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20화 - 만들어진 복수(3) (0731 오후7:30 수정) >
“고개를 숙여?”
“너희 올적합(兀狄哈) 이잖아?”
아구지 휘하의 병사들은 갑자기 돌변한 태도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들 혐진(嫌眞)은 칠성 야인의 난을 일으킨 주범이니 조선에게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으니까.
“갑자기 왜 이렇게 태도가 변하나? 다들 이상한 버섯이라도 끓여 먹었어?”
“그건 알 필요 없고! 우리 부족 사람들 모두 끌고 가니까 식량이나 충분히 달라고!”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보통 병력은 1호에서 1인이 나오며 건장한 장정이 병력으로 쓰이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지금 말을 타고 활을 드는 자는 늙은이와 어린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야 저건 병력도 아니잖아! 말도 다 비실비실 거리는데?”
“자세한건 알 필요 없고! 우리 한 400명 되니까 식량이나 듬뿍 준비해달라고!”
“그럼 부락은 누가 지키나?”
“신경 꺼!”
기껏해야 250호가 될법한 부락에서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저놈들 다 먹이고 재우고 말들도 먹여야 하는데. 보급을 담당하는 조선 군관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겠지.
“말들도 전부 비루먹었는데 저걸 타고 싸운다고?”
“그럼 어쩌나! 힘을 북돋워 줄 곡식도 먹이지 못했는데.”
말은 평시에는 마초를 먹지만 가끔 곡식을 먹여줘서 힘을 돋워야 한다. 군마로 쓰게 힘을 북돋우려면 곡식을 자주 먹여야 하고. 하지만 말들은 풀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전부 비실비실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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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넘어서 진군한지 벌써 3일이 지났다. 겨울의 추위에 시달렸지만 군대의 숫자가 많으니 야습 따위는 꿈에도 꾸지 못한다. 주변 여진족 부족들이 몇 번씩 기웃거려 보았지만 일대 정찰경로에 미리 배치된 소수의 보총수들에 의해 대부분 사살 당했다.
하지만 조선군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이미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다 얼어 죽겠군.”
“여진족 처럼 해야 살것같군. 말을 껴안고 자니까 얼마나 따듯할까.”
“자고 일어나면 입김이 얼어서 고드름이 생기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추위야?”
함길도에서 소집된 익군 병사들은 하나같이 추위에 시달렸다. 훈련도감을 통해 아무리 대책을 마련하고 추운 지방에서 올라온 자들이라 익숙하다 하였지만. 이 지방의 추위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몇몇 병사들은 벌써부터 동상을 호소했다.
“야 이 망종(亡種)아! 속버선 꼬박꼬박 갈아 신으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듣지를 않나! 정 안되면 버선 속의 발싸개라도 계속 갈아 신으라고!”
“죄송합니다.”
“이 지역 추위가 보통이 아닌데 어떻게 그냥 돌아다니나!”
전훈을 받아들인 이맹전은 매일 순시를 돌면서 직접 확인을 하였다. 그러나 3일이 지나자 몇몇 병사들이 심한 동상을 입었으며. 그들은 시커멓게 얼어버린 발가락을 보면서 애처로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놈들 돌려보내, 벌써부터 발가락이 썩었는데 잘못하다가는 발목까지 썩는다.”
“앞으로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그나마 눈이 별로 쌓이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렇게 주의를 하고 또 하였는데도 동상과 감모(감기)로 계속 손실이 일어났다. 그나마 안전하게 경원으로 돌려보내서 다행이었다.
조선군이 매서운 추위에 신음하며 천천히 진군하는 동안. 토관 출신들과 여진족들은 말 그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온 몸을 모피로 싸매고 있었으니 동상 따위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날뛰고 있었다.
“저희는 하루거리 밖에 있는 놈들 먼저 치고 오겠습니다!”
“먼터무 어른의 복수를 위해서!”
아구지는 사라지는 병사들을 보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간 모은 자금으로 철제 병기를 구입하였고. 몇몇 날랜 병사들에게는 찰갑(札甲 - 철편을 엮은 갑옷)을 상반신에만 입히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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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적합(兀狄哈), 자신들의 말로 우디거 라고 불리는 자들의 생활과 행동은 매우 복잡했다. 자신들의 말로는 ‘숲 사람’ 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며. 수많은 분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혈연관계를 이용해서 뭉치거나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흩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부락은 남눌(南訥) 놈들의 부락이다!”
“양면으로 공격을 시작하라! 공격 이전에 설득을 하라!”
