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27화 - 초대형 사고 >
입신체비에 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수양대군의 감시가 조금은 덜할까 기대했는데 21명으로 늘어나도 자세가 조금만 틀어지면 귀신같이 지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쳐 가는데 말이 귓전을 때리면서 다시금 자세를 올바로 만든다.
“각굴(런지)의 핵심은 보폭의 조절로 근육의 자극을 달리하는 것이야! 그러니 자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효험이 나지 않는다네.”
“명심하겠습니다!”
구령에 맞추어서 칼같이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횟수는 지켜야 한다. 자세를 바꾸니 허벅지 뒤편과 엉덩이에 불길이 다시 솟아오른다. 삼 일 전에도 그랬지만 내일은 또다시 보(堡 - 한명회의 큰아들)의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입신체비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술을 마시면 회복이 늦으니 푹 쉬게나.”
“대군 어른! 편히 주무십시오!”
오늘이 입신체비를 행한 지 보름이 다 되었다. 특식일인지 뭔지가 있었지만 그래 보았자 하체 운동을 하면 다음 날 반송장이 되겠지.
“압구(狎鷗) 형님, 오늘도 열심히 임하시니 저도 더더욱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니 고맙군, 아들이 자네같이 기골이 장대했으면 좋겠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매월당 김시습이라 하는 녀석이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정리에 임했다. 출세가 보장되어서 저러는 것인가, 아니면 입신체비가 좋아서 저러는 것인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매월당은 수양대군의 사람이 확실했다.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삭신아! 부인, 나 들어왔소.”
“오늘도 입신체비를 하셨습니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지라 아내도 별다른 말이 없이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기회를 노려 수양대군과 친밀함을 쌓으라고 말까지 했고.
“당연하지 않소, 내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실하게 임할 것이오.”
“그래도 몸이 하루하루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몸이 좋아지면 뭘 하나! 예전에 칠 개월 동안 입신체비를 배웠지만 나아지지 않은 이유가 이거다. 처음 보름은 열심히 따라갔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고 무게가 늘어났으며, 또다시 보름이 지나자 무게가 늘어났다.
‘몸이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공령의 무게를 올리니 죽을 맛입니다.’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입신체비는 효를 위한 몸을 만들어야 하니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이올시다.’
‘그건 탕왕의 고사가 아닙니까! 입신체비는 몸을 다루는 학문이 아닙니까?’
‘사람은 누구나 나아질 수 있소. 학문과 마찬가지로 근육도 그렇소.’
윤 생원은 분명 자신보다 뛰어난 자가 맞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열심히 하고 남은 여섯 달은 적당히 놀면서 보냈었지만 수양대군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수양대군은 절대 남을 겁박하거나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면서 입신체비를 행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참 특이한 사람이다, 그 직책과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강제로 시킬 법도 한데 어찌 저렇게 권력에 초탈하단 말인가.
“이제 내 몸이 몸 같지 않소.”
“그런데 보름 사이에 체구가 듬직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온몸을 놀려댔으니 육신 전체에 차돌이 박힌 것 같소!”
수양대군은 철저히 관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저녁에 꼭 세신(洗身)을 하고 자라면서 석감까지도 한 덩어리씩 나눠줬다. 심지어 감모(감기)가 걸린 자는 잡아서 호통을 치더니만 의원에게 보내 약도 한 재씩 복용하게 하였고.
“아우우우우아아악!”
이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 해가 밝았다. 오늘은 궁지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지만 도저히 몸을 놀릴 방법이 없었다.
“매월당 그 어린 녀석은 어떻게 이걸 이겨낸 것이지.”
“기침하셨습니까? 오늘도 몸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습니다.”
아내가 가져온 세숫대야로 얼굴을 닦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여기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 죈 종일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데 아이들이 인사를 건넨다.
“아버지, 기침하셨습니까?”
“오냐, 와서 몸 좀 밟아주지 않겠느냐.”
“네, 아버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아들이 성큼성큼 달려온다. 대청마루에 누워서 몸을 밟아 풀게 하였는데 그 작은 발바닥이 몸을 밟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아이고! 아윽! 그래, 계속해라! 허벅지 뒤쪽!”
“괜찮으십니까?”
