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33화 - 근육으로는 안 되는 일(2) >
두 달이 흘러서 1452년 7월이 되었다. 홍일동이 인솔하는 여진족들은 각종 노역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역에 대하여 몸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생각하였으며 예의범절이 반 강제로 여진족에게 주입되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이 많았다네! 다들 몸조리 잘 하고 양생은 철저히 하게나!”
“알겠습니다! 현령 나리!”
참으로 순수한 자들이며 열의가 넘치는 자들이다. 여진족을 누가 야인이라 하였는가? 저렇게 교화한 다음 후계자를 배재당에서 길러 조선의 풍습을 뼛속까지 스미게 하면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홍일동은 관아로 들어왔다. 송사는 없었지만 서류 작업은 온전히 그의 몫이며 보고서도 작성해서 조정으로 보내야 한다. 관아에 올라오자 한창 일을 하는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인방(引枋 - 한옥에서 벽 사이에 세우는 목재)이나 장여(장설 – 한옥에서 도리 아래에 덧대는 부재. 건물 벽의 폭을 결정한다) 같은 것은 필요 없다네! 아끼지 말고 부수게나.”
“오호 길동이 녀석이 뭔가를 하고 있군.”
관아 구석에 있는 숙소에서는 – 임시 숙소는 관청 그 자체다 – 임시로 쌓여있던 합벽을 허물고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예 바닥의 고막이(구들과 벽 사이에 올리는 미장 부분) 까지도 허무는 큰 공사를 홍길동 혼자서 도맡아 담당하고 있었다.
이전(점토벽돌)을 말려서 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벽전을 쓰면 너무나 비쌀 것인데? 이런 호화스러운 집을 관아로 쓰면 어쩐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홍일동은 확인을 위해 한창 새로 벽을 만드는 관아에 들이닥쳤다.
“현령 나리 오셨습니까?”
“얼마동안 이전을 만드는 것 같더니. 그대로 쓰질 않고 벽전(벽돌)을 만들다니. 이리도 많은 벽전이면 값이 비싸지 않더냐??”
“이 고장에서는 벽전을 만들어서 쓰기가 아주 좋습니다. 나무도 흙도 넘쳐나니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며 제가 다 염두에 두고 행동하였습니다.”
홍길동은 언문으로 대략 계산한 장부를 보여줬다. 장부의 숫자를 세어나가던 홍일동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벽전을 5000개 만드는 일에는 쌀 4섬이 들었을 뿐이다. 사람 5명이 5일을 일한 품삯, 가마를 만드는 품삯, 여기에 땔감으로 쓸 잔가지들은 목책을 만들면서 쌓여만 가니 마음대로 태워도 되었다. 장부상에 소 대여료라고 쓰여 있는 항목을 본 홍일동이 되물었다.
“소를 대여하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땅이 너무나 거칠어 소가 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점토를 다지게 하는데 효험이 좋았습니다.”
놀고 있는 소를 점토 위를 돌아다니게 하여 반죽하였단 말인가. 사람을 시킬 일에 소를 시켰으니 이문을 남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홍일동이 만들어낸 벽전들은 벽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런데 벽이 두 겹이 아니더냐?”
“벽을 두 겹으로 쌓되. 벽전 사이에 지푸라기를 채워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으며. 벽전끼리는 생석회(산화칼슘, 물과 섞어서 콘크리트와 유사하게 사용한다)와 모래 그리고 진흙을 버무려서 메우고 있습니다.”
“석회도 산야에 널려있으니 재주가 좋구나.”
근방에는 석회도 제법 있었으며 건물에 빠짐없이 사용하는 재료이니 차고 넘쳤다. 그렇게 재료가 남아나자 홍길동은 욕심이 생겼다. 홍윤성이 나서기에는 이미 생각이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어서 일을 보조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말린 흙벽돌을 사용하였지만 열을 막아내는 수준이 보통 흙과 다를 이유가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한 달이 넘어서야 만에 이런 방식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전벽(벽돌벽)이라, 과연 이게 북방의 추위를 막아낼지 궁금하구나.”
“뜨거운 불길을 쉬이 막아내는데 추위도 쉽게 막아내지 않겠습니까. 보십시오, 건넌방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습니다.”
거양현 일대는 분지 지형인지라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사방에서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완성된 방 안에 들어가자 밖과는 다르게 서늘하였다.
