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73화 (73/573)

< 2장 12화 - 역사 능멸(凌蔑) (3) >

세 번의 기술이 연속해서 걸린 서산군의 위로 주부투(엘보 드롭)를 천천히 날리니 옆으로 굴러서 피해버리고 바로 마일용과 교대한다. 이어서 마일용은 헛친 주부투로 인해 팔을 감싸쥐며 누워있는 나의 배를 걷어 차버린다.

“들쥐만도 못한 마구니들 같으 칵!”

“네놈이 할 소리더냐!”

마일용이 실수를 했다. 발차기를 천천히 해야 하는데 빨라서 복근이 정강이에 세게 맞았다. 몸을 굽혀서 통증을 참는데. 각본과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 시간을 끌자는 이야기 대로. 마일용은 각본과 약간 달라졌지만 내 양 다리를 잡고 역차던지기를 시도한다.

“어디서 더러운 손으로 미륵을 만지느냐!”

“우어억!”

적당히 몸이 돌아갈 때 쯤. 다리를 요동쳐서 억지로 풀어버리고 천천히 일어난다. 아무리 합을 맞췄다 해도 흥분 때문에 피가 끓는데 고요한 목탁소리와 불경이 들린다.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

흥분하지 말라는 뜻인지. 혼란한 상황에서 불경이라도 외워서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신미대사는 목탁을 두들기며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었다. 아직 시나리오는 조금 남았는데 즉흥적인 시나리오를 넣어보자.

“들리느냐? 내 자리를 훔친 석씨(석가모니)의 경전이 세상에서 떠나가는 소리다!”

“네놈의 명복을 비는 소리겠지!”

“…삼세! 제불! 의반야! 바라밀다…….”

아무리 봐도 열 받은 것 같다. 내가 즉흥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끼워 넣으려 하자 목탁이 부셔져라 세게 두들기면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다시 마일용과 눈짓으로 사인을 주고받아서 최종 단계를 시작했다.

“덤벼봐랐!”

“지금이 자비를 구할 마지막 기회였느니라!”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마일용에게 구반완(句絆腕 -래리어트)의 자세를 취하며 달려든다. 여기서 부터는 마일용이 연기하는 왕건의 공격 차례이다. 그러니 고개를 숙여 어깨로 태클을 건다! 당연히 내가 뒤로 밀려나면서 충격으로 몸을 숙인다.

“네 놈은 지금까지 낮은 자세를 취한 적이 없어! 그게 네놈의 약점이다!”

실제로도 아팠지만 일부러 자세를 더 숙였다. 그렇게 손쉽게 나의 허리를 잡아챈 마일용은 몸을 들어 올려 폭락(爆落 - 파워 밤)을 꽂아 넣는다. 나름 접수를 한다 했는데 더럽게 아프네! 내일 되면 온 몸이 피멍 범벅이 되겠다!

“이 미륵이 너희 마구니들 같이! 바닥을 굴러야 하냔 말이다!”

떨어지는 각부투(脚部投 - 레그 드롭)를 굴러서 회피하면서 다시 일어났는데. 마일용은 초반의 굼뜬 모습을 집어던지고 바로 나에게 따라와서 목을 움켜쥐고 다리를 걸어버린다.

“흙에 묻힐 놈이 바닥을 구르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크악!”

각소(脚掃 - 러시안 레그스윕)를 당해서 넘어진 상태. 궁예의 약점으로 설정한 낮은 자세의 기술 부족을 드러내듯이 당황하는 척을 하며. 뒹굴뒹굴 옆으로 구르면서 어떻게든 일어난다. 마일용이 다시금 달려들었지만 내가 벌떡 일어나서 먼저 잡아챈다.

“그래 미륵이다! 내가 미륵이야! 으하하하하하!”

타이순에게 마음껏 박아 넣었던 폭풍메치기(F-5)를 마일용에게 천천히 먹인다. 두 바퀴를 제자리에서 돌고 날려버리니 쾅 소리가 난다. 떨어지는 방향이 좋았으니 별 문제는 없어 보이고 마일용도 벌떡 일어난다.

“오늘 죽일 놈은 기침을 한 놈! 감히 미륵에게 불경스러운 말을 한 박경휘놈! 그리고 너희 둘이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일세! 궁예! 난 이제 포기하겠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 마음대로 해라! 자 왕 시중! 솟대부수기(파일드라이버)로 네놈의 머리통을 박살내겠다! 마구니는 머리를 부숴야 제 맛이지!”

