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8화 (48/573)

< 1장 47화 - 갑사를 갑사답게(1) >

군기시에서 일하는 박강에게 기병용 머스킷인 기병총의 개념을 알려주자 황당해 하면서도 좋아한다. 부싯돌부터 시작해서 온갖 개념이 다 들어간 것이니까 보물창고 같겠지. 시제품이 나올 동안 원정 다녀온 갑사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물어봤는데. 충격적인 대답이 섞여 나왔다.

“그것이 말입니다. 녀석들이 저희가 죽어라 고생하고 갔는데 멱을 감더군요.”

“그래 청결함은 좋은 것이지.”

“그런데 말입니다. 그 훈련도감이라는 녀석들의 몸이.”

갑자기 웃통을 벗는 갑사를 보면서 뭔 소리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지금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다. 특히 벌크업 개념은 아예 모른다! 아름다운 근육미 같은것도 모른다!

“비교해 보니 뱃살도 나와 있었고 몸도 튼실하지 않았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네는 용력이 있어보이긴 하는데 군살이 좀 있긴 하군.”

바로 그거지. 그냥 대놓고 무기만 휘두르면 근육이 예쁘게 안 붙는다. 힘을 끌어내기 위한 뱃살도 상당히 있고. 단순히 운동만 시킨 것도 아니고 약간의 양생(벌크업)을 위한 보디빌딩과 복근운동도 넣었지. 나처럼 무식하게 근육이 많으면 몰라도 적정한 수준의 벌크는 좋다.

“그런 몸을 보니 남자로써 패배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말을 참고하겠네.”

설문조사는 끝났고. 이징석이 아니더라도. 갑사와 함께 움직인 김효성 또한 갑사들의 전투력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다 한다. 탐관오리 놈은 내버려두고 판서인 김효성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아 보여서 세종대왕님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신다.

“좋구나. 이번에는 김효성의 자문(諮問)으로 네가 움직이면 좋을 것 같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이전처럼 미숙한 수를 써 훈련도감에서 벌였던 일을 또 벌이지 말거라.”

김효성이 우선 나서니까 절대로 안 그럴 생각입니다. 아마 세종대왕님도 지금 갑사들 꼴은 대충 알고 계셔서 오히려 반기는 눈치이고. 나는 자문으로만 활동할 뿐 전면에는 나서지 않는다. 훈련도감 때도 미리 알고 이렇게 행동할 걸.

----------

갑사들은 한양 일대에 3000명이 있다. 보통 한 달 30일 중 10일씩 근무를 서니 이를 상번(上番)이라 하고 2000명은 하번(下番)으로 집안일을 하거나 심지어 장사를 하고 농사를 짓는 자들도 있었다. 이 시대에는 훈련도감이 이례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무작위로 500명을 뽑아보니…….

“이게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김효성도 참담하다는 눈치이다. 500명을 불렀는데 온 인원은 440명이다. 이건 이해가 된다. 아플 수도 있잖아? 그래서 소집할 때 제반 장비를 다 챙겨오라 하였는데 장비를 전부 챙긴 인원은 200명이 채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번 정벌은 그렇다 해도 대체 뭘 어쩌자는 것이지? 이러다 오랑캐 놈들이 한 오만정도 몰려온다면 싸울 수 있는 이가 몇이오?”

“서로 장비를 순번마다 빌리는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녹봉을 받으면서 상황이 이렇다고?”

모르는 척 화를 냈다. 훈련도감에서 피갑은 몰라도 무기는 1년마다 교환의 형태로 나눠주는 것은 무기 팔아먹지 말고 돈 적게 받은 만큼 국가에서 추가로 지급해주는 복지개념이다. 그런데 갑사는? 그딴 것 없다! 그리고 얼마동안 관리를 안했더니 이 꼴이다!

“이런 것을 보이니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알면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니오! 훈련도감처럼 무기를 지급하되 녹봉을 깎는 것이 능사일수도 있고. 그리고 이게 환도요? 단도이구만!”

한 갑사의 손에 들린 환도를 받아서 뽑아보니 날 길이가 황종척으로 1척이 안 되었다.이 칼 딱 봐도 손잡이가 삭아 있잖아?

“자네 이 칼은 어디서 빌린 것인가.”

