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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조선-29화 (29/573)

< 1장 28화 - 발전을 위한 아픔(2) (0717 수정) >

다음날. 지쳐서 뻗어버린 안평대군을 돌려보내고 형님이 만든 화포를 보러 갔다. 개머리판은 옆구리에 꽉 밀착할 수 있도록 ㄴ 자 형태. 전체 길이는 거의 네 자 반(1.5m)에 이르고. 구경은 반치정도다. 무게는 대충 15근(9kg) 정도는 되어 보인다.

“이것이 내가 새로 만든 화포이다.”

“화포요?”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포이지. 사거리는 정확히 재 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백보(182m)가 넘을 것 같구나.”

백보? 백보면 180미터가 넘고 서양식으로는 200야드. 머스킷의 유효사거리는 100야드고 최대사거리는 300야드니까 적당한 것 아닐까.

“이것은 옆구리에 끼고 쏘는 겁니까?”

“그렇다. 처음에는 어깨에 올리거나 턱에 괴거나 혹은 어깨에 대는 방법을 생각하였는데 그러기엔 위력이 너무 강하더구나. 혹여나 모르니 네가 직접 만져 보거라.”

직접 잡아보니 덩치가 큰 나에게도 조금 크다. 일단 방아쇠가 없는 것이 좀 문제네. 작은 심지를 꽂아서 거기에 불을 붙이는 핸드캐논식 발사체계도 문제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화포는 공성이나 수성 때에 사용한다면 요긴할 것 같습니다.”

“실로 옳은 말이다. 세총통이 이와 비슷하지만 그것은 기병들이 쓰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세총통은 미리 장전해 둔 것을 집어 화승으로 불을 붙이면 쏠 수 있지만 보병들이 짊어지고 다니기엔 부족합니다.”

“네가 보기엔 고칠 것이 있더냐?”

시범사격을 직접 해보았다. 옆구리에 끼고 쐈는데 나의 튼실한 광배근에도 충격이 제법 세게 전해진다. 탕! 소리와 함께 흑색화약 특유의 지린내가 느껴지고 철판을 덧댄 과녁에 탄환이 박혀 구멍이 뚫렸다.

위력 하나는 정말 대단한데 이걸 손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정말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이건 완성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진 무기다.

“이 무기는 위력이 부족하기도 하며 너무 강하기도 합니다.”

“위력이 부족하다니? 어중간한 병졸은 이 것을 쏘다가 다치는 경우가 있었다.”

“어차피 수성과 공성에 사용할 무기라면 거치를 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위력이 더 늘어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크기면 병졸들이 잡고 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길이를 세자 아래(90cm)로 하였는데 사방팔방으로 휘며 날아가 종잡을 수 없더구나. 일단 네가 원하는 것은 이 크기로구나.”

역시 화력덕후 문종답게 내가 원하는 크기를 가진 시험제작품이 있었다. 여러 종류를 시험해보고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 공성용만 먼저 보여준 거겠지. 옆에서 보고 있던 박강에게 말을 걸었다.

“박강. 그대는 명국에서 노궁(弩弓)을 만져보고 도면을 그린 적이 있을 것이오. 그때 방아틀(방아쇠)을 알아보았소?”

“물론입니다.”

“그 것을 이 화포에 쓰려 하오. 내가 그리는 것과 같이 화포에 손을 대시오.”

얼마 전부터 내가 답답하고 짜증나서 먼저 분필과 칠판부터 만들었다. 분필이야 굴 껍질 빻아서 굳히면 되고. 칠판은 기와의 색을 입히듯 점토판을 구우면 표면에 그을음이 입혀져서 그럭저럭 칠판 대용품이 되더라고.

적당히 그린 도면에는 총열을 손대지 않되 방아쇠와 개머리판을 달아놓고 세부사항에 대해서도 대충 적었다. 아 화약 다지고 청소에도 쓸 꽂을대도 총열 아래 넣고 총검도 장착하자.

