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32화 (32/573)

< 1장 31화 - 수양근 (0716 수정) >

다시금 20명의 시골 양반 자제들이 입신체비장에 오자 현대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회원님들이 내 피트니스 센터에 와서 어리둥절하면 기분이 조항지지. 그렇게 7월이 되고 여름더위가 꺾이자 본격적인 입신체비를 시작하였다.

“박압(숄더 프레스)은 팔뚝을 굵게 하지만 몸을 조금 기울이면 흉부의 근골에 영향을 많이 끼치지. 바로 이것과 같은 자세일세.”

“저기 지금 120근으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 정도는 열다섯 번은 가능하지. 자세를 바르게 가지게!”

저기서 낑낑대는 모습을 보니 무게를 너무 크게 잡고 다룬다. 이러면 소역기를 빼앗고 엄하게 꾸짖어야지. 우현규 그 친구가 괜히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니까!

“많은 무게를 든다고 좋은 것이 아니야! 효를 보여주기 위한 몸을 만들려고 무리하다 몸이 상하면 그것이야 말로 불효일세.”

“죄송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주면서 본보기로 15회 반복을 하니 집중할 수 있었다. 관성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 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게 효과가 좋으니까. 그렇게 사람을 가르치고 있는 데 좋은 손님이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왔다.

“대군어른을 간만에 뵙습니다.”

“이거 우전상 아니시오? 마을 일이 바쁠 것인데 어찌 온 것이오?”

“다름이 아니고 일전에 소개를 받은 곳인 삼생골에서 한 해를 나니 대군어른을 뵙고 싶어졌습니다. 정말 살맛이 납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불만이 가득한 눈이었는데. 지금 보니 순박함이 되살아나고 볼에 살도 올라왔다. 먹고살기 편하지?

“나도 그대들에게 고마울 뿐이지. 사냥을 어찌나 잘하는지 근방 이십 리에 있는 산군과 표범 그리고 멧돼지의 씨가 말라버렸소.”

우전상에게 소개한 삼생골은 사실 내 사유지가 있던 곳 근처의 적당한 골짜기였다. 우전상을 비롯한 구백정이 터를 잡으니 처음에는 소작농과 주변 농민들이 반발하였으나 주변의 산짐승들의 씨를 말려놓자 반기는 눈치였다. 조만간 소 대여제도에서도 혜택을 보는 이가 몇은 생기겠지.

“저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대체 어느 배추를 주신 것이기에 속이 알차고 맛이 이리도 좋습니까. 배추를 기르는 사람은 이 배추의 씨를 받아가러 아우성입니다.”

“그렇구려. 그런데 이것은 뭐요?”

작은 나무상자와 기름종이로 싸여진 덩어리를 내미는데 퀴퀴한 냄새가 난다. 이거 설마?

“수유(버터)는 쉬이 상하기에 가져올 수 없었고. 유락(치즈)과 대군어른께서 말씀하신 유청입니다. 이 유청이 그렇게나 좋습니까?”

“좋고말고. 그런데 아직 소가 새끼를 낳지 못했을 것인데 어찌 유락을 만든 거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목장에서 받아올 때 새끼를 막 밴 암소를 찾아 골라왔죠.”

이들에게 가르쳐 준 방법은 우유를 짜서 먼저 버터를 분리한 뒤. 염소의 네 번째 위를 우려서 커드(카제인이 주 성분인 단백질, 치즈 원료)를 분리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우유를 끓여서 위에 뜬 막을 말리고 부숴 웨이만 함유된 유청 분말을 만드는 것이었다. 버터와 치즈야 이들의 방식에서 조금 변형한 것이지만 유청은 생소한 물건이겠지.

“내년부터 돼지들도 관아에 내놓을 것입니다. 돼지들을 왜 저희가 기르게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덩치가 크니 다루기도 벅차더군요.”

“하긴 덩치가 작은 돼지면 집어 던지거나 두들겨 패면 정신을 차리지만. 사람보다 무거운 돼지를 그리 할 수는 없잖소.”

“대군어른께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이거 나중에 취미삼아 돼지라도 길러야겠군.”