“겨울 추위를 막는다면 여름 더위를 막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 집은 겨울에도 찬바람을 쉬이 막아낼 수 있겠지요.”
“그건 겨울이 와야 알 것이다. 그런데 천장이 낮구나.”
“온기가 쉬이 빠져나가지 않게 토벽과 비슷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뜨거운 여름에도 방이 더워지지 않더군요.”
방의 천장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옆으로 벽돌을 쌓을 방법이 없으니 나뭇가지를 엮어 틀을 만들고. 진흙으로 천장을 두껍게 메웠다. 방을 둘러보던 홍일동은 특이한 창문도 보게 되었다.
“창문도 두 겹 이라니? 이렇게 만들면 외풍을 쉬이 막아낼 수 있겠구나.”
“실은 네 겹입니다. 겨울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안과 밖에 널창(나무판으로 만든 창)을 둘 것입니다.”
“아주 좋구나. 재주가 많다 하였는데 이러한 것을 알아내다니.”
실은 근육적인 해결법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홍길동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 출세의 길이 열릴지도 모르고. 관직에 나서는 일은 너무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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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11월이 되자 맹렬한 추위가 몰려왔다. 외부 활동은커녕 모피 옷을 입지 않으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진흙으로 어떻게든 벽을 세웠던 집들은 버텼지만 그들도 예측한 양 보다 훨씬 많은 땔감을 써야 했다.
하지만 홍일동이 머무는 방을 비롯한 관아는 방에 훈훈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겨울에는 입신체비를 행하기 힘든 시간이니 간단히 맨손운동을 하던 홍일동은 밖으로 나왔다.
“막내 녀석이 저렇게 재주가 좋다니. 이건 복이야.”
“저도 현령님 말씀을 따라 전벽(벽돌벽)을 세울걸 그랬습니다.”
집에서 막 나왔음에도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서리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아마 벽이 갈라져서 찬바람이 스며든 것이 분명하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나저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으니 몸을 덥혀야 할 것이네.”
“독한 소주를 한잔 마시면 괜찮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한 잔 해야지요.”
“술이라니? 마셔보았자 잠시만 몸을 덥힌다네. 이럴 때에는 한증소(汗蒸所)가 제격인데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군.”
조선시대에도 한증막, 정확히는 땀을 내는 한증(汗蒸)은 민간요법으로 존재하였으며 이를 한증소라고 부르며 설치하였다. 다만 직접적으로 불을 때는 방식이기에 위험하고 사고도 빈번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 설치된 한증소는 벽구들(페치카)과 벽돌의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환기를 할 필요도 적고 열이 너무 높게 올라가지도 않는다. 가끔 뜨겁게 달궈진 돌을 넣어주면 더욱 후끈해졌다.
“현령 나리 오셨습니까?”
“그래 오늘도 북적거리는군. 야인들이 저렇게 많다니 앞으로는 새벽에 와야겠어.”
“다들 한번 경험하고는 몸이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모두 한증소에 단단히 빠져있었다. 벽돌로 벽을 만드니 열기도 빠져나가지 않고 습기에도 잘 버틴다. 다만 물과 장작이 필요하였지만 홍길동은 이것도 간단하게 해결하였다.
“들어가서 더운 방에 한 각(15분)을 넘게 계시면 몸이 상합니다.”
“어휴 살겠다! 염려 마시오! 금방 씻고 나오겠소!”
근무자는 겨울이라 할 일이 없는 관리 한명에 청소와 잡무를 위한 일꾼 둘이면 충분하다. 강의 얼음을 깨는 일이 고역이지 물은 퍼오면 그만이다. 장작은 오히려 남아서 필요량보다 많이 쌓여갔다.
퍼온 물을 적당히 덥혀서 씻고. 더운 방에서 땀을 흘리고 나오면 충분하다. 관아에서 쓰고도 남을 장작을 거뒀으니 신묘한 계책이 아닐 수 없었다. 여진족들은 저렇게 정교한 건물을 만들 재주가 없으니. 겨울에도 이 고을에 와야 하리라.
“경원부에 장계를 올릴 때에 한증소에 대한 것을 필히 넣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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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전은 거양현에서 보내온 서찰을 상세히 읽어나가고 있었다. 이미 조정에서는 거양현이 첫 해를 버티기 힘들 것이라 예상하여 경원부에 물자를 비축하였지만 오히려 거양현에서 배울 것만 생겨나고 있었다.