“그것이…….”

“내 분명 내금위와 군직에 종사하는 이에게 묻고 확인해 본 것인데. 칼날이 최소 황종척으로 한자 반(51.8cm)을 넘어야 적과 싸우기 쉽고. 가급적 그 이상이 되라 하였거늘!”

혹시나 몰라서 옆에 있는 갑사에게 제대로 된 환도를 빌려서 서로 부딪히니 바로 칼날이 나가 버렸다. 애초에 재질이 연철이고 날도 안 세운 거잖아?

“이 장난감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것은 병졸들이 쓰는 칼이 아니지 않나!”

“죄송합니다!”

환도가 없어서 연습용으로 날도 세우지 않은 환도를 빌려 온 것이 분명하다. 아 이거 장비를 이렇게 관리하면 정말 안 되는데. 결국 김효성의 화가 폭발했다.

“네 녀석들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조만간 모두 불러 모아 무구와 장비를 확인하고. 없는 이는 올 해의 녹봉을 깎고 규정된 물건을 강제로 지급할 것이다. 아니 추후에도 이렇게 하도록 주상전하께 말씀 드릴 것이다!”

어, 그거 훈련도감이잖아. 녹봉 적은대신 무기만큼은 주는 것.

“또한 여기 계신 수양대군 어른과 뜻을 맞추어 네놈들의 썩어빠진 심신(心身)을 새로 태어나게 하겠다! 나 또한 병조판서로 일하며 훈련도감의 훈련법을 알고 있는 바이다!”

어, 그것도 훈련도감이잖아. 애들 죽어라 굴려서 몸부터 만드는 것. 이러면 갑사 강화가 아니고 훈련도감2가 되겠는데? 특성화를 시켜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보름 뒤! 일제 점검에 들어갈 것이니. 그 때에는 전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마(戰馬 - 전투용 말) 까지 탑승하고 새남터로 집합하라!”

웅성웅성 거리는 갑사들을 돌려보낸 다음 김효성을 비롯한 병조 신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군대라는 것은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죽여야지.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은 안 된다.

“훈련도감의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방식에 기마를 섞는다면 어떨까 합니다만.”

“난 반대요, 갑사는 갑사고 훈련도감은 훈련도감이지.”

김효성이 생각에 잠겼다. 갑사(甲士)는 특전부사관 개념의 부대이다. 기본적으로 종8품의 부사정 직책을 부여받는 자들이며 부유한 자들을 뽑는다. 궁시를 잘 할 줄 알고 기마갑사(騎馬甲士)는 말을 타야 하니 훈련도감같이 몸 하나만 보고 뽑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훈련도감은 진짜 부사관 개념의 부대이다. 훈련도가 워낙 높아져서 전투능력이 이 시대에는 최상급으로 높아져서 그렇지. 실제로는 보총수와 단병전을 위한 부대 딱 두 종류만 있으니까 많이 부족하다. 드디어 김효성이 차이점을 알아냈군.

“궁시와 기마라면 확실히 양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요?”

“그렇소. 말을 탄 경험만 쌓게 하느니 기병을 초모 하는 것이 백번 좋소.”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기마와 궁시 위주로 훈련하실 것입니까?”

승마는 굉장히 고차원적이고 돈이 썩어 넘쳐야 하는 운동이다. 지금 말 값이 조금 내려서 품질이 좋은 녀석이 쌀 20섬인가? 이 녀석에게 콩대나 보리 혹은 건초를 먹여서 제대로 기르려면 일 년에 마리당 쌀 5섬이 또 날아간다. 말이 컨디션 문제도 있고 수명 문제도 있으니 최소 2~3마리를 길러서 굴려야지.

초기 투자비용 60섬에 일 년 당 15섬을 말의 먹이로 날려야 하니 갑사가 8품부터 시작하지. 자기에게 맞는 말을 잘 관리하면서 호흡을 맞추길 몇 년간 반복해야 말을 좀 탈 줄 알게 된다. 궁시도 마찬가지이다. 활의 가격과 화살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장난이 아니다.

“정확히는 기마와 궁시를 잘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드는 것이지.”

“기마와 궁시를 잘 하게 하는 훈련법이 있습니까?”

