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40화 (40/573)

< 1장 39화 - 자원이 부족합니다(1) >

1447년 5월이 되자 편지들이 쏟아졌다. 소과 응시자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칠 때 지도자 교육도 겸했다. 지방에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생각도 했었으니. 그리고 입신체비를 물어볼 일이 있으면 괜히 올라오지 말고 서찰로 대신하라는 말도 했고.

그런데 요즘 들어 서찰이 한 달간 14개가 왔다. 그리고 하나같이 내용도 비슷하다.

[대군어른께서 힘써 주신 덕분에 생원이 되어 정말로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중략) 최근 들어 한 노비가 몸이 좋기에 제자로 삼으려 하였는데. 이 노비의 몸이…….]

상체가 부족한데 어떤 것을 해야 몸이 좋아질까요. 하체가 나빠서 오래 달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아질까요. 다 이런 글들이라서 짐작은 갔다. 지방 부호들이 훈련도감에 노비를 넣으려는 수작이겠지.

[ (전략)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삼으니 아주 좋다. 허나 입신체비를 너무 많이 하면 장살당한 이처럼 피오줌을 흘리며 최하 불구가 될 것이니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 것이며. 가르치며 삯을 받는 것 보다 입신체비를 위한 기구를 받아내는 것이 성과가 좋을 것이다.]

라고 운동에 대한 지시를 내리면서 횡문근융해증에 대해서 다시금 경고를 했다. 현대에서는 수액 맞고 투석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없으니 최소가 신부전이다. 알고 보니 장살(杖殺 - 곤장을 맞은 후유증으로 죽는 것)의 증세가 비슷해서 알려주기 편했지.

“유 형님! 이기는 이가 형님과 겨룰 것입니다!”

“오냐 알겠다! 서찰에 답장을 쓰고 나가보마.”

우모구가 유행하니 다음은 테니스인 정구(庭球)를 가르쳐줬다. 남자만을 위한 크고 튼튼한 공을 힘차게 쳐서 날리는 것이라 하니 안평대군이 먼저 속아 넘어가더라고. 근데 임영대군은 정말 사방팔방 촐싹거리면서 뛰어다니네.

“구(璆 - 임영대군)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게 제통이 정말 없구나!”

“이기기 위해서 흙먼지를 좀 마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입신체비장의 너른 마당은 사람이 없으면 다용도로 쓸 수 있었다. 테니스용 채와 공을 만들었는데 공이 조금 문제였다. 현대처럼 두껍게 만든 합성섬유는 불가능하니 그냥 굴참나무 코르크를 공 형태로 가공해서 겉을 가죽으로 감쌌으니까.

“악!”

“형님 괜찮으십니까!”

결국 무겁고 딱딱하며. 야매 코르크랑 가죽으로 만든 공이어서 탄성이 적으니 맞으면 엄청나게 아프다. 고자 샷으로 환관이 생기면 안 되니 사타구니 보호대도 만들어 두길 잘했다.

“용이(안평대군)는 맞은 곳에 냉찜질을 하고. 구는 땀을 흘려 보니 어떻더냐.”

“훌륭합니다. 정구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몸을 세차게 움직일 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넷째인 임영대군은 입신체비 이전에 아내가 하던 우모구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내 편이 되었다. 입신체비는 싫다는데 정구 잘하는 법이라고 속이고 입신체비의 길로 끌어들여야지.

“그것이다. 가녀린 부녀자들과 아직 몸이 굳지 않은 아녀자들은 몸이 다치지 않는 우모구를 하면 될 것이고. 장성한 이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정구를 하면 좋지 않느냐.”

“형님 혹시 석전(石戰)을 변용한 것도 만드실 수 있으십니까?”

“석전? 석전이라. 하나 생각해 둔 것은 있었는데.”

