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41화 - 그것이 실제로 >
“달단이라 하시면 여진이 아닌 명국에 북쪽에 있는 달자(북원) 말씀이십니까 자기들을 원이라 칭하는 그 간악한 것들?”
“그렇다. 갈수록 상국을 우습게 안다 하여 징벌하기로 하기에 조만간 수를 써 그들이 먼저 침공하도록 유도한다 하였다..”
“설마 아국에 출정을 요구하였습니까?”
역사가 변해서 이 시점에서 전면전을 벌이면 안 되는데. 1449년 역사대로 벌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그 시점이면 아직 조선은 본격적인 원정을 벌일 수준이 아니다.
“일단은 2만의 기병과 8만의 정병을 의주에 두어. 달자들의 뒤를 치라 명하였다.”
“정병이라 하였음은 보인(비전투 수송 및 보조병력, 보통 1:1의 비율로 있다)은 제외한 숫자가 아닙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형님. 아주 나라를 뿌리 채 뽑아버리려고 작정했네. 그 숫자면 위화도에서 회군 같은 것도 안하고 주원장이랑 싸워볼만 한 숫자인 20만이다. 왕진이 정말 돌아버린 것인가?
“며칠 뒤 아바마마께서 정승들과 변방의 사정에 밝은 자를 모아 뜻을 합칠 것이다. 너도 그 자리를 준비 하여라.”
“알겠습니다.”
3일 뒤. 세종대왕님과 형님을 시작으로 나, 우찬성(右贊成)으로 재직 중인 김종서를 비롯한 당상관들이 모였다. 세종대왕님은 즉석에서 첩지를 작성하여 김종서에게 내려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시국이 이렇게 어수선하니 우찬성 김종서를 임시로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 - 변방의 일에 밝은 재상) 으로 임명하노라.”
“이러한 중책을 주시니 분골쇄신하여 임하겠사옵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은 ‘제발 저를 북방에 보내지 말아주세요’ 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건 대왕님 뜻인데 어쩌겠어? 아마 댁 외에는 명에 갈만한 지휘관이 없을껄?
“얼마 전 명국에서 칙서가 내려왔느니라. 달단을 험하게 대하여 그들이 성난 돼지처럼 달려들 때. 50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친정(親征 - 직접 정벌함)에 나설 것이라고.”
“그게 말이나 됩니까? 50만의 병력 중 정병이 20만이라 해도 보급은 어떻게 대란 말입니까?”
“50만은 분명 호왈(號曰 - 과장하다)일 것입니다.”
“아국에 보내라 하는 병력이 기병 2만에 정병 8만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는가.”
50만의 숫자는 말이 안 된다. 당연히 맞는 말이긴 하고 실제로 정병 8만을 보냈었나? 대충 잘 해야 총 병력 20만이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보니 이 시대는 이 모양이구나.
“기병 2만이면 전국의 기병을 다 데려가야 할 것입니다. 근래에 들어 보총으로 조공을 대신하였다 한 들 말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정군 8만을 보병으로 보낸다면 말이 안 됩니다. 조선에서 그리 한다면 삼남지방을 제외하고 모든 장정들을 총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다. 우선 10만의 병력은 도저히 보내지 못하는 것으로 삼고 그 외의 것에 대해여 논하여라.”
북방의 지도에 김종서가 검은색 압정을 박았다. 현대의 중강진 일대이며 얼마 전까지 자기가 나서 영토로 삼았던 4군 지역이다.
“근래에 들어 어연, 무창, 우예가 폐군되었는데 그 영향도 큽니다. 번호(藩胡 - 폐군 지역에 들어와 사는 여진족들)들이 생겨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도 주변이 어수선 합니다.”
"하지만 번호들이 그럭저럭 협조적이라 하지 않았는가?"
"도적들은 계속 그 곳을 들락거리고 있는데 알려주기만 할 뿐 막아서려 하지 않습니다. 실지로 그 지역 달자들의 절반은 도적과 다를 바 없습니다."
흔히 4군 6진으로 완전히 조선 영토에 편입한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그 지역은 격렬한 저항으로 폐군한 뒤 애매한 영향권에만 뒀었다. 거의 18세기 말에야 복구 되었지.
“어수선하다 한들 그 주변으로 범하지는 못할 것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신 김종서 아뢰옵니다. 달자들은 적이 없고 날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면 200리(80km)를 거뜬히 움직입니다.”
김종서도 옳은 소리를 하네. 몽고가 최 전성기일 때 파발보다 빨리 움직이는 미친 진격속도를 자랑했지. 그것도 말의 땀이 얼어버리는 한겨울에도 저런 속도였으니. 몇 명은 거리를 헤아려보고 질린 표정을 짓는다.
“중요한 것은 달자들을 유도한다는 명의 방침입니다."
"목표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런말인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요동 일대를 들쑤시는 것이지만. 서쪽으로 장성을 돌아 가면 요동을 넘어 북경까지 군을 움직여야 합니다."