“입신체비서를 만들면서 일전에 즐겼던 궁시와 기마에 대해서도 알고 있소. 다만 훈련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게 하려면 준비 작업이 필요하지. 사람을 좀 불러 주시오.”

----------

근무 중인 갑사들을 제외한 2000명이 새남터에 일제히 모이니 나름 장관이다. 다들 말을 타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지. 그런데 저 멀리서 쳐다보는 여진족들은 또 뭐야?

“병판대감. 저 달자들은 누구요?”

“북방에서 이만주와 적대하던 부족들이 감사의 말을 전하며 입조(入朝) 하려고 내려왔다더군요. 그래서 주상전하께서 훈련을 보라 하셨습니다.”

“앞으로 볼 것은 좀 문제가 될 것들인데.”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군어른께서 눈에 차지 않을 뿐이지. 여진족 따위는 손쉽게 도륙낼 수 있는 자들입니다..”

날 태운 말이 벌써 힘들어 하면서 푸르륵 거린다. 그래 내 몸이 미안해. 체중 근육질로 120kg 좀 안되고 안장에 기본 갑주까지 합치면 140kg이야. 날 태우려면 체중 1톤 나가는 샤이어종은 써야겠다. 말이 지쳐 쓰러질지도 모르니 김효성과 같이 훌쩍 뛰어내려 단상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래 다들 말은 타고 있군. 장비가 비어있는 자는 모자란 장비를 호명하는 대로 앞으로 나와 질서 있게 받아가도록. 우선 환도!”

“환도 받아 가십시오!”

제식훈련을 눈대중으로 봐서 오와 열을 맞춰 서있던 갑사들은 말에서 내려 장비를 받아가고. 자신의 군표를 제시하여 이름을 적었다. 그렇게 장구를 하나하나 갖추는 것도 한세월이다. 다들 시벌 거리는데 니들 원래 군법을 어긴 죄로 곤장부터 시작이야. 어서 감히!

“그래 군인이 자고로 이래야지. 다음은 안평대군 어른께서 너희들이 오늘 시험해 볼 동작을 선보이실 것이다!”

“이 자들 앞에서 기마갑사가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을 보여 주거라!”

“알겠습니다! 마상재(馬上才 - 말 위에서 펼치는 무예) 까지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 못한다면 기마갑사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지나친 고난이도는 갑옷과 장비를 챙겨 입은 사람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묘기이다. 재주와 전투는 동일하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현대에서 보았던 승마경기를 참고해 장애물 비월(飛越 - 넘기)과 마상궁술 그리고 마상 창술로 정리하였다.

“우선 이 목책을 넘는 것으로 시작이다! 가자!”

안평대군은 말을 잘 타던 녀석이니 손쉽게 여러 종류의 장애물을 뛰어넘고 옆으로 피하면서 날뛰었다. 다음에는 가운데 있는 허수아비의 주변을 빙빙 돌며 다섯 발의 궁시를 전부 꽂아 넣고 안장에 들려있던 창을 말 위에서 던져 과녁에 박아 넣었다.

“이것을 행하지 못하면 기마갑사로서 있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전원 순서에 맞추어 시행하라!”

그래도 절반 정도는 이걸 따라할 수 있었다. 여섯 개나 만들어진 시험장은 가끔가다가 넘어지는 자나 화살을 맞히지 못하는 자. 창을 제대로 날리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초토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래밭 위어서 뼈가 부러진 자는 없어서 다행이다.

“절반 정도가 통과했군. 대군어른께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나는 말을 타지 못하니 별 방도가 없지 않소. 말의 허리가 꺾일 거요.”

“아… 그렇다면 안평대군 어른께서 보신다면 어떻습니까?”

“제 어린 시절보다 못합니다.”

눈치 더럽게 없는 동생아. 일단 상황을 수습하고 훈련에 들어갈 이유를 만들자. 다들 자신들이 못한다는 것을 눈치 챘으니까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럴 때는 목표의식을 심어주면 충분할 거다.

“사내로 태어나서 자신들이 나약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디 그대들은 초모에 응할 때만 하여도 강인한 자들이었다. 이 몸을 보라.”

“아이고 대군어른!”

“형님 여기서 좀!”