“방아틀을 당기면 화승이 점화약 까지 떨어지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바로 발사가 되겠군요. 그리고 뒤에 목판의 형태는 왜 이럽니까?”

“어깨에 붙이는 것이 나아보이네. 근골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횡배근이 튼튼하지 않으면 옆구리가 쉬이 피로해지고 멍들 것이라네.”

“어디 보자꾸나. 하긴 어깨에 붙이면 눈썹이 타들어갈지도 모르지만 감내해야 할 것이다. 방아틀과 구조가 좀 다르니 방아쇠라고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겠구나.”

구조적 수정을 좀 거치자 이제 머스킷에 가깝게 되었다. 이걸 표준형으로 잡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야지. 그렇게 의견을 나눴는데 형님도 대충 생각은 해두셨던 것 같다.

“평범한 병졸들이 쓰기에는 이 이상이 되면 힘들 것 같구나.”

“처음 보여주신 화포는 위력이 강하고 평범한 자는 들 수 없으니 내금위와 같은 최정예를 위해서 쓰는 것이 옳다 봅니다. 그리고 지금 보여주신 화포는 조금 더 간편하게 만들어 병졸들이 쓰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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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4년 4월 2일은 화포의 첫 화력시험일로 삼았다. 지난 3개월간 무던히 애를 쓴 덕분에 화력시험을 할 만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훈련시킨 군관은 고작 서른 명 뿐이지만 일단 테스트 단계니까. 아직 가격이랑 성능 다 안정화가 안 되어서 문제다.

“보총(步銃) 삼 연속 오십 보 사격 실시!”

자기의 가슴 높이까지 온 조총을 잡은 군관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총을 잡아 약포로 싼 화약과 탄환 뭉치를 입으로 물어뜯어 분해한다. 점화약을 심지가 닿는 곳인 화문에 약간 뿌리고 뚜껑을 닫은 다음. 총을 세워서 화약을 총구에 붓고 종이를 밀어 넣은 다음 탄환을 넣어 바닥에 여러 번 내리쳐 다지고 세워 잡는다.

“발사!”

벽력같은 발사음이 났지만 오십 보(80m) 거리의 표적에는 명중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세 번의 사격을 마쳤음에도 사람 크기의 표적에 도달한 것은 단 한발이니 관료들과 세종대왕님은 실망하신 것 같다. 다음 순서인 이 총은 다룰 자가 적기에 내금위 출신의 군관이 나서야 했다.

“다음! 운총(雲銃) 삼 연속 백보 사격 실시!”

“저 총은 어중간한 자는 사용하지도 못하겠네.”

“얼핏 보아도 네 자에 가깝지 않은가. 네 자가 넘어 보이는군.”

“내금위에서 일했던 거한이 드니 작아 보이지만 보통 병졸들은 들기도 힘들 것이네.”

내가 다시 봐도 참으로 거대한 총이었다. 강선과 마니에탄 때문에 탭 로딩도 못하니 4자가 넘는 꽂을대로 한 발을 장전하는 동안 숙련된 궁수(내가 빙의하기 전의 수양대군 수준)는 네발을 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금위 출신 군관이 백보 밖에 있는 과녁에 세 발의 탄환을 쏘니 숨어있던 군관이 확인하고 깃발을 세차게 흔들었다.

“두 발 명중이옵니다!”

“운총이라는 것은 그럭저럭 정확하군요. 허나 사격이 저토록 느려서야…….”

“그렇다 하여도 숨어서 한발 쏘고 도망가기에는 적합합니다. 화약을 다 다져 넣으면 화승이 타들어갈 때 까지는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세종대왕님이 적잖이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다. 일단 행사를 중단하시려나? 하긴 이미지 전환을 위해서는 중간에 끊는 것도 중요하지.

“세자와 수양대군이 같이 새로운 화포를 만들었다 하는데. 처음 보여준 보총은 화포라 보기 어려웠으며 궁시보다 못할 것이다. 두 번째 보여준 운총은 쓸 만 하였으나 쏘는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이 것을 어떻게 사용하겠느냐.”

