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육조선-27화 (27/573)

< 1장 26화 - 근자귀환행 (0718수정) >

남경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서책을 열심히 필사한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래도 임금이 너무 비싸다. 조선에서는 식자가 없어서 비싸고 강남은 그냥 부자동네라서 비싸다. 경비도 이제 슬슬 부족해진다. 앞으로 사치는 거절해야지.

“뭘 사야할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향낭은 어떤가? 나는 부인이 사향을 원하기에 좀 사려하네. 어마마마에게 드릴 설탕도 사야겠군. 주상전하께는 따로 서책을 준비해 놨으니 걱정 없네.”

“저도 부모님께 설탕을 드리고 싶지만 조선까지 가며 상할까 염려됩니다.”

“그럼 나와 같이 만들면 될 것일세. 좋은 생각이 있다네.”

지금 시기의 설탕은 불순물이 있는 설탕 덩어리(크게 굳힌 설탕. 도구로 부숴서 먹는다)라서 다루기 까다롭다. 불순물이 없어서 유통기한이 거의 무제한인 정제설탕은 19세기 말에 와서 제대로 유통되던가?

“왜 이리 작게 만드는 겁니까?”

“덩어리가 크면 상할 수도 있고 습기가 찰 수도 있으니 작게 만들어야지. 이 것을 기름종이로 싸매면 몇 개가 상해도 넘어갈 수 있잖소? 그리고 선물인데 포장이 좋아야지.”

사탕가게 사람을 고용한 다음 설탕 덩어리를 잘게 부숴 아주 천천히 녹이고. 작은 틀에 굳혀서 정육면체에 가깝게 만들어 각설탕처럼 개량했다. 이렇게 만들고 습기를 빼서 포장하면 유통기한도 늘어나고 소헌왕후님이 드시기 더 편하겠지.

“이틀 뒤 아침에 출발하는데 다들 준비는 마쳤소?”

“제가 의원 생활을 하면서 이토록 행복한 적은 없었습니다. 약재를 너무 많이 사서 문제인데 어떻게 하지요?”

“인부를 충분히 고용할 수 있으니 염려 마시오. 약재가 상할지도 모르니 종자들처럼 대나무 통에 넣고 밀랍으로 봉하시오.”

자칫 잘못하면 습기가 들어가 약재가 상한다. 이 시대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고 약은 무조건 중국! 대륙의 약재! 취급을 받았고. 사행을 다녀오면서 요동에서 파는 약재조차도 어의가 사용했으니 그 수준차를 알만하다.

“대군어른. 마지막에 본 그 돼지들은 어떠십니까?”

“강곡해돈(姜曲海猪)과 동천돈(東串猪) 말인가? 강곡해돈이 더 우수한 것 같더군. 산동에서 돼지를 구할 수 없으면 그 두 종류를 택할 것이나 문제가 있는데.”

“나리! 방길주라는 분이 왔습니다!”

“드디어 온 건가?”

혹시 따라가지 않는다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래를 보니 다섯 명 다 와있었다. 저들이 다 배 한척씩은 크게 만들어본 기술자들이니 믿음직하다.

“다들 반갑소. 산동으로 떠나는 것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찌 이제야 오셨소.”

“저희도 며칠 더 빠르게 오려고 했지요. 그런데 제가 문제의 답을 풀려다가 늦었습니다.”

“문제라니? 회롱기가 달린 배를 어떻게 쓰는지 말이오?”

자신만만하게 종이를 폈는데 거기에는 앞에서 녹로가 달린 어선이 횃불을 밝혀 고기를 모으고. 두 어선이 현대의 트롤망 같은 것을 끌고 다가가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랐습니다. 정답입니까?”

“정답이 아니고 정답을 넘었소. 이걸로 고기를 잡다가 너무 많이 잡혀 배가 뒤집혔으니.”

“다들 들었나? 이 남경에서 상선만 만들다 묻힐 몸인데. 조선으로 가면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다네. 여기 조선의 왕자께서 게시지 않는가.”

