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77화 (77/573)

< 2장 16화 - 단련의 시간 >

1451년 10월 초. 수강궁에 다시금 부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문종의 행보를 입이 마르게 칭찬하고 있었다.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 - 먼터무)의 7촌을 그렇게 다루시다니. 주상의 혜안에 감탄할 뿐입니다.”

“아닙니다. 아바마마같이 능숙하게 야인들을 다루지 못하고 하찮은 계책을 다뤘을 뿐입니다.”

군권은 아직까지 세종대왕에게 있었다. 세종은 의주 일대에 1만 2천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유사 상황에 타이순 칸의 지원을 위해 파병할 계획이었고 이번 여진 정벌에 4천의 병력을 추가로 파병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입조한 건주위의 지원을 위한 물자는 어떠하신지요.”

“아직까지는 나라에 여유가 있습니다. 다 합하여도 고작 2만 5천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국의 백성은 적게 잡아도 오백만이 넘어가니 당연한 일이지요.”

세종대왕의 고개가 끄덕거렸다. 여진족에게 지원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봤자 조선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쌀을 제외한 곡식의 가격이 다소 떨어지고 있었는데 여진족들이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정상 가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바마마께서 계실 적에도 그리 하였지만. 이제 명에서 가져온 종자들이 대부분 퍼졌습니다. 쌀은 적응하지 못하였지만 밀은 소출이 3할, 보리는 2할이 증가하였지요.”

“주상께서 아시다 시피 가장 요긴한 것은 철입니다. 흑토의 채취와 병장기의 생산으로 철이 손쉽게 생산된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 것입니까.”

세종대왕은 문종에게서 받은 장계를 열어보았다.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의 철 생산량은 대폭 증가했다. 지속적으로 철의 사용량이 늘어나며 철장(제철소) 자체도 늘어난데다 여기에 흑토를 투입하면서 연료의 양도 늘어난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입니다. 충청도에서만 철을 5만근이나 생산하다니 20년 전만 해도 가까스로 2만근을 생산하고도 벅차 하였습니다.”

“아바마마께서 흑토를 캐내라 명하신 덕분입니다.”

“그것도 있지만 은퇴한 장 별장(장영실)도 한 몫을 하였지요. 쇠둑부리(제철로의 우리말)에 석묵(흑연)을 섞은 벽돌을 쓰면 수명이 몇 배로 늘어난다 하니까요.”

조선의 철 생산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충청도와 전라도는 2배 이상. 경상도는 4할이 증가하여서 전국의 철 생산량은 공식적으로 조정에 납품되는 양만 19만근(약 122톤)에 이른다. 그 외의 지역에서 민간에 사용되는 양은 35만근(약 225톤)에 육박한다.

무연탄은 고로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여도. 이 시대의 쇠둑부리에 투입하는 연료로는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 오히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주철에서 탄소를 빼내어 강철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다.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니 주철 재고량이 넘쳐나고 있었다.

“무기를 만들기 위한 철도 부족하진 않고. 북변으로 얻어낸 종마들에서 계속 전마가 태어날 것이니 말의 값도 계속 떨어지겠군요. 주상께서는 이제 무명을 떨칠 일만 남았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농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글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주상의 모습을 계속 보아온 제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제 시호가 무종(武宗)으로 될 지도 모르겠군요. 홍위에게 미리 말을 해 두어야죠.”

부자는 눈을 마주치더니만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 시호가 무종이라니 무에만 신경 썼다는 불편한 시호가 아닌가. 웃음이 끝나고 세종대왕은 책상에 앉아 서류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기 시작했다.

“과연 유가 창안한 숫자는 사용하기 좋습니다. 늙은 눈으로도 알아보니까요.”

“아바마마가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조만간 있을 여진족 토벌에 필요한 물자와 지금까지 투입된 물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서류는 거의 책 한권에 가까웠다. 내용을 한참동안 확인하던 세종대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훌륭하십니다. 이득과 손실이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석감이 제법 효능을 보이는군요.”

