시니 입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미리 들어와 있던 하녀가 하나하나 입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저고리만 해도 몸통이 상당히 긴 주제에 소매는 손목에서 반 뼘 정도 올라가서 끝나는 애매한 소매였다. 짧은 소매의 끝을 끈으로 가볍게 묶어서 흘러내리지 않게 하니 한결 편하긴 했다.
“통치마인 것은 이해가 간다만 치마끈은 왜 이리 긴 것인가. 속에 어깨끈 또한 없으니 조금 움직이면 바닥으로 흐를 것 같구나.”
“그저 치마끈이 아니옵니다. 멜띠(멜빵)라고 하여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리에 두르시고 위로 올리시면 됩니다.”
“허리에 이렇게 감으니 광다희(廣多繪 - 철릭의 허리띠. 단단히 맨다)보다 좋구나. 이래서야 어지간한 일에는 문제가 없으니 훌륭한 옷이구나.”
치마끈을 허리에 한 바퀴 감고 가슴을 통과해 어깨로 올린다. 서로 X자로 교차한 끈이 다시 허리로 내려와 한 바퀴 감긴다. 치마도 발목 위에 있는데 혹시 몰라서 치맛자락을 발로 밟아보니 멜띠가 몸을 꽉 잡으면서 탄탄하게 버텨주었다.
“너무 험히 움직이시면 멜띠가 끊어지니 조심하십시오.”
“괜찮다. 이런 복식이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구나.”
“저희도 멜띠를 속에 돌려서 치마가 흐르지 않게 합니다. 군부인 마님께서 이를 창안하셨는데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이런 옷이면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복식을 갖춰 입고 나가려 하는데 하인이 투박한 가죽 조각을 네 개나 보여준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 슬대(무릎보호구)와 노대(팔꿈치보호구)에 장갑도 갖추셔야 합니다.”
“혹여나 넘어지더라도 문제가 없겠구나. 손을 다칠 이유도 없고 무릎에 팔꿈치까지 보호하여 준다니. 혜안이 참으로 대단하시다.”
“그렇다 하여도 너무 세게 넘어지면 몸이 다칩니다. 가채는 빼신 다음 남은 머리는 뒤로 묶으셔서 주머니에 여며 넣으시면 됩니다.”
가채는 무겁고 불편하기만 한데 잘 되었다. 의복을 정갈히 입고 밖으로 나서자 시어머니가 될 분이 조용히 우모구에 쓰이는 채를 만져보면서 상태를 손수 확인하였다.
“의관을 갖춰 입었구나.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으니 우모구를 행할 적에도 몸을 풀고 덥혀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처음이다. 내가 행하는 동작을 따라 하여라.”
하늘하늘한 옷과는 달랐다. 어떠한 동작도 자유자재로 행하니 몸이 시원하고 속살이 보일 이유도 없었다. 속곳(속옷)이야 조금 불편하였지만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도 겉에 입은 옷이 너무 편해서다. 그렇게 모든 동작을 마치자 땀이 이마에 한 방울 맺혔다.
“지금 수혜(繡鞋 - 꽃신)를 신고 있는데 입신체비에는 옳지 않아 나중에 새로 만든 유혜(油鞋 - 가죽신)를 만들 것이니 먼저 미투리를 임시로 신거라.”
“죄송합니다.”
“아니다, 처음이니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그렇다면 채를 잡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도록 하겠으니 잘 따라 하여라.”
어느새 마당에는 가슴 높이의 그물이 쳐졌고 생전 처음 잡는 채를 휘두르는 일에 익숙해졌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착실하게 가르쳐 주시니 기본을 익히는 일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부터 우모구를 해보자꾸나. 21점을 먼저 거두는 쪽이 이기는 것이며 나도 적당히 완급을 조절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선구(서브)를 시작하겠습니다.”
튕겨져 나온 우모구가 몇 번이고 서로의 그물을 가로지르며 오가다 국대부인의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여러 번 점수를 얻어서 기분이 한껏 달아오르고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 무렵이었다.
“어?”
“1 대 5이니라.”
한 번 헛쳐서 높게 솟은 우모구를 본 국대부인이 높이 뛰어서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펑 하는 소리가 나며 바닥에 우모구가 내리 꽂혔다.
