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78화 (78/573)

< 2장 17화 - 이개의 기묘한 업무 >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형님이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허리와 목을 펴고 꼿꼿한 자세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니까. 이런 고통스러운 입신체비의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겠지.

“분명 근면육연화 기억술은 작은 내용을 분절하여 외우는 것인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렇게 하여서 서책의 글귀를 머릿속에 넣을 수 있더냐?”

“저는 이렇게 하고도 잘 읽힙니다. 변명이 아니고 진실입니다.”

근면육연화 기억술, 줄여서 근육 기억술의 약점이 그거지. 책을 한 번에 읽으면서 이해하는 일에는 쓰지 못한다. 분절해서 반복학습으로 외우는 방법을 소설책을 읽는 것에 적용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나는 빙의한 덕분인지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 결국 계속 읽어나가는 것과 거의 같다. 어차피 땀에 젖은 서책이야 다시 쓸 것들이니 문제가 없고.

“대체 이게 무슨. 내가 너에게 일을 시킨 것이 잘못일지도 모르겠구나.”

형님은 화를 조금 내시더니만 서책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셨다. 여기에 달려있는 주석이나 순서가 맞지 않는 글들을 편집해야 일차 완성본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완성도는 제법 높을 거다.

나는 기본적 지식만 가진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미래에서 사학과를 다니면서 몇 번이고 요약 완성본을 읽은 사람이다. 그 희미한 기억을 따라가면서 약간씩 내용을 추가하고 논리에 맞게 편집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형님은 방금 전에 편집이 끝난 책자를 계속 넘겨보신다.

“말이 안 된다. 아니 대체 이걸 어떻게 해나간 것이냐. 그대들이 일을 많이 한 것인가?”

“아니옵니다. 대부분 대군어른께서 자료를 취합하셨고. 저희는 사리에 맞게 주석을 달고 연결하는 작업만 하였습니다.”

서책을 넘기는 손이 점점 빨라진다. 흠을 잡으려면 벌써 잡으셨겠지만 별로 흠잡을 곳이 없다는 뜻인가. 이윽고 시간이 흘러 방금 전에 편집한 한 권의 서책이 모두 넘어갔다.

“내가 괜히 의심을 하였구나. 앞으로 개찬에 집중하도록 하여라.”

“주상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조만간 정인지와 이선제에게 개찬작업을 한 서책을 보낼 것이다. 그들의 확인 이후에 서책을 완성하면 될 것이다.”

형님은 날 무슨 괴물 보듯이 하고 있다. 더 이상 개찬이 필요 없는 구간은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한 달이 좀 넘는 시간동안 10권이 넘게 편집했으니까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떠한 신료들도 함부로 나서지 않으려는 일을 이렇게 수월하게 생각한다.

상왕인 세종대왕님도 고려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계속 재편집을 요청했었지. 형님 또한 일이 바빠서 손을 대지 못할 뿐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의외로 쉽게 끝나려나?

“저기 정말 읽히시긴 합니까?”

“물론이네. 내가 특이한 것인지 입신체비를 오랜 기간 하면 이런 것인지는 몰라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네.”

어느새 김의정과 권람 둘 다 내 모습을 따라하려다가 마보자세 시작부터 신음성을 내고 있었다. 일의 효율성도 있으니 계속 해봤자 효율이 점점 줄어들기만 하잖아? 앞으로 집현전에도 입신체비를 도입할까?

-----------

“네? 저를 종 3품 부정(副正)으로 임명하신다니요.”

“주상전하의 어명일세. 그대는 이제 선공감에서 일하게 될 것이니 바로 도성으로 올라가게.”

이해할 수 없었다. 명에 다녀온 사신일행 중 가장 진급이 더딘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다들 종 4품 까지 빠르게 진급 했고 자신은 가문의 힘이 약해서 아직도 정 5품에 머무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대우라니?

“어명을 받들어야하니 이만 한양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그간 저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그대와 같은 능력이 있는 자가 개성에서 머문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제가 능력이 있다니요. 기껏해야 나라에서 정한 일을 따랐을 뿐입니다.”

쓴웃음이 나왔다. 개성에서 지난 9개월간 했던 일을 되새겨보니 우스웠다. 공조 판서인 정창손은 자신과 그리 성향이 닮지 않았으며 기껏 올린 의견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사소한 일을 담당하다가 어느 날 명령을 받고 외관(外官)으로 파견되었다.