심판을 담당한 박경휘의 발언에 알게 모르게 동의한 다음. 바닥을 뒹구는 마일용을 잡아들고 다시 파일 드라이버 준비 자세를 취한다. 궁예의 피니쉬 무브는 파일 드라이버지만 이 시대에는 너무나 위험하니 절대 봉인기로 해야지.

“마음대로 하라 했겠다!”

“아악!”

서산군의 손가락이 나의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눈을 스친다. 그렇다 위기에 몰린 궁예는 반칙을 일삼는 최강자다. 그를 이기려면 같이 반칙을 해야지? 나는 마일용을 놓아버리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남이 보기엔 눈이 찔린 것 같으리라.

“네놈도 말하지 않았느냐! 규칙을 마음대로 하라고!”

“이 불경한 것이!”

“마구니 둘은 힘에 부치느냐!”

억지로 눈이 안 보이는 척 일어났는데 앞뒤에서 양구반완(크로스 봄버)이 날아온다. 안전문제 때문에 래리어트는 목을 직격하지 않고 가슴이나 견갑골을 때리는 형태로 변형했다. 그 덕분에 퍼억! 하는 소리가 나면서 호흡이 가빠진다. 더럽게 아프군! 하지만 각본대로라면 휘청거리면서 서 있어야 한다.

“나는 미… 미… 쿨럭! 미륵…….”

“이게 네놈에게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이다!”

서산군이 양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익완투(翼腕投 - 넬슨 슬램)로 몸을 찍어버린다. 이제 이 경기 전용의 피니쉬 무브인 양면주투(兩面肘投 - 더블 엘보 드롭)가 날아온다.

“커억! 내가! 미륵이 될 내가!”

“그래 미륵아. 극락 왕생하거라!”

둘이 내 좌우로 서서 팔뚝을 교차하고 떨어진다. 엘보 드롭이 양쪽에서 떨어지는 거라 팔을 들어 막았는데 엄청나게 아프다. 그렇게 제대로 맞은 척.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조용히 죽은 척 하며 조선 최초의 내수린은 막을 내렸다.

“승자는!”

“그대는 들어가시오. 심판도 필요 없는 난장(亂場)이나 다름이 없었소.”

혹시나 무슨 소리가 나올까 무섭기도 하니까. 궁예의 반칙에 맞서서 반칙을 저질렀다는 전개를 끼워 넣어서 기뻐하지 않는 승자 구도까지 만들었다. 적당히 고통을 삭이다가 벌떡 일어나서 두건을 벗었다. 지금부터 나는 수양대군으로 돌아온 거니까.

“상왕전하! 의관을 갖추고 다시 오겠습니다!”

통증이 올라오긴 하지만 세종대왕님 염려시키면 안 되니 억지로 걸어갔다. 마무리 인사는 반드시 해야 한다. 세종대왕님도 아직 궁궐로 돌아가지 않으셨으니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그렇게 비어있는 방에 들어가서 옷을 입는데 벌써 둔탁한 통증과 멍이 솟아오른다. 이리저리 매만져 봐도 뼈는 안 부러져서 다행이다.

“아내가 한 소리 하겠네.”

옆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서산군도 뭐라 중얼중얼 거리는데 나만큼 부상이 심하겠지. 이미 접수연습이나 기술연습을 할 때 멍이 가끔 들었던 것을 보고 염려가 대부분인 잔소리를 하던 것이 아내다.

“햐 세상에 온몸이 다 멍이야. 안보이지만 등에도 피멍이겠어.”

누가 보면 멍석말이 당한 수준의 몸이다. 사실 프로레슬러들도 그렇고 어느 정도의 지방층이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데. 보디빌더라서 체지방률이 아마 10%정도니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때는 절육(커팅) 이전에 행하라 해야지.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것인가. 왜 방 앞에 모여 있어?”

“대군어른. 몸은 괜찮으십니까?”

“삭신이 쑤시긴 하지만 보름정도 정양하면 충분히 나을 것이네.”

제자들의 존경 반 우려 반 섞인 눈빛을 보면서 태연하게 걸어 나왔는데 엄살 안 부리기를 잘했다. 내가 타고 왔던 꽃가마는 흉물로 보였는지 꽃을 다 뜯어내고 정상적인 가마가 되었고. 신미대사는 유생들의 뒤에서 혼자 서 있었다.

“함부로 이 일에 끌어들여 미안하구려.”

