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21화 - 근육겁박지계(筋肉劫迫之計) >
급하게 밖으로 나가니 천둥과 같은 소리가 끝이 아니었다. 남서쪽에서는 하늘을 가르며 솟아오르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러더니 하늘 위에서 굉음을 내면서 터지며 불꽃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예전에 국경에서 약탈을 할 때 조선군은 화살같이 날아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면서 터지는 무기(소신기전)를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지금 터진 것은 가까스로 자신의 시력으로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터졌는데도 천둥소리를 뿜어냈다.
“북쪽 능선에서 적 보병 300기 이상이 내려왔습니다!”
“이런 젠장! 짐 싸고 정찰병 다 보내!”
이 지역은 분지(盆地)에 가까운 지형이었다. 사방에는 산과 숲이 있고. 가운데에는 옛날에 쓰인 것 같이 성의 터가 있었으며 아직도 성곽이 무너진 채로 남아있었다. 조선에서 쳐들어온다면 보통 남서쪽과 잘해야 남동쪽에 있는 두 골짜기를 통해서 올 거라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저 멀리서 미리 보내놓았던 척후들이 말이 거의 기절할 지경인데도 전력으로 달려왔다. 아니 자세히 보니 척후도 아니고 자신이 알던 사람들이다.
“너희들 왜 오는 거야? 아니 네놈들 동쪽에 있는 골짜기에 살지 않았나?”
“적입니다! 근처의 강을 따라서 남눌 놈들이 조선군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아라합 그 미친놈이?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다들 도망치고 있습니다. 천천히 진격하는 것이 우리를 몰아넣는 것 같습니다.”
치려면 단번에 칠 것이지 무슨 의도란 말인가. 조금 시간이 지나자 척후들이 상황을 보고했다. 조선군과 조선군에게 속하기로 한 부족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족장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골간, 사차, 그리고 이을구차 같은 놈들이야 평상시에 친하니 조선에 합류한 것이 말은 됩니다. 하지만 사이가 험악한 혐진과 남눌도 모두 조선의 편에 서다니요.”
“뻔하지 않나! 여기에 곡식이 있다고 저런 식으로 나서는 것이지. 예상이야 했지만 조선 놈들이 대체 어떻게 설득한 것이지?”
평상시라면. 정확히는 자신들이 북방으로 이주하기 이전의 조선은 자신들을 냉정하게 대했다. 명보다 조금 비싸게 값을 주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무조건 굽히고 들어갈 경우에만 그랬다.
설령 복속을 해 보았자 명목상의 관직을 줄 뿐이고. 아무런 대가 없이 곡식을 나눠 주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이 좋은 기회에 토벌을 하지 않고 복속을 허락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명이 우리를 조선에 넘긴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다고 바로 이렇게 나와? 그런데 다들 이쪽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어떻게?”
“그냥 밀고 오는 상황이라 하더군요. 뒤처진 자들은 잡아들이긴 하는데 천천히 온답니다.”
평상시에 조선군은 길안내를 받거나 미리 척후군을 보내 염탐을 마친 다음. 두 방향에서 기습적으로 옥죄어 오거나. 아예 상대조차 못할 정도의 병력을 신속하게 부어넣어서 마을을 초토화 시킨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선군은 지금 자신들을 언덕 위에 있는 성터에 몰아넣으려 하고 있으니 자신들이 점점 더 유리해질 뿐이다.
“족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들 성터 위로 올라가라 그래. 놈들이 천천히 온다니까 식량 좀 챙길 시간은 충분할거다.”
“네? 어디 한 곳을 뚫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포위망이 완성되고도 남아! 시끄러운 소리 하지 말고 성터로 도망쳐!”
앞으로 한 달만 지나면 자신들도 버티기 힘든 추위가 온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기한도 있으니 조선군은 보름 이내에 승부를 봐야겠지. 만약 더 빠르게 추위가 찾아오면 보름은커녕 닷새도 지나지 않아 꼬리를 물고 달아나야 하겠지.
거기다가 여태까지 저들이 상대했던 부락들과 달리. 여기에는 대장간(철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재가공하여 무기로 만드는 곳)도 있으니 철제 무기도 있으며. 결정적으로 성터는 아직도 돌무더기가 남아있으니 함부로 사방에서 공격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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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전은 천리경으로 마을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다, 거양성 일대에 뚫려있는 4개의 길목 모두를 동시에 공격한다. 성립하기 힘든 작전이었지만 훈련도감군이 산을 타고 북쪽 길목을 막아버린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들 도착했나? 놈들이 사방에서 성터를 향해 몰려드는군. 아주 잘 된 일이야.”