----------

정창손이 내린 과업은 공조가 도량형을 담당하는 부서이니. 그에 따라 개성 일대의 도량형을 점검하라는 명령이었다. 같이 파견된 관리 둘은 반박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한양으로 돌아갔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왜 나라에서 정한 근을 쓰지 않으시는 겁니까.”

“우리는 우리의 방법이 있으니 신경 쓰지 마라.”

“명국은 아국의 수십 배가 넘는 크기인데도 상(商)만큼은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 하여도 옛 방법을 따르려 하면 손해를 볼 것인데 어찌 하여 고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 달 동안 설득을 하다가 선죽교를 지나갈 무렵이었다. 누군가가 철퇴를 들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입신체비를 통해 단련된 몸은 아주 정직했다. 철퇴를 휘두르며 위협하던 놈에게 머리통만한 포석(鋪石 - 포장용 돌)을 던져버렸다.

상대는 돌에 맞아 팔이 부러지고 괴성을 지르면서 도망갔다. 이후 습격사건이 유수부에 알려지고. 다들 습격의 배후를 찾으려 했지만 이개는 별 일도 아니라면서 당당히 말했다.

“본래 사람이 분수를 모르고 덤비는 일도 있다네. 그러니 입신체비를 하여 몸을 단련하게나.”

“입신체비라 하였는가? 그걸 자네가 안다고?”

“물론이네. 명을 오가면서 수양대군 어른에게 계속 지도를 받았고. 나중에 알고 지내던 단계(丹溪 - 하위지의 호)에게도 더 배웠다네. 기본적인 것은 가르쳐 줄 수 있네.”

입신체비에 대한 입소문은 점점 퍼져갔다. 수양대군의 제자 중 개성 출신은 없었기에 이 지역에서 이개만이 입신체비를 배운 사람이었고 다른 이들에게 입신체비를 전파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관리들의 체구가 늘어나고 근육이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개성의 유력가들은 이개를 불러 만둣국을 권했다. 떡이 잔뜩 들어있는데 모양새가 기묘했고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는 것이 주리를 튼 모양 같기도 했는데 그저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것이 수양대군 어른께서 쓰신 명국 기행담 입니다. 이것을 보시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상세히 알 것입니다.”

“우리보고 명에 가서 관직이라도 얻으라는 소리인가?”

“아닙니다. 강남의 상업을 보시면 여러분들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어떻게 말 하나도 지지 않으려고 악을 박박 쓰나. 오냐 읽어는 준다!”

어느 날은 수육을 한 근 대접한다 하여서 오히려 무게를 트집 잡았고. 품속에 가지고 다니던 한 근 무게 소역기를 꺼내 무게를 정확히 맞춘 다음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 많은 수육을 뱃속으로 우겨넣자 표정이 계속 썩어 들어가는 것이 일품이었다.

“에이 이 독한새끼 진짜! 다른 것은 몰라도 근수는 우리가 맞춰준다.”

“조정의 뜻을 따라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저런 독종을 대체 누가 키웠지.”

어느 근육덩어리 종친이 키웠지. 라는 말이 입가를 간지럽혔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그렇게 적어도 근을 비롯한 무게 단위만큼은 나라에서 정한대로 모조리 교체하는 것에 성공했다. 당시에 자신에게서 정확한 무게추를 받아가던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놈은 일과 관련된 것이면 자기 생살도 씹어 먹을 놈이야.”

“근육을 씹어 먹으라는 말인데 그것도 근손실이오.”

“대체 근손실이 뭔데! 이 근육덩어리야!”

----------

그리도 어떻게든 근 하나라도 맞춰나갔으니 다행이다. 이제 정리를 마칠 차례다.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잊지 않았다.

수양대군과 같이 행동했으니 명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적당히 비슷하게 쓸 수 있었다. 알아보기도 쉽고 순서대로 읽어 나가면 머릿속에 잘 남는다. 육하원칙(六何原則)이라 했던가? 그렇게 짐을 꾸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온다.

“백옥헌(이개의 호)! 도성으로 내려간다면서?”

“그렇다네. 다들 송별회를 하려고 하나?”

“음식도 준비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리고 그 음보로 들어온.”

“차별은 좋지가 않다네. 모두가 이 개성에 와있는데 사람을 함부로 차별하면 쓰나.”