김종서가 지도에 가르키는 방향은 울주 남쪽을 가로질러 북경의 서쪽을 공략하는 경로다. 이렇게 하면 우리 군은 북경 일대까지 움직여야 한다. 심하면 오이라트 영토까지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북경 인근까지 나서서 뒤를 치려 하면 답이 없습니다. 돌아오는데 한 달이 걸리니까요.”
“북경이라니. 달자들이 아무리 날래다 한 들 북경을 범하려면 거용관을 치거나 저 멀리 돌아 북경의 남서쪽을 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그렇게 지형지물과 가능성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너무나 짧아 보인다. 각종 상세한 정보들이 이 시대의 사람들을 통해 들어오니까 교육이 확실하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파하도록 하지. 날이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도록 하라.”
다음 날도 지도를 펼쳐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원 역사의 토목의 변을 말해도 믿을까? 도저히 안 믿을 것 같긴 한데 정말 최악의 수라고 이야기를 해 볼까?
“수양대군이 할 말이 있나 보구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냐.”
“제가 북경에 사신으로 다녀오며 명국의 실세인 태감 왕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렇지. 실지로는 명의 모든 것을 통솔하는 자이니 그럴 만하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마도 이럴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먼저 달자를 자극한다 하였는데…….”
토목의 변에 대해서 내가 아는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이야기 했다. 친정에 나서되 수뇌부 상당수를 데려 온 다는 것. 그리고 뒷사정 까지는 대충 얼버무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기동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리한 곳에 포위당할지도 모른다는 것들을.
“물론 명의 사정을 생각하여 최악의 결과만을 모아 만든 것입니다. 실지로는 이것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태감 왕진의 고향이 울주(蔚縣)여서 달자를 막고자 대동(大同) 까지 북쪽에 있는 험로로 향할 것이라니.”
“대군어른께서 황제를 허수아비로 아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명의 황상이 환관을 스승처럼 생각하지만 대소신료들을 다 끌고 갈 이유가 있습니까?”
다들 너무 어이가 없다 하는데 이게 원래의 역사다. 초창기 명의 압도적인 인구수와 황제가 제대로 일할 경우 뿜어져 나오는 저력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한 것.
그냥 경군 중심의 요격군 편제를 제대로 만들고 작전권을 받은 군이 움직이기만 했어도 오이라트 측에서는 방법이 없다. 설령 신묘한 계책으로 군을 깨부쉈어도 북경의 방어 기능을 뚫을 가능성이 없으니.
“그 것은 최악의 수로 생각하여서 그런 것이라? 옳은 말이다. 세자는 어찌 생각하느냐.”
“유의 말이 온전히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언제나 최악과 최선 양쪽을 생각하여야 하니까요. 한두 가지는 감안하여 계획을 짤 필요가 있습니다.”
“최악의 가정이니 명국에는 알리지 않겠다. 지변사재상 김종서여. 그렇다면 보인을 포함한 6만 가량의 군을 요동까지 보낸다 하면 가능한 것인가?”
김종서 보다 장기간 작전을 벌인 자도 없고. 원정에 가까운 4군 6진의 개척을 나서 보았으니 말이야. 김종서는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답했다.
“6만이면 가능은 합니다. 기마 1만과 거기에 보조로 배치될 말 1만 필. 북방을 경험하거나 토관 출신인 정군 2만에 마찬가지로 보인 3만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급이 문제입니다.”
“화약은 걱정하지 말라. 보관하고 있는 화약 6000근을 모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님이 보관된 화약 모두를 쓴다는 말을 하시자 다들 분위기가 바뀐다. 최악의 결전을 대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염초전의 존재는 다들 모를 것이다.
"비축분을 모두 사용하고 앞으로 3년간 화약이 없이 지내야 하지 않습니까?"
"화약을 만드는데 수양대군과 임영대군, 그리고 금성대군이 새 방도를 찾아내었다. 심려치 말라. 내년부터 바로 화약을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대충 계산해보자. 6000근이면 3840㎏, 보총수는 2만중 3000명으로 잡고 화약 소모량은 40발 쏜다 치면 900㎏, 총통기화차를 한 1000회 쏜다 치면 90㎏. 그럭저럭 전투 두 번을 마치고 신기전도 2천발은 날릴 수 있겠네. 1년당 생산량이 3000근 예상이니 2년이면 화약은 완전히 복구된다. 그 외에도 기존 생산법도 있으니 1년 반?
“하오나 병사를 움직이는 데 가장 걸리는 것이 폐한 3군 지역이 문제입니다. 잘못하면 일대를 시작으로 달자들이 날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곳을 평정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명국에 사신을 보내 아직도 조선의 변방이 어수선하니 정리할 시간을 달라 할 것이다.”
