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25화 - 근자명국행(4) (0718 수정) >
“조선에도 이 대원정이 알려졌습니까?”
“풍문으로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가 원정에 참가한 보선(대장선)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태감 정화어르신이 이 배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 맞습니다.”
“잠시 이 배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재 보아도 되겠습니까?”
역사상의 유물을 접하자 사학과를 나왔다고 정신이 팔려있었네. 길이는 소중한 것이니 황종척과 줄자를 대신할 두꺼운 무명끈 한 타래를 가져왔던 게 떠올랐다.
대충 길이를 재보니 배 갑판의 길이는 130척(42.9m), 폭은 44척(15m) 이었다. 500톤급 갈레온이 길이 160피트에 폭이 32피트니 길이는 비슷하지만 폭에서 1.5배나 차이가 나서 배수량 차이까지 이어지는 거니까. 한 1천 톤 규모가 아닐까 싶다.
“이 보선은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기에 크기가 가장 작습니다. 가장 큰 보선은 길이만 명국의 척으로 200척이 조금 안되었습니다.”
“200척이요? 명국의 척이 황종척보다 조금 작긴 합니다만 길이가 거의 한배 반이면…….”
“그 배는 이십년 이전에 만들어 졌으니 다루기 힘들다 치고. 이 배가 좀 많이 낡았는데 보수를 하지 않는 게요?”
관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도 이 배를 몰면서 정이 많이 들었겠지. 하지만 정크선은 수명이 짧은 편이라 하고. 결정적으로 중국 대륙을 다 뒤져도 이 배를 수리할 재목도 구하기 힘들다.
“이런 거대한 배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앞으로는 천오백 료(약 210톤급) 크기로 배를 작게 만든다 합니다. 이 배의 마지막 항해는 여러분과 함께 하겠군요.”
“이런 거대한 배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해체되기 마련인데 어디입니까?”
“남경입니다. 삼일 정도 걸리는 여정이니 편안히 쉬고 계시지요.”
삐걱거리고 삭아 들어가는 갑판만 봐도 이 배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정크선의 효율이 낮고 비싸다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시키고 다듬으면 쓸 만한 배가 나올 거고. 그렇게 기술을 발전시키면 좀 작아도 쓸 만한 배가 나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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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년 4월 2일. 여행을 시작한지 4개월 만에 남경에 도착했다. 북경에서 바로 운하를 탈 수 없으니 좀 돌아오긴 했지만. 해금령 탓에 별 방법이 없으니. 다음번 사행을 오는 사람들은 5월쯤에 북경에서 출발해 강남에서 1년간 머물게 해야지.
“북경이 명의 수도가 아니었습니까?”
“북경은 수도이긴 하되 최 북방에 위치하여 있으며 농토가 적지 않은가. 산출하는 물산의 양은 강남과 비교할 수 없을 걸세.”
“대체 이 곳의 농토가 얼마나 되는지요.”
“아국에서 경기, 강원, 그리고 삼남을 합친 것 보다 많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 것 같네.”
언제나와 같이 행사는 접고 인사치례와 적당한 인삼공세로 기름칠을 한 다음 길거리로 내려왔다. 북경과는 격이 달랐다. 그야말로 인파가 끝이 없었고 가게에서는 연신 손님들로 북새통인데다가 옷도 넓고 큰 옷이어서 더욱 북적거려 보았다.
성종대의 학자 최부가 강남에 표류한 다음 남긴 기록인 표해록에는 북경보다 더 부유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다들 이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가서 나를 따라 병아리마냥 일자로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개가 적응이 빨라서 입을 열었다.
“오늘 무슨 축제가 있습니까?”
“축제는 없다네. 사시사철 이런다더군.”
“맙소사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 겁니까?”
“그거야 모르지. 확실한 것은 북경보다 더 부유한 곳이며. 농부들이 쌀농사만 하지 않고 다른 것들도 기르는 것이라네.”
“네?”
아무리 사대부라고 해도 농사는 쌀농사가 우선이라는 것은 당연히 안다. 그러나 이개는 상식이 파괴되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상인들이 있고. 양자강의 드넓은 물줄기와 운하가 수운을 담당하니 그런 것이지.”
