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10화 - 역사 능멸(凌蔑) (1) >
육조 관리들을 대상으로 입신체비의 정해진 시간은 반시진이다. 그러나 몸을 풀기 위한 첫 운동과 마무리 운동이 필수적이라 실제로는 한각 정도의 시간을 더 늦게 퇴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시하는 사헌부 관리들도 이 시간만큼은 적당히 봐준다. 마무리 운동시간은 대충 동작을 따라하는 잡담 시간에 가깝게 변질되었고. 내가 이걸 방임하는 이유도 있었다.
“이보게나. 그 말 들었나? 주상전하께서 녹봉을 인상하신다 하시더군.”
“녹봉을? 아니 얼마나?”
“모든 관료들에게 매년 5푼씩 인상하신다는 명이시네.”
이조 판서도 빨리 퇴근하고 싶은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 운동을 따라한다. 관원들에게서 생생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으니 내가 방임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호조에서는 ‘삼의 소출이 좋다.’ 라는 정보를 들었고. 형조에서는 ‘노비종부법의 시행을 미뤄야 한다.’ 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관여하지 않은 일이라서 궁금함이 나날이 커져 가는데. 형님이 세종대왕님이 계시는 수강궁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마침 입신체비를 하지 않는 날이기에 기꺼이 궁궐로 향했다.
“지금 저 가마는 황희 대감이 자주 쓰는 가마가 아닌가?”
스쳐지나가는 가마에서 깊은 사직의 욕구가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황희가 수강궁에 들린단 말인가? 생각을 제쳐두고 궁궐로 들어가니 세종대왕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아바마마.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주상전하께서 배려하신 덕분에 평안하게 지내고 있노라.”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평안하지 않은 표정인데요. 당장 형조 참판으로 있는 사육신 출신 김문기(金文起)에다가. 이조에 근무 중인 생육신 출신의 이맹전(李孟專)을 비롯한 관료 여럿이 일을 마치고 퇴궐하고 있었다. 경국대전 편찬 관련으로 끌려온 것이 분명하다.
“이곳이나 궁궐이나 서책과 씨름하기엔 마찬가지 같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옥체를 보전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입신체비는 쉬지 않고 있으며. 요즈음 서책을 읽는 시간도 줄이고 있다.”
“알겠사옵니다.”
자세히 보니 왕위를 내려놓고 홀가분한지 오히려 주름살이 줄어들고 있었다. 세종대왕님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가셨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하지 않더냐.”
“궁금하기에 아바마마를 만나 뵈려 한 것입니다.”
형님도 들어오신다. 오랜 간만에 부자가 모여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주안상이 차려지고 청주가 잔에 채워진다.
“네 덕분에 일을 단번에 몰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서얼허통과 노비종부법 그리고 호구조사에 어떠한 연관이 있습니까. 저는 아둔하여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러자 형님은 웃으면서 말씀을 시작했다.
“유가 모른다니 내가 수를 잘 썼나보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아바마마?”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셨으니 저도 놀라울 뿐입니다.”
“유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맨 아래부터 거꾸로 생각해 보거라.”
어디 한번 생각해보자. 거꾸로 돌리면? 인삼 재배, 녹봉 인상, 호구 조사, 노비종부법 그리고 서얼허통? 인삼재배로 돈 늘어나고. 녹봉 올라가고. 호구 조사하면서. 잠깐 이거? 그렇게 눈을 마주치자 형님이 웃는다. 이제야 알았냐? 라는 표정이다.
“알아차렸구나. 역시 내 동생이로다.”
“모든 일에 관여된 자들도 가까스로 알아차릴 것인데. 어떻게 신료들이 깨달을 방법이 있습니까. 전하께서 일을 행하심은 하나로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늦게 말을 꺼낸 녹봉 인상과 인구 조사를 먼저 행하였는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신료들에게는 중요한 일부터 말한 것이고. 실제로는 가장 늦게 말한 것부터 순서대로 진행한다. 우선 녹봉 인상? 내가 가져온 서적에 있는 재배법을 적용한 인삼으로 해결 하고도 남는다. 인구 조사? 거기에 들어가는 자금과 예산은 실제로는 인삼 수출금액으로 해결하고.
“그렇다. 노비에 대한 조사도 허투루 행한 것이 아니다. 훈련도감 초모를 핑계 삼아 친국(親鞫)을 행하였느니라. 다들 훈련도감에 관심을 쏟는다 생각하겠지.”
