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32화 - 훈련도감(1) (0716 수정) >
1445년 12월이 되었다. 명에서는 완벽하게 우리의 뜻대로 움직였는데. 보총을 ‘보낸 것과 같이 튼튼하게’ 이천 정을 매년 보내라고 하였고. 군기시를 돌리면 이천 정 정도는 나오고도 남으며 지방 관아에서도 슬슬 보총을 만들 기술력이 축적되었다.
명으로 보낸 사신들이 너무 힘들다고 애걸복걸하자 대신 조공으로 보내는 말을 평시 500마리. 전시에도 최대 1000마리로 줄이고 암말과 수말의 비율도 제한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흘러간 말만 해도 개국부터 30년간 5만 9천 마리에 달하고 그 이후로도 갖은 핑계로 말의 씨를 말리느라 매년 1000마리씩 뜯어갔는데 이제는 말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장인들이 정말 고생하는구나.”
“그렇긴 하지만 아직 기술이 성숙하지 못하니 별 방법이 없습니다.”
매캐한 연기와 열기 속에서 장인들은 열심히 강철판으로 총열을 말았다. 역시 문제가 기술이 안 좋으니 4자(1.2m)가 조금 안 되는 총열인데도 불량품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3개를 만들면 1개는 불량이다.
“그것은 너무 휘었으니 다른 곳에 쓰게.”
“끝에만 조금 휘었는데 말입니다.”
“못 들었나? 검수용 철봉에 온전히 꿰이지 않아. 이렇게 휜 놈은 쏘다가 옆구리가 터질 수 있고. 만약 안에서 탄환이 막히면 마구리가 터져서 사람의 머리통이 날아가!”
박강은 총열 하나하나를 검수하고 구경보다 조금 작은 검수용 철봉에 끼우는 검사작업과 조립품의 완성도를 보는 최종작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폐기된 총열이 계속 쌓이는데 저걸 잘라서 작은 공령(플레이트)을 끼우면 적당하지 않을까?
"그것으로 소역기봉을 만들면 좋겠군. 몇 개 가져갈 수 있겠소?"
“제가 다 생각이 있습니다.”
“혹여나 성한 부분만 반으로 잘라서 작은 보총을 만들 생각이시오?”
“그것도 좋은 방안입니다만 제가 구상하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내가 너무 나갔나? 세종대왕님과 안으로 들어와 훈련도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만간 방을 붙여 훈련도감 초모(招募 - 병사를 모집함)를 시작해야 한다.
“훈련도감의 상세는 이렇게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동생의 생각이지만 신기하기 이를 데 없구나. 대체 어찌 이런 생각을 하였느냐.”
“저도 궁리를 하였는데 약한 것을 메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략적으로 그린 표를 보는 세종대왕님과 형님. 조선군의 체계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장성급은 문관이라 완전 로또고. 적당한 영관급과 어설픈 위관 급이 있고. 특전부사관, 현대의 특전사와 비슷한 갑사는 있지만 병사를 지휘하는 부사관이 아예 없다.
“궁시와 기마를 제외한다니 오히려 마음에 놓이는구나.”
“그렇습니다. 둘 다 익히기 위해서는 부유한 집에서 다년간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걸 처음부터 가르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갑사. 취재(取才 - 재주를 시험해서 사람을 뽑음)로 모은 그들은 분명 강했지만 유지비용이 너무나 많이 든다. 괜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갑사들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갑사가 되려면 집에서 말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필요한 수는 말 한필도 아니고 5~6마리니 현대로 따지면 외제차 끌고 다니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집이 부유하지 않아도. 신분이 낮아도. 육체가 좋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훈련도감을 나온 이가 보졸(步卒) 중에서 궁수를 제외한 인원 15명을 통솔하는 것이라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장수의 지시를 즉각적으로 조 단위로 하달하여 대응하는 방책입니다.”
“조 단위라. 지금은 병졸 중 숙련된 이를 뽑아 오장(伍長 - 대오의 장)을 시키고 있지.”
세종대왕님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신다. 오장이 10년차 숙련병이 걸리면 그 하급 인원들은 지휘를 잘 이행한다. 하지만 비숙련병이 걸리면? 다 같은 비숙련병이 된다.
“비교적 많은 비용이 든다 하여도 해볼 만한 일입니다. 당장 휘하에 있는 보졸들이 숙련병의 지시를 받는 것과 같으니까요.”
“내가 보기에는 갑사를 뽑아서 그들에게 급료를 주는 비용이나. 훈련도감을 양성하는 비용이나 거의 같게 느껴지는구나.”
