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55화 - 철령 전투(3) >
아직까지 조선군 대열에서의 사상자는 채 천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만 들어도 알지만 상대편은 최소 오천 이상이 당했다. 김종서는 장대 위에서 적의 대형을 보았는지 나에게도 들릴 소리로 혀를 찼다. 나야 듣기만 하고 전방을 주시하면서 눈을 부라리고 있지.
“군략은 뛰어난 자이지만 성미가 급하군. 아직 유리할 시간도 아닌데 어찌 저런단 말인가.”
징이 울리면서 조선군에게 신호를 보내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은 훈련도감군의 지휘를 받아 한 사람의 병사 몫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의 몽고군 진형에서도 고함소리와 함께 효시(嚆矢 - 소리가 나는 화살)의 소리가 들려왔다. 김종서의 말 대로면 상대가 억지로 돌격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제발 잘 해야 하는데.”
전장에 오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몸의 주인이자 기억을 물려준 수양대군도 전쟁을 경험한 적은 없다. 그저 사냥감을 잡아서 피나 좀 묻혔을 뿐이지. 작전은 전투 시작 5분 내에 집어던지라고 하였지만 아직 작전의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순조로우라는 법은 없으니까.
“적들이 돌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알겠다! 적의 수를 확인하고 보총수를 뒤로 물려라! 숫자는 얼마인가?”
“철기 오천가량입니다! 앞 뒤 두 패로 나누어서 옵니다!”
장대 위의 김종서는 전장을 살펴보며 계속 명령을 내렸다. 전방에서 방패수, 창수, 장검수가 조를 이루어 돌격을 막아내고. 궁수와 보총수는 약간 뒤로 물러나 화력을 지원한다. 보병들이 감당하지 못할 규모의 돌격이면 기병이 맞서서 돌격한다.
"대군어른,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시지요."
"염려 마시오. 아니 오히려 날 불편해 하는 것 같군."
나름 두정갑까지 갖춰 입으니 병사들이 내 모습을 보고 움찔거린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덩치가 너무 커서 쫄아버리나? 하여튼 기병은 가급적 아껴야 하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수뇌부를 격멸하지 못하면 놈들은 북경에서의 승전 소식에 힘입어 다시금 활동할 수 있으니까. 기병은 적이 분열될 때 내려가서 최대한 많이 죽여버린다.
“옵니다! 놈들이 옵니다!”
“보총수! 일제사격! 궁수는 일제히 활을 쏴라!”
산 아래에서 산 위로 불어오는 바람은 흑색화약의 연기를 전방에서 후방으로 밀어낸다. 지린내와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제법 가렸지만 땅이 진동하니 기병의 돌격을 알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망원경이라도 개발하려고 힘써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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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보총수의 일제사격이 전열을 훑고 지나간다. 이천 오백으로 제법 넓게 간격을 벌렸으니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조선군의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다. 당한 입장에서는 삼분의 일이 한순간에 날아간 상황이다.
“아악! 내 눈! 내누우우우운!”
“조선 놈들! 다 찢어 죽여 버린다!”
“싸우는 법도 모르는 놈들이!”
몽고군의 철기들은 서서히 속도를 높이며 언덕을 올라갔다. 최대 속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언덕이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보총의 일제사격에 전열에서만 팔백 명이 쓰러졌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화살비도 쏟아지지만 아직 크게 당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적이 참호를 파고 남은 흙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이게 뭐야!”
첫 열에 선 철기들이 어쩔 줄 몰라서 허둥거린다. 조선군 진형 앞에 있던 땅은 질퍽한 진흙 위를 지푸라기로 덮고. 다시 흙을 뿌려 위장한 곳이었다. 유목민족들이 가장 혐오하는 지형인 진흙뻘이 일시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말 속도를 늦춰!”
“그럼 조선 놈들을 어떻게 밀어버리라고!”
“후열! 여기 진흙이 있다! 진흙이다! 멈추라고!”
그 옛날 러시아를 침략한 몽고군은 싸우기 좋은 날씨인 여름에 싸우지 않았다. 그저 진흙과 늪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하 30도의 설원을 돌파하는 기행을 저지르며 러시아를 유린했다. 그만큼 진흙뻘은 유목민족이 싫어하는 지형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기병이야! 밀어!”
“저놈들 또 화포를 쏜다!”
