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9화 (39/573)

< 1장 38화 - 1 대 15(2) >

갈대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홍윤성은 미첨도를 좌우로 신나게 휘두르면서 칼춤을 추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갈대라는 갈대는 모조리 쓸려서 사라졌다.

“열다섯이 뭣 하는 것인가? 내일 훈련해서 백번도 휘두르지 못하면 경을 칠 것이야!”

“저건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지.”

“세상에 이 무거운 것을 어떻게…….”

미첨도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대련을 하다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기를 꺾어놓기 위한 방법으로 갈대밭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했다. ‘내가 갈대를 베어버린 양을 넘는다면 한 달간 내 책임으로 훈련 면제’ 라고.

“하하! 그래 이 맛이지! 이제 좀 지치는구먼! 어이구 벌써 한 바퀴를 돌고 돌아왔네?”

홍윤성이 갈대밭을 종횡무진 하면서 모조리 베어버리는 동안 열다섯은 서로 미첨도를 바꿔들면서 갈대를 베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교묘한 회전력과 무게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행할 체력과 근력이 필수적인 병기였으니.

“이 추위에 고생 좀 했다네. 다들 들어가서 체력 단련을 위한 새로운 훈련을 시작하지.”

“그 훈련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라니, 군법이 새로 내려왔으니 때리지는 않겠네. 하지만 군법을 올바로 지켜 공좌(스쿼트)라는 걸 할 것이니 조금 힘들 걸세.”

그 날 밤. 훈련도감 병사들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숙소에는 홍윤성을 비롯한 열 명의 훈련도감 참교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 장창수를 담당한 이는 눈에 멍이 들어 계란을 문지르고 있었다.

“변형 왜 그러시오? 혹여나.”

“한 놈이 개인호를 파는 얼차려를 받다가 나한테 덤볐어.”

“그거 하극상(下剋上) 아니오!”

처벌을 얼차려 선에서 끝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법으로 5년 뒤에야 정9품이 되는. 아직까지는 품계가 없는 이이지만 분명한 상관이었으니.

“바로 창대로 두들겨 팼지. 지금은 옥에 갇혀있다네.”

“하극상의 처벌은 최소 장 60대 이던가? 어차피 반쯤 죽을 놈인데 이야기 하지 말게나. 그럼 다들 가르쳐보니 어떤가?”

“저희보다는 못하죠.”

“내가 가르칠 이들 중 둘은 초모에는 통과할 만 하던걸? 보총 쪽은 어떤가?”

“총을 몇 발 쏘아서 시범을 보였는데 오줌을 지린 놈도 있었어.”

“보총수가 가장 고생이겠네. 땅이 얼어서 딱딱하잖아?”

다들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견은 이랬다. 조선인 출신중에서 한 조에 한명 정도는 초모에 통과 가능. 여진족 토관 출신은 전체적으로 통과 가능이라고.

“그런데 달단 출신 이면 말을 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사람들 나름이더라고. 말로는 농사만 짓는 집이라던데?”

“어차피 말을 타는 이는 우리와 관련이 없지. 익군(翼軍 - 북방의 농민군. 무조건적 징집 대상이며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한다) 이지 않은가.

가르치고 싶은 것은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병기인 보총수를 제외하면 다들 의견은 일치하였다.

“기본은 하체이니 하체부터 훈련을 시켜야지. 내일부터 속보나 하면서 보름 정도만 기초 체력을 키워놓지.”

“지금 보니 속보도 불만이 많을 것 같은데 군가를 좀 가르칠까요?”

“군가는 당연히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날부터 높은 뫼 깊은 골이니, 최후의 일각에 영광이 달렸다니. 그런 소리가 함흥 읍성 주변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반 시진의 속보와. 다시 들어가서 훈영체조를 한 다음 훈련이 시작된다. 이징옥을 비롯한 군관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무엇이 말입니까?”

“훈련도감의 수준 말일세. 가감 없이 답해주게.”

이런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본 것이 있으니 말은 해야지. 비교 대상은 당연히 무력이 빼어난 자 들 이었다.

“도체찰사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갑사와 비교하여도 기마와 궁시를 제외하면 모두 다 우위에 있습니다. 찰갑(철편을 엮어 만든 갑옷)이 없으니 방어는 부족하겠지만 그걸 능가할 힘과 지구력이 있지요.”

“일부러 기마와 궁시를 제외한 것이 분명해. 둘 다 집안이 부유한 자와 꾸준히 훈련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 하지 않은가. 훈련도감은 오로지 몸을 보고 뽑은 것이야.”

수양대군에게 심한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을 해냈다. 마치 자신을 보면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네가 키워봐라.’ 라며.

하지만 훈련도감 출신들이 단련하는 모습을 보니 문제점이 있었다.

“경험이 부족하군.”

“그것이 문제입니다.”

