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3화 - 근육세뇌술(2) >
그런데 아구지 이양반 표정이 말 그대로 멍하다. 지금 훌륭하다는 말이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가나? 너 아들은 조선에서 관료가 된다고. 그런데 왜 이러지? 아 맞아! 강한 힘이 문제가 아니고 주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
“훌륭하다고요?”
상상이 안가는 일이니 함부로 판단을 못 하는 것이 분명하다. 변방에서 하루하루를 위기 속에서 살고 있고. 부족민들에서 글을 아는 자는 손을 꼽으리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아구지는 그 때부터 하루 종일 고민을 했다. 가끔가다 바라보는 눈빛은 이제 경외심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깊은 고뇌가 얼굴에 보였으니까. 결국 거북해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입조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무엇이 걱정되는가?”
“제가 어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변방에서 도적질을 일삼고 말을 기르며 마음대로 날뛰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네.”
아구지가 걱정하는 건 이것 같다. 지금까지 약속한 내용만 해도 조선으로 입조한 여진족들이 받은 대우와 차원이 다르다는 건 알겠지. 그렇다면 뭔가 함정이 있다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거고. 잘못하면 조선에서 쓰이다 헌신짝처럼 버려질지도 모른다고 두려움도 있을 거다.
“족장이라 하지만 고작 오백 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아쉬울 정도로 조선의 인구가 적은 것입니까?”
“조선의 인구는 칠백만은 확실히 넘을 것일세. 그대들의 호로 따지면 이백만 호가 조금 안되겠지(여진족은 1호당 인원이 조금 많다).”
“그것이 아니라면 조선이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의 말은 대가가 없이 너무 많은 호의를 준다. 그런 말 아닌가? 실은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네.”
너희들이 유목민족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우리의 문화권에 편입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대가야. 문화권이 다르고 풍습이 다른데 후계자에게 좀 투자하는 거지. 어차피 조선에서 관료 보내봤자 무시하거나 아예 묻어버릴 가능성도 있잖아. 그런데 이 말을 그대로 하면 내가 바보다.
“일전에 싸운 몽고 혹은 에센이 거느린 오이라트와의 싸움입니까?”
“그걸세. 그대들이 북방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저희의 후계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설령 변방에 있다 하더라도. 아국의 말을 쓰고 아국에서 제대로 된 벼슬을 얻었다면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않는가.”
표정이 비장해진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뭐 ‘내가 죽더라도 아들은 조선이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런 생각인가? 아니 뭐 그렇게 되면 나랑 조선이야 고맙지. 북방 영토는 야인여진과 해서여진을 밀어내며 친 조선 여진족을 끼워 넣는 게 형님 계획이니까.
건주여진을 시작으로 ‘교육 된’ 여진족들을 밀어 넣어서 경계를 만들고. 그 근처에서 조선의 정착지를 끼워 넣는 식으로 편성하여 상호 보완체계를 만든다. 여진족들의 정체성? 두 세대만 지나도 거의 사라지겠지.
“그 생각이시면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이네. 명의 허가로 인해 해서여진과 야인여진의 영토가 우리에게 넘어왔지. 그러나 자네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여진 부족들이 조선에 편입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생각하네.”
“하지만 모든 이가 조선을 따르지는 않을 겁니다.”
의외로 예리하네. 하긴 형님도 100명을 모아서 교육하면 50명 정도만 조선의 뜻대로 움직일 거라 했지. 남은 50명은? 후계자 승계를 실패하거나. 조선의 관리구역 밖으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런데 그래봤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조용히 있어야한다.
“그렇다 하여도 좋네. 아국이 유교를 중심으로 한 나라인 것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것이네. 자네는 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연히 모르지. 아니 그걸 왜 물어보십니까? 그냥 힘 있으면 되는 것 아님? 이런 표정을 짓는데 형님의 계획을 신하들이 별 반발 없이 받아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교의 시조는 중니(공자)께서 난세를 정리하고 예법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성인(聖人)들의 행동을 본받자는 것일세.”
“그렇습니까?”
“바꾸어 말한다면 아무리 모진 난세를 겪은 이라도. 어떠한 험난한 삶을 산 자들이라고 해도 열심히 배워 도덕적으로 완성된 이를 만드는 것일세.”
“저기 그런 말씀을 하셔봤자.”
눈치를 살살 보는데 그래 뭐 배워서 도덕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통역하는 놈 눈치도 있으니까 나도 일단은 유학자니 말이나 해보자!
“그런데 내가 몸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효도를 위해서지.”
“효도요?”
“부모께서 훌륭한 몸을 물려준 것을 갈고 닦는 것이라네. 그런데 어떻게 본다면 자네들에게도 충분히 효도가 되겠군. 바로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것이 효도 아니겠는가.”
