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29화 - 테크트리(1) (0717 수정) >
보통 입신체비를 할 때는 내가 일 하는 양을 감안해서 서산군이 대신 한다. 세종대왕님이 나를 불렀다는 것은 입신체비를 하면서 국가의 일에 대하 논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종대왕님의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신다.
“네가 만든 보총과 운총 말이다. 그것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
“문제라 하심은 역시 명국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다. 새로운 무기를 만든 것은 좋고. 이 것의 효용성도 있을 것 같지만 분명 아국의 힘을 빼기 위해서 조공을 바치라 할 것이다.”
그래 아직까지는 명이 진짜 강력해. 토목의 변으로 북방이 무너지고도 여전히 강성했으며. 50년 뒤에 정덕제를 필두로 한 F4가 나타나자 무너지기 시작했지. 이 상황에서 명은 우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을게 뻔하지. 그렇다면 아예 급발진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천 정을 조공으로 계속 바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천 정은 너무 많다 한해에 오백 정 정도가 적당해 보이는구나.”
“이천 정입니다.”
세종대왕님이 잠시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시더니만 계산이 나오셨다는 듯 눈을 찌푸리시면서 말했다.
“이천 정이면 아마 군기시를 포함하여 도성 안의 모든 대장장이에게 일감을 가득 주어야 할 것이다. 너무 많은 양이 아니겠느냐.”
“이천 정 정도를 몇 년간 계속 보내야 우리가 이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구나! 네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지금 현재는 기술실증용 모델을 만들고 양산단계에 들어가려고 해도 보총도 운총도 품질이 안 좋다. 당연히 가공기술이 안 좋으니 철판이 더 두꺼워지고. 그렇게 사람이 간신히 들고 쏠만한 7kg의 무게가 나오지. 이런 것을 수천 정을 찍어내야 기술이 쌓여 무게도 줄어들고 불량률도 감소할거다. 그리고 그걸 조선에서 쓸 이유는 없다.
“명국에 사신을 보내실 때 오백 정을 보내시고. 군기시에서 형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자랑하신 다음. 아주 기본적인 사용법만 알려주시옵소서.”
“그것 또한 명안이구나. 아국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하면 달려들어 빼앗으려 하는 자들이로다.”
“하지만 그들이 얻는 것은 처음 만든 물건이니 쓰기가 힘들 것입니다.”
세종대왕님이 껄껄 웃으시는걸 보니 오명마가 생각나셨나 보다. 말 품종개량을 잘 하고도 조공으로 뜯겨나간 기억을 되갚아 줄 수 있으니. 그런데 다른 생각이 나셨는지 또 얼굴이 심각해지신다.
“명국에서 보총을 베껴서 만든다면 어떻겠느냐.”
“그리 하여도 아국이 더 가볍고 튼튼한 것을 쓰지만. 명국은 별 달리 고려치 않고 계속 둔중한 보총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렇진 않고 몇 년간 시간이 흐르면 그들이 더 발전된 물건을 가질 것이다. 우선 이렇게 하면 체면도 유지할 수 있고. 처음 생산하는 것을 명에 떠넘기는 형국이 되지만 몇 년 이내에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겠구나.”
내가 기억하기론. 명은 초반부의 탄력을 잃은 뒤부터 그나마 홍이포(컬버린)같은 정말 뛰어난 물건만 베껴서 사용하고 그냥 현상유지에 급급했거든. 그리고 7kg의 보총? 현대로 치면 분대지원화기 수준의 무게다. 운총이면 몰라도 보총을 마음대로 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하는 짓은 초기물량의 품질저하를 그냥 짬 처리 하는 개념이고 아마 3년만 지나도 엔간한 대장장이들은 다 보총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지 않을까? 지금이 1444년이니 1447년쯤에는 연간 2천정 정도는 무난히 국내 물량으로 뽑아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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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주를 비롯한 5명의 조선공은 임시로 경기수영에 소속되어 배를 만들고 있었다. 1444년 6월이 되었으니 슬슬 뭔가 나오겠지? 했는데 벌써 500료급(70톤) 배 3척을 만들었다 한다.