정확히 주어진 동작만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잘못된 버릇이나 이상한 행동이 없이 철저히 명령을 듣도록 교육된 자 이니까.

“경험이 부족하면 채워 주면 될 것이네. 모내기를 하면 더 이상 훈련 시킬 이가 없으니 그때부터 변방의 경험을 쌓아나가면 충분할 것일세.”

저 멀리서 보총을 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저들은 아주 튼튼한 상자와 같았다. 그 안에 온갖 좋은 것들을 넣는다면 수양대군의 선물에 대한 최고의 보답이 되리라.

“내년에 육백이 더 온다 하였는가? 그렇다면 4군 지역에 대한 탈환을 시작해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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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7년 2월. 도감군의 2차 초모는 600명을 모집하였다. 1000명을 한 번에 훈련시키자 하니 인원이 부족해서 방법이 없으니까. 1차 초모보다는 알려져 있는지 5천명이나 몰려와서 홍달손이 고생을 했다지.

“다음 운동은 테니스 엘보가 걱정 되지만 테니스다. 테니스는 뭐라고 이름을 짓지?”

“대군어른! 손님이 왔습니다!”

또 손님이라니. 아니다 지금 이 시기면 수확 결산이 완전히 나올 시기지? 아니나 다를까 판적사(版籍司 - 호조의 하위 기관. 호구조사, 농업, 작황조사 등을 담당한다)에서 사람이 왔다.

“그것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대군어른께서 명에서 가져온 종자들은 정말로 대단한 것 이었습니다. 여기 이 서책을 보십시오.”

세종대왕님을 설득할 때 ‘오명마처럼 종자의 혈통을 유지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하였지. 그렇게 백정들이 사는 동네를 만들고 씨앗을 그 곳에서 격리해서 기른 것들이다.

“특히 아국의 밀과 한 세대를 거친 작물들의 소출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것 말이오? 줄기가 짧고 알곡이 많이 달린 것들만 수확한 녀석들?”

“그렇습니다. 똑같이 길러도 소출이 사할 가까이 높아졌다 합니다.”

위인전에서 봤던 멘델을 대충 따라 해봤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다. 유전학은 완전 젬병이어서 그래도 둘을 합쳐서 결과나 보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밀 하나가 이렇게 변하나? 사할? 풍년을 넘어선 수준이다.

“대군어른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 지 정말로 의심을 했습니다. 이걸 몰라본 것은 제 배움이 부족한 탓입니다.”

“아니오. 정말로 하늘이 도운 걸 수도 있소. 그래서 말인데 다른 작물들은 어떻소?”

“여기 있습니다. 다른 작물들도 소출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배추, 무는 중간 세대를 만들지 않고 그대로 심었다. 아직도 적응이 덜 되어서 수확이 들쑥날쑥했지만 씨앗은 계속 산골에서 기르고 있으니 문제는 없겠지. 그걸 제외하고는 조선 토종과 장안 및 낙양 일대에서 가져온 작물들 사이에서 나온 2세대가 수확이 우수하다.

“조금씩 소출이 불안한 작물이 눈에 띄는구려. 바로 옆 고장인데도 수확량이 삼할 차이라니.”

“같은 작물이라 하여도 밭 하나를 건너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국의 종자와 한 세대를 섞은 녀석만 가려. 다시금 종자를 만들면 되지 않소.”

“그렇게 된다면……. 가능 할 것도 같습니다.”

이게 맞는가 모르겠다. 내가 실험실 환경처럼 완벽한 변인통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생명공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잖아. 적어도 종자끼리 한번 유전자를 섞어 튼튼하게 만드는 게 안전하겠지.

“그러면 말이오. 지금 시험적으로 해서 소출이 좋았으니 대대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소? 특히 한곳 한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하시려면.”

“아차.”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서 돌아가는 관료의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지만 내가 또 나설 일은 아직 없잖아. 우모구가 효과를 보았으니 테니스. 축구. 석전을 대신한 야구를 모조리 만들어야지. 그리고 우리 입신체비장 회원님들 과거시험도 조만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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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7년 4월, 원주향교에는 경사가 났다. 향교에서 배우던 젊은이가 한양으로 올라간 지 2년 만에 소과에 합격하여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형님이 더 빠르게 합격하셨고. 내 집안에서 진사나 생원은 차이는 것인데 방법이 있는가.”

너끈하게 소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가문이 명문가인 원주 원 씨고 그 와중에 지방에 있는 집의 둘째인지라 그리 주목받지는 못했다. 적어도 대과를 붙어야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이제 원 생원으로 불러도 되겠구나.”

“스승님은 언제나 제 스승이십니다. 편히 불러 주십시오.”

“입신체비라 하였느냐? 수양대군께서 학식이 깊으시니 이런 것도 만들고 대단하구나.”