저기 멀리서 대역기로 공좌(스쿼트)를 하던 서산군이 역기를 떨어트렸다. 마음을 다잡은 서산군의 흑역사는 예전에 양녕대군이 금지된 석전을 열었을 때 말을 타고 지휘하며 깽판을 친 일이니까. 그때 잠시 지방으로 귀양을 갔다가 복귀되었던가?

“석전을 변용하면서 사람이 상하지 않게 신경 쓸 것이다.”

“형님 석전은 사람의 머리가 좀 깨져야 제 맛! 악! 아악!”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너는 대역기로 조금 교육을 받아야 쓰겠구나.”

얌마 석전은 법으로 금지 되었다고!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임영대군을 잡아 대역기를 들려주는데 궁에서 사람이 왔다

“주상전하께서 나와 임영대군 그리고 금성대군을 군기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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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군기시에서 세종대왕님을 뵌다. 한쪽에는 보총이 있는데 이전 것 보다 두께도 얇고 각이 잡혀있었다. 강철로 말아 만들면 저런 형태가 안 나오겠지. 드디어 내가 제시만 했던 찬혈법이 적용 되었구나.

“전하. 드디어 연철로 보총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까?”

“그렇다. 장인들이 무던히도 애를 썼지.”

“감축 드리옵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장인들은 연철로 만든 봉을 천천히 회전하는 무쇠로 만든 날에 들이밀며 돌려 구멍을 깎아내었다. 뽑아내어 기름을 뿌리고 다시 천천히 깎아내며 수시로 확인한다. 그 동안 고난이도의 강철 총열을 제조하던 사람들이니 감은 확실한 것 같다.

“그대들은 수양대군에게 어찌 작업을 하는지 설명하여라.”

“착혈(窄穴 - 연철봉에 구멍을 뚫음) 작업을 하면 터질 일은 없습니다. 제대로 만들려 한다면 보름, 하지만 일단 보총이라 불릴 수준이 되려면 삼일이면 충분하더군요.”

“삼일이라. 그 것은 숙달된 장인 둘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셋 이상이 필요하며 강철을 말아 보총을 만들어본 이가 둘이 있어야 가능한 것 입니다.”

지금도 땀을 뻘뻘 흘리는 장인 두 명이 아니? 보행기가 왜 있어? 설마 수차나 인력대신 보행기로 동력을 공급하는 건가? 그래서 제대로 만드는데 보름이 걸리는 거야? 삼일 만에 만든 것도 완성도가 엄청나겠는데?

“전하 설마 저 보행기는 호군 장영실이 만들었던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손의 힘을 쓰게 했는데 너무 더디더구나. 그래서 인력을 쓰게 했지.”

“그런데 왜 신 교리(校理 - 신숙주)가 저 안에서 걷고 있는 것입니까?”

땀을 뻘뻘 흘리며 천천히 걷고 있는 신숙주는 살이 더 빠져보였다. 대체 네가 이 시간에 거기 왜 있어? 설마 이게 집현전 전용 보행기인가 그거냐?

“아무리 도제(徒弟)라 한들 힘에는 한계가 있고. 관료들은 앉아만 있으면 몸이 상하지 않느냐. 그래서 모든 조정 관료들은 순번을 정해 매일 반 시진 일찍 퇴청을 하고 그 시간만큼 걷게 하고 있느니라.”

“주상전하께서 신을 이리도 생각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네. 가끔 땀을 흘리며 걸으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신숙주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생각해보니 반 시진 빨리 퇴청해서 군기시에 들려 반 시진을 걸으면 퇴근시간은 무조건 늦어진다. 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집현전이니 1회 확정 퇴근권인가 그거냐? 다시 총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런데 전에 알려준 연철을 말아 만드는 방법이나 양통상포(반원형 두 개를 결합하여 만드는 법)는 어찌하여 사용하지 않는 거요?”

“그것을 사용하면 만들기는 쉬우나 위력이 매우 부족하여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니. 정말 고생이 많소.”