“조운선보다 다소 큰 것 같은데 저리도 날래다니. 어떻게 만든 건지 궁금하다.”
“우선 저희 다섯이 기존의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명국의 배에서 좋은 점을 따 배가 여러 곳을 날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바꾸어 보았습니다. 아직 만족할 크기는 아니오나 차츰 개량해 나가겠습니다.”
“무리하여 큰 것을 만들지 않고. 작은 것부터 배워서 큰 것을 이루는 것이니 만족스럽다. 명국에서 온 장인들에게 각기 비단 다섯 필을 내리도록 하라.”
배가 가까이 와서 정박했는데 구조가 한선과도 다르고 명에서 탔던 정크와도 좀 다르다 용골? 저거 첨저선인가? 세종대왕님이 궁으로 돌아가셨으니 자세한 것을 물어봐야겠다.
“대군어른께서 오셨군요. 이제 조선의 관직을 받았으니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다시 보니 반갑소. 참으로 조선의 말을 빠르게 배우시는 것 같소.”
“주상전하께서 저에게 일거리를 많이 주셨으니 빠르게 배워야지요.”
그런 말을 하는 방길주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여서인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상을 줘야겠어. 필요한게 뭐 있을까?
“혹여나 아국에서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하신 것이 있소? 내년에 사행을 다시 강남으로 가니 필요한 것은 말하시오.”
“다른 것은 그렇다 해도 나무가 없습니다.”
“뭐요?”
아니 지천에 널린 것이 나무인데 왜? 구한말처럼 인구압에도 시달리지 않아서 소나무가 넘쳐나는데?
“정확히는 조선에는 떡갈나무나 졸참나무 혹은 상수리나무가 매우 적습니다. 그리하여 천오백 료급(210톤) 까지는 가능해도 그 이상의 배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소나무는 있지 않소. 소나무로 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니오?”
“조선의 소나무는 그나마 질이 좋지만 한계가 많은 나무입니다. 당장 한선만 하여도 배 앞머리에 두는 나무와 배의 멍에(배 중앙의 구조로 작용하는 부분)에는 소나무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소나무를 두면 힘이 부족해 쉬이 상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통건축 일하는 친구가 한 말이 있었지. 원래 한반도에는 소나무 보다는 참나무를 많이 썼지만. 몽고 침략으로 기존 건물들이 일제히 박살나고. 그 이후로도 목재자원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소나무로 전환되었다고.
소나무면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지금 조선에 참나무가 얼마나 있지? 거의 없나? 백정들 거주지부터 상수리나무를 심어야하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계속 작은 배로 나아갈 수 밖에.”
“지금은 계속 기술을 쌓아나가는 중입니다. 이 배로 평양이나 남해까지는 다녀와 봤고 이제 동해 일대를 시험적으로 항해해보려 합니다.”
훌륭한 선택이다. 동해는 수심이 깊고 파도가 강하지. 그런데 평양과 남해를 다 오가본 적이 있다고?
“황해도 연안(延安)도호부에 들를 일이 있는데 한번 이 배를 타고 가보고 싶소만. 본래 바로 말을 타고 향하려 하였는데 이 배를 명국의 선박과 비교하고 싶군.”
“물골을 따라 돌아가느라 조금 시간을 지체할 것입니다.”
“염려 마시오. 그래도 직접 말을 타고 가는 것 보다는 빠르니 걱정 없소. 그런데 배의 폭이 조금 좁은 것 같구려. 높이도 앞뒤가 조금 높고.”
직접 타본 보선이나 산동반도로 항해했던 정크선과 다르게. 배의 형태가 뭔가 좀 기묘했다. 만들다 만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찝찝하네.
“일하는 자들의 숙련도가 부족하니 방법이 없었습니다. 용골이 있는 배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고생이 많았지요.”
