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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91화 (91/573)

< 2장 30화 - 근육적 방법론(1) >

1452년 5월. 거양성, 이제는 거양현(巨陽縣)이 된 이곳은 현감이 오기 전까지 임시로 일대를 관리하는 사맹 홍윤성을 비롯한 훈련도감 출신 병사 10명, 여기에 경원에서 파견된 지방관 4명이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지?”

“아직도 모르겠나? 먼저 사람이 살 곳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지방관을 보는 홍윤성은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따듯한 남도로 은퇴하기를 원했지만 주상전하께서 그러한 꿈을 손수 박살 내주셨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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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이었다, 홍윤성은 거양성 전투가 끝난 지 거의 한 달이 지나가도록 꾀병을 부렸는데 제법 통하고 있었다. 다른 훈련도감 출신들은 홍윤성의 은퇴를 알게 모르게 축하하며 도와주고 있었다.

“오늘도 감모(감기)요?”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몸을 험하게 놀리다 또 감모가 도진 것 같군요.”

“어허, 이 사람아. 몸이 재산인데 잘 지켜야 하지 않겠소.”

이불 속에 틀어박힌 홍윤성은 상관들이 빠져나간 다음 멀쩡하게 움직였다. 병영 구석에 있는 단련실로 들어가 대역기를 들면서 몸을 덥혔다. 모레 정도쯤에 추위를 이기지 못하니 남부로 돌아가고 싶다 말해서 적당한 말직으로 빠지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한직도 좋고 삼남도 방면 외직도 좋고 승진도 좋긴 하지만. 따스한 곳에서 적당히 결혼해서 적당히 살 수 있으면 충분해.”

근육겁박지계라 하였는가. 그 계책은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다른 목적이 있었다. 추위를 핑계 삼아 감모(감기)에 걸려고 했었지만 이놈의 몸은 너무나 튼튼해서 어중간한 일로는 열도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길을 찾았다. 근육겁박지계는 사실 한겨울 추위에 몸을 노출시켜 전쟁이 끝날 무렵 감기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히 감기에 걸렸으니 계책이 통한 것 같았다.

“슬슬 꾀병도 끝내야지. 여기서 더 꾀병을 부렸다가는 진짜 파직당한다.”

“절제사께서 한양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입신체비를 하다 나왔으니 아직도 감모로 열이 남아 있는 것 같이 보이겠지. 그렇게 서둘러 경례를 하는데 이맹전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절제사님. 추, 충성!”

“이제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라네. 그건 되었고 자네에게 주상전하가 친히 내려주시는 것이 있다네.”

“주상전하께서요!?”

영문도 모르고 이맹전에게 받은 교첩(敎牒 - 5품 이하 임명서)을 받아 들었는데 짐도 한 꾸러미나 있었다. 내용을 보고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사맹 홍윤성을 종6품 낭청(郞廳)으로 임명하니 (중략) 신묘한 계책과 빼어난 재능을 보여줬으나 그대의 직급이 너무나 낮아 한 걸음 나아갈 길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감모로 인하여 고생한다 하니 어의를 시켜 약재를 보냈으니 몸을 보하라. 그대의 무용과 지략을 높이 보아 변방에서 힘쓰게 할지어다.]

“자네가 그동안 해온 일이 있으니 주상전하께서 공을 알아보신 것이 분명하네.”

“이게 무슨, 아니, 제가 어떻게 이런.”

“다 주상전하의 혜안이시고 아낌이시네. 그러니 자네를 낭청으로 임명하지. 어서 하사하신 약을 마시고 몸을 보하게나.”

진한 약재 냄새가 나는 꾸러미를 풀자 귀한 맥문동탕(麥門冬湯)이 한 제(劑)나 들어 있었다. 심지어 귀한 인삼도 새끼손가락 정도의 작은 놈으로 잔뜩 들어 있었다.

홍윤성이 바라기를 한직이 좋고 말직이 좋고 정 안 된다면 승진도 좋다 하였다. 한직은 막힐 한(閑) 대신 찰 한(寒)이 붙었고, 외직은 바깥 외(外) 대신 두려워할 외(畏)가 붙었으며, 승진은 오를 승(陞) 대신 어리석을 승(脀)이 붙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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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문종 또한 약속을 하였다. 거양성을 제대로 된 현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살게 하면 훈련도감을 양성하는 남한산 훈련장의 정5품 사직(司直)으로 승진시킨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정5품을 받을 때까지 살아남을까 그것이 의문이었다.

“사람 살 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찌 안 된다 하십니까.”

“자네 두 눈 똑바로 뜨고 주변을 보게. 이곳은 분지야! 거기다가 경원에서 200리 내륙으로 들어온 곳이라고. 자네들 얼마나 추워질지 상상이나 가나?”

“아무리 회사벽(灰沙壁 - 한옥 벽 양식 중 하나, 석회와 모래를 반죽한 모르타르를 많이 사용한다)이라 하여도 이 두께 이상으로는 나오기가 힘듭니다.”