돼지 하니 이게 생각나네. 지금 한반도에는 참나무가 부족하잖아? 백정들에게 추천을 좀 해야겠다. 지금에야 무리지만 30년 40년이 흐르면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해줄 말이 있소. 상수리나무를 구해서 주변에 심으시구려.”

“상수리나무요?”

“나중에 나무가 자라. 십여 년이 지나면 도토리가 열릴 것이니 그것을 돼지들이 돌아다니며 먹게 하는 것이 좋지 않소. 그때가 되면 더 많은 돼지를 기를 수 있을 거요.”

“옳은 말씀입니다.”

현동이와 주현이도 성장기니까 좀 줘봐야겠고. 나도 좀 먹어서 내 근육을 키워야지. 추석 다음날 세종대왕님과 소헌왕후님의 참관 하에 형님과 안평대군의 3대 운동을 시험하기로 했는데 천이백 근을 찍을 수 있을까? 한번 도전해봐?

----------

“세자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은혜에 힘입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이고자 삼대 운동 칠백 근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무리하지는 말거라.”

“이전 유와는 순서를 바꾸겠습니다. 유가 체험한 바에 의하면 의압(벤치프레스) 다음에 공좌(스쿼트) 그리고 시거(데드리프트)의 순서는 허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형님의 3대 운동 700이 시작되었다. 형님은 하체가 약한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3대 운동에는 불리하지만. 일단 공좌다. 230근(138㎏)의 공좌(스쿼트)를 조금 불안정하게 성공한 형님은 이윽고 의압으로 넘어갔다.

“끄리얍!”

“공좌가 230근인데 의압이 190근(114㎏)이니 팔 힘이 강한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하오나 이 정도는 개인의 차이입니다.”

“다음은 시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아앗!”

역시나 팔 힘에 비해서 하체는 약하다. 그래도 죽어라 운동을 하니 이제 현대에 가서도 헬스클럽에서 운동 좀 한다는 소리 듣겠다. 그렇게 280근의 시거를 마친 형님의 합은 230 + 190 + 280. 시거와 의압은 조금 더 올릴 수 있는 여유 있는 삼대 운동 칠백을 찍었다.

“세자도 어디 가서 잔병치례는 없을 튼튼한 몸이 되었으니 안심이다. 그러면 다음은 용이(안평대군)가 준비해 보거라.”

“네…넵!”

세종대왕님도 그 체격이 어디 날아가는 건 아니어서 삼대 운동 400근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준이다. 현대라면 초보 탈출자인데 지금 나이와 중세라는 상황을 생각하면 대단한 거지. 그 말을 들은 안평대군은 죽어라고 입신체비를 하더니만 결국 삼대 운동 500근을 찍었다.

“공좌 190근에 의압 140근 마지막으로 시거 180근이니 합이 510근 입니다.

“으아! 해냈다!”

“이 정도면 사신행에서 몸이 축나지는 않겠구나. 유는 성과가 얼마나 있더냐?”

“1200근이 가능할 것입니다.”

“무리하지 말거라. 아무리 세자와 용이가 각기 700근과 500근을 들었다 한들 그 합을 드는 것은… 아니다 해 보거라.”

말이 1200이지 폭발적인 성장에 제동이 걸렸고. 이후 사신행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근 손실이 조금 있었다. 이후로 조선에 돌아와서는 점차적으로 근육량을 늘리며 지방을 줄여서 체중도 175근(105㎏) 정도에서 머무르게 했다. 지금 체지방률은 9%쯤 나오지 않을까?

“그 몸은 언제 보아도 신장(神將)이 따로 없구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하렴.”

“걱정 마십시오! 그렇다면 공좌 440근(264㎏)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입신체비에서 체중보다 많은 무게는 다룰 수 있지만 두 배를 넘으면서 부터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하면서도 정말 이상하다. 원래 몸으로는 이 체중에 이 무게면 불가능한데 이 몸은 팔다리가 짧아서 기동범위에서 이득을 보나? 머리가 좀 큰 것 같기도 하고.

“끄오오오오오옷!”