“크기에 비해서 적재공간도 부족한 것 같은데.”
“500료의 크기인데 적재량은 250료(35톤)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항해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니 튼튼하게 만들었지요. 그런데 연안 도호부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그 곳에서 송에서 사용하던 흑토가 나왔다는 말이 있어서 찾아가야 했소.”
송에서 사용했던 석탄에 대한 기록을 가져오고.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서 대충 ‘여기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라고 뻥을 섞어서 알려줬는데. 탐광꾼을 시켜서 광맥을 찾다가 우연히 연백에 묻혀있는 토탄을 발견한 것 같다. 거기서 석탄이 났다는 말은 없으니 토탄일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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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도호부, 현대의 연안군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평야로 인한 수확량이 좋은 편이었으며 염분(鹽盆 - 소금을 쪄내는 가마솥. 자염을 만든다)이 여러 개 있었지만 가장 소출이 많은 곳은 평안도의 영유현(현 영유군)과 황해도의 강령현(현 백령도를 비롯한 섬 일대) 이었다.
그랬던 연안군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천일염 제조의 시험대상이 되었고. 연백염전(延白鹽田)이 세워지면서 꽤 커다란 면적의 염전이 세워졌다 한다. 국내 염전의 10%를 차지했다던가? 상세까지는 모르지만. 미리 와 있던 공조와 내수소의 관리가 반갑게 맞이한다.
“대군어른 오셨습니까?”
“배를 타고 오느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네. 그런데 이것이 땅에서 캔 것인가?”
“처음에는 농민들이 오래 묵은 낙엽이라 생각하였답니다. 저희가 찾기 전부터 캐서 군불을 때는데 썼다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쓰이다가 이제야 많이 캐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냄새가.”
관리는 젖어있는 토탄을 태워봤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내가 가져온 책은 역청탄과 갈탄을 기록했지 토탄은 기록한 게 아니니까.
“아궁이에 쓰지 않고 군불로 땠다니. 타는 냄새가 심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나쳤겠지요.”
“그렇게 말하는걸 보면 많이 묻혀있었나?”
“얼마나 묻혀있는 지는 모르겠는데 땅 깊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토탄은 그냥 흙에 묻혀 있다 오래 지나면 적당히 탄화되어 생기는 층이다. 습기가 많으니 군불이나 때는 것에 쓰일 것이고. 그렇다고 쌓아놔 봤자 결국 마른 진흙처럼 되니 관심이 없었을 것도 뻔하지.
“버석버석하게 말라있으니 캔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캐낸 지 이주일이 지나서 바짝 말랐습니다. 이것이 송 대부터 사용되던 흑토가 맞습니까?”
“흑토이긴 하지만 서책에서 본 것과는 다르군. 송 대에 사용되던 흑토는 조금 습기가 있지만 나무와 비슷한 결이 보인다고 하며. 다른 흑토는 화력이 아주 강하고 광택이 난다 하였지.”
만져보니 진흙사이에 식물 섬유질이 끼어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말라있는 것은 조금 꾸덕꾸덕한 덩어리였고.
“말린 다음 태워보니 같은 무게의 나무보다 화력이 좋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나무를 산에서 배어오는 것 보다는 이것을 캐내는 것이 쉽지 않나?”
“흙을 한 네 자 정도 파면 진흙처럼 땅 속에서 나오고 넓게 퍼져있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오는 것 보다는 쓰기 편하더군요.”
공조판서 정분과의 이야기를 통해 대략적인 계획을 짰다. 수차를 비롯한 남경의 수자원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많은 전오지(煎熬地 - 1차 자연증발지)를 만들고 소출되는 토탄을 이용해서 나무를 적게 사용하여 단가를 더 낮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묻겠네. 가마니 하나어치의 땔감은 가격이 얼마인가?”