다시금 일제사격이 쏟아지면서 전열을 강타했다. 1열이 거의 전멸하다 시피 하였고 1열이 조선군의 모든 화력을 받아내서 올라온 2열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뛰지도 못하고 걷는 속도로 간신히 올라온 말 위에서 거칠게 창을 휘둘렀지만 훈련도감 출신의 방패병은 조금 뒤로 밀려났을 뿐 멀쩡했다.
가까스로 방패 사이로 찔러온 창날을 피했지만 타고 있던 말의 머리에 방패병의 환도가 내리 찍혔다. 아래에서 보았을 때는 쉽게 밀어버릴 수 있을 보병들인데 막상 당해보니 철벽과 같았다.
“워어어어! 워엇 진정해!”
“이놈들 왜 이리 단단하 아악!”
보총수들은 이미 후열로 퇴각했다. 근접사격을 하다 오인사격을 내느니 멀찍이 뒤로 떨어져서 참호 속에서 안전하게 접근한 기병들을 노리면 된다.
조선군의 방진에 막힌 몽고군은 기병이니 높이가 머리 두 개만큼 높았다. 조선군들의 머리 한참 위를 조준한 보총이 쏘아지니 조선군이 아군의 사격을 맞을 일은 없었다. 운총은 정확하게 지휘관급의 머리를 노렸다. 움직이지 못하는 기병은 온 몸이 약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달렸다…면…….”
“다 죽어갑니다!”
“아래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 거야! 빨리 지원해 달라고!”
두 번에 걸쳐서 돌진한 몽고 기병은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한 것 같았다. 오히려 숨겨져 있던 뻘에 뛰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정상까지 올라가 보병에게 도륙 당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타이순 칸은 땅을 치며 후회했고. 마오나하이는 눈을 번뜩였다.
“거기 너! 건초더미 가져와! 곡식이던 건초이던 땅에 깔 수 있는걸 가져오라고!”
“네?”
“뻘밭의 위를 덮어버리면 말이 갈 수 있잖아! 뒤에 있는 여진족 놈들에게 시켜!”
잠시 뒤. 여진족들은 하나같이 병장기를 내버리고 곡식. 건초. 거적 등을 짊어지고는 말을 몰아서 선회하며 뻘밭으로 던져넣었다. 조선군은 그 모습을 보고 당장은 알아차리지 못 했지만 뻘밭 위에 계속 뭔가를 던져넣으니 금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후방에 알려! 놈들이 뻘밭을 덮어버리고 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여진족들이 필사적으로 뻘밭 위를 덮을 것을 던지는 사이. 오이라트군의 대부분의 병력은 집결하여 5중의 기병 돌격대형을 갖추었다. 1열과 2열은 제대로 된 철기이며 2열 최전방에 마오나하이가 있었다.
“뻘밭까지 만든 것은 돌격을 막아낼 자신이 없다는 거겠지! 다들 돌격준비!”
효시가 다시금 전장을 가르며 소리를 내고. 돌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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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적들이 일만 가량이 모여 5중으로 돌격대형을 갖추었습니다!”
“저들이 뻘밭에 건초와 곡식을 뿌려 덮고 있습니다!”
망할! 5중 돌격대형 일만? 돌았나? 미친것인가? 궁기병을 돌격용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 뻘밭이 인공으로 만들어졌으니 자신들도 덮는다고? 하긴 그 전투처럼 깊은 뻘도 아니고 얕은 뻘이고 진영까지 30보(54m)이니 반만 덮어도 소용이 없어진다. 식은땀이 흐르면서 초조해지는데 김종서가 바로 명령을 내렸다.
“기병! 준비하고 바로 돌진하여 적의 후방을 꿰뚫어라! 진내사격을 실시할 준비를 해라! 진내사격이 준비되는 대로 신호를 전 장병에게 보내라!”
“알겠습니다!”
땅이 또다시 진동한다. 이번 돌격은 이전처럼 절대 쉽지 않을 거다. 그것을 증명하듯 진동이 점점 거세지더니만 전방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보병 진형이 점차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버텨라! 버텨야한다! 기병들이 적을 유린할 때 까지 버텨야 한단 말이다!”