생각 외로 무난하다. 이 압력을 여러 번 성공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 외로 무난하게 공좌를 마치고 의압에서 330근(198㎏)이 넘어갔으며. 마지막으로 시거만 남았다. 정말 죽어도 안 오르는 운동인 이놈의 시거인데 혹시나 돼지가죽으로 만든 보호도구의 힘인가? 아니야 뭔가가 이상해. 진짜 이상해.

“잠시 쉬었다 해라.”

“숨은 충분히 돌렸습니다. 이제 시거 440근을 도전하겠습니다!”

시거, 데드리프트의 생명은 역시나 몸의 각을 유지하고 밀어내는 그 힘을 모으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해도 평생 허리고자 신세를 각오해야 하는데 의외로 부드럽게 올라가는걸! 다른 것은 몰라도 데드리프트는 팔 다리가 짧으면 이득을 못 보는 운동인데 이상하다.

“성공하였습니다!”

“장하고 또 장하도다. 세자와 안평대군의 합을 들어 올렸으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느냐. 용이는 조만간 사신으로 북경에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겠습니다.”

“북경에 가기 전에 남은 시간동안. 유의 몸을 여덟 폭 병풍에 그리어라.”

안평대군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내 입도 쩍 벌어지고. 세종대왕님 이게 무슨 생각이신가요?

“네?”

“유의 입신체비장에 여덟 폭 병풍을 두면 입신체비에 임하는 자들이 보고 배울 것이며 부러워 할 것이다. 설령 기한이 모자란다 하면 초본(草本 - 밑그림)이라도 그려서 나중에 덧그리면 되지 않겠느냐.”

이건 무슨 공개 수치플레이. 아니 역사문화유산의 생산 현장이야? 나중에 헬스클럽 가면 하나씩 벽에 붙여놓을지도 모른다. 잘 하면 세계적으로 유행할지도?

"아바마마 그런 것을 남기게 되다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아니다, 삼대 운동으로 1200근이나 들었으니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용력이 아니겠느냐. 앞으로 삼대 운동 1200근을 수양근 이라고 하겠다."

수양근. 이 세계에서 삼대운동 720kg은 수양근으로 변한 거군요. 하긴 3대 700 넘으면 정말 타고난 몸으로 열심히 한 사람들을 상징하니까. 그러면 삼대운동 1000근은 뭐 진양근이라도 되나?

"병풍의 이름은 수양팔근도(首陽八筋圖)라 하겠습니다. 그럼 어떤 자세로 할까요?"

"처음의 자세는 우각세(프론트 더블 바이셉스)로 하겠다."

보디빌딩 자세는 일곱 개잖아? 한 개를 더 추가해야 하는데 뭐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조금 장난을 쳤다. 헬스장에서 한창 코치로 일할까 하는 생각을 가질 때 혜성처럼 등장한 나의 은인. 이상한 놈들이긴 해도 즐거운 놈들을 잔뜩 가져온 브랜든 커리의 ‘흑드라군 자세’ 빅토리 포즈이다.

“소의 뿔처럼 팔을 말아 쥐고 힘을 주는 우각세(牛角勢), 광배근을 힘껏 펴면서 몸체를 부풀리는 호면세 (虎面勢) 여기에 측신세(側身勢), 용면세(龍面勢), 승배세(蠅背勢), 측굴세(側屈勢), 호표세(虎彪勢) 그리고 마지막 자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흑룡 그 자체를 형상화 한 흑룡세(黑龍勢)이다.”

“저기요 형님 아무리 그래도 형님의 몸은 검지가 않습니다. 그 눈 부분 이라고 하면 눈썹도 있고 갈색일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흑룡, 흑룡이 최고다. 그러니 흑룡세 라고 적어라.”

다들 이 자세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장난으로 넘어가겠지. 설마 현대에 와서 다들 빅토리 포즈로 힘주고 ‘흑룡이 포효한다!’ 하고 복근을 출렁거리고 ‘흑룡이 눈을 흘긴다!’ 하면서 대흉근을 불룩거리지는 않겠지?