예? 잠깐만요. 지금 세종대왕님이 적극적 참전으로 방향을 굳히신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토목의 변은 그런 수준이 아닌데? 2만으로 시작한 오이라트 군은 황제를 사로잡고 북경 공략에 나서면 일대 말박이 들이 떼로 몰려들었을 것인데.
“앞으로 2년 뒤인 정통(正統) 14년 3월 까지 폐군 지역의 달자들을 평정할 것이며. 그 것을 훈련으로 삼아 많은 경험을 쌓게 할 것이다.”
“하오면 양계갑사(兩界甲士 - 북방에 배치된 갑사들) 모집할 것입니까?”
“그리 하면 수비에 허점이 보일 수 있으니. 이징옥의 휘하에 있는 도감군과 각지에서 초모한 익군들을 보낼 것이다.”
드디어 훈련도감이 최초로 나서게 되는데도 찝찝함을 억누를 수 없다. 명은 수치적으로만 따져도 현재 조선의 20배 정도 강하다.
수뇌부와 경군이 모두 박살나도 22만으로 북경을 철저히 방어했으니. 현대로 치면 대통령부터 3스타까지 깡그리 몰살에. 수방사와 예하사단이 박살나도 말박이들의 준동 정도는 막아낼 수준이다.
“훈련도감이라? 그들이 어찌 행동하기에 그들을 신뢰하시는 것 입니까?”
“체찰사의 보고에 따르면 사납기로는 산군과 같고, 영리하기로는 여우와 같으며, 우직하기로는 소와 같고, 적을 단매에 헤집는 것이 솔개와 같다 한다.”
“그것 참 기대가 됩니다.”
어찌 훈련도감의 평가가 애매한데 칭찬이야 욕이야? 하긴 장수 된 입장에서 산길을 밥 먹듯이 하루 40리 60리 걷는 애들 보면 짐승 같긴 하겠다. 말 잘 듣고 적을 다 뭉개버리는 짐승들.
“세자와 수양대군은 잠시 남거라.”
“네 전하.”
세종대왕님이 우리 둘을 남게 한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하는데 지방 수령들에게 보내는 교지를 보여주셨다. 염초전은 그렇다 쳐도 훈련도감 1차 초모?
“이제 훈련도감도 매년 초모할 인원이 천 명에 달하는데. 지방에서 첫 시험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지난 번 600명을 초모할 때도 5천에 달하는 인원이 모여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합니다.”
“세자와 유는 지방에서 초모할 때의 조건을 논하여 결정하여라. 어느 지방에 있는 이라도 기회는 동등해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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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년 도감 초모.”
“동쇠도 이제 정음을 읽을 수 있으니 훌륭하구나.”
“다 생원님 덕분입니다.”
원 생원은 더듬더듬 정음을 읽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재능이 있는 자를 가르치니 욕심이 생겼고. 훈련도감에 들어갈 때 정음을 읽을 수 있으면 저녁 교육시간에 언문 대신 몸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매일마다 반 시진을 더 가르쳐 정음을 배우게 했는데 벌써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음을 처음 보았을 땐 뜻이 없는 글이라 하찮게 보았는데. 훈련도감에서 정음을 가르치니 누구나 쉬이 배워서 가르친 것이었다.
“계속 읽어보아라.”
“정통 십삼 년(1448년) 정월 초칠일(1월 7일) 훈년도감 초모를 언,원주 감영에서 시행한다.”
방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원주 감영에서 훈련도감 초모를 시행한다. 총 열 명을 원주에서 선발하며. 수석에 이른 이는 무조건 훈련도감에 입대가 가능하다. 라는 내용이었다.
“원주에 사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여기 시험내용을 보면 네가 다 해오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생원님이 다 가르쳐주신 것 입니다.”
지방에서 시험을 보니 과목은 다소 변형되었다. 부와도약(버피) 50회, 30근 모래주머니 짊어지고 200보 뛰기, 부와(팔굽혀펴기) 60회, 상체기(윗몸일으키기) 75회, 턱걸이 7회 이었다.
“그리 부담가지지 말거라. 설령 여기서 수석이 아니라 해도 다음 기회는 있으며. 이 고장에서 천하의 기재가 나온 것이니 염려하지 마라. 너보다 뛰어난 이는 전부 교부(敎簿 - 입신체비사 중 하급)를 할 수준이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편 감영에서는
“어명이라니까!”
“잔소리 말고 파라니까! 죽겠지만 할 수밖에 없잖아!”
“이걸 맨날 뒤집고 소변을 매번 뿌려야 한다고? 미쳤어?!”
관찰사의 호령소리와 함께 반쯤 언 땅을 파헤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제 여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악취가 가득한 것들을 계속 섞어야 한다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봉래각에서 경치를 보는 것은 물건너 갔구나. 악취를 맡으며 어찌 경치를 즐긴단 말인가."
관찰사는 감영 후원의 연못과 누각들을 보면서 우울함에 잠겼다. 그 빼어난 경치는 이제 악취로 오염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