“그렇다면 농부 하나하나가 각자의 토질에 맞는 작물을 최대한 기른다는 말씀이시고.”
“바로 그거일세, 자기가 기를 수 있는 최고로 질이 좋은 작물을 기를 것이며. 물산이 쉬이 돌아 매점매석이 힘들어 항상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조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쌀농사가 안 되는 지역은 수수, 밀, 보리농사를 하고 부수적인 농사로 몇 가지 작물을 기르니까. 하지만 남경 일대 정확히 강남은 상업이 엄청 발달해서 그냥 자신의 땅에 맞는 농사를 지으면 충분하다.
사농공상이 말이 사농공상이지 현재 조선에서는 이런 의미이다. 나라가 말박이에게 박살나서 겨우 복구중이라 먹을 거 없으니까 닥치고 농사지어! 아 농사이야기 나오니까 배고프다. 저 멀리 있는 거대한 식당이나 가보자.
“강남에 왔으니 속을 강남의 물산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나.”
“삼층에 이렇게 거대하다니. 대궐이 부럽지 않습니다.”
“여기. 이걸로 거하게 먹고 마시고 싶으니 알아서 잘 가져오게.”
두 달 동안 있을 곳에 왔으니 기분 좀 내자. 30냥짜리 마제은. 현대로 치면 삼천만원 수표를 떡 하고 쥐어주니 주인이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달려간다. 두당 300만원이면 현대로 치면 어느 정도지? 지금 기준으로 세계 최고의 도시인 남경에서는 뭐가 나올까?
“만두라니.”
“술도 나왔고 이것을 먼저 먹으라는 것 같은데요?”
속이 비쳐 보이는 만두에는 뭔가 차있는데? 한입 베어무니 뭔가 모래 같은 것이 나오면서도 톡톡 터진다. 알이긴 한데 이건 또 뭐람? 점원을 불러서 물어보니 아주 자랑스럽게 말한다.
“토하의 알을 듬뿍 넣어 만든 만두입니다.”
“토하(土蝦 - 민물새우)의 알?”
난 지금 한입에 현대기준으로 20만원어치를 먹은 것 같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그 토하 알로 만든 젓갈도 부호가 젓가락으로 찍어먹는 미친 가격인데. 첫 끼니로 나오는 만두가 이 정도라고? 이건 그저 강남이 부자동네라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술의 향기가 아주 그윽한데 이 술은 무엇이오?”
“남쪽 소흥의 특산주 소흥노주입니다.”
“어찌하여 이태백이 이리도 술을 사랑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강남을 주유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런 곳에서 술을 마셨겠지요. 이런 음식과 풍경에 술이 곁들여진다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응 아니야. 이태백 시절에는 강남은 그냥저냥 살았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다. 오늘은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
“살아있는 잉어 튀김입니다. 잉어가 살아있을 때 드십쇼.”
“새끼 돼지 볶음입니다. 머리는 빼고 볶았으니 안심하세요.”
“좋은 바다거북이 있기에 탕을 내왔습니다.”
결국 그날. 내 주머니에서는 열 냥짜리 은이 더 튀어나왔고 다음날 다들 숙취에 시달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 하루 정도는 이렇게 풀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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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선을 만드신 아니 정확히는 설계하신 분을 만나 뵙고 싶소.”
“그 분들이요? 다들 관직을 받아 다른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놈의 명나라는 정말 개판이었다. 왜 멀쩡한 조선기술자를 사방팔방으로 찢어놓지? 나중에 가면 기록을 대부분 말소해서 기록도 개판이 되어 유물을 바탕으로 배의 크기를 산정했던가? 심지어 핵심 기술자들도 대부분 관직을 얻어 사방팔방에 찢어져 있었다.
결국 임진왜란 시기에는 이순신이 수도 없이 박살낸 세키부네보다 못한 호선이나 타고 백병전 벌이고. 조선 수군의 근해용 전투선 판옥선 받고서는 아주 좋아 죽었다는 언급조차 있었으니 얼마나 수준이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배는 계속 만드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천 료(140톤) 이상의 배를 설계하신 분을 만나 뵙고 싶소만.”