“태종 대왕께서 노비종부법을 시행할 적에 일어났던 폐단은 일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 전세를 납부하고 군역을 담당하는 양인이 늘어나야 하니 복잡한 수를 썼느니라.”
형님을 보면서 소름이 돋네. 본래 노비는 인구수에 산정하지도 않고 총 수만 기입하는 것이 정상이다. 세금 납부 대상이 아니니까 그렇지. 먼저 행하는 인구 조사에 노비를 기입하게 만든 것은 선대에 있었던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예전 태종 시기에 노비종부법을 시행했을 때 이런 반발이 있었다.
‘법을 시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노(公奴 - 공노비) 여성들이 아무 양인 남자와 붙어 자식을 낳아 남의 집에 보내려 하니. 이러다가는 관아의 노비가 없어질 지경입니다.’
‘간혹 사특한 생각을 가진 자들은 노비의 수를 불리고자 자신의 노비를 시켜 양인 여성을 겁탈하니 그 패악이 이루 말할 곳이 없습니다.’
‘종부법으로 인하여 노비의 수가 불어나지 않으니. 노비 여인을 만들고자 많은 채무를 부과하여 멀쩡한 양인의 여식을 노비로 삼는 일이 빈번합니다.’
세종대왕님의 치세까지 내려오자. 폐단을 감내하느니 그냥 노비종모법을 시행해 버렸다. 역사에 남을 성군도 철저히 준비하지 않고는 사람의 욕심을 이길 법이 없었다. 결국 예외 조항 몇 가지만 남기고 노비종모법이 적용되었다.
세조는 야심차게 종부법을 내세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종천법으로 일천즉천(一賤則賤 - 한쪽이 노비라면 자식도 노비)의 법칙까지 더해져 버려서 유명무실 해졌다. 그런데 형님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 형님은 태종보다 왕권이 강하다. 엄청난 정치능력과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성계를 한양으로 쫒아버리고. 그 이후에는 신하들을 정치력으로 숙청한 이방원과 달리. 형님은 세자 시절부터 병기 개발로 성과를 보이고. 최고의 충성도를 자랑하는 정예병 훈련도감을 갖추고 있다.
거기다가 북방대전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고. 즉위하자마자 2만이 넘는 여진족들을 복속시켜 버렸으며. 타이순 칸과 유리한 협정도 실행했다. 북방전쟁에서 힘쓴 김종서를 비롯한 대신들은 그 이후로 모두 형님의 편이다. 반발하는 신하들? 반발을 해 봤자 명분조차 가지지 못한다.
“노비에 대한 호적도 있다면 그 변화 유무를 통해 태종 대왕의 시기에 있던 폐단을 알아내어 엄벌에 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튼 짓을 못하게 경국대전에는 소유하고 있는 노비에 대한 사항을 반드시 넣을 것이다. 이는 전하의 뜻이기도 하지.”
“아바마마의 뜻이 그렇다면 전하께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법을 어긴 자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세종대왕님과 형님은 웃으면서 동시에 말했다.
“전가사변(全家徙邊 - 법을 어긴 이에 대한 처벌로 거주지를 강제로 이주함. 보통 북방을 비롯한 인구가 적은 개척지대.) 이니라. 북방이 안정화 된 다음에는 태종 대왕께서 시행하시지 못한 호패법을 도입할 것이다.”
결국 일의 진행은 이렇다. 중요하다 말한 일이 가장 나중에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생각 없이 뱉은 말이 가장 먼저 시행된다. 보통 사람은 알아차리기도 힘든 방식이다.
인삼 판매 자금으로 녹봉을 올린다. 녹봉을 올리면서 호구 조사를 철저히 진행한다. 아마 호구 조사를 정확히 완성한 지역부터 녹봉을 올리겠지? 그 다음에는 호구 조사를 바탕으로 노비종부법의 폐단을 최소화한다. 노비종부법을 어기려 한 자는 북방으로 전가사변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전가사변으로 개척한 곳에 서얼들이 가서 일을 돕는다.
“이제 내가 따라갈 방법도 없어지네. 얼마나 머리가 좋은 거야?”
가마를 타고 돌아오면서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였다면 무식하게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간을 봤겠지. 그 수준이 나에게 딱 맞으니까.
“세상의 어느 누가 중점적으로 밀어붙인 일이 가장 나중에 행할 것이고. 분노하여 실행하고자 하는 사소한 것이 핵심적인 요소가 될 거라 생각하겠어?”