“아니다, 염려하지 말거라, 지금 풀지 않으면, 아악!”
열심히 입신체비를 하고서도 곤장을 맞는 것처럼 아프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렇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내는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재활의 에게 의술을 배웠다는 의원들이 늘어나더군요.”
“재활의? 처음 들어보는 의원인데 대체 누구요?”
“수양대군 어른에게 배운 제자 중 한 명이 의원들과 힘을 합해 창안한 의술이라 합니다. 한번 치료를 받아보심이 어떠한지요.”
의술이란 말인가? 수양대군의 사람이 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출세할 길이 열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입신체비를 이렇게 행하니 과연 몸이 버틸지는 모르겠다.
----------
지난 보름 동안 개성의 유력가들을 만나면서 발해에서 건너온 자들의 후손을 찾긴 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정하다 못해서 싸늘하였다.
“족보요? 외가의 성으로 바꾸면서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계라는 분이요? 그분 후손이 지금 물귀신이 되었을 것인데요.”
“족보요? 일전에 어진을 태웠던 적이 있어서 해를 입을까 두려워 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세종대왕님이 역사를 기록할 사서들은 내버려 뒀어도 어진을 불태우고 조각상을 파묻어 버린 사건 때문인지 다들 민감하다. 강제로 윽박지르고 사람을 시켜 집을 수색하면 자료는 아니더라도 흔적은 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짓을 하면 형님의 뜻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살살 구슬려서 대접해 주고 얻어내야지. 기건도 이 상황을 아는지 나의 푸념을 받아줄 뿐이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아무래도 선왕께서 행하신 일의 충격이 컸나 봅니다.”
“그래서 말인데 전조에서 남긴 능(陵)의 주변을 조금 파헤칠 일이 있을 것 같소.”
결국 최후의 수단이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 세종대왕님이 24년 전에 묻어버린 그 녀석을 발굴한다. 그걸로 민심을 어느 정도 되돌려서 스스로 정보를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유수부에는 다른 사람도 있으니 우회적으로 말했다.
“혹시나 여러 곳을 깊게 파내실 작정이십니까?”
“대체 무슨 소리요? 그저 보기가 흉하니 흙이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한 곳을 다스릴 뿐이오.”
“제가 우둔하여 착각을 하였습니다.”
역시 머리가 좋네. 기건은 세종대왕님이 개성 곳곳에 있는 고려시대 왕릉에 고려시절의 물건을 묻어놨었던 일을 떠올렸는지 바로 말을 이해했다.
대놓고 묻어둔 것을 파낸다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저 전조의 왕릉을 보수하다가 유물을 파내었다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민이 있소, 전조의 왕릉을 보수한다 하는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겠소.”
왕릉을 보수하면서 일어날 [사고]는 세종대왕님이 묻어놨던 고려시대의 유물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기건도 사고가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웃으면서 받아 넘겼다.
“자칫 잘못하면 쓸데없는 것을 깊이 파다 [사고]가 일어나겠군요.”
“고의가 아니니 감싸줘야 하겠으나 더 이상 개성에 있기는 힘들 것이 분명하며 누대에 걸쳐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분명하오.”
“그렇다면 그자는 무고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까.”
기건은 엉뚱한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고 고려 시대의 동상 같은 것을 끄집어내서 해를 입을까 염려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적당한 사람이 있었다.
금전욕과 권력욕에 미친 자가 머리도 좋다, 그리고 그자는 내 주변에 있으며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안달하고 있다. 한명회를 엮어 넣을 판을 깔아주면서 시험대로 삼자. 이것도 무사히 넘어가면 내가 직접 키워줘야지.
“듣자 하니 전조가 멸망할 무렵 어느 부호가 현릉(顯陵) 근처에 금은보화를 묻었다는 소문이 있소.”
“그렇습니까? 저는 듣지 못한 소문인데 안 좋은 마음을 품은 자가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군요.”
“그러니 더더욱 주상전하께 여쭈어 보아야 할 일이오.”
그렇게 세종대왕님과 형님에게 서찰을 보낸 지 사흘 만에 답장이 왔다.
[왕태조가 머물러 있는 현릉을 보수한다 하니 너의 심계를 알 만 하구나. 현릉은 그만큼 중요한 곳이나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까 두렵다. 그러하니 가급적이면 관직에 없는 자들이나 음보로 들어온 이들을 시켜 행하여라.]