----------

1445년 9월. 안평대군을 필두로 한 조선의 사신이 북경에 도착하였고. 안평대군이 있다는 말에 명의 고위 관료들의 수많은 서예의 요청이 빗발쳤다. 안평대군은 겸손해 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붓을 놀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금 황제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일전에는 둘째 왕자인 이 유가 왔는데. 셋째 왕자인 이 용이 왔다니 번국 조선이 배움에 얼마나 열정이 있는지 알겠구나. 글 솜씨가 천하의 명필이라 하는데 내 바라는 것이 있다.”

“제 부족한 솜씨가 눈을 더럽힐 까 염려되오나 미숙한 솜씨를 부려 보겠습니다.”

거대한 종이가 왔다. 어중간한 현판을 넘어서는 거대한 크기. 폭이 세 자(1m)에 높이가 일곱 자(2.2m) 정도 되는 녀석이었고 붓 또한 보통 사람은 잡아본 적이 없는 크기였다.

“경산(자금성 북쪽의 인공산)에 있는 정자인 주상정(周赏亭)의 현판이 상하여 마음이 아팠는데 번국 왕자 이 용의 명필을 달아놓으면 더더욱 아름다울 것 같구나.”

“부디 누대(累代)에 부끄럽지 않은 글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본디 세밀한 손놀림을 자랑하였지만 늘어난 근력은 세밀한 손놀림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힘을 쓸 수 있게 하였다.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명의 황궁에 어울리는 가장 빼어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 마음만이 남았다.

“서른도 안 된 이가 붓을 놀리는 것을 보십시오.”

“송설체를 즐긴다 하였는데 저것은 조맹부를 뛰어넘은 것 같소.”

“늠름한 기운이 솟구치는 게 마치 글귀가 눈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소.”

“제 글귀가 누대에 남는다 하여 손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국의 수많은 이들이 저를 뛰어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글귀는 좌중을 사로잡았고 황제마저도 잠시 숨을 멈췄다. 이제 솜씨자랑은 끝났다. 본격적인 조공을 바칠 차례였는데 병부 신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조선에 대한 경계심은 가지고 있는 명이었고 이미 보총이 무엇인지 몰라도 무기를 새로 개발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기물이 보총이라 하였는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냐?”

“아국은 구리가 없고 물산이 충분치 않아 화포를 만들 방법이 없어 고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자저하께서 철을 이용해 작은 화포를 만들었습니다.”

작은 화포의 개념은 명에서도 있었지만 조선에서 가져온 것은 형태가 달랐다. 명에서는 목봉 끝에 작은 청동화포를 엮어 발사 후 철퇴의 개념으로 사용하였지만 이 것은 아주 길 다란 화포였다.

“달단(여기서는 여진족을 칭함)과의 싸움에 먼저 쓰지 않는 것은 어찌하여 그런 것이냐.”

“번국으로서 상국을 받들고 있는데 좋은 물건은 먼저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훌륭하다. 얼마나 좋을지 보자꾸나.”

자금성 한 구석에 시험장이 바로 만들어졌다. 보총을 매만지던 조선의 군관은 대나무 통으로 만든 화약통을 대고 화약을 탈탈 털어 넣고. 철환을 옆 주머니에서 꺼내 총구에 흘려 넣은 다음 꽂을대로 여러 번 내리눌러 완전히 다졌다.

평안도에서 일하던 군관 여럿을 불러 이 방법만 가르쳤으니 오히려 어색함이 없었다. 다시 점화약을 부은 다음 방아쇠를 당기니 조총이 발사되었다.

“총통(銃筒 - 여기서는 명의 소형 화포)보다는 빠르게 쏠 수 있지만 맞지를 않는군.”

“화포는 소리와 맞은 자가 반드시 죽거나 크게 다치기에 사용하는 것이니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계속 쏘아보아라. 맞는다면 어떻게 될지 위력을 보자.”

7㎏이나 되는 무거운 보총에 아직 익숙해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늘과 같은 명나라 황제의 명이기에 조선인 군관은 계속 쏘았고. 50보 밖에 있는 갑옷 입힌 목상에 여덟 발 중 세 발을 명중시켰다.

“두 발은 흉부와 복부의 갑옷을 뚫고 안으로 말려 들어갔습니다. 사람이라면 크게 상할만한 것입니다. 나머지 한 발은 투구에 맞아서 튕겼지만 투구를 깨트렸습니다.”

