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34화 징역형(懲役刑) 신설 >
다들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사실 조선에서 제대로 된 행정체계를 갖춘 구획은 정3품 지방관인 목사(牧使)가 있는 목(牧)이 끝이다. 도호부는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그런 느슨한 체계로 돌아간다.
“전하께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상왕께서 법전을 새로 편찬하신다 하였는데. 아직 새로운 법도를 세우시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을 두고만 본다면 어찌 대업을 이룰 것인가. 이제 틀어지기 시작하였으니 시일이 가면 갈수록 바로잡기 힘들 것이 자명할지어다.”
“너무나 많은 소모가 있을 것입니다. 군(郡) 그리고 현(縣)만 하더라도 이미 90개소가 넘습니다.”
“훈도는 지방에서 발탁한 인재로 각 군현마다 두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중앙에서 내려보낸 인재로 한 명을 더 두시는지 주상전하의 의중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하연을 시작으로 신하들 대부분이 반발이다. 그나마 율관을 양성하는 역할인 형조에서는 침묵하지만 나머지 신하들은 모두 반대 내지는 중립이다.
“그대들은 지방 곳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얼마나 아는가?”
“주상전하께서 말씀하신 바는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조정에서 관리들을 보내 호구를 파악하고 있었을 적에 수많은 고변들을 듣게 되었으니 도저히 용인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형님의 분노 섞인 목소리를 듣고서야 눈치챘다. 아무것도 모르고 업무원칙만 알며 현실로 치면 9급 새내기 공무원 정도의 역할인 훈도를 중앙에서 ‘일부러’ 파견해야 하는 이유를.
“소작을 하려 계약을 하였지만 토호가 거짓으로 세를 부풀려 받는다며 고변을 하는 자, 새로 만든 토지의 권리를 빼앗겼다 주장하는 자, 심지어 토지대장으로 사람을 찾았지만 전혀 다른 자가 토지를 소유하던 일조차 있었다.”
“엄벌을 내리시어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본보기로 삼으소서.”
“어떻게 말인가. 그러한 땅은 양안(量案 - 토지조사)에서도 누락된 곳이었으며,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여도 공증인으로 있었던 이가 토호와 친인척인 경우가 허다하였다.”
형님이 분노를 참으시는 듯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더군다나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판가름할 방도가 없었도다.”
하연이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호조출신 관료들은 고개를 거의 땅에 닿다시피 숙이고 있었는데 형조 출신 관료들은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전하의 눈을 어지럽히게 되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훈도를 보내 지방의 수령을 보좌하여 업무를 진행하게 할 것이다. 지방의 수령은 가장 중요한 농업, 호구, 부역의 업무를 담당하고 나머지 업무는 다른 이와 상의하며 부담을 덜 것이니라.”
지방의 분권 개념이지. 아전들을 중심으로 한 유사 육조를 두느니 돈이 더 들더라도 하급관료들을 계속 보내면서 실무경력을 쌓고 업무를 원활하게 만들려는 방법.
이러면 아전들은 뭐 먹고 살라고? 급료가 있는데도 입에 풀칠할 지경이었는데? 여기서는 나서야겠다.
“신 수양대군 아뢰옵니다. 지방의 아전들과 토호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은 참담하오나 그들에게도 성은을 내려주시어 그들이 새로운 관리들과 한뜻으로 움직이게 하소서.”
“그 또한 좋은 말이구나. 우선 그들의 봉급을 늘릴 것이며 추후 공납(貢納)의 제도를 개선할 적에 이를 참고하여 행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 형님이 말을 안 한 것이 분명하지만 공납제도도 개선해서 아마 사대동(私大同)같이 업자에게 정해진 미곡을 주고 공납물품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변하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부정이 있을 것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도다. 그러하니 율관과 훈도를 파견하는 일을 속행할 것이다.”
더 이상 거스를 명분도 없다. 형님의 뜻은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봉급이 많이 나가도 계속 이어지겠지.
“형조에서는 다음 증광시의 율과(律科) 인원은 초시의 합격자를 36인, 복시의 합격자를 18인으로 늘릴 것이니 이를 염두에 두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율관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사사(賜死 -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한해서만 2회의 복심(覆審 - 재심)이 있었는데. 사사로운 죄에 관하여도 복심을 행할 것이다. 지방의 율관이 추문할 것이며 이후 관찰사가 재차 추문하도록 한다.”
형조에서 보면 파격적인 제안이다. 육조 중에 5위로 힘이 약한 형조의 하위 관료가 늘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율관이 아무리 종6품이 한계라 해도 그들을 통솔하는 입장인 형조에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수강궁으로 내려가 법전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여라. 이는 상왕께서 정하신 뜻이니라.”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목적 자체는 중앙집권의 강화 같은데 속뜻은 모르겠다. 경국대전이 얼마나 뛰어난 법전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세종대왕님도 3년 만에 많은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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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수강궁에 들어가자 피로에 절어 있는 신료들이 한 무리 빠져나왔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은 오로지 법전 편찬에만 몰두하셔서 왕위에 있을 때보다 업무가 줄어들어서 살맛이 나는 것 같다.