갑옷을 벗고 웃통을 훌렁 까서 근육을 부풀렸다. 그러자 탄성이 터져 나오고 어디서 끈적끈적한 시선이 느껴지는데? 누구지?

“이 몸을 보라. 그대들이 이 몸의 절반만 따라 온다면 세상에 당해 낼 자들이 없을 것이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진중에서 터져 나왔다. 좋아! 이 정도의 반응이면 교대로 훈련을 시켜도 뭐라 군소리를 하지 않겠지. 그런데 이 끈적거리는 시선은 뭐란 말이지?

----------

그렇게 한탕을 뛴 다음 군기시에 돌아왔다. 중간 점검을 하러 왔는데 박강이 벌써 시제품을 만들었나? 내 눈앞에는 용기병들이 쓰던 수발식(燧發式) 기총(騎銃)이 놓여 있었다. 주둥이가 넓은걸 보면 꽤나 생각이 깊네. 말 위에서 장전하기 힘드니까 이렇게 했겠지.

“벌써 완성이 된 건가?”

“완성은 되었는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황철석도 잘 물려져 있고 무게중심이 안 맞고 무거울 뿐이지 잘 되어있는데. 하지만 몇 번 방아쇠를 당겨보니 답이 나온다. 틱틱 거리면서 불이 잘 안 올라온다.

“이거 자연동(황철석) 맞소?”

“맞습니다. 분명히 자연동이고 강철 토막에 할퀴면 불길이 올라와야 정상인데 기총으로 만들어 두면 그렇게 안 됩니다.”

가죽으로 꽉 잡아뒀으니 빠져나갈 일도 없는데 방아쇠가 조금 헐렁하게 움직인다. 아직 여물지 않은 기술력으로는 무리구나! 자연동이라고 해서 진짜 동 광석을 사용 했나 착각했는데 이 시대에는 자연동 = 황철석이 맞더라고. 나중에 가서 산골(山骨)로 명칭이 바뀌는 그 것.

“정교하지 못한 것이 한이구려. 그렇다면 방법이 자연동과 자연동을 서로 부딪치게 함은 어떠한가.”

“지금 구할 수 있는 자연동을 계속 토막 내서 얻어낸 불씨가 가장 크게 올라오는 조각입니다. 저희도 방도를 모색하여 자연동끼리 부딛혔는데. 그리 하여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품질이 안 좋은 것인가?”

박강의 고개가 끄덕인다. 황철석에서 유황을 얻어낼 수 있어서 좋아했더니만 품질이 너무 구려서 부싯돌로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플린트락 구조에서는 부싯돌로 못 쓰겠지. 그냥 손으로 하면 어떻게든 가능하고.

“이 기병총 하나에 공임이 너무나 많이 들어갑니다.”

“얼마나 되는 것이오?”

“열섬은 확실히 넘습니다.”

가격이 떨어진 연철 총열 보총이 개당 쌀 여섯 섬, 소수가 생산되는 강철 총열 보총이 쌀 열섬, 운총이 쌀 스무 섬인데 이게 보총가격이라고?

“거기다 억지로 계속 쏘아 보았는데 내구성이 매우 부족합니다. 30발을 쏘면 총이 갈라집니다.”

“작게 만드니 압력이 집중되어서 그런 것이겠지.”

이쯤 되면 운총 가격의 거의 2배다. 운총은 시험사격 때 100발을 쏴도 멀쩡했으니. 그런데 이 녀석은 총열 수명은 따로 부싯돌 수명도 따로 들어간다.

“몇 년 정도 계속 시험해 보면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소. 우선 수발식(燧發式) 보총과 기총은 계속 개선해야 겠군.”

애들은 훈련시켜야 하는데 좋은 무기가 없네. 좋은 무기가 없어. 그냥 기마총병으로 할까? 아니다 그럴 바에는 활을 쏘게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거다. 뭔가 커다란 한 방이 필요해 하고 군기시를 돌아다니는데 저건 뭐지?

“저건 뭐요?”

“작렬신기전(炸裂神機箭) 말씀이십니까?”

이걸 대신기전이라 봐야하나 콩그리브 로켓이라고 봐야하나. 종이로 만든 신기전과는 달리 탄두가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왜 이리 크기가 작아? 탄두는 무진장 크고 추진체는 작은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