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74화 (74/573)

< 2장 13화 - 북방 개척(1) >

아픈 몸을 부여잡고 가마에 올랐다.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아내한테 정말 바가지 많이 긁히겠네. 이 시대는 아직 여성인권이 살아있는 시대여서. 유교논리로 남존여비가 있긴 하지만 그 이전에 내조자이자 동반자라는 생각도 남아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지만. 남편이 잘못된 일을 하면 바가지 정도는 긁을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여성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바가지가 예정되어 있다.

“다녀왔소.”

“세상에 윗가슴에 무슨 멍입니까 잠시 봅시다.”

“별 일 아니오. 내수린을 하는데 몸을 던지고 내리찍어서 조금 멍이 들었을 뿐이오.”

“이게 조금이라고요? 아악 세상에!”

방으로 끌려와서 웃옷을 벗었는데 아내는 내 몸에 생긴 타박상을 보고는 기겁해서 뒷목을 잡다가 겨우 진정했다. ‘그렇게 몸이 좋으면 난장을 당하셔도 좋습니까!’ 라면서 바가지를 긁혔고. 장인어른은 몇 년 전 돌아가셨지만. 아내가 사람을 보내자 처형이 왔다! 사람 죽이는 처형 말고 당상관 윤사분(尹士昐).

“오라버니 정말로 고맙습니다.”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가져온 웅담을 크게 잘라 드시고. 멧돼지를 푹 고아 자시면 어혈(瘀血 - 타박상으로 축적된 피)이 금세 빠져나갈 것입니다.”

“아… 고맙소.”

처형은 질 좋은 웅담에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를 가져왔는데. 열흘 동안 멍든 몸에 좋다면서 기름기 가득한 멧돼지 고기를 먹고. 용한 의원에게서 ‘격하게 움직이면 안 되는 탕약’을 처방 받았다. 나도 한 손 거들어서 빙고에서 얼음을 사오게 하여 냉찜질을 했지.

하지만 넘치는 근육으로 기초 대사량이 400칼로리가 높아져서 살이 많이 찌지도 않았다. 지방이 올라왔지만 조금 운동을 했더니 원상복귀다. 아내는 전혀 변하지 않은 몸을 보더니만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몸은 무엇으로 되어있습니까? 어떻게 살이 조금 붙을까 하면 빠져나갑니까?”

“닭 가슴살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소.”

아내는 다시금 뒷목을 잡았고. 사태가 너무나 심각해서 명에서 수입한 붉은 비단을 재빨리 구해다 선물해서 화를 풀었다. 아내도 나쁜 뜻으로 한 일은 아니다. 내가 가르쳐준 것도 있기에 이런 것이다.

아내는 내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고. 나도 욕심이 생겨서 아내에게 입신체비와 신체에 대한 것을 약간은 가르쳤다. 그래서 내가 피멍이 잔뜩 생긴 것이 충격을 흡수하는 지방의 양이 적어서 생긴 일임을 자연스럽게 안다.

아내 나름대로 내가 잘 다치지 않게 지방을 늘리려 하는데 어림없는 소리! 나이가 들어서 근육을 기르기 힘들어도 40까지는 이 몸을 유지해야지! 결국 위대한 근육의 승리다!

그렇게 열흘의 시간이 흐르고. 간관들도 내가 벌였던 일에 대해서 알아버렸다. 그런데 세종대왕님의 예상대로 평가가 엄청나게 나쁘지는 않다.

[수양대군이 한가위 이후 잔치를 벌이는 곳에서. 자신의 제자 둘과 함께 내수린이라는 무예를 보여주었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고 용력이 뛰어났으나. 주제로 전조의 시조 왕건과. 신숭겸 그리고 자칭 미륵불이라 불리는 도적 궁예를 내세웠다 합니다…….]

정리하면 무예(나는 무예가 아니고 연극이라 생각하지만)를 보여줬는데. 주제로 삼은 사람이 왕건, 신숭겸 그리고 궁예입니다. 이거 욕을 먹어야 쓰겠는데요? 정도의 의견이었다. 궁궐에 나가자 형님이 여러 이야기를 하다 결국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양대군 이유는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라.”

잘못한 일이 있으니까 벌은 받아야지.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 한가위에 배재당에서 행한 일에 대해 논하고 싶구나.”

