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5화 (35/573)

< 1장 34화 - 졸업 >

조선시대의 남한산성 행궁의 남쪽에는 제법 울창한 숲이 있었고. 그 안에는 백제시대의 왕궁 혹은 주요 건물로 추정되는 시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숲을 다 베어서 훈련시설을 만들고 유적은 대충 흙으로 덮어서 가려둔 것이 진영 훈련장이었다.

“이것이 기본 진형인 층진(層陣)이다. 쌓아나가듯 전방부터 방패수, 창수, 장검수, 보총수 그리고 여기엔 없지만 사수(궁수)가 한 열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여러 회 호각에 맞춰 진형을 형성했다 풀어지는 것을 반복하니 다들 익숙해 진 것 같다. 진형의 기본은 특이한 경우가 없으면 모두 층진 으로 구성되니까.

“우리들이 말을 타고 기병의 역할을 대신한다. 처음은 방진(方陣)이다.”

“네!”

“지시사항을 하달하겠다. 전원 행군대형으로 정지. 방패수는 사방으로 이동하여 일열 종대로 선다.”

4열종대로 길게 늘어선 훈련병들이 명령을 받고 분열하여 진을 형성한다. 첫 번째 훈련이어서 아직 어설픈 이들도 있었지만 옆의 군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잘 하는 건가?

“저 정도면 어느 수준인가?”

“십사(十司 - 오위군의 전신)의 병사들도 처음에는 허둥거립니다.”

“이것이 제식훈련의 힘일세.”

진법을 하나하나 익혀나가면서 하루가 거의 다 흘러갔다. 이제 마지막 진법 하나만 남았다. 원래부터 있었던 망치와 모루 개념의 공격진법. 학익진인데 이거 이순신이 바다에서 한 것이 아니고 원래 육지의 진법이더라고.

“양 옆의 기병을 뒤따라 예비대를 구성하라! 기병과 예비대가 뚫리면 역으로 포위당한다!”

“학익진은 기본이 공세를 취하는 진형이다! 앞으로 움직여라!”

중앙에 쌓인 층진이 모루의 역할을 담당하고 양 면에서 기병과 협동하는 예비대가 이중의 망치가 되어 적을 내리치는 진형인데. 보병이 그냥 조금 빠르게 걷는 수준이라 기병의 속도도 느려진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군. 오히려 생각보다 조금 더 느려.”

“병장기를 갖춘 자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훈련에서 극복할 것 아니었습니까?”

“교보(交步)훈련 - 인터벌 트레이닝 - 을 비롯한 훈련 말인가?”

학익진은 실패다. 애초에 기병만으로 구성된 것인데 보병이 섞이니 속도가 느려져서 진형이 무너진다.

"양익은 조금 더 날래게 움직여라!"

"죄송합니다!"

"거기 조심해라! 넘어지지 마라!"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지 다리 힘을 많이 기른 것이 아니니까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다섯 번의 실패를 반복하게 만든 다음. 훈련을 마칠 시간이 되어서 준비한 단상에 올라갔다.

“지난 한달 반 동안 행해온 훈련을 따라온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네들이 이래서야 허우대만 멀쩡해서 허수아비에 갑주를 입힌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렇지 않나?”

“네!!!!!”

“그런 고로. 내일부터 새로운 훈련에 돌입하겠다.”

말 하지는 않았지만 훈련도감의 훈련 체계는 현대 군인처럼 되어있지 않다. 하나를 달성하면 다른 하나가 부족하고. 다시 달성하면 부족하고.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단련해 나가는 방식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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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심장이 벌컥벌컥 뛰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이미 주변에서 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다리를 놀릴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생각을 하던 찰나. 앞에서 달리던 군관의 입에서는 명령이 다시 나왔다.

“속보 종료! 질주!”

“아아아아악!”

다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입에서는 모래 맛이 느껴지고 속에서는 신물이 다. 그렇게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어지는 순간 군관이 호각을 불었다. 잠시 휴식이다.