훈련도감에서 행군 관련으로 배울 때가 똑똑히 기억난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추워지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추워지니 조심하라고. 심지어 여기보다 따듯한 경원조차도 추운 날에는 벽과 벽구들 사이의 틈으로 한기가 물밀듯 들어왔다.

“그렇다면 얼어 죽으라는 소리인가. 차라리 야인들처럼 토벽을 쌓음은 어떠한가?”

“관아조차도 토벽을 쌓으면 너무나 흉할 것입니다. 몇몇 백성들이야 담장처럼 토벽을 쌓았습니다만.”

“그렇다면 우선 널벽으로 막아놓고 7월 까지 생각을 해보도록 함세. 먼저 널벽과 벽구들을 만들어 놓으면 될 걸세.”

경원의 추위가 바닥 구들과 벽구들(페치카)로 버틸 정도라면 거양성 아니 거양현 일대의 추위는 사람을 잡아먹는 추위이다. 여기서 현을 만들라 하였으면 적어도 자신이 살아서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은 쌓여가고 자신의 능력으로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무관이지만 종 6품이다 보니 모든 일의 결정권은 사실상 자신에게 있는 것이 문제였다.

“대체 현감님은 언제쯤 오시는 거지?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벌써부터 겨울이 걱정되는군요.”

“야, 정범수 너! 주변 순찰이나 똑바로 해!”

“네네 알겠습니다. 낭청 나리.”

별다른 생각도 없이 1년만 버티면 되는 정범수 부사정, 과거의 홍산이를 보면서 홍윤성은 절망에 빠졌다. 저 녀석은 내년 봄이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거니까 별 고민이 없겠지.

“아아! 남도 가고 싶다!”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거양현의 분지를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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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부의 관아에서는 기이한 모습이 보였다. 한 중년의 남성이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듯 수많은 음식들을 뱃속으로 박아 넣었다. 반면 맞은편에 있는 젊은이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기다릴 뿐이었다.

“세상에 벌써 열 명이 먹고도 남을 양인데.”

“저희 나리께서 조금 대식가입니다.”

“길동아! 나리가 아니고 둘째 형님이며 관아에서는 직책으로 불러야 한다! 조금 부족하긴 한데 떡은 없소?”

머리통만 한 사발에 담겨 있던 보리밥이 자취를 감췄다. 두부장국 다섯 그릇, 밥 세 사발, 닭 두 마리, 돼지 갈비찜 한 덩어리, 거기에 잡다한 반찬과 청주 석 되(1.8ℓ)가 모조리 뱃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이미 식사를 마친 이맹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소문대로일세. 마천(麻川 - 홍일동의 호) 자네는 식성이 좋기로 꼽혔는데 직접 보니 이 또한 사내답지 않은가.”

“절도사 어른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제가 낯을 들 수가 없군요.”

불룩 솟아오른 배를 두들기던 홍일동은 천천히 기지개를 켜면서 동생을 보았다. 자고로 사내라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입신체비로 다져진 효성과 근육이 넘치는 몸이 아니겠는가?

“쉴 만큼 쉬었다. 다시금 입신체비를 하자꾸나.”

“네, 형님.”

“호부호형(呼父呼兄) 같은 것에 개의치 말거라, 이 형을 믿고 따라온다면 네가 당상관에 오르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너는 큰 형님보다 나를 많이 닮았으니 입신체비에 매진하여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였지만 본디 형제가 아니었다. 홍길동은 유복자(遺腹子)이며 천출의 얼자였다. 본래 역사였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었겠지만 홍일동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당장 많이 먹는 것은 입신체비에 필요한 육질(단백질)을 풍부하게 먹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소화 흡수가 빠르기에 양생(벌크업)의 효과가 증폭됨을 의미한다.

“저는 형님의 몸을 따라가지도 못하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허, 이 형님이 빠를 뿐이지 너 또한 어디 가서 부족하다는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제가 부족할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시거(데드 리프트)로 시작하겠습니다.”

양생 과정은 충분한 고기를 섭취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고기의 양을 늘리면서 소화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채워나가는 것도 허덕였지만 홍일동은 달랐다. 또한 그의 호탕한 성품 또한 몸을 키워 나가는 것에 보탬이 되었다.

“끄랴아아아앗!”

“형님, 내일부터 북방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무리하시면.”

“아프다는 것은 근육이 늘어나는 소리와 마찬가지이다! 염려하지 말거라!”

아프다 하면 아픈 것이고 힘들다 하면 힘든 것이다. 이런 단순한 생각 덕분에 근육통과 피로는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시거로 하반신의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이 또한 당연한 일이니 상관이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둘째 아들이 물려주신 몸을 가꾸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내려주신 훌륭한 몸으로 주상전하의 뜻을 받들어 야인들을 교화시키고 백성을 이끌어 가문을 다시금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게 몸이 좋아지니 막냇동생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집안에서 마름으로 일하며 허송세월을 하는 녀석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쳐 3대 운동 500근을 만들고, 음보(음서)를 이용해서 고향의 서리(胥吏)로 넣어 줬지만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답이 내려왔다.

