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48화 - 갑사를 갑사답게(2) >
“작렬신기전(炸裂神機箭) 이라니. 신기전은 대 중 소 세 종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이 녀석은 본디 훈련도감에서 사용하게 만들 녀석이었습니다.”
표면을 만져보니 연철로 되어있고. 탄두도 묵직하고 흔들리는 소리가 나는 게 화약을 잔뜩 집어넣었다. 신기전 자체는 한 20근(12.8kg) 될 것 같다.
“본디 총통기화차와 신기전기화차를 사용하지 않나?”
“그래서 이 녀석이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총통기화차는 적의 진격을 저지한 후 오십 보 거리에서 탄환을 쏟는 역할이고. 신기전기화차는 적이 들이닥칠 때 삼백 보 거리에 신기전을 난사하지 않습니까.”
박강은 참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이론만 생각하고 만들어 보니 실전에서는 적용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훈련도감은 삼백보보다 적이 멀리 있을 때는 신기전을 쏘아 적을 돈좌(頓挫)시키고. 그보다 더 다가오면 보총수가 2열까지 나아가 지속적으로 사격을 하며. 적이 대오에 닿았을 때는 교전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적이 물러나거나 아군의 대열이 무너지면 총통기화차를 난사하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은 이걸 보시면…….”
박강이 가져온 것은 철판을 덧대서 내구성을 증가시킨 걸로 보인 나무판자를 엮어 만든 통이었다. 이거 설마 다발화전(多發火箭) 이야? 신기전의 할아버지쯤 되는 물건?
“다발화전이 아니오?”
“발사용 화통입니다. 다발화전을 참고하긴 했습니다. 이걸 들어서 읏챠! 이 안에다 넣고 심지를 돌려서…….”
박강은 몸이 큰 편이 아니었기에 그 거대한 화통을 옆구리에 끼자 몸이 살짝 기울었다. 이거 신기전에 화통까지 합치면 한 30근(19.2kg) 되겠는걸?
“옆구리에 끼고 쏘는 것인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는 시험해 볼 수 없으니 새남터로 가셔서 한번 시험해 보시죠.”
바로 말을 타고 새남터로 가서 군기시 병졸이 시험하는 것을 보았는데. 한 30도 정도 각도로 대충 겨누어서 심지에 불을 붙여 쏘니 화염이 치솟아 오르면서 앞으로 쭉 날아간다. 그리고 한 200보(약 360m)를 날아가서 박히더니만.
[쾅!]
흑색화약 특유의 연기가 많아서 확실하지 않지만 수류탄보다 좀 센것 같기도 하다. 그런 파괴력이라니 정말 굉장하긴 한데 이거… 바람도 없는데 옆으로 휘어서 날아갔잖아?
“위력은 굉장한데 왜 쓰이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군. 너무 부정확해.”
“바로 그것입니다. 신기전은 50발을 한 번에 쏘는 것이어서 400보 정도에서 적의 전열에 제대로 꽂히고 맞지 않더라도 충격으로 적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모래사장에 그림이 그려진다. 신기전은 명중률이 낮아도 사기가 확확 깎여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더라고. 폭발로 제대로 살상하려면 대신기전은 되어야 효과적이고.
“이 녀석은 단발로 쏘는 것이어서 그 거리에서 쏘려고 해도 이용법이 겹치니 문제입니다.
이론상 6000명인 부대가 있다 치면 3000명이 전투 병력이며 훈련도감은 이 중 중대장 역할을 해서 375명에 추가로 60명이 더 들어갈 수 있다. 화차를 가져갈 수 있으면 총통기화차 5문과 신기전기화차 5문 편제가 따로 들어가며. 화포도 쓰니까. 기능이 같은 걸 두 종류로 만들 이유는 없다.
“옳은 말이네. 하지만 조금만 더 개선한다면 쓸 방법이 있을 걸세.”
“네?”
“말안장에 하나를 엮어서 다니다 적의 기병에게 다가가면서 한발 쏘면 되는 것 아닌가?”
박강은 말은 타본 적 있지만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말안장 앞뒤에는 무기를 많이 걸어두잖아. 그렇지 않다 해도 등에 묶어두고 돌려서 심지에 불을 붙이면 되고. 남북전쟁 영화에서는 말안장 앞에서 예비용 소총을 꺼내 장전하고 쏘더라고.
