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84화 (84/573)

< 2장 23화 -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

“아이고 우리 아들! 아버지가 조선의 만호가 되었다!”

“아버지!”

아구지 아니 정충렬을 비롯한 여진족 주요 인물들은 형님을 만나보고 배재당으로 달려왔다.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말끔해져서 나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였고. 족장과 간부들 또한 자신의 아이들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서로가 얼굴을 알아보더니만 자신의 아이들을 껴안고 목말을 태우며 아버지의 정을 보여줬다.

“그래 입체신비인지 그것은 아직 나이가 적어서 못하는데도 몸이 이리 커지다니. 역시 내 아들 답구나!”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어려운 말을 하는구나. 조선의 말을 많이 배웠으니 나도 배워야지.”

무슨 말인지는 옆에 있는 통역기 신숙주가 자동으로 통역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후가 끝나자 여진족들은 정충렬을 시작으로 스승인 내 제자들의 손을 잡고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조아렸다.

나에게 소개받을 때는 무기도 다룰 줄 모르는 주제에 스승이라 해서 반발이 조금 있긴 했는데. 다들 훈련도감보다 더 힘이 좋다고 설명하니 바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인다. 하지만 정충렬의 직급이 만호이다 보니 제자들도 난감해 한다.

“아니 만호께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하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럴 수 있지, 부탁이니 내 아이를 자네들만큼 힘이 강하게 만들어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라의 일이기 이전에 한 아이이자 제자를 키우는 만큼 열심히 행하겠습니다.”

이 전쟁에서 나와 형님이 거둔 성과 중에 하나는 여진족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조정에서도 그렇고 백성들도 그렇고 여진족들은 하나같이 예비 범죄자여서 기존에 입조를 시킬 때에도 잡음이 많았었지. 그런데 어떤 소문이 퍼졌냐고?

‘주상전하께서 야인들을 복속시켰는데, 얼마나 잘 복속했는지 다른 야인들을 해하면서도 겁탈을 하지 않고 노인들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더라.’

‘야인이라 하여서 짐승과 같을 줄 알았는데 꽁지머리만 남겼을 뿐 별반 다를 것이 없더라. 석감으로 매번 몸을 씻는데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무례한 자들이라 하였는데 적어도 도리를 아는 것을 보니 다른 야인들도 복속시킬 법 하다. 야인들은 충분히 교화할 수 있다.’

라는 소문이 퍼졌다. 함께 작전을 했던 병사들도 한양에 왔고 여기서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간 효과였다. 거기다가 야인들을 받아들일 때 내가 관여하였고 내가 만들어낸 학문이라 하여서 입신체비에 대한 평가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입신체비가 저렇게 퍼진다니요…….”

물론 김시습은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음만큼은 한결같았다. 김시습의 몸은 순식간에 발전해서 이제 3대 운동 500근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지만 제자들이 3대 운동 800근이 평균이 되었다.

“매월당! 어허 자네 아직도 입신체비의 효험을 믿지 않는 것인가?”

“효! 효도라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능히 다스려야 하는 것이네!”

“등 따시고 배부른 효는 없습니까!?”

“어허 오늘은 금자탑(피라미드) 훈련을 해야겠군.”

김시습의 얼굴을 보니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있는 것 같았다. 한번 따로 빼내서 쉬게 해줘야지. 듣기로는 보름에 한 번 있는 특식일(치팅데이)에도 식단 조절을 받는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겠네. 나도 특식일은 무조건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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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시간이 흘러 거의 2월이 다 될 무렵. 형님이 고려사 편찬을 잠시 중단하고 할 일이 있다 하신다. 어차피 내가 없어도 자료 취합이 어려워질 뿐 문맥상의 오류나 기타 내용상의 오류 점검 속도는 똑같으니 잠시 다른 일을 해보자.

“오랜만이구나. 그래 개찬작업은 잘 되어 가느냐.”

“주상전하께서 믿음을 주신 덕분에 제가 온 힘을 쏟아가며 매진하고 있습니다.”

“온 힘을 대역기에 쏟는 것은 아니더냐.”