조선군의 최전방에 서있는 아구지의 병력들이 마을을 향해 진격하자. 마을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더니 몇 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뛰쳐나왔다.
“네놈들은 우리에게 복속할 것이냐! 싸울 것이냐!”
“우리 남눌은 조선의 편에 서겠다!”
“그렇다면 조선의 휘하로 들어가겠단 말인가?”
“나 아라합(阿剌哈)의 이름을 걸고 약조하니 우리 남눌은 모두 조선을 위해 충성을 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남눌을 시작으로 골간(骨看), 사차(沙車) 같이 조선과 비교적 친근한 관계에 있었던 족장들은 환호성을 외치며 조선을 위해 창칼을 들고 나섰다. 군세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대체 애들과 노인네들은 왜 데려오는데!”
“충심을 보이기 위해서다! 이 전쟁이 우리의 미래이다!”
반면 이 전쟁의 명분인 먼터무의 죽음과 연관되는 올적합 분파들 중 일부는 맹렬히 저항하였다. 니마차(尼麻車)족의 마을은 추위 속에서 정찰을 게을리 하여서 기습을 당했고. 설득에도 응하지 않고 화살을 날린 답례로 쇠를 사용한 설득이 시작되었다.
“저놈들 머릿수가 우리보다 적어! 충분히 이긴다!”
하지만 뼈를 사용한 저항과 쇠를 사용한 설득은 쇠의 승리로 끝났다. 퇴로 차단을 위해 분열되어 150기에 불과한 아구지 휘하의 병사들은 수적 열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적들을 짓밟아 버렸다.
“이 멍청한 놈들 보게? 말도 제대로 안 먹여서 다들 비실거리잖아?”
“모두 튀어라! 도망치라고!”
“개소리 집어치워라! 어딜 도망간다고!”
니마차 족이 몰고 있는 말은 조금 거세게 달리자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반면 아구지의 부족민들이 모는 말은 멀리서부터 진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놈들은 말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다.
“젠장 나라도 살아야지!”
“저기 족장놈 도망친다!”
천둥소리 같은 것이 다섯 번 인근 산을 뒤흔들었다. 좋은 말로 갈아타고 달아나던 족장은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허리가 으스러진 것으로 보아 퇴로에 매복하고 있던 훈련도감군의 운총 사격을 맞은 것이 분명하다.
“저거 뭐야!”
“몰라! 나도 모른다고!”
“항복! 항복한다니까!”
“한번 기회를 줬으면 항복해야지! 네놈들은 먼터무 어른의 죽음과 연관이 있잖나!”
도망가면 벼락소리가 나면서 머리통이 날아간다. 항복을 하려 해도 칠성 야인의 난에 참가했던 부락이며 족장이 도망가려 하였으니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다. 그렇게 발악이 이어졌지만 근접전으로 들어가도 답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어이쿠! 으악!”
“커억!”
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장검을 들고 있는 아구지의 부하와 어떻게든 뚫고 도망치려는 니마차의 병사 하나가 서로 말을 몰면서 칼을 주고받았다. 칼이 교차하며 둘 다 동시에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으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살려줘…….”
“더럽게 아프네! 찰갑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잖아?”
뒤따라온 병사의 말발굽이 니마차 병사의 몸통을 밟아버리자. 칼을 맞아 갈라진 뱃가죽 사이로 내장과 핏물이 밀려나오면서 즉사했다. 반면 아구지의 부하는 찰갑이 깨졌을 뿐 비교적 멀쩡했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뱃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니까 좀 쉬어야겠어.”
“그래 둘이나 베었으니 열심히 쉬게.”
여진족에게 있어서 휴식은 약탈과 동의어다. 이미 잔당만이 남아서 애처롭게 저항하고 있으니 마을을 먼저 털어도 되겠지. 그렇게 발로 문을 박차고 집에 쳐들어가자. 어느 여인이 아이들을 껴안고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일단 물부터 좀 빼보실까. 우읍!”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 할게요!”
밖에서는 몰랐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구역질이 나왔다. 이미 조선에 귀화한 여진족들은 석감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사용했고 피부만 보면 조선인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 보았자 조선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퀴퀴하고 땀 냄새가 진동하는 자들이지만 보통의 여진족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나 심했다.
“야 너 나와! 여기서 숨어 있다가 타죽어 버리고 싶냐!”