압구(狎鷗)라 하였는가. 그 체구가 작은 자는 어떻게든 포용하고 싶었지만 입신체비를 배우려 하지도 않았다. 수양대군이 명을 다니면서 체구가 비대했던 신숙주를 건강하게 만들었으니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술자리가 열렸다.

“시전에 있는 상인 주(主)씨가 보낸 음식입니다.”

“그 짠돌이가 무슨 음식을 보내? 이거 봐라?”

바구니에 담겨 있던 것은 뒷다리살 수육이었다. 개성에서는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고 명에서 커다란 돼지를 가져오자 너도나도 인근에 농장을 만들어 돼지를 잔뜩 키웠으니까. 송별회를 위한 찬거리를 주문했는데 시키지도 않은 돼지고기가 이렇게 잔뜩 왔다.

“끝까지 이러기인가. 이개 자네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맺혔나본데.”

“그 양반 전조시절 왕 씨에서 성을 바꾼 거라니까. 획 하나만 추가해서 주 씨로 바꾼 것이 분명해!”

“지금 가서 따지자고! 이 새끼들이 진짜 봐주니까 주제를 몰라서.”

개성일대는 이성계에 대한 원한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돼지띠인 이성계를 겨눠서 돼지고기 수육을 성계육이라 부르며 꼭꼭 씹어 먹었고. 만둣국에 들어가는 떡은 주리를 튼 것처럼 가운데를 짓이겨 놓았으니까. 이 모든 것이 들어가는 돼지고기 탕은 성계탕 이었다.

“잠깐 기다려보게. 그 불경한 고기요리를 먹으라 하면 분명 썰어서 줬겠지.”

그런데 왜 돼지고기가 썰려있지도 않고 그냥 통으로 삶았을까. 이렇게 어중간한 짓거리를 하느니 잘 차려줬을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 수육으로 자주 먹는 뱃살이나 목살도 아니고 질긴 뒷다리 살이다.

“생각해보니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군.”

“어서 따지러 갑시다! 이번 기회에 놈들을 작살내야지요!”

그 작은 체구를 부들부들 떨면서 성질을 내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개는 이것에 숨긴 뜻을 알고 있었으니 별 문제가 없었다. 숨긴 뜻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몰라도 아마 이것 같았다.

주방으로 들어간 이개는 사람을 시켜 뒷다리 살을 얇게 썰어 솥에 넣고 된장에 볶았다. 거기에 각종 채소를 썰어 넣어 같이 볶으니 윤기가 돌면서 군침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명에서 가져왔던 산초(山椒)가루를 뿌려 마무리를 했다.

“이게 파촉(사천) 일대의 요리인 회과육(回鍋肉)이라네. 사람이 다 뜻이 있는 법이야.”

“그렇다면 회과육이라는 요리를 먹고 싶어서 이런 짓을 했다. 이건가?”

“나는 그렇게 본다네. 이걸 좀 덜어서 주 씨에게 가져가면 좋겠군.”

다시 도성으로 올라가니 몸은 가벼웠다. 입신체비를 자습한 덕분에 3대 운동은 700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입궐 이후 바로 문종을 만나게 된 이개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이야기 하였다. 기한이 언제인지도 모르나 공조에서 담당한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 맞다.

“신 공조 정랑 이개. 공조의 신하로서 개성 일대의 도량형을 현재 쓰이는 것으로 바꾸려 하였으나. 능력이 미숙하고 배움의 깊이가 없어 무게의 도량형인 근만 도입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뭐라 하였나?”

“제가 행함에 부족함이 있어서 아홉 달의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라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문종은 보고서를 넘기면서 기가 차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생 녀석이 무심해서 천거하지 않은 이개는 그야말로 일에 미친 자였으니까.

“개성의 풍습이 어떠한지 알고 있는가?”

“풍습은 풍습일 뿐이고 저는 오롯이 서 있을 뿐입니다.”

“되었네. 우선 개성 일대에 근을 도입하게 하였으니 그 노고를 치하하려 하였으나. 그 이전에 공조 판서 정창손과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금 하여 보게나.”

한동안 머뭇거리던 이개는 마음을 정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분명히 조심스러운 일이 맞았다. 지금부터 이 나라를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하니.