“길이는 조금 줄여도 될 것이고. 정확성은 한 이백 보 거리에서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만 하면 되고. 오히려 폭발력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겠군. 기병은 거대한 면끼리 부딛히는 것이니 피할 겨를도 없을 걸세.”
깃펜을 들고 간단히 요점을 적어주었다. 앞의 탄두를 주물로 형태를 잡은 얇은 주철을 쓰되. 표면에 요철을 넣어서 파편이 많이 튀게 만들고. 속에는 철편을 넣고.
“화약이 반근이나 들어가는 무기인데 이것을 대량으로 만든다면 어디에 쓰시는 겁니까?”
“한 백 개 정도만 만들고 기마갑사들이 적 기마병과 싸울 때 쓰도록 하면 좋겠지.”
“연습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것이야 탄두를 점토로 만들어 무게만 맞추어 발사연습만 시키면 되는 것 아니오?
연습용 수류탄은 무게만 비슷한 점토재질로 만들어 사용하니까. 박강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인사만 마치고 바로 군기시로 향했다. 저 양반 저거 대체 뭘 만들지 궁금한데.
----------
갑사의 기본적인 틀을 뒤엎을 생각까진 없었다. 3교대는 그대로 유지하되 상번은 근무를, 하번을 반으로 나누어 중번을 따로 두었다. 한 달에 10일 훈련 10일 근무 10일 휴무다. 이 훈련은 당연히 잘 하는 자에게 봉급을 조금 올리는 등의 이득도 준다.
병조판서 김효성을 시작으로 한 관료들은 새남터에 훈련장을 만들고. 갑사들을 아침 일찍 모아와 저녁 늦게 돌아가게 하고. 식사까지 책임질 수 있게 했다.
“끌어! 당기란 말이다!”
“끄랴아앗!”
썰매 형태로 만든 틀에 돌 여러 개가 들어갔다. 무게는 대충 쌀 한 섬 정도로 맞춰놓고 여기에 밧줄을 걸어 당기고 몸으로 미는 훈련. 현대에서는 타이어 풀, 타이어 푸시인데 여기서는 크고 무겁고 단단한 타이어가 없으니 이렇게 석교만(石䢪挽), 석교제(石䢪擠)로 대신했다.
“남자의 생명은 하체이며 남자의 몸은 널찍한 등에서 시작된다!”
“그렇습니다!”
“같은 고생을 할 바에야 더 어께가 넓고 등이 두툼한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옳습니다!”
갑사들이 처진 것은 사실이다. 체계적이고 현대적인 체력훈련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훈련도감과 비교하면 처지는 건 당연하지. 애초에 체계적인 훈련법을 돌린 것이 아니니까.
“확실히 무기를 잘 휘두르던 자들이. 훈련도 잘 따라오는군요.”
“이 훈련을 잘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간단히 보자면 화포를 제외한 모든 무기는 당기는 힘과 휘두르는 힘 그리고 악력 세 가지로 구성 되는 것이니.”
스포츠 과학이 발달된 현대 기준으로 보면. 근대까지의 대부분의 무술 유파의 비결이니 특유의 훈련법이니 하는 것을 다 조합한다 해도 동네 체육관의 관장이 가진 지식에 못 미친다. 나야 보디빌더지만 곁가지로 배운 것이 몇 개인가?
“허리와 손의 힘이 아니다! 허벅지부터 모든 힘을 끌어올려라!”
“우리야아아아앗!”
“잘 했다 한 번 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불꽃처럼! 할 수 있다!”
한 쪽에서는 통나무 그루터기를 뽑아 잔뿌리를 빼고 가공한 녀석을 넘기고 있었다. 이것도 타이어 넘기기에서 창안한 건데 타이어가 없으니 참 아쉽다. 그루터기 뒤집기라는 뜻의 벌근전복(伐根顚覆)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고작 한 달이 지났는데 몸이 정말 빠르게 달라지는군요.”
“아마 석 달은 이렇게 몸이 불어날 것이오. 지금까지 잃어온 것을 되찾는 것이니.”
