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83화 (83/573)

< 2장 22화 - 논공행상(論功行賞) >

1452년 1월이 되었다. 나야 하루 종일 고려사를 편찬하면서 입신체비를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었다. 여전히 글귀를 읽으며 패도(플랭크)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종서가 의주에서 내려와서는 자신이 고려사를 검토하겠다고 하더라.

김종서는 내가 편집한 고려사를 보면서 감탄하는 소리를 내면서 정성스럽게 읽었다. 원 역사의 139권을 넘어선 145권 혹은 그 이상의 분량으로 예상된다. 50권 정도로는 전체의 1/3도 완성하지 못했다.

“훌륭합니다. 일을 시작하신지 넉 달 동안 50권을 넘게 개찬하시다니요. 제가 올해 일흔이 되어가지만 대군어른의 심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찬이 이렇게 빨리 진행된 것은 모두 재상께서 편찬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이오. 대감께서 너무 겸손해 하시니 부끄럽소.”

흔히 무관의 이미지와 다르게 김종서가 가장 잘하는 일은 행정과 역사이다. 행정가적 면모로 지휘관의 재능이 있는 것이지 무예는 보잘 것 없으니까. 그런 사람이 입에 마르게 칭찬을 하는 것이 내가 수정하는 고려사이다.

그렇지만 사학과를 나왔으며, 미래에서 역사를 본 내 입장에서는 줄거리를 알고 진행하는 일이어서 쉬운 것이니 자랑스럽지는 않다. 그렇게 고려사를 덮은 김종서는 늙은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북방에서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습니다.”

“아구지 그 친구가 정말 잘해주었지요.”

“아구지만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이맹전이 정말로 고생을 많이 하였지요.”

보고를 듣고 정말 놀랐다, 병력은 여진족 4천에 함길도의 익군 4천. 이것으로 여진족 부락 700호를 불태워 버리고 2000호를 복속시켰으며 야당기(也當其)가 소속된 가장 세력이 큰 부족인 올미거(兀未車) 올적합(兀狄哈)의 1500호를 박살냈으니까.

“그렇소이다. 이제 북변의 해서여진(海西女眞)과 야인여진(野人女眞)은 얼마나 남았겠소?”

김종서는 잠시 고심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확한 수는 모르겠지만 대략적인 숫자라도 알고 싶다.

“각 세력이 4000호는 넘고 6000호는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머나먼 북방까지 간다면 혹여나 소수의 부락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너무 수가 적기에 기록조차 힘든 실정입니다.”

“북방에 있는 야인들의 절반이 복속의 의사를 표시했다는 말과 같은 거요?”

“그렇기에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일전에 제가 있었을 적의 6진 개척의 5배는 넘는 영토를 득하였으며. 그곳에 있는 야인들의 수는 8배가 넘습니다.”

순수하게 복속된 자들이 1만에 달하고 각 부족의 노예가 된 자들까지 합치면 2만에 달한다. 이 자들을 어떻게 형님이 어떻게 다룰까. 오늘 그렇지 않아도 승전식이 있는 날이니 이 자리에서 정하시겠지.

----------

이번 승전식은 이전과 같은 질서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함길도의 병사들이야 제식훈련에 어느 정도 능숙하다 하여도 조선에 귀부한 여진족들에게 단순히 뭉쳐있는 수준이 한계다. 상황을 보고 있는 백성들도 한심하다 여겼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형님 또한 일 년 전에 귀부한 이들에게 많은 걸 바라지는 않고 있었다. 그렇게 맨 앞 열에 이맹전을 비롯한 훈련도감에서 대표로 뽑혀온 100명의 병사가 있었으며, 그 뒤로는 함길도의 익군 2000명이 여진족 포로들을 끌고 들어왔다. 대열의 맨 마지막에는 아구지를 비롯한 귀부한 여진족들이 있었고.

“장하도다! 태조 대왕의 왼팔로 아국을 위해 충실히 일했던 동맹가첩목아(먼터무)의 복수를 행하니 건원릉(健元陵)에서 제사를 올릴 것이다. 이제 적의 수뇌 야당기(也當其)를 앞으로 끌어내라. 이 자리에서 친히 죄를 물을 것이다!”

굴비 두릅 엮듯 묶인 여진족들 사이에서 야당기가 끌려 나왔다. 서슬 퍼런 칼날의 앞에서 몸을 떨던 야당기는 형님을 보더니만 머리를 바닥에 연신 부딪히면서 흐느꼈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부디 목숨만큼은 살려주십시오!”