“아닙니다. 대군어른의 몸이 다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선 상왕전하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상왕께서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축제는 머나먼 조선으로 와서 학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위해 한 것이니. 아이들과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요.”

내 제자들은 숭유억불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미대사에게 안 좋은 시선을 보냈다. 그냥 좀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나? 연배로 보면 가장 먼저 말을 걸어야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네. 아이들이 먼저다.

“잘 보았느냐?”

“네!!!!”

“그래. 겁먹지 말거라. 내수린은 이런 것이다. 대총 한에게 행할 때에는 그 자가 너무나 약해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되었기에. 큰 부상이 없이 제압하기 위해서 하였느니라.”

그래 내수린. 정확히는 프로레슬링은 실전성이 적어. 프로레슬링 선수들이야 육체적으로도 완성되었고 각종 기술을 익혀서 이종격투기로 나갈 수 있지. 하지만 난 아니야. 물론 나에게 당한 타이순이 들으면 발광할 소리지만.

“내수린은 역사상의 일화. 영웅들의 일대기를 비롯한 것을 주제로 하여 몸을 뽐내고. 기술을 겨루는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궁예의 최후’ 이었는데. 다들 궁예는 모르고 있지 않느냐?”

“궁예가 그 미친 중이에요?”

“그렇다. 궁예는 역사에 남은 인물이지. 너희들이 학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면 내수린을 보고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돌아보니 공부는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지.

“내수린을 하려면 입신체비를 먼저 하여야 한다. 그런데 입신체비는 여기 있는 네 스승님들도 여러 해를 미리 학업에 열중 하여 서책에 익숙해 진 다음 배웠다.”

“정말이에요?”

“물론이지! 다들 3년마다 치러지는 과거 시험에서 조선 내에서 백 명 이내에 들었지. 자네들 입신체비를 처음 배울 때 어떠했나?”

제자들은 모두 소과에 합격한 자들이다. 대표로 한 명이 나와서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내 제자로 있으면서 사서삼경을 완전히 배운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다르게 말해야지.

“이미 사서삼경을 완전히 떼고. 2년간 대군 어른에게 배워서 간신히 입신체비의 길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이게 입신체비의 본질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몰두한 자들도 적어도 2년간 더 배워서 익히는 것이지. 그러니 너희들이 학업에 열중하지 않는다면 입신체비를 익힐 수는 없다.”

물론 입신체비를 배우는 것은 가능 하지. 그냥 힘 기르는 방법만 싹 뽑아서 가르치면 되는데 아이들의 알맹이를 조선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하나요? 그래서 몇 살이 되면 입신체비를 배울 수 있나요?”

“사람의 뼈가 굳는 나이는 16세다. 하지만 조금 더 빨라도 좋을 것 같으니 15세부터 가벼운 입신체비로 몸을 만드는 것도 좋아 보이는구나. 앞으로 5년간 열심히 배우겠느냐?”

“네!”

“그렇다면 학업에 정진하여야 한다! 말을 타고 노는 것도 좋고! 활을 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너희들이 다시금 그런 소란을 벌이면! 북방의 너희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제자들을 모아놓는다.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이미 이해한 것 같으니 내수린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말을 전해야지.

“입신체비를 충분히 행한 이는 내수린을 잘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하나 빼먹은 것이 있었네.”

“대군어른께서 빼먹은 것이라니요?”

“그것이. 몸에 살이 적으니 충격이 바로 바로 몸속으로 들어와서 문제지. 자네들이 내수린을 할 때는 절육(커팅)하기 이전에 행하게나.”

절육? 중얼거리던 제자들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대군어른! 내수린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희도 늠름한 모습을 뽐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가? 내가 궁예의 최후라는 내수린을 만들어 냈으니 그대들도 만들게. 다만! 내수린을 행하는 것에 있어 배움이 많이 필요하다네. 조만간 나에게 배워보게나.”

아마 접수나 타격개념을 가르치는 것만 해도 한 달은 걸리겠지. 그래도 나 혼자서 몸을 상하지 않으니 좋구나. 이제 오늘 느닷없이 피해를 입은 신미대사가 남았다.

“대사께 무례하게 굴어서 낯을 들 면목이 없소.”

“아닙니다. 대군어른께서 보여주신 궁예의 모습은 저희에게 전해지는 궁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알겠소. 내 앞으로 다른 이들에게 반드시 말해주겠소. 엉뚱한 불자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말라는 말이 아니오.”