“작전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빠르게 몰아쳐라!”
호각(號角)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었다. 거세게 불자 찢어지는 새소리가 세 번 끊어서 울려 퍼졌고. 화답하는 새소리가 반대편 산기슭에서 들려왔다.
“이제 몰아쳐라! 놈들이 모두 성터로 들어가게 만들어!”
“적당히 죽이고 적당히 쫒아!”
천천히 진격하던 각 분견대(分遣隊)의 병사들과 휘하의 여진족들이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다. 작전의 첫 단계는 도주하는 놈들이 없도록 사방에서 포위하고 성터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이 엄동설한 속에서 놈들을 추적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었다. 손해를 조금 감수하고, 아니 계책대로 돌아가면 항복을 받아낼 것이니 손해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홍 사맹님! 놈들 좀 더 바짝 따라붙어야 하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우리 옆구리가 찔린다! 하지 마!”
도감군은 능선을 타고 천천히 진격했다. 보병이라고 우습게보며 달려들거나 활을 쏘는 놈들이 몇 있었지만 보총과 운총의 납덩어리는 정직하게 그들의 몸통을 뚫어버렸고. 여진족들은 겁에 질려서 달아났다.
그렇게 사방에서 조선군들이 몰려와 총 병력 9000의 거대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거양성의 터는 능선을 따라 넓게 있었고 거의 무너져서 이제는 돌무더기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것만 하여도 충분한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중간에 도망친 놈들은 있는가?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도망쳤으면 큰일인데.”
“거의 없습니다. 버려진 놈들이 있지만 아국에 복속한 여진족에게 넘겼습니다.”
이맹전은 혀를 찼다. 저들은 아직까지 예전 생각을 하면서 성에서 충분히 버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반과 사용이 까다로운 총통기화차는 아니더라도 신기전기화차는 여섯 문이나 가져왔다.
“군막을 치고 진영을 정비하라! 장기전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행동하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여진족이 성에 숨어있고 조선인이 공성을 벌이는 그런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조선군이 공성에 나섰다. 정확히는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몸이 달아오른 복속한 부족들이었다.
“어째서 치지 않는 겁니까!”
“놈들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네.”
“이러다가 열흘만 지나면 겨울바람이 더 거세집니다!”
이맹전과 아구지는 서로 의견을 나누는 척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둘 다 완력으로나 계략으로나 거양성 따위는 이틀 이내에 함락시킬 방법이 있었지만. 복속한 놈들을 순순히 믿을 수가 있던가? 놈들도 피로 대가를 치러만 한다, 비루먹은 말과 노인 아이까지 끌고 오면서 군량을 마구 먹어치운 죄를.
그런 상황이라 복속한 여진족들은 다급하게 행동했다. 이미 척을 지기로 하였으니 올미거를 반드시 재기하지 못할 지경으로 박살내야 하고, 야당기의 목을 베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저건 별것도 없습니다! 우리끼리라도 나서겠습니다.”
“자네들 미쳤나? 작전이 다 있어서 이러는 것인데.”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생각이 있습니다. 적어도 조선에 대한 충심은 보여드리겠습니다.”
“뜻이 그렇다면 알겠네. 우리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것인데.”
군막 밖으로 나간 족장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하자. 이맹전은 아구지를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미타 호 근처의 야인들이 언제쯤 온다고?”
“삼일 뒤입니다. 정확히는 조선의 힘을 똑똑히 보라고 이야기를 전해놨습니다. 응할 부락이 아니더라도 모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올 것입니다.”
“단 삼일이 모자라서 저러다니.”
다시 삼일이 흘렀다. 공성을 시도했던 부락들은 하나같이 무너진 성벽의 돌무더기를 끼고 벌이는 저항에 밀려서 소득도 거두지 못하고 패퇴하였다. 그러는 사이 아구지의 부하들이 손님들을 끌고 돌아왔다. 손님이라 함은 인근의 부족들이 상황을 보기 위해 보낸 소수의 정찰병이었다.
“제찰사님, 소식을 전하러 갔던 부하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미 주변의 시선은 조선군을 향했습니다.”