사상 최악의 기근이나 – 경신대기근 같은 – 먼 바다의 표류같이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아니면 근육은 대체적으로 옮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알 만한 여진족들이다. 왜 강한 자를 숭상하겠는가? 당연히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러지.
“이런 몸의 반이라도 따라오게 된다면. 북방의 험난한 삶도 쉬이 넘어갈 수 있을 걸세. 그것도 효도라고 볼 수 있겠군.”
“효도라니요.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효도가 아닌 것입니까?”
“거기서 더 나아가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강해지는 것 또한 포함되고.”
“저는 잘 이해가 안갑니다. 하오나 확인해 볼 것이 있습니다.”
아오! 이 빡대가리. 아니다 어찌 보면 불쌍한 거다. 하루하루 생존과 투쟁을 벌이면서 살아오다가 누군가가 떡을 던져주니 독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것이겠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북방에서 타이순 칸을 쓰러트렸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맞네. 그놈과 맨손으로 싸워서 묵사발을 내었지. 어깨에 짊어지고 내리찍어버리고. 목을 잡아 바닥에 박아버리고. 마지막에는 다리를 잡고 던져버렸다네.”
“제가 한번 당해봐도 괜찮겠습니까?”
이놈이 미쳤나? 하는데 여진족들은 힘을 숭상하니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소문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려 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내수린을 체험하게 해야지! 내가 미안해 수준을 잘못 맞춰줬어.
“으아아악 잠깐만요!”
“우선 이렇게 들어서 내리 찍었는데 이러면 자네 허리가 부러질 것이야. 그리고 이렇게 목을 잡아서.”
“컥!”
“바닥에 내리쳤는데 머리가 세게 찍혀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더군. 마지막은 이렇게 돌려서!”
“죄송합니다! 믿겠습니다!”
마무리로 자이언트 스윙을 한 바퀴 돌리자 기겁을 하면서 살려달라고 한다. 이거 보니까 어른 여진족들에게 내수린을 가르쳐주면 좋겠군. 근육 유학자의 파워풀 내수린과 대조되는 야성미가 넘치는 내수린.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아구지는 드디어 알았다는 듯이 기뻐했다. 자신의 후계자들을 강하게 만들면? 조선에서 쓰기 좋을 것이고 전쟁에서 쉽게 죽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이제 쐐기를 박자.
“이제야 알겠나? 그대들의 후계자가 내 제자가 되어 몸을 만드는 법을 안다면. 결국 강해지는 것은 그대들이 될 것이라네.”
“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모든 이들이 다 강해질 것이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렵지 않군요.”
“만에하나 큰 일이 벌어진다 한들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정식으로 벼슬을 받은 자들이니 조선으로 내려온다 하여도 이해할 수 있지. 그걸 막는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지.”
라고 말했지만 한 세대가 지나고 두 세대가 지나면 그때쯤 되어서는 혈통만 여진족 머릿속은 조선인 부족이 완성되겠지. 풍습이 좀 난해하고 괴팍한 산골짜기 말 타는 조선인. 이거 완전 백정이네? 여하튼 백정 짝퉁쯤 될 거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준비를 하여 올 겨울에 입조 하겠습니다.”
“이제야 알겠는가. 우리는 그대의 후계자들을 허투루 키우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그것을 판단할 위치가 아니라네. 주상전하께서 하시는 것이겠지.”
“알겠습니다. 허락을 받아 조선의 품으로 들어오면. 제 아들을 보내겠습니다. 그 아이를 부디 잘 키워주십시오.”
그 때까지 아구지 이양반이 살아있을지는 의문이다. 뭐 자식이 몸 좋아져서 돌아오면 좋아야 하겠지. 하지만 근육 유학자 여진족이라니 끔찍한 혼종이로다! 취미로는 내수린을 하고 삼대운동도 한 800근은 치겠지!
그 이후로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불사를 드리는데 여진족 족장들 몇 명이 찾아왔다. 대부분 요동 내에 있는 변방 부족들이었다. 당연히 의심하였고 의심은 근육 앞에서 허물어졌다.
“갑옷을 맨손으로 찢을 수 있냐고? 봐라! 그아아아아아앗!”
“오오 세상에! 수양대군님 대단하십니다!”
“내 제자가 된다면 이 절반정도는 충분히 가능할걸세. 자네들보다 힘이 더 강해지니 조심해야겠군.”
“알겠습니다! 저희도 입조할 것이니 제 아들을 잘 봐주십시오!”
“흑우야! 이리 오너라 내 허리를 좀 단련해야 하겠구나!”
“세상에 저 거대한 한혈마로 몸을 단련하시다니. 저희도 입조하겠습니다!”
“자네의 아들들도 나의 절반만큼은 할 수 있다네! 어떤가!”