“방길주(房吉珠)면 상선을 만드는 중입니다. 관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가장 숙련된 분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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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오? 물어볼 것이 있어 찾아왔는데.”
“조선에서 오신 왕자라고 하셨습니까? 이거 험한 뱃사람들 중에서도 겨룰 이가 없겠군요.”
“다름이 아니고 태감 정화의 대원정에 배를 만드셨다 들었소.”
“그 일이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51세인 방길주는 푸념 반 자랑 반을 털어놓았다. 열 살 무렵에 원정을 떠나는 배들을 보고 매료 되어 온갖 배를 배우며 살았고 결국 기회가 왔다. 서른이 넘어 1428년이 되자 마지막 7차 원정을 준비하였고. 거기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가까스로 자신의 능력의 한계치인 이천 료 크기(280톤)의 배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거대한 보선들이 하나씩 폐기되는 모습에 한동안 술독에 빠졌고. 그러다 한번 술병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정신을 차려 상선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의욕이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배를 얼마나 알고 계시오?”
“아마도 관직을 받은 자들의 바로 아래 정도는 되겠죠. 함대가 보통 오십 척 이상으로 구성되는데 가장 큰 보선과 호위선. 그 아래로 다양한 배가 있었습니다. 보선이야 몰라도 다른 선박은 다 만들 수 있지요.”
그런데 배 이야기를 하니 의욕이 서서히 살아나니 천성이 조선공이 분명하다. 목소리가 점점 힘이 들어간다.
“상선도 만드니 여러 종류의 배를 만드는 것이 맞소?”
“배에 미쳐 살아서 배운 것은 많습니다. 북부의 사선을 제외하면 다 배웠습니다. 복선(福船-복건성의 배), 광선(廣船-광동성의 배) 도 만져는 봤고 이 근처의 배인 조선(鳥船- 절강성의 배)는 당연히 알고 있지요.”
덤덤하게 말하지만 난 놀라움을 감추느라 애썼다. 그 넓은 명나라에 있는 3가지 유형의 배를 모조리 알고 있으면 무조건 조선으로 데려가야 한다.
“다시금 새로운 배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소?”
“저보고 조선에 가시라는 말씀이신지요.”
“이미 알고 있으니 다행이오.”
“그렇다면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제가 조선에 가서 밑바닥부터 배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라면 환갑이 되어서도 제가 원하는 배는 만들 수 없습니다.”
예리한 질문이다. 조선이 과연 선박을 만들 능력이 있는가?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커다란 배를 만들 수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소.”
“그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나이가 되어도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모르는 배가 있다면 저와 뜻이 맞는 자들을 같이 데려 가겠습니다.”
배를 사랑하는 사람이 맞네. 그래도 내가 보고 놀란 장영실의 그 어선들. 그 놈들이면 충분하겠지. 도면은 전통건축 일 하는 친구가 몇 번 보여줘서 대충 그리는 법은 아니까. 이걸 조선시대 표준 도면으로 만들어 볼까?
“특이하게 그리십니다. 그 깃털은 무엇인지요?”
“두루미 깃을 달궈 만든 세필이오. 보시오, 조선에서 근래에 만든 배요.”
“평저선이 아닙니까. 돛은 두 개 밖에 없고 노까지 있으니 그저 어선일 뿐이군요. 왜 배에 회롱기가 있습니까? 녹로가 있는 배라니 이해가 안 되는 군요.”
“이 배는 같은 크기의 어선보다 곱절의 물고기를 잡고 있소. 그리고 일 하는 속도도 곱절은 빠르지.”
한참동안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겠지. 나도 이런 방식을 상상하지는 못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다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곱절의 생선을 잡으며 일 하는 속도가 곱절이 빠르다니. 무엇이 다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꼭 알아보고 싶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소?”
“조만간 제 아들에게 이 선창을 물려줄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동료 넷을 더 불러서 그들도 설득할 것이니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이 곳을 떠나 산동 반도로 출발할 때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소. 6월 5일까지 오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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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의 서적이 많다 했는데 책에 치어 죽겠군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찾아온 사서가 아닐세. 농서와 기술서일세.”