“부하들이 참 뛰어나군, 이제 때가 되었으니 신기전을 준비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올미거 부락의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신기전을 조준하였다. 이번에 가져온 신기전은 추진화약의 비율을 높여서 사거리를 늘렸다, 아마 성벽 안까지는 손쉽게 날아 들어가 지금까지 여진족들이 체험하지 못한 불꽃놀이가 될 것이다.
“쏴라!”
“방포!”
사방에서 뿌연 연무가 치솟으면서 수십 발씩 신기전이 날아들었다. 직접적인 살상력은 매우 적지만 그 폭발력과 400보(720m)를 날아가는 사정거리는 진영을 넘어가다 못해 적의 후방을 타격할 수준이었다.
“망할! 저렇게 쏘아서는 효과가 적은데. 진군하라!”
“다들 진군하라! 놈들을 적당히 두들기고 와라!”
첫 시작은 거대한 굉음이 강의 얼음을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 다음은 아구지의 휘하 부대가 쏘아대는 강철 화살의 비였다. 다시 익군이 나서서 활을 쏘고, 재 장전된 신기전이 이번에는 좀 더 정확한 조준으로 병력이 모인 곳을 강타하였다.
“조선 놈들이 우리를 포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벽 뒤로 숨어!”
“숨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저건 터지는 무기입니다!”
무너진 성벽은 느슨한 각도로 돌무더기를 만들었다. 그 뒤에 숨어봤자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신기전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설령 운이 좋아 피한다 하더라도 굉음은 사람의 혼을 빼놓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반나절 동안 신나게 적을 두들긴 병사들은 본진으로 퇴각하였고. 강 건너에 장대가 세워졌다. 이제 다시금 설득의 시간이 되었고 아구지는 다시금 표범가죽을 엮어 만든 망토와 복장을 갖추어 장대 위로 올라갔다.
“올량합의 후예이자 조선의 관직을 얻은 나 아구지가 말한다! 올미거 네놈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복수를 천명하였지만 이미 양목답올은 주검이 된 지 오래이며! 먼 친척인 야당기 네놈이 남았다 한다! 그러니 관대하게 대우하여 목숨은 살려주도록 노력해 보겠다!”
그러자 아직까지 형태가 남아있는 성벽 위로 올라간 야당기가 고함을 쳤다. 정말 억울하다 못해 복장이 터져 죽을 일이었다.
“야 이 빌어처먹을 새끼야! 그래 우리가 먼터무 그 양반을 죽이긴 했다! 하지만 먼터무가 우리를 배신하려 했던 것은 쏙 빼놓느냐! 거기다가 먼터무의 아들은 살아있는데 네놈 또한 먼 친척이지 않느냐!”
광분해서 욕설을 내뱉는 야당기를 보면서 이맹전은 손짓을 했다. 그러자 보총수들이 허공에 일제히 보총을 쏘았다. 훈련도감 출신 병사들은 이번 포위전에는 적극적으로 참전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먼터무 어르신과 친했던 조선군과 우리의 병사만으로 싸웠던 것이다! 내일부터는 네놈을 죽이기 위해 주상전하께서 친히 내려주신 훈련도감 병사들이 참전할 것이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마라! 네놈들도 화약에 한도가 있고 조만간 추위가 찾아올 것이니 며칠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
그런 말을 하는 야당기도 미래가 없다 생각하였다. 조선군은 철군하면서 부락을 모조리 불태우고 박살낼 것이 뻔하다. 부족민과 굶어 죽을 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며칠이라?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그 말과 동시에 뒷짐을 지고 서있던 훈련도감 병사들. 보총수를 제외한 300명이 오와 열을 맞추어 걸어 나왔다. 그리고 영하로 떨어지다 못해 입김이 나오는 와중에도 웃옷을 벗어던졌다.
“보아라! 이들은 하나하나가 천하장사이며! 나름 싸움을 잘 한다는 자들도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정병 중의 정병이다!”
이맹전의 신호와 함께 훈련도감 병사들은 기묘한 행동을 하였다. 옆에 있는 사람을 자신에게 목마를 태워서 앉았다 일어났다, 다시 말하면 공좌(스쿼트)를 반복했다. 유목민족의 시야에는 그들의 모습과 상반신의 상세한 모습이 똑똑하게 보였다.
“저게 뭐야!”
“사람이 사람을 짊어지고 저렇게 움직이는데요.”
“나도 보이는데 저렇게 쉽게 가능해? 벌써 열 번이 넘었는데? 이젠 서로 바꿔가면서 하네?”
통나무였다면 속이 비었다고 웃어넘길 수 있다. 무쇠를 들어도 나무에 칠을 하였다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서로 들어 올린다니. 이 무슨 기괴한 일이란 말인가.