“그렇습니까? 하긴 어느 누구도 석감을 써 보면 몸이 달라지니까요.”

“명에서는 지금 장성을 쌓기 위해 한창 사람을 쓰고 있으며. 요동 일대의 여진족들을 쫒아내었기에 거래를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모피들이 더 귀해졌으니 여기까지 감안하면 이득입니다.”

곡식 10만 석. 많은 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조정에서 추측하는 조선의 전체 미곡 생산량은 정확한 추정은 아니지만 약 2700만 석에 달한다. 서서히 여유분의 곡식이 늘어나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천 장에 달하는 사슴이나 늑대의 가죽들은 부유한 이들에게 제법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처음에는 여진족들의 가죽을 사기 위해서 나라의 곡식이 들어갔으나. 그 이후에는 여진족들의 가죽을 사기 위해서 부유한 이들의 창고가 비어버리기 시작했다.

반대로 내수소는 계속 이득을 챙겼다. 창고에서 묵어가고 있다가 배를 타고 삼남지방에서 올라간 쌀은 시세의 1.5배나 되는 가격으로 팔았다. 원산을 비롯한 평안도와 함경도의 잡곡들은 북쪽으로 보내져서 역시 시세의 1.5배로 팔렸고.

물론 부담되는 요소는 있었다. 가마솥을 비롯한 철물은 약간은 부담이 되었으니까. 정착한 여진족 가구 4호마다 1개의 가마솥을 지급하고 계속 철물을 팔고 있는데. 주철이 아무리 재고분이 많다 하여도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여유분으로 비축한 철의 3할 가량을 사용했지만 1년정도 이후면 모두 채워지리라.

“주상께서 나라의 본(本 - 여기서는 기본 지침)을 삼으셨으니 앞으로 누가 왕위에 오른다 하여도 야인들을 복속시키는 것은 충분한 일입니다.”

“하나 복속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달자(몽고)가 그러한 이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상의 혜안으로 달자들은 서로를 물고 뜯느라 당분간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몽고의 내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타이순 칸이 필사적으로 몽고의 세력을 규합해서 함부로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명의 움직임 또한 오이라트의 세력을 머뭇거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러나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 명에서도 장성이 완성되고 남부의 병력을 귀환시키며 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고. 타이순이 애써 결집해 놓았던 세력들도 분열될 것이다.

“생각하여 보니 저 하늘에서 동맹가첩목아가 분통을 터트리겠군요.”

“어찌하여 분통을 터트린단 말입니까.”

“동맹가첩목아는 아들 동산(충샨)이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죽인 명분으로 칠촌인 아구지를 내세우다니요.”

“나라의 일은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돌아가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아바마마도 아시지 않습니까.”

조금 어렵고 힘든 수준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곱씹던 세종대왕은 자신의 일을 하러 갔다. 조만간 유를 불러서 경국대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조언을 얻어야겠다.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생각이 트여있는 아이니까.

----------

한편 문종은 세종대왕에게 보여준 장계에서 이상한 점을 찾았다. 경상도의 철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증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회의의 주제 또한 이 사항이었다.

“근래에 들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보다 경상도 일대의 철 세공량(생산량)이 더디게 늘어나고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인가. 분명 경상도에서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문경현(문경시)에서 나는 흑토를 사용하니 제철장의 생산량이 늘었다 하거늘.”

분명 전라도와 충청도의 생산량 증가가 아니면 고무적인 성과이다. 그러나 상대평가는 냉정한 것이다.

“주상전하께 아뢰옵니다. 충청도의 보령현 일대에서 채취한 흑토는 바로 해운과 수운을 통하여 전라도 일대로 보냅니다.”

“그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문경의 흑토 소출은 한 해에 삼만 근 이상에 달한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문경 일대 흑토의 소출이 작년에는 왜 줄어들었지?”