“신 수양대군. 배움이 부족하고 자만심이 넘쳐 만용을 저질렀습니다.”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형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적당한 대답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다음 나온 이야기에 나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저자거리에 안대를 차고 몽둥이를 한 손에 거머쥔 아이들이 도적 궁예의 흉내를 내며 ‘옴 마니 반메 훔’ 이나 마구니를 때려죽인다며 떠들고 다닌다. 불씨들이 얼굴을 들지 못한다 하더구나.”

웃음을 참느라 미치겠다. 어쩐지 현동이가 마구니가 뭔가요? 하고 질문을 하더라. 어떻게든 웃음을 씹어 삼키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목이 잠겨서 그럴싸하겠지?

“저의 잘못된 말이 온 나라에 퍼져 뭇 백성들에게 심려를 끼치니 그저 송구하옵니다.”

“지나갈 일이니 너무 심려를 기울이지 말 지어다. 주체가 다른 이도 아니고 불씨들이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형님이 한숨을 쉬시는데 이 표정은 입신체비 하던 중에. 공령 한 장을 더 끼워 넣으면 짓는 표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이걸 해도 될까?’ 라는 표정이다.

“내수린을 행한 주제가 전조가 세워질 무렵이라 하였는데. 네가 행한 것은 상왕께서 개찬을 명하셨던 고려사에도 없던 내용이다. 그러니 벌을 대신하여 고려사의 개찬을 명한다.”

“누를 끼쳐드린 제가 벌을 받아 마땅하오나. 용서하시니 그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알겠다. 부디 고려사의 개찬을 마무리 지어 반포까지 행할 수 있도록 하여라.”

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슬쩍 훑어보니. 지금 화를 내고 있어야 할 간관들도 나에게 딱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음 고려사? 그거 최종단계 반려 아니야? 다시 형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고려사는 이 나라가 세워질 무렵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태종 대왕 시절에 한 번 고쳤으며. 상왕께서 두 번 고치시고 세 번째로 개찬을 하시다 중간에 머물러 있다. 원하는 이들을 추려 다시금 시작하라.”

주변을 슬쩍 슬쩍 돌아보자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걸 포기하고 있다. 그래 다들 업무가 많으니 나서려 하지 않는구나. 이 일의 마무리는 내가 해야지.

“주상전하의 명을 따름이 마땅하오나. 제가 고려사의 편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므로 우선 몸을 움직여 서책을 보겠습니다.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이가 참여하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또한 옳은 말이다. 부디 이번 개찬(改撰 - 책을 다시 씀)이 마지막 개찬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거라. 집현전에 서책을 둘 것이다.”

다른 관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안 좋아서 이러지? 그렇게 집현전으로 향하니 명을 받은 사람들이 끝없이 종이 뭉텅이들을 가져다 놓는다.

책상 위에는 끝없는 종이들이 놓여 있었다. 이게 다 고려사라고? 아니 무슨 일이야? 개찬이라면서 왜 책을 묶는 무명실을 풀어서 전부 낱장으로 만들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아나?”

“고려사입니다.”

“아니 고려사인건 아는데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그리고 자네 낯이 익은데.”

희미한 기억 속에서 이 집현전 신입이 누구인지 떠올랐다. 우찬성 권제(權踶)의 아들. 권람(權擥)이다. 아는 사람이니 아는 척을 해야지.

“이거 오랜만이니 몰라봤군. 정경(正卿 - 권람의 호) 자네가 집현전에 와서 처음으로 담당한 업무가 이것인가? 자네 지난번 대과를 보았다 하던데.”

“병과 1등(전체 4위)을 거두었습니다.”

“괜찮네. 비록 을과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병과만 해도 어디인가.”

역사가 달라졌으니 입을 조심해야지. 원래 역사처럼 형님이 가문만 보고 1위로 올려버리는 짓은 하지 않은 것 같다. 훈련도감 출신 노비나 평민들도 정8품을 다는 세상이니까 더욱 그렇겠지.

그렇다면 지금 장원급제한 인물은 김의정(金義精)? 집현전 안에서 말쑥한 관료가 다른 종이덩어리를 내려놓더니 인사를 한다.

“수양대군 어른을 처음 뵙습니다. 김의정 인사 올립니다.”