-북방에서 야인들을 교화하는 일에 나선다면 서출과 천출 모두를 면해주겠다.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북방은 험난한 곳이니 지식이 없고 몸을 만들지 않은 자는 데려갈 수 없다고. 그렇게 다른 서출과 천출들이 서리로 일하고 입신체비를 배우는 동안 자신과 동생은 먼저 나아갈 수 있었다.

“절도사 어른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 거양현을 임시로 관할하는 이가 지모가 깊은 자라 하였는데 정녕 무관이 맞습니까?”

“맞네, 지모뿐만 아니고 임기응변 또한 대단한 것 같더군. 낭청으로 있는 홍윤성이라는 자인데 자네와는 성씨가 같아도 본관이 다를 것이네.”

“본관이 같아도 저희와 촌수가 비슷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홍일동의 아버지 홍상직은 전조 시절 있었던 무진피화(戊辰被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가문이 쇠락하였으니 주상전하께서 내려주신 기회를 발판삼아 북방에서 명성을 떨치리라.

부임할 거양현은 이제야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니 입신체비를 위한 도구들은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챙겨가야 할 것은 많았기에 먼저 시장에 들렀다.

홍길동이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셈이었으니 물가를 확인하면서 사방을 뛰어다녔다. 서리로 일하면서도 계산이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니 장사 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형님. 여기서 갖옷(모피 옷)을 사서 올라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값도 싸고 가죽도 넉넉하게 이어서 형님이 쓰셔도 괜찮겠습니다.”

“갖옷이라? 입신체비로 몸이 당당해지고 양생이 충분하면 겨울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니라.”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북방입니다. 추위 또한 한양과는 격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는 홍일동과 달리 홍길동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지방에서 서리로 있으면서 적당히 살고 싶었는데 나리, 아니, 둘째 형님의 등쌀에 휘말려서 이 꼴이다.

“그렇다면 홍윤성이라 하였나? 이곳에서 있었으니 그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도 너와 같은 을사(乙巳)년 생이더구나.”

“저는 을사년에서 10월이니 아무래도 저보다 연배가 위이겠군요.”

“그래, 그렇다면 홍윤성이라는 자는 본관도 다르니 의동생으로 삼으면 좋겠구나. 하하 이 또한 좋은 일이구나.”

의동생이라? 말이 쉽지만 어처구니없이 의형이 생긴 자신의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는가? 대범하지만 무심하기 짝이 없는 형님을 보면서 한숨만이 새어 나오는 동생이었다. 따스한 전라도의 겨울과 비교하면 북변은 얼마나 추울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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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흘이 흐르고. 형제가 탄 말이 거양현에 도착하였지만 안내인이 놀랄 정도로 맞이하러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적막한 마을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홍길동은 앞으로 나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현감님께서 오셨습니다!”

메아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갔지만 답이 없었다. 이게 무슨일이란 말인가?

“여기가 거양현이 맞는가?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 같은데.”

“다들 일손을 놀려 바삐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홍일동이 말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사람들 몇몇이 바삐 움직이기만 할 뿐 자신을 맞이하러 온 자들이 없었다. 분명 경원에서 사람이 미리 왔을 것인데? 잠시 기다리니 저 언덕 위에 있는 성터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급히 달려 내려왔다.

“오오, 세상에. 현령께서 오셨다! 현령님, 죄송합니다!”

“지금 고을에 부임하신 분이 오셨는데 어찌 마중하러 오는 이가 없는 것이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공사 중에 사고가 발생하여 수습하느라 그랬습니다.”

안내인의 말을 듣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 사내. 쑥색 철릭을 입은 것으로 보아서는 훈련도감 출신 군관일 것이다. 그런데 왜 흙투성이로 이렇게 있단 말인가?

“참으로 바쁜가 보군. 거양현의 현령(縣令)으로 부임하게 된 홍일휴(日休 - 홍귀동의 호)일세.”

“죄송합니다. 저는 이곳을 임시로 다스리고 있었던 훈련도감 낭청 홍윤성이라 합니다.”

“자네가 나설 정도로 사고가 컸단 말인가?”

홍윤성은 돌을 급하게 옮기느라 힘이 빠져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진정시키면서 언덕 위의 돌무더기를 가리켰다. 거기서는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실은 성벽을 보수하는 곳에서 돌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네. 그런데 이게 밭인가?”

본래 마을이라 하면 집도 있고 사람도 있고 논은 없겠지만 밭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것도 없고 집조차도 언덕 위에 조금 세워졌을 뿐이다. 밭이랍시고 무엇인가 갈아엎은 흔적은 있지만 거기에 무엇인가 작물을 심은 흔적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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