내 눈앞에서 사람이 뒤로 퍽 하고 날아간다. 거의 소형차에 치인 것같이 날아가는 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벌떡 일어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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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소리가 들린다. 팔이 부셔질 것 같이 아프고 등에 무엇인가 박혔는지 화끈거린다. 땅이 일렁거리고 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애써 일어났다, 이것보다 좀 더 고달픈 상황도 있었던 것 같은데?
“…찮나?”
“참교님… 합니다.
눈앞에서 함흥에서부터 휘하에 두어 훈련을 해왔던 익군 한명이 칼에 맞아 죽었다. 장 씨던가? 대방패를 들고 죽겠다고 엄살을 부리던 것부터. 훈련을 따라오지 못해 부와를 시키던 때도 기억이 난다. 바로 앞에서 달자 놈이 말을 타고 다시금 휘하에 있던 익군을 향해 창을 내찌른다. 방패는? 방패는 어디 있지? 팔에 감각이 별로 없어서 잡고 있는지도 몰랐군.
퍼석! 하면서 창날이 방패에 맞고 튕겨난다. 몸도 뒤로 밀려나지만 아직 죽을 시간은 아니다. 죽더라도 이 놈은 죽이고 가야하지 않나?
“참교님! 피하십쇼.”
지독한 훈련이 다시금 생각난다. 유격을 할 때 이렇게 말했었지. 다시 막아야지. 이미 방패가 반쪽이 났지만 몸이 움직이니 신기하다. 창을 막아내자 말발굽이 날아오는데 다시금 거침없이 막아냈다.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빨리 죽으라는 말인가?
[이 지독한 새끼가 대체 어떻게!]
“홍산이이이이이!”
말의 무게에 짓눌려 몸이 무너지려는 순간. 기수의 배로 창날이 날아들어 뱃살을 갈라버린다. 맞아 나 달자 놈들과 싸우고 있었지. 그리고 말에 치어서 뒤로 나자빠졌지.
“변 형!”
“아 미안하네. 범수.”
“내가 미안하지. 닥치고 죽입시다.”
“그래 그냥 다 죽여!”
조선군의 방진으로 치고 들어온 오이라트의 철기들은 진형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꾸역꾸역 병사들이 일어서며 항전을 하자. 오히려 분열되어 다시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놈들 대체 뭐야? 뭐냔 말이야! 말에 치이고도 이렇게 멀쩡할 리가 있나!”
“조선군 기병이 후열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닥치고 들어가! 수뇌부를 다 죽이고 내려가면 탈출할 수 있다! 칸이야 알아서 싸우겠지!”
다시금 제 2파가 몰아쳤다. 아까전보다 조금 더 심하게 붕괴되었지만 여전히 난전에 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 3파까지 몰아치면 조선 진형을 확실히 밀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종소리 같은 것이 길게 세 번 울린다. 그와 동시에 잘 싸우던 조선 놈들이 일제히 후방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전투를 포기한 건가? 아니면 예비대가 나서는 건가? 이미 3열도 거의 다 치고 올라왔다. 여기서 예비대로 교대하느니 계속 싸우는 것이 나을 텐데.
“진내사겨어어어어억!”
“진내사격이다! 다들 참호로 대피하라!”
조선 병사들은 하나같이 필사적으로 깊은 도랑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심지어 칼에 맞아도 상대를 무시하고 달려 들어간 뒤. 아예 바짝 엎드린다. 대체 왜 이러지? 숨는다고 달라질 것이 있나?
“마오나하이님 3열 도착했습니다. 어서 후방으로 진격하시죠.”
“망했네.”
함정이다. 참호를 판 이유와 목책을 뒤에 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 미친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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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가 짧지만 위력이 엄청난 총통기화차가 30대. 이제야 장전을 마친 신기전기화차가 15대. 그리고 얼마 전에 생산한 천자총통 10문 모두가 미리 장전과정을 마친 채 후방에서 저각으로 본진이었던 곳을 조준하고 있었다.
길게 울리는 세 번의 징소리는 진내사격을 의미한다. 사격 직전에 다시금 세 번을 길게 울린다. 더 이상 유의미한 진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경우. 전열은 참호 안으로 숨고 후열은 화차를 비롯한 후방을 수비한다. 그 사이에 저각으로 모든 화약무기를 말 그대로 쏟아 부어버린다.
“발사아아아아아!”
