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54화 (54/573)

< 1장 53화 - 철령 전투(1) >

“북경에서의 소식은 아직 없는가.”

“친정군이 출발하였다는 소식 외에는 없습니다.”

1449년 8월 22일. 아직까지 우리 조선군은 심양에 머물러 있었고. 요동도사가 지원한 척후병과 근처 여진족들을 포함해 척후병을 사방에 뿌려 주변을 정찰하고 있었다. 개원위(開原衛 - 요동 북부, 현 요녕성 개원시에 설치한 거점) 인근까지 몽고의 정찰병이 오간다 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끌지?

“대감은 괜찮소? 요동 총병관(遼東總兵官) 조의(曹義)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은데 대감께 화가 될까 염려되오.”

“은자만 30만 냥에 화약 1만근, 곡식과 건초 모두를 요동으로 옮겼는데 고생이 많았다더군요.”

난감해 하는 김종서를 보면서 이런 눈칫밥을 먹느니 전쟁이 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싸우는 건 싫었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이득을 챙기는 거니까.

“당장 1만의 기병이 왔다면 예비마를 두필씩 챙겨왔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요녕과 심양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한 들 부담이 심각하지요.”

“요동 일대에 생각보다 사람이 적게 사는데 일대 백성들의 고생이 컸겠소.”

“대국이고 이 일대에는 25개의 위(衛 - 도지휘사사 휘하의 군사 조직. 정원 5600명이다)가 있으니 부담이 적을 줄 알았습니다.”

“변경이니 군사의 수는 잘 해야 3만이 넘지 않을 거요.”

아니 3만도 많이 잡은 거지. 이 일대의 인구가 30만이 좀 안되던가? 아마 실질적 병력은 2만 5천. 수비에만 동원할 수 있는 예비역을 합쳐야 5만 정도? 협조적인 여진족을 합쳐야 간신히 6만 정도가 나올 거다.

명의 저력은 참 대단하다. 이런 요동 변방까지 보총을 소수라도 보급했는데 우리는 보총의 총 생산량이 1만정이고 그나마도 2할은 훈련용이다. 근데 여기의 보총이 왜 이리 크고 둔중해 보이지?

“대군어른! 상장군 어른! 요동 총병관께서 뵐 일이 있다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북경에서 급보가 왔다 하는데.”

설마 보총까지 쥐어줬는데 토목보의 변을 그대로 겪으려고. 보름 이상 보총수를 훈련시켜 실탄 10발만 무사히 쏘게 해도 실전에서 기병 한 둘은 잡을 거다. 듣기로는 북경 일대에만 3만의 보총수가 있는데 설마.

- 그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웃기지 마라! 네 녀석은 대체 누구의 수하이냐?

- 하오나 지금 북경은 아수라장입니다! 모든 신료들이 각지에서 병력을 동원하라 아우성인데 그나마 병부시랑 우겸님이 지시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문을 벌컥 여니 숨을 몰아쉬는 전령과 억지로 웃고 있는 요동 총병관 조의. 아 이거 설마.

“황상께서 급보를 보내셨소. 달자들을 매섭게 몰아치시어 기세를 꺾어 놓았으나. 군의 손상이 심하여 교대를 해야 한다고.”

“그렇습니까?”

대략 정3품의 총병관이니 조선으로 치면 정1품. 종1품인 우찬성 김종서에게는 상관이며(명의 품계는 이등체강 - 二等遞降의 법칙에 의거하여 조선보다 2품. 4등급 높다) 나는 정1품에다 왕족이니 존대를 하지. 그런데 표정을 보니 북경에 난리가 난 것 같은데.

“그러니 일대 수비를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수확이 끝난 주민들을 동원하셔도 좋으니 2만의 정병은 모두 데려갈 것입니다.”

“총병관께서 숨기시는 게 있는 것 같소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명은 지엄한데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

표정관리 하나도 못하고 있다. 김종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내 눈치를 보는데 이 상황 딱 하나밖에 없지 않아? 아니 내가 기억하기로는 토목의 변 상황에서 요동의 병력이 빠지지는 않았어. 몰려오는 오이라트 동군과 날뛰는 여진족들에게 초토화 당했지.