“아바마마께 아뢰옵니다. 보총은 궁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숙련된 궁사는 십여 년의 연습 끝에 만들어지지만 지금 준비한 이들은 단 보름만 훈련을 하였을 뿐이니 서로 겹치지 않을 것입니다.”

“보름이라? 세 발 가운데 한발을 맞춘 이가 보름 만에 저런 실력을 가졌다는 말이더냐?”

세종대왕님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진다. 보름이면 활을 잡는 법이나 간신히 배우니까.

“그렇습니다. 보총을 쏜 자는 열이틀 간 모래와 돌을 깎아 만든 구슬로 연습을 시키고 삼 일간 하루 열 발 씩만 쏘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좋다. 다음 순서를 실행하라!”

군관 20명이 들어왔다. 이들 또한 철저히 훈련하여서 꽤나 빠른 장전속도로 보총에 탭 로딩을 실시한다. 그렇게 장전이 끝나고 구령이 떨어진다.

“전원 삼 연속 백보 사격 실시!”

일제사격도 아니고 그냥 원하는 대로 막 쏜다. 백보 거리의 과녁에 쐈으니 대충 12발정도 박히면 성공인가? 매캐한 화약연기가 걷히자 군관이 과녁에 박힌 탄흔을 세었다.

“열여섯 발 명중하였습니다!”

“제법 좋구나. 보름만 연습한 것 치고는 훌륭한 솜씨다.”

“그렇사옵니다. 보총은 장삼이사(張三李四 - 평범한 이)도 보름만 훈련하면 일 년 정도 연습한 궁사와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순서가 남았습니다.”

“준비하겠사옵니다.”

이번에 준비한 놈은 정말 괴물 같은 총이다. 내가 설계했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이걸 총이라 하다니 헛웃음이 나오네. 안전을 위해서 총신을 내부 청동. 외부 주철의 이중구조로 만들었으니 무게가 거의 70근(42kg)에 육박했고 군관 세 명이 달라붙어야 했다.

“두치총 준비하겠습니다!”

“저건 또 무슨 총이야! 화포 아닌가?”

“저걸 들고 쏜다고? 아래에 대를 박아 넣고 올려서 쏘는군.”

“준비!”

화약을 잔뜩 부어넣는 군관을 보면서 신음성이 올라왔다. 보총은 화약 두 돈(7.5g), 운총은 화약 2.5돈(9.4g)을 넣는데 이놈은 구경이 4배고 화약은 10배에 가까운 24돈(90g)을 넣는다. 8발만 쏴도 화약 한 근이 홀라당 날아가 버린다. 탄환 무게만 48돈(180g)이니 소형 포도탄으로 12발을 쏘는 거지만.

“이 두치총은 포도탄을 넣었습니다. 사격 실시!”

푸왁! 하는 소리와 함께 10보(18m) 거리에 있던 표적이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고 삼각대에 꽉 누르고 있던 세 명의 병졸들도 뒤로 자빠졌다. 지금은 임시로 거치한 것 이지만 거점 수비용과 간이 공성용으로 쓰일 놈이다. 구경이 두 치인 6.6cm이니 총과 화포의 경계에 있는 놈이며. 엄밀히 따지면 유럽의 팔코넷을 경량화 시킨 녀석이다.

“저 자리에 달단의 철기가 서있었다 한 들 육편이 되었을 것이다. 세자와 수양대군 둘 다 정말로 훌륭하도다. 특히 수양대군은 그 간 명국에 다녀오면서 고생이 많았으나 쉴 새 없이 나라에 이바지하니 기특하기 이를 데 없구나.”

“세자저하께서 하신 일이 워낙 많으셔서 제가 방해가 되었을까 염려됩니다.”

“아니다. 내 특별히 너에게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명국에서 가져온 돼지들 중 씨알이 굵은 암퇘지를 하나 내릴 것이니. 그간 친밀했던 이들과 나누어 즐기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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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어째서 저에게 이런 고신(고문)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남아로 태어났으면 부인을 등에 얹고 부와(팔굽혀펴기) 한 번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스무 번도 가능하단다.”