다들 내 몸을 보더니만 움찔하고 ‘뭐야 장군이 아니었어? 저런 몸으로 왕자라고?’ 하고 중얼거린다. 하여튼 이놈의 몸은.

“방형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구려. 우리 넷 다 그런 거선을 만들다 조각배만 만드니 좀이 쑤시고 있었소이다.”

“큰 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인데 그 물이 조금 험하다 한들 괜찮지 않소이까?”

“맞는 말씀입니다.”

가장 젊은 사람이 대충 30대 후반. 나머지는 40대 중반 이상. 10년 정도면 후계자를 양성하고도 남을 수준이고 초기의 기술실증용 물량은 충분히 뽑아내겠지.

----------

“다들 짐은 잘 챙겼소? 서책만 사백권이 넘으니 허투루 다루지 마시오.”

“몸보다 짐이 더 많으니 북경에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해지겠군요.”

“내 이럴 줄 알고 주상전하께 말씀을 드렸지. 수레 다섯 개를 추가로 보내달라고.”

이번에야 남경에 단 두 달만 있으면서 책을 보이는 대로 베꼈지만. 다음 사행은 최소 6개월은 여기 머무르게 북경에서 바로 대운하로 내려오게 해야지. 나야 역사지식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조선 사람들은 필요한 내용만 골라오는 짓은 못할 거다.

“바람이 좋으니 산동까지는 엿새면 될 것입니다.”

“알겠소이다.”

“조선은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내수소는 눈 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겠지.”

----------

내수소에는 꽃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의 꽃향기에 취해있던 세종대왕은 구석에 쌓여있는 기름동이들을 보면서 뿌듯해 하였다.

“역시 대국은 대국이야. 만 근의 기름을 한 번에 보내다니.”

“그러기 보다는 환관 왕진의 몸이 달아올라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용한 기물인 줄 알았던 석감을 가장 좋아할 사람이 환관이며 그가 사실상 명국의 실세라니. 유가 이 것을 알고 행했던 걸지 의문이네.”

명에서 조공품목에 석감을 올린 다음부터. 조선에서는 전국에서 꽃을 종류별로 수집하여야 했다. 나리꽃(백합)이나 치자 꽃을 모아서 찌고 그 증기를 소주처럼 물로 만들면 향이 강한 즙이 된다. 이것을 잿물 다음에 섞으면 비누에 향이 입혀진다.

“어이구 허리 끊어지겠네. 한 달 내내 석감만 만들고 있으니 코가 비뚤어지겠어.”

“난 아내가 대낮부터 기루에 다녀왔냐고 화를 내더군.”

“그러면 이렇게 하게나. 나라의 일이 중한지라 몸에 꽃을 달고 산다고.”

만 근의 기름으로는 만 팔천 근의 석감을 만들 수 있다. 내수소를 확충하여 석감을 생산하니 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봤자 석감 값으로만 9만 3천 냥에 해당되는 곡식이나 무명을 지급하기로 약조했다.

일을 하는 백성들에게 삯으로 무명을 한 필만 줘도 광주리 가득 꽃을 따왔다. 그런 공임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은자로 오만 냥이 남고. 석감 팔천 근이 남는 장사였다.

“세자는 아직도 그 조그마한 포를 만든다고 하였는데 얼마나 되었는가?”

“거의 다 되었다 합니다.”

----------

“무엇인가 부족해 보이는데.”

“위력은 확실합니다. 이런 위력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반치의 지름을 가진 화포. 이총통보다 더 작은 화포이기에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 위력은 놀라웠다. 50보(약 90m) 앞에 있는 얇은 철판에 구멍이 뚫리고 뒤에 덧댄 나무판에 철환이 박혀 들어갔다. 이총통의 두 배를 넘는 위력이었다.

“아마 두정갑도 버티지 못하겠지. 화약의 양을 더 늘려봤자 소용이 없겠군.”

“그 아래로 넣으면 철판이 뚫리지는 않고 그보다 많이 넣으면 총의 마구리가 터져나갑니다.”

화승을 길게 넣고 불을 붙이면 안전하게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험과정에서 터져나간 녀석들만 10개가 넘어갔다.

