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29화 - 발해 개척 >
사학도의 입장에서 자료가 많은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내가 있던 역사에서는 소실된 발해국기를 되찾은 것도 대단한 일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확인을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지리학자도 아니고 발해 하나에만 얽매여 있을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형님은 내가 가져온 발해 관련 서적들을 바탕으로 하여 관료들을 가르친 뒤에. 그들과 함께 북방 개척에 관련된 토의를 시작했다. 대 북방정책의 계획은 철저히 수립하고 자신의 대에 완전히 복속시키려는 생각 같았다.
“혹여나 아국에 귀부한 여진 출신 노인 중에 설화나 역사에 대해서 아는 이가 있는가?”
“몇몇이 있었으나 상세히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하고 맞대어보니 앞뒤가 맞지 않아 알아내기 곤란했사옵니다.”
“야인들은 몇몇 특이한 자가 아니면 글을 모르고 구전으로만 전해지니. 그들이 살아오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보고를 하는 역관이 고개를 숙이면서 난색을 표하자 형님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나도 같이 듣긴 했는데 대충 이런 말을 하더라고.
‘암바 아이신 구룬(금나라)이 세워지기 전의 이야기요? 우리가 뭐 어디서 사람들과 같이 있었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게 진나라였던가? (장수왕 대에 고구려는 고려로 국명을 변경했다) 어디였던가?’
‘상경인가? 그거 들었습니다, 장백산(백두산) 자락에 있다던가 하던데요.’
‘동경은 저 멀리 동쪽의 거대한 평야를 끼고 있었습니다. 상경에서 동쪽으로 2,000리 떨어져 있다 하였습니다.’
그냥 증언을 듣고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확실한 지표가 있는 상경 용천부만 해도 경박호(鏡泊湖) 인근에 있어서 설화가 남기도 쉬운데 여기도 거의 몰랐으니까.
경박호는 만주의 호수 중 하나이며, 중국 5대호 중 하나인 데다가. 현대에도 발해 멸망과 관련된 야사가 남아 있을 정도로 사료가 풍부한 곳인데도 이렇다. 그러고 보니 그 사료를 온전히 기억할 자는 있긴 하다. 한때 동방 삼왕가 휘하에 있었던 충샨 정도면 알 수도 있지.
“그렇다면 개성에서 가져온 서책으로 근본을 세워야 할 것이다.”
“실로 그렇사옵니다. 떠돌며 사는 야인들에게 알아내려 한다면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신료들과 함께 거의 보름간 서책을 분석하면서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해 냈다. 나야 현대에서 추정한 답안을 알고 있지만 젊은 사람이 뚝 하고 던져 버리면 신료들이 뭐가 되겠는가.
“아국에서 발전시키기 가장 편한 곳은 한때 발해의 수도였던 동경 용원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경원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성터를 발견했다 합니다.”
김종서는 결국 3월에 고령을 이유로 북방 업무를 이징옥에게 일임하고 내려왔다. 아무리 정정하다 하여도 나이가 만 68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김종서의 신중한 손길이 지도에 표시된 경원의 옆에 압정을 꽂아 넣었다.
“그 성터가 정녕 동경 용원부의 성터일지는 모르지만 숲을 베어내어 건물을 지을 재목을 보충하고. 땅을 헤집어 돌을 꺼내면 좋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호시내(好時乃)는 아국에 먼저 귀부한 자이니 손해를 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감내할 것입니다.”
“실로 그렇다. 본디 성을 쌓을 때 적당한 크기의 돌을 구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들었다.”
경원은 조선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 구역이기에. 6진을 개척한 직후부터 강 건너 여진족들을 감시하거나 어르고 달래면서 조선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했었다. 당장 김종서는 그 방면의 전문가니까 할 말이 많겠지.
“다만 궁금한 것이 있다. 호시내의 힘으로 성터를 발견하였단 말이 이상하구나. 발해가 멸망한 지는 400년이 넘게 흘러서 토사에 묻혀 있었으며. 찾아낸 당시는 한겨울이 아닌가?”
“듣자 하니 흑토를 찾고자 덜 마른 나무를 태워 땅을 녹이고. 땅을 곧은 선처럼 파고들었다 합니다.”
“기발한 방법이군.”
저건 현대에서도 유물 발굴할 때 기초 조사로 사용하는 트렌치 조사법이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니까 앞으로 저 방법을 퍼트리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형님은 지도에 나와 있는 강줄기를 따라 천천히 위로 손을 움직여 나갔다. 북방의 커다란 강은 송화강, 목단강, 오소리강, 그리고 흑룡강이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강은 목단강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상경 용천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목단강(牡丹江)을 거쳐 북으로 나아가면 발견할 수 있다 하였으니 배를 사용하면 좋을 것 같구나.”
“하오나 지형도 모르고 거점으로 삼을 지표도 마땅치 않습니다.”
“수양대군이 정리한 글에 따르면 근처에 커다란 호수가 있다 하였으니 먼저 호수로 향하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책에 나와 있는 상경의 지형은 어떠하였는가?”