“네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아직도 모르는구나. 네 아둔한 머리로 알 수 있도록 상세히 알려주도록 하겠다.”

형님은 벌떡 일어나셔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뒤에 있던 복속한 여진족 족장들이 앞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서 아마 그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겠지.

“2년 전에 아국이 명으로부터 너희들이 있는 땅을 양도받아 관할하기로 하였고, 위소도 폐쇄 되어서 마시에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아국을 향해 창칼을 들이댈 준비를 하였지 않느냐.”

“아니옵니다! 주변이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그저 힘을 합쳐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습니다!”

변명은 하지만 여진족들 잘못이 맞지. 명에서는 위소를 닫으면서 ‘지금부터는 조선의 관할.’ 이라 하였을게 분명하니까. 아니 그냥 일방적으로 닫아서 아무런 생각도 못했나? 그래도 슬쩍 찔러보자 바로 복속한 부락들이 있었으니 아예 모르지는 않을거다.

“북변이 어수선하다 하면 너희들이 고변할 기회도 얼마든지 있었으며. 실제로 몇몇 부락들은 소식을 듣자 아국으로 복속하여 겨울을 나기 위한 물자를 받아갈 수 있었다. 어찌하여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이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도둑을 잡을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것 또한 잘못이다, 아무리 온화한 자라 하여도 굶주리면 남의 집 담을 넘기에 주저함이 없는데 바로 옆의 이웃이 그럼에도 고심조차 하지 않다니.”

야당기는 머리를 콱콱 박아대면서 바닥을 피로 물들였고. 형님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국의 신하 동맹가첩목아를 습격하여 죽이고. 아국의 명백한 영토인 경원 일대를 침략한 예전의 죄는 네 녀석이 항복하였으니 용서할 것이다.”

어? 안 죽이나? 하는 소리가 여진족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여진의 말은 모르지만 분위기가 이렇다). 하지만 형님의 판결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앞의 두 개의 죄 또한 크다. 아국의 관할이 되었음에도 나서서 고개를 숙이지 않은 죄. 거기에 마지막까지 저항하여 복속을 거부한 죄가 있다. 너를 탐라로 보내어 평생 거기서 지내게 할 것이다.”

“주상전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형님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형님은 복속의 의사를 표시한 족장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의미로 조목조목 짚어서 이야기 한 것이다.

실제로 말을 같이 들었던 여진족 족장들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아구지는 무덤덤하였으니.

“아구지는 이 국문(鞫問)에 대하여 고변할 것이 있던가.”

“없사옵니다. 하오나 주상전하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먼터무 어른의 뒤를 이어 조선에 귀부하였으니. 예전의 양렬공(襄烈公 - 이지란)께서 받으신 것처럼 저도 주상전하께 이름을 받고 싶습니다.”

아구지가 이번 일에 자신이 붙었는지 제법 자신 있게 나선다. 이름을 받는 것은 정말로 조선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표현이지. 그러자 형님도 예상 했다는 듯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말했다.

“물론이다. 과인도 태조 대왕께서 임하신 것처럼 신의와 충심을 다하는 자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노라. 지금 이 자리에서 아구지를 경원부 만호(萬戶)로 임명하며, 여기에 더하여 아국에 귀부함에 있어 신의를 다하였기에 정충렬(程忠烈)의 이름을 내릴 것이다.”

“신 정충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상전하께 충심을 바칠 것입니다!”

정 6품에서 종 4품. 그러나 만호의 뜻 자체는 1만의 호(戶)를 거느린다는 관직이다. 아구지 아니 정충렬의 직속 부하는 아니지만 일대의 여진족 호는 거의 1만에 달하니 충분한 이름값을 한다.

남아있는 여진족 포로들의 처우를 정할 차례다. 젊은 남자는 대부분 죽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는 노예가 되었으니 이제 여진족 기준으로 노인인 50대 이상만 남았다.

“너희들은 분명 19년 전의 난을 일으킨 패거리일 것이 분명하다. 네놈들 또한 탐라로 보내고 싶으나, 네놈들이 뭉쳐 탐라를 어지럽힐 것 같구나. 이제 남도로 귀양을 보낼 것이니. 거기서 평생 동안 말을 기르면서 살 것이다.”

앞으로 군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인데 잘 되었다. 여진족 노인들은 마을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짓는 일에 몰두하는데 저들이 남도에서 말을 기르면 그럭저럭 좋겠고. 인생 말년을 따듯한 남도의 섬에서 보내니 불만은 별로 없겠지.

“이제 공을 논할 차례이다. 이맹전은 앞으로 나오라.”