“유가 간만에 수강궁에 오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구나.”
“송구할 뿐입니다.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고려사의 개찬에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게 부족하다 할 정도라니 겸양이 너무 많으면 잘못이니라.”
세종대왕님의 옆에는 개찬작업이 완료된 고려사가 몇 권 놓여 있었는데 여기까지 왔으면 허가를 다 받은 물건이겠지. 세종대왕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천천히 눈이 쌓인 마당을 거닐면서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경국대전의 예전(禮典 - 예조 관련 법안), 병전(兵典 - 병조 관련 법안), 그리고 공전(工典 - 공조 관련 법안)이 완성되었다.”
“실로 감축 드리옵니다.”
“감축이라니. 이는 예절과 병사 같은 기존의 법도를 행하는 제도와 관련되어 있으니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만 중요한 것이 형전(刑典 - 형조 관련 법안)이니라.”
세종대왕님의 깊은 고뇌가 전해진다. 형전이 현대로 치면 민사, 형사 법안 전체에 형벌, 기타 재판 관련 사항 전체를 포괄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니까.
“아바마마께서 행하지 못할 일을 제 미욱한 뜻으로 어찌 해결할 수 있겠나이까.”
“다만 도저히 정할 수 없는 것이 형벌이더구나. 그러니 너에게 묻고 싶더구나. 네가 보기에 아국의 형벌은 옳더냐? 그르더냐?”
이 시기의 조선의 법은 관습법의 영향도 크고 대명률의 영향을 받아서 죄질이 크면 형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재위 초기에 만들었다가 실패한 속육전과 육전수찬색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아마 그 일을 생각하시겠지.
“아국의 형벌은 옳지 않습니다.”
“일전의 군부인의 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더냐. 너무나 가혹하고 사리분별이 없이 냉엄할 뿐이다.”
서산군의 첩실 이야기를 이제서 꺼내시다니. 정당방위로 저항했는데 일이 커진 경우였다. 현대라면 정당방위 무죄방면이지만 이 시대의 법에는 강상죄에 속해서 장형 100대 이상의 판결만 있었다.
세종대왕님도 형벌을 낮추려 하였지만 훗날의 본보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태형 50대 이하로는 줄이지 못했다. 실제로는 태형이 집행되기는커녕 종아리를 건드리기만 했었지.
“저 또한 마찬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형벌은 같은 죄라 하여도 상황과 이치에 맞게 변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같은 벌이라 하여도 장형과 유형을 나누어 두자는 말이더냐.”
그렇다면 현대의 법 개념을 넣어보자. 내가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세종대왕님과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국의 법은 태형과 장형 그리고 유배형 모두가 잘못된 법입니다.”
“당나라 시절부터 지켜져 온 예식이거늘 어찌하여 이를 모순되었다 하느냐.”
“아름다운 옛 법도를 지키려 함은 참으로 옳으나. 행하는 자가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이라.”
세종대왕님이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데 사람이어서 모순이 생기는 것이 맞다. 한번 세종대왕님과 조선시대 형벌의 핵심 처벌인 오형(五刑)에 대해서 따져보자.
“오형 가운데에 유일하게 합당한 것은 사형(死刑) 단 하나입니다. 중죄를 지은 자가 더 이상은 그 죄를 목숨을 다하여도 감당하지 못할 적에 내리는 형벌이옵니다.”
“실로 그러하다, 그러하니 복심을 세 번 하여 마지막까지 알아본 뒤에서야 형을 집행하는 것이니라.”
“하오나 장형, 도형, 유형 모두가 사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형의 고난을 이야기할 것이면 정해진 것이니 따르는 것이 옳다.”
세종대왕님이 아무리 위인이라 하여도 생각은 이 시대의 사람이다. 현대는 벌을 가볍게 주더라도 사회의 질서를 잡고, 죄를 저지르는 자를 줄이며, 죄인을 교화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하오나 어떤 이는 고난을 받아 사형과 같고, 어떤 이는 태형도 즐겨 받을 수 있습니다.”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세종대왕님의 안색이 변하는 것이. 현실을 아시면서 애써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장 100대를 맞는 자도 속전으로 면제받을 수 있고 면제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나라에서 원하는 자는 곤장을 휘두르지 않고 떨어트릴 뿐이니 몸이 멀쩡합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자는 장을 맞다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장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행하는 자가 사정을 가려가며 집행할 수 있으니 줄이더라도 문제고 늘리더라도 문제입니다.”
법이라 하면 평등이 기본으로 있어야지. 계급사회인 조선에서도 계급이 동일하면 처벌도 동일한 최소한의 원칙이라도 있어야 하고. 세종대왕님은 자신의 명으로 형을 바꿨던 일이 계속 떠오르는지 점점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
“그렇다면 장형을 대신할 법을 어찌 마련해야 하겠느냐. 네 말을 들으니 장형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유형은 어떠하더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유형(유배형) 또한 문제입니다.”
