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8화 - 제도 정비(1) >
1451년 5월. 수강궁에는 세종대왕이 마당에 나와 한숨을 쉬고 있었다. 33년의 권좌를 누린 세종대왕은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별궁인 수강궁(壽康宮 - 현 창경궁 터. 당시에는 창경궁이 없었다.)에 머무르고 있었다.
멀리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현재 왕인 문종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상왕은 권좌에서 물러난 왕이기에 현재의 왕 보다는 직급이 낮다. 그러나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전하께서 이렇게 찾아뵈시니 한적히 지내는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바마마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연못 위에 있던 왜가리가 날아오르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문종은 고개를 돌리지 못하였다. 상왕이 명과 협상을 통해 얻어낸 영토를 관리하기도 힘에 부치니 부끄러울 뿐이었다.
“전하께서 야인들을 다루시는 것에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국의 물산이 귀하고 사람이 적으니. 요순(요임금과 순임금. 천하의 명군을 뜻함)이라 한들 힘이 부칠 것입니다.”
“그러한들 앞으로 10년은 북방이 폭력장(暴力場 - 뒤죽박죽이 된 곳)이나 다름이 없을 겁니다.”
“하오나 자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아들이 행한 일을 듣고 감탄할 뿐이었다. 군권을 아직도 자신이 쥐고 있었으나. 자신이 다 움켜쥐지 못한 작은 것으로도 너무나 많은 일을 했으니까. 그렇게나 쉽게 2만이 넘는 야인을 손에 거머쥐다니.
“그저 이 별궁에서 허송세월 한 것이 아닙니다. 아국에는 악법(惡法)이 3가지 있습니다. 경국대전을 만들기 이전에 시급히 손을 봐야 할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 악법이라 하심은 혹형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세종대왕의 고개가 저어졌다. 분명 명에서 따온 혹형은 사라져야 할 요소가 맞다. 그러나 자신도 일일이 형을 감면하자니 앞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일이다.
“아닙니다. 사람의 앞길을 막는 법.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법이 가장 악법입니다.”
“그것은 태종 대왕께서 만드신 법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또한 제가 세운 법이 두 개나 있습니다. 상황을 보아서 폐지하셔도 무방할 것이며 저 또한 돕겠습니다.”
태종이 만든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이 먼저 해결될 일이고. 세종대왕이 만든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은 그 다음. 마지막으로 .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이 없어져야 할 법이었다. 그러나 앞길이 막막하였다.
“전하께서는 자전(慈殿 - 대비. 여기서는 소헌왕후)의 가문인 청송 심 씨를 복권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과정이 신속하시고 대응이 영민하시니 제가 감탄할 노릇이었습니다.”
“제 어마마마 되시는 분에게 효를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종대왕은 안타깝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행한 것이니 자신이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에게 양위하고 두 달이 지났다. 청송 심 씨의 복권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신료들도 입을 모아 칭송하였다. 다시금 침묵이 감돌고 세종의 입이 열렸다.
“유에게 어느 법이 가장 악법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시는 자는. 수양대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수양대군이 말하기를. ‘화분에 있는 난초도 어느 잎이나 햇빛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서얼의 충성도 적자와 다를 바가 없다.’ 라고 답했습니다.”
비유를 듣자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의 아래에 마일용이라는 자가 있었고. 그의 재능이 뛰어나지만 서자라고 했었지. 재능이 있는 자이지만 서얼의 신분을 이기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했다던데. 이렇게 명쾌히 표현하다니.
“태종 대왕께서 혼란을 잠재우고자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군자의 난초라니. 참으로 좋은 비유입니다. 그렇다 한들 탐득무염(貪得無饜 -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의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니 다들 기피할게 분명합니다.”
다시금 침묵이 이어진다. 당장 적서차별이 금지되고. 적자나 서자나 같이 관직에 올라간다면? 좋아하는 올바른 자들도 있지만 태반은 자신의 적자들이 다른 이들의 ‘서자’와 경쟁을 벌일 것을 두려워 할 것이다.
“계기가 필요합니다. 누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낼 겁니까? 아바마마께서는 혜안이 있으십니까?”
“노신 황희가 있지 않습니까.”
“잠시만. 황희라 함은 아직도 일을 하는 겁니까?”
“조회가 끝나면 사가에 들어가기 전. 수강궁으로 들어와 일을 합니다. 그에게 이미 언질을 해 놓았지요. 적서차별을 금하려 하는데 그대의 입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입니다.”
세자시절의 일이었다. 황희의 서자라 하여 조중생(趙仲生)이라는 자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황중생(黃仲生)이지만. 그 자는 금잔과 재물을 궁궐에서 훔쳐 헛되이 썼고. 재물을 훔쳐서 같이 쓴 자들 중에는 황희의 아들 황보신(黃保身)도 끼어있었다.