“걱정 마시옵소서. 훈련이 끝난다면 일당십의 빼어난 군사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금위에서 먼저 훈련을 받은 이들이 하소연을 하였으니 그 말은 옳은 것이지만 몇이나 버틸 수 있겠느냐.”
세종대왕님은 천장을 보시면서 한숨을 쉬었다. 돈은 엄청 깨지고. 훈련 난이도와 배치를 정하면서 내금위 군관 중 몇 명은 그 적당한 - 내 기준으로 - 훈련을 겪고 내 멱살을 잡기도 하였다. 물론 들어서 던지니까 조용하게 변하더라고. 죽은 건 아니다?
----------
“이보게 영해(領海). 얼마 전에 붙은 방(榜)을 보았는가?”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던가? 정음인지 뭔지로 쓰여 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자네도 언문을 배우게나. 내년인 병인년 2월 5일에 한양에서 훈련도감이라는 새 부대를 초모한다 하더군.”
새 부대를 초모한다니? 갑사에 응하려 하였지만 집안에 재력이 부족하여 응시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훈련도감?
“훈련도감이면 도성에서 훈련받는다는 뜻인가?”
“춘부장께서 음보(음서)로 관아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나. 그런데 도성이 좋지 않겠어?”
“거기 말 타야하는가?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말을 많이 안 다뤄봐서 말이야.”
“말을 타는 것은 아예 언급조차 없더군. 심지어 궁시도 제외했어.”
수염이 진하게 피어오른 남자는 조용히 생각했다. 집이 그리 잘나지는 않지만 인맥으로 음서를 볼 수는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몸 하나는 자신 있었다. 이 근방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이는 손으로 꼽을까 말까 하였으니.
“정말로 보따리 하나만 싸들고 가면 된다고?”
“가져가야 할 것은 호패고. 바라는 것은 튼튼한 몸과 굳은 의지라고 하였네.”
“가볼까? 한번 시험을 보고 떨어지면 음보로 일하다 무과를 준비하면 되겠어.”
충북 회인현에서 한 남자가 움직였다. 그를 비롯해 전국 팔도에서 수백 명의 청년이 튼튼한 몸만 있으면 5년 뒤에 무관이 된다는 마음으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겨울 추위를 뚫고 움직였다.
----------
1446년 2월 5일. 노들섬 남쪽. 현대의 노량진 근처에 있는 노들나루에는 적게 잡아도 900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무리 제한이 없더라도 200명 모집에 이 숫자면 예상 이상이다. 하지만 준비한 물자는 2천명을 고려한 것이니 문제는 없다.
“장관이군요.”
“그렇습니다. 이거 조건을 조금 더 걸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대군어른께서 먼저 이야기를 하심이 어떠십니까?”
이 양반 자꾸 뒤로 물러나네. 아니 판서나 돼서 왜 이리 새가슴이오?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참았다. 그래 다른 사람 제대로 다루지는 않았지.
“병조 판서께서 주관하시지 않습니까. 판서께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저는 못합니다! 시작하신 분은 예조판서인데 어찌 제가 끼어들게 되었는지.”
지금의 병조 판서는 김종서가 아니다. 일전에 세종대왕님에게 태클을 걸었다가 후원을 죽어라 구른 대사헌 안숭선이다! 기록대로라면 6년 뒤 환갑에 죽는 양반인데 입신체비를 좀 해서 몇 년 더 살려나? 결국 내가 나서는 것이 답이다.
“조용!”
- 여 김형 반갑소. 간만에 뵙는 구려.
- 저분 덩치가 크신데 어느 분이지? 높으신 분 같은데.
“다들 조용!”
이래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가르쳐야 한다니까. 현대처럼 단상에 선 사람이 몇 마디 하면 알아서 주목하고 조용히 하는 시대가 아니니 방법이 없네. 품속에서 황동으로 만든 호루라기를 세차게 불자 처음 듣는 기묘한 소리에 입을 다물고 이쪽을 주목한다.
“이 겨울 추위를 뚫고 찾아온 그대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나는 주상전하의 명을 받아 훈련도감 초모를 위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된 수양대군이다. 그대들의 모습을 보니 의욕은 넘치나 실력을 가리기 위해 선발을 할 수 밖에 없다.”
- 뭐지? 궁시가 아니면 뭐 도끼질이라도 하려나?
- 난 도끼를 못 쓰고 칼이나 만져봤는데.”
- 나는 철퇴 잘 쓰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까지 들리네. 일단 몸을 힘들게 만들면 충분히 조용해지겠지.