“이 자리에 알려진다면 요동의 병사들조차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주시오. 이 일에 대해 함구할 것을 내 대군직위를 걸고 약조하리다.”

어차피 보름정도 지나면 다 퍼질 소문 맞잖아. 그러니까 나는 경과를 알고 싶다고! 아주 절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포권례(抱拳禮 - 인사 방법 중 하나. 무협관련 매체에서 나오는 것)를 취했다. 힘을 너무 줬는지 주먹에서 아드드드득 소리가 나면서 근육이 꿈틀거렸고. 그렇게 예의를 차리자 대답이 나왔다, 내가 가장 바라지 않던 대답이었지만.

“20만의 친정군이 달자들에게 짓밟혀 산산조각이 났고. 상서 이상의 관리들이 모조리 몰살당하였으며. 폐하께서는 달자들에게 사로잡히셨다 합니다.”

“20만?! 황제폐하께서 사로잡혀? 그 20만이 정녕 20만의 정병 맞소?”

대충 화북 일대에서 병력을 뽑아내면 50만 나오는데 20만을 날려먹어? 이러면 북경 방어전은 어떻게 진행하지? 그리고 요동에서 가져간 3만의 병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나?

“정병 12만에 보인 8만입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군을 물리느냐 그 말이오. 요동병을 다 데려간다 한들 전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소?”

“이미 화중과 화남에서 10만의 정병이 북경 방어를 위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허어 그렇다면 벌써. 아니 아직은 아니겠군.”

김종서가 머리를 감싸 쥐면서 중얼거렸다. 200리 500리 하는 걸 보면 김종서는 분명 오이라트와 몽골 사이의 연락망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겠지. 지금 이 시점에서 오이라트의 서군이 보낸 전령은 평원을 거쳐 동군까지 닿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느라 늦는 것이 분명하다. 계산이 끝난 김종서가 찌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결국 총병께서 여기에 계신다 하더라도 아국은 나서서 달자들을 소탕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네? 조선군이 수비를 하면 되는 것 아니오.”

“북경에서 친정군과 싸운 달자들이 이 곳 요동 일대까지 소식을 전하려면 열흘 가량이 남았는데. 그 이전에 적들을 몰아내지 못하면 우호적인 이들도 돌아 설 것이 분명합니다.”

김종서의 말을 들으니 소름이 확 돋네. 명의 주력이 박살나고 황제가 포로가 되었으면 균형이 확 기운다. 이 시점에서 오이라트 동군을 격파하지 못하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 충샨을 비롯한 놈들의 계획대로 끌려 다니는 것 같지만 회전이 정말 답인가?

“그렇다면 조선은 회전을 벌일 생각이시오?”

“방법이 없습니다. 요동의 안전 이전에 북방의 수비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김종서의 생각은 심양 북부에서 회전을 벌여 적의 주력을 격파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유목민족을 상대로 특히 몽골과 같은 녀석들을 상대로 섣부른 방어전은 시간과 인력 낭비라 생각한 것일까. 결국 두 가지 방법이 떠오르긴 하네.

1안. 김종서의 말 대로 회전을 벌인다. 회전을 벌이고 잔여병력을 소탕하고 주변 정비까지 끝나면 아마 10월을 넘어갈 거다. 그때 쯤 되면 북경에서 에센이 이기던 지던 결판이 날 것이고 우리는 요동을 비롯한 북방의 여진족들에게 확고한 세력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 경우에는 회전이라는 전투의 변수가 너무나 크다. 괜히 회전을 장수들이 기피하는 게 아니다.

2안. 요동의 수비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두고 비어있는 북경으로 내려가 북경일대 전투에 가담한다. 당연히 요동은 초토화되고 한반도 북부의 여진족들은 모두 미쳐 날뛰겠지만 에센을 잡으면 다들 입을 닫고 복속할 것이고. 거기에 명에게서 얻어낼 것은 엄청나다. 하지만 에센의 주력을 잡지 못하고 도망가게 해 버리면 얻는 것도 없다.

“알겠소이다. 김종서 대감과 이야기 할 것이 있소.”

“고맙습니다.”