“이게 무엇입니까? 우모구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까?”
“처음에 가르치지 않았더냐. 우모구에는 선구(서브), 평구(드라이브), 고구(하이클리어) 그리고 낙구(스매시)가 있다고. 실력이 제법 좋으니 나도 낙구를 시작하겠다.”
다시 몇 차례 공이 오갔지만 높게 솟은 공만큼은 국대부인이 절대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든 팔의 방향과 시선을 보면서 미리 달려갔지만 허벅지에 불이 솟아오르고 입에서는 단내가 올라왔다.
“10 대 12입니다. 제 차례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선구를 하겠다.”
낙구를 자신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몸을 바짝 긴장하고 몇 번이고 보아왔던 동작을 직접 해보자. 마침 선구도 높이 솟아 좋은 궤도로 날아왔으니 뛰어올라 내려치려 하였다. 분명 손목을 꺾으면서 했는데 격통이 일어났다.
“꺄악!”
“낙구를 행할 적에는 손목의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뜀뛰는 속도. 허리의 유연함. 어깨의 회전, 팔의 힘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목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지.”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자 손목의 통증이 가셨지만. 낙구 하나에도 온 몸의 힘을 쏟아야 가능하단 말인가?
“입신체비는 효를 행하기 위하여 몸을 다스리는 것이다. 결국 몸을 완전히 다스리는 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낙구를 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지. 이제 낙구를 조금 변용하여 보겠다.”
그 뒤로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낙구를 변용한다는 말을 했는데 같은 자세를 보여도 반장(班場 - 코트)의 사방팔방으로 낙구가 내리꽂혔다. 어떻게든 쳐내려고 끝까지 애를 썼는데 이건 성실함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기 그 자체였다.
“1… 1… 18 대… 13입니다.”
“너무 지친 것 같으니 잠시 쉬자꾸나.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우모구를 하였는지 아느냐?”
“저도 잘 모르겠… 습니다.”
아마 시간이 남으면 죽어라 우모구만 했을 거야. 그런 못된 마음이 올라왔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아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레 마다 한 번 행하였다, 하는 날에도 너무 몰두하지 않아 3회를 하였다.”
“이레에 한 번이라 하셨습니까?”
“이것 또한 입신체비의 묘리이다. 열심히 임하다 이레에 한 번씩 이렇게 몸을 풀어준 것으로도 실력이 늘어났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구나.”
분통이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이렇게 좋은 것이 있으면 배우면 그만이다. 이러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과 우모구를 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좋은 마음을 먹으면서 애써 다시금 채를 잡았다. 아니, 잡으려 하였다.
“얘야? 괜찮으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일어나 보니 새벽이었는데 허벅지는 알이 배겨있고 등허리와 어깨 그리고 팔뚝까지 모조리 격통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놀란 부모님이 의원을 불렀지만 증세만 듣고도 무슨 일인지 알아내 버렸다.
“증상만 들어도 알았습니다.”
“증상만 들어도 안다는 말이 대체 뭐요?”
“간혹 가다가 아녀자들이 우모구를 행하다 너무 과하게 하면 이렇게 됩니다. 보통 5회 정도 열중하여 한 다음 날 이러는데 말입니다.”
5회란 말인가. 평범한 아녀자가 5회를 행하여야 자신과 같은데 고작 한 번 하였다고 이렇게 몸이 아프다니. 이래서야 어떻게 시집살이를 견뎌낸단 말인가?
----------
새 며느릿감이 혼절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으며 어떻게든 문제가 없이 잘 넘어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아내에게 따져보았는데 오히려 웃고 있다니?
“너무 심하게 다룬 것이 아니오?”
“아닙니다, 그 아이는 정말로 몸을 다룬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책만 읽고 집안일만 하였던 것이 분명하더군요.”
“그렇다면 적당히 쉬게 하여야 하는 것 아니겠소. 저래서야 어떻게 시집을 오려 하겠소.”
“그렇게 호되게 다뤘는데도 싫은 표정도 하지 않고 끝까지 저를 따라옵니다. 성품이 아주 좋은 아이이니 반드시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지는군요.”
그렇게 혼담은 확정되었다. 한확의 집에서는 사주단자도 받아놨으니 이제 현동이의 관례를 치르고 다음 예식을 진행할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