“제 부인은 체구가 큰 편입니다…….”

“그렇다면 삼대운동 칠백 근을 목표로 하자꾸나. 칠백 근이면 건장한 청년을 등에 얹고 할 수 있느니라. 목표가 생기니 더욱 좋지 아니하냐.”

뭔가 입을 열려다가 개구리처럼 뻗어버린 안평대군은 하인들에게 질질 끌려가서 강제로 집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가엾고 딱한 동생이로다!

“화포의 가격을 줄이는 것이 그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경기도 변두리의 대장간만 되어도 총열을 말기는커녕 강철판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당분간은 보총만 사용하면서 무게와 크기를 줄이고 성능을 늘려야지요.”

“시간이 답이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아바마마께서 내려주신 그 돼지 말이다. 돼지로 요리법을 만들라고 하셨다. 알다시피 조선 팔도를 찾아봐도 돼지 요리법이라고는 그 입에도 담지 못할 개성 놈들의.”

성계육, 성계탕. 근데 그거 형님이 아는 거였어? 세종대왕님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 건가?

“형님도 아셨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참을 것이다. 너는 명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요리를 맛보지 않았느냐. 사행을 다녀온 자들이 맛있다 하면 아바마마도 기뻐 하시겠지.”

세종대왕님에게 해 드릴 요리? 탕수육은 없으니까 그냥 탕수육 해드리면 되지 않을까? 설탕도 있으니까 했는데 세종대왕님은 당뇨가 완치된 것이 아니다. 철저한 관리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지방을 억제하고 맛을 살린 그런 요리가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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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체비장은 정말로 한적했다. 17명의 제자들은 얼마 전 치러진 식년시에 당당히 생원과(사서오경에 대한 지식을 묻는다)로 응시하였고. 11명이나 합격하였다. 물론 불합격한 6명은 저 멀리 북방까지 사실상 반 강제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2년간 야인 자제들을 가르쳐야 한다던가.

“이제야 입신체비를 좀 할 수 있겠군요.”

“실은 주상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셨네. 조만간 돼지 한 마리를 받아올 것인데 이 것으로 돼지의 요리법을 만들라 하시더군.”

“돼지라 하셨습니까? 혹시나 그 명국에서 가져온 돼지 말입니까?”

“그렇다네.”

마서방의 아내는 요리를 참 잘한다고 계속 자랑했지. 닭 가슴살 가지고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만든다고. 그 솜씨에 우리 집 종들의 손까지 더해지면 내가 먹어왔던 현대의 요리를 조금이나마 재현할 수 있으려나? 그렇게 돼지 한 마리를 가지고 며칠간 씨름을 한 결과물이 오늘 시험대에 오른다.

“이 곳에서 정녕 이번 생원과에 합격한 이가 열 한명이나 된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복시에서 백 명이 뽑히는데 1등급은 없더라도 2등급에 여섯이나 들었으니.”

“다들 잔을 들게. 실은 오늘 한 요리들은 모두 이 마일용의 부인이 한 요리라네. 그리고 조금 손을 보아 주상전하께 올라갈 요리법이지.”

“그렇습니까? 이거 참 훌륭한 일을 하였습니다.”

술잔이 한 순배 돌고 첫 음식이 나오자 다들 화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자리를 비켰다. 좋은 고기는 숯불에 바로 구워먹는 것이 최고다.

“내가 명국에서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아나? 그것은 생고기를 먹지 아니한다는 것이네. 자고로 고기의 맛을 알려면 소금 약간과 후추 약간으로 맛을 보아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은 옳으신 것이지만 어떻게 생고기를 먹습니까.”

“보게나. 화로 위에 석쇠를 올렸다네.”

그래 이걸 원했어! 헬창이지만 삼겹살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지방섭취도 다음날의 욕구상승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가장 맛이 연한 삼겹살 아니 뱃살 난로회(煖爐會)가 첫 순서다.