김종서에게 간단히 내가 생각중인 것을 이야기 했는데 표정이 확 굳어버린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세자저하나 주상전하께서 친히 전장에 임하시면 몰라도 대군어른께서는 정 1품 이십니다. 명의 도독동지(都督同知 - 종1품, 도독부의 사령관)만 되어도 아국의 병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군어른께서는 군령을 내릴 수 없지 않습니까!”

“알겠소. 결국 회전 외에는 답이 없다는 말이구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총병관 조의가 이야기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급자들을 닦달해서 병사들을 긁어간다. 그런데 왜 보총수를 두고 가지? 훈련이 덜 되었나? 하고 대기자로 남겨진 보총수에게 다가가서 확인을 해봤다. 이 보총 멀리서 봐도 두꺼운 것이 설마? 메이드 인 차이나?

“저기 자네 잠깐. 잠깐 보총좀 줘 보게나.”

“네? 조선 왕자님 아니십니까? 알겠습니다.”

이건 보총이 아니다. 그냥 청동인지 무쇠에 청동을 섞어서 연성을 키웠는지 몰라도 주물로 만든 티가 팍팍 나는 외형에. 무게도 엄청 무겁네! 10kg? 그리고 결정타로 총구가 뭐 이따위로 되었지? 반치면 17mm 구경이어야 하는데 딱 봐도 구경이 작은걸.

“자네 훈련은 받았나?”

“네? 글쎄요 저도 잘.”

“아니 훈련이라는 것이 말이야. 이거 어떻게 쏘는지는 해봤느냐 말이야.”

“그건 두어 번 보기만 했습니다.”

머리가 멍해진다. 우리가 조공으로 보낸 보총은 비록 무게가 10근이 조금 넘어 7kg에 달하긴 하지만 충분히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훈련도감도 이제야 연철제 보총. 무게가 9근 정도인 5.5kg의 물건을 쓰니까.

그런데 명의 보총은 10kg? 분대 지원화기인 M60 기관총의 무게다. 거기다 훈련도감에서 애들을 교육할 때 일주일을 잡고 빡세게 가르치고. 다시 이론교육 이후 실전교육으로 일주일을 또 빡세게 하여서 겨우 장전과정까지 매커니즘을 이해시키는데. 뭐? 보기만 해? 그것도 두어번을?

“일단 알겠네.”

이러니까 토목의 변이 재현 되었지. 여기서 사용법을 한번 본 수준에서 끝났다면 경군조차도 연습을 했을지 모르겠고. 품질은 엉망에 규격화도 잘 안 되어있고. 그러면 지금까지 에센은 보총의 진짜 위력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상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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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년 8월 25일. 요동의 최북단 방어거점 개원성에서 동북쪽으로 100리(40km) 떨어진 곳에는 몽고군과 오이라트 군이 합쳐진 진영이 있었다. 그 곳의 거대한 군영 안에서는 타이순 칸과 에센의 동생 마오나하이가 서군에서 보내온 서찰을 읽고 있었다.

“이미 선봉대를 피해 없이 격파하고 명의 본군을 공격중이라니.”

“조선은 명보다 훨씬 약하니 3만의 병력으로도 낙승입니다. 명군은 도합 15만이 넘었다 하는데 조선군은 기껏해야 6만 아닙니까.”

아직까지 오이라트 동군과 몽고군의 연합에는 에센이 황제를 사로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타이순은 요동에서 병력들의 이동 소식만 접했어도 대략적인 결과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러겠지. 요동 일대의 병력들이 모조리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나?”

“네.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남쪽으로 떠난다니. 이는 분명 형님께서 일대에서 대승을 거뒀음을 의미합니다.”

“그러겠지. 서군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나도 할 일을 하러 가야겠지.”

에센이 이렇게 판을 깔아주고 명에 타격을 입혔으니 타이순 칸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조선군을 완전하게 격멸시켜야 할 것이다. 점점 솟아오르는 오이라트의 세력에 맞서려면 최소한의 승전은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 놈들이 요동 일대의 성에 콕 박혀있다면 어떻게 하지?

“칸! 조선의 군대가 움직인다 합니다!”

“어떻게 말이냐!”