“첫 번째 시험은 간단하게 한다. 다들 도성까지 올라왔으니 다리는 튼튼하겠지? 남자의 생명은 하체다. 병졸의 생명도 하체이며 훈련도감군은 더더욱 하체를 중시한다. 하체가 없으면 남자가 아니다!”
계속 잡담이 들리고 네에 네? 네에! 하는 소리만 들리는데 명령 하달은커녕 하나하나 가르치는데 한 세월이 걸리겠다. 다시금 이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까마득해지지만 숫자가 좀 줄면 편해지겠지.
“다들 교관들에게 봇짐과 호패를 같이 맡기고. 나누어주는 미투리를 발의 크기에 맞게 새것으로 갈아 신고 수통을 받는다. 실시.”
“차례차례 와라 좀! 미투리는 여기에 수천 개는 있다니까!”
“밀치지 말라고! 확!”
“여기서 싸우면 무조건 탈락이다!”
“실시라 하면 좀 실시(實施)해라!”
그렇게 한동안의 소동이 끝나고. 인원이 파악되었다. 혹시 몰라서 미투리(삼베로 만든 짚신. 튼튼하고 충격 흡수가 잘 된다) 4000개를 가져왔는데 남은 짚신으로 보면 총 1052명. 적당히 300명으로 걸러야겠다.
“하체가 튼튼한 자는 뜀박질을 잘 할 수 있다. 고로 지금부터 내 뒤와 후열의 훈련관 마일용의 사이에서 계속 움직인다. 목적지는 탄천 까지다! 전원 준비!”
“엇 탄천은 오십 리(20km)가 넘는데!”
“준비!”
“실시!”
앞으로 나서서 다른 군관들과 열을 맞춰 조금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다들 어리둥절해 있다가 하나둘씩 따라서 걷는데 이건 시작이다. 시작부터 빠르게 달리면 안 되니 몸부터 풀어야지.
“이게 시험이라고? 조금 빠르게 걷는 것이?”
“이건 시시한데?”
아직까지는 탈락자가 몇 없지만 슬슬 속도를 올려야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다음 5km쯤에서 7km의 배속행군 속도로 올리자 뒤에서 곡소리가 점점 올라온다. 군장도 없고 잘 걷는 조선시대니까 다들 버티네? 수를 줄여야겠다.
“휴식은 끝이다! 지금부터 속보(速步)를 시작한다!”
“아아아아악!”
“시벌 뭐여? 뭐냐고? 왜 밀쳐?”
“이거 언제까지 달리지? 탄천까지 반 왔나?”
당연하지만 내금위 출신 교관이면 한 시간정도의 속보는 충분히 한다. 10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연병장을 뛰는 걸 군대에서는 ‘구보’라고 했지. 경기도 도로 사정은 연병장보다 조금 못하니까 다들 따라오나? 했는데 역시나 탈락자가 속출한다.
“옆으로 빠져라. 잘못하면 밟힌다.”
“감사합니다우우우에엑!”
“젠장 나 동래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점점 더 속도를 올려가다 탄천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이 다 되었다. 인원은 준비한 미숫가루를 탄 대접을 줘서 세었는데 403명이 남았다. 2차 시험은 조금 더 빡세게 굴려야겠다. 굴려야 하는 샘플? 궁궐엔 많으니까 난이도 조절은 간단하지?
“자고로 용력을 쓰는 것은 어느 정도 체구에 비례하여 쓸 수 있는 것일세. 여러분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네. 그저 이 체중에 맞게 이 대역기를 들면 된다네.”
“대체 얼마나 하는 것입니까?”
“승의압(인클라인 벤치프레스)은 자기의 체중의 팔 할 만큼. 전향공좌(프론트 스쿼트)는 자신의 체중만큼. 마지막으로 시거(데드리프트)는 자기 체중에서 이 할을 더한 만큼일세.”
보디빌딩은 근육을 멋지게 만드는 것이니 실전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종격투기 선수와 이야기를 해 봤을 때는 승의압, 전향공좌 이 두 개는 실전성과 부분운동에 탁월하고. 시거는 전체 밸런스와 악력을 길러주니 이 것으로 운동능력을 판가름 할 수 있다.
“자네 체중은 95근(57kg)이네 그러니 전향공좌는 팔 할인 75근(45kg) 일세! 넘어질 것 같으면 넘어져도 좋아 우리가 잡아줄 것이니.”
“어디 한번 해보겠습니다. 끄억!”
“무리하지 말게. 첫 시도는 실패했군. 다음 차례에는 꼭 성공해보게.”