“자네가 일전의 식년시에서 장원이 되었지.”

“그렇습니다. 아직 학문이 부족하고 견문이 얕지만. 온 힘을 다해 대군어른을 돕겠습니다.”

비록 을과 1위 장원(이 시대에는 갑과가 아니었다)이지만 김의정의 아버지는 칠반천역에 속하는 수군에 속한다. 지금은 권람보다 2품계 높지만 몇 년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문의 힘으로 승진이 빠른 권람에게 역전당하겠지. 그렇다면 지금 둘 다 밀어볼까? 김의정도 재능이 있잖아?

“나야말로 고맙네. 우선 상황부터 알아보자고. 전임자들의 말은 있나?”

“다들 다른 서적을 집필하기 위해 바쁩니다. 약 100권 이상이라 하더군요.”

“몇 년이나 걸릴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권람은 벌써부터 질린 눈치였다. 하나하나 보는데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어서 별로 부담 가지는 않는데? 개찬중인 판본이라서 이래저래 얽힌 내용들과 덧써진 글자들이 많지만 대략적으로는 읽힌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사람만 충분하면 길어야 2년. 짧으면 1년으로 끝날 일일세.”

“네? 서책이 139권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끝납니까?”

“지금 이 서책들은 미완이 아닐세. 개찬을 위하여 검수중인 것이지.”

역사서를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말하자면 1차 사료 A, B, C가 있고 뒷받침을 할 2차 사료 a, b, c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교차검증 후 조합하여 사서를 만들어낸다. 당연히 모든 사료를 읽어야 하고.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개찬중인 고려사는 1차 사료의 취합이 완성된 상태이고. 2차 사료의 검증만이 남은 상황이다. 조금 꺼내서 읽어보니 내가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 왜냐고? 내가 사학과를 나와서 공부를 했으니 알지.

20년이 넘게 지났으니 당연히 기억은 불투명하고 헛갈리는 상황도 있다. 그러나 내용 자체를 읽으면 관련된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른다. 2차 사료의 취합에 있어서 상당히 편리한 상황이다. 이 시대의 사람이라면 매우 힘든 일이지만. 역사에 대한 개략적인 기억이 남아있는 나는 고민 좀 하고 골라내면 된다.

“그렇다 해도 백 권이 넘어갑니다. 글자 수만 하여도 삼백만 자가 넘어갈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보아야 할 글자는 삼십만 아래일걸세.”

당장 서책덩어리를 좀 뒤져서 고려 의종의 기록을 찾았다. 내가 아는 의종의 기록과 완전히 일치하네. 이의민이 등을 접어서 죽어버리고. 가마솥에 넣어 물로 던졌다고.

“기왕에 일을 할 것이면 욕심이 생기는군.”

“욕심이라뇨?”

“관료들이 많이 모이면 아예 절요(節要 - 요약본)를 만들어 봄은 어떠한가. 학역재(정인지의 호) 대감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더라?”

“대감께서는 지금 신집이라는 고서를 참고하여 고구려사를 만들고 계십니다. 하지만 훼손이 심하여 대조에 어려움이 있어 앞으로 반년은 더 필요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고려사가 방치된 상황이 이해가 된다. 주요 집필자인 김종서는 북방에서 한바탕 저지르고 북방상황 때문에 항시 대기. 정인지는 신집 분석하러 가고. 혹시나 예문관제학 이선제는?

“필문(篳門 - 이선제의 호) 대감은 혹시 백제신찬을 보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돌아버리겠네. 절요 만드는 것 까지는 취소해야겠다. 인재들이 죄다 신밀레를 당하고 있어서 내가 최종 책임자가 되어버린 상황이지. 내가 모르는 신집과 백제신찬을 다루느니 좀 아는 고려사를 다루자. 그래 뭐 궁예로 실컷 장난친 내가 잘못이지.

“이미 눈앞에 놓인 일을 두어 봤자 뭐하나? 서책을 순서대로 정리함이 우선 같네. 주석이 없고 완성된 내용들을 따로 몰아두도록 하지. 이미 서체는 기전체(紀傳體 - 역사책 저술방식)로 지어졌으니 글을 나중에 몰아서 다시 쓰면 될 것이네.”

“알겠습니다.”