평소라면 집을 박차고 들어가서 식량을 약탈하고 겁탈을 일삼았지만. 이 집에서는 어떠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닥을 파보니 마대자루에 담긴 식량이 있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곰팡이 핀 귀리에 썩어가는 보리라니, 이런 것을 왜 신주단지 모시듯 놨냐? 말 먹이로나 쓰지.”
“모련위(毛憐衛)인지 뭔지가 이번 여름에 사라져서 겨울에 식량을 구할 곳이 없었거든요.”
“그럼 왜 조선에 안 왔지? 너희들 조선에 매번 쳐들어오잖아?”
“저도 몰라요.”
명에서 파견한 위소(衛所 - 변방 통치를 위해 병사를 보내는 장소)의 소실은 여진족들을 분열시켰다. 이미 조선의 영토에 있어봤자 득이 없다는 판단으로. 명은 모든 위소를 철거시켰고 마지막으로 철거된 곳이 이 근방이었다.
“너! 우리 부락의 노예가 되었으니 앞으로 똑바로 해라!”
“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미 조선화가 진행된 그들은 도저히 이 씻지도 않은 것들과 몸을 부대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저항도 사라진 마을에서 집안에 숨어있던 자들이 끌려 나왔다.
“할 거야?”
“미쳤냐. 우리도 예전에는 이렇게 냄새가 났던가?”
“뭐 어때? 마을에 가서 석감으로 한번 씻기면 새 사람이 될 것인데.”
다들 어디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갈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수레를 가져와서 포로들을 굴비 엮듯 올렸다. 노인들은 자리만 차지하니 죽이거나 적당한 곳에 버리려 하였지만. 집을 불태우려고 준비 중인 훈련도감 보총수들이 제지했다.
“이 노인들이 동맹가첩목아(먼터무)를 죽인 자인지 어떻게 아나?”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도성으로 끌고 가서 죄를 물어야 하지 않나.”
“야! 늙은 놈들 죽이지 마! 조선으로 가져간대!”
습격까지는 좋았지만 습격 이후에 일어난 일은 여진족 같지 않았다. 아녀자를 겁탈하지도 않고, 쓸모없는 자들을 죽이지도 않고, 그저 병력만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으니.
“우리 뭔가 잘못된 것 아니야?”
“잘 살고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
한편 이 상황을 보고 있던 훈련도감 병사들도 한 소리를 했다.
“저놈들 여진족 맞아?”
“우리야 더러운 꼴 안 봐서 좋긴 하잖아, 그리고 노인들은 어디에 쓴다는 거야?”
“어디긴 어디겠어, 지금 남도지방에 마장(馬場)들에 인력이 부족하다잖아.”
“늙어서 따스한 남도로 내려가니 무조건 충성하겠군. 빨리 말 타고 들어가서 놈들 정찰병이나 제거할 준비를 하자고. 놈들이 소식 빠르게 들으면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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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이후 9일이 지났다. 소규모로 분열된 아구지 휘하 병사들, 토관들 그리고 적의 수뇌부의 도주를 저지하기 위한 훈련도감 보총수들은 조를 이루어 사방을 헤집고 다녔고. 벌써 아홉 개의 여진족 부락을 복속시키거나 불태웠다.
진격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추위로 병사들이 계속 후방으로 보내졌지만 이미 첫 목표인 거양성(巨陽城) 까지 60리만 남은 상황이었다.
“복속한 부족이 여섯, 제압한 부족이 셋이라니. 다들 복속하려 하다니 이해가 안 되는군?”
“증언을 들어보니 여름철에 일대에 있던 위소들이 전부 사라졌다더군요.”
“이미 명에서 위소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단 말인가?”
이맹전을 비롯한 조선인 군관들은 상황이 너무나 잘 돌아가서 우스울 지경이었다. 위소는 군사 요충지이자 일종의 대외 창구다. 기미위소(羈縻衛所)는 이런 지역에 여진족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과 동시에 마시(馬市)를 비롯한 물자를 교환하는 수단이자 징표였다.
위소가 사라지면 이들은 명에서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한다. 설령 이 시국에 요동으로 향했다 한들 냉대만을 당한 것이 분명하다.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었다 합니다. 처음에는 식량 부족을 핑계로 조선을 약탈하려 하였으나. 북방의 대승이 알음알음 전해지면서 함부로 내려오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잘된 일이군, 북변에서 이기지 못하였으면 저놈들이 모조리 조선으로 침공하지 않았겠나.”