허무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 하였던가. 대과를 준비하기 위한 공부를 하며 닳은 맷돌과 목봉으로 만든 역기를 고직사(향교 관리인이 있는 곳) 옆에다 놓았다.

“의압 열다섯 번! 역시 마음이 혼란할 때 다잡는 것은 이게 최고라니까.”

“거기 원 생원 계시오? 얼마 전 과거에 합격하신 그 분 말이오.”

협문이 열리고 들어온 이는 인근에 만석꾼의 집에서 일하는 마름(중간 관리직)이었다. 한낮 생원을 어찌하여 보러 왔는가.

“대체 무슨 일이오?”

“아 글쎄 이 녀석 우람한 몸 좀 보시오. 쌀 한 섬은 거뜬히 짊어질 수 있는 녀석인데 훈련도감 초모에 탈락했지 뭡니까?”

“아니 이보시오. 대체 훈련도감 초모와 그 노비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오.”

“죄송합니다. 제가 화가 난 나머지 말이 헛 나왔습니다.”

얼굴을 붉히는 마름과 뒤로 숨은 노비. 대체 이 사이에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제법 이야기가 길었다.

“수양대군이 관여했던 훈련도감의 초모에 합격한 노비는 주인에게도 재물을 주고 부모를 면천시켰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직접 내려주시는 것인지라 노비를 새로 사고도 남습니다. 소문대로면 일 잘하는 노비 하나와 그 부모를 면천하라는 명이 내려오고 쌀 백석이 왔다 합니다.”

보통 노비의 가격은 오승포 150필이나 쌀 20섬이다. 일을 정말 잘 하는 노비는 쌀 40섬에도 거래되고 하니 주인에게 확실한 이득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 또한 어떠한가? 노비를 잘 대해 줬으니 성품이 좋은 자이며 아랫사람을 잘 다룬다고 소문이 날 것이다.

“그런데 왜 나를 찾은 것이오?”

“나리께서 화를 내시더니만 수양대군 어른께 전수받은 제자를 찾아서 배움을 더 얻으라 하셨습니다. 마침 소과에 합격하였다는 말을 들어서.”

“제자는 맞소. 수양대군 어른과 휴직중인 대감들을 비롯한 이들이 다 나를 가르쳤으니.”

뒤에서 우물쭈물 하는 노비의 몸을 보니 그 마일용이라는 자가 생각났다. 몸을 잘 다루는 자여서 관직을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따로 배우지 않고 이런 몸이라니.

“그렇다면 그 훈련도감 초모도 응하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년에는 천 명이라 하였는데 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 보겠소.”

몸은 대단한 녀석이었다. 수양대군이 보면 어이쿠 너를 가르치고 싶구나! 입신체비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끌고 갈 수준처럼 보인다. 그런데 훈련도감 초모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른 것이라 하였는데?

“나리 저 제가 부모님도 면천시켜 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안 되었습니다.”

“이놈아 어서 생원님 앞에 나서는 것이냐!”

“잠깐! 그렇구나! 그것도 효다!”

효도라는 것은 사람이 가져야 할 마땅한 덕목이었다. 지겹도록 외운 효경의 구절이 떠올랐다. 입신체비라 하여 몸을 뽐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면천이라 함은 효 중에서도 손에 꼽힐 것이다.

“나리?”

“네 마음이 정말로 효심 중에 으뜸이구나. 앞으로 신시(오후3시)부터 유시(오후5시)까지 한 시진 동안 너를 가르칠 것이다. 마름께서는 어떻소? 그 정도만 가르쳐도 될 것 같소?”

“충분히 됩니다.”

“당부해 줄 것이 있소. 나는 아직 배움이 부족하고, 입신체비를 변형한 방법으로 훈련도감 초모를 한다는 말을 들었소. 그 것을 감안하여 이 자를 가르칠 것이오.”

그 말을 하자마자 마름의 허리가 바로 숙여졌다. 설득에 실패하면 치도곤을 맞았겠지.

“어이구 감사합니다! 그 비용은 저희가.”

“아니오. 내가 이 자를 보고 깨달은 것이 있으니 따로 필요하진 않소. 대신 주문을 몇 가지 할 것인데 꼭 들어주셔야 하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직 나는 누구를 가르치거나 그럴 처지는 못 된다. 방법을 알려줄 것이니 부디 네 몸을 상할 정도로 너무 열심히 하지 말거라.”

지방마다 나름 잘 나간다는 집은 훈련도감 초모에 노비를 응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교지(敎旨) 하나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데. 돈까지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니.

“동쇠야! 옳지! 그렇게 올리는 것이다!”

“끄랴아아아아앗!”

그렇게 향교나 집으로 돌아가서 대과 준비를 하던 수양대군의 제자들은 입신체비를 천천히 알리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는 조금 특이한 단련법이자 공부법으로 인식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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