“이제 훈련도감의 병사들이 네놈들을 죽이러 달려갈 것이다. 어느 누가 이들을 상대할 것인가! 따라올 것이면 따라와 봐라!”
공좌(스쿼트) 이후 바로 의압(벤치프레스)로 전환했다. 물론 의압은 벤치프레스 대신에 사람을 올려놓고 했다. 훈련도감 출신들은 입신체비를 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가뿐했다. 물론 주변의 여진족들은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꼈다. 그들의 불룩거리는 근육은 그만큼 위압감이 넘쳤던 것이다.
“나 나도 저렇게 여섯 갈래로 갈라진 복근일거야! 난 힘이 세니까! 아…….”
한 여진족은 웃옷을 벗고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지만 근육 위에 덮인 불룩한 지방질만이 만져졌다. 다른 여진족은 튼실한 팔뚝을 비교하려 하였지만 저렇게 멋진 근육은 드러나지도 않았다.
“천하장사라 함은 사람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야 하지 않는가! 훈련도감은 당연히 할 수 있다!”
서로 짝지어 몸을 대역기 대신 사용하던 자들이 심호흡을 하였다. 영압(밀리터리 프레스)은 난이도가 높은 운동이며. 입신체비 대신 훈영체조로 몸을 단련한 자들이 유리하다 해도 자기 체중만큼 들어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체구가 작은 자와 큰 자를 짝지어서. 작은 자가 대역기를 대신하게 하였다. 원초적이고 간결하며 전신을 완벽하게 사용해야 가능한 동작을 150명이 거의 동시에 성공하였다.
“끄랴아아아아아아아앗!”
“보아라! 누가 저들을 의심할 수 있으랴! 누가 이런 천하장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거느릴 수 있느냐! 모두 주상전하의 은혜이다!”
앞에 나온 자들이 모두 저런 괴력을 발휘한단 말인가.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기술과 속도도 겸비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미 근육적 공포에 시달리는 올미거를 비롯한 수많은 여진족들은 안색이 창백해지다 못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사람을 들어 올릴 수 있으면…….”
“그냥 집어던지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잖아.”
“저놈들에게 한 대 맞으면 말까지 두 동강이 나겠어.”
야당기는 이미 죽어가는 시늉을 하는 자신의 부족민들을 보면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근육적 공포는 그렇게 모든 여진족들을 조선에 복속하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화약이나 쇠 자체는 무섭지 않다. 그러나 엄청난 완력으로 화약과 쇠를 휘두를 저 병사들은 끔찍하게 무섭다.
“족장님 항복합시다.”
그런 말을 하면서 허리를 매만지는 모습이 딱 보아도 자신의 목을 베어버릴 것 같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던가. 조용히 항복하면 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부하들에게 난도질당해 시체가 찢겨질게 뻔히 보였다.
“하…항.”
“지금 여기서 항복한다면! 주상전하께 먼터무 어르신을 살해한 죄를 뉘우칠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항복하겠다!”
등 뒤에서 칼이 뽑히는 소리가 항복이라는 단어를 내뱉게 만들었다. 그렇게 거양성에 머물고 있던 올미거 부족은 조선에 복속하였고, 야당기를 비롯한 수뇌부는 조선으로 끌려갔으며. 나머지 올미거 부족민들은 주변 부락들의 노예가 되었다.
전장을 정리하던 이맹전은 추위에 시달려 입술이 새파래진 훈련도감 병사들을 보던 중 홍윤성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홍윤성이 아니었다면 닥치는 대로 신기전을 쏘아버리고 돌격했으며 기껏 형성한 포위망은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하는 여진족들로 인해 뚫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윤성이 제안을 하였다, 자신들의 완력을 보여주어 완력에 죽고 사는 여진족들의 항복을 유도하기로. 홍윤성의 속마음은 최대한 싸우지 않고 은퇴할 생각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였지만. 아구지가 적극 찬성했다.
‘그거 참 그럴싸하군. 사실 수양대군 어른이 오는 것이 좋은데 자네가 해보면 어떤가.’
이맹전도 믿지 않았지만 적들이 대번에 항복했다. 이러한 신묘한 계책을 종 8품의 젊은 나이에 만들어 내다니 재능이 아주 특출한 자임에 분명하다. 이번 전쟁의 숨은 일등공신은 사맹 홍윤성이라 주상전하께 고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