자신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달자(몽고)를 무찌른 조선에게 대항할 방법도 없고. 위소가 폐쇄되어 명의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서도 곡식조차 얻을 방법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속으로는 곪아 터지기 직전인 상태였다.
“말들은 모두 비루먹어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고. 다들 거양성에 쌓인 미곡들을 탓하고 있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증언들을 종합해보니 황망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거양성 일대에 있는 올미거(兀未車)의 족장 야당기(也當其)가 곡식들을 쌓아놓고 주지를 않는다고요.”
야당기,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근래에 들어 조선에 복종하는 척 하다가 변방이 혼란한 틈을 타서 머나먼 북변으로 이주한 자였다. 또한 먼터무를 죽인 양목답올의 먼 친척이기도 하고.
“곡식들을 쌓아놓았다고? 아마 그 자가 있는 곳은 대풍이었나 보군. 하지만 이런 시기에 풍년이 나 보았자 화만 불러올 뿐이네.”
“그래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복속한 여섯 개 부락에서 되던 안 되던 병력이라고 모조리 끌고 나와서 곡식과 마초(馬草)가 부족할 지경입니다.”
부족하다고? 이맹전의 머릿속에서 셈이 이루어졌다. 야인들이 복속한다 하여도 기껏해야 2000명 내외로 계산하였다. 지금 복속한 자는 많았지만 본대에서 이탈한 자들도 있지 않은가?
“뭐라고? 지금 우리는 본대 6천에 치중 6천이 아닌가? 부상당한 병사를 경원으로 보냈으니 실제로는 1만 2천이 좀 안되고.”
“놈들이 사내란 사내는 모조리 끌고 온 덕분에 들어온 병사가 4천을 넘습니다. 걸신들린 듯이 보통 사람의 곱절로 먹어치우고 있으니 필요한 보급은 2만 명 분량입니다.”
이맹전은 다급히 전령을 보냈다. 아마 경원에 비축한 예비 물자를 상당량 가져와야 저들을 먹일 수 있으리라. 조선군은 여진족과의 전쟁과 같이 아귀(餓鬼)들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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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11일이 되자 거양성 인근의 올미거(兀未車) 부락에서는 흉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8일 전에 들어온 소식은 조선군이 두만강을 넘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에는 다들 이렇게 생각했다.
‘모련위가 없어졌으니 그곳 일대를 점령하겠지.’
그리고 5일 전에는 다른 소식들이 들려왔다. 혐진을 비롯한 아래 부족들이 복속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놈들은 자신들에 대한 불만이 넘쳐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많이는 못 올라와. 조선군이 언제 여기까지 들어온 적이 있어?’
사실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고려시대 윤관이 개척한 동북 9성에 이 거양성이 속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며 방어를 위한 성이 갖추어져 있기에 올미거(兀未車)를 비롯한 올적합의 여러 분파들이 제법 많은 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9개의 부락이 복속 또는 초토화 당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나마도 간신히 살아남은 정찰병이 죽어가면서 남긴 말이었고. 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겨울의 추위가 상처를 얼려 지혈시킨 덕분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진짜!”
“그러기에 가진 곡식을 조금이라도 푸셨으면.”
농사가 너무 잘 되어도 문제였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부족을 먹일 정도로 추수하였는데. 곡식을 달라 아우성을 치기에 냉정하게 거절하고 적당히 두들겨 주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야 이 빌어먹을 놈아! 마시에서 사왔다면 몰라도 그건 우리가 키운 곡식이야!”
야당기, 정확히 말하면 올미거 족장 야당기이며, 갑자기 친척의 죄를 뒤집어 쓰고 복수의 대상이자 역적이 된 야당기는 미칠 노릇이었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아구지라는 놈이 나타나서 먼터무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날뛴다던가.
당연히 자신은 올적합에 소속되어 있고. 멀리멀리 건너면 양목답올의 친척이기도 했다. 하지만 칠성 야인의 난에 소속되어 조선까지 내려간 적이 있으니 항복해 보았자 무조건 죽는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다고 이 한겨울에 살아날 가망은 있을까 모르겠어.”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 1500, 아니 다 쥐어짜내면 병력이 3000까지 나오니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조선군의 수는 2만에 달한다 하였으니 실제로는 8천 이상이리라. 싸워도 이길 가능성이 매우 적었다.
“도망가자.”
“적습입니다! 적이 몰려옵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놈들은 잘해야 이틀거리에 있을 것인데. 하지만 능선을 타고 한 무리의 군사들이 쏜살같이 달려 내려왔으며.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계속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