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7화 (37/573)

< 1장 36화 - 결실(結實)과 결실(缺失) >

1446년 11월. 안평대군이 명에서 돌아왔다. 갑자기 나한테 찾아오는데 몸이 좀 좋아졌다? 그리고 부부인(府夫人 - 대군의 아내) 정씨는 왜 왔지? 내 아내를 만나러 왔다 하던데 할 이야기라도 있나?

“형님 덕분에 제가 고생을 덜 하였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몸이 좀 더 좋아진 것 같구나?”

“다 형님 덕분입니다. 삼대 운동 오백 근을 하지 않았으면 몸이 축났을 것입니다.”

안평대군은 여행 전보다 살이 빠지고 근육량이 늘어났는데 특히 팔과 어깨가 단련된 것 같다 어디 매달려서 훈련이라도 했나? 소매를 걷어 몸 자랑을 하던 안평대군은 자랑스럽게 두루마리 하나를 펼쳤다. 낙양 주변을 그린 풍경화다.

“이것이 제 선물입니다, 용문석굴에도 선물을 하나 남겨두고 왔습니다.”

“이런 선물을 다 주다니. 그런데 내가 가 봤을 때 이런 커다란 밑그림은 없었는데.”

“제가 하나 그리고 왔습니다. 명에 다시 가시게 되면 낙양을 꼭 가보십시오.”

용문석굴의 전경을 멀리서 표현한 그림에는 내 기억에 없던 하나의 석불? 아니다 석불을 조각하기 전 밑그림이겠지. 형태는 입상인데 왜 이리 두툼한가?

“무엇인지 몰라도 기대할 만 하구나. 그런데 곡부에 다녀왔다고?”

“그렇습니다. 곡부에서 공자의 후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입신체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느냐?”

솔직히 말해서 억지로 말을 맞춘 것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내가 제시한 이론이 얼마나 통할지 궁금했다. 안평대군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푸하하핫. 형님께서 말씀하신 이론을 설명하니 부모를 공경함에 있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줄은 몰랐다 하였습니다.”

“그거 좋구나. 혹여나 입신체비를 가르쳤느냐?”

“가르치긴 하였습니다만 형님과 같은 분이 없으니 몇 가지 간단한 것들만 조심해서 하라 일렀습니다.”

나중에 곡부에서는 조선에서 건너온 효도방법 이라면서 태극권과 결합한. 아 태극권은 이서문 이후에 유명해졌나? 여하튼 향토 무술과 결합한 것이 나올 수도 있겠네. 갑자기 운동이 엄청나게 하고싶다.

“아침부터 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 목멱산이라도 뛰고 오지 않겠느냐.”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밖으로 나가보니 팡 팡 하는 배드민턴 소리가 들린다. 현동이는 공부를 하라고 일렀는데 안뜰에 가서 우모구를 하고 있단 말인가?

“현동아, 거기 강쇠야 현동이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학역재(정인지) 대감님과 같이 수업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얼마 전에 치평요람(중국 흥망사)을 편찬한 뒤 휴가를 받아서 1년간 쉬고 있는 정인지를 과외교사로 데려왔는데 수업을 빼먹지는 않는구나. 그러면 한창 바쁠 시간인데 노비들이 안뜰에서 우모구를? 호통을 치려 들어갔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부부인 윤씨께서 일 점을 더해 구 점이십니다!"

“몸이 참으로 날래십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순혜야 좀 더 몸을 날래게 움직여라.”

아내랑 부부인 정씨가 우모구를 하고 있어? 그것도 하인을 낀 복식 우모구야? 뭐야 이거. 홍위에게 알려준 우모구가 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부부인 정씨한테 알려졌어? 내가 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없이 집중하고 있다.

“저걸 어떻게 알게 된 건가?”

“형님 모르셨습니까? 요즘 부녀자들 사이에서 우모구가 유행입니다. 저도 명에서 돌아오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우모구를 해 보았습니다.”

“난 분명 홍위를 통해 형님에게 알려드렸는데. 그런데 제수씨와의 사이가.”

"요즘 좋아졌습니다. 저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듣자하니 우모구를 하면 몸이 좋아진다고 광고를 해 대서 궁궐 나인들을 통해 순식간에 퍼진 것 같다. 이러다가는 굴참나무 껍질이 부족해질 지경이라고? 이런 환경이면 성인 남자들을 위해서 테니스를 퍼트려도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아마 안평대군과 부부인 정씨의 사이가 좋아진 것은 요놈이 운동을 해서 허리힘이 강해져서가 아닐까. 그렇게 추측해볼 만 하다. 아마 이 시대에는 이우량(안평대군의 아들, 갓난아이때 죽었다) 도 더 빨리 태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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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에는 이미 167명에 달하는 훈련도감 출신 병사들이 미리 와 있었다. 조선시대이니 어느 정도 움직임에 여유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머지 세 명도 함흥 인근에 집이 있어서 바로 달려올 수 있는 자들이었고.