신미대사는 똥 씹은 표정을 짓다가 다시 엄숙하게 합장을 하고 물러났다. 아무래도 원 역사대로 원각사는 짓지 못한다 해도 신미대사에게 뭔가를 해줘야지. 불자를 위한 입신체비는 어떨까?

모든 일이 끝나고. 세종대왕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세종대왕님은 아직도 효령대군과 함께 술을 드시고 계셨는데. 나를 보더니만 염려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신다.

“그렇게 바닥에 메쳐지고 맞았는데. 몸은 괜찮더냐.”

“다들 몸을 다치지 않게 많이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상하지 않게 의원에 들리어라. 네 몸은 너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님도 별 말은 없는 것 같다. 전신 타박상 정도면 말 타다가 넘어진 것에 비하면 아주 경미하긴 하지. 그 말대로 의원에 들려서 타박상 약을 먹어야 쓰겠네.

“아바마마께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네 몸을 믿었느니라. 어느 누가 너의 근골을 뚫고 맨손으로 상처를 쉬이 입히겠느냐. 그건 그렇고 미친 승려 궁예라니. 그의 행적을 어디서 본 것이냐.”

왜 이런 질문을? 아 아직 고려사 편찬이 안 되었나? 한 구석에 쌓여있는 고려사 초본을 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다.

“일전에 보아왔던 삼국사기와 각종 야사를 적당히 섞었습니다.”

“하하 그렇구나. 하긴 삼국사기에 불경을 새로 썼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승려 설총을 죽였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그런데 그놈의 불경 구절을 왜 궁예가 했던 말에 넣느냐?”

“흥을 돋우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아 이거 느낌이 안 좋아. 하고 세종대왕님을 보는데 이거 훈민정음을 시킬 때의 그 표정이다. 웃고는 있지만 날 위해 일을 하겠지? 하는 표정.

“보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금 편찬중인 고려사에 들어가지 못한 내용이기도 하며. 아무리 보아도 네가 따라했던 궁예의 모습은 너무나 과장된 면이 많구나.”

“아, 그것이 말이옵니다.”

그렇지. 태조 왕건 드라마에 나오는 궁예는 정사와 야사 그리고 소설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작품을 다시금 드라마로 만든 녀석이니까! 자칭 미륵과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은 허용범위 안이다.

그러나 마구니라고 타인을 표현하는 것이나. 옴 마니 반메 훔 같은 왜곡된 불경이나. 석가모니가 자신의 자리를 훔친 도적이라는 발언은 전부 야사 내지는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네가 불씨(불교의 멸칭)의 가르침을 듣던 듣지 않던 그것은 네가 행하는 일이니 신경을 쓰진 않겠다. 하지만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훗날 잘못된 것이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들을 진실인 양 포장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잘못된 일이다.”

“소자가 아직도 미욱하기에 아바마마께 큰 심려를 끼쳤습니다.”

“알면 되었다. 불씨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궁예의 패악이 널리 퍼진 것은 좋지만. 궁예가 저지르지 않은 일로 불씨들이 한가지인 양 모욕을 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 멀리서 아직도 염불을 외우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신미대사를 위한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알려면 똑바로 알라는. 헛똑똑이인 나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돌아가서 네가 어지럽힌 것을 가만히 생각하며 반성해라. 몸이 낫는 대로 주상전하께 말씀을 드리고 고려사의 집필을 네 손으로 마무리 짓거라.”

“아바마마께 심려를 끼쳐 드려 제가 불효막심함이 이를 데 없습니다.”

“네가 저지른 것은 불효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고. 그리고 효령대군이 할 말이 있다더구나.”

고개를 들어 세종대왕님을 보고 효령대군을 보자 효령대군의 그 인자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걸 전에 본 적이 있나? 없는 것 같은데?

“유야! 이 백부가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느냐? 네가 한식산(寒食散 - 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마약. 수은과 유황 등의 유독물질이 들어있다) 이라도 한 사발 해버린 줄 알았다!

“죄송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불러온 신미를 그렇게 끌어들이려 하다니! 이런 짓은 절대로 하지 말거라! 너랑 네 제자들을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로 행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신미대사님 계신 절 빵빵하게 보수하라는 말이죠? 라고 답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나온 말이 더 가관이다.

“그러니까 네 제자들도 많은데 좀 더 멋진 것도 만들어 봐라! 애꿎은 불자들 끌어들이지 말고! 내가 본 서책만 해도 좋은 것 많아!”

아 이런 젠장! 다음 시나리오는 뭐 황산벌이라도 해야 하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