땀을 뻘뻘 흘리던 장인들은 다시금 신숙주의 힘으로 총열을 깎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준점이 된 보총이 강철을 말아 만든 것이어서 그런 것 같다. 연철로 저렇게 만들면 위력이 너무 부족하니 그 다음 방법인 찬혈법으로 바로 넘어 간 것이겠지.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얼마나 되는 지가 궁금합니다.”

“아마 보총은 매년 이천 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조공으로 바치는 것은 야장(대장장이)들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지방마다 따로 사람을 보내고 생산량을 배정 할 것이다.”

단순한 위력으로 따지면 강철을 말아 만든 녀석이 좋고. 연철로 만든 것은 연철의 특성 상 폭압을 꽉 잡아주지도 못하니 위력도 떨어지지만 단가도 싸고 생산량도 좋다. 이러다가 나중에 가면 강철로 만든 보총 찾아서 창고를 뒤적거리겠는데?

“지금까지 도성과 경기도에 있는 250명의 야장들이 한 해에 삼천 정을 만들어. 이천 정은 조공으로 올리고 일천 정은 우선 함흥에 배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야장들 중 일부를 지방 관아로 보내 조공으로 보낼 보총을 만들게 하면 될 것이니라.”

지방의 수준으로 가능할까? 하긴 튼튼하기만 하면 되고 두께는 상관없이 무겁게 해도 괜찮으니까. 대충 계산하면 한양과 경기 일대의 대장장이들을 굴리면 이천? 나오기는 하겠는데.

“조만간 병사들의 상당수가 보총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되니 훈련도감 병사들이 가르칠 이도 충분해 지겠군요.”

“그것은 좋은 일이다만. 이천 정의 보총이 사천정이 되고 육천정이 되면 문제일 것이다.”

“화약이 부족하군요.”

세종대왕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연간 화약 제조량은 2000근(1280kg) 이 안 된다. 보총 사격 한 번에 화약 두 냥을 쓰니 오천 정의 보총이 34발을 쏘면 화약이 사라진다. 여기에 화포와 총통기 그리고 신기전을 합치면? 제대로 하면 3년 분량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라에 화약이 부족하고 보총에 쓸 연환(鉛丸)또한 부족하다. 이것을 해결할 방도를 셋이 머리를 맞대 해결해 보아라.”

임영대군과 금성대군 둘 다 아리송한 표정인데 골치 아픈 문제를 담당하게 되었다. 탄환은 쉬운 거라 해도 염초가 가장 큰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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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은 머리가 제법 좋아서인지 탄환정도는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담당한 염초는 최소한 일 년은 걸리는 일인데다가 임영대군 얘는 머리가 그리 좋지가 못하다. 딸리는 건 아닌데 비교대상이 다들 천재라 그렇지.

“염초는 서책에 보면 오래된 집의 아궁이 흙, 변소의 흙을 캐어 오줌과 섞으라 하였습니다.”

“그래봤자 그 양은 한정되어있지 않느냐. 취토법(取土法 - 흙에서 염초를 얻는 법)에서 가장 좋은 흙을 가려봤자 한 집에 한 바가지가 나올까 말까일거다.”

염초장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니 완전 무법자다. 아무 곳에나 가서 화장실을 벌컥 열고 흙을 퍼가고. 담벼락의 흙을 퍼가는 식이다. 당상관 이상 권력자의 집에는 들어가질 못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 머슴이 뜯어 말리자 거리낌 없이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말렸다.

“내가 보기엔 염초라 함은 오줌과 재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오줌이요?”

어리둥절한 임영대군은 왜 오줌임? 변소의 흙이 답 아님? 이라는 표정인데 여기서 내가 질산칼륨이 어쩌고저쩌고 하면 이해를 못 할 거다. 조선식으로 풀어서 설명하자.

“염초를 만드는 것은 여러 곳의 흙을 긁어 취한 뒤. 오줌과 각종 재를 버무려 삭힌 뒤 말똥을 올리고 태우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 위에는 하얀 이끼와 같은 것이 생깁니다.”