“유가 만든 이 속이 빈 역기봉이 아니었다면 생각도 못했을 것이야. 다 좋은데 그놈의 공임은 어떻게 할 수 없나? 혼자서 드는 화포에 쌀이 20섬이면 너무 비싸지 않은가?”

“값을 싸게 하려고 연철로 만들다 벌어진 일을 아시지 않습니까.”

연철을 말아서 만들면 다섯 발. 잘해야 열 발이 한계였다. 마구리가 터지는 것이야 이해 가능해도 총열이 갈라지는 일이 벌어지자 아예 포기했다.

“이 화포를 사용하는 군사를 일천만 만들어도 화포의 값만 쌀로 이만 섬이 드네.”

“강철을 말아서 만드는 과정을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두 반원 봉을 붙여서 만드는 것은 어떤가? 한번 시험해보게. 그리고 어제의 사고는 왜 일어난 것인지 원인을 아나?”

죄수가 사라지고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도화선을 길게 두어 불을 붙이고 멀찍이 떨어졌으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철환이 너무 꽉 맞아서 중간에 끼었다 합니다. 마구리가 터졌다더군요.”

“탄환도 손 볼 것이 있군.”

“그렇습니다. 차라리 연한 구리나 납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한 정에 쌀 열섬 아래의 가격과. 오십 발을 쏘고도 화포가 상하지 않는 두 가지를 목표로 삼도록 하게.”

---------

“여기서 무엇을 찾으시는 지 궁금하였습니다.”

“이제는 알겠나.”

“물론입니다. 백채(白菜-배추)가 속이 알차 정말로 맛이 좋으니 이 것을 어찌 아신 겁니까?”

“풍문을 들으니 산동의 백채는 속이 알차고 속이 부드러워 먹는 맛이 있다더군.”

배추,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먹는 속이 꽉 찬 배추는 산동 반도에서 왔다. 지금까지 내가 조선에서 먹은 배추는 봄동이 커진 놈이었다. 이걸 청나라 시절에 종자를 수입해서 교잡시킨 배추가 현재 우리가 먹는 배추의 원형이다. 그걸 증명하듯이 배추가 꽉 다물어져 있다.

“조선에서 가까우니 기후도 비슷할 것이고. 이 곳의 작물들이 조선에서 가장 적응을 잘 하겠지. 무 또한 맛이 좋지 않은가?”

“무는 향이 적고 매운맛이 덜하지만 크기가 큽니다.”

“가축은 몰라도 채소는 종자에 따라 수확이 갈리니 전혀 나쁠 것이 없네.”

“대군어른! 돼지를 기르는 농민을 찾았습니다!”

듣자하니 산동의 돼지도 2년이면 다 자라고 크기는 이백 근이 넘는다고 말을 했다. 그 기대를 무너트리지 않듯이 여태까지 봐온 수준의 거대한 돼지가 몸을 뒤뚱거리면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이 돼지가 이년에 이백 근이 넘게 자란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름이 좀 적은 녀석들이 더 잘 자랍니다. 거의 이년이면 240근(144kg)이나 되죠. 먹이는 것도 일입니다.”

“왼쪽 우리에 있는 주름이 적은 녀석은 몸이 더 길게 늘어나있군. 종이 다른 것인가?”

“예. 서로 튀기가 나오면 주름이 있는 놈이 나오니 따로 기르고 있습죠. 고기 맛이야 오른쪽의 주름진 놈이 더 좋습니다.”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농부를 보니 어느 쪽을 기르건 상관이 없다는 말 같다. 그렇다면 일단 큰 놈을 먼저 가져가야지.

“이 인근 농가들을 다 동원한다면. 이 주름이 적고 몸이 긴 녀석으로 한정하여 지금 백 마리의 새끼돼지를 팔 수 있는가?”

“일 년에 백 마리요?”

“조선으로 보내는데 서로 상하거나 도망치거나 맹수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지 않는가.”