“본디 도로라는 것은 예부터 전해지던 주례(周禮)에도 나와 있습니다. 경(經), 진(畛), 도(途), 도(道) 그리고 로(路)로 되어 있습니다. 하오나 아국은 그저 명확한 구분도 없이 중요도에 따라 구분하고 있습니다. 명국에서 로(路)를 따라 거닐 때에는 불가피한 암반같은 지형이 있는 곳이 아니면 승거(마차, 수레 등)가 교차하여 다닐 수 있었으며 이를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명국의 도로는 그러하다. 반면 아국은 어떠한가.”

“반면 아국의 도로는 사실상 대로, 중로, 그리고 소로의 구분만이 있을 뿐. 실지로는 제각각입니다. 영남대로라 하면 승거가 다닐 너른 길이 아니고 우마가 간신히 이동할 소로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변방의 소로라 하여도 인근에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승거 다섯 대가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비판에 문종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은 기껏해야 경기도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으니 상황을 도저히 몰랐던 것이다.

물론 이개가 말한 변방의 소로는 개성 인근에 있는 절터로 향하던 길이었다. 하지만 근거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전조 고려시대에도 필요에 따라서 넓은 길을 만들었다는 증거이니까.

“그렇다면 도로의 폭을 넓히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란 말인가.”

“아니옵니다. 실지로는 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량(橋梁)이옵니다. 아국의 도로는 폭이 좁고 장마철에 쉬이 깎여나가 진창이 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동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은 개울을 만나도 우마차를 쓰지 못하고 지게꾼을 동원해야 합니다.”

짐을 옮길 때 수레를 끌고 조금 이동하면 개천이 나오고 다리는 없다. 정 짐을 옮기고 싶으면 거기서 지게꾼이 짐을 받아서 강 건너의 수레로 옮긴다. 이게 조선의 현실이었다. 파발이나 군인이면 쉽게 건너겠지만 짐은 다르다.

문종은 그러한 고역을 상상해 보고는 진저리를 쳤다. 정말 비효율적이기 이를 데 없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지게로 짊어지고 옮기는 것이 좋겠군.”

“그러하기에 도로를 넓힐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도로는 군사의 이동과 파발을 위한 길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도로를 넓혀 보았자 물산이 돌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넓은 길을 사용하기 편하다 하여도 수레를 버리고 지게꾼을 불러야 한다면 다시금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문종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인가 일을 행할 때 의지가 있으면 큰 차이를 보인다. 당장 자신도 입신체비를 하면서 ‘입조할 여진족을 압도해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전념하니 기존보다 성장이 빨랐으니까.

한참동안 여러 요소를 가지고 생각해 보니 결론이 나왔다. 하루에 쌀 석 되의 충분한 삯을 주는 요역으로 비교적 난이도가 높은 공사인 교량 공사를 먼저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개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

“조만간 새 군마에 밀려서 쓰이지 않는 늙은 군마들이 넘쳐날 것이고. 이 군마로 수레를 끌게 하면 효험이 있을 것 같구나. 먼저 교량을 만들어 물산이 통하게 하면 너도나도 도로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도로를 넓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먼저 행할 것은 교량을 놓는 일입니다.”

“선공감에 증원한 이들과 같이 행하도록 하라. 문경현부터 울산군까지의 길을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이개는 즉시 착수한다 하였지만 적어도 1년은 있어야 효과를 볼 일이다. 지금이 10월이 다 넘어가니 올해 내내 계획을 세우고. 내년 농한기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나선다. 그나마 삼남지방은 겨울에도 날이 따듯하니 조금은 일의 진척이 빨라지겠지.

“그나저나 개성의 사람들이 도량형을 받아들였단 말인가?”

이개가 물러가고 나서도 보고서를 계속 넘겨보던 문종은 다음 계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개성은 유수부(留守府 - 현 광역시 개념의 대도시)가 있으면서도 출세에 차별을 두었다. 이러한 차별을 아직 없앨 방법은 찾지 못하였다.

다른 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아직도 원한이 남아있는 이들이 아닌가. 이개의 보고서에 있는 상인 주(主) 씨만 보아도 그러하니까. 하지만 개성 일대에 새로운 경쟁자가 생긴다면? 분명히 원한 따위는 잊어버리고 나라를 위해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유 녀석에게 한번 말이나 해볼까.”

분명 견문이 넓으니 이런 일을 좋아할게 분명했다. 나중에 고려사 집필이 끝나면 녀석을 개성으로 보내서 고려사를 한 질 보내도록 해야겠다. 경험이 쌓이면 조금 더 좋은 의견이 나오겠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