그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적어도 이 자리에는 적의 2열 3열에 해당되는 기병 4천기가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피를 뿜으면서 육편으로 변해버렸다. 참호 안에 숨은 조선군은 안전하겠지만 몇몇 불운한 자들. 이를테면 다리가 부러진 자들이나 허둥거리던 극소수도 진내사격에 휩쓸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우읍!”
“쏴라! 계속 쏴라! 참호 안은 안전하다!”
저각으로 조준한 신기전이 하나둘씩 드문드문 날아간다. 중신기전의 엄청난 추진력은 철기의 옆구리를 꿰고 뒤로 날려버리고 말 그대로 폭죽처럼 몸을 터트려 버린다. 주변 철기들은 피범벅이 된 동료의 파편에 휩쓸리면서 바닥을 구르고 울부짖는다.
총통기화차는 4열의 총열을 연속으로 내뿜으며 적들을 갈라버리고 그 자리를 육편으로 대신한다. 천자총통은 보총에 쓰이는 납탄 수십 발을 일제히 쏟아 부으면서 말 그대로 전방을 피로 지워버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이지만 아마 이 광경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못할 것 같다.
“진내사격 종료오오!”
“진내사격 종료! 대열을 다시 만들어라!”
“아직 몇 놈 남아있습니다!”
그 순간 눈이 부릅떠졌다. 예리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감으로 움직인 것인지 몰라도 내 손은 수양대군의 과거 기억대로 활을 움켜쥐었다. 희뿌연 화약의 연기 속에서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외치는데 안 들어도 뻔하다.
[네놈만큼은 죽여버리겠다아아아아!]
“대군어른! 피하십시오!”
운이 좋게 탄환이 빗겨갔는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감쌌는지는 몰라도 전신이 피범벅이 된 갈색 말을 탄 녀석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들면서 화살을 재었다. 그러나 나는 반사적으로 육량시를 활에 올리고 힘차게 당겼다.
“너나 죽어! 말박이새꺄!”
몽둥이로 써도 될 육량전은 내 전력을 다한 힘으로 당겨져서 쏜살같이 날아갔다. 제법 높은 신분의 놈인지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엄청난 위력은 알량한 갑옷 따위로는 막을 수 없었다.
50보의 거리이기에 아주 정확하게 날아간 화살이 갑옷을 뚫고 배에 박혔지만 혹시나 몰라서 한발 더 조준해서 날렸다. 이번에는 투구를 앞뒤로 꿰뚫고 놈을 즉사시켰으니 수양대군의 활 솜씨는 훌륭한 것이 맞았다. 근육이 너무나 늘어나서 정확성이 떨어진 것이 문제지만.
“저거 시체는 온전한가 모르겠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수양대군 어른께서 적장을 쓰러트렸다!”
아 몰라 적장 맞겠지. 무사하다는 신호로 활을 들어 올리니 김종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회라는 듯 징을 길게 한번 짧게 두 번을 울리게 했다. 돌격명령이었다.
“다들 돌격!”
“적장이 죽었다! 이제 아래에 있는 놈들만 죽이면 끝난다!”
내가 돌격대형에 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금 관망이나 하자. 내가 죽인 놈은 바닥에 자빠졌지만 말이 구슬피 울면서 그 놈의 얼굴을 핥는다. 전체적인 비율이 아주 아름다운데 이거 설마 한혈마 아니야?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토마의 모델인 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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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할!”
언덕 위에서 굉음이 연달아 들리고. 조선군의 환호성 소리가 들리는 것만 보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마오나하이를 비롯한 오이라트군은 사실상 전멸했다. 남아있던 4열 5열도 내리꽂힌 조선군 창기병을 막아내는 것으로도 벅찼다.
“제기랄! 제대로 된 창기병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
“갑옷만 있었어도…….”
언덕 아래로 달리면서 가속을 받으니 짧은 거리로도 속도에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갑옷을 더 두텁게 입었으니 충격력도 뛰어나며. 결정적인 문제로 힘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끄아아아악!”
“이놈들 왜 이리 강한거냐!”
“밥만 먹고 훈련이라도 하고 산거냐!”
거침없이 휘둘러진 장창을 막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말의 크기가 몽골마보다 작은데도 조선군이 거침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철기여서 무게가 무거운 이유도 있지만. 훈련도에서 차이가 심각한 것이다. 밥만 먹고 훈련만 한 것이 4개월에 가까웠으니까. 정확히는 비번일때도 시간을 쪼개 훈련을 하였다.