보통 가축을 기르면 종자용으로 쓰이는 수컷 외에는 일제히 거세한다. 식육용은 누린내가 나고 말 같은 것은 발정기가 되면 말을 듣지 않으니까. 농민은 한참동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한해에 단 한 번은 백 마리는 가능 할 것입니다.”

“알겠네. 우선 젖을 뗀 놈으로 본다면 젖을 떼고서 한 달 동안 얼마나 자라는가?”

“젖을 떼면요? 이미 젖을 떼면 30근(18kg)이 넘고 한 달 더 기르면 빠른 놈은 뼈대가 다 올라오고 70근(42kg)이 넘는뎁쇼.”

이놈으로 정했다. 다른 건 몰라도 몸이 긴 것은 같은 무게라도 도축하면 고기가 더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맛 좋은 버크셔 대신 도체율이 뛰어난 요크셔를 기르고 있으니까.

“대군어른께서는 수많은 돼지를 보았는데 어찌 이 녀석으로 정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강남의 돼지가 더 커 보였습니다.”

“지금 말을 못 들었는가? 젖을 뗀 녀석을 가져가도 사행길이 끝날 무렵엔 칠십 근이 넘는다네. 그런데 강남에서 데려오면? 사람보다 무거운 돼지를 가져와야 하네.”

강남에서 개성으로 바로 배를 태워서 보낸다면 혹시나 모르겠다. 일단 이 문제는 접고 농민과 마지막으로 계약을 정했다.

“7월 21일에 당도하도록 북경으로 젖을 막 뗀 새끼돼지로 백 마리를 보내게. 주름이 적고 몸이 긴 품종일세.”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볼을 안 뗀 수퇘지 스무 마리에 암퇘지 여든 마리를 섞어 보내겠습니다.”

내가 돼지를 길러본 것은 아니니까 비율까지는 모른다. 그래도 1:4 성비면 사육에는 충분한 양이겠지.

“그런데 이 돼지의 품종 아니 명칭은 무엇인가? 주름 없는 놈은 아닐 것인데.”

“기몽흑돈(沂蒙黑猪)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 돼지들이 무사히 건너간다면 앞으로 돼지들을 더 주문할 것일세. 값은 당연히 많이 쳐줄 것이고.”

이제 사행도 막바지다. 그래도 황제의 허락 - 정확히는 실세인 왕진의 권세지만 - 을 받아서 중국을 편하게 돌아다녔으니 인사는 하고 가야지. 북경으로 올라가자 미리 왕진이 보낸 사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놈의 향석감이 도착했구나!

“일곱 달 만에 다시 보게 되는구나. 그간 어떠한 것을 배웠느냐.”

“명국이 정녕 강대한 나라이며. 아국이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 만 알게 되었습니다.”

“보거라! 번국의 왕자로서 이렇게 열정이 있으니 대소신료들은 이 자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가?”

정통제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한다. 분명 왕진이 그새 바람을 또 넣었겠지. 이번 기회에 다음 사행 약속까지 받아두자.

“아국은 물산이 적고 배움의 깊이가 없어 나라에 우환이 많사옵니다. 황제폐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이 충분히 많은 남경 인근에 사람을 보내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 훌륭한 생각을 하다니. 조선의 왕 이 도는 정말 빼어난 아들들을 두었구나. 알겠다, 조만간 인원과 상세를 정하도록 하겠다.”

형식상의 칭찬이 끝나고 환관들이 고맙다는 듯이 따로 와서 인사를 했다. 간신배든 아니던 조선에 이득을 주는 놈들이니 나도 웃으면서 받아줬고. 조선으로 귀국하는 길에 올라 이번 사행의 우두머리를 만났다. 우와 내가 꼭 만나고 싶은 분이에요! 같이 일해야죠!

“공조참판 정분(鄭苯) 인사드립니다. 대군께서 어찌도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제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오. 황제께서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많은 애를 쓰셨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숙주의 체구를 보아하니 무던히 애를 쓰셨을 것 같습니다.”

“크흡! 그 그것은 그저 신숙주가 조금 더 고생을 했지.”