“그런 것은 지게꾼이 짊어지고 오는 것인데. 바짝 마른 것으로 쌀 네 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토탄의 가격은 쌀 두말 아래로 줄일 수 있겠는가?”
관리는 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바짝 마른 것으로 하여도 쌀 두말 아래면 될 것입니다.”
“좋다네. 지금부터 농한기에 소일거리를 주게. 바짝 마른 토탄 한가마니는 쌀 두말. 덜 마른 토탄 한가마니는 쌀 한말로 사들이게.”
“조금 비싸게 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소금의 가격이 너무나 올라 지방에서는 소금을 사두려는 중간상인들이 늘어난다 하니 시급한 일이네. 나중에 소금가격이 안정화 되면 가격을 낮추게.”
수요 공급법칙은 다들 알고 있고. 지방 상인들은 현대와 마찬가지로 소금을 잔뜩 구매해서 쟁여두고 있다. 계획적이지는 않지만 상승률이 점차 가팔라진다 하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리 한다면 소금을 비싼 값에 쟁여둔 놈들이 길거리에 나앉겠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차피 천일염과 전오법으로 만드는 자염은 중간 과정이 같다. 조선에서는 갯벌 안에 물을 가둬서 증발시키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수차와 각종 기구를 사용해서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으니 그런 장벽 하나는 넘어간 셈이니까.
“수차를 동원하면 갯벌 근처의 높고 너른 곳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지 않나. 물을 마음대로 위로 올릴 수 있으니 너른 벌을 더 만들어 전오지를 여러 곳 만들어 두게. 토탄이라는 것이 언제 나올지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흑토가 많이 나오는 시기에는 자염을 많이 만들고. 흑토가 적은 시기에는 그대로 졸여 소금을 만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대로 볕에 졸여 만든 소금은 품질이 매우 안 좋을 걸세. 허나 사람이 먹지 않더라도 가축에게 먹이면 도움이 될 거라네. 혹여나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사람이야 진흙이나 모래가 조금 섞여있다면 몰라도 거의 갈색에 가깝게 섞인 소금을 먹으려 들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소나 돼지 말은 그런 걸 신경 쓰지도 안잖아? 이제 돌아갈까 하는데 누군가가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온다.
“대군어른! 북쪽에서 흑토로 추정되는 것이 더 발견되었다 합니다.”
“뭐라고? 정말 사실인가?”
말을 타고 달려가니 광부 몇 명이 산기슭에서 캐온 검은색 덩어리들을 등에 짊어지고 내려왔다. 노천탄광은 아니고 석회를 캐던 곳인데 검은색 돌이 얼마 전부터 섞여 나와서 캐왔다 한다.
“흑토 같습니다! 화력이 아주 강한 흑토는 광택이 난다 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불을 붙여보게. 광택은 있는데 색이 너무 진한데.”
당연하지만 화로에 넣으니 불이 붙어서 천천히 타기는 한다. 그래 이거 흑연이야, 한반도에 역청탄 같은 건 없어 이놈의 한반도는 아주 늙은 땅덩어리라서 무연탄만 나온다니까.
“불이 붙어서 타들어가지 않고 연기만 나는데. 이것이 뭡니까?”
“석묵(石墨)이라고 이름을 붙이세. 네모나게 자르면 묵(墨)처럼 보이니 어딘가에는 쓸 만 하겠군. 좀 캐서 도성으로 보내보게.”
“탐광꾼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군요. 분명 흑토가 불에 탄다 말을 했는데 검은색이 다 흑토라고 바로 가져왔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조선에 없던 것이니 쓰임새를 알고 싶다네. 만에 하나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면 포상을 내리도록 주상전하께 말씀 드리겠네.”