“잃어온 것을 되찾는다. 옳은 말씀입니다.”
갑사의 초모시험 기준은 현대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빡세다. 장구를 완전히 갖추고 활쏘기, 마상사격, 삼백 보 달리기인데 말이 그렇지 군대 완전군장보다 더한 찰갑까지 입고 달리기다. 이걸로 540m정도를 뛰라는 소리니까. 애들 슬슬 힘 빠지고 있다 또 힘 북돋워줘야지.
“지금 흘리는 땀 한말이 외적들이 흘릴 피 한 되가 될 것이다! 기쁘지 않나!”
“기쁩니다!”
“아니 되었다. 벌써 안색이 이러니 열에서 빠지도록.”
가끔 높으신 분 앞이라고 억지로 힘을 쥐어짜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구석에서 적당히 쉬게 만들고 다시 훈련에 집어넣는다. 정신론이고 뭐고 정신력이 밥 먹여주나. 각 FM대로 완벽히 잡는다고 쌀이 생기냐? 제식훈련도 명령 하달과 반응속도 위해서 한 거니까. 무리할 필요는 없다.
“훈련도감은 분명 초모와 기초 훈련을 제외하면 거의 반년을 훈련하지 않습니까? 훈련의 양이 부족하지 않을 까 합니다만.”
“반대로 생각해 보시오. 도감군은 백지에서부터 시작하는 자들이오. 반면 저들은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말을 타고, 활을 당기며 초모에 응하였는데 어찌 같게 볼 수 있겠소?”
김효성은 이제야 완전히 이해한 것 같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귀찮게 안하고 돌아다니면서 훈련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간다면 갑사는 정예 기병의 편제 명칭정도로 남겨두던가 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넌 또 뭐야? 왜 쉬게 해줬더니만 나를 보고 있어? 그것도 내 손을.
“대군어른께서는 훈련법을 이리 잘 만들면서 병장기를 다룬 굳은살이 없습니까?”
“아? 음 그렇다네. 활이야 그럭저럭 쏠 줄 알지만 나머지는 제대로 못하지. 어떻게 하는지만 알고 계속 병기를 다룬 적은 없었다네.”
“그것 참 신기하군요.”
“이론과 실전은 다른 것이라네. 제갈공명이 싸움을 잘 한건 아니지 않나. 그는 지휘를 잘 했으니까. 나처럼 훈련만 잘 시키는 자도 있는 법이지.”
신기하더라도 별 수 없어. 애초에 보디빌더로 시작한 몸이니까 실전에서는 젬병이지. 일반 병졸이나 갑사 혹은 훈련도감 출신 한명정도야 완력차이로 어찌 해 볼만한데. 일당백? 그런 건 정말 불가능하다.
----------
여진족의 사신 속에는 올량합의 일파 오도리(吾都里)의 만호이자 명으로부터 건주좌위도지휘사(建州左衛都指揮使)의 작위를 얻었던. 충샨(充善)이 있었다. 조선은 오도리를 번호(藩胡 - 북쪽 변경에 살며 복속한 야인) 부족으로 취급하였기에 여기까지 신분을 적당히 속여 들어올 수 있었다.
“그건 대체 뭐란 말인가?”
“염려치 마십시오. 조선이 설마 우리에게 쳐들어 올 리가 있습니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들려온 말이 뭔지 못 들었어?”
이 멍텅구리들 같으니. 한숨을 쉬는 충샨은 조선 왕의 생각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조선의 기병들은 제법 약해졌다지만 ‘앞으로 더 강해질 예정이니까 개기지 마라.’ 라는 뜻이겠지.
“선대께서 하신 이야기를 너무 귀 기울여 듣지 마십시오. 조선은 나약해졌습니다. 새로운 왕이 들어서고 그 다음 왕이 들어서면서 저희를 무엇으로 보고 있습니까? 토벌할 대상으로만 보지요.”
“그럴 리가 있나. 조선 왕이 살이 두툼하다면서? 직접 보니 아니더군.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도 쉽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살집만 부풀어 있던 왕이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직접 보니 그저 약간 군살이 있을 뿐 덩치가 큰 편이었다. 오히려 그 나이에 비교하자면 건장하다 볼 수도 있었고. 장남이라는 자는 그 옷깃 아래로도 제법 몸이 튼실한 것이 보였다.