“걸어야 할 때. 뛰어야 할 때. 죽어라 움직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잠시 쉬고 반복한다. 남은 사람은 몇인가?”

교보(交步) 라고 하여 교대로 걷는 줄 알았는데 바꾸는 것이니 정말로 끔찍했다. 잠시간 숨이 끊어질 정도로 빠르게 달리다 다시 숨을 돌릴 만큼 천천히 달리고, 다시 빠르게 달리는 것을 반복하였다. 숨이 가라앉으면 다시 시작한다. 그것을 반복하니 어느 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끼니는 정말 잘나온단 말이야.”

“점심에 그리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지 않습니까?”

훈련병은 자신의 식판 위를 가득 메운 현미밥과 반찬을 보았다. 그런 말을 한 상대도 만만치 않게 밥의 양이 많았으니.

“그러는 자네도 밥으로 백악산을 쌓아 먹는군.”

“저야 원래부터 잘 먹었습니다.”

보름이 지나지도 않아 다들 식사량이 늘었다. 교보 이외에도 소처럼 쟁기를 끌지는 못하니 40근 무게의 돌덩어리를 끌고 달리는 훈련도. 등에 모래주머니를 짊어지고 달리는 훈련도 있었다. 다들 마소가 되어간다고 자책하면서도 뱃속으로는 계속 밥이 들어갔다.

“집 밥보다 훨씬 맛있지 않나? 나는 돼지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 여기서 알았다네.”

“그래 고기는 많이 주지. 그러고 보니 자네 키가 좀 커졌나?”

“아마도?”

초모에 응한 가장 어린 병사들은 아직 만 16세이니 성장기가 끝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훈련을 통해 온 몸이 단단해지며 허벅지는 두꺼워졌다. 오후 수업을 들으려 강의실에 들어가자 수양대군이 분필을 잡고 앞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 다리의 힘을 잘 단련했으니 다음 훈련으로 나서겠다. 이미 입소를 하면서 경험했겠지만 군인의 생명은 하체이다.”

“네!”

“추가로 버선과 새 전투화를 지급할 것이니 내일 동안 길을 들이도록. 이틀 뒤 모든 병장을 갖춘 채로 행군에 나선다.”

“행군이라 하셨는데 어떤 행군입니까?”

“산길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백 리(40km)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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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병법서는 행군 거리를 30리라 규정하였다. 이 거리를 넘으면 군사들이 쇠해지고 말이 지친다고 하였으니. 그 것과 정 반대의 개념이 이 산악행군이다. 적보다 빠르게 적보다 험한 길을 다닌다면 허를 찌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시(새벽3시)부터 걸어서 이제 오시(오전 11시)일세.”

“그냥 확 뛰어내려 집에 가고 싶다.”

“그랬다간 산군을 만나 죽어 나자빠질 것일세.”

걷는 것은 쉽다 생각했다. 봇짐 20근이건 30근이건 등에 짊어지고 하루에 80리를 걷고도 남는 장돌뱅이 생활을 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험난한 산길을 여섯 시진(12시간)동안 백 리를 걷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잠시 휴식!”

“하 죽겠다.”

“이대로 누워버리면 바로 잠이 들겠지.”

잠시 적당히 큰 공터가 나오고 휴식명령이 떨어졌다. 주저앉아서 끈을 풀고 투구를 벗은 훈련병들의 머리 위에는 김이 솟아올랐다.

“엿을 벌써 다 먹었네.”

“그러니 아껴 먹으라 하지 않았나.”

전날 지급한 엿을 작게 잘라 가끔 먹어두면 갈증도 덜하고 몸도 덜 피곤했다. 대나무 수통을 두 개 챙겨온 것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수양대군은 쉬고있는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을 마실때는 항상 작은 소금 알갱이를 같이 삼켜라. 그리고 물이 떨어진 이들도 걱정하지 마라. 다음 고개까지 가면 보급으로 물을 지급할 것이다.”