“신 이맹전, 전하의 뜻에 따라 야인들을 토벌하는데 힘을 썼사오나 부족함이 있습니다.”

“되었다. 절제사 이맹전을 종 2품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임명하며 경원을 정식으로 부(部)로 승격시킬 것이다. 조만간 관찰사를 파견할 것이니 일대의 치안에 힘쓰라.”

경원부, 명목상으로는 중요도 때문에 부라 하였지만 실제 취급은 길주(吉州)보다 못한 목 수준이었지. 저렇게 되었으니 함경도는 역사와는 발음은 같아도 한자어는 달라지겠군.

“그리고 경원이 부가 되었으니. 길주를 대신하여 도의 이름을 변하게 하니 함길도(咸吉道)를 함경도(咸源道)라 부를 것이다.”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덕에 감사함이 이를 데 없습니다.”

“또한 이번 정벌에 임한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며. 훈련도감 병사들 중 확고한 공을 세운 자들의 품계를 한 품계씩 올릴 것이다.”

훈련도감은 2기생이 올해 9월에 종 9품의 군관이 된다. 북변에서 공을 세운 자들은 1년 혹은 2년씩 진급이 당겨져서 이미 1기생의 평균을 내보면 정 9품이라던가.

그러고 보니 훈련도감 병사들이 여진족 앞에서 웃통을 벗고 힘자랑을 해서 항복을 유도했다 하던가. 그 이름이 근육겁박지계(筋肉劫迫之計 - 근육으로 협박하는 계략)라고 하니 정식 전략으로 채택될까 두렵다. 마오리족 하카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야?

----------

논공행상이 모두 끝나고. 토의를 위하여 문종과 김종서, 이맹전, 이징옥, 강순 그리고 김윤수를 비롯한 북방에 관련된 실무진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문종은 이번 경원 일대의 여진족 복속을 성공시킨 이맹전을 칭찬하였다.

“경원부의 일을 정말 훌륭하게 처리하였구나.”

“주상전하의 혜안이 있기에 행할 수 있었습니다.”

장계를 읽은 문종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명에서 이렇게 일방적이고 신속하게 기미위소(羈縻衛所)를 폐쇄하고 마시를 닫아버릴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는데 이런 변수조차도 신속하게 처리하였다.

“그렇지만 걱정이 앞서는군. 명이 아예 손을 떼었으니 앞으로 아국이 나서서 야인들에게 물자를 주고 군마와 모피를 사들여야 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야인의 수는 기껏해야 복속한 이들보다 적지 않습니까.”

경원부 일대의 여유 식량이 떨어졌지만. 3월부터 미곡 수송이 재개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 계산을 한 이맹전과 달리 문종은 제법 걱정되었다.

작년에는 상대적으로 풍년이었으니 북방에 흉년이 들 경우 지금의 2배의 곡식이 필요할 것이니까. 여진족은 평년 기준으로 자신들의 먹을 식량의 3할 까지는 농사로, 4할은 수렵과 채집으로 해결하지만 3할은 마시를 통해서 구매한다.

“야당기가 어찌하여 다른 부족들에게 경시(輕視)를 당하였는지 잊었는가. 작년의 북변 농사는 풍년이었기에 곡식이 어느 정도 거두어진 것이라네. 그런데도 굶주렸으니 흉년이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나.”

“소신의 생각이 짧아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경원까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배는 10척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한양과 장기(포항)를 오가는 배 5척, 다시 장기에서 북방으로 올라가는 배가 5척이다. 다른 배가 완성되려면 1년은 걸린다.

“곡식은 정해진 양을 줘야 하니 방책을 다른 곳에서 마련해 보도록 하지. 그렇다면 복속한 야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겠는가. 자네들의 의견은 어떤가?”

다들 표정이 심각해진다. 정충렬을 비롯한 건주위 출신들은 조선에 고개를 숙이고 먼저 들어왔기에 대우가 좋다. 하지만 이번에 복속한 야인들은 무기를 들고 나서자 복속하였다.

둘 다 같게 대한다면 건주위가 불만을 표시할 것이고. 다르게 대하면 복속한 야인들이 불만을 표시할 것이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이다.

“신 김윤수 아뢰옵니다. 아무리 야인들이 이합집산을 이루어 외따로 행동한다 하여도. 주상전하의 위업을 만 천하에 알리게 되었으니 그에 따른 은혜를 보여야 한다 생각합니다.

“은혜라 하면 지금 복속한 정충렬의 부족처럼 대하란 말이 아닌가. 그리 한다면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 것이며 손해도 클 것이다.”