사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왕이 훈련을 한번 보고 가라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정말 믿지 못할 것을 보았다.
“하긴 그 몸은 정말.”
“그래 크고 아름다웠지.”
앞에서 말을 타고 시범을 보인자는 임영대군이라 하였던가? 자신들과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자였다. 그리고 벌어진 시험에서 사람들이 탈락하자 그 앞에 서 있던 덩치 큰 자가 웃통을 벗었다.
그 순간 모두가 등판을 보면서 숨이 막혔다. 멀리서 보았지만 등판이 남들의 한배 반은 되 보인다. 뛰어난 근력은 누구에게나 추앙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천하의 대장군 감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왕의 둘째인 수양대군이라 하였는가?
“그 모습을 보면서 가별초(家別抄)가 생각났어.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들었나?”
“듣지 못했습니다.”
“삼천이나 되는 거대한 무력집단이지. 수많은 족장들이 이성계의 의형제와 친인척이 되어 그들과 같이 행동했지. 그 모습이 조만간 조선에서 다시금 나타날 것 같은데.”
이성계는 없다. 조선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일 뿐 예전처럼 포용하려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다. 이름만 남은 이성계의 위업은 서서히 갈등으로 덮어씌워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저러한 걸물이 나선다면? 다행히도 조선의 소식은 한 줄기를 건너서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만주의 최후까지도 완전히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자신과의 연이 닿은 부족민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조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니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달려온다.
“손님이 와 있습니다.”
“손님? 누구란 말인가?”
이 시기에 손님이라. 9월이 다 되어가는 시기이고 아직 전쟁을 벌일 시점은 아니다. 그리고 정말 만나기 싫은 족속들을 만났다. 허수아비 칸의 부하 놈들.
“일주일을 넘게 기다렸는데 조선에 다녀왔다고? 마침 잘 되었군.”
“한(칸)께서 저 같은 미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니. 영광이 따로 없군요.”
“미천한 자라? 웃기고 있군! 우량하이(올량합의 몽고어 표기)의 만호이면서.”
지금에야 의미가 많이 퇴락되었지만. 한때 우량하이로 불리었던 이 올량합 여진족은 몽고의 영향을 크게 받은 동방삼왕가(칭기즈 칸의 동생 혈통)의 직신에 가까웠다. 그래서 미천한 자라 비꼬았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칸께서 너에게 지시하실 것이 있다 한다. 게르로 들어가자.”
“아주 중요한 이야기군요. 이것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 지는 저 수레바퀴가 이야기 해주겠군요.”
그놈의 허수아비 한(칸)놈이 대체 뭔 소리를 하려고 사람을 보낸 것인가. 그리고 이다지도 고압적으로 나오는 것이 대체 무슨 일인가.
“조만간 조선을 칠 것이다.”
“네?”
“오이라트의 에센 태사는 서군을 이끌고 북경을 공격할 것이며. 우리는 전력을 다해 조선으로 원정을 갈 것이다. 네 녀석이 첩자 노릇을 해야 할 것이다.”
“오천정도만 끌고 그런 짓을 하실 겁니까? 그러시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사만이다. 네놈의 부족이 낀다면 사만 오천이 되겠지. 그러니 조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조리 알려라. 특히 네 주변에 살던 이만주 녀석이 어떻게 토벌되었는지는 알지 않는가.”
사만,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랐지만 타이순이 에센과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은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만의 병력 아니 타이순의 세력은 고작해야 이만을 보내는 것이 한계다. 오이라트 동군까지 연합한단 말인가?
“한이 그렇게 나선다면 조선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려야 하겠지요. 조선은 이번 원정에 이만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강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 더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중요했다. 그 날 게르 안의 등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조선의 군대는 이만주를 잡기 위해 이천이 넘는 탈락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자들 또한 여진족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풀려나야 했지요.”
그리고 아주 확실한 기준점이 충샨에게 존재했다. 명은 절대 패하지 않고. 설령 패배한다 한 들 금새 설욕할 수 있다는 기준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