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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46화 (46/573)

< 1장 45화 - 이만주 토벌(2) >

6월 11일. 이징옥이 이끄는 좌군은 마침내 이만주의 거처 남쪽의 산까지 도달했다. 낙오자가 몇 생겼지만 합류한 여진족들이 말을 몇 필 빌려주면서 어떻게든 온전히 이동할 수는 있었다.

“다들 힘들지 않나?”

“죽겠습니다. 제가 지게꾼 노릇하면서 문경새재도 하루 만에 올라간 적 있는데 이건 그렇게 열흘을 움직였네요.”

“삯은 쌀 다섯 말을 질 좋은 쌀로 따로 챙겨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보급은 아직까지 부족하진 않았다. 이징옥이 따로 고용한 함흥 일대의 지게꾼들 덕분이었다. 보인들이야 짐을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토록 먼 거리를 움직이려면 지게꾼들 보다 못하니. 오히려 말들이 구릉지를 올라가다가 다리를 다치는 경우가 생겼다.

“장비 확인하도록.”

“자루 확실히 점검해. 자루 부러지면 끝장이야!”

도감군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보총수들은 준비한 종이에 화약과 탄환을 뭉쳐 전투 준비를 하고. 다른 병력들은 무기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해가 질 무렵에 정찰을 나선 이들이 다급히 산 아래의 본진으로 달려왔다.

“이만주가 움직입니다.”

“뭐?!”

정찰병의 말에 이징옥은 도주를 염려하였으나 연이어 들어온 보고는 이만주의 부락에서 200정도의 병사들이 말을 타고 서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이었다. 분명 개원 방향이겠지.

“우군이 들킨 모양이군.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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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개원 방면에서 조선군이 목격된 이후. 이만주는 이백의 부하를 보내서 시간을 끌게 했다. 총 병력이 확실히 천이 넘으니 이 부족으로서는 버티지 못할 숫자였다.

“짐을 싸서 언제든 내뺄 준비를 해라. 곡식이야 깊숙하게 파묻고 가면 건질 수 있고. 농사는 아까 워도 그냥 버려라.”

“조선 놈들입니다! 산 위에서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조선 놈들은 지금 한창 보낸 애들과 치고받고 싸울 것인데!”

다급한 외침에 집 밖으로 나온 이만주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화포도 아니고 명적(鳴鏑 - 신호용 화살)의 귀를 찢는 소리도 아닌. 날카로운 새소리였다.

“저놈들이 산을 타고 내려온다!”

“이 미친놈들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조선군은 급작스럽게 등장했다. 이상한 새소리(호각소리)가 길게 두 번 울린 순간. 산의 언덕을 날 듯이 밟아 내려오면서 대열이 갖추어졌다. 맨 앞에는 원패를 든 방패수부터 시작하여 방진을 짜서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기병은 없는 것 같습니다.”

“숫자는 한 오백정도 되는 것 같으니 말을 타고 쓸어버리면 된다!”

이만주의 머리는 이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돌아갔다. 당장 내 빼야할까? 적의 수는 500은 확실히 넘지만 1000명에는 모자란 것 같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싸울만한 사람으로 500명. 보병과 기병의 차이를 생각하면 그럭저럭 싸울 만 해 보였다.

“저 뒤에 있는 놈들은 뭘까요?”

“궁병 아닐까. 조선 활은 비에 약하니까. 여기까지 비를 맞고 오면서 활이 풀려서 못 쏘고 짐꾼이나 하는 것 같군. 그 앞에 선 놈들은 예비대겠지.”

다들 무기를 들고 말을 타려는 순간이었다. 말을 향해 달려가던 이 중 한명이 벼락을 맞은 듯 풀썩 쓰러져 버리고 말들의 몸에 뇌수와 피가 튀었다. 유목민족의 뛰어난 시력으로 저 멀리서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본 이만주는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머리가 터져 버렸어.”

미니에탄. 문종과 수양대군이 창안한 괘종탄(掛鐘彈)이라고 불리는 탄환이 보총보다 크고 무거운 운총에서 뿜어져 나왔다. 장전시간이 오래 걸리고 총 자체도 무거운 탓에 소수의 특등사수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단점은 무시할 수 있었다.

“꺼억…….”

“아아아아악! 팔! 팔! 내팔!”

충분한 총열의 길이, 정확도를 높이는 강선, 그리고 공기저항을 줄인 원추형 탄이 결합되니 150보(250m) 거리에서 사람은 쉽게 노릴 수 있었다. 머리에 맞으면 머리가 으깨져서 박살나고. 팔에 맞은 자는 팔이 떨어져 나가고. 배에 맞은 자는 내장을 토해내면서 쓰러졌다.