결국 나에게는 쇠질과 근육이 답이다. 어서 제자를 만들어야지. 하는데 배재당에서는 다시금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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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운동 배우고 싶습니다!”
“아직 뼈가 굳지 않았다니까.”
여섯 달이 지나자. 여진족 아이들은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선의 말도 어느 정도는 배우고 지겨운 수업시간의 연속이다. 가끔 말도 타고 활도 쏜다 하지만 생활 풍습이 너무나 다른 것이 문제였다.
“아니 이 녀석 어디에 숨어있지?”
“저기! 저 말 탄 녀석 어른이 아니야! 어서 쫒아가서 잡아!”
저 멀리서 말을 훔쳐 쏜살같이 달려가는 여진족 아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온 덕분에 열 살짜리 아이가 조선의 어중간한 병사만큼 말을 잘 몰았고. 추격전은 한나절 간 이어졌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나는 피해보고를 듣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섯이 도망쳐서. 짓밟은 논밭이 다 합쳐서 두 결. 훔친 말이 열두 마리, 피해를 입은 백성이 스물. 이게 애들이 한 짓이라고?”
“족장의 아이들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젠장! 지들이 귀한 손님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나 보구려. 아이들은 창고에 가뒀다 하였소?”
어떻게 교화 하냐고 한숨을 쉬는 김반의 보고를 듣고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불만을 한번 풀어줘야지 답이 있나? 그렇게 마일용과 서산군을 모이게 하였다.
“오늘 그대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배재당의 여진족 아이들의 불만이 높아져가고 있어서 그러네.”
“네? 종형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군어른. 그게 뭐 문제가 됩니까?”
짜게 식은 표정을 짓는 두 사람. 둘 다 사태의 심각성을 별로 모르고 있는데. 스트레스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더 이상 내버려두면 그냥 도망쳐서 북방까지 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라네. 이 아이들에게 유학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다 배우게 하여 종래에는 북방에 입조한 여진족들의 족장으로 만들 생각이니까.”
“종형. 그러면 너무 강해지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 문제가 아니라네. 그냥 간단히 말하지. 그대들 내수린(耐守躪) 이라는 것 아나?”
마일용이 손을 번쩍 든다.
“인내하고 지키며 짓밟는다! 달자들의 왕 대총 한을 쓰러트린 무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수린은 일종의 남사당놀이의 재주 같은 것이고. 대총 한을 쓰러트릴 때는 인상 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였지. 자네 내수린의 규칙을 아나?”
“서로 맞잡고 상대해 들어 메치고, 내리찍고, 다시 일어서서 싸우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끼리 내수린을 하면 어떻게 되겠나.”
서로 마주본다. 마일용은 삼대 운동 1000근이 조금 넘고 서산군은 스모데드를 비롯한 약간의 꼼수를 부려야 1000근을 든다.
“거 그냥 사람이 날아다니고 던져지고 난리가 나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장엄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일세. 우람한 몸을 자랑하며. 빼어난 근육을 자랑하며. 서로 합을 맞추어 이야기를 육체로 보여주는 것이 내수린의 본 목적이라네.”
서산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형께서 어찌하여 내수린을 말씀 하시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불만을 조금 덜어내고 여기 있을 이유를 만들 것이네. 그 아이들과 그들의 아비는 대총 한을 두들겨 패버린 나와 나의 제자들이 가르친다는 말에 입조의 뜻을 정한 것이니. 어찌 보면 남사당패가 된 것 같군.”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라 하심은 어느 것을 하시려 합니까?”
이야기라고 하니까 뭐 적당한 시나리오 있을까. 내가 너무 강한데? 마치 어퍼테이커가 생각나는 신체 차이다. 마일용도 서산군도 한가락 하지만 내 몸이. 잠깐 어퍼테이커?
“이야기라뇨. 아니 무슨 삼국지에 나오는 유관장 삼형제와 여포의 대결을 표현할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종형과 마일용은 알지만 저는 내수린이 무엇인지 여기서 처음 들었습니다.”
“나 혼자서 자네들을 상대하지. 대신에 합을 맞춰야 하네.”
“네?”
아니 뭐 구도는 얼추 비슷하지. 1:2 태그매치. 강력한 악역을 상대로 선역 두 명이 서로 힘을 합쳐서 쓰러트리는 눈물겨운 승리의 이야기. 하지만 삼국지도, 봉신연의도, 수호지도 나오지 않은 조선시대니까 상상속의 이야기는 제한조건이 너무 많지.