“그 하얀 이끼가 모인 것이 염초다. 그렇다면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관계요? 하며 생각을 하는데 당연히 모르지. 여기서는 적당히 끼워 맞추는 식으로 넘어가자, 너무 깊게 갔다가는 이해도 못하고 역효과가 난다.

“마루 아래의 흙은 모르겠다만, 구들과 아궁이는 타고 남은 재가 있으며, 볏짚 또한 재로 만든다. 처마 아래의 흙들은 재를 만드는 지푸라기를 씻은 물과 같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재를 많이… 아닙니다 재를 많이 사용해도 효험은 없다 하였습니다.”

“아마 변소의 흙에서 나온 것이 한 종류고. 다른 곳에서 캔 흙과 볏짚의 재에서 한 종류. 이렇게 두 가지가 섞여 나오는 것이 염초인 것 같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임영대군은 헛구역질을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즉 변소의 흙에 섞인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떠올린 것이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소변은 사방으로 튀니 그 것이 흙에 섞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지 알겠느냐.”

"형님 제발 그 것만큼은."

"한번에 가장 확실하게 끝내는 것이 나아 보이지 않느냐."

전혀 다르지만 염초가 만들어지는 방법은 탄산칼륨의 칼륨과 요소를 포함한 질산염이 박테리아 분해로 합쳐진 결과물이니까. 핵심은 오줌과 음식 찌꺼기에 볏짚과 재를 뒤섞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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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올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 임영대군은 여기 오고 이틀간 밥도 못 먹는 신세니까. 그래도 염초가 나와야 하는데. 이거 실패하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오늘도 조금 멀리서 초전을 지켜보는데 냄새가 아주 환상적이다.

“이거 까뒤집을 때 마다 속이 역겨워 죽겠다니까.”

“까뒤집어? 난 근처에만 와도 속이 울렁거려!”

"마누라가 냄새난대잖아! 어제도 마루에서 잤다고!"

이곳에서 구역질 소리는 아주 흔하다. 구역질뿐만 아니고 혼절하는 이가 생겨서 코에 헝겊을 박고 일하게 해도 누군가는 뛰어가고 저 멀리에서 구토를 시작한다. 나도 토할 것 같아서 귀를 잠시 막았다.

“염초를 만들려고 이렇게 한다고?”

“낸들 알아? 염초 만들고 남은 건 비료로도 쓰기 좋은데 이걸 뿌리면 채소들이 말라죽겠어.”

평양에 시험적으로 만든 초전에서 일하면 하루에 쌀 다섯 되를 준다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쌀 다섯 되를 받아도 아무 것도 못 먹을 것 같은 환경이라고 도망치는 이가 생겨날 지경이었다.

맨 아래에는 점토와 생석회를 섞어 달구질로 다진 튼튼한 바닥. 그 위에는 석회석을 깔고. 그 위에는 볏짚과 나뭇가지를 깔고 호군어선(장영실이 만든 어선)에서 바다에 버리거나 미끼로 쓰던. 생선 대가리와 내장을 뿌렸다.

“우웩 지린내!”

“여기 다니다가 코가 비뚤어지네.”

“저기 대군어른께서는 그래도 토하지 않고 서 계시네?”

그리고 평양 일대에서 가져온 오줌들. 정확히 말하면 아예 공공장소에 모래를 담은 나무통을 설치하고 오줌을 반드시 거기에 누게 하니. 아 이야기하지 말자. 여하튼 그 액체인지 고체인지를 붓고 식물의 재와 뒤섞는다.

“그렁데 헝님 어째서 평양이십니까.”

“염초를 만드는 데는 비가 적은 것이 좋다 하였으니까. 코는 좀 그만 막거라.”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현장에서는 코만 막은 채 체통을 지키고 있는 임영대군. 돌아가는 길에는 술을 마셔도 악취밖에 안 난다면서 징징거리는 우리 동생님이 되어 버리지. 실패하면 원망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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