결국 황희는 황중생을 호적에서 제명하고. 어디서 주워 기른 아이라고 변명하며 성을 강제로 조 씨로 바꿔버렸으며. 온갖 고신(고문)을 당한 끝에 조중생은 사형. 황보신은 장형과 귀양형. 황희는 사직을 하려다가 사직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이 11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황희는 이제 기군망상죄(欺君罔上 - 임금을 속여 넘긴 죄. 최대 사형)를 범하게 되는 것이군요. 아바마마께서는 이미 황희와 이야기를 끝내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이 얕은 수를 깊게 사용해 주십시오.”
수강궁에서 돌아온 문종은 소름이 올라왔다. 현재 직급이나 경력 모두 황희를 뛰어넘을 인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명신 김종서마저도 그의 앞에서는 하룻강아지니까. 노신중의 노신이고. 범죄의 집합체였다.
다음날. 궁궐에서는 간만에 입궐한 황희가 90세의 노구를 이끌고 불꽃같은 말을 토해냈다. 모두를 불살라버리고 자신도 불태우려는 불꽃 그 자체였다.
“신 황희 이제 아흔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상왕께 범한 크나큰 대죄를 뉘우치고 싶사오니 청을 받아주시옵소서.”
“알겠소. 대체 어떤 대죄이기에 이렇게 노구를 이끌고 직접 나오신 것이오? 몸이 상할까 염려되니 일어서시구려.”
꿀꺽 하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김종서의 목에서 들려왔다. 우의정 김종서조차도 황희의 앞에서는 몸을 가다듬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만큼 황희는 걸물이었으며. 그에 비례한 범죄도 많았다.
“전하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죄인이 노구를 편히 하겠습니다.”
천천히 읍소(泣訴 - 눈물을 흘리며 호소함)를 그친 황희는 앉아서 자신의 잘못을 고변하였다.
“11년 전. 전하께서 아직 동궁(세자의 거처)에 계실 때. 저의 서자라 하여 황중생을 동궁으로 들인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소. 조중생 그 자를 말하는 것이 맞소? 처음에는 사리가 밝고 영민하다 여겼으나 정이 많은 그대가 서자로 입적(入籍 - 호적에 넣다)시켰고. 그 은혜를 모르고 방만하게 굴어 황보신과 함께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 알고 있소.”
왕이 되면서 늘어나는 것은 거짓인가. 문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황희 또한 억지로 비통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아니옵니다. 황중생 그 아이는 제 서자가 맞사옵니다.”
“지금 뭐라 하였소?”
대전 안에 열기가 확 피어올랐다. 분명 황희가 수습을 위하여 서자가 아닌 입적한 아이라 거짓을 하였고. 그것을 상왕이 받아들인 것이다. 일종의 사법 거래였다.
“황중생은 제 서자이옵니다. 그 아이는 조중생이 아니옵고 제 피가 흐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기군망상의 죄를 범하였소!”
“그 아이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허송세월을 하며 재산을 갉아먹는 일에 여념이 없었으며. 기껏 동궁에 두어도 제 형들과 작당을 하였으니 그랬지요. 그러나 이제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허송세월을 하고 재산을 갉아먹었다 하면 진즉에 내칠 것을 후회하였단 말이오?”
황희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린다. 거짓 눈물인지 진짜 눈물인지는 본인만이 알리라.
“그 아이가 문신이 될 방법이 없어서. 저는 잡학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재능을 잃고 허송세월을 하였습니다. 방법이 없어 재산을 관리하게 하였으나 그 또한 재능이 부족하였습니다.”
“안타까울 뿐이오. 태종 대왕께서 나라의 질서를 명확히 세우기 위해 법으로 정하신 것이나 분명 잘못된 면도 있는 것이니.”
“이 노구는 이제 죽을 날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 거짓을 고변하오니 부디 적서에 대한 차별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황희가 고개를 내려 다시 절을 하자. 문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알겠소. 하지만 그대가 기군망상의 죄를 범한 분은 수강궁에 계시는 상왕께 범한 것이오. 퇴궐하여 조만간 상왕께 잘못을 청하시오.”
“서… 성…….”
이야기가 무엇인가 다른데? 여기서 기군망상의 죄를 범할 수 없다고 자신의 사직을 종용하는 결말이 아니었는가? 황희의 눈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조중생 아니 황중생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떠오르는구려. 죄가 크다 한들 그 정을 보아서 그대를 벌하지 않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결국 황희의 사직은 이번에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황희가 물러나고 문종은 고뇌하는 척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논의의 주제가 무엇인지 다들 알게 되었으니 입이 열릴 차례다.
“그대들도 무엇인가 할 말이 있을 터인데.”
“신 좌의정 황보인(皇甫仁) 아뢰옵니다. 서얼은 신분이 천하고 성품이 용렬하오니 구분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적자와 서자간의 명확한 구분이 있어야 이런 천한 이가 적자를 헛되이 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계속 하시오.”
“호조 판서 윤형(尹炯) 아뢰옵니다. 적서간의 분수는 엄한 것이며 대부분 작은 관직은 허가하되 높은 관직에는 제수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상왕께서는 덕이 있으시며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도량이 있으시니 은혜가 지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복생을 판사(判軍資監事 - 판군자감사. 군기감의 정3품) 임명하였습니다.”