모두를 경원부 일대에 거주하는 자들과 동일한 대우를 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경원은 군사 거점이며 두만강 남쪽의 모든 복속한 야인들이 날뛰어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

문종도 좋게 대하면 쉽게 복속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을 달려도 보름, 군대를 보내면 두 달이 넘게 걸리는 거리의 야인들을 어떻게 믿고 좋은 대우를 한단 말인가?

“상인들이 북변까지 나아가지 않으니 마시를 열 수 밖에 없다고 하면 쉽게 납득할 것입니다.”

“상인들이 북변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상인이라 하여봤자 내수소의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정말로 상인들을 보내면 충분한 일입니다. 본디 명에서 위소를 두고 마시까지 오게 한 것은 명에서 모든 영토를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거양성에 군을 두시고 위소를 두시어 상인들을 보내옵소서.”

생각해보니 거양성 정도의 거리면 적당하다. 미타 호(한카 호) 일대의 여진족들도 복속되었으니 미타 호와 경원의 중간 지점쯤이 거양성이고 성의 돌도 남아있어서 조금만 보수하면 쓸만한 성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상인들을 누구로 불러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구나. 다른 의견이 있나?”

침묵이 오가는 가운데 김종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실제로 경원 일대를 정벌해 본 경험이 있으니 이런 일에는 나름 제시할 의견이 많았다.

“신 김종서 아뢰옵니다. 거양성을 위소로만 두지 마시고 아국의 백성들을 거주하게 경원부에 속한 군이나 현으로 만들면 충분할 것입니다.”

“혹여나 야인들이 그들을 겁박하고 약탈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종서는 목소리를 낮추어 신중하게 말하였다.

“그러한 것은 당연히 일어날 일입니다. 4군은 백성들을 많이 거주시키지 않았기에 야인들의 힘에 밀려 모두 달아나고 폐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6진은 번호를 두고 사람을 늘려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있으면 달라진다는 말인가. 하지만 백성들이 함부로 해를 입을까 두렵다.”

“그런 곳에 주상전하께서 전가사변(全家徙邊)을 당한 이들을 보내시고 정병을 주둔케 하시면 충분하실 것입니다.”

전가사변은 사람이 없는 지역을 개척하는 형벌이지만 대놓고 사람을 죽이려고 보내지는 않는다. 철저한 지원을 하고 파견되는 관리 또한 직급이 낮지만 성품이 우수한 자들을 보낸다. 그렇지 않아도 호적 조사과정에서 남도에서 올라오는 보고가 하나 둘씩 쌓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알겠다. 지금부터 전가사변을 준비할 것이며. 상인은 누구를 수배할지 내수소 관리들을 통해 알아볼 것이다.”

토의가 끝나고 문종은 서류를 검토하면서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남도에서 전가사변을 당할 자들이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양성에 위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니 무력이 절실했다. 거양성으로 보내 위소를 담당하게 할 사람들은 넘쳐났지만 하급 군관으로 누군가 탁월한 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이맹전이 보내온 장계를 다시금 훑어보다 인상 깊은 내용을 발견했다.

[훈련도감 출신 사맹 홍윤성은 이번 거양성 일대 공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야인들이 힘을 숭상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신묘한 계략을 세웠으며 적도들의 진지 앞에서…….]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거양성의 공략에 수많은 화약을 사용하지도 않고 힘을 쓴 것으로 해결 하였으니. 그들의 탄탄한 근육 앞에 기가 죽어 복속을 마음먹은 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훈련도감에서 가장 출세가 빠른 자라 하던가? 군계일학도 아니고 솔개 중에서 빼어난 자 같으니 각별히 아껴야겠군.”

문종에게 있어서 고작 정 8품의 미관말직(微官末職)이라 하여도 인재는 인재였다. 그렇다 하여도 상참(常參 - 왕에게 하는 아침 문안인사)에 끼이지 못하는 참하관이라니. 이번 기회에 대폭 승진시켜야 할 것이다. 문종의 붓이 종이 위를 가르며 교지를 만들어 나갔다.

[사맹 홍윤성을 종 6품 낭청(郎廳)으로 임명하니. 경원부에서 절제사를 도와 능력을 떨쳐라.]

무관이기에 정 6품까지 단번에 올리면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본인도 만족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겨울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입신체비를 하였다던가. 이맹전에게 물어보니 이 곳까지 오지 못한 이유는 감모 때문이라던가.

“이 교지와 함께 감모(감기)에 좋은 약재를 보내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