내색은 안했지만 흑연은 연필도 만들 수 있고. 연필이 한지에 안 맞는다 해도 이런 저런 공사현장에서 주기(메모)용으로 쓰이고 잘 갈아서 분말을 만들면 화약의 정전기 방지용으로도 사용되며. 거푸집 안에도 정밀성을 위해서 발라 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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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4년 8월이 되자 명에서 가져온 돼지들은 조선에 온지 1년이 지난 걸 기념하는지 두 번째 새끼를 낳았고. 상태가 안 좋은 돼지 몇 마리를 도축하게 되었다. 다른 돼지는 새끼를 6마리씩 낳는데 몸이 약해서 3마리 아래를 낳는데다가 체구도 작으니까 혈통을 보존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가죽은 군기시에 들어가서 새 군복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드디어 훈련도감에서 사용할 첫 번째 물건이 나왔습니다.”
“다들 고생이 많으셨소. 어디 한번 봅시다.”
별기군은 세종대왕님이 훈련도감(訓鍊都監)으로 이름을 붙여주셨다. 원래의 명칭인 수도방위군 개념의 훈련도감이 아니지만 결국 수도에서 훈련하니 별반 다를 것은 없다던가? 여하튼 심혈을 기울인 부대이니 1인당 군장가격만 12섬이다. 은으로 12냥!
“돼지가죽으로 만든 장갑입니다. 저희가 직접 써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어 솜씨를 부렸습니다.”
“돼지가죽은 얇고 늘어나기 쉬운데 손바닥과 손등에 다른 것을 덧대었구려.
“소가죽을 약간 덧대면 쉬이 찢어지지 않더군요.”
"그리고 두갑은 무게가 조금 나가는데 이것 몇 근이오?"
"세 근이 조금 안됩니다."
일단 방탄모는 근접사격이 아닌 화살을 막을 수준이지만 좀 무겁다. 그래도 쓰고 다니다 보면 적응 되겠지. 혹시나 상투가 걸릴까봐 상 자리를 볼록 튀어나오게 만드니 좀 우습다. 나중에 닭벼슬 같이 장식을 달까?
“웃옷은 녹색 철릭과 요대. 그리고 호저고리(조끼)입니다. 그리고 돼지가죽으로 만든 군화도 있습니다.”
“호저고리에 이 작은 주머니들은 탄약포를 넣는 용도요?”
“그렇습니다. 요대는 돼지가죽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주머니를 다니 아주 편합니다.”
그래 군복은 편의성이 중요해. 현대에서는 그놈의 X반도(사수용 조끼의 군대 용어)나 요대는 지옥 같은 군장의 일부였지만 이 시대에는 나름 혁신적이다. 주머니가 작다고? 그래봤자 이거저거 넣다보면 대부분 모자란다.
“요대의 주머니는 전부 달지 말고 병종별로 필요한 것을 따로 달아두시구려. 그리고 군화 앞에 철판을 넣은 거요?”
“철판을 넣었습니다. 돼지가죽은 역시나 약한데 소가죽을 쓰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다 입어보니 몸이 불편하지는 않다. 이 철릭 위에 피갑(가죽 갑옷)을 입는 것이 새로 창설된 훈련도감군의 군장이다. 여기에 배낭을 하나 만들어서 등짐을 짊어져야지? 최소한 수통과 반짇고리. 삽. 간단한 침낭정도다. 반합은 넣으려다가 그냥 철모에 끓여먹어! 로 선회했다.
“내후년 정월부터 훈련도감군의 초모(모집)를 시작할거요. 그때 처음으로 만드는 물량에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 하여도 모든 사람에게 하나하나 맞춰주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하오. 철릭, 요대, 호저고리 그리고 두갑(방탄모)은 미리 만들 수 있잖소? 군화 하나만 기한이내에 만들면 되는데 무엇이 걱정이라고.”
군화가 발에 안 맞으면 그것보다 끔찍한 게 없다. 그러니 치수는 꼭 맞춰야지. 현대에서야 물집 잡히면 째고 터트리거나 약 바르고 소독하면 되고 최악인 세균감염 까지 올라와도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하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물집 하나 잡혔다고 주정을 들이 붓는 짓을 하느니 군화를 잘 만들고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