“요양에서 수뇌부로 보이는 놈들이 심양으로 향하였으며. 거기서 북쪽으로 계속 병력들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예비말도 동원해 수레를 끌게 하고 전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합니다!”

충샨 휘하의 여진족은 조선과 몽고 모두에게 첩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미 조선과의 약속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뒤를 치겠다.’ 라고 하였지만. 양쪽 중 패배한 쪽의 뒤를 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충샨 따위는 자신들이 승리한 다음 제거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조선군을 얼마나 피해 없이 박살내느냐. 하나였다.

“놈들이 미쳤군. 이미 소식을 들었을 텐데 회전(會戰)을 벌이려고 하다니.”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나 봅니다. 칸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 입니까?”

“놈들이 올라와 봤자 광순관(廣順關 - 요동 일대 장성의 관문 중 하나. 이만주의 거점인 서평 인근에 있다)에 머물 것이 분명하다. 아예 관문을 뚫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여도 진군속도는 가늠이 가능하다. 아마 개원까지 도착하는 것도 자신이 조금 더 빠르다. 그렇다면 개원보다 조금 더 남쪽에 전장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칸께서는 개원으로 향하실 것입니까? 관문 안이면 조금 불리할 텐데요.”

“생각해 보게. 저렇게 약한 놈들을 자신들의 영역 안인 관문 안에서 박살내야 관망중인 달자들이 움직일 것이 아닌가.”

광순관 까지 들어가는 것이 하루. 광순관을 뚫고 재정비하는데 하루. 그렇게 남쪽으로 내려가서 조선군과 마주친다면?

“전장은 철령성(鐵嶺城 - 현 요녕성 철령시) 일대가 될 것이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님에게서 받은 이 명마가 드디어 날뛸 때가 되었군요. 형님이 그렇게나 날뛰시는데 저도 한 몫 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적갈색의 한혈마 위에 올라탄 마오나하이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 눈에 받으며 진형의 선두에 섰다. 그 모습을 보던 타이순은 자신의 말의 옆구리를 괜히 거세게 치며 앞으로 더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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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이 흐르고. 몽고군은 손쉽게 광순관을 뚫고 요동 안으로의 침입을 성공하였다. 그와 동시에 충샨의 휘하에 들어오기를 거부했던 여진족 수천이 복속의 의사를 드러냈고. 그들과 함께 개원에 보급거점을 마련한 다음 철령성 방향으로 진군을 준비하던 찰나였다.

“척후들의 보고입니다. 조선군이 철령성 북쪽에 진영을 쳐 놓았다 합니다.”

“뭐?”

몽고를 비롯한 유목민의 척후는 최소 하루거리. 가능하면 이틀거리까지 나서서 적을 파악한다. 요동 내부의 거점에 들어왔으니 하루거리 까지만 척후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였지만 벌써 자리를 잡다니? 철령성은 심양과 광순관의 중앙인데 녀석들의 행군이 왜 이리 빠르단 말인가.

“수는 대략 얼마인가?”

“이만 오천은 확실히 넘는 것 같습니다.”

“숙영지인가 아니면 진을 제대로 친 것인가?”

“언덕 위에 진을 차렸다 합니다.”

직접 진형을 보아야 한다. 여기서 조선군을 완전히 박살내야 자신의 운도 트이니까. 자칫 잘못하면 에센의 아래에서 영원히 이름만 남은 칸으로 살다가 에센의 후예에게 칸의 자리를 빼앗기고 말겠지.

“앞에는 강이 있군. 그런데 왜 강가에 진을 안치고 저 뒤의 언덕에 친 것이지?”

“도강하기에는 시일이 걸려서 포기한 것 아닐까요?”

“칸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마오나하이는 함부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형을 잘 둬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나서지 않는 영악한 놈 같으니. 타이순 칸은 천천히 지형을 살펴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조선이 언덕 위에 진을 친 것은 나쁘지 않아. 저 정도면 언덕 맨 아래에서 활을 쏴서 조선 진영 맨 앞에 가까스로 닿을락 말락 하겠지.”

“궁기병을 쓰기는 힘들다는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것은 조선 놈들이 왜 그런지 몰라도 말을 별로 가져오질 않았어. 충샨의 말로는 팔천기의 기병이 있다 했는데 뒤에 숨긴 것을 감안해도 육천은 넘지 못할 것이다.”