형님의 답장을 보니 아마도 세종대왕님과 충분한 논의를 해서 나온 결론이겠지. 그리고 세종대왕님의 답장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비록 전조의 망령을 다스리기 위하여 많은 일을 행하였지만 태종대왕님의 뜻을 이어간 것이었다. 이제는 주상의 시대가 되었으니 뜻을 이어나가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현릉 주변에 행한 일은 상세히는 모르니 염려하지 말거라.]
그러고 보니 일을 실행한 예조의 인물들은 전부 죽었지? 세종대왕님도 상세한 사정은 모를 것이 분명하며 기껏해야 한양에서 불려온 잡부들이 노인이 되어서 살아 있을 거다.
그렇게 두 분에게 허락을 받고 기건과 함께 최종 계획을 잡았다.
“명이 내려왔소. 주상전하와 아바마마 모두가 헌릉을 주변을 보수하는 것에 있어 바람직하다 여기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입니다. 이제 행할 때가 되었지요.”
현릉도 직접 다녀와 봤고. 세종대왕님이 태조 왕건의 동상을 어디에 묻었는지 짐작도 갔다. 나야 현대의 발굴기록에서 북쪽 능선에 묻혀있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지만. 한명회 정도의 지능이면 알아서 북쪽 능선을 헤집고 다닐 것이 분명하다.
----------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직접 확인해 볼 기회가 왔다. 현릉 근처에 전조 말엽쯤에 부자가 묻은 보물이 있다던가.
전전긍긍 하던 차에 수양대군이 현릉의 보수를 한다고 사람을 모으고 있기에 바로 지원했으며 단번에 발탁되었다. 아무래도 열심히 입신체비를 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전조의 능이라 하지만 왕태조의 것이 아닌가. 보기에도 가슴이 아프니 주상전하께서 명하신 바를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이다.”
수양대군은 능을 한번 돌아보더니 한탄하면서 말했다. 묘 자체를 손보는 일은 아니지만 주변의 흙을 파헤쳐서 쓸려온 모래나 낙엽들 거기에 시간이 흘러 자라난 잡초와 잡목들을 흙과 같이 퍼내고 뗏장을 가져와서 심어야 한다.
“이걸 언제 다 하지?”
“성실히 행한다면 보답을 받을 것일세. 그러니 열심히 행하게나.”
수양대군의 말을 끝으로 서리들과 일대에서 고용된 잡부들, 거기에 각 구간의 공사를 관리할 자들이 소집되어서 능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거 우리로 되겠어? 대충 하고 끝내면 안 될까?”
“아무리 그래도 대군 어른의 앞이네, 성실하게 행해야 할 것이 아닌가.”
“댁이 성실히 있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겠어?”
자신을 쏘아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넘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부자라면 그 난리 속에 보물을 어디에 묻었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니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람이 변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나는 북쪽 능선을 담당하겠네.”
“그곳은 낙엽이 쌓이고 흙이 밀려와 제법 험한데 괜찮겠나?”
“일손이 부족할 게 분명하니 나도 힘을 써야 하지 않겠나.”
몇몇 서리들은 땅을 유심히 돌아보고 다녔다. 아무리 봐도 자신과 같은 소문을 접한 사람들이겠지. 그러나 저런 찾아보기 편한 장소에는 보물을 묻어놓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제사를 위한 건물도 있고 탁 트여있는 남쪽에는 있을 가능성이 없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몰래 가져와서 묻었겠지. 아마 저 능선과 연결된 능 북쪽이 가장 가망성이 높았다. 그렇게 자리 배정이 끝나고 수양대군에게 뛰어가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북쪽 능선에서 일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은 입구부터 한다더군요.”
“그런가? 압구 자네가 북쪽 능선이니 인부들이 힘에 부치겠군. 사람을 조금 더 붙여주겠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수양대군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가장 힘든 곳의 공사를 도맡아 한다면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니 우선 좋고. 여기서 보물이 나온다면 왈패들을 불러 캐내고 팔아치워야지. 권력과 재물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입신체비서를 읽었는데 삽과 괭이를 통하여도 등을 단련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입신체비를 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참으로 훌륭하기 이를 데 없군. 그렇다면 닷새 동안 입신체비를 궐하여도 좋네.”