이런 내 차례구만. 시선이 집중되자 자료를 통해서 조사한 것처럼 적당히 역사적 사실과 서적의 추측을 섞어서 말했다.
“상경은 옛 장안(長安)의 제도를 따와서 외성과 내성 그리고 궁성을 두었다 합니다. 한 면의 길이는 10리 정도이며 서쪽에는 강이 있었다 하더군요.”
“그렇게 거대한 성터면 흔적을 찾기 쉬울 것이며 성을 만들기도 쉬울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찾는 일은 쉬울지 몰라도 겨울이 되면 북방의 강은 얼어붙을 것이니 많은 대비를 해야 합니다. 도시가 세워졌다 한들 물자가 부족하면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한때 발해의 도읍이었지만 이다지도 시일이 흐르면 아무런 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도읍인 상경용천부라고 해도 멸망한 다음 400년이 지났으니 황무지가 되었을 것이 뻔하다. 저기를 개척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에 반쯤 정신이 나가겠군.
“그렇다면 어찌 야인들이 살고 있으며 머나먼 과거에 고구려와 발해가 다스리고 있었단 말인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니 영토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전조에서는 다스리지 못하여 포기한 곳이라 하지만 이미 아국의 영토가 아니던가.”
과거에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 그러니까 한번 살아보자 라는 말 만큼 설득력 있는 말도 없다. 물론 개척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누가 감내할지는 의문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까라면 까는 것이니까.
“본디 일을 행할 때에는 착오도 많고 수고도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북방의 땅을 가만히 두었다가는 야인들이 규합하여 나라를 이룰지도 모른다. 전조는 그러한 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가 변을 당하였으니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면 아니 될 것이다.”
“저희가 분골쇄신하여 북방을 평정하는 일에 매진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형님의 말이 맞다. 처음이 가장 힘들고 그 이후부터는 시간과 사람을 투입한다면 충분히 해결된다. 조선의 정책은 마을이 생기고 조선인들이 살아야 공식적으로 조선의 영토로 편입하고 혜택을 주는 것이니 일대의 여진족들이 반박할 이유도 능력도 없다.
이미 경원 일대가 평정되어서 철기로 무장하고 충분한 집단 훈련을 받은 여진족들이 수천 단위로 쌓여 있었다. 거기에 몽고의 지원을 위해 상시 1만가량의 부대는 북방에서 언제나 대기하고 있다. 고된 일이지만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공적을 거둔 호시내를 아국에 가급적 빠르게 귀부시켜라. 또한 발해의 상경 용원부를 거쳐 합이빈(하얼빈) 까지 지리를 파악하고 여진족들을 복속시킬 채비를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형님의 손이 움직여 지도 위에 두 개의 압정을 박아 넣는다. 먼저 북방으로 크게 진출해서 활로를 뚫고 동쪽과 서쪽으로 확장시킬 거점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국운을 건 대업으로 볼 것이며. 적어도 나의 대에 모든 일을 마칠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국론(國論)을 정할 것이노라.”
연해주는 시호테알린 산맥의 개발 난이도가 너무 높으니(현대에도 야생 그 자체이다) 반쯤 방치해야겠지만 그 외의 지역은 최소한 현 단위까지는 개발을 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조선의 역량을 거의 다 투입해야 빠른 편입이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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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체비를 핑계 삼아 형님을 만나면 언제나 대화가 편하다. 고려사에 집중해서 일 하나를 끝내는 것이 좋다 생각했는지 형님은 토의 이후로도 발해 관련 자료를 내가 아닌 김종서를 비롯한 문관들에게 일임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상경 용천부의 이야기만 나왔는데 중간 중간 여진족의 통솔을 위한 거점이 필요하다.
“주상 전하 아니 형님께서는 상경 용천부만 생각하시었는데 발해의 영토를 개척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커다란 도시만 있어서는 주변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지금이야 잠잠한 여진족들이 언제 등을 돌릴지 어떻게 아는가? 소규모의 정착지를 만들어서 최대한 흡수시켜야지. 그러자 형님도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북방의 거점을 살필 것이고. 거점을 살피는 동안 두 곳을 시험 삼아 개척할 것이니라. 거양성과 같은 작은 곳도 필요하고, 경원과 같은 큰 곳도 필요하다.”
“거양성과 같은 곳은 군이나 현이 되겠군요.”
“그렇다, 커다란 곳만 있어서는 제대로 된 영토라 볼 수 없느니라. 당장 거양성 일대는 발해의 상경과 아국의 영토인 경원의 중앙에 있으니 몹시 중요한 곳이다.”
소도시와 대도시는 서로 상생관계다. 대도시는 커다란 강을 끼고 있다지만 물자의 전달을 보조하고 파발을 보내는 등의 역할을 위해서 주변의 작은 고을들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곳에 누가 찾아갈까?