형님의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고 진담 같다. 내가 관여하는 속도보다 다른 사람들의 편집 속도가 느려서 이제 입신체비를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겨버린 시점이니까. 덕분에 근손실은 없다! 40까지 근육을 유지하고 말거다!

“네가 서책을 능히 개찬하고 있으니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렇다. 전조 시절에 북방에 있던 야인들의 나라에 있던 커다란 군현을 좀 아느냐.”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야인들은 화북을 점령하자마자 터전을 옮겼기에 작은 부락들만 있을 것입니다.”

요와 금 둘 다 중심지를 화북으로 옮겨 버렸으니 문제다. 기껏해야 합이빈(하얼빈) 까지 올라가야 유적이나 남아있을까? 지금 조선이 얻어낸 영토를 오랫동안 지배한 국가는? 발해 외에는 없다. 고구려는 간접 지배를 하였으니.

“그리하여도 완안(完顔)씨 – 금나라를 뜻함 – 와 전쟁을 벌였던 나라이니 그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것 같구나.”

“전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은 여진족이 세웠던 금나라에서 쓰였던 성채를 찾아내길 원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다. 아국이 다루어야 할 영토에는 능히 거점이 있어야 하니 옛것을 다시 쓰면 좋을 것 같구나.”

형님의 입으로도 발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걸 보니까 조선 초에는 존재조차 거의 몰랐다는 말이 사실 같다. 당장 고려사에서 발해에 관련된 내용이 많지도 않았으니까 발해를 국가의 이름이 아니고 바다의 이름으로 알겠지.

“실은 고려사를 보면서 금 이전에 있었던 진국(震國) 혹은 발해(渤海)라는 나라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아국이 명에게서 얻어낸 영토만큼을 이백 년 이상 다스렸습니다.”

“발해라, 옛 서적에서 잠시 지나가면서 보았구나. 그런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전조의 명신 최승로(崔承老)가 적기를. 발해는 드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나 거란에게 멸망하고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전조로 수만호를 끌고 남하하여 벼슬을 하고 왕 씨의 성을 물려받았다 합니다.”

“그렇다면 전조에서는 어찌 발해를 역사로 다루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구나. 발해의 기록이 있다면 그들이 머물던 성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당시에는 왕건이 정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너무 상황이 안 좋아서 포기했는지는 몰라도. 결국 조선 후기에 와서 발해를 연구하던 사람들도 자료가 없어서 난감했지. 그런데 이 시대에는 기록이 남아 있을까? 있다면 상경과 동경은 쓸 만한 거점이 될 거다.

“전조가 세워질 무렵에는 아직 혼란하여 북방에서 내려오는 유민을 받아들이는 일에만 급했을 것입니다. 훗날이 되자 기록을 남기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받아들였으나 정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로구나. 그렇다면 혹여나 모르니 개성으로 가서 대광현이라는 자가 남긴 기록이 있는지 찾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참 골치가 아파지는걸. 백제신찬과 신집을 발견한 것도 대단하지만 발해의 상세한 기록을 알려면 최소한 발해국기(渤海國記)가 필요하다. 당나라 시절에 쓴 책인데 언제 소실되었는지는 몰라도 명에서도 발견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발해사를 편찬한 유득공도 자료가 부족하다고 한탄했었지.

“일단 김시습 멘탈 좀 챙기게 같이 개성에 가서 서적 조사하다가 돌아오면 충분하겠지.”

반드시 적당히 하고 돌아올 거다. 김시습의 정신세계를 위해서라도 절대 근육으로 윽박지르거나 그런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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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도감군의 인원 중 상당수는 아직도 경원에 있었다. 날이 어느 정도 풀리자 훈련도감 병사들은 알아서 훈영체조를 비롯한 몸 단련을 하면서 마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들의 근육이 적을 압도할 수 있음이 이번에 증명되었으니 모두에게 있어 훈영체조는 생활처럼 변해갔다.

“추위 때문에 죽다 살았어. 홍 형은 아직도 감모가 떨어지질 않았다더군.”

“함경도의 집에 왜 커다란 마루가 없는지 알았네. 마루가 있었으면 당장 얼어 죽었겠군.”