혹여나 소금 알갱이가 없는 자를 대비해서 작은 통에 챙겨온 소금을 건내 주기도 하고

“발에 땀이 차면 버선은 꼭 갈아 신도록. 발에 습기가 차면 물집이 쉬이 생긴다!"

직접 전투화를 벗어 새 버선으로 갈아 신는 모습을 보고는 화가 나려고 해도 낼 수 없었다. 말만 앞서는 것이 아닌 행동을 보여주니까.

“높으신 분이면 저 멀리 산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겠지.”

“맞는 말이네.”

“적어도 저런 분이 위에 계신다면 어떻게든 싸울 맛은 나겠어.”

수양대군 덕분에 내금위 출신의 높으신 분들도 이 대열에 15명 끼어 있었다. 다들 힘들고 피곤한데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다시 출발한다! 일열 종대로!”

날이 갈수록 자신들이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 입소할 때의 시험을 본다면 단번에 합격할 테니까. 다들 비어있는 수통에서 마지막 한 방울을 털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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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며 옛 명절 중 하나였다. 훈련도감을 처음 초모한 노들나루 북쪽에 있는 백사장인 새남터에 세종대왕님을 비롯한 신료들이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하여 나오셨다. 발맞추어 걷는 소리가 저 멀리부터 들리네.

“이게 무슨 소리요? 대군어른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십니까?”

“발소리가 하나로 들리는 것이지. 홍 절제사가 통솔을 잘 하는 모양이군.”

“발동작도 하나로 맞추다니 참으로 정병일 것 같습니다.”

4열종대로 늘어선 203명의 훈련병들은 팔 높이와 다리 높이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동작이 일치되어 있었다. 북한마냥 각을 완벽하게 맞추는 건 낭비니까. 이것만 해도 최정예지.

“전원 차렷! 열중 쉬어! 차렷! 주상전하께 대하여 경례!”

“단심(丹心)!”

처음부터 경례를 도입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도입하게 되었다. 예를 표하기 위한 것은 보통 절이나 허리를 구부리는 인사인데 무기를 든 군인만큼은 이렇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이 제도를 바꾸었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그대들을 보니 그동안의 훈련이 짐작이 간다.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이들은 모든 무관들의 모범이 되었으니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 질 것이다.”

“주상전하의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백골이 될 때까지 임하겠습니다!”

"모두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편히 서 있어라."

"전체! 열중쉬어!"

차렷, 열중쉬어, 쉬어, 편이쉬어 개념도 도입했다. 애초에 제식은 다 도입했지만 가장 충격적인건 이것이겠지. 쉬는 자세조차도 절도가 있으니 다시금 감탄이 나왔다.

“그대들의 병법은 세자와 수양대군이 창안하였느니라. 세자는 앞으로 나서서 이들이 얼마나 병법에 통달하였는지 확인하여라.”

“전원 방진을 구성한다! 실시!”

형님과 같이 편찬한 병서(兵書)에 나와 있던 5개의 진형을 숙지한 훈련병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진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진법의 변형까지 완벽하게 구성하자 형님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진법에 통달하여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참으로 훌륭하다. 그렇다면 용력을 확인하고 싶으니 각자 무기에 따라 분열하여 서라.”

“전원! 병종별 사열 횡대 집합!”

언덕 앞에 선 방패수들 에게 사람 몸통만한 장작 뭉치들이 굴러 내려왔다. 보통 사람이 휘말리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지기 딱 좋은 녀석이지만 장패를 든 자에게는 딱 적당하다. 훈련 때는 그냥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걷어차거나 어깨로 들이 받았지.

“충격에 대비하라!”

앞에 가볍게 박은 목책을 부숴버린 장작 뭉치들은 거세게 장패(長牌)에 부딪히고는 멈췄다. 방패가 상한 자는 있어도 부상을 입은 자는 없었다.