“교통이 험하여 흑토를 캐어봤자 쓸 방법이 없어서 사람들을 많이 쓰지 않는다 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굽는 데에 많이 쓰인다는군요.”

문종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문경의 흑토는 채굴도 쉽고 품질도 매우 우수하다. 이미 영남 일대에서 생산되는 철의 양만 기존의 5만근을 가뿐히 넘고 7만근에 육박했지만. 충청도와 전라도의 증가량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교통이 험하다 한들 수운이 있지 않은가.”

“수운도 한도가 있습니다.”

하류라면 모르겠지만 문경은 낙동강의 상류이다. 현대도 아니니 갈수기에 일정한 수량이 유지될 이유도 없어서 많은 배를 띄우기 힘들다. 고개를 숙인 호조 판서 윤형을 보면서 한숨만이 나왔다.

“좋은 물산이 소출된다 하여도 문경새재를 넘기 힘들다 하니. 방도가 없단 말인가.”

“신 공조판서 정창손(鄭昌孫) 아뢰옵니다. 하책이옵니다만 도로를 확장함은 어떻습니까.”

“도로라. 그러고 보니 공조 정랑(正郞 - 정5품 실무직)으로 명국에 파견을 다녀왔던 이개가 있지 않나. 그의 의견은 어떠한가.”

당상관만 있는 자리이기에 아직 공조 정랑에 머물러 있는 이개는 있지 않았다. 윤형은 그래도 왕인 문종에게는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길. ‘아국의 도로는 폭이 넉 자(1.4m)도 아니 되고. 흙을 다지지도 않고 늘어놓아 장마로 진흙탕이 되기를 반복하여 물산을 옮길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일전에 명에 다녀온 수양대군에게도 들은 말이다. 그렇다면 이개가 다른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고심하던 정창손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가 고변을 하길. 요역(徭役)을 늘려야 한다 하였습니다.”

“요역이라?”

요역은 현재 평년 20일, 풍년 30일, 흉년 10일로 차등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 이외에는 국가에서 일을 시키는 것으로 취급하여. 일의 경중에 따라 쌀 한 되에서 석 되 정도의 삯을 매겼고.

“오히려 흉년에 요역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였습니다. 하오나 너무나 기이한 말이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그를 외직(外職 - 변방직. 여기서는 지방 실무를 위한 파견근무)에 두었습니다.”

“그러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개를 공조 휘하의 선공감(繕工監 - 토목과 건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소속을 변경할 것이며 종 3품 부정(副正) 으로 둘 것이다.”

“전하?!”

생각만 하고 있었지 함부로 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말을 대신 해 준다니. 이런 자는 키워야 한다.

“과인이 인재를 잘못 보고 있었다. 매번 삼남도 에서 보고가 올라올 적에 풍년에는 백성들이 일을 하지 않고 서툴게 행동하며 흉년에는 열흘의 요역을 끝나고도 삯을 얻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하였으니. 이개의 말이 옳다.”

“신은 전하의 심계를 모르겠사옵니다.”

“백성 또한 사람인데. 풍년이 들면 편하고 싶어 나서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흉년이 생기면 미곡을 얻기 위해 결사적으로 일을 할 것이 분명하다.”

유교적 논리에 있어서는 ‘백성이 편안해야 한다.’ 라는 대 전제가 깔려있었다. 그래서 풍년에는 편안하니 많은 요역을 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문종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요역을 변경한다. 열흘의 요역은 삯을 지급하지 않고 행할 것이며 그 이외의 요역은 일의 경중에 따라 곡식을 지급하여 행할 지어다.”

“전하! 그렇게 한다면 요역을 할 때마다 백성들에게 지급할 곡식이 너무나 많아집니다.”

그렇게 외치는 정창손을 보면서 문종은 한심하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자신이 알기 쉽게 말했는데도 듣지를 않는다. 저런 이가 공조의 판서라니. 아무래도 적당한 직책을 주고 글이나 쓰게 해야지.