“그래도 벽구들(페치카) 덕분에 잠은 편히 자고 있으니 다행이지.”

경원 일대에 새로 만들어진 건물들에는 장영실이 설계했던 벽구들을 적극 활용했다. 본래는 구들만 있었지만 남쪽에서 사냥을 하던 여진족이 잠을 자려고 땅을 파다 흑토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여진족 녀석들 농사를 지독하게 못 지을 뿐이지 나머지는 다 잘하지 않나?”

“사냥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낚시도 잘 하더군, 두만강이 꽝꽝 얼어있는데 거기에 불에 덥힌 돌로 얼음을 녹여 구멍낚시를 하더군.”

“그런가? 이번에 충덕산의 흑토를 찾아낸 자도 여진족이라 하였는데 재주가 많은가 보군. 광산 이름을 아우지라 하던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며 아침의 자발적 훈련이 끝나고. 다들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 군사 관련 미곡을 담당하는 종 6품 관직) 출신이었던 별좌(別坐) 이경창(李景昌)의 명령을 듣고 이 마당에 정렬했다.

“얼마 전 강 건너의 훈춘에 있는 부락의 족장 호시내(好時乃)에게서 사람이 왔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다른 부락이랑 싸웠다고 합니까?”

“자신들의 땅에서 이상한 것이 나왔다 해서 상황을 보라 하였는데. 놈들이 도무지 뭘 보았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혹시 모르니 그대들의 힘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힘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훈춘은 경원의 맞은편에 있는 지역이며 복속한 여진족들의 땅이기도 하였다. 조정에서 먼저 보내온 올라온 장계에 의하면 경원을 부(部)로 승격시킬 것이지만 부로 쓰기에는 터가 너무 좁다 하였다.

그래서 두만강 건너의 분지도 개간할 장소를 찾아 경원부에 포함시키려는 명령이 들어있었다. 기왕에 병사를 보낼 바에는 좋은 장소를 찾아낼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 필요했다. 별 일이 아니면 사방으로 병사를 보내 적당한 터를 찾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아직도 얼어있는 두만강 위를 건너자. 여진족들은 조선군에 대한 예의를 갖췄는지 족장부터 부족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강가에서 말에 내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들이 있던 곳에서 무엇이 나왔기에 괴상한 일이라고 하는 것인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그 강 건너의 소식을 들으니 흑토라는 것이 그렇게 귀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벌써 소문이 퍼진 것 같다. 여진족이 흑토를 발견하자 관리들이 나서서 땅을 파댔고. 인근에 살던 여진족들은 농사 대신 흑토를 캐내서 수확을 제법 거뒀다 하니까.

“그렇다네. 흑토라도 발견 되었는가?”

“아닙니다, 흑토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한 시진 이상을 이동하자 여전히 숲이 보였다. 제법 평지였지만 삼림이 어느 정도 우거진 곳이니 숲이라고 봐야하고 자그마한 언덕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곳입니다, 저희는 땔감을 얻는 이곳에서 겨우내 이곳에서 흑토를 찾았습니다.”

“지금 농담하는 것인가? 겨울에는 흙이 얼어서 곡괭이도 들어가지 않는다네.”

“저희도 꾀를 냈습니다. 어차피 구들에 쓸 나무는 밖에 두어 말리지 않습니까. 나무 중에 덜 마른 녀석들을 바닥의 낙엽을 걷어낸 다음 태웠습니다.”

여진족들은 배운 것이 없을 뿐 머리는 좋았다. 주변에는 나무를 늘어놓고 태운 자국이 즐비했고, 그 아래로 녹은 땅을 일자로 파낸 구덩이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그 구덩이의 흙 위에 머리통보다 큰 돌이 있었다.

“이건 돌이 아닌가?”

“그냥 돌이 아닙니다. 정으로 다듬은 돌입니다.”

얼핏 보면 그냥 돌이라 착각하여 지나칠 수 있었지만 성벽을 퇴물림(뒤로 물러나면서 쌓음) 형식으로 쌓을 때 가공했던 흔적이 보였다. 정으로 쪼아낸 자국이 보였으며 한쪽 면은 평평하게 다듬었다.