본디 유목민의 전술은 지속적인 궁기병의 치고 빠지기로 화살을 쏟아 부어 적의 전열을 붕괴시키고. 결정적인 순간에 철기를 앞세운 돌격으로 적을 분열시키고 사냥한다. 그러한 것을 막아내기 위해 성채에 틀어박히거나. 진형을 만들되 양 측면에 기병을 두어 궁기병을 견제한다.

“지금 궁기병이 좀 적은 편이지 않나. 삼만 중 이만이 궁기병에 일만은 철기와 창기병 혼합이었지? 거기에 뼈로 만든 무기만 있어서 예비 활 쥐어준 여진족들이 육천이고.”

“그렇습니다.”

부관의 대답을 들은 타이순 칸은 에센이 전해온 서신의 내용을 되새겼다. 적에 작은 화포를 쓰는 자들은 별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조선군은 언덕 위에 진을 쳤으니 평지보다는 방어력이 전체적으로 우수하겠지. 거기다 궁기병의 견제를 위해 진 내부가 아닌 양 측면에 기병을 배치한 것을 보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강에서 언덕 초입까지 거리는 한 2리 가까이 되는군. 1리만 되었어도 여기서 싸울 수 없는데 말이 달음박질 쳐서 탄력을 받기에 좋은 거리다.”

“도강하면서 논밭에 빠져 허우적대며 동안 기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네는 여전히 경험이 부족하군. 지금은 수확이 끝나서 이미 물을 대지 않아. 비쩍 마르지는 않았더라도 말이 달리기에 좋은 벌판이다. 거기 한명! 조선군의 진형으로 한 이백 보 까지 나아가라.”

저 멀리 조선군의 진형으로 접근하는 척후가 보이자 조선군들의 진형에서 탕- 하는 작은 화포를 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수십 발이 발작적으로 쏘아졌음에도 척후까지 닿는 탄환은 하나도 없었다.

“역시. 지금은 점심이 지났으니 충분히 쉬게 하고 내일 바로 총공세에 나선다. 적은 우리가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오나하이 자네는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몇 명은 이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조선군의 정황을 파악하게 해라.”

지휘관들이 떠난 이후. 척후병들은 일부러 조선군 진형 앞을 맴돌며 이백 보 거리의 언덕 아래에서 조롱을 일삼았다. 이미 소문은 퍼져서 명이나 조선이 쓰는 작은 화포는 쓸모도 없고 운이 없는 자만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이 거리면 편전도 닿지 않겠지.

- 탕

“끄엑!”

“이봐 자네 대체 뭐야! 왜 여기서!”

그 순간. 척후병들에게서 이백 보가 넘게 떨어진 언덕 위에서 수십 발의 총성이 겹쳐서 울렸다. 이백 보를 넘게 날아간 운총의 탄환은 일제히 척후병 넷의 몸을 찢고 내장을 헤집어 단순한 시체로 만들어 버렸다. 애초에 처음의 일제사격은 탄환을 넣지 않은 공포탄에 가까운 사격이니 맞을 이유도 없었다.

“모두! 진지를 다시 구축한다!”

“네 알겠습니다!”

“진지를 구축하지 않는 이들은 4명이 조를 이루어 물을 한 동이씩 퍼오도록!”

언덕 위에 있던 기병 중 궁기병들이 먼저 움직였다. 50인씩 조를 이루어 주변을 순찰하고 남아있는 척후병들을 찾아 죽이거나 쫒아냈다. 그와 동시에 개미떼처럼 언덕을 내려간 조선군들은 강까지 가서 물을 퍼오고. 언덕 위에 남아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삽을 들고 땅을 연신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본거지?”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갑자기 작전을 제안 하자 기묘하다 생각하였다. 딱히 군사 작전이나 편제와 같은 심오한 것에는 나서지 않던 이였지만. 그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고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참으로 신묘한 계책이 아닐 수 없었고 실패한다 하여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물과 흙만 쓰는 것인데 손해를 봐야 얼마나 본 단 말인가? 기껏해야 마방책을 몇개 못 만들어서 돌격의 피해가 커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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