윤형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입에서는 문종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하복생은 서자로 은덕을 입었음에도 행실이 불순하였습니다. 친인척과 노비를 다투고. 적모(친어머니. 여기서는 본처)를 의모(양어머니)라 일컬어 강상죄(綱常罪 - 패륜죄)를 저질렀기에 삭직을 당하고 부처(付處 - 인근으로 유배 보내는 낮은 유배형)를 행하였습니다.”
“알겠소이다.”
유교적 논리 이전에 이해득실의 논리였다. 관직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며 높은 관직에 올라갈 자는 더더욱 한정되어 있다. 대소신료 대부분은 태종이 제시한 서얼금고법을 정적 정도전과 후처 소생인 이방석에 대한 견제로 알고는 있었고 좋다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유학은 이 나라의 명분이자 주 학문이며.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종과 세종대왕 둘 다 이러한 반대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뜻을 굽히기엔 난초의 잎은 너무나 많았다.
“본디 서얼이 어떻게 나는 것이오?”
“천한 신분에서 납니다.”
“그 천한 신분이 상전을 거부할 수 있겠소?”
“없습니다. 그러나 구분이 필요합니다.”
문종은 조용히 일어나 대전을 둘러보았다. 신료들 모두가 여색을 탐하는 자들에 의해 서얼이 태어남은 알고 있었으니 약간 위축되어 있었다.
“그렇소. 분명 구분은 필요하지. 누군가가 말하더이다. 서자나 얼자나 한 뿌리에서 난 난초의 잎이고. 다들 해를 향해 뻗어나간다고. 그러니 뜻을 가진 서자와 얼자가 능력이 있다면. 험난한 길이라도 꿋꿋이 걸어갈 것이 아니겠소.”
“옳은 말씀입니다.”
“서자가 벼슬길에 나아가 과거를 자유롭게 보려면. 함길도와 평안도 일대에 여진족들이 들어온 곳에서 3년 이상을 엄동설한에 시달리고 험한 야인들을 교화하는데 공을 들여야 할 것이오. 얼자는 출신이 좀 더 천하니 5년을 있어야 하고.”
신료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저러한 조건이면 어느 누구도 쉽사리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리라. 당장 함길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만 해도 강을 끼고 여진족들이 서로 교전을 벌인다는 말이었으니.
“한 가지 길을 더 열어줄 것이오. 효에 대한 가르침인 입신체비를 배우는 것이오.”
“입신체비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헛되이 배우는 시늉을 하면 아니 되오. 조만간 입신체비서의 내용을 정리하여 서책을 낼 것이오. 이를 잡과(雜科 - 외교관, 천문관, 법관 등을 양성하는 과거 제도)에 추가할 것이고. 초시에 합격하면 관직의 길이 열릴 것이오.”
입신체비라? 어차피 몸을 만드는 일이고 그 입신체비를 배우는 이들이 제법 학식을 배운다 하나 당장 몸을 험하게 놀리는 것이 먼저인데 어떻게 관직을 다시 나설 생각을 하겠는가.
“상세는 조만간 결정하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이 두 개의 방안을 적용하여 서얼들에게 벼슬길을 열어주도록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적서간의 질서를 뒤집는 이는 즉각 강상죄를 적용하여 엄벌에 처할 것이라 다시금 명시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문종은 다시 어좌에 앉으면서 입 꼬리를 억지로 내렸다. 입신체비가 그렇게 허투루 보인단 말인가. 당장 김반이 올린 문서에는 ‘휘하에 있는 자들이 학식이 뛰어나니 말년의 복이 따로 없습니다.’ 라는 말이 있었으니.
입신체비는 이미 거의 완성된 학문이었다. 시문이나 문예 같은 추상적인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구체적이고 확고한 제반 지식을 갖추는 속도가 엄청났다. 특히 근면육연화기억술인가? 그건 체험해보니 정말 대단한 방법이었다.
‘아마 30년, 아니 20년만 지나면 다들 입신체비를 하지 않고서는 경쟁조차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입신체비를 배운 이는 바로 소과 정도는 합격하겠지.’
그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입신체비를 배우며 기본 지식을 닦아나가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리라. 문종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적서와 관련된 것이어서 생각이 들었소.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 - 노비가 자식을 낳을 경우 신분은 어미를 따른다)을 노비종부법(신분을 아비를 따른다)으로 변경하여야 하지 않겠소.”
“갑자기 제도를 변경하면 혼란이 뒤따를 것입니다.”
“얼자에게 험한 길을 열었는데. 길을 시도해볼 이라도 많이 만드는게 좋아 보이는데.”
문종의 표정을 본 대신들은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서얼금고법을 폐지하면서 한번 왕의 뜻을 막아냈다면. 노비종부법 정도야 왕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적절해 보였으니.
그렇게 조선의 악법 중 2개가 폐지되었다. 그리고 수강궁으로 돌아간 황희는 엎드려 애걸복걸 하며 세종대왕에게 사직을 청하였으나 여전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는 새 법전을 만드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자 같소.’
그랬다. 황희는 세종대왕이 경국대전을 편찬하는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범죄 사례에 대한 산 증인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