그렇게 내려오는 족장들에게 근육으로 세뇌를 했더니만 전부 입조 의사를 밝혔고. 조선으로 입조하는 여진족은 벌써 사만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고생할 것은 아니야 형님이 고생할 일이지. 난 애들이나 키우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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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되기 전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돌아온 기념으로 형님은 조회에 나오라고 하셨고. 오랜만에 날 보는지 대소신료들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수양대군의 건장한 몸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래서 불사는 잘 하였는가.”
“주상전하께서 하명하신 대로 충실히 행하였습니다.”
“비록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금하였지만. 이번 북변에서 아국의 병사들을 위문하고자 불사를 올렸다 하였다. 불씨들이 비록 어리석은 이들이지만 이런 충심을 한 나라의 주인으로 가만히 둘 수 없었도다.”
형님이 조금 얼굴을 붉히시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래봤자 다른 대신들의 생각은 ‘이 정도야 북변도 해결하신 분이.’ 하는 것 같다. 당장 영의정 하연은 불교 종파 개혁안을 제출할 정도로 반 불교적 성향을 가졌는데도 아무런 말을 안 한다.
“북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 북변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한 기록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국의 군대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느니라.”
분위기가 싸늘해지네. 세자시절부터 무기에 관심이 많았고 그 기질이 어디 사라지지 않을 것 정도는 알았겠지. 그런데 양위 받고 반년 만에 이런 소리를 하면 조금 무섭긴 하겠다. 세종대왕님은 군권에서 손을 완전히 놓지는 않으셔서 함부로 손대기는 힘들고.
“주상전하께 아뢰옵니다. 아직 북병과 익군에 대한 것은 손을 대시면 아니 됩니다.”
“알고 있소. 그들은 아주 잘 싸웠으니 손을 댈 생각도 없지. 중요한 것은 훈련도감이오.”
“그들은 훌륭하게 전투에 임하였고 적도들을 분쇄하였는데 어떤 것이 부족하나이까.”
훈련도감을 왜? 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을 되새겨보니 형님은 보총을 시험할 때 역한 흑색화약의 지린내를 맡아도 오히려 미소를 짓는 분이셨지. 설마?
“보총수가 문제요. 방패수를 비롯한 병종들은 사람을 시켜 한 달의 훈련으로도 익숙해지며. 석 달을 훈련시키면 한 사람의 몫을 분명히 해낼 수 있다 하였소. 그러나 보총은 그렇지 않소. 거기 있느냐? 보총을 하나 가져오너라.”
밖에서 얼마 전에 생산한 것 같은 연철 총열 보총이 들어왔다. 형님은 그것을 들면서 이리저리 만지더니만 신료들에게 들어 보여줬다.
“이제 명국에서 보총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으니 한 해에 육천 정은 가볍게 생산할 수 있소. 그럼 묻겠소. 그대들 중 무관이 아닌 이가 쓰는 방법을 아시오?”
“전하 본디 병기라 함은 군인이 쓰는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소. 보총은 화포와 같이 사용하는 것인데 이를 아는 이가 없소.”
형님은 직접 설계한 사람이니 미리 준비해둔 모래와 점토구슬 그리고 잘라놓은 화승을 하나하나 사용하며 장전 과정을 재현했다. 탭로딩이 아닌 정식으로 하는 꽂을대를 사용한 장전과정이다.
“보시오. 쏠 준비만 하는데도 과정이 일곱 가지나 되오. 그나마도 탄약포(彈藥包)를 종이로 만들지 않았다면 아홉 가지이지. 쉬이 가르쳐줄 수 있겠소?”
대신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도 보고서를 쓸 때 이런 글을 올렸으니까. ‘추정하건데 요동의 정병들도 보총의 사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명국의 친정군의 패배는 당연한 것이었다.’ 라고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훈련도감의 인원을 확충하실 것이옵니까?”
“아니오. 정확히는 훈련도감에서 보총수를 2개월 까지만 같이 교육시키고 분리할 생각이오. 이를 화기도감(火器都監)이라 칭할 것이고. 훈련도감의 인원을 방패수, 장검수, 창수로 천 명을 유지할 것이오.”
“하오면 화기도감의 인원은 몇 명이 되는 것입니까.”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훈련도감에서 보총수는 사실 따로 움직였다. 다들 병장기 훈련하는데 저 멀리 산으로 가서 사격연습 하고. 총통기와 화차계열 다루고. 나중에는 시간이 남아서 화포도 다뤘으니까.
“우선 오백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제대로 배운 보총수가 많아야 익군을 비롯한 지방 병력들에게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할거요.”
아 이거 각이다. 무슨 각이냐고? 화력덕후 문종이 각성하는 각이 딱 섰다. 말이 오백이지 실제로는 훈련도감 1 : 화기도감 1의 비율로 시작할걸? 여기서 조금만 손 보게 의견을 제시해볼까. 이거 잘하면 마우리츠의 선형진 같이 극단적 화력대형이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다.
“주상전하께 아뢰옵니다. 아예 목표를 크게 잡으시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