“위력은 대단한 것이 성벽에서 적을 물리칠 때 좋겠구나.”

“그렇습니다. 성으로 다가오는 적에게 쏜다면 한 발에 한명이 상하니 수비에는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번국의 첫째 왕자가 이러한 생각을 하다니. 둘째 왕자인 이 유에게도 감탄하였고 그대에게도 감탄했는데 과연 첫째는 더더욱 빼어나구나.”

안평대군은 아바마마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정통제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억눌렀다. 보총을 바치려고 했을 때 군기시에서 만들어서 가져왔다고 하거나. 우연히 발명하였다고 속였으면 이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자가 된 형님이 계획적으로 만든 전략적 무기라 한다면? 사용 여부를 제쳐두고 조선을 뜯어먹으려 할 것이다. 이제 황제가 아닌 진짜로 명을 지배하는 자를 상대하는 일이 남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번국의 왕자로서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선에서 이 보총을 최대한 만든다면 얼마나 만들 수 있겠느냐?”

“장인의 수가 있으니 아마 삼천정이 한계일 것이며. 실지로는 그 아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공으로 매년 천 오백정의 보총을 상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억지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정색하는 안평대군. 아바마마와 형님의 생각보다 더 수를 높게 잡았다. 이천 정을 보내는 것이 좋다 생각하였으니 거기에 응해야지.

“상국은 흉포한 북적 달단을 몰아쳐야 하는데 어찌 그리 불충할 수 있겠습니까. 수는 맞아 떨어지는 것이 좋으니 이천 정을 바치겠습니다.”

“번국이 충심을 가지는 것은 언제나 옳으나 그 충심이 번국을 상하게 할까 두렵다. 자세한 것은 상의하여 정하도록 하라.”

아바마마가 옳았다. 실질적인 명의 수뇌 왕진은 자신의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자라면 멀리 떨어진 번국을 자기 멋대로 주무르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이를 빌미로 조금씩 다른 조공 품목을 줄여가는 일이 다음 과제였다.

----------

시간은 흘러 사신들은 두 조로 나뉘었다, 한 조는 북경에서 바로 남경으로 운하를 타고 내려갈 사람들. 한 조는 수양대군이 갔던 대로 낙양과 장안을 거쳐 곡부에서 공자의 후손들을 만난 뒤 북경으로 돌아갈 사람들. 안평대군은 안견과 같이 낙양으로 향하는 조에 속했다. 장안에서의 시간은 물같이 흐르고 낙양으로 향한 안평대군은 수양대군의 추천대로 용문석굴로 향했다.

“형님이 알려준 곳이 절벽을 따라 석굴과 수만 개의 불상이 있다니 멀리서 봐도 그렇군. 이런 곳이 조선에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조선에 있었다면 석씨들이 모여 있었다 하고 낮춰 부르며 불상에 돌팔매를 맞았을 것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얼마나 절경인지 한번 들어가 볼까.”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공통점은 숭유억불을 표방하는 조선의 왕자이면서 불사(佛事)를 꼬박꼬박 드리는 불교 애호가인 것이다. 안평대군에게 당나라 시절부터 새겨진 석상들은 눈을 즐겁게 하였다.

“저기 새로 새겨진 불상이 조금 익숙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그것이 말입니다 마치.”

“근육이? 큰형님(문종)보다도 못한걸. 저건 그냥 군살이 넘치는 것 일세.”

“얼굴이 수양대군 어른을 닮지 않았습니까!”

안견의 눈으로 보기에는 새로 새겨진 불상들은 얼굴이 마치 수양대군을 닮아있었다. 수양대군을 얼핏 보고 대충 초상화를 그린 다음 그것을 다시 베껴버린 것 같았다. 오히려 안평대군이 모를 만 했다. 매번 보는 정겨운(?) 둘째 형님의 얼굴이니까.

“정말? 저 석공에게 물어보지. 이보시오! 이 불상은 누구를 보고 깎은 것이오?”