“유형이 문제라고? 유형은 가두는 방법과 보내는 장소의 험난함으로 경중을 나누지 않더냐.”
역시나 유배형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상황을 잘 모르신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으시면 효령대군과 전국 사찰일주를 하면서 이리저리 소문을 들었다고 해야지.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자는 환대를 받으며 시일을 늦춰가면서 다니는 일도 있고. 장형을 피하지 못한 자가 만신창이의 몸으로 억지로 길을 가다 죽는 경우도 있사옵니다.”
“계속하여라.”
“결국 위리안치(圍籬安置 - 집 울타리에 탱자나무를 치고 가두는 형벌)를 당하여도 사람이 매일 드나들며 술과 음식을 즐기는 자가 생기며. 다른 이는 사소한 일로 치도곤을 당하니 공정하지 못한 방법이옵니다.”
세종대왕님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하긴 이건 나중에 연구결과나 나오거나 아니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암행어사가 파악할 일이지.
“결국 형벌을 말하는 이가 있고 행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뜻이더냐.”
“아무리 어좌(御座)에 앉으신 분이 아름다운 뜻을 행하려 하여도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뜻을 같이 행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참 황 정승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구나.”
황희? 있었어? 역사상에서는 이미 죽어야 할 사람이 왜 있지? 하면서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까 거의 시체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황희가 사직을 윤허해 달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참으로 딱한 자로다!
“황 정승은 대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오늘도 형전에 대하여 논하고 있었느니라. 황 정승이 행한 일 덕분에 형전의 양이 늘어나니 이는 실로 나라의 복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유형도 장형도 옳지 않다면 도형(徒刑 - 노동형)은 입에도 담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아니옵니다. 도형이야말로 평등한 법으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그게 또 무슨 소리더냐?”
도형도 현재 상황에선 문제가 많지. 최대 3년의 노동을 하는 형벌인데 대부분 일이 험해서 1년 이내에 죽는다. 하지만 나는 현대에서 어떻게 죄수들을 교화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다.
“도형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장을 때리고 가두어 일을 시킬 뿐입니다. 그 험난함이 이를 데가 없으니 죄를 뉘우치기도 전에 견디지 못하여 죽을 뿐입니다.”
“그렇다, 도형으로 1년을 버티는 이도 많지 않다 들었다. 그리하여 도형은 가급적 내리지 않으려 하노라.”
그냥 무식하게 사람을 굴려대니 이 꼴이지. 툭하면 광산 넣어버리고 소금 굽는 일에 집어넣고.
“하오나 아름다운 뜻을 따라 험난하되 몸을 보할 기회를 주며. 오랜 기간 주상전하의 은혜를 되새기는 일을 행하면 죄질이 깊은 사람조차 변하게 할 수 있다 봅니다.”
“죄를 짓는 자들도 그렇게 오랜 시일을 몰입한다면 변하게 한다. 틀린 말은 아니구나.”
“이를 징역형(懲役刑)이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형무소(刑務所)를 두어 그들을 오랜 기간 교화한다면 어느 누가 변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징역형. 근대에 나온 법이 결국 조선에서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세종대왕님은 오히려 좋지 않게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제도를 세운다면 뜻이야 올바르겠다만 죄인을 먹이고 재우는 일에 너무나 많은 힘을 쓰게 될 것이다.”
“사람은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도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군기시에서도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군기시에서 신숙주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보행기를 돌린 일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물레방아를 이용한 각종 인력 도구였지. 세종대왕님은 이제야 생각나셨다는 듯이 안색이 밝아지셨다.
“보총을 만들었던 일을 생각하니 네 생각이 짐작이 간다.”
“그렇사옵니다. 그 외에도 할 일은 넘쳐납니다.”
“징역형은 도형의 노동을 쉽게 하되 기한을 늘리는 방안이구나. 하면 형무소에서 무엇을 하여야 할지 조금 더 듣고 싶구나.”
여기서부터는 즉흥적인 생각으로 나서야지. 사람을 무한대로 걷게 만드는 보행기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명분은 무엇일까?
“자고로 유배라 함은 임금의 은혜를 저버린 자를 멀리 쫓아 보내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보행기를 걷는 것을 유배로 머나먼 길을 걷게 하는 유형기(流刑器)라 하면 좋을 것입니다.”
“보행기 위를 걷는 것이 유배 길을 대신한다는 말이냐. 그 또한 바람직하구나.”
“그렇습니다. 험난한 산야를 걸어 천 리 길을 걷느니 편안히 서서 쳇바퀴만 거닐고 있으면 진창길도 혹한도 피할 것이니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소리가 이 시대에는 통한다. 뭐? 안 통한다고? 진짜라니까. 세종대왕님 표정이 완전 활짝 웃고 계시잖아. 저런 표정은 내가 살면서 몇 번 보지도 못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