“전가사변으로 이주한 가구 100호 400여명 가운데 질병으로 죽은 이가 스물하나, 사고로 죽은 이가 열, 호환(虎患)을 당한 이가 셋이라?”
“경원부는 훨씬 따듯한 고장이어서 400호 1500여명을 받았는데 이미 2할이 죽어나가지 않았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허위로 보고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나? 사람을 보내 찾아보면 드러날 일이 아닌가.”
전가사변의 평균 사망자는 3할 이상이었다. 머나먼 오지에 집도 절도 없이 식료와 가재도구만 주고 알아서 살라는 방침이니 사망자를 2할로 줄인 것만 해도 이맹전은 뛰어난 사람이 맞았다. 다만 홍일동의 1할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었다.
“벽전(벽돌)으로 혹한에도 훈훈한 관아를 만들고, 한증소를 만들어 땔감을 벌충하며, 야인들을 다스려 노동을 시킨다? 변방에 있다 하여 우습게 볼 일이 아니구나.”
“절도사께서도 이 방법을 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겨울이 다 지나가는데 무슨 소용인가? 지금 행하여 보았자 쓸모가 없으니 내년부터 행할 것일세.”
그동안 자신이 뭘 했단 말인가. 기껏해야 정충렬의 도움을 받아 옛 발해의 성을 조금 발굴할 뿐이고, 철광석이 나는 장소를 야인들의 도움으로 찾았다. 그 외에는 쓸모도 없는 흑토를 찾아낸 것이 전부였다.
농토는 600호를 간신히 수용할 정도만 개간하였고 소출은 없다. 야인들을 구슬려 일을 시켜보았지만 오히려 반발하고 피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홍일동이 이런 좋은 수를 찾아냈으니 이를 널리 알리고 자신도 변용(變容)하여 재주껏 다뤄야 하리라.
“주상전하께 모든 일을 합쳐서 보고서를 새로 올릴 것이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에서 나는 흑토를 다루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나?”
“오늘도 실패하였답니다. 이제 포기하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흑토 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벌써 소모된 철광석만 1500근에 달했는데 하나같이 어디에도 쓰지 못할 잡철 이하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받은 흑토라니.
“무엇이 문제인지 직접 보아야겠군.”
“저도 한번 보았습니다만 그 흑토가 문제였습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모르네.”
이맹전은 입술을 씹으며 직접 철장으로 내려갔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철장의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표정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절도사 나리 오셨습니까?!”
“그대로 일을 진행하게.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쇠부리가마에서 문제가 벌어집니다. 역시나 흑토가 문제입니다.”
쇠는 철광석이나 사철을 맨 처음 고열의 쇠부리가마로 녹여 뽑아내고, 굳어가는 쇠를 강엿쇠둑에서 두들겨 불순물을 제거한다. 지금도 강엿쇠둑에서는 망치질이 계속되었지만 장인들의 얼굴은 어두울 뿐이었다.
“처음에는 불이 활활 타올라서 좋은 줄 알았는데 참으로 쓸모없는 놈입니다.”
“혹여나 철광석이 문제가 아닌가?”
“그냥 목탄으로 때도 소출이 잘 나오니 오히려 질이 좋은 철광석이지요. 그런데 녹여서 강엿쇠둑으로 옮겨 두들기면 망가지니 분명 흑토가 문제입니다.”
주철장이 광택이 올라오는 흑토를 집어던지면서 이를 갈았다. 훈춘 지역에 매장된 석탄은 역청탄이었다. 조선의 철장에서 쓰던 갈탄이나 무연탄과 달리 역청탄은 본격적인 제철에 사용하기에는 약점이 너무나 많았다.
역청탄의 강력한 화력을 뒷받침 하는 것은 수많은 화합물들이다. 그 안에는 철의 성능을 극도로 저하시키는 황 관련 화합물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적당히 굳은 덩어리를 내리치는 장인들은 퍼져나가는 균열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실패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식혀서 철로 만들면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는데. 이렇게 된 쇠는 다시 쇠부리에 넣고 달구어도 똑같이 망가집니다. 이게 쇠입니까? 엿도 이거보다는 단단합니다.”
이맹전이 가져온 쇠토막에 힘을 주자 뚝 하고 부서졌다. 이 지역의 흑토는 정말 벽구들에나 써야 할 볼품없는 놈 같았다.
“보십시오. 이렇게 쇠부리가마에도 그을음이 넘쳐납니다. 이걸 벗겨내는 일만 한세월일 것인데 어찌 한단 말입니까.”