그나마 조금 버티는 것도 조선 창기병이 양 방향에서 1500명씩 왔기에 수적 우세를 조금이나마 보여서 중앙을 단번에 관통할 수 없어서였다. 어찌나 힘이 강하고 날렵한지 저 자리에서 철기가 싸웠어도 절대 승리를 점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퇴각한다! 전원 퇴각대형을 갖추어라!”
“우리는 아직 1만기입니다!”
“기병이면 몰라도 보병들이 내려오기 전에 퇴각해야 한단 말이다!”
에센의 동생 녀석은 죽고, 철기도 날려먹었다. 이미 글러먹었으니 자신의 전력이라도 유지해야 했다. 명분에서 엄청나게 뒤처지겠지만 오이라트 세력도 제법 손상을 입었으니 아직까지는 해볼 만 했다. 그러나 조선군 기병 중 궁기병이 쏜살같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놈들 궁기병 아니야? 맞서 싸워! 저놈들 족치고 바로 도하해서 거점까지 후퇴한다! 저놈들을 끊지 못하면 도하하면서 활에 맞는다!”
아직 보병들이 내려오려면 시간이 남았다. 좀 상했다지만 궁기병 칠천을 상대로 삼천이 달려들다니. 그것도 창기병이면 몰라도 궁기병이. 그런데 놈들은 등에 뭔가 이상한 것을 짊어지고 있다가 어깨 위로 잡아 올렸다.
“작렬신기전 점화!”
“점화!”
조선군 궁기병들 중 일부는 15근의 무게를 자랑하는 작렬신기전을 무기로 받았다. 단 한방을 쏘고 일격이탈을 필수로 하는 병기이지만. 궁기병 간의 싸움은 원을 그리면서 서로에게 활을 쏘는 싸움이 대부분이니 상관이 없었다.
“저거 뭐야!”
“불이 날아온다!”
중신기전보다 거대한. 탄체 전체 무게만 12근에 달하는 작렬신기전의 탄두가 말의 엉덩이에 꽂혔다. 그리고 발작하던 말이 넘어져 짓밟히면서 바닥에 깔렸고. 대열 한가운데서 탄두가 발화했다. 중신기전의 몇 배나 되는 폭발음이 궁기병의 진영을 휘감았다.
“대열을 풀어!”
“아악 내 다리! 짓밟지마 살려줘!”
빠르게 움직이며 순환해야 할 궁기병의 대열에 구멍이 뚫렸다. 한 무리의 궁기병이 넘어지고 서로 짓밟으면서 뒤엉켰고. 그 위로 조선군의 궁기병들이 마음껏 화살을 퍼부었다. 그 한방으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튀어!”
궁기병들이 무너지는 순간. 타이순 칸은 어떠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퇴각하는 궁기병의 선두에서 강을 넘었다. 강을 넘으면 화약병기를 쓸 수 없으니 안전할거야. 그 생각만큼은 적중해서 조선군은 강을 넘어서 추격을 하지는 못했다. 쏟아지는 화살에도 타이순 칸은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다.
“별동대는 동산(충샨)과 함께 있겠지?”
“그렇습니다.”
“대신기전을 대승에 걸맞게 세발 동시에 쏘아 올리도록.”
김종서는 대총한(타이순 칸)을 잡으려 적극적으로 쫒아가지 않았다. 이징옥이 거느린 기병 4천의 별동대는 강 건너 골짜기에 충샨의 휘하 부락을 가장하고 몰래 숨어있었으니. 조선군이 패할 경우에는 후방을 교란하는 역할로. 조선군이 이길 경우에는 후방에서 퇴각하는 적의 숨통을 끊을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대군어른의 계책은 절반의 성공이군. 그래도 절반이 어디인가.”
마지막 순간에 살아남은 적장이 화살을 쏘려 했을 때 가슴이 철렁였다. 이렇게 위험하게 만든 것에 대한 사과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장대 아래에서 고함이 들려오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이놈의 말이 미쳤나!”
“푸르륵! 푸히잉!”
그 장수가 타고 있던 늠름한 갈색 말이. 분노에 가득 찬 채로 수양대군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