"전원! 밀치고 때려!

구령이 나오기가 무섭게 장패가 앞으로 밀쳐진다. 그렇게 뒤로 물러난 장작뭉치는 달라붙은 방패수들이 두 자(69cm)가 넘는 환도로 계속 내리쳐 장작더미를 부숴버렸다.

“다음! 창수! 장창 밀집대형 시작!”

“네!”

창수들은 장창으로 빈 틈 없는 진형을 만든 채 짚을 채운 망태를 아예 꿰어버리며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고. 장검수 들은 큰 미첨도를 날래게 휘둘러 나무 심이 박힌 허수아비들을 마구 베어버렸다. 이제 마지막 순서인 보총수 차례였다.

“보총수! 사열 횡대!”

“사열 횡대!”

좌로부터 우로 차례차례 사격한다. 삼단 철포로 대표되는 열을 교체하면서 연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격병기에 이미 있는 개념이어서 따로 도입은 하지 않았고 4열로 서게 하였다. 석궁도 활도 다들 전열이 쏘는 동안 후열이 장전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식이었으니까.

“이단 사격대형 준비!”

말과 동시에 첫 열은 무릎으로 앉고 두 번째 열은 바로 그 머리 위에서 조총을 겨누었다. 대신에 도입한 것이 보총만 가능한 앉아 쏴. 활은 무조건 서서만 쏴야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쏘면 화력 집중도가 단순 계산으로 2배가 올라간다.

“제 1진! 앉아 쏴! 제 2진! 서서 쏴!”

오십 보 거리에 있는 허수아비에서 빨간 물이 튀어 오른다. 돼지를 엄청나게 먹어대니 돼지 오줌보는 백 개가 넘게 쌓였고. 여기에 주사(朱沙 - 황산수은)와 물을 넣고 허수아비 안에 넣어뒀다.

“이렇게 하니 적의 피와 같아 보기가 아주 좋구나. 다음은 총통기화차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거라!”

“총통기화차(銃筒機火車) 15문! 사격대형으로 배치!”

화차여서 화포일 줄 알았는데 깐깐한 형님은 총통기화차는 보총과 같은 총알과 화약을 사용하니 보총수가 다루는 병기라고 하셨다. 두치총은 결국 화포로 분류되었고.

멀리서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총통기화차에 4명의 보총수가 달라붙어서 작업을 시작했다.

“약선(도화선) 넣고!”

“약선 넣고!”

“화약 넣고!”

페이퍼 카트리지는 총통기화차에 적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하나 까서 넣으나 4인 1조로 움직이나 시간이 별 차이가 없으니까. 4인이 화승, 화약, 납탄을 채워넣는 동안 남은 한명이 총통기화차를 좌우로 움직여 방향과 각도를 맞추고 몸체에 달린 경첩을 박아 고정시킨다. 시즈모드인가?

“총통기화차 방렬(放列) 완료!”

“총열 총 4개 완성!”

“일제 방포!”

[쾅!]

횃불이 총열의 뒤를 쭉 스치자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가며 심약한 이는 몸을 휘청거릴 정도의 폭음이 일어났다.

"일열 발포! 다음 연속 삼열 발포!"

그렇게 4개의 총열을 갈아끼우며 쉴 새 없이 사격을 하자 과녁인 허수아비들이 갈가리 찢겨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신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고 세종대왕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장하다, 정말 장하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초모하였을 때 의심하였고 훈련이 고되니 행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되었다. 그대들이 익힌 것이 십분의 일이라도 다른 병졸들에게 전해진다면 아국을 함부로 범할 외적이 없을 것이다.”

같이 나와있는 갑사들은 이 상황을 보면서 기분이 꽤 찜찜할 거다. 말을 타지 않을 뿐이지 창, 검, 총에서는 확실히 우위에 서 있잖아.

지금의 시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아서 근무를 열심히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밀려서 사라지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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