“그렇게 험한 곳을 개척한다 하면 쉬이 나설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녀석, 아바마마와 내가 계책을 부린 것을 잊었느냐. 지금 몇몇 서자와 얼자들이 면천을 원하여 상소문을 올렸느니라. 그 수효가 벌써 팔십이 넘는다.”
“팔십이라 하였습니까?”
“그렇다. 당장은 북방에 보낼 곳이 없으니. 기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지방의 서리로 근면히 일하고 입신체비를 배우면서 몸을 추스르라 하였다.”
와 이건 몰랐네. 말이 팔십 명이지 하나하나 양반 가문에서 들어온 자들이다. 이들이 다 면천을 받으려 한다면 그냥 받겠는가? 상소도 올라왔으니 이득이 떨어질 것이고. 형님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실무 능력을 기르고자 서리로 일하게 한 것이지.
“그들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상소를 올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방에서 일하며 개척한 땅 중에 100결을 소작으로 쓸 수 있도록 하였으니 염려 말거라.”
“100결이라 하면 소출이 턱없이 적습니다. 북방에서는 쌀농사는 지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전가사변으로 보낸 인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올라가니 영토화가 가속되긴 하겠지. 하지만 북방에서 쌀농사는 짓지 못하고 목이 좋은 곳에 밀농사나 짓고 그 외에는 콩, 보리, 메밀 정도만 간신히 농사를 지으면서 살 것이다. 그런데 형님이 웃으시네.
“이미 북방에서 모피를 비롯한 물자들이 남도에 풀렸으니 100결이라 하여도 여진족에게 팔면 200결, 300결에 해당하는 값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네가 요즘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구나. 고려사 개찬이 끝나면 당분간 쉬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나 알아보고 오너라. 북방에 가장 먼저 보낼 적당한 사람은 이미 찾았느니라.”
요즘 참 바쁘게 살긴 했지. 한 1년 정도는 현동이 입신체비도 가르치고 아내와 같이 여인을 위한 입신체비를 정리해야겠다.
그나저나 적당한 사람이면 누구일까? 형님의 눈에 찰만한 인재가 있을까? 저 머나먼 북방으로 스스로 건너가서 공적을 쌓고 돌아올 욕심이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에 누가 있더라?
“적당한 자라 하셨는데 고민이 됩니다. 북방은 험한 곳이며 자칫 몸이 상할까 염려됩니다. 또한 야인들과의 말이 통해야 합니다.”
“한 신료가 먼저 북방으로 가고 싶다고 가장 먼저 나서더구나. 강이관(講肄官 - 사역원의 관원)으로 일하던 홍일동(洪逸童)인데 그자는 성품이 호방하고, 사소한 일에 관여치 않는 자이다.”
“홍일동이라 하시면 저와 함께 북방에 향했던 자가 아닙니까?”
홍일동, 그냥 평범한 사역원 소속 관료지만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양반의 동생이자 얼자가 조선의 연쇄살인범이고 강도이며, 훗날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된 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북방의 상황이 급박하고 나도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릴 틈조차 없었으니 그냥 역관 중 한명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묻어뒀었지. 그런데 여기서 다시 튀어나오다니?
“그렇다, 올해 마흔인데 3년 전에 네가 내수린을 하는 모습을 감명 깊게 보았다더구나. 배움이 아주 빨라서 3대 운동 750근(480㎏)에 달할 경지라 한다.”
“3대 운동 750근이요? 지금 그자의 나이가 마흔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1,350근을 해서 그렇지 3대 운동 750근 정도면 현대에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상위권에 속할 수준이다. 당장 배재당에 있는 제자들 평균이 3대 운동 800근 정도니까. 거기다 나이가 40이면 노화 대책이 없는 이 시대에서는 정말로 힘든 일이다.
“그렇다, 본래 사역원에서 일하였으나 네가 없는 사이에 입신체비장에서 기본을 배우고 스스로 정진하여 경지에 이르렀다 한다.”
“스스로 말입니까?”
“그렇다, 나도 스스로 배웠다는 말에 놀랐으나 확인해보니 사실로 드러났다.”
맞아, 내가 PTSD 치료를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몇몇 사람들이 입신체비를 배우러 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그 중에 하나가 홍일동이라고?
“그러한 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출세를 위하여 북방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 실은 그에게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유복자인 얼자 동생이 있다더구나.”
“설마 얼자 동생을 위하여 친히 북방에 나선다는 말씀이십니까?”
홍길동의 서얼 면천을 위한 5년의 북방생활을 홍일동이 돕는다? 그러고 보면 입신체비를 하면서 신분귀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그렇게 강조했었지. 그런 영향을 받았으면 충분히 합당한 선택이긴 하다.
“그런 것 같더구나, 성정과 태도 또한 북방에 나아가기 충분한 자이며 이미 야인들의 여러 언어를 익혔으니 대화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를 거양현의 현감으로 임명하였다.”
홍길동이 이 세계에서는 북방의 호탕한 남아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홍길동은 입신체비를 했을까? 본가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홍길동은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