“이년 전에 증장천(增長天王 - 증장천왕. 불교의 부처 중 하나로 사천왕의 일원이며 세상의 사람을 지킨다 한다)의 현신께서 내려오셨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입니다. 조선의 둘째 왕자를 사칭하는 이가 나타나서 행패를 부리자 징벌을 내리셨다?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주변을 둘러보며 새로 조각된 석불을 보았지만 하나같이 다 비슷한 대답이었다. 그 결론과 형님이 낙양에서 있었던 일을 조합하니 이런 것이 나왔다.

1. 둘째 형님은 낙양 길거리에서 자신과 조선을 팔아먹는 놈들을 웃통을 벗고 친히 벌을 내렸다.

2. 수많은 자들이 형님의 모습을 보게 되고 소문에 살이 붙어서 퍼진 다음 조선의 둘째 왕자라는 이야기는 사라지고 증장천이니 다문천이니 하는 사천왕의 현신이 내려왔다 하였다.

3. 그 몸은 정말로 크고 아름다우니 사람의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몸이라는 말도 덧붙여졌으며 어느 새 유행이 되었다.

4. 그래서 둘째 형님의 얼굴과 몸은 사람의 손을 거치고 거쳐 어색하게 형님과 얼굴만 비슷하고 대충 살집만 근육이랍시고 부풀린 불상이 계속 조각되고 있다.

“이 드넓은 대륙에 어찌 이런 모자란 자만 있단 말인가!”

“그리 성을 내지 마십시오. 수양대군 어른께서도 좋아하실 일입니다.”

“이봐 자네! 내 형님의 근육은 그렇지 않아! 당장 그 말 취소해!”

자신이 수도 없이 그려왔던 몸이다. 이런 뒤룩뒤룩한 살덩어리들과는 원천적으로 다르다!

“알겠습니다. 하오나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하겠습니다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심이.”

“내가 지금 가만히 있을 것 같나? 이 빌어먹을 것들이 약을 팔아먹지 못하게 하니 불심을 허투루 굴리지 않는가.”

어디를 보아도 어설픈 것들이 어설프게 형님을 모독하고 있었다. 이번 사행은 일 년의 기간을 두기로 하였는데 낙양에서 있기로 한 기간은 두 달에서 세 달로 늘려야겠다.

비록 조각은 하지 못하더라도 아교와 먹물을 섞어 형님의 그 늠름한 몸을 표현할 초본이라도 만들고 말리라! 이 절벽의 높이는 스무 보(33m)에 이르니 열 보(16.6m)의 그림은 충분히 그릴 수 있다.

“그렇다면 수양대군 어른을 어떻게 표현하실 것입니까?”

“형님은 몸도 몸이지만 빼어난 지모를 갖추셨네. 수많은 것들에 관심을 보이시고 손을 대시니 동생으로서 본받을 것이 아주 많은 지혜의… 그렇다네. 문수보살이 어떠한가. 문수보살의 입상을 형님의 형상으로 만든다면 좋을 걸세.”

“문수보살이요?”

“승의(繒衣 - 불자가 입는 옷)는 최대한 줄이고 상반신을 드러내는 것일세. 형님의 모습을 여덟 번이나 그렸으니 충분하지! 자네는 세부적인 것을 표현하게 나는 일단 밖의 맥을 잡아나가겠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흐르고. 용문석굴에는 거대한 문수보살의 입상이 그려졌다. 많은 이가 찬사를 보내는 그 그림은 안평대군과 안견을 비롯한 여섯 명의 화가가 그린 것이기에 어느 새 명물이 되었고. 몇 년이 흐르자 적혀있는 글귀대로 수많은 석공들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내 마음속에 문수보살의 형상이 남아있기에 그리고 간다. 이 그림이 지워지기 전에 가장 빼어나게 조각할 자는 대대로 복을 받을 것이며 문수보살의 끝없는 지혜가 깃들 것이다.]

그 이후로 용문석굴에는 근육질의 문수보살이라는 불교 역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특이한 입상이 추가되었다. 누군가는 당나라 시절에 가져온 고대 불상(간다라 양식)을 따서 만든 것이라 하였고. 누군가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니 진정한 문수보살이라 하였다.

진실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현대에 가서. 연구자들이 달라붙어 역사와 야사를 추적한 뒤에야 밝혀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