“화로 위에 석쇠가 있으니 이 것은 고기를 바로 구워먹는 요리입니까?”

“하나씩 고기를 올리고 강한 불에 바로 익혀 이 소금장을 찍어서 먹게나.”

“뱃살에 기름이 너무 많았는데 이리 먹으니 고소하고 맛이 좋습니다.”

“불에 바로 익는 대로 기름이 빠져나가서 좋습니다.”

네 근 (2.4kg)이나 되는 삼겹살은 깔끔하게 비워졌다. 여기에 모인 이는 내 입신체비장에 다니는 자를 포함해서 열 셋이니 각자 일인분도 못 먹은 거다.

“다음은 맛이 조금씩 강한 요리로 가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네. 명국 남경인근에서 밀즙화퇴(蜜汁火腿 - 염장시킨 금화돈 뒷다리를 발효시킨 요리)를 먹으면서 돼지 다리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되었지. 그래서 돼지 다리를 깨끗이 닦고 깎아내 육수에 졸였다네.”

“허허 쫀득쫀득한 게 정말 맛있습니다.”

“밀즙화퇴는 맛이 아주 강한데 이 녀석은 쫀득하면서도 다른 맛이 살아있군요.”

“또 있다네. 향장(香腸 - 중국식 소시지)도 있고 조금씩 계속 먹어보게나.”

삼겹살, 족발, 뒷다리 살로 만든 소시지, 안심 장조림, 간장양념목살, 등심으로 어설프게 만든 탕수육이 계속 튀어나오자 조금씩 물리기 시작하는 눈치였다. 세종대왕님을 만족시키려면 먹기 거북해도 엄청나게 맛있는 요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맛이 있다고 계속 드실 테니까.

“마지막은 각자 두 점씩만 먹으면 되니 염려하지 말게.”

“이게 뭡니까? 왜 이렇게 검은 색입니까?”

“여섯 시진을 내리 구운 돼지 어깨살일세.”

“여섯 시진이나 구웠다면 다 타버린 것입니까? 아니네? 말랑거리네?”

다들 정체를 모르고 있는데 당연하다. 훗날에 나올 요리인 바비큐니까.

쓰지 못할 가마솥을 아예 화덕으로 썼다. 안에 숯과 향을 입힐 벚나무 장작을 조금 넣고. 겉에 그 귀한 후추와 설탕, 약간의 겨자. 그리고 소금을 발라서 양념한 돼지 어깨살을 12시간동안 낮은 온도로 굽는다. 나중에 가면 바비큐라는 이름이 붙여질 이 요리를 지금 하다니.

“굉장합니다. 기름은 거의 없고 겉은 바삭하며 속은 촉촉한 것이.”

“종형께서 어찌 이런 것을. 이것은 무슨 향입니까.”

“일전에 장작을 태울 때 맡은 적이 있습니다. 벚나무 장작의 냄새가 아닙니까?”

“이것이 주상전하의 수랏상에 오를 요리라네. 다들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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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왜 이렇게 많이 탄 것이냐.”

“수양대군께서 친히 알려주신 요리법이옵니다.”

뭔가 타들어간 냄새가 나는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고기조각들. 돼지고기를 올리라고 하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명에서는 이렇게 타들어간 고기를 먹는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던 세종대왕은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 크기의 고기를 깨물었다.

“이런 세상에.”

“전하? 수라가 맞지 않으십니까?”

“단 한 입으로 마음을 풍족하게 하다니. 정말로 많은 애를 썼구나. 이 것을 어찌 만드는지 몰라도 내 이것에 이름을 붙이도록 하겠다. 가장 빼어난 고기이니 빼어날 당(倘)에 순수할 수(粹) 그리고 고기 육(肉)으로 하여 당수육이라 이름을 붙이겠노라.”

그렇게 당수육이 궁중 요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걸 문화 선점이라고 봐야하나 문화 창조라고 봐야하나? 궁중 요리이지만 후추와 설탕을 제외하면 서민들도 즐길 수 있는 어깨살 요리니까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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