신숙주의 말과 같이 책의 산더미는 계속 쌓여나갔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 석탄이 어디서 나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며 인삼을 재배하려면 그늘로 덮어두어야 하는 것도 안다. 문제는 우리 세종대왕님이 철저한 지식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거다.
‘우리 유가 기발한 생각을 하였구나. 인삼의 씨를 받아 위에다 그늘을 지게 하여 기르면 된다고? 공조판서 부르고 어디 쓸 만한 산 찾아보고 입지 정한다음 나서보자.’
라고 나를 책임자로 앉히신 다음 대충 다섯 군데에 밭을 만들고 통계내고 분석하고 해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찾아낼 때까지 나를 굴리겠지. 반면에 여기서 책을 찾아서 본을 뜨고 가져오면 한번만 시험해 보시고 말거다. 다행히도 제민요술에는 조선에 있는 서책에 누락된. ‘부추와 머위는 그늘에서 기를 것.’ 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표고버섯의 재배법이 있습니다. 농서(農書) 라는 책인데 송 대의 왕정(王禎)이라는 자가 지은 책입니다.”
“재배라? 산에서 나는 것을 채집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데 농서는 전조에서 가져오지 않았나?”
“아마 누락되거나 원나라 시절에 일부만 가져와 내용이 다른 것 같습니다.”
“혹시나 모르니 전부 필사하게나.”
그렇게 서책의 산더미 속에서 또 다른 좋은 내용을 찾았다. 흑토 사용법? 이건 아무리 봐도 석탄이다. 고려시대 까지는 약간 쓰였던 석탄이 조선시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으니까 이것도 근거로 삼아서 써보자.
석탄을 이용한 자염이나 유사 천일염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천일염이 있을까 했는데 암염 채취기록은 좀 있네. 이걸 근거로 석탄 캐서 소금물을 농축하고 어쩌고 하면 통할 것 같다.
“전조에서 조금만 더 열심히 기록을 수집했다면 우리가 이 곳에서 다른 서책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인데 참으로 한심합니다.”
“달단(몽고)의 말박이들에게 나라가 망가지면서 소실된 것이겠지.”
“말박이라뇨. 달단이 어째서 말박이입니까?”
“멀쩡한 나라를 말로 박아대니 말박이일세. 혹여나 으슥한 곳에서 정말로 말에 박을지도 모르고. 말을 그렇게 잘 타는 것도 박아대면서 애정이 싹터서가 아닐까?”
“푸하하하하핫!”
다들 웃음이 터졌나보다. 말박이라는 용어를 600년 빠르게 전파했지만 어차피 유목민 수준이 거기서 거기잖아? 다시금 책에 집중하자.
이 중에서 상당수는 조선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니 죄다 필사해서 가져가야지. 박강과 강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여기서 필사중이다. 박강은 지금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 주변을 돌도록 하였으니까. 자신이 모르는 것은 다 적어오라 했는데 따로 봐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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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왜 물어보는 거요?”
“정말로 궁금해서입니다.”
“어휴 알겠소. 바빠 죽겠는데 저 멀리서 오신 분들이니 내 다시금 보여주겠소.”
농기구부터 수차. 심지어 조그마한 도구까지 전부 다 정신없이 그려내고 있는 박강은 마치 혼이 나가버린 사람 같았다. 멀리서 본체만체 하는 강곤은 직급도 위인 데다가 저런 열정을 보이는 박강을 말릴 방법이 없었다.
“장호군(장영실) 어른께서 여기 계셨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았겠지.”
명에서 새로 만든 운하의 갑문은 그 구조를 아는데 삼일이 걸렸다. 운하를 비록 전부 물의 높이를 맞추려고 호수를 새로 파는 결단력. 그것을 따라 하기에는 자신이 없으니 오히려 작은 것에 집착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 훌륭하다고 칭찬하면서 크기와 상세는 꼭 적어두라고 말했다.
“다 되었소? 조선에서는 이런 수차도 없는 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없습니다.”
“이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들어가셔야죠.”
“그 그래 알겠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가지? 그래 태호로 함 가봄세. 우리 둘이라고 해도 충분할 것 같으니.”
“어휴…….”
한낮 농부도 그에게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러기에 귀찮아서 반쯤 하대를 하는 것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