“정말로 이 것들을 다 익혔단 말인가?”

“그렇다 합니다.”

이징옥은 책을 보고 믿기지가 않았다. 조만간 휘하에 들어올 훈련도감의 훈영제식법을 비롯한 수많은 훈련방법. 거기에 보고서까지 합한 책 더미들이 다 8개월 만에 완성한 것이라니?

“몸 하나는 뛰어날 것 같군. 그런데 이들이 오면 혼란이 벌어질 것은 당연한 걸세.”

“그렇습니다.”

말은 혼란이라고 하였지만 거친 병사들이 일 년도 못 배운 이들의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규정대로 한다면 열다섯 명을 통솔하게 되는데 그 중 셋 정도는 토관 출신의 여진족일 것이니.

“그러고 보니 이들은 한 겨울에 훈련한 적이 없지 않은가?”

“산은 제법 올랐다 하지만 겨울 산은 모를 것입니다.”

북방은 영토로 삼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곳이고 산마다 짐승이 넘쳐나고 야인들은 언제나 사고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시들어가는 밀을 본 이징옥은 입을 열었다.

“경험을 전수할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면서? 그렇다면 우리도 경험을 채워줘야지.”

“어떻게 채워주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이야 실제로 행하는 것 외엔 답이 있겠는가. 저 산을 오르면 충분할 것이네.”

이징옥이 가리킨 것은 북쪽에 있는 높은 산. 박달봉(높이 905m) 이라 불리는 산 이었다. 부관의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말을 잃었다. 이미 정상부터 눈이 쌓여 있었고. 겨우내 굶주린 산군이 몇 마리나 나오는 지 셀 수도 없는 산이었다.

“박달봉 기슭에는 초소가 있긴 합니다만 170명이 머물 곳은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서른 명 쯤 보낸다면 될 것 같군.”

부관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순찰을 돌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날씨이다. 도적들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산속은 더더욱 힘들고. 어떻게든 말려야 하지 않을까.

“생전 처음 보는 산에서 길을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 지역 토박이를 몇 명 붙여줄 것이네. 길을 잃어 얼어 죽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위험합니다.”

이징옥은 이미 보고서를 읽으며 느꼈다. 이들의 능력은 정말 출중하다. 하지만 병법의 개념을 바꿔놓을 이들이니 마찰은 많을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부하로 다룰 거친 북병들이겠지. 그러한 북병들도 불가능한 일을 한다면? 말을 듣기는 할 것이다.

“알고 있다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틀 뒤인 11월 1일이 되자 훈련도감에서 배정된 170명 전원이 도착하였다. 그 것을 기념하여 함흥의 감영에서는 열병식을 열었는데 멀리서부터 열을 맞춰 걸어오는 모습이 참으로 볼만했다.

“차렷! 열중 쉬어! 차렷! 도제찰사께 대하여 경례!”

“충!성!”

참교들이라 하였는가. 주변에서 어수선하게 서있는 병졸들과 달리 절도가 넘치고 각이 잡혀있다. 특히 동작 하나하나가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본 이징옥은 소름이 돋았다.

“북방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머나먼 길을 떠나 고생한 것은 알겠지만. 이곳이 함흥이라 한 들 도적떼가 들끓고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곳이다. 주변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해 왔던 일을 말해보아라.”

“난 말도둑놈 셋이랑 싸우다가 귀 한 짝이 날아가 버렸지. 등짝에 칼침도 맞고.”

“내 친구는 산군에게 당해 목만 남아 왔고.”

4군 6진은 피와 눈물로 개척된 땅이었다. 특히나 최근에 개척된 동북 6진은 토관(토착민 관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룩하지 못했을 땅이었고.

“일 년전에는 어연, 무창, 우예의 3개 군이 달단의 침입으로 폐군되었다. 이러한 거친 곳을 그대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군.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북방의 겨울에 얼마나 적응 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첫 명령을 내리겠다!”

“그 명령 받들겠 습니다!”

“처음 명령은 최소한의 적응을 위한 것이다. 저 산이 보이는가?”

북쪽에 있는 수많은 산들 중 하나를 본 장병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제법 험준한 산봉우리인데 저기를 며칠 만에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사흘? 나흘? 높이를 보니 나흘이면 가능 할 법도 하다.

“기한은 내일부터 열흘이다. 북쪽으로 오십 리 거리에 있는 박달봉의 정상에 올라 표식을 남기고 오도록. 귀환하는 기간 까지 포함한 것이니 몸이 날랜 자 서른을 뽑아 어서 움직여라.”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길잡이와 인근의 숙식이 가능한 곳은 있습니까?”