“기운 내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먼저 서책을 써 두고. 학역재 대감과 필문 대감의 검수를 받으면 내년 말 까지는 완성할 것 같으니.”

앞으로 틀이 잡힐 시기까지는 무조건 여기 와서 업무다. 입신체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필 작업에 매진하고. 제자들 가르치는 일은 마일용과 하위지가 할 것이니 걱정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권람이 있으니 한명회도 있을 것 같다. 자칭 장자방 실제로는 권력에 미친 인간. 이 독버섯은 내가 가만히 내버려둬도 어디선가 자칭 책사로 활동할 것 같단 말이야. 역사대로 개성에서 한직에 배치되어 따돌림을 당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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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년 9월 말. 동해바다에서는 지금까지 조선에 없었던 배 다섯 척이 북쪽을 향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몸이 건장한 자들이 멀미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따스한 남도에서 편하게 지냈는데.”

“또 추위에 시달려야해? 차라리 겨울에 보냈으면 조금 더 편하게. 우웁!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주상전하의 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겨울 바다에 배를 타고 가면 위험하네.”

심하게 요동치는 배 위에는 훈련도감 출신 병사. 이제는 하급 군관이 된 자들이 뱃멀미를 참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북방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들은 모두 논공행상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적을 넷이나 베어버린 홍윤성이었고. 그는 단번에 종9품 아래인 정교(正校)에서 정 8품 사맹(司猛) 까지 올라갔다. 가장 경험이 많고 단련이 많은 훈련도감 1기 출신에서는 사용(司勇 - 정 9품 무관)이나 부사용(종 9품 무관) 정도는 넘쳐났다.

“삼남 사람들은 정말 못 싸우던데. 다들 가르치느라 고생했지?”

“가르쳐도 그 꼴이라니. 우리가 가르치기 전의 익군과 비교하면 누가 이길까?”

“비슷할걸? 그 동네는 가끔 오는 왜구들 빼고는 농사만 짓는데 많은 기대는 하지 말자고.”

“그러게 말이야. 내가 있었던 상주(尙州 - 현 상주시)만 하여도 잡색군 삼백을 가르쳤는데. 북방전투에 참가했던 애들 백이면 여지없이 무너질게 분명해.”

문종은 왕위에 올라 삼남의 지방군을 개편하였다. 기존에 조선에서 사용한 체계는 육수군(陸守軍)과 기선군(騎船軍)의 조합이었다. 이 중 지방 수령이 조직하여 운영하는 영진군(營鎭軍)은 진에만 머물러 수비를 한다.

그러나 명이 오이라트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진이 무너지고 주변 조직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였기에 체제를 변경하였다. 새로 개편된 체계는 김종서가 북방에서 임관하였을 당시의 저서인 제승방략(制勝方略)의 이름을 따서 제승방략 체제라고 하였다.

“제승방략. 말은 좋은데 실제로 해야지 현실을 알지. 고작 두 달 가르쳐서 뭘 어쩌라고.”

“그 사람들도 생업이 있고 생활이 있는데 무기 쓰는 방법만 알지. 오와 열 맞춰서 대형 유지하게 하는 수준을 바라면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럼 어쩌라고. 농담 안하고 우리 넷이면 삼십 정도는 한 각 이내에 박살낼걸?”

핵심은 간단했다. 외침을 막진 못하더라도 병력을 동원해 적의 진군을 저지하도록 지방 군관 휘하의 잡색군에게 최소한의 훈련도를 유지한다.

저지하거나 돌파 당하거나. 그 이후는 지방의 영진군과 합류한다. 이 과정을 위해 기존에 유명무실했던 잡색군(雜色軍 - 인원만 채우는 군대)을 농한기에 2개월 동안 훈련시킨다.

다만 보총수는 해당 지역에 있는 거점에서 보총을 비롯한 화약무기를 가르치고. 잡색군을 모을 수 없는 농번기에는 훈련도감 후임들과 거점에 있는 병사들은 훈련시킨다.

잡색군은 훈련도감 기준으로 보기엔 형편없지만. 조정에서는 1년 만에 대단한 성과를 일궈냈다면서 칭찬했다. 당장 잡색군은 모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수준인데. 단기간에 창칼을 맞대고 버틸 정도로 수준이 올라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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