그랬다. 신숙주는 몸이 적응된 개봉쯤 와서 나의 꾸준한 갈굼과 반복적인 근력운동을 당하고. 빠짐없는 유산소를 당해 대충 체중이 이십 근 이상은 줄어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다이어트 개념이 없으니 고생을 해서 살이 빠진 것으로 본다.

“이 돼지들은 뭡니까? 이것을 어째서 조선에 가져가시는 것 입니까?”

“귀찮게 해서 미안하오. 명의 돼지가 품종이 훌륭하여 백 마리를 조선에서 기르려고 가져왔소. 새끼 돼지들인데 저 돼지들을 길러 전국에 뿌릴 생각이오.”

“새끼 돼지들이라뇨? 농담도 지나치십니다. 이제 반은 자란 것 같습니다만.”

정분이 껄껄 웃는다. 조선 토종돼지의 무게는 잘해야 2년 길러 40kg정도다. 즉 지금 저 돼지들의 크기는 조선돼지 기준으로 성장이 거의 끝나가는 놈들이다.

“놀라지 마시오. 조선으로 돌아가는 한 달 동안 돼지가 계속 커나갈 것이오. 저 돼지들은 지금 젖을 막 뗀 새끼돼지들이니 감안해야 하오.”

“네?”

“아닌가? 이거 무게가 좀 다른데. 40근은 확실히 넘는데 튼튼한 녀석만 보낸 거 맞겠지?”

----------

1443년 8월 25일. 세종대왕은 오랜 중국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수양대군이 개성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조금 뒤면 도성으로 들어오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훌륭하다. 명국의 선박을 만들던 기술자도 고용하였다 했으니 나라의 복이 늘어나는구나."

“저의 배움이 부족하여 하루라도 빨리 종형을 뵙고 싶습니다.”

“강이 불어서 사흘정도 늦는다고 하였는가? 그래도 둘째의 돌에는 늦지 않겠구나.”

서산군과 세종대왕은 다시금 입신체비에 열을 올렸다. 둘째 아들이 명에서 열심히 나라의 일을 하는 동안. 자신도 몸 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아들은 수많은 서책을 가져오기로 약속하였으니 그 책을 읽으려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답이다.

“전하! 전하!”

“입신체비를 하는데 조용히 들어오지 않고 왜 그리 소란인가?”

“그것이 무악재에 난리가 났습니다. 사신들이 귀환하는데.”

“호랑이라도 덮쳤다는 말인가?”

“아니옵니다. 돼지들이 탈출하여서 일대에 난장판이 났답니다.”

돼지가 탈출을? 돼지는 여성이라 해도 두들겨 팰 수 있는 작은 짐승인데? 명에서 가져온 돼지들이 얼마나 크기에? 다 자란 돼지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인데?

“돼지가 커 봤자 얼마나 크단 말이더냐?”

“한 마리가 백 근에 달한다 합니다.”

----------

“잡아!”

“뀌이이이이익!”

“이게 돼지야 멧돼지야!”

“그러니까 굶기면 미쳐 날뛴다고 하였지 않나! 일단 하나 잡았다네!”

도성에서 푸짐히 먹이려고 끼니를 좀 챙겨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운반되던 굶주린 돼지들(단 3시간 굶었다!) 중 한 무리가 수레를 부수고 탈출했다.

연쇄적으로 말들이 놀라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고 그 이후는 모든 돼지수레가 깨져서 백 마리의 돼지들의 집단 탈출극이 시작되었다. 하나하나가 사람보다 무거운 돼지들이!

“잡아! 잡으라고! 말 뒀다가 뭐해!”

“뀌익! 부익!!”

“으악 돼지가 문다!”

“채찍으로 때리고 덮쳐!”

“저보다 무거운 돼지를 어찌 그렇게 막습니까!”

저녁놀이 내려오는 무악재는 그렇게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인근 주민들이 나서서 돼지들을 몰아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그 과정에서 죽은 돼지가 넷이고 시름시름 앓는 돼지가 셋이다. 그래 병 걸려서 죽은 돼지 감안해도 80마리는 넘게 살렸어. 이 정도면 족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