“그렇다면 어찌하여 흉년에 백성들이 요역을 하려 움직이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아는가?”

“신도 정확히는 모르옵니다.”

“사창(社倉 - 기근 대비용 제도. 개인이 운영한다)에서 곡식을 빌리면 이자가 생기고. 사창에서도 미곡이 부족할 수 있으니 사창만 믿을 수는 없다. 반면에 삯을 주면서 행하는 요역은 그날 바로 관아에서 삯을 지급하니 나서는 것이다.”

단순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구휼을 위해 생겨난 제도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빈 곳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창손은 그 간단한 사실도 연상하지 못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앞으로 각 촌락에 설치한 사창을 폐지하며. 관아에 의창(義倉 - 국가에서 다루는 빈민 구제용 제도, 훗날의 환곡)을 둘 것이다. 이조에서는 적당한 관료를 천거하여 이를 관리하는 진휼청(賑恤廳)을 설립할 준비를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을 세고 삯을 매겨서 지급하면 끝날 일이다.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갈 일이니까. 중요한 일은 새로 발굴한 인재를 키우는 일이다.

“이개를 선공감에 두어. 가장 시급한 문경 일대의 도로 정비를 명할 것이다. 공조에서는 이를 행할 자금과 인원을 충분히 파악하도록 하라.”

이렇게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지 않았단 말인가. 문종은 동생의 무심함에 감탄하며 백성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은 이개에게도 감탄했다. 앞으로 그를 중요히 써야겠지.

문종은 회의를 마치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수양대군과 어울렸던 인재들 중 저렇게 뛰어난 자가 있었다니. 그러고 보면 지금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지?

----------

한때 사학과를 나왔고. 대충 배웠지만 나름 역사를 알고 있다 생각하기에 나도 신념이 있었다. 고려사를 편찬하는 것에 있어서 내 신념? 그래도 중간은 가자. 이거다.

“정말로 이렇게 취합하실 겁니까?”

“충렬왕이 비록 여색에 빠지고 잡기를 하느라 정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전조의 백성을 구하였으며. 유학의 근본인 성균감(成均監 - 성균관의 전신)을 만들었는데 한없이 낮게 볼 수 있단 말인가.”

“듣고 보니 옳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그러나?”

내 의자는 없다. 근손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보자세를 취한 덕분이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책을 보는데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집중이 잘 되십니까?”

“염려하지 말게. 너무 오래 하면 근육량이 줄어들 것 같군.”

다시금 내 신념으로 돌아가자면. 조선에서 편집한 것이니 다소 불리한 시선으로 쓰인 부분이 있다. 대략적으로 태조 왕건부터 예종까지는 대부분 좋게 쓰였지만. 목종의 경우도 불리한 사실을 다소 부각시킨 면이 있었고.

“그리고 왜 묘청이 이렇게 부각된 것이지?”

“아무래도 불씨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고쳐야지!”

그 이후로는 부정적 평가의 연속이다. 하긴 사료를 취합한 시점부터 전조의 폐단을 공격해야 하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중립적인 시각에서 기존의 내용과 상충되지 않으면 가급적 많은 내용을 넣으려고 노력했다.

“이러다가 권수가 늘어날지도 모르겠는걸. 그럼 다음자세로!”

패도(플랭크) 자세를 취하고 글귀에 극도로 집중하면서 책을 읽는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내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오 상황설정이 된다. 전쟁 내용이니까 온몸의 근육이 알아서 꿈틀거린다!

보통 사람이면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빙의자여서 쓸데없는 일이 가능하다. 몸과 마음을 따로 굴리는 것이다. 단순한 작업정도는 이렇게 생각과 행동을 따로 할 수 있는데.

“유야!”

“주 주상전하를 뵙습니다!”

한창 자세를 잡고 글귀에 빠져 있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를 풀고 급하게 일어나보니 형님이 얼이 빠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