“삼국지만 하여도 수많은 전투가 얼마나 많습니까!”
“함부로 삼국지를 논하다가는 뭔 일이 날지 모르네. 차라리 이건 어떤가.”
시나리오를 이야기 했더니. 다들 날 째려보면서 사람도 아니라고 보네. 대충 ‘아니 이게 사람이야?’ 하는 눈빛이다
“종형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서산군 어른 전혀 위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괜찮네. 내가 아주 잘 할 수 있다네. 이제 기본 개념을 알려주도록 하겠네.”
타이순이랑 했던 것은 내수린이 아니고 그냥 근력차를 이용한 일방적 폭력이었지. 그런데 여기서는 미래의 인재들을 굴리는 거니까 최대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혹시나 몰라서 세종대왕님에게 간단히 정리하여 물어봤다. 배재당에서 잔치를 여는데 내수린을 행할 것이다. 내용이 조금 불손할 지도 모르지만 한번 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고. 그러자 너무 심하게만 하지 말라는 답변을 주셨다.
“역사 능멸(凌蔑) 내수린. 과연 조선에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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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되었다. 관료들은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도 있었으며. 집집마다 음식을 장만하여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여기 배재당에도 시기에 맞게 잔치가 벌어졌다.
“상왕전하께서 오셨습니다!”
가마를 타고 세종대왕이 들어왔다. 세종대왕은 줄줄이 서있는 여진족 아이들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 아이들을 온전히 길러내는 것이 아들이자 전하의 뜻이다.
“아이들은 나라의 보배이니 아끼고 키워야 할 것이다. 그간 배움이 어떠하였느냐?”
“아… 재미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구나. 당연하지. 그 나이에는 다들 그런 법이다. 오늘이라도 실컷 즐겨야 하지 않겠느냐. 수양대군이 여기에 와서 내수린을 보여준다 하더구나.”
왕의 자리에 있었다면 엄히 꾸짖었을 것이지만. 양위를 마친 뒤여서 마음이 가뿐했다. 저 뒤에서 자신의 형인 효령대군이 승려 한명과 들어왔다.
“상왕전하를 뵙습니다.”
“어허. 한가위인데 왜 이리 격식을 차리시오.”
여진족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둘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지만. 곧 잔치의 분위기에 휩쓸렸다. 한쪽에는 주안상이 마련되어 세종대왕과 효령대군이 잔을 마주했다.
마당 한 귀퉁이 에서는 내수린을 위한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내리치고 방방 뛰면서 안전을 확인했다. 저 멀리서 수양대군의 제자들도 술을 마시며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유가 오늘 재미있는 것을 보여준다 하였는데. 무엇이라 예상 하시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상왕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내수린이라 하였는데 그걸로 뭘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양녕대군도 이 자리에 모이라 하였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 하여 거절했다던가. 동생들은 멀쩡한데 큰 형이 벌써 아프다니. 헌릉에 계신 분이 보면 노하겠지. 그런 말을 나누면서 잔이 계속 오갔다. 둘 다 술이 약한 편이지만 청주는 술술 넘어갔다.
“내수린이라? 대총 한을 쓰러트린 걸로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말하기를. 모두 다 연극이며 사당패의 공연과 같다. 이렇게 전하던데 무슨 뜻인지는 도저히 알지 못하니 답답하군.”
형제간에 술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저 멀리서 거대한 꽃가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사람 아니 근육덩어리를 본 세종대왕은 입 안에 들어있던 술을 뿜어버렸다.
“푸웁!”
“으에엑켁! 저게 뭐야!”
먹물로 새카맣게 물들인 꽃을 붙인 가마 위에는 노란색 법의(法衣)를 슬쩍 걸친. 근육을 드러낸 수양대군이 노란색 두건을 쓰고. 안대를 낀 채 들어오고 있었다. 효령대군은 그 꼴을 보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는지 입에서 신음성과 함께 말을 했다.
“미륵불(彌勒佛) 궁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만큼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불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자들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세종대왕이 무슨 망측한 짓이냐고 소리 치려다가 참았다. 둘째 녀석이 생각이 있겠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움직일 녀석이 절대 아니다.
“저게 무엇입니까? 상왕께서는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유가 조금 과하게 행동하는 것 같구려.”
무슨 생각이 있긴 하겠는데. 정상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꾸지람을 할 나이는 지났고 알아서 수준을 조절하겠지. 아니 조절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