“말들! 말들을 어떻게든 풀어놔! 젠장!”

“방패 들고 가면! 으악!”

“방패도 뚫다니 저게 대체 뭐야!”

보총의 사격도 만만치 않았다. 사거리가 짧은 편이지만 그것은 충분한 수와 빠른 장전으로 메꿀 수 있었다. 본격적인 전투 이전에 말들을 노려 5인 1조로 쏟아 부은 보총사격은 나무판 정도는 쉽게 뚫을 수 있었고. 마갑과 들이댄 방패도 가리지 않고 사람보다 거대한 말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저 위에 있는 것들 아니야? 그럼 뭐야!”

“저도 모릅니다! 저거 연기가 나는 것이 화포 아닙니까?”

“그래 화포다! 화포라면 붙으면 쏠 수 없어! 궁시면 위로 날아가지만 화포는 곧게 날아가니까! 다들 말을 보호할 생각 하지 말고 최대한 조선 놈들에게 달라붙어라!”

아직은 싸울 수 있다. 저들의 공격이 미치지 않는 북쪽의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보고 말을 타서 달려올 것이다. 난전으로 조금만 시간을 끌고 200기의 기병으로 뒤부터 덮친다면. 그렇게 된다면!

“추장님 말 여기 있습니다!

“지금 바로 달려가서 저 뒤에 화포를 쏘는 놈들을 덮친다! 그 다음에 조선군 방진의 뒤를 치는 거야!”

“추장님은요!”

“난 아녀자들을 데리고 활로를 찾겠다. 녀석들은 산에서 내려왔으니 길 방향으로는 가지도 않았을 거다!”

말을 타기 전에는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했다. 사람이 들고 있는 작은 화포에 사람들이 맞아 죽어나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유의 폭발음이 들리지 않았다. 저 화포들도 화약이 떨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더 이상은 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앞에 방패든 놈이랑 창든 놈 이 한 겹 정도 있지만 다 쓸어버려!”

그 순간 다시금 귀를 찢는 새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입에서 짠맛과 비릿한 쇠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흙냄새가 느껴지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단 일제사격! 2열 사격개시!”

“사격 개시!”

뒤로 물러난 조선군 보총수들은 흑색화약 특유의 지린내와 매캐한 냄새를 느끼면서 다시금 기계적으로 보총을 장전했다. 조를 나눈 사격으로 근처 여진족들의 대응 체계를 망가트린 다음에는 적의 기마병을 막기 위한 2단 일제사격을 준비했다.

일제사격의 효율을 따라올 방법은 없다. 장전을 마친 상태로 대기하다. 최적의 사거리인 백보에서 호각소리와 동시에 사격을 시작했다.

“재장전 후 사격!”

“놈들이 달아납니다!”

진영이 붕괴되고 말과 사람이 엉켜서 진격을 멈추었다. 그 위로 다시금 쏟아진 일제사격. 도합 500발의 총탄이 쏟아지자 말과 기수들은 탄환을 맞고 고꾸라진 이가 반이었으며. 나머지 절반도 말이 놀라면서 상황에 대응을 못하고 넘어지거나 놀란 말에서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몇 명은 말이 질겁해서 도망치며 마을이 아닌 방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다시 분열하여 조별 사격으로 단병전을 지원하라!”

“네!”

훈련도감군 1인과 병사 2인은 3인 1조를 이루어 말을 탄 자, 활을 쏘는 자들을 찾아서 집중사격을 시작했다. 여기에 주변에 명령을 내리는, 높은 직급에 있는 자로 보이면 운총을 사용하는 특등사수들이 찾아내어 사지에 바람구멍을 내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한들 여진족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잘 하는 자들이었다. 토벌에 나설 때 주 전력으로 기병을 쓰는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단병전으로 나섰다가는 기본적인 육체 능력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조선군은 달랐다.

텅!

적당히 만든 커다란 몽둥이가 원패를 두들겼다. 등나무를 엮어 만든 예전의 원패였다면 조각조각 깨어져서 진형에 구멍이 뚫렸겠지만 참나무와 쇠로 만든 것이어서 멀쩡했다. 방패수의 피갑 안에서 두툼한 광배근이 어께를 밀며 힘을 발산했다.

틈을 파고든 원패가 여진족의 목젖을 올려치고 반대 편 손으로 잡고 있던 환도가 어께를 내리찍어 골제 갑옷을 부셔버렸다. 그 순간 잠시 열린 대열의 틈에서 단창이 뻗어져 나와 비어있는 배를 찌르고 숨통을 끊었다.

“좋았어!”

“다음!”