“대군 어른께서 내리신 배려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삽을 들고 모래와 자갈을 파내며 잡초가 우거진 땅을 헤집고, 가끔 어린나무가 있으면 잡부들과 같이 베어낸 다음 곡괭이를 들어 남김없이 파내었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네, 입신체비를 행할 때와 같으니 염려 말게.”
“그러다 허리 망가지십니다.”
잡부들의 실없는 소리를 들으면서 땅을 파고 파고 또 팠다, 그렇게 삼 일이 지나자 능 주변의 모든 땅은 벌건 생흙을 드러냈고. 몸은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안 들어가십니까?”
“혹여나 뿌리가 남아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네. 곧 들어갈 것이니 먼저 가보게나.”
다른 관리직들과 달리 솔선수범 하는 척 직접 움직인 덕분에 간신히 알아차렸다. 한곳의 흙의 색이 조금 다르고 촉감이 달랐다. 눈으로는 알지 못하고 삽을 퍼나르는 손끝으로만 느낄 정도의 미세한 차이를 잡아냈으니 이제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
“보물! 보물을 보자!”
땅의 가운데를 정신없이 헤집었다. 그렇게 석 자(1m)를 파고들자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곡괭이 끝에 딸려왔다.
“어떤 보물일까? 잠깐 이거 비단 아니야? 비단에 금실로 자수를 입혔네?”
삽을 여러 번 넣어도 전부 쇳소리가 난다. 커다란 궤짝 같으니 다음 일은 사람을 불러와야 할 것이다. 주막에서 왈패들을 불러 모았는데 다들 믿지 않는 것 같다.
“보물이 확실히 있다네. 내가 절반, 자네들이 절반으로 나눈다니까?”
“현릉 뒤편에 보물이 있다니? 처음 들어보는 소리인데.”
“이 비단 조각을 보게, 이렇게 금실로 수놓인 비단이면 잘하면 대부호가 숨긴 보물일지도 몰라! 쇳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이 못해도 쇠로 만든 궤짝이 아닐까 하는데.”
사람들이 보물에 눈이 멀어 해코지할 것이 염려되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은 제법 명문가 소속이니 함부로 해코지를 하지는 못하리라.
“혹여나 능 자체를 파버린 것은 아니지?”
“능의 북쪽 능선이니 염려 말게나. 지금 현릉에 쓰다 남은 삽과 괭이가 있으니 동아줄만 챙겨 가면 충분하네.”
사람들과 함께 몰래 현릉 뒤편으로 들어가 보물을 파내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진(2시간) 동안 땅을 파내니 보물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거 보살상인가?”
“흙에 묻혀 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어. 거의 사람 크기에다가 쇳소리가 나니 불상 같기도 한데.”
굵은 밧줄이 내려오고, 10명의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서 거대한 동상을 끌어 올렸다. 열 명의 장정이 온 힘을 다해야 간신히 땅에서 뽑아낸 커다란 동상이었다.
“이거 정말 무겁군!”
“무게가 육백 근(384㎏)은 될 만한 녀석이니 큰 돈벌이는 아닌데.”
이런 상은 처음 본다. 보살상 중에 입상도 많지만 대부분 돌을 조각해 만든 것이고. 청동으로 만든 입상은 별로 없었다.
“어느 보살인지 얼굴이나 봅시다. 잘하면 절에 팔아넘겨서 돈을 더 챙길 수 있겠소.”
겉에 묻어 있는 흙을 대충 털어내고 넝마가 된 비단옷을 벗겨냈다. 거칠게 발굴해서 몸통에는 삽날로 찍힌 자국이 있으며, 턱이 후덕하고, 남근은 작은 이상한 불상이다. 그런데 무슨 통천관(通天冠 - 황제를 상징하는 관)을 쓰고 있었다.
“이건 불상이 아니야, 이런 불상은 본 적도 없어.”
“태…… 태조대왕님?”
지금 이 자리에서 태조대왕이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분이 이런 동상을 만들었단 말인가? 이런 동상을 그리고 통천관을.
“아…….”
이제야 이 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그리고 저 멀리서 횃불이 비춰지고 고함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