처음 잡아보는 자세니 부상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군관들이 바로바로 잡아줘서 부상자는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총 3회의 시도를 했다. 통과한 자는 221명. 약간 초과했지만 중간에 탈락할 사람들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숫자로도 충분하다.
“다들 시험에 통과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네. 200명을 모으고자 하였는데 221명이 모였군. 일할 정도는 도중에 탈락하거나 집안에 불우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여분의 인원으로 둘 걸세. 그럼 그대들이 머물며 새로 거듭날 곳으로 옮기지.”
---------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리는데.”
“날도 어두워지고. 이거 산속에서 노숙하다간 얼어 죽겠어. 홍 형은 어떠시오?”
“아 나? 대군어른처럼 번쩍번쩍 자기 몸 곱절의 무게를 들어 올릴 재간은 없지만 시험이 너무 쉬웠네. 반배정도 무게를 늘려도 통과했을 걸세.”
그 사이에 땀을 흘려 친해진 자들은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산길을 걷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하나 돌아 올라가자 대문이 보였다. 궁궐의 문 보다는 못해도 누각이 달린 성벽의 문이었다. 그 위에서 내금위 소속 군관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이곳 남한산성 훈련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몇 년 뒤에 완성될 나라의 변고를 대비하여 마련한 행궁이며. 그대들이 진정한 병사로 거듭날 곳이기도 하다.”
“이 냄새는 무엇입니까?”
“진정들 하게나. 시험에 통과한 그대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였다네. 다들 질서를 지켜 들어가게. 그리고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석감을 나눠줄테니 씻고 몸을 말리게나. 아직 유시(오후 5시)도 안 되었다네.”
“석감이라면 그 귀한 물건을 저희가 써도 되는 것입니까?”
“염려하지 말게. 훈련도감에서 있으면 매일 작은 석감으로 몸을 씻을 수 있으니.”
드디어 훈련소 입소라는 큰 행사가 끝났다. 온 신경을 집중하니 피곤하고 씻고 자고 싶은데 잠자기 전에 보고서는 작성해야지. 적어도 처음 삼일간은 이곳에 머물면서 기본적인 것을 다 굴러가게 만들어야 한다.
---------
“자르게.”
“네?”
“군말 말고 전부 자르게.”
세자 이향과 군기시의 박강은 이미 다음 무기를 만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동생이 저런 정병을 만들어 내는데 정병에 맞는 무기가 필요한건 당연했다. 전조시절 최무선이 만든 화차를 개량한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는 이미 구상이 끝났지만 보총이 등장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신기전기화차도 좋지만 확실하게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는 무기다.
“조금 휜 것인데 곧은 부위를 자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거 아무리 조금 무르게 만든 철이라지만 강철인데.”
“마구리가 안으로 굽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막아버릴 것이니까.”
불로 달구고 끌로 내리쳐 끊어낸 총열은 수십 개가 쌓였다. 다음 장인들은 뒤에 강철로 만든 마구리용 소라못(나사)을 박아 총열을 완성하고. 상부에 홈을 파 심지를 꽂을 자리를 마련했다.
“이 정도면 훌륭하군. 아주 잘했소.”
“틀을 가져왔습니다.”
그 총열들의 길이를 대충 맞춘 박강은 열두 개를 한 줄로 틀에 꽂아 넣었다. 이 이상 연결하고 싶지만 총열 하나의 무게가 세근(1.8kg)이 넘으니 이 틀만 해도 사십 근에 달했다.
“이것이 맞습니까?”
“그렇지. 일전에 시험해본 바에 의하면 총열이 두 자(66cm) 아래가 되면 삼십 보 거리에서도 명중을 기대하기 어렵 다네. 하지만 숫자가 많으면 정확성 정도는 충분히 메꿀 수 있지.”
“그렇다면 본디 보총의 총열이 좋지 않습니까?”
“보총의 총열을 그대로 쓰면 무게가 120근(72kg)에 달하지. 민첩한 움직임을 할 수 없고 하나하나 장전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네.”
완성된 물건은 수레 위에 한 줄의 총열이 달려있는. 화차라고 부르기엔 작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보총의 일제사격이 가지는 위력을 아는 자들은 모두 이 무기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 병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실 것입니까?”
“신기전기화차와 쌍을 이룰 것이네. 그러니 총통기화차(銃筒機火車) 라고 부르겠네.”
원래의 총통기화차는 사전총통 50정을 장착한. 산탄과 화살을 난사하는 병기였고 이후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보총을 체험한 문종 덕분에 임진왜란에서 류성룡과 변이중이 실전적인 개량을 거쳐서 완성한 그 모습보다 더욱 발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