가끔씩 덩치가 큰 여진족 여럿이 방패수를 밀쳐내고 대열을 뚫으려는 순간도 왔었다. 그러자 창날과 거대한 미첨도가 날아들어 여진족이 피를 쏟으며 쓰러지고. 다시 방진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후방에서 날뛰는 말이 온다!”

“저건 열어줘! 들어오게 해!”

일제사격의 소음으로 놀라 날뛰는 말이 대열을 덮치려는 찰나. 방패수가 비키면서 공간을 만들었고. 기병 하나가 파고들어 버렸다. 그 즉시 날뛰는 말에 사방에서 장창이 박히고. 장검수 한명이 뛰어오면서 머리 위로 미첨도를 들어 올려 거세게 내리찍었다.

“기병 한노오오오오옴!”

뿌악. 사람 몸에서는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터져 나오고. 전력으로 휘둘러진 미첨도는 말에 매달려 있던 여진족 병사의 등줄기를 반으로 가르고. 말의 목을 깊숙이 썰어버린 뒤 말의 목뼈에 걸려버렸다.

“이놈들 말의 뼈가 좀 굵은 것 같은데?”

전투가 시작된 지 한각(1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여진족들은 조직적인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부교(副校)로서 전선 지휘권을 가진 홍윤성은 뒤의 만호(萬戶)가 부는 호각소리를 듣고는 명령을 하달했다.

“신호에 맞추어 분열 후 진격한다!”

명령을 다 내뱉기도 전에 방진의 병사들은 알아서 병종 마다 3인으로 조를 이루었다. 이미 훈련받은 대로 신호를 듣는 순간 이해한 것이다. 도망치는 여진족의 등 뒤로 환도가 날아들고 허리에 꽂아두었던 단창이 허벅지를 찍어버렸다. 이제 자신도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베어버릴 차례다.

“이만주 이놈은 어디 갔지? 벌서 도망친 것 아니야?”

저 멀리서 보총수들, 그리고 보총수를 보조하기 위한 예비대와 함께 있는 부장 박호문(朴好問)도 호령을 하며 진군을 명령한 듯 병사들이 점차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 비루먹은 말 같으니! 지금에 와서 힘이 빠지냐!”

“아버지 부족사람들은!”

“지금 저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이냐! 설령 이백을 따로 보내지 않았어도 이길 수 없었어!”

아직은 희망이 있었다. 저놈들은 서쪽에서 기병으로 한패, 남쪽에서 보병으로 산을 넘어 한패 그렇게 양 방향으로 이루어 기습한 것이다. 동쪽은 비어있겠지. 이미 가까스로 보낸 기병들이 쓰러진 순간. 아녀자들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부하 몇 명과 함께 동쪽으로 죽어라 뛰었다.

전력으로 달린 말들이 지쳤을 쯤. 좀 전까지 지겹게 듣던 화포소리와 함께 옆에서 달리던 부하가 고꾸라졌다. 그리고 저 멀리에는 절대로 보기 싫은. 쑥색의 옷 위에 갈색 갑옷을 겹쳐 입은 조선 군대가 있었다.

“이런 망할!”

“저놈이 이만주다. 쏴라!”

삼백 정도 되는 조선군들이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옆 부락에서 온 오십 가량의 여진족 들이 말을 타고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화살이 비 오듯 대열 위로 쏟아져 내리고 귓전으로는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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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새끼 끝까지!”

“께륵!”

가슴 위의 피갑에 꽂힌 골제 화살촉. 가까운 곳에서 쏴서 그런지 뼈로 만든 화살촉인데도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혔다. 제법 아팠지만 두터운 가슴근육 덕분에 치명상은 아니었다. 마지막 발악을 한 놈의 목에서 칼을 뽑은 정범수는 화살을 뽑아서 꺾어냈다.

“정 참교님 몸이 녹스셨습니다.”

“시끄러워. 이놈이 손이 떨려서 눈치 못 챈 거야.”

처음 분열하여 진격할 때는 제법 거세게 저항했다. 차라리 무기를 버리고 엎드렸으면 두들겨 패고 지나갔을 것인데 무기를 들고 덤비니 꼬박꼬박 박살났다. 대부분 방패수에 막히고 창수에게 찔리거나. 그것도 버틴다면 장검수가 마무리를 한다.

산발적인 저항도 없어지고 있었다. 가끔 화살을 맞은 자들도 있었고 대충 만든 철제 무기를 맞은 자도 있었다. 녹슨 쇠에 맞으면 쇠의 독이 올라 몸이 굳어서 죽는다고 하였던가. 아무래도 자신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상처를 긁어내고 주정으로 소독해야 하리라.

“이만주 어디로 갔어! 당장 불어!”

“도망치셨습니다! 그 분의 말이 사라졌다니까요! 동쪽으로 난 길로 향하셨습니다.”