“있다. 산 아래에 초소가 있으니 몸이 날랜 자라면 산 속에서 올라갈 때 하루. 내려올 때 하루만 묵으면 될 것이다. 내일 아침부터 바로 출발하도록.”

바로 뒤를 돌아 나가는 이징옥을 보면서 이 지역 출신 병사들은 기겁했다. 함흥이 아무리 따듯하다 하지만 첫 서리가 내린지 한 달이 넘었고. 한겨울이 아니라지만 추위는 버틸만한 것이 아니었다.

“길잡이가 되실 분은 누구시오? 같이 움직이게 되었으니 계획을 세워 봅시다.”

훈련도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홍윤성은 대표로 이들을 통솔할 자격을 받았다. 그 덕분에 일 년의 시간을 더 벌어서 3년이면 정 9품이 된다. 여기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일단 명령을 받았으면 완수를 하는 것이 군인이다.

“그 산은 얼마나 험한가?”

“여름이라면 장정이 올라가는데 하루 내려가는데 하루입니다만.”

“여름에 그 정도라면 겨울에는 한번 끊어야겠소. 산 중턱에 적당한 벌판이 있소?”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홍윤성을 보면서 길잡이들의 목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북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산 속에서 하루를 지내라니요! 잔뼈가 굵은 사냥꾼들도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죽진 않더라도 손발가락이 얼어서 썩어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손사래를 치는 자신의 손가락도 두 마디가 썩어 없어졌지만 장정 서른이 그런 꼴을 당하는 것 보다는 나을게 아닌가. 홍윤성은 이 곳에서 새로 지급받은 장구를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이것이면 어떻겠소?”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군요. 그렇다 한 들 잘 곳이 문제입니다. 여기 북방에서 온 분 있소?”

“창성도호부 출신인 김가요. 함흥은 따듯한 곳이니 12인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다시 개인 천막을 치면 버틸 수 있을 거요.”

논의는 한밤 까지 이어졌다. 무덤덤하게 ‘사십 리를 걷자’ 라고 말하거나 ‘다들 오십 근 정도는 거뜬하게 짊어지잖아.’ 라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화들짝 놀라는 것은 덤이었고.

다음날 새벽. 서른 명의 훈련도감 장병들과 길잡이 넷이 잔뜩 짊어지고 출발하는 모습을 본 병사들은 야유가 섞인 잡담을 늘어놓았다.

“키도 큰 게 허우대는 있어 보이는데 뭐? 한 명이 열다섯을 통솔해? 오인장이면 몰라도 웃기고 있네.”

“다 합쳐서 발가락 몇 개 자를지 내기나 할까? 나는 스무 개.”

“어허 스무 개? 발 하나에 한 개 씩으로 잡아도 육십 개 나오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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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해. 병부상서 광야(邝埜)여, 현재 보총을 몇 정 생산하였는가.”

“조선에서 보내온 보총이 삼천 정이며. 현재 주물을 떠 빚어낸 것이 팔천 정에 달합니다.”

잔뜩 쌓여있는 청동제 보총을 본 정통제는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조선에서 보내온 보총은 자원이 모자란 국가여서인지 강철판을 말아서 총열을 만드나 그것을 명에 그대로 적용하니 손이 너무나 많이 갔다.

“조선의 보총은 백 발을 쏘고도 멀쩡하였다. 주물을 뜬 보총은 잘 해야 이십 발을 쏘면 깨져나갔지. 청동으로 만든 보총은 어떤가?”

“백 발을 쏘고도 멀쩡하였습니다. 하오나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니 시험해 본 병졸들이 피로를 느낀다 합니다. 이만 정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조선처럼 강철판을 다듬어 만드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명의 병장국 장인들은 개인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라는 말을 아주 확실한 방법으로 해석했다. 화포는 청동으로 만드니 청동으로 주물 뜬 총열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명의 보총은 무게가 10kg에 달했다.

“병장국(兵仗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며 갑옷을 단번에 뚫어버리니 건장한 이에게 들게 하라. 내 후년이면 저 오만한 달단(북원)들을 복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한들 혼자서 들 수 없다면 쓸모가 없다. 광야는 등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터져 나오려는 간언을 목구멍 속으로 우겨넣었다. 4년 전 태황태후(정통제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무도 황제와 그의 비위를 맞추는 환관 왕진을 막을 수 없었으니까.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만약 보총을 만드는 데 청동이 부족하다면 화포의 수를 조금 줄일 것이다.”

속이 끓어올랐다. 아무런 검증도 없이, 훈련도 없이, 위력이 좋은 무기라고 저렇게 만들어대는 모습을 보면 과연 전장에서 이것을 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지 정말로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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