“여기에 높은 단으로 쌓은 건물이라도 있었나? 그게 뭐가 괴상하단 말인가.”

“저희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걸 보십시오.”

거의 1리(400m)를 걸어가도 계속 여진족들이 흑토를 찾으려 시도한 직선형태의 구덩이가 보였다. 모든 구덩이에 돌이 있지는 않았지만 가끔가다가 정으로 쪼아낸 돌이 한 무더기씩 나왔으니 이상할 노릇이었다.

“한 곳이면 건물이라 볼 수 있으나 이렇게 많이 나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혹여나 이곳을 파보면 보물이라도 나올지 모릅니다.”

“보아하니 언덕이 줄지어 있는 게… 가만히 보니 이건 언덕이 아니고 성이 묻힌 흔적일 수도 있겠어.”

약간씩 울룩불룩한 지형이 모두 높은 성이 무너지고. 그 위로 흙이 쌓여서 생겨난 곳이란 말인가. 그렇게 이경창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천리경으로 둘러보자. 돌이 발견된 곳은 모두 약간씩 불룩한 언덕처럼 보였다.

아마도 성이 무너지고 오랜 시간이 흘러 토사가 위에 덮이고 덮였으리라. 그 위에 풀이 자라나고 숲이 생겨났겠지.

“내가 성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는 않지만. 높은 지형이 이렇게 줄지어 있으니 성벽의 한 변이 1.5리(600m)가 넘어갈 것 같군. 네 면을 합하면 6리(2.4km)가 넘을 것이고, 이렇다면 함흥성(咸興城)의 절반이 조금 넘어가겠군.”

“네? 이성계 어른이 계셨던 그 거대한 성이요?”

한양도 못 가본 촌놈들이어서 그런지 함흥성이 거대하다 하고(큰 편이지만) 태조 대왕의 존함을 함부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넓은 아량으로 참아낸 이경창은 명령을 내렸다.

“숲이 우거진 것으로 보아 성이 무너진 다음 몇 세대는 지났겠군. 전조 시대에 이러한 기록은 없는 것 같지만 나중에 다 뒤엎어서라도 조사해 볼 것이니 이 일대에서는 자리를 비워주게. 여기 있어봤자 숲을 다 베어버리고 땅을 헤집을 것일세.”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포상은…….”

“한양에 장계를 올린 다음 내려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호시내와 달리 이경창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로 번잡했다. 고구려의 땅이었으니 고구려의 성이 있었을까? 숲이 우거진 정도로 보아 태조 대왕께서 세우신 성은 아닐 것이 분명하고. 윤관이 개척한 동북 9성에도 이러한 기록은 없다.

“영문을 알 길이 없군. 하지만 성터라 하면 과거에도 쓰였던 곳이니 금방 쓰일 수 있겠지.”

“별좌님, 정말 성터가 맞는 것 같습니까?”

“만약 절이라면 저런 돌들이 나오지 않고 잘 다듬은 초석과 기단돌이 나왔겠지. 하지만 저렇게 넓은 곳에서 적당히 다듬은 돌이 나오니 성이라 봐야하네.”

“하지만 어느 누가 저 성을 지었단 말입니까.”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여진족들이 흑토를 찾아내기 위한 유사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정작 어느 성인지 결론을 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알 길이 없다네. 저 먼 옛날 고구려(高句麗)의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전조시기에 있었던 동북 9성에 속하는 것 같지도 않고.”

“태조대왕님께서 쌓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랬다면 기록이 남았을 것이며 저렇게 석자(1m)깊이로 묻히지도 않았겠지.”

직접 온 보람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성 터이지만 적당한 명분으로 여진족들을 쫒아내고 일대를 마음대로 헤집을 수 있게 되었다. 훈춘에서 성이 발견 되었다 하면 조정에 있는 자들이 분명 밝혀낼 것이다.

지금 조선에서 이 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는 수양대군 단 한명 뿐이었다. 그들이 파헤친 것은 발해의 5경인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의 본성인 반랍성(半拉城)의 무너진 성벽의 일부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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