“똑바로 안 불어?!”

거친 발길질로 여진족 아녀자들을 걷어차서 마을 한쪽으로 몰아넣었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고 여기까지 길안내를 해준 여진족 부락에 넘기고. 백 정도만 포로로 데려가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전투를 마치고 있는데 동쪽 길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악적 이만주를 잡았다!”

장대 위에 여진족의 머리가 매달려 있었다. 조선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본 여진족들은 싸울 의지조차 잃어버리고 무기를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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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움직여라!”

“우군장님 이대로 계속 가시면 다들 지쳐서 다시 기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이만주는 도망칠 준비를 마쳤을 것인데!”

이만주의 부하들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지형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화살을 날리기도 하고. 새끼줄을 말뚝으로 엮어 뛰쳐나간 창기병들을 넘어트리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이징석은 손해를 감수하고 전군 진격명령을 내려 일제히 포위하고 몰살시켰다.

“만에 하나 좌군이 벌써 마을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있을까?”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동생이 싫어도 어명은 지엄한 것이었다. 남에게 전공을 넘겨주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런 이징석의 우군 앞에 조선군 한명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우군장님이 오셨습니다!”

“자네들 누군가?”

“좌군 소속입니다.”

이미 보초를 세워 둘 정도라면 벌써 전투가 끝났단 말인가? 어떻게? 자신은 사흘간 죽어라 적들을 물리치고 달려왔는데 언제? 그렇게 부락 안으로 들어가자 그 곳은 축제가 따로 없었다.

“정강이! 정강이! 정강이! 정강이!”

“으럇차아아아아아!”

고함소리와 함께 여진족들이 쓰던 손도끼가 날아들어 이미 푸르죽죽하게 시반이 생긴 시체의 정강이가 잘려나갔다. 이미 시체라고 보기도 처참할 정도로 토막 쳐진 고깃덩어리였다. 그 모습을 본 이징석은 말을 거칠게 달려 군막으로 향했다.

“지금 대체 뭐하고 있나? 이만주는 어떻게 된 건가?”

“우군장님 오셨습니까.”

이징옥은 좀 전에야 몸을 씻었는지 상투 위에 수건을 덮고 있었다.

“그래 지금 막 도착했네.”

“저희가 막 도착할 무렵 우군이 행동을 개시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이만주의 세력이 혼란에 빠져있는 틈을 타 저희가 기습하였습니다.”

태연하게 공을 돌리는 동생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과 굴욕감이 밀려올라왔다. 자신은 기껏해야 200의 적병을 때려눕혔을 뿐인데 이 녀석은 보병으로 더 험한 길을 걷고 더 많은 적을 죽였다. 쌓여있는 시체더미만 봐도 칠백은 족히 되어보였다.

“그대의 공이 크네.”

“이제 귀환하면 될 것입니다. 심양에 들려 이만주의 목을 전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런데 어지간하면 시체는 더 토막 내지 말고 그대로 관에 넣게. 그래도 명에서 작위를 받은 자이니. 그리고 뭔가 없는데.”

“무엇 말입니까?”

이징석의 눈이 이만주의 부락을 훑었다. 어디를 봐도 모닥불을 펴고 있는 조선군, 옷을 빨고 있는 조선군, 강에서 석감으로 멱을 감는 조선군이 보였다.

“말은 어디 있는가?”

“아 그것이, 저희는 기병이 없어서 말을 탄 적을 만나면 골치가 아프니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 말을 다 쏴서 죽였습니다.”

- 키야 술맛이 더러운 데 말고기는 죽여주네! 살살 녹는다!

집 안에 있던 술과 고기를 곁들여서 술을 먹는 조선군도 보였고. 죽은 말의 시체에서 가죽을 벗기는 조선군도 보였다. 그것을 몇몇 여진족 아녀자들이 돕고 있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고. 그렇다면 여진족 포로들은 어떻게 한 건가?”

“길 안내를 도운 부락에게 대부분 넘겼습니다. 백 명 정도면 포로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본디 여진족 부락을 소탕할 때. 말과 포로를 가져오면 그것을 적당히 재산으로 환수해 주는 것이 관례였지만 한탕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심양에서 보급품을 받는 동안 관리에게 뇌물을 먹이고. ‘합법적인’ 말과 ‘합법적인’ 여진족 노예로 갈아치우려는 준비를 마쳤었는데. 동생의 부정부패 따위는 모르는 맑은 눈을 보면서 이징석은 절망에 빠졌다.

‘그건 생각이 없는 거란 말이다! 내가 심양 관리에게 기름칠 한 것이 얼마인데!’

결국 이징석은 심양의 관리에게 뇌물을 먹이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포로가 백 조차 안 되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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