“찐득찐득한 것이 칠장(漆欌)들이 쓰는 역청(瀝靑)이나 송현(漆欌 - 송진을 그을려 만든 흑색 도료)과 닮은 것 같군.”
“역? 역자가 아주 좋습니다. 이놈의 흑토를 역탄(疫炭 - 역병 숯)이라 부르면 어떠하신지요.”
투덜대는 주철장과 달리 이맹전은 그 끈끈한 그을음을 나무토막으로 긁어냈다. 나이가 어린 얼자조차도 저렇게 현명한 모습을 보이는데 자신이라고 못 할 방법이 있을까?
“이걸 다 긁어내서 모아오게.”
“네? 그을음을 모아서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혹여나 모르지 않나. 아국에서 쓰이는 갑선(甲船 - 정크선의 이 시대 명칭)의 겉에 발라보려고 하네.”
새로 쓰이는 배는 거친 동해바다를 가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수명이 심각한 단점이었다. 겉에 나무껍질을 붙여 수명을 늘린다 하였지만 본래 쓰이던 방식인 겉을 그슬리는 방법에 비하면 수명이 턱없이 짧았으니까.
이맹전은 몰랐지만 긁어낸 물질은 훗날 아스팔트라 불리는 타르였다. 서양에서 배의 수명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애용하는 목재 타르와 비교하면 효율이 몇 배로 월등한 화합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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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고려사에 매달리다 보니 1453년이 되었다. 이제 고려사 편찬은 거의 다 마쳐서 잠시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 북방에서 보고서가 내려왔다. 북방의 발전에 대해 확인하여 보니 육하원칙으로 빼곡하게 적힌 보고서 덩어리 속에 놀라운 사항이 들어 있었다.
보고서를 가지고 다시금 토의가 열렸다. 지금까지의 전가사변은 맛보기에 불과했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전가사변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일어날 것 같았다.
“북방에서 이러한 일들이 있었는데. 참고해야 될 것이 있느냐.”
“신 수양대군 아뢰옵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벽전을 쓰는 일은 아주 좋습니다. 추운 북방이 아니더라도 벽전을 쓸 일은 많을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만 담아둔 벽돌건물을 언제 만드나 했는데 나를 대신해 홍길동이 만들어 버렸으니 널리 쓰이게 해야지. 벽돌건물은 방화구획을 만드는 일에 써도 되고 다른 설비를 만드는 일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당장 궁궐을 보수하는 일과 지방 관아를 보수하는 일에 벽전을 사용토록 권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의견이 있느냐.”
“신 영의정 하연 아뢰옵니다. 작년에 500호 2000명 정도를 전가사변으로 북변에 보내셨는데. 올해에도 그 정도를 보내면 적당할 것 같사옵니다.”
“전가사변으로 1700호, 약 6000여명을 보낼 생각이다.”
“전하 6000명이라 하심은 너무나 많습니다!”
하연의 입이 쩍 벌어졌고 나도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숫자다. 조선 초기에 인구도 적은데 인구의 0.1%에 가까운 6000명을 보낸다고? 하지만 형님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호구조사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정을 보았는지 아는가? 전가사변을 당하는 이는 호구조사에 불응한 자 혹은 호구를 속인 자를 시작으로 하였다. 거기에 토호와 작당한 수령이나 지방 농민들을 포함하였으나 모두 전가사변을 명하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나라에 도둑이 그렇게나 많습니까?”
“수양대군이 옳은 말을 하였구나. 그렇다, 나라에 도둑이 들끓으니 그들을 바로잡아야 하나 그랬다가는 나라의 틀이 무너질까 염려 되었다.”
공중부양을 하는 정치인의 말을 인용했더니만 형님이 화를 버럭 내신다. 저것도 걸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죄가 많은 사람들만 뽑아서 보내는 모양이다.
“또한 상왕께서 새로 편찬하시는 법전에 항목을 추가하겠다. 앞으로 현령(縣令)이 파견된 모든 현을 시작으로. 현감(縣監)이 파견된 현까지 각기 율관과 훈도를 보낼 것이다.”
잠깐. 훈도라 해봤자 지방 교육담당관이니 소과 합격한 사람에게 벼슬 쥐어주면 끝이고 봉급도 적은 편이라 상관이 없는데 하필 율관이라니? 율과는 잡과 중에서도 인원이 적은 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